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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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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린성(吉林省 , jí lín shěng)은 중국 동북지역 중부에 위치하였으며 성도는 창춘이다. 랴오닝성, 네이멍구자치구, 헤이룽장성과 접하여 있으며 러시아, 북한과 접하여 있어 지리적으로 동북아 중심 위치에 있다.

개요[편집]

  • 행정 단위: 성(省)
  • 성정부소재지: 창춘시 콴청구 신파루 329 (长春市宽城区新发路329号)
  • 면적: 18만 7400 km²
  • 인구: 26,907,300 명(2019년)
  • 성장: 징쥔하이(景俊海, jǐng jùn hǎi)
  • 정부 공식 홈페이지: http://www.jl.gov.cn/

지린성(吉林省) 은 둥베이에 위치한 성급 행정구역이다. 한국식 독음으로는 길림성. 성도는 창춘시. 행정상 간칭은 지(吉jí). 명칭은 만주어로 강 기슭을 의미하는 '기린 울라(Girin Ula)'를 중국어로 음차한 '지린우라(吉林烏拉jílínwūlā)'를 줄인 것이다. 신라를 뜻하는 말인 "계림"과 연관성이 있다는 루머도 존재한다. 서쪽으로 내몽골 자치구, 북쪽으로 헤이룽장성, 남서쪽으로 랴오닝성, 동쪽으로 러시아 연해주(프리모르스키 크라이), 남쪽으로는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북한과 접한다.

성도(省都)는 창춘(长春)이다. 국경선은 1430여㎞이며, 이 가운데 북한과 국경이 1100여㎞, 러시아와 국경이 200여㎞에 이른다. 후이춘(辉春)에서 남쪽으로 동해까지 이르는 거리가 10여㎞에 불과한 지리적 이점으로 대외개방의 창구 역할을 한다. 면적 18만 7400㎢로 국토 총면적의 2%를 차지하는 중급 성이다.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와 창춘(长春)·지린(吉林)·쓰핑(四平)·랴오위안(辽源)·퉁화(通化)·바이산(白山)·쑹위안(松原)·바이청(白城) 등 8개 지급시(地級市), 20개 현급시(县級市), 18개 현, 3개 자치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투먼(图们)·지안(集安) 등 9곳의 국경출입구가 있으며, 전세계 130여개 국가 및 지역과 무역교류를 하고 있다.

조선족 밀집지역인 연변 조선족 자치주가 속해 있는 곳이기도 하다.[5] 지린성 남부가 바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간도라는 곳이다. 간도의 범위가 워낙 애매한 탓에, 랴오닝성 일부 지역까지 들어가기도 한다. 여행유의 지역인 이유는 북중국경지대이기 때문이다. 이 곳은 북한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지역으로, 납북의 위험성이 있다.[1] [2]

지리[편집]

지형[편집]

지형은 남동쪽에서 북서쪽으로 경사를 이루며, 산악 지역 45%, 구릉 지역 12%, 평원 지역 43%로 이루어져 있다. 지형은 3개 지역으로 나뉜다.

  • 백두산(白頭山, 중국명 창바이산(長白山)) 동부지역:대부분이 해발 1000m가 넘는 고지대이며, 최고봉은 높이 2691m의 바이윈펑(白云峰)이다. 푸쑹(抚松) 주변의 백두산 지역은 원추화산(코니데)과 화산구가 많다. 중국과 북한의 경계에 있는 백두산의 천지(天池)는 해발 2155m이며, 쑹화강(松花江)의 발원지이자 국제생태계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 중부구릉지대:백두산 동부지역과 서부 평원 사이의 과도 지역으로 대부분 해발 250~600m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침식되어 형성된 낮은 구릉과 넓은 계곡이 특징이다.
  • 서부 평원지역:둥베이평원의 중부 지역으로 지형이 파도처럼 기복이 있으며, 해발 200m 정도이다. 궁주링(公主岭) 일대는 남쪽의 시랴오허(西辽河) 평원과 북쪽의 쑹넌(松嫩) 평원보다 지대가 높으며, 일반적으로 쑹랴오(松辽) 분수령이라 불린다. 평원 서부에는 늪과 염기성 저지대가 많다.

기후[편집]

기후는 냉대 대륙성 기후. 내륙도가 상당하기 때문에 겨울엔 그야말로 어마어마하게 추워진다. 겨울에 영하 25도는 기본이다. 특히 백두산 근처 동네는 죄다 중강진만큼의 헬게이트라고 보면 된다. 기후는 북서단 지역이 온대성 반건조 반습윤 기후, 드넓은 중동부 지역은 습윤 계절기후에 속한다. 겨울이 길고 추우며, 여름은 짧고 더운 편이다. 봄과 가을은 바람이 세고, 날씨의 변화가 심하다. 1월 평균기온은 -16℃이지만 백두산 지역은 그보다 더 낮은 -20℃이며, 7월 평균기온은 대부분 지역이 20℃~23℃이다. 연교차가 30℃ 이상이며 대륙성 특징을 띤다. 무상기간(無霜期間)은 5월 초순에서 하순 이후에 시작되며 4~5개월 동안 지속된다. 일평균기온이 0℃ 이상인 날이 220일, 10℃ 이상인 날이 150일 정도이다. 연강수량은 400~800㎜이며, 퉁화와 바이산 지역은 750㎜ 이상이다. 남동부 지역의 강수량이 여름과 가을에 걸쳐 기록되는 것을 제외하고 그밖의 광활한 지역은 여름에 집중된다.[3]

역사[편집]

고대에 지린성 동부의 삼림지대에는 퉁구스 계의 수렵민족이 거주했고, 성 중부의 평원지대에는 예맥족이 잡거하였다. 예맥족들은 부여를 건국했다.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고구려는 성 서남부의 지안을 거점으로 하여 일대 강국을 건설했다. 고구려는 기원전부터 668년까지 지린성의 거의 대부분을 통치하였고,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에는 발해가 당나라를 몰아내고 698년부터 926년까지 이 지역을 통지했었다. 지린성은 거란이 세운 요나라의 판도에 들어갔다. 여진족의 금나라와 몽골족의 원나라 역시 통치했었다.

청 초기에 영고탑이 지린으로 이주하면서 지린성이 설치되었다. 이 때에는 지린장군의 통치하에 있었는데, 이 시기의 지린성은 동쪽으로 현재 러시아의 프리모르스키 지방의 거의 대부분을 통치하고 있었으며 동해에 맞닿아 있었다. 한족의 이주는 엄격히 금지되었었다.

그러나 프리모르스키 지방(연해주)이 베이징 조약으로 1860년에 러시아로 넘어가면서부터 청조(淸朝)는 한족의 이주를 허용하기 시작하였는데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산둥성 지역에서 건너왔다. 20세기가 시작될 무렵에는 이미 한족이 이 지역의 주된 민족그룹이 되어 있었다. 1932년에는 일제의 괴뢰정부인 만주국이 세워지면서 지린성은 그 판도에 속하게 되며 지린성의 창춘은 만주국의 수도였다. 일제가 1945년에 패망하면서 이 지역의 만주의 다른 지역과 사실상 마찬가지로 소비에트 연방의 공산주의자들의 수중에 떨어지게 된다. 1946년 통화 사건으로 인민해방군과 독립군은 일본군 패전병을 진압했다. 중국의 공산주의자들은 만주를 발판으로 하여 다른 중국 지역을 점령하기에 이른다.

1949년의 지린성은 현재보다 훨씬 작아서 단지 창춘과 지린시 일대를 포함할 뿐이었다. 당시의 성도는 지린시(吉林市)였고, 창춘(長春)은 성으로부터 독립된 직할지역이었다. 1950년대에 지린성은 확장되어 현재의 경계를 확정한다.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지린성은 팽창하여 네이멍구의 일부를 차지하면서 한때는 경계의 일부를 몽골과의 국경으로 설정하기도 하였으나 후에 복귀되었다. 현재 지린 성은 중공업에 기반한 다른 중국의 둥베이 지방과 마찬가지로, 사유화와 관련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있다. 1954년 9월 27일에는 지린성 인민정부가 지린시에서 창춘시로 이전했다.[4]

산업[편집]

토지 자원은 삼림지가 43%, 경작지 28%, 목초지 12%를 차지하며, 7% 정도는 황무지이다. 중부 농업 지역은 흑토가 비옥하다. 삼림 자원의 1인당 점유량은 전국 평균보다 2배 많으며, 이 가운데 94%는 동부 산악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활립목(活立木) 저장량은 전국 상위권이며, 수종은 홍송·낙엽송·가문비나무·들메나무·자작나무 등이 대부분이다.

초원은 대부분 서부 지역에 있다. 야생 자원이 풍부하여 백두산(白頭山), 중국명 창바이산(長白山)에 서식하는 유용식물만 800여 종에 이른다. 전국 9대 약재생산 성(省)의 하나로 꼽힐 정도로 약재도 풍부하여 수백 종에 이른다. 인삼·당삼·패모·황기 등이 대표적 약재이며, 목이·버섯·고사리 등도 많이 생산된다. 서부 지역에는 갈대가 많이 자라고, 동물은 검은담비와 꽃사슴 등이 서식한다. 광물은 70여 종이 채굴되는데, 이 가운데 금과 니켈 매장량은 전국 3위이고, 동·석유·석탄 매장량도 풍부한 편이다.

농업은 재배업의 비중이 62%로 국가적으로 중요한 식량 생산기지이며, 콩 생산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기계경작 면적은 약 40%이고, 농지 유효관개 면적은 18%이다. 옥수수 생산량이 위산(于山)에 이어 전국 2위이다. 전체 경작지의 75%를 차지하는 지중(吉中)의 쑹랴오(松辽) 평원은 콩의 고장이자 옥수수의 황금지대로도 유명하다. 옌볜에서는 우수한 벼가 생산된다. 경제작물인 해바라기씨와 사탕무의 생산량은 각각 전국 1위와 6위이다.

축산업은 농업의 35%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지시 초원은 개보리풀 목초지의 중심지로서 소와 가는털양의 생산기지이다. 저지대의 파오즈(泡子)는 민물어류 생산기지 역할을 한다. 싼베이(三北);화베이(華北)·시베이(西北)·둥베이(東北) 지역에서 삼림지역 점유율 2위인 백두산 지역은 중국의 주요 임업 생산기지 가운데 하나이다. 목재 생산량은 헤이룽장성(黑龍江省)과 네이멍구자치구(內蒙古自治區)에 이어 전국에서 3위이다. 백두산 지역은 원시림이 많아 국제생태계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인삼·사삼·담비의 생산지로도 유명하다.

특산품으로는 '동북삼보(东北三宝)'라고 불리는 인삼·검은담비·녹용이 잘 알려져 있다. 백두산 지역의 푸쑹(抚松) 등지에서 주로 생산되는 인삼은 전국 총 생산량의 80%를 차지하고, 수출량은 전국 1위이다. 백두산 홍삼과 신카이강(新开河) 인삼은 국제무대에서 금상을 수상할 만큼 품질이 좋다. 오늘날에는 산삼이 많지 않아 재배삼이 주류를 이루는데, 재배 역사가 400년에 이른다. 지린의 녹용은 후이난(辉南)에서 생산되며, 수출량은 전국 1위이다. 검은담비는 진귀한 모피동물로 사육하기 쉽지 않지만 지린의 쭤자(左家) 특산물연구소에서 사육에 성공하였다.

과거에 인삼 ·검은단비와 함께 '삼보(三宝)'라고 불리던 오랍초는 지중(吉中) 습지대에서 생산된다. 과거에는 장화 안에 넣어 보온용으로 쓰였으며, 현재는 밧줄이나 제지용으로 쓰인다. 그밖에 후이춘(辉春)과 안투(安图)의 목이, 푸쑹·화뎬(樺甸)·옌지·안투 등지에서 생산되는 보양식인 합사마(蛤士蟆) 기름, 옌볜의 사과배, 퉁화(通化)의 인삼포도, 창춘(长春)의 인삼담배, 쟈오허(蛟河)의 관동단배, 지둥중(吉东中) 산악지역의 고사리와 피나무꿀, 천마, 황기, 가시오가피 등 유명 약재가 있고, 공예품으로는 나무뿌리 조각이 잘 알려져 있다.

공업은 건국 이후 중점적으로 건설되어 어느 정도의 기틀이 마련되었고 분야도 다양하다. 공업 총 생산액은 농공업 총 생산액의 62%를 넘어섰고, 경공업과 중공업의 비율은 3대7이다. 창춘의 제일자동차제조공장을 중심으로 한 운수기기공업, 지린유전의 석유화학공업과 지린화학공업회사 등 기초화학공업을 중심으로 한 석유화학공업 및 제약, 경공업식품, 목재 가공 및 종합 이용, 합금주철 등의 우위업종이 주축을 이룬다.

자동차·화물차·콤바인 등 이동식 기계 위주의 기계공업은 지린성 공업 총 생산액의 25~30%를 차지하는 주도적 산업이며, 화학공업·삼림공업·식품공업도 전국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전력공업 분야에는 바이산(白山)과 펑만(豊滿), 윈펑(云峰), 웨이허강(渭河) 등지에 대형 발전소가 있다. 지린유전의 산유량은 전국에서 10위 안에 든다. 주요 공업제품인 자동차·철도객차·합금주철·탄소제품의 생산량이 전국 1위이며, 목재와 기계화 제지 및 판지, 트랙터의 생산량도 전국에서 상위권에 속한다.[5]

교통[편집]

건국 이후 철도를 증설, 개조하여 운행거리가 3561㎞에 이르고, 지방 철도는 약 5000㎞에 이른다. 징하(京哈), 선지(沈吉), 창투(长图), 쓰하이(四海), 퉁랑(通让) 등의 주요 노선이 있다. 투먼(图们)과 지안(集安)은 대외개방 철도운송의 국경출입구이다.

도로의 총 연장 길이는 4만 1095㎞이며, 창춘~하얼빈 고속도로를 비롯하여 창춘~지린, 창춘~바이산을 잇는 고속도로가 있다. 국도는 7개이며, 퉁장강(同江)에서 싼야(三亚)에 이르는 주요 간선도로, 투먼에서 우란하오터(乌兰浩特)에 이르는 302번 국도가 창춘을 지나간다. 후이춘(辉春)과 린장강(临江), 카이산툰(开山屯) 등지에 대외개방 도로운송 국경출입구가 있다.

하천의 항로는 1787㎞이며, 쑹화강이 주요 항로이다. 다안(大安)은 대외개방 수상운송 국경출입구이다. 창춘은 민항기의 중심지로 러시아와 국내의 베이징(北京)·톈진(天津)·상하이(上海)·광저우(广州), 성내의 옌지(延吉) 등지를 운항하는 노선이 있다. 지린(吉林)에도 베이징과 연결되는 항로가 있다.[6]

명승지[편집]

국가중점보호문화재가 18곳 있다. 주요 명승지는 성도인 창춘을 비롯하여 강변도시 지린과 백두산(白頭山), 중국명 창바이산(長白山)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쑹화호(松花湖)와 팔대부(八大部), 징웨탄(净月潭) 등지는 국가지정 명승풍경지역이다. 창춘에 있는 만주국 황궁은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푸이(溥仪)가 일본의 꼭두각시 황제로 등극한 곳으로, 지금은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창춘 시내의 춘펑(春风) 거리에는 만주국의 국무원 사법부와 교통부 등 8대 행정기구를 일컫는 팔대부의 옛터가 있다. '북국춘성(北国春城)'이라 불리는 창춘은 난호(南湖)와 교외의 징웨탄(净月潭) 삼림공원 등의 경치가 수려하다. 쑹화강 기슭에 있는 지린은 겨울철에 나무고드름이 장관을 이루며, 베이산(北山)과 룽탄산(龙潭山)의 풍광이 아름답다. 지린시에서 남동쪽으로 24㎞ 떨어진 곳에 쑹화호풍경지구가 있다. 백두산 동부 지역은 둥베이 지역의 명산이다. 280여년 전에 화산 폭발로 형성된 백두산 봉우리들과 천지(天池), 온천과 폭포 그리고 숲의 바다와 설원에 서식하는 기이한 동식물 등 모두가 놀라운 경관을 이룬다. 백두산 지역의 지안(集安)과 둔화(敦化) 일대에는 한나라와 고구려, 당나라, 발해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7개의 계단 형태로 조성된 지안의 장군총은 높이가 13m에 이르며, '동방의 피라미드'라고 불린다.

독립군 활동[편집]

길림성은 일제강점기 때, 한국 독립군들이 가장 치열하게 싸웠던 지역이다. 요령성은 일본의 통치력이 강했고, 흑룡강성은 지리적으로 너무 멀어, 교포들이 많이 사는 길림성이 독립운동의 사실상 중심지가 되었다.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 등 수많은 전투가 이 곳에서 벌어졌고, 간도 참변 등의 아픔을 겪기도 했다. 간도 참변과 자유시 참변을 거치고 이 곳의 독립군 활동은 잠시 위축되는데 그러던 와중 1931년 일본이 만주를 침략한다. 이후 3년에 이르는 기간동안 독립군과 중국군이 한-중 연합 작전을 전개해 상당한 성과를 거둔다. 하지만 점점 일본의 통치력이 강해지면서 만주의 독립군들은 대부분 중국 관내로 들어가, 만주의 독립운동은 시들해지게 된다. 물론 그 후에도 김일성이 이끄는 세력이 함경도 내에 진입을 시도하는 과감한 활동을 하는 등 저항 운동이 있었다. 북한에서 치켜세우는 보천보 전투가 이것이다. 그마저도 193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 사라지게 된다.

행정구역[편집]

지린성 행정구역

지린성은 8개의 지급시[7]와 1개의 자치주[8]로 구성되었다.

지급시:

  • 창춘시(长春市)
  • 바이청시(白城市)
  • 바이산시(白山市)
  • 지린시(吉林市)
  • 랴오위안시(辽源市)
  • 쓰핑시(四平市)
  • 쑹위안시(松原市)
  • 퉁화시(通化市)

자치주

인구[편집]

2019년까지 지린성 인구는 26,907,300 명이며 대부분이 한족이고 그외에 조선족(1,040,167명), 만주족(866,365명), 몽골족(145,039명), 후이족(118,799명), 시버족(3,113명) 및 기타 소수민족(12,222명)이 거주한다. 조선족은 청나라 말기 부터 조선반도에서 이주하여 정착하였으며 주요하게 옌볜조선족자치주, 지린, 퉁화, 바이산에 거주하며 몽골족과 시버족은 주요하게 바이청시와 쑹위안시에 거하며 만주족과 후이족은 창춘, 지린, 퉁화, 쓰핑, 랴오위안에 거주한다. 지린성은 옌볜 조선족자치주, 챈궈얼뤄어스 몽골족자치현, 창바이 조선족자치현, 이퉁 만주족자치현이 있다.

지도[편집]

틀:지린성 행정 지도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지린성〉, 《네이버 지식백과》
  2. 지린성〉, 《나무위키》
  3. 지린성의 자연〉, 《네이버 지식백과》
  4. 지린성〉, 《위키백과》
  5. 지린성의 산업〉, 《네이버 지식백과》
  6. 지린성의 교통〉, 《네이버 지식백과》
  7. 지급시〉, 《나무위키》
  8. 자치주 (중화인민공화국)〉, 《위키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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