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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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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봉낙타
쌍봉낙타

낙타(駱駝)는 낙타속(Camelus)에 속하는 포유동물의 총칭으로,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의 사막 지대에 서식한다. 낙타는 주로 사막을 이동하거나 짐짝을 운반하는 수단으로 쓰이는 가축이며, 육류·유제품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식용 가축이기도 하다.

사막에서 자동차 바퀴모래에 파묻히기 쉽고 말 (동물)은 더위를 이겨내지 못한다. 낙타는 땅에 다리가 묻히지도 않으며 높은 체력과 더위를 잘 견디는 이점으로 사실상 사막의 하나뿐인 이동수단이다. 사막에 사는 민족들과 친하다. 과거에는 사막을 여행하는 상인들이 많이 타고 다녔다.

낙타는 걸음걸이가 매우 희한하다. 일반적인 4족 보행 동물과는 다르게 왼쪽 다리 두 개가 한 번에 움직이고, 오른쪽 다리 두 개도 역시 한 번에 움직인다. 이 때문에 처음 낙타를 타는 사람들은 적응하지 못하고 멀미를 한다. 그래서 낙타를 사막의 배라고도 부른다. 말보다는 느리다는 인식이 있지만 의외로 속도도 꽤 빠르다. 세계 신기록 경주용 낙타는 88km/h 속도를 낸 기록이 있다. 짐도 455kg까지 나를 수 있다.

상세[편집]

낙타는 단봉낙타와 쌍봉낙타의 두 종류가 있다. 단봉낙타는 혹이 하나로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남서부에 분포하며, 몸길이 3m, 높이 1.8∼2.1m, 체중 450∼600㎏이다. 쌍봉낙타는 혹이 두개로 단봉낙타보다 몸이 작으며 중앙아시아에 분포한다.

발가락은 2개로 모래땅을 걸어 다니기에 알맞는 구조로 되어 있다. 또, 콧구멍을 막을 수 있으며, 귀 주위의 털도 길어서 모래먼지를 방지할 수 있다. 등 위의 혹은 물주머니가 아니고 지방덩어리이다. 따라서 며칠 동안 먹이를 섭취하지 않아도 활동할 수 있는데, 이때에는 혹이 점점 작아지고 종래는 소실된다.

3일간 물을 마시지 않아도 별 지장이 없는 것도 탈수로 혈액이 짙어져도 타원형의 적혈구가 농축된 헤모글로빈을 가지고 혈관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세포에 산소를 공급하기에 가능하며, 적혈구가 수분을 잘 빨아들여서 수분유지가 가능하다. 1회에 57ℓ의 물을 마실 수 있으며, 임신기간은 1년, 수명은 40∼50년이다.

한번에 500㎏의 화물을 운반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세며, 장시간 물을 마시지 않고 지낼 수 있기 때문에 일찍부터 가축화되었다. 단봉낙타는 서기전 3000년, 쌍봉낙타는 서기전 1800년경에 가축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운반이나 승용(乘用) 이외에 고기는 식용으로, 젖은 음료로, 털은 직물에 이용되므로 사막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가축이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초에 거란인이 타고 온 낙타 54필을 만부교 아래에 매어 굶어죽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 1922년 창경원 동물원 개원 당시에 수입하였으며, 1955년 암스테르담동물원에서 다시 한 쌍을 수입하였다. 현재는 각 동물원에서 관람용으로 사육하고 있다.

사용[편집]

탈것[편집]

걸음걸이가 매우 희한하다. 일반적인 4족보행 동물들과는 달리 왼쪽 다리 두 개가 한 번에 움직이고, 오른쪽 다리 두 개도 역시 한번에 움직이는 방식인데 이 때문에 처음 낙타를 타는 사람들이 적응하지 못하고 멀미를 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낙타를 '사막의 배'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런 특이한 걸음걸이를 몽골인들은 조로모리식이라고 칭하는데, 생각보다 효율적인 데다가 전후 구동식보다 훨씬 편안하고 반동이 적어 마상에서의 자유로운 칼놀림이나 활쏘기가 가능하기 때문에 군마를 이 걸음걸이로 훈련하기도 했었다.

한국에선 낙타가 고려시대에 군마를 기르는 목장에서 말과 함께 사육되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 증거로 고려사에 전국의 목장에 가을과 겨울에 낙타에게 먹여야 할 사료의 양과, 봄과 여름에 먹여야 할 사료의 양을 정한 지침을 내린 기록이 있다. 고려에서 사육하던 낙타가 단봉낙타인지 쌍봉낙타인지는 알 수 없으나, 지리상 상대적으로 가까운 지역에 사는 쌍봉낙타일 가능성이 조금 더 높다.

낙타는 인간과 필적하는 수준의 굉장한 장거리 이동 능력을 가지고 있다. 몇백 킬로미터를 무리없이 이동할 정도이다. 한번은 말과 176km 거리를 이동하는 장거리 경주를 시켰는데, 여기서 말이 가까스로 이겼다. 그런데 말은 다음 날 죽어버렸고, 낙타는 멀쩡하게 계속 갈 수 있었다. 한때 프랑스에서 낙타 부대를 운용한 적이 있었는데, 1932년 3월 벌어진 어느 추격전에서 8일 동안 77 km 가량을 이동하면서 적을 공격했으며, 1911년에는 샬레 대위와 그의 부하들이 투아레그족을 추적하면서 7천 km 이상을 달렸다고 한다. 여러모로 뛰어난 장거리 선수이다.

말보다는 느리다는 인상이 있지만, 의외로 단거리 속도도 꽤 빠르다. 일반적인 말의 갤럽 속도(가장 빠른속도)는 시속 45km 내외이고 경주마는 65km로, 단거리 최고 속도는 개체마다 차이가 크지만 경주마는 대충 75 km 정도는 된다. 낙타가 경주 대회에서 마음먹고 단거리 질주를 하면 시속 60 km까지도 찍을 수 있고 지속 주력은 시속 40km 내외로 약 1시간가량을 달릴 수 있다. 이 낙타 경주 대회는 중동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리는데 경주용 낙타는 세계 신기록으로 88km/h의 속도를 냈다고 한다. 참고로 타조는 평균 90km/h이다.

또한, 낙타는 짐도 꽤 많이 실어나를 수 있어서 455kg이나 되는 물건도 나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정말 의외의 단점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수영에는 능통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말이나 소, 코끼리가 굉장히 능숙하게 헤엄치는 것과는 달리, 낙타는 훈련시키거나 강 근처에 살고 있어야 지만 헤엄칠 수 있다. 사실 사막에 살고 있으면 수영을 해야 할 만큼의 물을 볼 일은 없다.

낙타의 발바닥을 보면 깔창 비슷하게 생긴 육구가 있는데, 이는 사막 모래벌판의 열기로부터 발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체중을 분산시키기도 하여 모래에 잘 빠지지 않게 해 준다. 상술했듯 최근 연구에 따르면 본래 눈밭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진화한 것이라고 한다.

식용[편집]

중앙아시아, 중동의 서아시아나 북아프리카 지역에선 그야말로,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매우 귀중한 동물이었다. 타고 다니거나 짐을 수송하는 사역 용도로도 사육하는 건 물론 양이나 소, 염소, 닭처럼 고기도 먹을 수 있고, 젖은 우유나 양유, 염소유처럼 마실 수도 있고 털과 가죽, 뼈는 옷과 카페트, 가방, 물통, 조각등 여러 가지를 만드는 데 쓰이며, 똥은 토끼똥이나 염소똥처럼 동글동글하며 말렸다가 장작으로 쓰이고, 심지어 오줌을 희석시켜서 샴푸로 쓰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처럼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귀중한 재산이자 중요한 생물이었고, 지금도 사막에서는 귀한 대접을 받으면서 요긴하게 쓰인다.

돼지고기를 금지한 쿠란에서도 낙타고기는 허용했는데, 이는 사막을 여행하는 아랍인들이 사막 한복판에서 조난을 당할 경우, 낙타고기밖에 먹을 게 없기 때문이다. 비상식량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셈. 과거에는 먹고 살기 위하여 먹는 고기였으나, 이젠 제법 아랍권에선 대중적인 고기가 되어서인지 요르단이나 바레인, 카타르, 오만, 이집트, 모로코, 튀니지, 알제리, 팔레스타인 등 아랍어권 여러 나라들을 여행 가보면 낙타고기를 부위 별로 나눠 파는 정육점이라든지 낙타고기로 만든 꼬치 구이나 햄버거, 스테이크, 캅사[22]등 낙타고기 요리를 파는 식당, 혹은 정육점이나 재래시장 등지에서 낙타 머리가 걸려있는 경우들을 볼 수 있다. 더불어 터키에선 소시지까지 만들어 먹거나 판다. 하지만, 정말 비싸다. 셀축이라는 이즈미르도에 딸린 시골동네에서 낙타씨름축제라는게 있긴 한데, 그 축제 자체가 과거 오스만 제국시절 아랍지역에서 이스탄불로 상품을 운반하던 상인들이 중간에 쉴겸 낙타를 가지고 논대서 비롯된 것이고 낙타 소시지도 그때 한정으로 그 지역에서만 판매되는 특이한 먹거리로 취급된다.

어느 정도로 비싸냐면 아랍권에서 낙타고기를 사먹으려면 1인분에 10만 원 이상을 내야한다. 일반적으로 저개발국가들은 공산품에 비해 식료품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지 물가로도 어마어마하게 비싼 것이다. 상품성 좋은 낙타 1마리는 보통 1000~3000만 원 이상에 달한다. 뭐 낙타고기도 질에 따라 가격차이가 크긴 하여 위에 서술한 대로 소말리아 같은 곳에서 수입해온 낙타는 더 값이 싸서 이런 낙타가 보통 아랍권 서민층이 먹는 낙타고기이지만 이 고기조차도 마리당 몇 백만 원을 호가하니 아랍권 현지에서 양고기나 닭고기랑 다르게 서민적인 고기는 아니다. 카타르 리그에서 활약한 적이 있던 이근호가 메르스 파동이던 시절, 국내 신문 인터뷰에 말하길 "얼마전 한국에서는 메르스 때문에 낙타고기 조심하라 이러는데 터무니없다. 낙타고기는 워낙 비싸서 먹어본 한국 사람이 드문데, 낙타고기 때문에 메르스가 전염된다고? 그럼 얼마 전에 낙타고기를 먹어본 나는 뭐야?" 라고 비웃듯이 말했었다. 그러면서 자신도 엘 자이시 구단주로부터 낙타고기를 대접받아 먹었는데 생각 외로 맛있었다고 했다. 그만큼 비싸다보니 먹는 사람은 부자들이나 왕족들이 먹는 고기라 이게 메르스의 원인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만약 고기가 문제라면 해당 나라들에서 이런 왕족이나 부유층도 걸린다고 난리법석이었겠지만 걸린 건 싸그리 보통 서민들이었다. 그래서 메르스 파동으로 한국에서 낙타고기 먹지말라고 할 때 정작 아랍권에서 낙타고기 먹어본 한국인은 정말 별로 없었기에 낙타고기랑 뭔 상관이냐 말도 많았던 것이다.

아랍 결혼식 및 생일에 나오는 특별요리는 낙타 통구이인데 엄청나게 비싸다. 귀하고 귀하신 낙타를 1마리 통째로 사서 조리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 조리 방식이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당연히 비쌀 수밖에 없다.

고기는 지방질이 꽤 많다는 듯 하며, 소고기 비슷한 맛이 난다고도 한다. 낙타의 혹이 중국 요리에 사용되기도 한다. 특징은 미친 듯한 지방이라고 한다. 그래도 무나 순무처럼 섬유질이 알차게 박혀있다고 한다.

하지만, 내몽골 및 외몽골 등 몽골 지역에서 낙타고기는 천대받는다. 가격도 소고기, 돼지고기, 양고기와 비교하면 훨씬 저렴하다. 여기서 먹는 낙타고기는 맛이 굉장히 퍼석하고, 낙타 특유의 노린내가 많이 난다. 그냥 구워서 먹거나, 혹은 삶아 먹으면 인간이 먹기 힘든 정도이다. 많은 몽골인들은 낙타고기를 다른 야채와 섞어 버무려 경단처럼 만들어 먹는다. 여기선 고기용보다는 낙타의 털을 주로 소비하는 게 많다. 몽골여행가면 낙타 털로 만든 인형이나 지갑이나 양말이나 장갑을 많이 판다.

낙타의 혹에 있는 지방이 굉장히 맛이있고, 별미로 취급받는다. 실제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결혼식과 같은 특별한 행사들말고 일반적인 방식으로 먹으면 여러가지 향신료로 양념된 밥과 함께 낙타고기를 곁들여주는데 이 지방이 항상 빠지지않고 조각으로 들어가서 밥에 풍미를 더하고 고기와 같이 먹으면 다소 밋밋할수 있는 고기의 맛을 살려주는 역할을 한다.

군용[편집]

낙타의 힘, 주력, 건조환경에서의 생존력 때문에 오랫동안 군용으로 사용되어 왔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현역이다. 모리타니와 같은 아프리카의 이슬람 국가에서는 낙타를 군사용으로 사용한다. 근대까지 적극적으로 낙타부대를 운용하던 무굴제국의 계승국인 인도에서는 전투용은 아니지만, 의장용으로 열병식에서 볼 수 있다.

기록상에서는 기원전 853년에 시리아 일대에서 처음 동원되었다. 말들이 낙타의 냄새에 기겁을 하며 도망치는 까닭에, 아랍인들과 처음 전투를 벌이게 된 유럽 군인들은 낙타 때문에 말들이 혼비백산하는 탓에 꽤 고생을 했다고 한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인 아케메네스 제국 초기에도 비슷한 기록이 있는데, 창건자인 키루스 2세가 고대 터키 지방에 위치해 있던 나라인 리디아 왕국과 전투를 벌였을 때 적군의 기병이 아군의 기병보다 훨씬 수가 많아 걱정하고 있자, 부장들 가운데 한 사람이 낙타 부대를 앞세우자고 진언한 것. 아군의 말들은 그래도 낙타 냄새에 그럭저럭 적응이 되어 있지만 적군의 말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 것인데, 그 말을 받아들인 키루스는 낙타부대를 앞세웠고. 그 결과 리디아 왕 크로아소스를 포로로 잡는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고 한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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