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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샨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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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샨베 휘장
두샨베 전경
타지키스탄 국립대학교

두샨베(타지크어: Душанбе/دوشنبه , 러시아어: Душанбе)는 타지키스탄의 수도로 국토의 중서부 히사르(Hisar) 계곡의 중부 평균 해발고도 약 823m에 위치한다. 도시 명칭은 페르시아어로 "월요일"이라는 뜻이다. 월요일에 이 지역에서 시장을 열었던 과거의 관행을 반영하여 도시 이름이 붙여졌다. 타지키스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로, 북부의 판지켄트(Panjakent)나 후잔트에 비하면 비옥한 지역은 아니지만, 지리적으로 전략적 중요성을 지녀 동부와 서부의 여러 민족들이 두샨베를 기점으로 응집하고 만난다.

개요[편집]

역사[편집]

신석기시대 후기부터 두샨베 지역에 인간이 거주했다는 고고학적 증거가 발굴되었으나, 이 지역에 대규모 고대 정착지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두샨베 마을에 대한 가장 오래된 역사적 언급은 17세기와 18세기이다. 19세기에 두샨베는 직조, 제철을 포함한 지역 무역과 장인 생산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19세기 지방 통치자들 사이에서 오늘날 두샨베 지역을 통제하기 위해 간헐적이지만 장기간의 투쟁이 있었고, 러시아 차르 정부는 1868년, 두샨베를 부하라한국에 할당했다.

러시아혁명 뒤 적색군의 영향력이 중앙아시아에 미치면서 두샨베는 타지크족우즈베크족 반혁명군의 거점이 되었다. 러시아혁명에 뒤이은 내전은 두샨베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부하라한국의 마지막 아미르인 사예드 알렘 칸(Sayyed Ālem Khan, 재위 1880.01.03~1920.08.30.)은 1920년 8월 말에 두샨베로 도피하였다. 이후 그는 두샨베를 공산주의자들과의 싸움을 지휘하기 위한 기지로 사용했다. 소련의 적색군은 1921년 2월 21일 두샨베를 점령했고, 알렘 칸은 아프가니스탄으로 도피하였다. 소련 당국은 내전 동안 중앙아시아에서 소련과 싸운 무슬림들을 경멸적으로 표현하는 용어인 '바스마치(basmachi)(문자적 의미는 “도적”)'를 사용했는데, 바스마치군은 1921~1922년 가을과 겨울에 두샨베에 있는 소련의 수비대를 포위했다. 엔베르 파샤(Enver Pasha, 1881.11.22.-1922.8.4)가 지휘한 두 번째 포위 공격은 성공적이었고, 적색군으로부터 1922년 2월에 두샨베를 탈취하였으나, 그가 남부 타지키스탄에서 적군의 공격을 받고 사망하자 그 해 7월, 두샨베는 적색군이 재 탈환하였다. 이 혼란의 결과로, 도시 인구는 1920년 3,140명에서 1924년 283명으로 감소했다. 대부분의 건물은 내전 중에 파괴되어 1924년에는 약 40채의 집만이 남아 있었다.

두샨베는 소련의 통치기에 접어들며 부하라한국에서 소비에트 권력의 중심지로 형성되었다. 1924년, '타지키스탄 소비에트사회주의자치공화국'이 '우즈베키스탄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의 일부가 되었고, 당시 두샨베가 자치공화국의 수도로 지정되었다. 타지키스탄의 가장 중요한 문화 인물과 공식 조직 중 일부는 우즈베키스탄의 다른 지역에 있었지만, 점차적으로 두샨베로 옮겨졌다. 도시의 성장은 1926년부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건축가와 건설 인력에 의해 주로 계획되고 감독되었고, 1929년 철도가 개통되었다.

1929년 타지키스탄은 우즈베키스탄에서 분리된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에 포함되어 수도로 지정 되었다. 당시 '스탈리나바드(Stalinabad)'라고 하는 이름이 붙여진 뒤, 도시가 건설되었다. 1930년대 이후부터 도시는 당시 소비에트 연방의 전형적인 건축 양식으로, 스포츠 경기장, 오페라와 발레 극장, 정부 본부, 우체국 등이 건축되었다. 1950년대에 시정부는 처음에는 4층짜리 아파트를 시작으로 점점 고층 주거용 주택을 건설하기 시작했고, 1970년대 이후로 중층 및 고층 아파트 건물의 수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스탈리나바드는 1961년 이오시프 스탈린 격하 운동의 일환에 따라 옛 이름인 두샨베로 다시 불리며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두샨베는 현대 시대에 바르조브(Varzob)강 좌안의 핵심 지역에서 양쪽 강둑과 루촙(Luchob)을 따라 확장되었다. 소비에트 치하에서 두샨베는 빠르게 성장했고 많은 산업 기업과 문화 기관이 설립되었다.

1991년 독립 이후 내전 시기에는 두샨베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대규모 및 장기간의 시위, 심각한 생필품 부족, 인질 납치, 공공 건물 압수 및 무력 충돌이 발발했으며, 대부분은 정치적 동기였지만 폭력 범죄가 증가했다. 내전 동안 도시는 혼돈 상태가 되었고, 무장 갱단이 도로 안팎을 통제하고 거리를 순찰하면서 저녁부터 새벽까지 통행금지가 적용되었다. 내전 이후 점차적으로 두샨베는 새로운 발전 단계를 밟아가고 있다. 인프라도 대부분 재건되었다.

지리[편집]

평균 해발고도 823m에 위치한 두샨베는 북쪽의 기자(Gissar) 산맥과 남쪽의 바바탁(Babatag), 악타우(Aktau), 랑곤타우(Rangontau), 가라타우(Karatau) 산맥 사이의 계곡에 위치하고 있다. 도시의 중앙부에는 남북으로 바르조프강(Varzob river)이 흐르고, 이 강은 도시 남부 지역에서 코파르니혼강(Kofarnihon river)과 합류한다.

거시적으로 볼 때, 고도가 높은 북쪽 지역은 해발 900m가 넘으며, 남쪽으로 이동할수록 고도가 점차 낮아져 코파르니혼강 인근 지역은 해발 750m 정도다. 미시적으로 보면 도시 내에 크고 작은 구릉지가 많이 분포하고 있다.

두샨베는 대부분 도시 지역으로 구분되는데, 도시의 서쪽이나 남동쪽 외곽에는 농지가 다수 분포한다. 기계, 전기, 섬유, 식품 공업이 주로 이루어지며 타지키스탄 공업 생산량 중 3분의 1을 차지한다.

두샨베의 여름은 덥고 건조하며, 겨울은 습하고 쌀쌀하다. 가장 더운 달인 7월의 평균 기온은 약 27℃에 달하지만 때때로 최고 기온이 40℃를 넘을 때도 있다. 반면 가장 추운 달인 1월은 평균 기온 약 5℃를 유지하지만, 영하 20℃ 이하의 혹한이 엄습할 때도 있다. 그러나 겨울에는 비슷한 위도의 다른 도시들보다 덜 추운데, 이는 계곡을 형성하고 있는 산맥이 시베리아고기압의 영향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연평균 강수량은 약 650mm로 적은 편으로 봄철에 집중되는데, 이 시기에는 뇌우와 우박을 동반한 폭우가 내리기도 한다. 이는 계곡에 위치한 도시의 특성상 겨울과 봄에 계곡 내부로 습기가 유입되기 때문이다.

두샨베는 아시아에서 대기오염이 가장 심한 도시 중 하나이다. 높은 산맥 사이의 계곡에 위치하기에 대기 순환이 원활하지 않아 오염물질이 축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염물질은 주로 석탄을 사용하는 시멘트 공장에서 배출된다. 유독 물질을 배출하는 가구 산업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2018년 기준 타지키스탄에서 배출하는 대기오염 물질 중 86%가 두샨베에서 비롯되었다.

도시 구조[편집]

두샨베는 타지키스탄의 교통의 요지로 중앙 기차역두샨베 공항이 소재한다. 타지키스탄 정부 청사와 더불어 루다키 공원(Rudaki Park) 근처에는 대통령궁이 화려하게 건설되었다. 광장, 공원, 야외 레크리에이션 시설과 거리를 따라 늘어선 상점 외에도 2개의 큰 시장, 전통 방식으로 장식된 대형 공공 찻집이 있다. 거의 모든 종류의 세계 각국의 요리를 시내 중심가에서 찾을 수 있다.

현대의 두샨베는 진정한 "정원 도시"로 명명된다. 넓은 대로와 우뚝 솟은 질경이와 포플러 나무가 늘어선 졸린 뒷골목은 더운 여름날 잎이 무성한 오아시스 같은 느낌을 준다. 많은 대형 공원이 도시 전역에 흩어져 있으며, 크고 작은 운하와 수로로 물이 공급된다. 빈티지 건물의 조용한 게스트하우스부터 래디슨(Radisson) 및 하얏트(Hyatt)와 같은 국제적 체인을 포함한 국제 비즈니스 호텔에 이르기까지 각종 호텔 숙박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1991년 9월 9일, 타지키스탄이 독립을 선언한 후 당국은 일부 소련 지정 명칭과 기념물을 타지키스탄의 범페르시아 문화 유산을 상징하는 새로운 명칭으로 교체하였다. 특히 국가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한 기념비 건립 등은 수도인 두샨베에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 두샨베의 '레닌 거리(Lenin Avenue)'는 '루다키 거리(Rudaki Avenue)'로 개칭되었고, 시내의 'V. I. 레닌 동상'은 '페르도우시(Ferdowsi) 동상'이라는 명칭으로 대체되었다. 또한 찬란한 중세 국가였던 사만 왕조의 창건자인 '이스마일 소모니(Ismoil Somoni)'의 동상 기념비가 새롭게 지어졌다. 독립 이후, 국가 정체성 강화 과정에서 두샨베에서는 '타지키스탄 대 작가의 벽'을 건립하고 과거 타지크 문화의 우수성을 홍보하고 있다.

경제[편집]

1920년대와 1930년대 두샨베의 소수의 산업은 육류 가공업과 같이 주로 현지 수요와 현지 생산 원료 가공에 중점을 두었고, 이외에도 비누·벽돌·목재·비단실·가죽 및 의류·전력 생산 등의 산업이 중심을 이루었다. 도시의 산업 발전은 제2차 세계대전소련 정부가 생산 시설 중 일부를 전쟁 지역에서 더 멀리 떨어진 우랄강 동쪽으로 이전하기로 한 결정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두샨베에서는 섬유 제조, 식품 가공 등 경공업 분야가 발전을 거듭했다. 면화 및 비단 가공 중심지로 개발되었으며 수만 명의 사람들이 두샨베로 이주하여 농촌 마을을 대규모 도시 행정 및 산업 중심지로 탈바꿈시켰다.

두샨베는 현재 100여 개의 공장과 기타 생산 시설이 소재하는 타지키스탄의 주요 산업 중심지이며, 전체 인구의 10% 미만이지만, 산업 노동력 및 사무직 인력의 약 3분의 1이 거주하고 있다. 산업 기계(석유 및 섬유 산업용 기계 포함), 농기계 부품, 내구소비재(냉장고 및 가구), 섬유 및 실(실크 및 면화)을 생산하는 공장과 수많은 육류 가공 시설이 있다. 또한 타지키스탄의 출판, 텔레비전 및 라디오 방송, 영화 제작의 중심지를 이루고 있다.

인구[편집]

두샨베의 인구는 1926년 5,600명에 불과했으나, 1989년에는 604,000명(주변 마을 2,000명 포함)으로 증가하였다. 인구 증가는 주로 러시아인과 다른 유럽 러시아인의 이민으로 인한 것으로, 몇 년 동안 기존 도시 인구의 자연적 증가가 있었고, 또 다른 요인으로는 인근 지역을 두샨베 도시 구역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989년 인구 조사에서 8,000여 명이 시 정부에 속한 농촌 지역 주민으로 분류되었다.

소련 해체 이전, 1989년 인구 조사에서 실제로 두샨베 도시 지역에 살았던 인구 중 가장 큰 민족 집단은 타지크족으로 39.1%를 구성했고, 나머지 32.4%는 러시아인, 10.4%는 우즈베크족, 4.1%는 타타르인, 3.5%는 우크라이나인으로 구성되었다. 나머지 10.4%에는 유대인,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멘족 등이었다. 1970년대 이후 도시 인구 구성은 타지크족 비율이 더욱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1970년과 1979년의 인구 조사에 따르면 두샨베는 러시아인의 비율이 각각 42%와 39%로, 1989년보다 더 높았고, 타지크인의 비율은 더 낮았다.

1990년대, 두샨베는 계획 경제의 붕괴와 1992~1997년의 내전으로 인해 매우 황폐해졌다. 대부분의 러시아인과 기타 소수 민족은 이 기간 동안 해외로 도피하였다. 생활 수준, 비 중앙아시아인의 지위, 소비에트 이후 권력투쟁과 관련된 혼란에 대한 우려로 인해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도시를 떠났다. 특히 러시아인과 대부분 전문직에 종사자하였던 기타 비 중앙아시아인이 두샨베를 떠났다. 내전 이후 소련 이외의 다른 지역에서 러시아어 사용 노동자들이 유입되어 2020년 기준 도시의 인구는 약 86만 명이다.

문화[편집]

두샨베 인근에는 일찍이 불교 문화가 융성했던 아지나 떼빠(Adzhina Tepa), 할차얀(Khalchayan) 등이 위치하고 있어서 문화적으로도 타지키스탄의 독자성을 보여준다. 시내에는 국립 유물 박물관(Tajikistan National Museum of Antiquities), 구르민즈 악기 박물관(Gurminj Museum of Musical Instruments), 과학 아카데미의 민족지학 박물관 등이 있다.

두샨베에는 타지키스탄 국립대학(Tajik National University), 국립교육대학교, 국립의과대학교, 국립폴리테크닉대학교, 국립농업대학교, 기술대학교 등 고등교육 및 문화 기관이 있다. 소련 시대에는 러시아어 및 문학 연구 기관(현재 외국어 연구소), 타지크 과학아카데미, 국립 도서관이 있다.

공연 예술은 심포니 오케스트라, 오페라 및 발레단, 청소년 극장, 인형극 등이 대표적이다. 소련 시기에 합법적으로 인정된 이슬람 사원은 하나였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소비에트 연방의 변화로 인해, 타지키스탄에 무슬림 거주자가 집중된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많은 새로운 모스크가 문을 열 수 있게 되었다. 1990년에는 이슬람 연구소가 설립되었다.

두샨베에서는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의 도시와 구별되는 것은 도시의 현대적 성격과 전통적 성격이 극명하게 대조된다는 사실이다. 큰 수염과 전통 예복을 입은 노인들이 공원에서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많은 여성들이 전통적이지 않은 의상을 선택하지만, 일부는 얼굴을 가리기도 한다. 두샨베 도시 여성들은 미니스커트와 하이힐을 자유롭게 신을 수 있으며, 대부분의 남성들은 단정한 옷차림을 선호한다.

다른 도시보다 방문하기 좋은 또 다른 이유는 삶의 속도다. 두샨베는 전통적인 타지크 스타일을 반영하여 여유로운 분위기다. 비즈니스는 종종 차와 공손한 대화를 통해 수행되기도 하며, 여전히 러시아어는 거리와 비즈니스 영역에서 의사 소통의 수단으로 기능한다. 거리는 혼잡하지 않고 교통 체증은 전례가 없으며 주차 공간은 충분하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중앙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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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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