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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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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구청

남동구(南洞區)는 대한민국 인천광역시의 동남부에 있는 구이다. 구월동에는 인천광역시청이 있고, 고잔동에 구직할 남동 공단 출장소가 설치되어 있다.[1]

개요[편집]

인천광역시의 남동부, 경도상으로는 동경 126° 40' 02"~126° 46' 49", 위도상으로는 북위 37° 22' 57"~37° 28' 47"에 위치한다. 동쪽으로는 경기도 부천시시흥시, 서쪽으로는 미추홀구와 연수구, 남쪽으로는 연수구, 북쪽으로는 부평구와 경계를 이룬다. 구의 동쪽 끝은 장수동, 서쪽과 남쪽 끝은 고잔동, 북쪽 끝은 간석동이며, 동서 간 거리는 7.8㎞, 남북 간 거리는 10.3㎞이다. 면적은 57.05㎢로 인천시 전체 면적의 5.4%를 차지하여 10개 군·구 가운데 5번째로 넓다. 행정구역은 20개 행정동(11개 법정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장수서창동이 전체 면적의 20%를 차지하여 가장 크고 만수 5동이 전체 면적의 0.9%로 가장 작다. 인구는 2018년을 기준하여 54만 9691명으로 인천시 전체 인구의 18.2%를 차지하여 서구 다음으로 많다.

구를 상징하는 꽃은 개나리, 나무는 은행나무, 새는 제비, 동물은 돌고래이다. 구청 소재지는 만수동이며, 구월동에 인천광역시청이 있다.

남동(南洞)은 1914년 인천부 남촌면(南村面), 조동면(鳥洞面)을 부천군 남동면(南洞面)으로 합 면하면서 칭하여, 1940년 남동면이 인천부로 편입되면서 명칭이 소멸되었다가, 1988년 인천직할시 남구로부터 분구되면서 명칭을 회복하였다. 구 인천 부 주안면(1914년 이후 인천 재편입 이전까지: 부천군 다 주면) 지역이었던 구월동, 간석동을 제외하고는 1914년부터 1940년까지의 남동면의 영역과 일치한다.

남동구에는 인천광역시청이 소재해 있으며, 시청 이전 후 급격히 발달하여 인천광역시의 새로운 도심이 되었다. 인천광역시 중구와 동구를 병합하고, 남동구를 두 개의 구로 분리시키자는 주장이 나돌기도 했다. 다만 남동구도 인구가 조금씩 감소하는 추세라 인천광역시 내의 자치구 인구 1위의 타이틀은 2018년 12월 기점으로 인천 서구에 밀렸다.

구월동 같은 업무지구와, 간석동, 논현동 같은 고층 아파트 단지, 수도권 최대 산업단지인 남동인더스파크, 그리고 남촌동으로 기시되는 농촌이 공존하는 지역인 것이 특징으로 만수동으로 가게 되면 주거 단지와 농촌이 공존한다. 거기에 장수동 쪽에는 인천 대공원까지 있어 관광 목적으로도 한몫을 하는 곳이다. 밑으로 내려가면, 논현동에는 소래포구가 있어 어업과 관광업이 더욱 발달할 수 있는 곳으로, 아마 대한민국에서 가장 다양한 테마가 집약된 자치구 일 것이다. CGV 인천, 뉴코아아울렛 인천점, 교보문고 인천점 등 주요 프랜차이즈 유통 업체가 이 지역의 지점명을 인천으로 하는 것을 보면 이 지역이 공식적인 인천의 중심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인천광역시의 관문인 인천종합 터미널과 롯데백화점 인천점은 길 건너 미추홀구 관교동에 위치해 있다.[2][3]

자연환경[편집]

동쪽에 성주산(216m)·관모산(161m)·소래산(299m), 북쪽에 만월산(187m)·만수산(201m)·거마산(210m) 등이 해발고도 200m 안팎의 산지를 이루고 나머지 지역은 50m 미만의 낮은 구릉들과 충적평야로 이루어져 동쪽과 북쪽이 높고 서쪽과 남쪽은 낮은 지세를 형성한다. 소래포구를 비롯한 남동쪽의 만입부(灣入部)에는 원래 간석지가 넓게 발달하여 소래염전·남동 염전 등이 조성되기도 하였으나 인천 해안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간척 사업으로 매립되어 지금의 산업단지 등으로 변모하였다. 하천은 서쪽으로 승기 천이 남동구와 연수구의 경계를 이루며 남류하여 서해로 흘러들고, 동쪽에는 관모산에서 발원하는 장수 천이 남류 하여 수산동에서 만 수천과 합쳐진 뒤 서해로 유입된다.

평균기온(2001~2010년)은 12.6℃로 인천광역시 평균(12.0℃)보다 다소 높다. 연평균 일 최고기온은 17.1℃, 연평균 일 최저기온은 8.7℃로 연평균 일교차가 8.4℃로 나타난다. 식물의 성장 가능 기간은 260.6일로 인천시 평균(256.8일)보다 3.8일 길게 나타난다. 연평균 강수량은 1198.2㎜로 시 평균(1194.4㎜)과 비슷하며, 연평균 강수량의 60% 이상이 여름철에 내리는 하계 다우형이다. 연평균 강수량이 가장 많은 만수 3동(1311.6㎜)과 가장 적은 논현고잔동(1166.3㎜)은 145㎜가량의 차이를 보인다.

역사[편집]

삼국시대의 남동구는 주요 교통 도로의 기능이 강했다. 당시 지금의 수원 쪽에서 중림역(重林驛)∼대야원(大也院)~나진(羅津)을 거쳐, 부평의 경명현(景明峴)을 넘고, 다시 한강 하류를 지나 개성으로 갔다. 이때 중림역은 지금의 경기도 시흥시 지역으로 구한말까지 인천 땅이었던 소래(蘇萊)에 속해 있었고, 대야원은 소래산 아래에 있던 역이었다.

고려 시대에는 도로와 역원 제도가 한층 확립되어 신라시대에 있던 역과 간선 도로가 많이 정비되었는데, 이중 한강 남쪽에서 수도인 송도(松都)로 가는 길에 중림 역과 경 신역(慶信驛)이 있었다. 경신 역은 지금의 수산동 경신 마을 일대에 있던 역이었다. 이 역은 비교적 소규모의 3등 역이어서 말은 모두 6 필밖에 없었지만 역의 노비는 66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중림 역과 경신 역은 그 뒤 조선 시대에까지 이어졌는데, 『인천부읍지』에도 “중림 역은 인천부에서 동쪽으로 33리에 위치하였고 찰방(察訪) 1인이 근무하였다. 본도(本道)에 속한 역이 여섯인데 경신, 반유, 석곡, 금륜, 종생, 남산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인천에서 부평이나 한양으로 갈 경우 사람들은 대개 이곳 남동구 지역을 거쳐 다녔다. 『대동여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것처럼 인천부의 제물포나 문학산 주변에서 성현(星峴)을 넘어 부평 및 한양으로 가는 길이 그것이었다. 성현은 지금의 만수동에 있는 고개로서 비리고개, 비루 고개 또는 별리현(別離峴)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성현에서 멀지 않은 장수동에는 무네미고개라고도 불리는 수현(水峴)이 있다. 수현은 조선 중종 때의 권신인 김안로(金安老)가 삼남(三南) 지방에서 서해를 통해 올라오는 세곡(稅穀)을 한양까지 안전하게 운반하기 위한 수로(水路)를 만들기 위해 이른바 굴포 운하를 파다가 실패한 일 때문에 생긴 이름이라 전해진다.

고려 시대는 물론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남동구는 인천부의 변두리 지역에 불과했다. 그 때문에 문헌상 그리 많은 역사적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기록으로 볼 때 현존하는 문서 가운데 남동구 지역의 방리(方里)가 기재된 가장 오래된 책은 1789년(정조 13년)에 국책 사업으로 호구 조사를 진행한 후 발간한 『호구 총수(戶口總數)』이다. 이 책에 기록된 인천부의 면(面)은 모두 16개 면인데, 이중 남촌면(南村面)과 조동면(鳥東面)이 대략 오늘날의 남동구 지역에 해당한다. 이 책에 따르면 남촌면에는 1~4리가 있었고, 호수는 359호, 인구는 1,418명(남자 630명, 여자 788명)이었다고 한다. 남촌면은 대략 지금의 고잔동, 남촌동, 논현동, 도림동, 수산동 지역에 해당한다. 조동면은 1~3리가 있었으며 호수는 233호, 인구는 703명(남자 315명, 여자 388명)이었던 것으로 적혀 있는데, 지금의 만수동, 서창동, 장수동 일대에 해당한다.

오늘날 인천을 대표하는 주요 지명 가운데 하나로서 주안(朱安)이라는 이름이 있다. 지금은 경인전철 주안역과 주안동에서 주안이라는 지명을 사용하고 있지만, 원래 주안산(朱雁山)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남동구가 그 이름의 기원이다. 주안산은 이제 없어져 쓰이지 않는 이름이지만 지금의 간석동에 있는 만월산(滿月山)을 가리킨다. 이 산은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대동여지도』에 ‘주안산(朱岸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흔히 글자 그대로 ‘흙이 붉고(朱) 기러기(雁)가 내려 않은 모양’이어서 이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전해온다. 요컨대 주안이라는 지명의 원조는 남동구 간석동을 중심으로 그 주변의 구월동, 십정동, 가좌동 일대를 두루 가리켜 쓰였던 것 같다.

1914년 3월 일제는 부령 제111호에 따라 부천군을 새로 만들었는데 현재의 남동구는 대부분 부천군으로 편입되었다. 일제는 일천 부의 일부와 부평군 전체, 남양군 일부, 강화군 일부 섬 지역을 통합해서 만든 행정구역이었다. 일제는 부천군을 만들면서 이전의 15개 면을 통폐합하였는데, 남동구 지역은 이중 다주면(多朱面)과 남동면(南洞面)에 속하였다. 다주면에는 구월동, 간석동 지역과 함께 지금의 미추홀구에 속하는 주안동, 도화동, 용현동, 숭의동 일대, 부평구의 십정동 지역까지 포함되었다. 다주면이란 이전의 인천부 다소면(多所面)과 주안면(朱安面)을 합하고, 두 곳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지명이다. 그 후 1921년 지금의 남동 공단이 있는 논현동과 고잔동 일대 해안에는 300정보 넓이의 남동 염전이 생겨 1980년대까지 60여 년 동안 존속하게 되었다.

이곳 염전은 우리나라 최초의 천일염 전인 주안 염전이 생긴 뒤 국가적 차원에서 근대적 방식의 염전을 계속 확장시킨 정책에 따라 생긴 것이다. 당시 정부는 남동 염전뿐만 아니라 경기도 시흥 지역에 군자 염전을 만들었다. 특히 인천 지방에 염전이 많이 만들어졌으며, 1932년에 이르면 남동 염전을 비롯한 전체 1,115정보의 인천 관내 염전에서 전국 소금 생산량의 절반인 15만 톤을 생산하였다. 오늘날 인천에 남아 있는 ‘짠물’이라는 지명은 그로부터 유래하며, 1937년 개통한 수원~인천 간의 수인선 철도 역시 소금을 많이 실어 날라 흔히 ‘소금 열차’라 불리었다. 수인선은 남동 염전의 남쪽 해안을 매립하고 소래에 철교를 놓아 만든 것으로 애초부터 열차는 남동, 소래, 군자 염전을 경유하도록 설계되었고, 실제로 이들 지역의 소금을 운반하는 기능을 담당하였다.

한편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생긴 부천군 다 주면은 1937년 인천부에 편입되면서 없어지는데, 이때 일제는 주안의 표기를 이전의 주안(朱雁) 또는 주안(朱岸)에서 지금과 같은 주안(朱安)으로 바꾼다. 그 이유는 정확하지 않으나 일설에는 ‘주(朱)’자에 ‘안대평 외산교(安垈坪 倭散橋)’의 ‘안(安)’자를 붙여 만든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안대평은 지금의 간석동과 십정동 일대가 바다였을 때 이들 지역을 연결해 주던 다리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 때 평양성 전투에서 패한 소서행장(小西行長)의 부대 일부가 김포를 건너 부평을 점령하였는데, 당시 2만여 명에 달했다는 왜군은 부평의 옛 성을 수리해 그곳에 주둔하며 인근 마을을 노략질하다가 인천부까지 침입해 왔다. 이때 왜군들은 문학산성을 지키던 조선군을 얕잡아 보고 싸움에 임했다가 참패를 당했는데, 그 싸움터가 안대평 다리였다고 한다. 그 뒤 이 다리는 왜군들이 싸움에 지고 흩어졌다[倭散]고 해서 왜산교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인천부읍지』에도 그 이름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조동면에 이어 1940년에는 남동면이라는 지명 역시 부천군에서 인천부로 편입되면서 없어졌다.

1945년 광복 후 남동구 지역은 지방자치법 실시에 따라 인천시 남동 출장소가 설치되면서 그 관할 구역이 되었다. 1968년 1월에는 구(區) 설치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인천시가 중, 동, 남, 북구 등 4개 구를 설치해 시 전역을 나누었고, 이때 남동구 지역은 남구에 편입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소래포구가 새우젓 시장으로 점차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시작하였다. 그 이전까지도 한산하기만 했던 소래포구는 1974년 인천항의 내항이 완공되면서 새우잡이를 하는 소형 어선들이 내항에 출입하기 어렵게 되자 그 대안으로 이곳 소래포구가 일약 새우 파시(波市)로 유명해졌다. 1980년대 초반까지도 주말마다 관광객을 포함해 1만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포구 안에 북적거렸던 소래포구는 여전히 남동구의 명물로 남아 있다.

1981년 7월 인천시가 직할시로 승격된 뒤 남구 지역의 인구가 급격히 증가했다. 특히 이 무렵 그동안 남동 염전이 있던 논현동과 고잔동 일대 해안에 남동공단 조성 계획이 추진되었다. 남동공단은 서울과도 가깝고 인천항을 통한 수입 물량 처리에 유리하다는 지리적 이점을 배경으로 1980년 7월 공단 조성계획이 확정되면서 추진되었다. 남동공단은 공유 수면 매립에 의한 280만 9497㎡에 염전과 농지 등을 포함해 모두 956만 5536㎡를 대상으로 계획되었다. 그리하여 남동공단은 현재의 남촌, 도림, 논현, 고잔, 동춘동 등 5개 동에 걸치는 대규모 국가 공단이 되었다. 남동공단이 추진되는 사이에 인구가 늘어난 남구는 1988년 1월 대통령령 제12367호에 따라 남동구와 남구로 나누어졌다.

남구에서 분구된 남동구는 기존의 남동 출장소 관할 지역과 구월동, 간석동, 남촌동 전 지역에 선학동, 연수동, 동춘동 일부 지역을 포함해 관할하게 되었다. 특히 1984년 구월동 1138번지 일대에는 인천광역시청 청사가 건립되면서 중구로부터 이전했다. 이는 남동구 일대가 인천의 중심 지역으로 자리 잡아가기 시작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남동구는 남구에서 분구된 뒤 5개월 만인 1988년 5월 1일 지방자치법 개정 법률 제4004호에 따라 자치구로 승격하였다.

분구 당시 13개 동이었던 남동구에는 1989년 5월 만수 4동이 신설되고, 1990년 1월에는 간석 4동이 새로 생겨 모두 15개의 행정동이 되었다. 1991년 8월에는 구월 3동, 남촌동이 잇달아 신설되었으며, 1992년 1월에는 남동공단을 관할하는 남동 공단 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93년 12월에는 구월 4동과 만수 4동이 신설되어 남동구는 모두 20개의 행정동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1998년 11월의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장수동과 서창동이 장수·서창동으로 합쳐진 것을 비롯해, 남촌동과 도림동이 남촌·도림동으로, 논현동과 고잔동이 논현·고잔동으로 각각 통합되었다.

2009년 논현고잔동에서 논현동이 분동 되었고, 2011년에는 논현동이 논현 1동으로 개칭되고 논현고잔동에서 논현 2동이 분동 되었으며, 2018년 장수 서창동에서 서창 2동이 분동 되어 지금의 20개 행정동 체제가 갖추어졌다. 2020년을 기준하여 행정구역은 20개 행정동(간석 1~4동·구월 1~4동·남촌도림동·논현 1~2동·논현고잔동·만수 1~6동·서창 2동·장수서창동) 11개 법정동(간석동·고잔동·구월동·남촌동·논현동·도림동·만수동·서창동·수산동·운연동·장수동)으로 이루어져 있다.[4]

산업[편집]

산업구조의 비중은 3차 산업이 가장 크고, 1980년대에 조성된 남동 공업단지(지금의 남동 국가산업단지)를 기반으로 제조업이 발달하였다. 2018년을 기준하여 지역 내 총생산(GRDP)은 16조 792억 원으로 인천시 전체 GRDP의 약 18%를 차지하여 10개 군·구 가운데 서구 다음으로 비중이 크다. 경제 활동별 부가가치의 비중은 제조업(5조 7428억 원)이 39.2%로 가장 크고, 공공행정·국방 및 사회보장 행정 업(12.4%), 부동산업(8.5%), 사업서비스업(5.8%), 금융·보험업(5.8%), 도소매업(5.4%), 보건업·사회복지 서비스업(5.2%) 등의 순이다. 제조업의 부가가치는 서구 다음으로 크고, 부동산업과 교육서비스업의 부가가치는 10개 군·구 가운데 가장 크다. 전통시장은 간석동의 간석자유시장, 구월동의 구월시장·인천 모래내 전통시장·구월 도매 전통시장, 만수동의 만수시장·장승 백이 전통시장, 고잔동의 남동 산업 용품 상가, 논현동의 소래포구 어시장 등이 있으며, 소래 새우젓이 특산물로 꼽힌다.

2018년 사업체 수는 4만 679개로 시 전체 사업체의 20%를 웃돌고, 종사자는 23만 6980여 명으로 시 전체 사업체 종사의 22%를 차지하여 10개 군·구 가운데 가장 많다. 사업체별로는 도소매업체(21%)와 제조업체(18%), 숙박·음식점 업체(15.8%), 운수업체(12.4%), 협회·단체 수리 및 기타 개인 서비스 업체(9.0%)가 80% 가까이 차지하고, 지역별로는 전체 사업체의 56% 이상이 구월동·논현동·고잔동에 분포한다. 제조업체는 7470개, 종사자는 8만 1990명으로 10개 군·구 가운데 가장 많으며, 업종별로는 금속가공품을 비롯하여 기타기계 및 장비, 전자부품·컴퓨터·영상·음향 및 통신장비, 전기 장비, 고무 및 플라스틱 제품의 비중이 크다. 산업단지는 논현동·남촌동·고잔동 일원에 조성된 남동 국가산업단지(남동 인더스파크)에 7440여 개 업체가 입주하여 86000여 명이 종사하고 있으며, 남촌동 일원에 남동도시첨단산업단지가 조성되고 있다.

교통[편집]

도로 교통은 영동고속도로(고속국도 50호선)가 남동구 만수동을 기점으로 하여 강원도 강릉시까지 이어지고, 성남시의 판교 분기점을 기점과 종점으로 하여 수도권 지역을 순환하는 수도권 제1순환 고속도로(고속국도 100호선, 구 서울외곽 순환도로)가 남동구의 장수동을 거쳐 간다. 중구 운서동을 기점으로 하는 제2경인고속도로(고속국도 110호선)가 남동구 중부의 남촌동·수산동·서창동·운연동을 가로질러 성남시 중원구까지 이어진다. 영동고속도로와 수도권 제1순환 고속도로가 서창 분기점에서 접속한다. 일반국도는 42호선이 인천시 중구에서 남동구 간석동~운연동을 거쳐 강원도 동해시까지 이어지고, 46호선이 중구에서 남동구 간석동을 거쳐 강원도 고성군까지 이어지며, 부산시 중구를 기점으로 하는 77호선이 경남·전남·전북·충남·경기도와 남동구의 고잔동을 거쳐 파주시 문산읍까지 이어진다. 이 밖에 지방도 330호선(제3경인고속화도로)이 남동구 남단의 고잔동을 기점으로 하여 경기도 시흥시까지 이어진다.

철도 교통은 일제강점기에 소래·남동·군자 등의 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수송하기 위하여 1937년 수원~인천을 잇는 수인선(水仁線)이 협궤철도로 개통되었다. 수인선은 1995년에 영업을 중단하였다가 복선 전철화 사업을 거쳐 2012년에 운행을 재개하였으며, 2020년에 수도권 전철 수인·분당선에 편입하여 남동구의 소래포구역~인천 논현역~호구포역~남동인더스파크 역을 운행한다. 1994년 간석동에 간석역이 설치되어 수도권 전철 1호선이 운행한다. 1999년에는 인천도시철도 1호선이 개통하여 남동구의 간석오거리역~인천시청역~예술회관역의 3개 역을 경유하고, 2016년에는 인천도시철도 2호선이 개통하여 남동구의 인천시청역~석천사거리역~모래내시장역~만수역~남동구청역~인천대공원역을 거쳐 종점인 운연역까지 운행한다.

관광[편집]

도심에서 포구의 정취와 갓 잡은 신선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논현동의 소래포구는 남동구뿐만 아니라 한국관광공사에서 선정하는 '한국 관광 100선'에 꼽히는 인천의 대표적 명소 가운데 하나이다. 소래포구 어시장과 수인선의 옛 협궤철도로 쓰이던 소래철교, 포구의 아름다운 경치를 조망할 수 있는 21m 높이의 새우 타워 전망대, 해안을 따라 경관 좋은 산책로가 이어지는 해오름공원 등이 유명하고, 포구 부근의 옛 소래염전이 소래습지생태공원으로 조성되어 가을이면 갈대숲과 억새풀이 장관을 이룬다. 장수동의 인천 대공원에는 수목원·습지원·어린이 동물원·숲 학교·사계절 썰매장·캠핑장·목재문화체험장·반려동물 놀이터 등이 조성되어 수도권 주민의 휴식처로 인기가 높고, 인천 대공원에서 장수천~소래습지생태공원을 거쳐 소래포구에 이르는 9.84㎞ 구간에 자전거도로와 함께 조성된 소래 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되었다. 역사 명소로는 1879년(고종 16)에 외세 침략을 막기 위하여 구축한 논현동의 논현포대(호구포대)와 한국 최초의 천주교 영세자이자 신유박해 때 순교한 이승훈 묘(인천기념물) 등이 있다. 먹거리촌으로는 운연동에 연락골 추어마을이 있다.

생활 문화[편집]

2001년부터 매년 가을에 소래포구 일원에서 소래포구축제가 열려 수산물 잡기, 풍어제, 축하 공연과 지역 특산물인 새우·꽃게·젓갈 등을 소재로 한 다양한 공연·전시·체험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도심의 천연 어항에서 열리는 이 축제에는 매년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참여하여 인천을 대표하는 축제의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

문화재[편집]

국가 지정 문화재로는 수령 800년이 넘은 인천 장수동 은행나무(천연기념물)와 쇠뿔을 얇게 갈아 투명하게 만든 화각(華角)을 이용하여 공예품을 제작하는 화각장(국가무형문화재)이 있다. 시 지정 문화재로는 인천유형문화재 1점(논현포대), 인천 무형문화재 3점(주 대 소리·범패와 작법무·인천수륙재), 김재로 묘를 비롯한 인천 기념물 5점, 인천문화재자료 1점(장도 포대지) 등이 있으며, 협궤증기기관차(혀기-7형)가 인천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남동구〉, 《위키백과》
  2. 남동구〉, 《네이버 지식백과》
  3. 남동구〉, 《나무위키》
  4. 남동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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