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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토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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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토마소(De Tomaso)
드토마소(De Tomaso)

드토마소(De Tomaso)는 알레한드로 드 토마소(Alejandro De Tomaso)가 1959년에 설립한 이탈리아레이싱카 회사이다. 드 토마소라고 띄어서 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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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드토마소는 이탈리아레이싱카 메이커로 아르헨티나 태생의 알레한드로 드 토마소가 1959년 이탈리아의 모더나에 설립했다. 1970년 프랭크 윌리엄스 팀을 위한 레이싱카인 포뮬러 1(Formula 1)을 포함하여 다양한 자동차 모델을 생산하였다. 드토마소가 출시한 자동차로는 모노포스토(Monoposto), 포뮬러 1, 포뮬러 2, 발레룬가(Vallelunga), P70, 망구스타(Mangusta), 판테라(Pantera), 도빌(Deauville), 롱샴(Longchamp), 구아라(Guara), 스포츠 5000이라고 불리는 P70, P72 등이 있다. 드토마소의 창립자 알레한드로 드 토마소는 마세라티(Maserati) 형제가 창립한 OESC에서 레이싱카 업계에 첫 발을 들였다. 그가 드토마소의 비즈니스 성장에 집중했던 결과로 1970년대에 드토마소는 OESC와 마세라티를 인수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로 성장했다. 하지만 여러 번의 고비 끝에 2014년 홍콩에 본사를 둔 이데아 팀 벤처스(Ideal Team Ventures)에 인수되었으며 새로 형성된 회사명으로 선보인 첫 번째 제품은 레트로 스타일의 레이싱카 P70이다. 이후 2019년에 드토마소의 창립 60주년을 기념해 P70를 재해석한 한정 판매 모델인 P72를 출시했다.[1][2]

주요 인물[편집]

알레한드로 드 토마소[편집]

알레한드로 드 토마소(Alejandro De Tomaso)

알레한드로 드 토마소(Alejandro De Tomaso)는 드토마소의 창시자이다. 그는 이탈리아 태생의 정치인 안토니오 드 토마소아르헨티나 대농장주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1928년부터 1955년까지 어머니의 고향인 아르헨티나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아버지의 죽음 이후 학교를 중퇴하고 농장을 운영했다. 레이싱과 레이싱카에 관심이 많았던 그의 첫 레이싱카는 튜닝된 부가티(Bugatti) 타입 35모델이었다. 발명이나 개발을 좋아하고 소질이 있었던 알레한드로 드 토마소는 미드쉽(Midship) 레이싱카를 직접 만들기도 했다. 또한 1955년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1000km 레이스에서 우승을 한 기록도 있다. 그는 젊은 시절 정치 활동을 활발하게 했었다. 당시 아르헨티나 대통령인 페론을 반대하는 독립신문을 지지하고, 1955년에는 페론 대통령을 탄핵하려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그리고 그는 아르헨티나에서 추방당한다. 그는 아버지의 고향인 이탈리아에 정착했고 OSCA(Officine Specializzate Costruzione Automobili)라고 불리는 마세라티 형제가 설립한 곳에서 시험 주행 드라이버로 일했다. 그 곳에서 미국인 이사벨을 만났는데, 이사벨은 지금의 제너럴모터스(GM)의 창립자 중 한 명인 윌리엄 듀런트(William Durant)의 손녀였다. 이사벨 또한 레이싱 드라이버였고 관심사가 같아 빠르게 친해진 둘은 1957년에 결혼했다. OSCA의 레이싱카로 레이싱을 하면서 알레한드로 드 토마소는 자신만의 차량을 디자인했다. 그 결과로 1958년에 750cc의 OSCA 엔진을 후륜측의 약간 앞쪽에 장착한 그만의 새로운 디자인이 탄생했다. 레이싱카에 대한 야망과 비전을 가지게 된 알레한드로 드 토마소는 이사벨과 함께 1959년 드토마소(De Tomaso)를 창립하고 그의 두 번째 레이싱카인 모노포스토(Monoposto)를 제작했다. 사업을 키워나가기에 열중했던 알레한드로 드 토마소는 1993년 심장마비로 쓰러지고 난 뒤 건강히 급격히 나빠졌다. 그리고 2003년, 그의 이탈리아 삶의 시작점인 모데나에서 74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3][4]

역사[편집]

1959년 알레한드로 드 토마소와 그의 아내 이사벨은 드토마소를 창립하고 이탈리아의 모더나로 이사했다. 같은 해 출시한 드토마소의 첫 모델인 모노포스토는 1인승 레이싱카로 1,492cc의 OSCA 엔진을 차량 후반에 장착한 디자인이다. 초기 드토마소는 OSCA의 엔진에 의존한 모습을 보였다. 1961년부터 1963년까지 드토마소는 OSCA 엔진은 물론 알파로메오(Alfa Romeo)와 포드(Ford)의 엔진까지 다양하게 사용했었다. 당시에는 레이싱에 관심 있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알레한드로 드 토마소는 비즈니스를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자금을 위해 상류층의 부유한 신사 드라이버를 주 고객으로 설정하고 그들을 위한 레이싱카를 만들었다. 또한 프랭크 윌리엄스(Frank Williams)가 만든 레이싱팀인 윌리엄스를 위해 포뮬라 1 레이싱카를 만들었다. 1963년~1966년에는 드토마소의 첫 번째 양산 로드카인 발레룬가(Vallelunga)와 발레룬가 스포츠(Vallelunga Sport) 모델이 판매되었다. 당시에 등장한 첫 미드쉽 로드카 중 하나였으며 여기에는 경량 백본 섀시를 사용했다. 이 백본 섀시가 이후 드토마소의 시그니처가 된다. 발레룬가는 단 53대밖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 시기의 드토마소는 여전히 OSCA의 엔진에 의존하긴 했지만 그 당시 별도로 스포츠 1000과 스포츠 2000이라는 이름의 레이싱카를 만들기도 했다. 알레한드로 드 토마소와 미국의 자동차 디자이너 캐롤 쉘비(Carroll Shelby)는 세계 모터스포츠에서 유명한 사람들이었다. 1964년에 그들은 최고의 레이싱카를 만들기 위해 공동으로 P70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두 사람이 함께라면 그 어느 누구보다도 빠르고 멋진 레이싱카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짐작했지만 그들은 P70 프로젝트가 끝나기 직전에 갈라섰다. 캐롤 쉘비가 포드(Ford)로 떠난 뒤 남은 알레한드로 드 토마소는 P70를 완성시킨 뒤 카로체리아 기아(Carrozeria Ghia)와 파트너 계약을 성사하고 1965년에 열린 튜린(Turin) 모터쇼에 P70의 새 모델을 출품했다. 하지만 그 뒤 P70은 드토마소 공장 한켠에 40년 동안 잠들어 있게 되었다. 첫 번째 로드카인 발레룬가의 출시 이후 비즈니스의 확대와 자금을 위해 다른 모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레이싱카만으로는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로 성장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알레한드로 드 토마소는 또 다른 양산 로드카인 망구스타를 제작했다. 1966년~1971년에는 드토마소의 두 번째 로드카인 망구스타가 판매되었다. 드토마소는 당시 가장 큰 자동차 회사 중 하나인 포드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포드는 드토마소에게 대량 생산이 가능한 그랜드 투어러 차량 제작을 의뢰했다. 그리고 이 차량은 링컨(Lincoln) 머큐리(Mercury) 딜러샵을 통해 판매 될 것이 정해졌다. 그래서 1970년에 탄생한 차량이 유명한 판테라이다. 판테라는 이탈리아 디자인에 포드의 V8 머슬카 파워트레인을 장착했다. 세계적인 수준의 퍼포먼스에 이탈리아 감성이 묻어난 디자인, 게다가 합리적인 금액까지 갖춘 판테라는 성공적이었다. 이후 23년간 지속적인 판매를 이어갔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알레한드로 드 토마소는 사업을 키우는 것에 열중했다. 드토마소는 수많은 이탈리아 사업체를 인수했는데 카로체리아 기아, 비넬리(Vignelli), 모토구찌(Moto Guzzi) 등등 유명한 업체가 꽤 있었다. 그러던 중 1975년에 엄청난 일이 벌어지는데 알레한드로 드 토마소가 처음으로 자동차 업계에 발을 담궜던 OSCA를 인수했다. 그리고 그 직후 마세라티(Maserati)까지 인수하게 된다. 마세라티는 1975년부터 1993년까지 드토마소가 소유하였으며 이후 지분을 피아트(Fiat)에 처분하였다.

순서대로 도빌, 롱샴, 구아라

드토마소는 꾸준히 다양한 모델의 차량을 출시했다. 1970년 튜린 모터쇼에서 시작을 알린 럭셔리 세단 도빌은 판테라를 디자인한 디자이너의 또 다른 작품이다. 도빌을 통해 드토마소는 새로운 세그먼트에 진입할 수 있게 되었다. 1972년 튜린 모터쇼에서 등장한 롱샴은 드토마소와 카로체리아 기아 그리고 포드와의 마지막 합작 모델이다. 드토마소의 마지막 로드카인 구아라는 1993년 제네바(Geneva) 모터쇼에 출품되었다. 구아라는 알레한드로 드 토마소가 만든 마지막 차량이 되었다. 구아라는 쿠페로 제작되었으며 추후 스파이더(Spider) 버전과 바르게타(Bargata) 버전까지 제작되었다. 또한 구아라는 총 50대만 만들어졌으며 1993년부터 1998년가지는 비엠더블유(BMW)의 V8 엔진을 사용하다가 1998년 후반부터 2004년까지는 포드의 V8 엔진을 탑재했다. 1993년 알레한드로 드 토마소는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이후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고 2003년 그가 이탈리아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한 모데나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나이 74세였다. 이후 드토마소는 아들인 산티아고 드 토마소(Santiago De Tomaso)가 맡아서 운영했다.[3][4] 알레한드로 드 토마소의 사망 이후 하락세를 보이던 드토마소는 2004년 청산에 들어갔지만 신차 생산은 계속 진행하고 있었다. 법원이 임명한 청산인에 따라 드토마소 공장 및 상표에 대한 구매자를 찾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지안 마리오 로시뇰로(Gian Mario Rossignolo)가 드토마소의 상표를 인수하고 드토마소 오토모빌(De Tomaso Automobile)이라는 새 회사를 설립했다. 하지만 2012년 5월 드토마소는 사업 계획이 충분한 재정적 지원을 받지 못해 다시 매각되었고 같은 해 7월 지안 마리오 로시뇰로는 75,000유로 상당의 정부 지원금을 악용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었다. 이 후 2015년 이탈리아 파산 법원은 드토마소를 홍콩의 이데아팀벤처스(Ideal Team Ventures)에 1,050유로에 매각하는 것을 승인했다.[1][2] 2019년 드토마소는 신모델 P72를 굿우드 페스티벌 오브 스피드(Goodwood Festival of Speed)에서 공개했다. 아폴로(Apollo)의 슈퍼카를 기반으로 제작된 모델이며, 과거 개발했다가 프로토타입으로 끝난 드트마소의 P70을 재해석한 복고풍 스타일링의 레이싱카이다.[5]

생산 차량[편집]

망구스타[편집]

망구스타(Mangusta)

망구스타(Mangusta)는 드토마소가 1967년에 출시한 자동차이다. 총 401대만 판매되었으며 세계적인 디자이너 주지아로의 작품이다. 망구스타라는 이름은 동물 몽구스에서 따왔는데 안 좋게 갈라선 캐롤 쉘비를 비판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망구스타는 1960년대의 자동차임에도 멋진 디자인을 자랑한다. 날렵한 외관을 위해 차체가 아주 낮게 설계 되었는데 바퀴 2개를 세로로 쌓은 높이보다 차고가 낮다. 내려갈수록 안쪽으로 떨어지는 차체의 앞부분은 망구스타의 디자인을 가장 먼저 돋보이게 한다. 게다가 양 끝으로 자리 잡은 원형 헤드램프는 클래식함을 더해준다. 뒷유라창이 좌우로 분할돼 있는데 덮개와 함게 마치 걸윙도어처럼 열린다. 엔진이 운전석 뒷쪽에 있는 미드십 구조라 정비하기가 편리하다. 실내 인테리어에도 신경을 많이 썼는데 각종 게이지 버튼들의 조합은 지금 출시되는 차량들과 비교해도 전혀 뒤쳐지지 않는다. 망구스타는 좋은 디자인에 포드 V8 엔진을 사용한 모델이지만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고 겨우 401대만 판매되었다.[6]

판테라[편집]

판테라(Pantera)

판테라(Pantera)는 드토마소에서 1971년부터 1992년까지 총 7,260대 가량의 차량이 생산된 미드쉽 스포츠카이다. 판테라는 드토마소를 대표하는 스포츠카로 당대의 람보르기니(Lamborghini) 쿤타치(Countach), 마세라티(Maserati) 보라(Bora) 등의 슈퍼카들과 경쟁하는 차종이었다. 드토마소 망구스타를 대체하는 차량이며 미드쉽 레이아웃에 후륜구동을 채택했고 리트럭터블 헤드라이트를 장착하고 있다. 당시에는 저렴하면서도 높은 출력, 낮은 무게중심과 컴팩트한 사이즈에 가벼운 무게는 물론, 내구성에다가 저속토크가 우수해 다루기까지 유순환 관계로 유럽제 섀시에 미국제 V8 엔진을 올린 하이브리드 슈퍼카들이 속속히 출시되고 있었다. 판테라 역시 이런 자동차 중 하나였다. 변속기는 당대 슈퍼카들의 표준이라 할만한 ZF사의 5단 수동변속기를 탑재했으며 여기에 맞물리는 엔진은 포드제 5.8L V8 엔진을 장착했다. 이 엔진의 최대출력은 330 마력이었으며, 그 덕에 판테라는 5.5초만에 100km/h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최고속도는 256km/h를 기록했다. 북미 시장에서는 판테라 GTS라는 이름으로 판매됐고, 석유 파동으로 판매가 중단될 때까지 1.000여 대가 판매됐다. 유럽 시장에서는 1992년까지 판매됐으며, 마지막 3년 가량은 조금 더 현대화된 디자인의 판테라 SI가 판매됐다. 판테라 SI의 경우 쿤타치 25주년 기념모델, 람보르기니 디아블로의 디자인을 맡았던 마르셀로 간디니가 디자인했으며, 전기형과는 달리 타르가 모델이 제공됐다. SI를 끝으로 판테라는 후계 차량인 구아라에게 자리를 내주고 단종됐다. 총 7,260여 대의 판테라가 생산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금까지도 희소한 차량으로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다.[7]

스포츠 500[편집]

스포츠 500(Sport 500)

스포츠 500(Sport 500)은 캐롤 쉘비알레한드로 드 토마소의 합작으로 개발한 모델이다. 스포츠 500 모델을 탄생시킨 P70 프로젝트는 기본적으로 캐롤 쉘비가 자금을 제공하고 알레한드로 드 토마소는 자동차 설계를 담당했다. 그리고 디자인은 피터 브록(Peter Brock)이 맡았다. P70은 7리터 엔진 때문에 P70 또는 70P라고 불렸다. 289 포드-코브라 엔진을 7리터로 개조하였는데 이것은 경쟁 모델인 쉐보레(Chevrolet)의 엔진과 경쟁하기 위한 핵심 부분이었다. 하지만 P70 프로젝트는 완성되기 직전에 무산되었다. 디자이너인 피터 브록이 '국제 모터스포츠에서 가장 강력한, 하지만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이 만났다'고 말 할 정도로 캐롤 쉘비와 알레한드로 드 토마스는 프로젝트 과정 중의 의사결정에서 많은 충돌을 겪었다. 캐롤 쉘비는 포드의 스카우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등을 돌렸으며 남은 알레한드로 드 토마소는 카로체리아 기아의 도움으로 P70의 디자인을 수정하고 이 프로젝트를 완성시켰다. 그것이 바로 1965년 토리노(Torino) 모터쇼에 전시된 스포츠 5000이다. 726 킬로그램의 건조한 무게와 강력한 파워트레인의 조합으로 그 시대 최고의 레이싱카 모델들과 경쟁할 만한 자격을 갖추었다. 또한 가변 공기 역학을 위해 기어 시프트를 운전자가 직접 제어할 수 있는 링 에어포일 기능이 있다. 1966년 이탈리아의 레이싱 드라이버 로베르토 부시넬로(Roberto Bussinello)가 세계 레이싱카 챔피언십 8라운드에서 스포츠 5000으로 레이스를 펼쳤지만 그는 첫 라운드에서 은퇴했다. 그 이후 스포츠 500은 다시는 경주되지 않았지만 이후 출시된 드토마소의 망구스타 모델 제작 시 P70의 섀시를 기반으로 만들었다.[3]

P72[편집]

P72

P72는 드토마소의 창립 60주년을 기념해 2019년에 출시된 모델이다. 굿우드 페스티벌을 통해 드토마소의 부활을 알린 모델이기도 하다. P72는 모델명의 숫자를 따 전 세계 단 72대만 한정 생산되고 가격은 출시일 기준 75만 유로(한화 약 10억)로 시작한다. P72의 생산은 2022년 미국의 한 생산 공장에서 시작될 예정인데 아직 정확한 위치는 발표하지 않았다.[8] P70의 곡선과 라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모델로 P72 의 디자이너는 1965년의 P70을 완벽하게 오마주 (Hommage) 하는 것에 중심을 두고 디자인했다고 밝혔다. 전체 실루엣은 P70과 굉장히 유사하다. P70이 뚜껑 없는 레이싱카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당시에도 거의 유선형에 가까운 디자인으로 다듬어졌다. P72 역시 정면과 측면에서 보았을 때 극단적인 유선형의 디자인을 하고 있으며 P70의 프론트범퍼, 본넷에 달린 주유구, 심지어 빨간색과 골드로 도색되어 있는 휠 색상과 형상까지 모두 담아냈다. 또한 동력 계통도 P70을 따라 했다. 당시 P70 뿐 아니라 드토마소의 망구스타, 판테라 모두 포드 V8엔진을 사용했다는 점과 V8엔진만이 낼 수 있는 배기 음량의 폭을 고려한 결정이다. P72에 채용된 V8엔진은 700마력 이상의 출력을 낼 수 있다. P72에는 아폴로에서 물려받은 풀 카본 섀시를 쓴다. 이는 차량의 무게를 가볍게 할 뿐 만 아니라 같은 무게 대비 더 좋은 강성을 확보할 수 있게 해준다. 보통의 슈퍼카들이 쓰는 카본 터브는 터브 위에 알루미늄 혹은 합금 소재를 올리는 방식으로 제작되는데 P72는 보통이 하이퍼카(Hyper Car)들과 완전히 같은 방식으로 제작된다. P72의 내부 인테리어 핵심 색상은 라즈베리 골드(Raspberry gold)이다. 금색으로 빛나는 부분은 모두 라즈베리 골드 색으로 도금되어 있다. 기어봉 뿐만 아니라 계기판핸들 등의 격자무늬를 모두 사람이 손수 깎아 만들었다. 인테리어 디자인을 사진으로만 봐도 극상의 공예품을 지향하는 성향의 차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P72는 시대를 초월한 디자인뿐만 아니라 드토마소가 생산하는 모든 것에 주입된 공학 기술과 정교함의 수준을 보여주는 대표 차량이라고 할 수 있다.[3][9]

출시 예정[편집]

이사벨[편집]

2021년, 드토마소는 두 번 째 새로운 레이싱카 공개를 준비하고 있다. 드토마스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 된 새로운 티저 영상에서는 이사벨(Isabelle)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레이싱카가 등장한다. 드토마소의 창시자인 알레한드로 드 토마소의 아내 이름을 따 만들어진 이 모델은 1959년 모델인 포뮬러 2의 모델을 기반으로 하며 레이싱카의 명성을 되살리는 P72의 새로운 트랙 전용 버전이 될 것이라 예상된다. 안타깝게도 신차에 대한 스펙 세부 정보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영상에서 더 두드러진 리어 스포일러디퓨저의 모습으로 그 실루엣을 엿볼 수 있다. 드토마소의 신차 이사벨은 2021년 9월 중에 출시될 예정이다.[10][11]

각주[편집]

  1. 1.0 1.1 De Tomaso〉, 《Wikipedia》
  2. 2.0 2.1 드 토마소〉, 《위키백과》
  3. 3.0 3.1 3.2 3.3 드토마소 공식 홈페이지 - https://detomaso-automobili.com/
  4. 4.0 4.1 Flossy, 〈드 토마소(De Tomaso)의 역사 그리고 P72〉, 《네이버 블로그》, 2019-12-17
  5. 드 토마소〉, 《나무위키》
  6. 신동빈, 〈우리가 잊고 있었던 슈퍼카계 다크호스 모델들 1편〉, 《카랩》, 2017-01-25
  7. 드 토마소 판테라〉, 《나무위키》
  8. 손용강 기자, 〈‘드 토마소’가 공개한 10억짜리 슈퍼카 'P72'..미국서 생산(?)〉, 《데일리카》, 2020-10-28
  9. 터보832, 〈캐롤 셸비와 드 토마소(De Tomaso)의 꿈 :전설의 부활 드 토마소 P72〉, 《네이버 블로그》, 2019-12-13
  10. Martin Bigg, 〈De Tomaso Teases New Mystery Track Monster〉, 《Carbuzz》, 2021-09-07
  11. Holger Wittich, 〈Ist das der P72 für die Rennstrecke?〉, 《Motor Presse Stuttgart》, 2021-09-07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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