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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 고시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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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 고시촌

노량진 고치촌(鷺梁津考試村)란 서울특별시 한강 이남에 있는 상업 지역 동작구 노량진에 있는 사법 시험이나 공무원 임용 시험 따위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공부하는 숙사(宿舍)와 학원 이 밀집해 있는 지역을 말한다.[1] [2]

개요[편집]

노량진 고시촌에는 대입 재수학원, 공무원 학원/경찰/소방관 학원, 교사 임용 시험 대비 학원 등이 몰려있고, 고등고시급 시험을 제외하고는 웬만한 분야의 임용/입학시험 대비를 다 할 수 있다. 그리고 학원에서 공부하는 수험생이 밤에 잠을 자는 고시원과 원룸들, 낮에 식사를 해결하는 식당, 학원 공강시간에 공부하러 가는 카페, 독서실 및 스터디룸 등 그야말로 고시생을 위한 모든 시설이 완비되어 있어서 노량진역 반경 500m 이내에서 모든 의식주와 공부를 다 해결할 수 있다. 다만, 고등고시는 대학동 쪽에 몰려있다. 회계사, 세무사 시험의 경우는 종로, 을지로의 도심에 위치한다.[3]

역사[편집]

  • 노량진은 1899년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의 시발지이긴 했지만, 한강 이남에 위치한 과천군과 시흥군에 속했다. 서울시에 편입된 것은 1973년이었기에 그 당시는 마을이 여럿 모여 있는 주거지였다. 1970년대 들어서 도심 확장 정책으로 강남 개발이 시작되었고, 이때 강북에 있던 학원 중 일부가 강남으로 이전하게 된다. 그중 한 곳이 바로 대성학원이다. 1965년 서울 종로구 수렴동에 재수학원인 대성학원을 설립했고, 1975년 노량진으로 이전하였다. 이후 1980년대에는 공무원 공채시험 및 경찰, 임용고시와 연관된 학원들이 들어오면서 고시촌이 형성되었다.
  • 원래 서울의 대입 학원가서울 도심, 현재의 종로에 몰려 있었다. 1965년 종로와 광화문에 최초의 재수학원인 종로학원대성학원이 동시에 설립되었고 이후 종로 일대에 정일학원, 경복학원, 금자탑학원, 신성학원, 양영학원, YMCA학원, 제일학원 등 여러 대입학원들이 세워졌고 이에 더해 성인 외국어 학원들도 많이 생겨나면서 1970년대 종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학원 중심지였다. 그런데 1970년대 말 정부에서 도심 기능 분산을 이유로 사대문 안에 대입 재수학원 설립을 불허하고 기존의 학원들을 이전하도록 했다. 일설에 의하면 종로에서 데모가 빈번하게 일어났는데, 자칫 데모에 사회 불만 세력인 재수생들이 가세할 경우 그 파급력이 배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어찌 됐든 그 결과 당시 가장 유명했던 종로학원의 경우 남대문 바로 밖인 충정로로 이전했고, 또다른 명문학원이었던 대성학원은 노량진으로 이전했다.
  • 노량진에 한샘학원, 정진학원 등이 가세하면서 노량진은 대입 재수학원의 메카가 되었다. 노량진 재수 학원가는 80~90년대 최대 호황을 맞았으나, 본고사와 학력고사가 차례로 폐지되고 수능이 도입되는 등 대입 전형이 바뀌고, 무엇보다 실강을 대체하는 인강이 확산되는 등 2010년대 이후에는 재수 학원가도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그러나 공무원, 임용고시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재수학원 자리에 공무원 시험 및 임용고시 학원들이 들어서면서 노량진에서 준비할 수 있는 시험의 종류가 다양해졌으며, 원래 재수생을 위해 존재하던 다양한 학습지원시설과 편의시설의 존재는 성인 수험생에게도 이점이 되었기에 재수생이 빠진 만큼, 그 이상으로 성인 수험생들이 몰려들어 지금의 노량진을 이루게 되었다.
  • 현재의 노량진에는 대학입시 재수생, 공무원 준비생, 교사 임용고시 준비생, 경찰공무원 준비생, 소방공무원 준비생, 대학 편입시험 준비생, 공인중개사 준비생 등등의 여러 시험 준비자가 있으며, 이들 수험생의 존재로 노량진은 녹두거리로 유명한 신림동과 함께 성인 대상 시험 준비의 양대 축을 이루고 있다. 당연히 이 지역에서는 집에서나 입는 헐렁하고 낡은 츄리닝 차림에 가방을 메고 우울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들을 동네 여기저기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십중팔구 수험생이다. 서울의 관문 역할을 하지도 않고 유명한 대기업이나 상업시설이 있는 것도 아닌 노량진은 이들 수험생으로 인해 전국 단위의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다. 노량진에 처음 왔거나 노량진의 수험 분위기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큰 길가에 늘어선 음식점이나 오락시설 등을 보고 방송 같은 곳에 나왔던 노량진의 이미지와 다른 모습에 당황할 수도 있다.
  • 큰길에서 다시 안쪽 골목으로 들어가 위로 올라가게 되면 말 그대로 '도시 속의 섬'이라고 불리는 것이 과언이 아닐만큼 굉장히 조용하고 적막하며 긴장감 넘치는 고시촌이 나타난다. 참고로 말하자면, 노량진 지형이 언덕 지형이라 노량진역을 중심으로 한 중심가에서 고도가 올라갈수록, 거리가 멀어질수록 조용해진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노량진에서 거주하는 수험생들은 모두 시험에 합격해서 노량진 탈출하기를 꿈꾼다. 그러나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괜히 이곳의 별칭이 노량도가 아니다. 사실 공부하는 사람은 절반 이하고, 공부하다가 유혹에 빠져 노는 사람들이 반 이상이다. 특히 지방에서 도피성으로 올라와 공부하는 경우, 혹은 집안에서 등떠밀려 상경한 경우엔 공부에 마음 못 붙이고 PC방을 전전하면서 장수의 길로 빠져든다고 한다. 독서실에서 예약을 받을때 공부할 것 같은 사람만 가려 받는다.[4][3]

특징[편집]

  • 수능의 경우 강남으로 많이 넘어간 상황이다. 대형 학원들이 강남본점, 노량진 분점으로 운영 중이며 스타강사들도 가끔 노량진으로 와서 강의를 한다. 이 동네의 특징으로는 고교생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하기보다 N수생 중심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을 들 수 있는데, 현재는 대성학원과 종로학원, 메가스터디가 재수종합반은 운영 중이며, 스카이에듀는 단과와 독학 재수반만을 운영하고 있다. 재수학원은 주로 종합학원과 단과학원으로 나뉘어져 있다. 단과학원은 주로 독학 재수생이 많이 다니며, 오후에는 고등학생들도 많이 온다. 참고로 노량진 대입 단과학원에는 강남 및 목동과 같은 다른 학원가에서는 볼 수 없는 수강기호 코드라는 독특한 코드가 있었다. 그리고 드물게 입시미술을 가르치는 미술학원도 있다. 코미디언 정준하가 재수 공부를 했던 곳도 바로 이 노량진이다.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공무원 시험을 모두 준비할 수 있다고 얘기해도 큰 문제가 없을 수준으로 학원이 많기 때문에 그 학원에서 다양한 시험을 준비한다.
  • 소수 직렬을 위한 강의를 제공하는 소규모 학원도 골목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고, 채용 시험 과정에 체력검정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체력검정을 준비하는 학원도 골목 곳곳에 위치해 있으며, 교원 임용시험 중 실기시험이 존재하는 예체능 과목의 준비를 위한 학원도 존재한다. 재수 준비자보다 수가 많고, 노량진의 이미지를 책임지는 계층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공무원 직렬이 워낙 다양하기에 보통 같은 직렬을 준비하는 수험생들끼리 뭉치는 경향이 강하며, 시험 준비에 온 정신을 쏟느라 다른 사람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 어떤 자극을 받았을 때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사소한 자극임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독서실에 들어와서 점퍼를 벗는 소리에도 조용히 해달라는 포스트잇을 써붙이는 경우가 좋은 예다. 사람은 많은데 강의실 자리는 한정되어 있으며, 공시생의 경우 성인임에도 자기 목표를 위해 다시 공부의 길에 들어선 사람이라 앞자리 경쟁이 은근히 치열한데, 지정석 제도가 없는 학원에서는 새벽 4시부터 학원 올라가는 계단에 노트줄을 세워놓는 경우도 볼 수 있다.[3]

관련 기사[편집]

  • 정부의 1.7% 임금 인상안 발표를 계기로 ‘박봉’ 논란이 일며 공무원 인기가 시들해졌다는 말이 나오지만 노량진 고시촌은 여전히 성업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노량진역 대로변에 있는 다이소 매장이 지난 20일 자로 폐점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노량진 고시촌 신화가 막을 내리는 것 아니냐는 풍문이 돌았지만, 실상은 해당 건물이 재건축 예정으로 나간 것이었다.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활기가 덜한 것은 사실이나 일각의 해석처럼 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이 대거 빠져나가 상권이 침체된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분기 노량진 상권의 소형상가 공실률은 6.5%로 1분기(12.6%) 대비 6.1%포인트 감소했다. 다만, 업종별로 온도차는 있다. [5]
  • 서울의 대표적인 학원가, 수도권 최대 수산시장, 개항기 첫 철도역이 위치한 서울 동작구 노량진은 도시화 전후 역사가 기록된 공간이다. 한강 남쪽의 도성 길목이었던 이곳은 도시가 확장하면서 발전하는 수도의 기반 시설이 들어서며 역할이 계속 변화됐다. 서울역사박물관은 2021년 급변한 공간의 삶을 연구하는 서울 생활 문화 자료조사를 진행해 노량진, 삶의 환승 지대 도시화의 전이 지대라는 이름의 보고서를 발간했다고 20일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조선시대 노량진은 사람과 물자가 도성 안팎으로 들고나는 길목이었다. 한양에 속하지 못한 채 도성 사람들이 쓸 땔감을 파는 공급처였다. 1900년 한강철교, 1917년 한강 인도교(한강대교)가 생기자 나루터의 기능도 상실됐다. 그러다 1936년 경성부에 편입되고 철도와 전차가 지나면서 서울과 인천, 강북과 강남을 잇는 역할을 한다.[6]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노량진〉, 《네이버 국어사전》
  2. 고시촌〉, 《네이버 국어사전》
  3. 3.0 3.1 3.2 노량진동〉, 《나무위키》
  4. 이경민, 〈노량진은 언제부터 고시촌이 되었을까?〉, 《브런치》, 2020-12-13
  5. 이민경 기자, 〈박봉 논란·다이소 폐업에 술렁인 노량진 고시촌…공시생 수요에 방 없어요〉, 《헤럴드경제》, 2022-09-22
  6. 김보미 기자, 〈도성의 길목에서 학원가가 되기까지…도시화 전이지대 노량진의 기록〉, 《경향신문》, 2022-06-20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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