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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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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측(위)과 북쪽(아래)에서 바라본 공동경비구역

판문점(板門店)은 한국전쟁의 정전 협상이 진행된 곳으로, 대한민국의 행정 구역상으로는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 선적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행정 구역상 개성특별시 판문구역 판문점리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의 판문점은 정전협정 이후 한국전쟁 포로 교환업무를 맡게 된 중립국 인도군의 막사와 포로 교환 장소로 사용되었던 건물로써 , 정전협상이 이뤄진 실제 정전협정 조인장소는 현재의 판문점보다 북쪽으로 1.5km 정도 떨어진 장소에 위치해 있다.

공식 명칭은 군사정전위원회 판문점 공동경비구역(軍事停戰委員會板門店共同警備區域), 영어로는 'Military Armistice Commission Joint Security Area - Pan Mun Jŏm'이다. 이를 통상적으로는 공동경비구역(JSA, Joint Security Area)이라고 짧게 지칭하며, 대중적으로는 더 짧게 판문점이라고 부른다.

정전협정 이후 유엔군과 조선인민군의 공동경비구역으로 지정되었으며,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쌍방의 행정관할권이 미치지 않는다.

1976년까지는 경계선 없이 양측 경비병과 출입자들이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었으나, 1976년 8월 18일에 발생한 판문점 도끼 살인 사건 이후로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관할 구역이 분할되었다. 2004년 유엔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를 이전 용산기지에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으로 이전하기로 하였다.

유엔군과 한국군이 공동으로 경비하는 '자유의 집'은 여권을 소지한 외국 관광객은 견학이 가능하며, 그 외의 한국 국민과 외국인은 따로 소정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상세[편집]

판문점은 비무장지대의 군사분계선상에 있는 구역으로, 대한민국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 선적리와 북한 개성시 판문구역 판문점리 접경 동서 800m, 남북 600m에 걸쳐 장방형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는 휴전 당시 유엔군과 중국 인민지원군 및 북한군이 회의를 원만히 하기 위하여 1953년 10월 합의, 군사정전위원회 본부 구역 군사분계선(MDL)상에 설정한 것이다.

공동경비구역 안에는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장을 비롯하여 북한 측의 '판문각', 유엔 측의 '자유의 집' 등 10여 채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1971년 8월 남북적십자 예비회담, 1972년 7월 7.4 남북 공동 성명 등으로 판문점은 당시 5천만 한민족의 가슴을 한때 뜨겁게 한 바가 있고, 1973년 6월 남북조절위원회가 결렬된 지 7년 만인 1980년 8월부터는 남북총리회담의 실무회담이 이곳에서 열려 8차까지 거듭한 끝에 북한 측의 일방적인 불참으로 공전(空轉, 없던 일로 됨)된 일도 내외의 관심을 모았다. 그리고 2015년 8월 서부전선 포격 사건의 연장선으로 이루어진 남북고위급접촉으로 다시 한 번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주로 한국전쟁 교전당사 사이에 맺어진 정전 상태를 관리하기 위한 군사정전위원회의 회의와 협상의 장소로 이용되었지만, 1971년 9월 20일에 열리게 된 남북적십자예비회담을 계기로 남북한간 접촉과 회담을 위한 장소 및 남북한을 왕래하는 통과 지점으로 활용되었다.

원래는 정전협정에 따라 중국인민지원군 대표단도 주둔했으나, 1958년 중국 인민지원군 철수가 완료되었다. 그러나 중국 대표단 자체는 잔류하였으나, 1991년 3월 25일, 처음으로 한국군 장성 황원탁 소장이 유엔사 수석대표로 임명된 것에 대해 북측이 한국은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니니 인정할 수 없다고 정전위 보이콧을 선언하게 됨에 따라 중국의 입장이 애매해졌다. 급기야 북한은 1994년 4월 28일, 군정위 탈퇴를 선언하고 중감위의 폴란드 인원도 추방시키는 한편 조선인민군 대표부를 설치했다. 마지막 중국대표였던 노광업(盧光鄴) 대교는 1994년에 북경으로 철수했으며 정전위 보이콧에 동참해달라는 북한 측의 끈질긴 요청에 중국은 1994년 9월 1일, 외교부를 통해 공식적으로 대표단 철수를 선언함으로 개성에 잔류했던 5명의 참모들까지 12월 15일에 평양에서 출발하는 열차를 태워서 철수시켰다. 다만 중국은 정전협정의 유효성을 확인하면서 철수가 아닌 소환이란 표현을 사용, 복귀의 여지를 남기는 듯 했는데 30년 가까이 지난 2022년까지 복귀 얘기는 감감무소식이다.

2016년 2월 11일 2016년 개성공단 가동 중단 사건으로 인해 북한 측에서 판문점 연락 통로의 폐쇄를 선언한 상태다.

2018년 1월 3일 다시 판문점 연락 통로가 개통되었다. 그리고 2018년 11월 내에 자유왕래가 허용될 계획이라는 발표가 났으나 모두 옛말, 북한의 연이은 도발과 남북, 북미관계 악화로 자유 왕래 등은 백지화 되었고 여전히 판문점 자유 왕래는 제한되어 있다.

그 외[편집]

1953년 당시 판문점

대한민국 행정구역상으로는 1972년까지 경기도 장단군 진서면 어룡리였으며, 현재는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 선적리이다. 북한 행정구역상으로는 개성시 판문구역 판문점리. 공식적으로는 쌍방 어느 쪽의 영토도 아닌 것으로 되어 있다.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에서 서북방으로 62㎞, 북한 평양시에서 대한민국으로 215㎞, 개성으로부터는 동쪽 10㎞ 지점으로 동경 126° 40' 40"(126.6768°), 북위 37° 57' 20"(37.9560°)에 있다.

1953년 당시 판문점. 국방색 군용 텐트가 쳐진 방향(+ 헬기가 주차되어 있는 방향)이 대한민국 문산 쪽 방향. 허허 벌판으로 하얀 건물이 있는 쪽이 전쟁 후 북한령이 되고 만 개성 쪽 방향이다. 휴전선은 사진 기준으로 10시와 4시 방향으로 그어져 있다. 사진 왼쪽 기준 시커먼 텃밭(일명 썩은 밭) 까지가 대한민국이며 그 위는 북한이다. 판문점 남동쪽 상공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은 실제 정전협정 조인이 이뤄진 판문점이며, 현재는 "정전협정조인장"이라고 설명되는 곳이다. 이 곳과 현재의 판문점은 다른 곳이다. 사진의 지역은 현재의 판문점으로부터 약 1km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구글 지도를 통해서 판문점을 검색해보면, 북서쪽에 "정전협정조인장"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6.25 전쟁 전만 해도 조선시대 의주로와 사천(砂川)내가 만나는 지점의 이름없는 한촌(寒村)으로 초가집 몇 채뿐이었지만 1951년 10월 25일 이곳에서 휴전회담이 열리면서 세계 뉴스의 초점으로 떠올랐다.

마침내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이 곳에서 조인되면서 이 곳의 명칭은 유엔군과 인민군의 '공동경비구역 JSA'으로 결정되었다. 같은 해 8월부터 9월 초까지의 포로 교환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곳이 휴전선보다 북측에 있는 것이 문제였고, 결국 1953년 10월 동쪽으로 약 1km 이전하여 휴전선 위에 새로운 판문점을 설정하고, 중립국 감독 위원회 관할로 포로교환장소 건물을 짓게 되었으며, 이 건물들은 현재 판문점에 남과 북을 가로지르는 하늘색과 회색 건물의 원형이 되었다. 하늘색 건물은 유엔군 측, 회색 건물은 북한 및 중국군 측 포로 교환 장소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원래의 옛 판문점은 "정전협정조인장"이라는 이름으로 북한의 견학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고, 대한민국에서는 월북 당연히 갈 방법이 없다. 판문점 견학 시에 다리 너머로 보이는 옛 판문점을 먼 발치에서 볼 수 있을 뿐이다. 물론 북한 쪽을 통해서 판문점 견학 시 반드시 거쳐가는 관광 코스이다. 평화 박물관이라고도 불리워지며 내부에 도끼만행사건 당시 사용되었던 도끼를 전시해 놓았다. 그 외에 여러 사진 자료를 전시해 놓았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북한 측 판문점 견학은 불가능에 가깝다. (북한 측 초청에 의해서 대한민국 통일부의 허가를 받아서 방문하는 경우는 예외, 물론 어렵다.) 유튜브 등에 보면, 북한 측 판문점 관광객들이 올려놓은 영상을 볼 수 있다. 외국 관광객들이 올린 사진들을 인터넷에서 확인 할 수 있다.

공동경비구역 명칭 그대로 유엔군과 북한군에 의해서 공동으로 경비가 되던 구역이었다. 그래서 북한군 초소가 현재 남측 경비구역에 설치가 되었으나, 반대로 유엔군 경비 초소는 북측 경비구역에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서로 가끔 같이 사진을 찍거나 맞담배도 피우는 일도 흔했다고 한다.

그러나 판문점 서쪽 사천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 부근에 있던 미루나무에서 1976년 8월 18일 북한군에 의해 발생한 도끼만행사건으로 인해 미군 장교 아서 보니파스 소령과 마크 배럿 대위가 사망하면서, 사건 당일 북한군은 대한민국 측에서 도망치듯 모든 대한민국 초소에서 철수하였다. 이후에는 북측은 북한군이, 남측은 유엔군이 경비하는 지역으로 제한되었다.

주요 건물[편집]

자유의 집
평화의 집
돌아오지 않는 다리. 옛 이름은 널문다리이며 1번 국도의 명목상 구간이기도 하다.
중립국감독위원회 캠프 내부에서 촬영된 모습. 미군과 대한민국 국군 경비병 외에도 일반인 기자와 캐나다군 육군 (검은 베레모에 CADPAT 전투복, 선글라스를 착용한 대한민국 국군 일등병의 뒷편)의 모습이 보인다.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장에 서양관광객들이 방문한 모습.
대한민국에서 바라본 판문각
통일가, 지하 1층, 지상 1층 규모의 건물. 1985년 8월에 김정일의 지시로 건설되었다. 우리 측의 평화의 집과 같은 남북회담용 건물이다.

자유의 집[편집]

북한의 판문각에 대응되는 건물이다. 첫 자유의 집 건물은 1965년 9월 30일에 2층짜리 콘크리트 건물 두 동에 중간에 팔각정이 있는 형태로 준공됐다. 그러나 판문각에 비해 너무 초라해 보이고, 건평도 달랑 86평으로 대단히 협소해서 1996년 후반에 기존 건물을 싹 밀고 다시 지었고, 1998년 7월 9일에 재오픈했다.

새로 지은 자유의 집은 지상 4층에 지하 2층 규모로, 팔각정은 새로 지은 자유의 집 한켠으로 옮기는 형태로 보존되었다. 첫 번째 사진 좌측에 나온 정자가 바로 팔각정이다. 남양주종합촬영소의 판문점 세트는 새로 짓기 전의 자유의 집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판문점의 옛 모습을 간접적으로 나마 체험할 수 있는 장소다.

2019년 6월 30일 오후 3시 54분부터 53분 간 이곳에서 남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 착공: 1996.12.13
  • 준공: 1998.7.9
  • 건평: 1,437평(지상 4층, 지하 2층)
  • 위치: 파주시 군내면 조산리
  • 용도: 공공업무시설 및 전시시설

각 층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 1 층: 로비, 기자실, 편의시설(식당 등)
  • 2 층: VIP실, 회의실, 사무실
  • 3 층: 남북연락사무소, 대회의실
  • 4 층: 전망대 및 다용도 공간

평화의 집[편집]

자유의 집에서 13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남북회담용 석조건물이다. 평화의집은 1980년대 이후 남북 간의 회담이 활발하게 진행됨에 따라 우리 측의 회담시설을 확충하기 위해 1989년 12월 19일 준공한 우리측 회담시설이다. 지상 3층, 지하 1층(연면적 3,293㎡) 규모로 1층은 귀빈실과 기자실, 2층은 회담장, 3층은 연회실로 되어 있다. 2019년까지 100회의 남북 간 회담이 이곳에서 개최되었다. 특히 2018년 4월 27일 이 곳에서 개최된 남북정상회담은 분단 이후 처음으로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우리 측 지역을 방문하여 회담을 가졌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의미가 큰 회담이었다.

평화의집에서는 한때 남북 당국 간 연락업무도 수행했었다. 1992년 2월 남북기본합의서가 발효됨에 따라 그해 9월 우리 측은 평화의집에, 북측은 통일각에 각각 사무소를 두고 직통전화나 연락관 접촉 등을 통해 연락을 주고 받았습니다. 이때부터 당국 간 연락업무와 적십자 간 연락업무가 분리되었습니다. 우리측은 1998년 신축된 '자유의집'으로 연락사무소를 옮겼으며,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 등 남북관계 상황 변동에 따라 연락사무소 폐쇄와 복원이 반복되었다.

일단 남북회담본부의 자료에 따른 각 층별 안내는 다음과 같다.

  • 1층: 기자실, 소회의실
  • 2층: 회담장, 남북회담대표대기실
  • 3층: 대회의실, 소회의실

돌아오지 않는 다리[편집]

이곳의 거의 모든 장소에는 나름의 사연이 담겨있다. 동명의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하여 더욱 유명한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한국전쟁 포로교환이 이루어진 장소로, '이 다리를 건너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영화에서는 이 다리 앞에 있는 초소에서 근무를 서다 월북하였으나... 판문점을 기준으로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가면 공동경비구역 밖이 되므로, 이 다리 건너편의 북한군 감시초소는 병력이 많고 중무장 되어 있다. 반면 그와 대치해야 하는 한국군 감시초소는 공동경비구역 내부에 있어 정전협정에 의거 중무장이 불가능한 관계로 무인 감시장비만을 가동하고 병력은 배치하지 않고 있다.

북한이 판문점에 지뢰매설하였는데, 군인들의 탈북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며, 판문점 인근에 지뢰를 매설한 것은 정전협정 체결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중립국감독위원회 캠프[편집]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인근에는 중립국감독위원회 (NNSC, Neutral Nations Supervisory Committee) 캠프가 설치되어 있다. 물론 이곳도 판문점 경비부대의 책임구역이다. NNSC는 정전협정 당시 정전협정 이행 여부를 관리 및 감독하기 위해 설치한 기관으로,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스웨덴, 스위스,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의 4개국 대표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스웨덴과 스위스는 유엔군 측에서,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는 북한 측에서 선택한 중립국가들이었다. 1990년대 초 동구권 민주화 과정에서 체코슬로바키아가 체코와 슬로바키아 두 나라로 쪼개졌고 중감위 업무는 체코가 승계받았다. 이로부터 몇 년 지나지 않아 북한은 양국 중감위원단을 본국으로 추방했고 현재는 스웨덴스위스만이 판문점에 상주하고 있다. 체코 정부는 북한에서 자기들을 쫓아내자 학을 떼며 중감위에서 아예 사퇴했고, 폴란드는 일단 아쉬운 대로 본국에서 업무를 처리하다가 큰 회의가 열릴 때만 한국의 협조를 얻어 잠깐잠깐씩 판문점에 들른다.

중립국감독위원회의 임무는 정전협정이 제대로 이행되는지 감시하는 것이다. 또한, 북한에서 온 귀순 군인을 취조심문하는 것이 임무인데, 중립의 입장에서 귀순자가 자발적인 귀순을 했는지 묻고(영상촬영을 한다.) 이것을 북측에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다.

스웨덴과 스위스가 군사분계선 대한민국 측에 세운 캠프가 바로 현재까지 남아 있는 NNSC 캠프이다.

현재 캠프에 남아있는 스위스군과 스웨덴군 그리고 가끔 폴란드 까지 참여한 회의를 하는데 회의가 끝나면 회의결과를 북한측 통보함에도 꽂아 놓는다고 한다. 하지만 북한은 이 통보함에 넣은 회의결과를 단 한번도 가져간 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아예 유엔군사령부나 미군이 북한 측에 육성으로 통보문을 읽어주기도 하는데, 본문을 읽어주기 시작하면 북한군 병력들이 철저히 무시하고 자기네 건물 내부로 들어가 버린다. 또한 아무래도 원래는 임시로 사용했던 건물들인 탓에 아무리 리모델링을 해도 상주인원들의 숙소가 노후화된 편이라고 한다. 정기적으로 대포병 대피훈련도 한다.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편집]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中立國監督委員會, Neutral Nations Supervisory Commission, NNSC)은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 서쪽에 위치한 건물이다. 비공개 회의로 진행되기 때문에 내부 사진이 없다시피 하다. 다만 한국측에서 촬영한 중감위 관련 다큐에서 내부 모습이 잠깐씩 나온다. 구조적으로는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과 유사하다.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과의 외적인 차이로는 건물 자체의 창문이 작게 나있는데, 군정위 회의와는 달리 위에서 말한 대로 비공개 회의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건물들과는 다르게 회의실 본채 건물(파란색)이 서쪽의 회색 건물 3채와 연결 통로로 조립이 되어 하나의 세트를 형성하는 형태인데, 이 건물들의 용도와 내부 모습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게다가 관광객들도 본채 건물 입구 쪽만 사진을 찍고 이 회색 건물 부분의 대한민국 쪽은 잘 안 찍는지라 외부 모습도 사진이 거의 없었다가 2019년 9월 보수공사 때 유엔사 측의 홍보용 사진 촬영으로 기록사진이 조금 남게 되었다.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편집]

군정위 회의가 공개 회의이기 때문에 창문이 큼지막하게 나 있다. 파란색 건물이며 따라서 대한민국에 관리 책임이 있다.

가운데 있는 회담테이블의 가운데를 군사분계선이 지나가고 있다. 즉, 한국 육군 경비병의 오른쪽 반신은 한국 땅에, 왼쪽 반신은 북한 땅에 걸쳐 있는 셈이다.

삼성전자 에어컨이 앞뒤로 2대 설치되어 있고, 실외기도 대한민국 측과 북한 측에 하나씩 있다. 때문에 북측에서 찍은 동영상을 보면 북한 육군 경계병들 옆에 삼성 로고 찍힌 실외기가 놓여 있는 묘한 광경을 볼 수 있다. 북측 실외기를 정비할 일이 생기면, 삼성전자 직원들이 예외적으로 북측과 협의해 방북을 몇 시간 허가받고 잽싸게 작업하고 돌아온다.

실외기를 포함하여 유엔사에서 관리하는 군사회담장 내 시설 관리가 필요할 경우 유엔사군사정전위원회에서 북한에 협조문을 보내 동의를 얻은 후 유엔사 소속 일반인 직원들이 해당 작업을 수행한다. 단 이 경우 경비병은 군사분계선을 넘지 못하기 때문에 매우 긴장되는 광경이 연출된다.

당직장교 회의실[편집]

군정위 회의실 동쪽에 위치한 파란색 건물이며 판문점에서 24시간 연락을 유지하기 위해 상주시키는 당직 장교들의 회의실. 역시 비공개 회의라 창문이 작게 나 있으며, 가끔 다큐에 내부 모습이 나오거나 간혹 가다 개최되는 공식 행사 등 때문에 내부가 공개되기는 하는 중감위 회의실과는 달리 이쪽은 내부 모습 사진이 아예 없다.

북측 경비경 휴게실[편집]

당직장교 회의실 동쪽에 있는 회색 건물. 이름은 이렇게 알려져 있는데, 실제 용도와 내부 모습은 전혀 안 알려져 있다. 유엔군에서 부르는 별명은 The Monkey House.

이 건물 동쪽으로는 건물이 없고 콘크리트 경계석이 조금 더 연장되어 있다가 끝나고 거기서부터는 흰색 말뚝으로 분계선이 표시되는데, 이 콘크리트 경계석 부분이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소떼 방북 때 소를 실은 트럭들이 넘어간 통로였다. 정주영 회장 본인은 중감위 회의실을 통해 입북했다.

판문각[편집]

조선인민군 육군 경비병들은 보통 한국 육군 경비병들을 경계하며 서 있는 것이 원칙이나, 모종의 이유로 소집할 때에는 맞은편에 보이는 건물로 들어간다. 물론 저 건물 안에서 망원경으로 감시하는 것은 24시간이다. 현관 바로 왼쪽에 있는 창문 안에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어 항시 감시인력이 대기하고, 주간에는 현관 바깥에도 병사가 위치하여 두 감시병 간 소통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러나 2008년에 주 북한 영국 대사를 지낸 존 에버라드의 말에 따르면 인민군들은 군기 없이 그냥 막 돌아다닌다고 한다.

건물 자체의 용도는 북측 경비대 지휘소, 판문점대표부, 적십자연락대표부로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건립은 69년 9월 9일에 120평 규모로 처음 지어졌으나 1994년 12월 1층과 2층을 260평, 3층을 130평으로 증축하여 지금에 이르게 된다.

통일각[편집]

통일각은 남북회담을 위해 세워진 북측 회담시설로 1985년 8월 지상 1층, 지하 1층 연면적 1,521㎡ 규모로 준공되었으며, 이후 판문점 북측 지역에서 개최되는 회담은 대부분 이 곳에서 개최되었다. 2018년 5월 26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과의 두 번째 정상회담이 개최된 곳도 이 곳 통일각이다.

1992년 9월 '남북연락사무소' 북측 사무소가 설치되어 남북 당국 간 연락업무를 수행하였으나, 2000년 북측이 연락사무소를 ‘판문각’으로 이전함으로써 현재 북측 지역 회담시설로만 사용되고 있다.

72시간 다리[편집]

'72시간 다리'는 말 그대로 72시간 만에 건설된 다리다. 이 다리가 있기 전, 본래 북한군은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통해 사천강을 건너 보급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으로 인해 공동경비구역 남측의 북한군 출입이 통제되자 보급로가 막히게 되었고, 밥차가 다닐 수 있도록 공동경비구역 북한 측에 급하게 다리를 건설해서 72시간 만에 완성시킨 것.

그 밖에도 고인이 된 정주영 회장이 소몰이를 한 길이나 북한이 대한민국 수해 시 쌀을 지원해줬던 길 등이 있다. 현재는 대부분의 큼직한 남북한 교류가 도라산 CIQ를 통해 이루어지므로 이런 장소들은 말 그대로 역사속의 장소로 남은 상태다.

2017년 판문점 귀순 북한군 총격 사건 당시 귀순 북한 병사가 이 다리를 통해 판문점 지역에 접근하기도 했다.

사건 사고[편집]

  • 1962년 총격전
  • 헨더슨 소령 사건
  •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 판문점 총격사건
  • 김훈 중위 사건
  • 2017년 판문점 귀순 북한군 총격 사건
  • 도토리 피랍 사건
  • 2019년 탈북 선원 강제 북송 사건

관광[편집]

재미있는 사실은, 판문점은 원래 군사정전위원회의 회담을 위해 만들어진 장소이고 지금은 남북 간의 교류를 위해 자주 사용되는 장소인데, 정작 이곳을 방문하는 대부분의 인원들은 일반 민간인 관광객들이라는 점이다. 남북 양측에서도 분단의 상징이라는 점을 내세워 통일/안보관광 자원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판문점을 경비하는 부대입장에서도 관광객 보호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군사정전위원회, 적십자 등의 정부관련 인원들이야 이곳을 드나드는 게 일상이다보니 알아서 처신을 잘 하지만, 하루에도 수백 명이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일사불란하게 통제하고 돌발상황이 발생하지 않게 예방하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니다.

보통 판문점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남측의 패키지를 기준으로, 인근의 도라전망대제3땅굴까지 패키지로 둘러보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이런 분위기의 장소가 전 세계적으로 드물기는 하다. 번쩍번쩍하는 서울과는 너무나 비교되는 판문점과 그 일대 비무장지대의 풍경과 분위기가 이곳을 굉장히 특색 있는 관광지로 만들어준 것이다. 냉전으로 분단된 마지막 지역이며, 현재 휴전 상태에 있는 특수한 지역이다 보니 외국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모양인데, 실제로 이곳을 다녀간 외국인 관광객들의 평가는 아주 좋은 편이다.

  • 판문점을 관광하려면 우선 통일부 판문점견학지원센터에서 견학신청을 하면 된다. (만 8세 이상의 일반국민만 해당, 연간 1인 1회만 가능하다.)

자세한 내용은 〈판문점 견한신청 자세히 보기 클릭

판문점 견학 신청은 방문 희망일 전월 10일 오전 10:00부터 신청 가능

  • 2018년 11월부터 일반인도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별다른 조건 없이 입장할 수 있다고 한다.
  • 2019년 동아시아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 및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상황으로 인해 중단과 재개가 반복되고 있다. 그래도 2022년 8월부터 다시 재개되었다.

본래 대한민국 국민의 경우 판문점 관광이 대단히 까다로웠다. 2019년 이전까지만 해도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개인 관광은 불가능했고, 사전 예약을 통해 30인 이상 45인 이하의 단체 관광만 가능했었다. 신원조회에만 7주일 씩이나 걸리기에 관광신청은 2개월 이전에 해야 했다. 그러나 2019년 9월 기준으로, 단체 뿐 아니라 개인 관광도 가능하게끔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고, 2020년부터 방문 신청 창구를 국정원에서 통일부로 이관하고, 7주일 씩이나 걸리던 신원조회 기간이 2주 정도로 대폭 완화되었다.

복장 제한이 조금 세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청바지와 미니스커트를 못 입고 오게 한다. 그런데 좀 웃기게도 청바지 중에서는 특별히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오지 말라고 하는데 한국이 가난한 나라라고 북한의 선전자료로 쓰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 그렇다고 한다. 그런데 반면 대한민국 측에서도 판문점을 가보고, 북한을 통해 판문점에 가본 한 외국인의 말로는, 북한에서는 복장규제가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북한군 군관들이 관광객들에게 한다는 말이 가관이다.

조금 더 편하고 간단한 방법은, JSA에서 근무하는 지인의 면회를 가는 것이다. 면회 가는 것 중에서 판문점을 관광시켜 주는 행사가 있다. 물론 JSA에서 근무하는 지인이 있어야 가능한 방법이지만.

한편, 목걸이, 귀걸이 등 금속 장신구는 햇빛이 반사되어 반짝이면 북한 경비병들이 발포로 오인하여 대응사격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불허하며, 착용하고 왔다면 방문 전 인솔자가 제거해 소지하고 있다 끝나고 재착용하라고 한다. 또한, 유사시 신속히 대피해야 하기 때문에 신발은 운동화가 원칙인데 이는 잘 안 지켜진다. 구두 신고 왔다고 쫓아낼 수는 없는데다 하이힐 같은 것 아니면 일반적인 구두 정도는 단거리 뛰는 데 별 지장이 없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외로 카메라는 휴대가 가능하고 인솔자의 통제 하에 촬영도 가능하다. 사진 찍을 시간도 넉넉하게 주고 촬영 가능한 범위도 다양한 편이다. 애초에 군사시설이 아닌 남북 간의 회담을 위해 만든 장소이기 때문에 촬영 제한이 심하지 않은 편이다. 물론 촬영제한을 두기는 한다. 남측을 찍으면 북측에 정보를 유출할 수 있다고 해서 북측을 찍는 것만 허용된다.

2019년 이전 견학 코스에는 제3땅굴과 도라산 안보전망대, 도라산역 견학도 세트로 들어 있었지만, 통일부로 이관된 뒤에는 판문점만 견학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기존에 세트로 가던 제3땅굴, 도라산 전망대 및 도라산역은 다른 안보관광 코스로도 갈 수 있고 제한도 많지 않기 때문에 빠진 듯하다. 견학시간은 총 2시간 20분 정도로, 이동시간 및 JSA 경비대대 브리핑을 제외하면 실제로 볼 수 있는 시간은 총 60분이다. 민간인 출입통제선에서는 당연히 군 검문소에서 경비병의 검문을 받아야 하고, 이때 받는 출입증은 돌아올 때까지 항상 옷에 달고 있어야 한다.

출발은 임진각에 있는 견학 안내소에서 한다. 이곳에서 신원확인을 거친 뒤, 버스를 타고 JSA 경비대대에 가서 30분간 브리핑을 듣는다. 그리고 다시 버스에 타고 판문점에 도착한 뒤, 자유의 집, 팔각정,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 건물,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때 했던 기념식수와 파란색의 도보다리 회담장, 장명기 상병 추모비를 관람한다. 원래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도 관람코스에 들어 있었지만 통일부로 이관된 뒤에 코스에서 빠졌다. 관람코스에 들어있을 때도 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창밖으로만 관람했는데, 유명한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 일어난 장소인 데다, 휴전선에서 너무 가깝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미루나무가 잘리고 남은 밑둥도 볼 수 있었다.

특히 휴전선을 가로지르고 있는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 건물 안에서는 선을 넘어 북한 땅을 잠시나마 밟아볼 수 있는 희귀한 기회도 있지만, 북한 쪽으로 나가는 문은 경비병이 철저히 경비하고 있으므로 나갈 수 없다. 이때 회의실 옆에 난 창문을 통해 북한군 경비병이 감시의 목적으로 들여다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보통 양측 모두 이거까지 제지하진 않는다. 창문 너머지만 북한군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중립국감시위원회 건물은 군정위의 바로 서쪽 옆에 있는 건물로, 대한민국 측이건, 북한 측이건 관광객들은 여기 들어갈 일이 절대 없다. 창문도 큼지막하게 난 군정위 회의실과는 달리 벽 윗부분에 치우쳐서 좁게 나 있는데, 이것은 중감위 회의가 비공개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반면 군정위 회의는 공개로 진행된다.

견학요금은 무료다. 외국인의 경우에는 지정된 여행사를 통하여 견학이 가능하다.

한국인 관광객들은 2019년까지만 해도 단체 관광이 기본이었기 때문에 민주평통, 바르게살기협의회, 자유총연맹 등의 단체에 속한 사람들 또는 단체 견학을 오는 학생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외국인 관광객은 일본인 관광객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해 왔는데, 2000년대 이후로는 중국인 관광객들의 비율이 빠르게 늘고 있다.

교통[편집]

장소 및 연락처
  • 장소 : 판문점견학안내소
  • 주소 :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임진각로 148-40(DMZ 생태관광지원센터 1층)
  • 대표전화 : 1588-8889
  • 판문점 견학은 임진각에 있는 '견학 안내소'로 오셔서 신원 확인 후 지정된 버스로 갈아타고 판문점으로 이동하셔야 합니다.
  • 단독 방문 불가

개인차량 이용시[편집]

  • 평화누리공원내 주차장 도보 3분 판문점견학안내소
  • 임진각 관광지내 주차장 도보 5분 판문점견학안내소
서울문산고속도로 이용시

자유로에서, 남고양 IC 또는 북로JC에서 서울문산고속도로 이용, 내포IC에서 자유로 이용, 자유IC에서 판문점 방면 진출

자유로 이용시

자유로 이용하여 자유IC에서 판문점 방면으로 진출, 통일대교 남단 도로 차단점에서 유턴 후 우측으로 임진각 평화누리 캠핑장 주차장 진입

통일로 이용시

1번국도 통일로 이용, 통일대교 남단 도로 차단점까지 오셔서 유턴 후 임진각 평화누리 캠핑장 주차장 진입

임진각 주차장 ※ 주차는 임진각 관광지 내 주차장 이용

< 주차요금 >

  • 경차 : 1,000원
  • 소형차 : 2,000원
  • 중형차 : 3,000원
  • 대형차 : 5,000원
평화주차장 (무료) 
(파주시 문산읍 마정리 989-1)

지하철 이용 시[편집]

경의중앙선 탑승 후 문산역 하차

문산역에서 임진강역행 열차로 환승
임진강역(9분소요) 도보 15분
판문점견학안내소(도착)

< 전철 시각표 >

□ 평일, 2회운행

문산역 → 임진강역

10:30 → 10:39
16:55 → 17:04

임진강역 → 문산역

10:50 → 10:59
17:15 → 17:24
□ 토, 일, 공휴일, 4회운행

문산역 → 임진강역

09:35 → 09:44
10:35 → 10:44
15:45 → 15:54
17:20 → 17:29

임진강역 → 문산역

10:00 → 10:09
12:40 → 12:49
16:10 → 16:19
17:45 → 17:54

※ 열차시간은 코레일 사정으로 변경 될 수 있으니, 이용전 다시 한번 확인 필요.

버스 이용 시[편집]

  • 058번

문산역 1번 출구 앞 현대오일뱅크 주유소 방향 100여m 도보 이동 → 버스 정류소('한진1차, 문산역')에서 마을 버스 058번(임진각행) 탑승 후 임진각 정류소(30분 소요)에서 하차 → 도보 10분 → 판문점견학안내소

  • 7300번(주말운행)

홍대입구 → 합정역 → 홀트아동복지회 → 맛고을입구 → 헤이리1번게이트 → 헤이리4번게이트 → 경모공원앞, 헤이리6번게이트 → 법흥3리, 헤이리8번게이트 → 경기미래교육캠퍼스 → 임진각 하차 → 도보 10분 → 판문점견학안내소

<판문점견학 셔틀버스 운행 및 탑승안내>

○ 운행횟수 : 1일 1회(일반견학 진행시). -화/수/금/토(운행), 일/월/목(미운행)
○ 운행 시간 : 13:50 문산역(문산역 1번출구/파주시티투어 타는곳) → 판문점견학안내소. 16:50 (견학 종료 후)판문점견학안내소 → 문산역
○ 셔틀버스를 이용하실 분은 판문점 견학지원센터(1588-8889)로 반드시 사전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신청자가 없을 경우 미운행)

동영상[편집]

지도[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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