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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 테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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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출신 미국의 발명가, 물리학자, 기계공학자이자 전기공학자이다. 상업 전기에 중요한 기여를 했으며,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전자기학의 혁명적인 발전을 가능케 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특허와 이론적 연구는 전기 배전의 다상시스템과 교류 모터를 포함한 현대적 교류 시스템의 기초를 형성했다. 또한, 이러한 연구는 2차 산업 혁명을 선도하는 역할을 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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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편집]

니콜라 테슬라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크로아티아 군대 변경 지대(Croatian Military Frontier)의 스밀랸이라는 마을에서 출생했다. 어릴 때부터 시를 즐겨 쓰고 발명하는 것에 집중했다. 그가 가장 처음으로 발명한 것은 다섯 살 때 만든 작은 수차였다. 이는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독특한 터빈을 고안할 때 이용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테슬라의 발명품 중에는 여러 실패작들도 많았는데, 대표적으로 '열여섯 마리 풍뎅이로 움직이는 장치'가 있다. 그는 언어적으로 모국어인 세르보크로아트어뿐만 아니라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까지도 구사할 수 있었고, 수학에는 상당히 뛰어난 소질을 가지고 있었다. 니콜라 테슬라는 열 살 무렵 유럽의 중등학교 기관인 김나지움에 입학하였다. 이곳에서 많은 실험장비들을 갖춘 물리학 실험 시간에 큰 관심이 있었으며, 이 학교에서도 그의 수학적인 재능은 큰 빛을 발했다. 이후, 1875년 그는 오스트리아의 그라츠 공과 대학교(Graz University of Technology)에 입학했다. 군 당국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을 만큼 열심히 공부했지만, 경제 사정이 극도로 악화하면서 결국 공부를 다 마치기 전에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고 독학을 시작했다. 이때 테슬라는 독일인 교수 포에쉴로부터 전기 장치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으며 이것이 교류 전기 장치 개발의 시초가 되었다. 또한, 라디오를 통한 무선 통신을 1894년 최초로 실현시켜 특허청에 1897년 10월 2일 출원 및 1900년 3월 5일에 승인되어 무선통신의 아버지로도 불린다.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과의 전류전쟁에서 승리로 인해 테슬라는 미국에서 가장 대단한 전기 공학자 중 하나로 널리 존경을 받았다. 그는 현대 전기 공학을 개척했으며 수많은 그의 발명은 선도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테슬라는 1893년 이전에 무선 에너지 통신부터 전력 장치까지 개발했으며, 비록 완성하진 못했지만 와덴클리프 탑 프로젝트에서 대륙을 잇는 무선 통신을 실현시키고자 노력했다.[1][2]

주요 활동[편집]

교류 시스템[편집]

교류(AC)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흐르는 전류의 방향과 크기가 바뀌는 것을 지칭하며, 파도 모양의 형태로 사인파가 주기적으로 생성된다. 교류 발전기에서 자연스럽게 교류 전기가 발생하므로, 직류(DC)가 아닌 교류의 전기를 산업체와 가정에 공급되는 구조로 이루어진다. 직류가 필요한 전자 제품의 경우 각자의 필요에 따라 제품에 딸린 정류기를 거쳐 직류로 변환하여 이용된다.[3] 교류와 반대되는 개념으로는 직류가 있다. 직류는 전류의 크기와 방향이 시간에 따라 변하지 않고 항상 일정한 전류가 흐르는 것을 지칭한다. 흔히 건전지와 저항으로 이루어진 간단한 회로로부터 쉽게 알 수 있다. 건전지는 내부의 전해질 안에서 수명 전까지 일정한 반응량과 방향성을 가지고 일어나는 화학 반응을 이용하여 기전력을 일으키는 장치이다. 건전지의 기전력 크기와 회로의 저항 크기의 비가 바로 직류의 전류값이 된다. 직류는 직류발전기나 건전지 등 직류전원에서 얻을 수 있고, 교류로부터 정류기를 통해 변환하여 얻을 수도 있다. 실제로 수많은 전자 제품이 교류를 받아 어댑터를 통해 낮은 전압의 직류로 변환하여 제품 내부의 회로에 이용된다.[4][5]

직류는 전기의 세기를 강하게 할 수는 있지만, 전압을 높이는 것이 어려워 장거리 전송이 어렵다. 전기를 사용하는 지역마다 각각의 발전소를 지어야 해서 비용이 많이 들고, 안전성이 낮아 화재의 위혐성이 있다. 반면, 교류는 손쉬운 고전압 환경의 구현이 가능하다. 이에, 니콜라 테슬라의 교류 전기 시스템은 수천 볼트에 이르는 고전압 전기를 중앙 발전소에서 생산하여 지역 전신주까지 보내 변압기를 통하여 이를 다시 110V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직류와는 다르게 전기를 공급하여 경제성과 안전성을 높였다. 결국 토머스 에디슨이 다양한 방법과 교류 전기의자로 사형수를 고문하는 등 니콜라 테슬라의 교류를 깎아내렸지만, 시간이 지나자 미국의 전기 시스템은 대부분 교류로 대체되었다. 당시 니콜라 테슬라는 오버 테크놀로지(Over Technology) 기기를 구상했다. 그중 상당수는 니콜라 테슬라만의 놀라운 과학 이론을 기반으로 했지만, 시대를 엎선 탓에 실현되지 못한 발명품이 더욱더 많았다. 대표적인 발명품인 뉴욕의 워든클리프 타워(Wardenclyffe Tower)가 있으며, 전 지구에 전기를 무료로 전달하는 프로젝트이다. 당시 니콜라 테슬라는 지구를 하나의 전도체로 활용하여 주파수에 전기 에너지를 담아 무선으로 송신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자금 지원이 끊겨 프로젝트는 수포가 되었으며, 자신의 사비로 완성하려던 계획도 실패했다. 결국, 니콜라 테슬라가 결정적으로 파산하게 된 이유이고, 완성되지 못한 타워는 1차 세계대전 중 철거되었다. 또한, 텔레비전 리모컨이 등장하기 전인 1898년에는 무선으로 원격 조정하는 배를 개발하여 전기 전시회에서 시연하기도 했으며, 레이더와 헬리콥터의 기본 원리 제안 및 엑스레이 촬영 등에 사용되는 엑스선의 기술적인 구현을 이루어냈다.[6]

전류 전쟁[편집]

1881년 전류와 전기를 발명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게 일어나던 시기에 니콜라 테슬라는 교류 시스템, 토머스 에디슨은 직류 시스템을 내세우면서 전류 전쟁이 일어났다. 니콜라 테슬라는 1984년부터 토머스 에디슨의 연구소에서 근무하면서 전류 흐름이 불안정해 고장이 잦았던 발전기의 원인을 해결할 만큼 능력 있는 인재였다. 하지만 니콜라 테슬라가 교류 시스템을 주장했기 때문에 토머스 에디슨은 그를 배척했다. 또한 몇몇 과학자들은 그의 의견을 무시했고 이에 니콜라 테슬라는 교류가 훨씬 더 안전하며 전기를 먼 곳까지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증명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니콜라 테슬라는 회사를 그만두고 자신의 회사를 창립하여 교류 시스템을 연구했다. 직류와 교류는 각자만의 장단점이 있어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이지만 전류 전쟁에서는 결론적으로 테슬라의 교류 시스템이 승리했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일상생활에서 없는 가정이 없을 만큼 필수품이 된 콘센트, 콘센트에 사용되는 전류가 바로 교류로 그 쓰임새가 더욱 용이하기 때문이다. 또한, 니콜라 테슬라의 교류 시스템을 통해 컬럼비아 세계 박람회 전등을 만들고, 미국 나이아가라 폭포에 수력 발전소까지 세울 수 있었는데, 이 발전소가 바로 세계 최초의 수력 발전소이다. 이외에도 냉장고, 세탁기와 같은 대형 가전에 응용되며 잠수함의 위치를 알아내는 레이더를 탄생시켰다. 게다가 교류 시스템은 무선 통신 기술의 바탕이 되어 모두가 주목하는 드론의 핵심 기술이 되었고, 일론 머스크(Elon Musk)가 경영하는 전기자동차 회사인 테슬라(Tesla)는 바로 교류 전기를 만든 니콜라 테슬라를 기념하기 위해서 붙인 이름이다.[7]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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