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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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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밸리
더밸리 위치

더밸리(The Valley, 문화어: 밸리)는 카리브해 소앤틸리스 제도리워드 제도에 위치한 영국앵귈라(영어:Anguilla)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이다. 인구는 약 1000명이다.[1]

개요[편집]

더밸리는 카리브해와 대서양의 경계를 이루는 리워드 제도의 앵귈라섬의 중앙에 있으며, 푸에르토리코에서 동쪽으로 24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앵귈라는 1650년 영국이 처음으로 진출한 이후, 짧은 프랑스 점령 시기를 제외하고는 현재까지 계속 영국의 식민지로 남아 있다. 19세기 초부터 같은 영국의 식민지라는 이유만으로 세인트키츠 네비스에 속했으나, 자연환경 등에서 동질성이 거의 없어 분리 독립을 추진하였으며, 1980년에 공식적으로 영국의 독립된 해외 영토가 되었다. 비옥하지 못한 토양과 부족한 강수량으로 인해 경제 활동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한 수준이며, 대부분의 식품은 수입에 의존한다. 19세기 초반 플랜테이션 농장이 실패로 돌아간 후에는 어업이 전통적인 생활 방식으로 자리 잡았으며, 특히 바닷가재가 유명하다. 몇 개의 염호에서 소금을 생산해 소량을 수출하기도 했지만, 1980년대 이후에는 거의 중단되었다. 반면 해안이 모래가 고운 백사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수온이 따뜻하여 이를 활용한 관광업이 가장 핵심적인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도시에는 티셔츠를 파는 작은 잡화상이나 우체국, 박물관, 현지 미술품이나 공예품을 파는 가게 등이 있고, 영국 식민지 시대의 건물이나 교회 등도 있다. 관광업의 발달에 따른 건설업의 성장과 정부 차원에서 육성하고 있는 역외 금융업을 통해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으며, 교민들의 송금 역시 중요한 외화 수입이다. 관광업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세계적인 경기 변화와 날씨 등의 외부 요인에 민감하게 반응한다.[2][3]

교통[편집]

더밸리 인근에 위치한 클레이턴로이드 국제공항(Clayton J. Lloyd International Airport)이 주요 관문으로 이용된다. 클레이턴로이드 공항에는 푸에르토리코와 신트마르턴, 앤티가 바부다, 세인트키츠 네비스 노선이 개설되어 있다. 비행기로 7분 거리에 있는 신트마르턴의 줄리아나 공항(Juliana Airport)이 아메리칸 에어라인, 캐나다 항공, 프랑스 항공, KLM 네덜란드 항공 등 주요 외항사가 다수 취항하는 동카리브의 허브 공항이기 때문에 트랜스 앵귈라(Trans Anguilla)와 앵귈라 항공 서비스(Anguilla Air Services) 등 국내 항공사를 이용할 경우에는 환승해서 북아메리카나 유럽 주요 도시로 이동할 수 있다.

페리는 앵귈라를 드나드는 저렴하고 편리한 국제 운송 수단으로, 섬의 중남부에 있는 블로잉포인트(Blowing Point) 페리 터미널에서 생마르탱의 마리고(Marigot)까지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 시간마다 페리가 운항하며, 시간은 20분이 걸린다. 블로잉포인트 터미널에서는 신트마르턴의 줄리아나 공항으로도 페리가 운항하기 때문에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고 편리하게 환승 공항으로 이동할 수 있다.

도로의 총연장은 175㎞이며, 섬 중앙을 관통하는 주도로가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건설되어 있기 때문에 섬 대부분의 지역에 차량으로 30분 안에 닿을 수 있다. 영국 식민 통치의 영향으로 차량은 좌측통행을 하지만, 대부분의 렌터카는 운전석이 왼쪽에 있다. 외국인이 운전을 하려면 임시 면허를 발급받아야 한다. 주민 대다수가 차량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운영되는 대중교통은 없다. 다만, 섬 곳곳에서 버스 정류장 표시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민간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 회사가 설치한 것이다.[4]

앵귈라[편집]

앵귈라(영어:Anguilla)는 카리브해 서인도제도소앤틸리스제도리워드제도에 있는 이자 영국해외영토이다. 서쪽에는 푸에르토리코버진제도가 있고 남쪽에는 세인트마틴섬이 있다. 수도는 더밸리이며 공용어는 영어이다. 앵귈라는 스페인어(anguila)와 프랑스어(anguille)에서 뱀장어라는 뜻으로 섬의 모양이 뱀장어와 비슷한 것으로부터 명명된 것으로 추측된다. 앵귈라는 카리브해에 속한 산호초로 이루어진 평탄한 지형의 섬으로, 주위에는 해변이 많이 형성되어 있다. 토양은 일반적으로 얇고 열악하며 관목, 열대 및 삼림 식생을 지원한다. 지형은 일반적으로 저지대이며, 가장 높은 지형은 계곡 부근에 위치해 있으며, 240피트(73m)의 앵귈라 최고봉 크로커스 언덕은 도시의 서쪽 지역에 위치해 있다. 앵귈라에서 북쪽 48km에 있는 솜브레로 섬은 앵귈라에 속하는 영국령이다. 앵귈라는 생태학적으로 중요한 산호초와 해변으로 유명하다. 앵귈라섬 자체 외에도 많은 다른 암초들과 동굴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대부분 작고 사람이 살지 않는다.[5]

약 4,000년 전에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건너온 아메리카 인디언(Amerindian)들이 처음으로 앵귈라에 정착해서 농토와 마을을 일구었다. 이들이 3,300년 전까지 살았던 주거의 흔적이 섬 동쪽 끝에서 발견되고 있지만, 언제까지 앵귈라에 거주했는지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이후 태양과 달을 숭배하는 아라와크 족(Arawak)이 남아메리카의 오리노코강 유역에서 이주해 와서 정착하였는데, 이들은 앵귈라를 화살 모양의 바다뱀이라는 뜻의 ‘malliouhana’라고 불렀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는 1493년 제2차 항해에서 앵귈라를 발견했지만, 섬에 상륙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실인지의 여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앵귈라가 처음으로 서양의 기록에 언급된 것은 1564년 프랑스의 역사학자 토마 사우디(Thomas Southey)가 도미니카에서부터 플로리다까지 항해한 후 쓴 서인도 연대기(Chronological History of the West Indies)에서이다. 이 시기 유럽인들은 섬의 이름을 말리우아나(Malliouhana)에서 비슷한 뜻을 가진 에스파냐어 앵귈라(Anguilla)로 변경하였다.

1650년 세인트키츠에서 건너온 영국의 정착자들로 인해 영국의 식민지가 된 이후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초기의 영국인들은 앵귈라에서 옥수수와 담배 플랜테이션을 시작하였지만, 1656년 도미니카 카리브 인디언들의 습격 등으로 인해 오래 지속되지는 못하였다.

프랑스 역시 여러 차례 앵귈라를 점유하려고 시도한 끝에 1666년 일시적으로 앵귈라를 차지했지만 브레다조약에 따라 다시 영국에 양도하였으며, 1745년과 1796년의 공격은 실패로 돌아갔다.

1800년대까지 앵귈라는 대부분의 주변 카리브 섬들과 마찬가지로 플랜테이션 경제를 유지하였으며, 노동력을 공급하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들을 데려왔다. 담배, 럼, 설탕, 면화, 인디고 등이 이 시기 주요 수출품이었다. 하지만 황폐한 토양과 부족한 강수량으로 인해 농경이 점점 힘들어지면서 플랜테이션의 규모는 지속적으로 축소되었고, 고용은 감소하였다. 플랜테이션 농장의 쇠퇴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소농이 되거나 어부나 선원이 되었는데, 이 때문에 현재까지도 어업이 1차 산업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영국은 리워드 제도에서 확고한 통제력을 확립한 후에 식민지 체계를 재편하기 시작하였다. 1816년에는 세인트키츠네비스영국령 버진아일랜드 전체를 한 명의 총독이 관할하도록 하였고, 1830년에는 앵귈라를 세인트키츠 네비스와 한 지역으로 묶었다. 하지만 통합된 단위에서 앵귈라는 의회에 단 1명의 대표만을 선출할 수 있었고,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세인트키츠와 네비스에 비해 소홀하게 취급받으면서 앵귈라 주민들의 불만은 쌓여 갔다.

1950~1960년대에는 서인도 지역의 정치적 지형이 급격하게 변하게 되는데, 앵귈라는 1958년에 새로 만들어진 서인도 연방에 속하게 되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은 1962년에 서인도 연방이 해체되면서, 세인트키츠-네비스-앵귈라는 여전히 하나의 단위로 묶여 영국의 연합주가 되었다. 영국 법에 따라 연합주의 국방과 외교는 영국이 담당하는 대신에 연합주의 완전한 자치 정부는 인정되는데, 이것은 세인트키츠-네비스-앵귈라가 하나의 자치 정부를 형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앵귈라는 이전부터 세인트키츠 네비스와 분리되기를 희망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결정은 앵귈라 혁명을 촉발하게 되었다.

사업가이자 앵귈라의 유일한 정당이었던 민중진보당(People's Progressive Party, PPP)의 지도자인 로널드 웹스터(Ronald Webster)의 지도하에, 앵귈라는 세인트키츠의 내부 규칙에 강하게 저항하였다. ‘앵귈라의 날(Anguilla Day)’로 기념하고 있는 1967년 5월 30일, 마침내 앵귈라는 세인트키츠의 경찰력을 섬에서 쫒아내고 자치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6주 후에 실시된 분리 독립에 대한 국민 투표에서는 1,813명의 유권자 중 단 5명만이 분리 독립에 반대하는 압도적인 결과가 나왔고, 자치 위원회는 이에 힘입어 앵귈라의 독립을 선언하고 앵귈라 공화국(Republic of Anguilla)을 수립하였다.

1967년 12월 영국 정부와 앵귈라 독립 정부는 1년간 임시로 자치 정부를 운영해 본 후 그 결과에 따라 앵귈라의 미래를 결정하기로 잠정적으로 합의하였다. 하지만 1년 후 두 정부는 서로 합의를 이끌어 내는 데에 실패하였고, 1969년 2월 앵귈라는 다시 영국에 대해 일방적으로 2번째 독립 선언을 하였다. 세인트키츠와 앵귈라 간의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영국은 앵귈라에 병력을 투입하여 소요를 제압하였고, 식민지 지위로 다시 돌아가게 해 달라는 앵귈라의 요청을 마지못해 수용하였다.

1971년 영국 의회가 세인트키츠-네비스-앵귈라의 연합 상태를 종료하는 앵귈라 법을 통과시키면서 앵귈라는 마침내 세인트키츠 네비스로부터 분리될 수 있었다. 1980년 12월 19일에는 공식적으로 영국의 독립된 속령이 되었고, 1982년 4월 1일 새 헌법이 발효되었다. 2002년까지는 영국의 속령(Dependent Territory 또는 Dependency)으로 불렸으나, 의회법이 개정되면서 해외 영토(British Overseas Territory)로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주민들에게는 영국 시민권이 부여되었다.[6]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더밸리〉, 《위키백과》
  2. 앵귈라(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더 밸리, 앵귈라〉, 《요다위키》
  4. 앵귈라의 교통〉, 《네이버 지식백과》
  5. 앵귈라〉, 《위키백과》
  6. 앵귈라의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카리브해 같이 보기[편집]

카리브해
중앙아메리카
대앤틸리스제도
소앤틸리스제도
루케이언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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