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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겍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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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겍포(Lau Gek Poh, G.P. 라우, 刘玉波)
레이싱홍(Lei Shing Hong, 利星行)

라우겍포(Lau Gek Poh, G.P. 라우, 刘玉波, Liu Yubo, liú yù bō, 1916년 ~ 2008년 4월 4일)는 말레이시아의 기업가이자 홍콩에 본사를 둔 자동차 판매 기업인 레이싱홍(Lei Shing Hong, 利星行)의 창업주이다. 그는 1936년 말레이시아로 건너가 어렵게 창업해 말레이시아의 유명 기업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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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편집]

라우겍포는 1916년 차오안현(潮安县) 구이후진(归湖镇) 룽시촌(龙溪村)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4년 동안 사립학교를 다녔다. 1936년에 그는 13위안만 가지고 배를 이용하여 말레이시아로 향해 생계를 유지했다. 처음에는 사바주(沙巴州)의 산에서 견습생으로 일하다가 풍토가 좋지 않아 사바주 두호의 한 상점에서 직원으로 일하면서 3년 동안 일한 끝에 저축을 했다. 이어 몇몇 지인들과 함께 식료품 사업을 운영했다. 가게가 번창하기 시작할 무렵, 일본 침략군 남침이 되자, 라우겍포는 사업을 그만두고 말레이시아 본토로 피난하여 농목에 종사하였고, 현지 마을 사람들에 의해 향장으로 초대되었다.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후, 일본군은 말레이반도를 침공하여 점령했다. 당시 라우겍포는 일본 침략군의 추적을 받아 바다에 뛰어들어 탈출했고 야만적인 일본군이 총격을 가했지만 다행히 그는 어려움을 면했다. 그는 숲속으로 도망쳐 들어갔고, 짐승의 침해를 피하기 위해 그는 어쩔 수 없이 높은 나무 위에서 원시인과 같은 삶을 살았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라우겍포는 말레이시아 사바주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늘 사람들에게 "먼저 사업을 하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하고, 장사를 하려면 근검해야 하며, 곤경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약속을 지키고 신용을 중시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부인 치우위리얜(邱御蓮, Qu Yulian, qiū yù lián)의 동의를 얻어 그녀의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황금 악세사리를 팔아 친구 진(陈)씨와 협력하여 합작회사를 공동 창설하여 식료품 사업을 운영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진씨 친구는 나이가 많아서 회사를 해체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합작회사는 이때부터 회사는 단독으로 경영하게 되었다. 라우겍포의 성공적인 경영 덕분에 사업은 나날이 번창해지고 있으며 1950년대 초 그는 식료품 사업을 계속하면서 목재업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영국인이 경영하는 노스 포크 목재회사(North Fork Lumber Company, 北婆木材公司)에 벌목 작업을 계약했으며 1958년까지 그의 합작회사는 노스 포크 목재회사의 모든 벌목 작업을 맡았다. 1960년 라우겍포는 현지 정부에 목재업 면허를 받아 사바에 큰 산림을 사들이고 공장을 설립해 목재 수출을 했다. 그는 목재 산업의 규모를 계속 확장하면서 동시에 선사(船务公司)를 설립하여 일본, 한국, 대만에 목재를 운송 및 판매하는 업무가 날로 번창하여 동남아의 유명한 목재 상인으로 '목재 왕(木材大王)'이라고 불렸다. 1960년대 초 그는 현지 정부의 승인을 받아 고무 재배를 위한 900여 무의 토지를 개발했으며, 1966년 노스 포크의 매니저는 사바를 떠나 영국으로 돌아가 이 회사의 모든 코코아 농장을 라우겍포에게 양도했다. 그의 가족은 코코아를 대량으로 재배할 일꾼을 모집하여 전 세계에 판매하여 막대한 수익을 올렸으며 '코코아 왕(可可大王)'으로 불리기도 했다.

20세기 70, 80년대에 이르러 라우겍포의 사업을 경영하는 범위는 목재업, 선박운송업, 재배업, 자동차 산업, 부동산 산업 및 하드웨어 산업을 포함하여 동남아시아 전역으로 퍼졌다. 극장 및 수출입 무역 등 그는 말레이시아 사바(Sabah)의 동쪽과 서쪽 해안에 거대한 숲을 소유하여 다양한 유형의 차량 2,000여 대를 보유하였으며 소속 직원은 총 10,000여 명에 달한다. 그는 사업의 뚜렷한 성과와 함께 마을 사람들의 일에 열성적이며 지역 교육과 공공복지 및 자선 활용에 적극적으로 기여하였다. 1980년대 초 그는 말레이시아 차오저우공회연합회(马来西亚潮州公会联合会)의 상무위원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연합회 사업 추진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는 제석언(諸碩彦, zhū shuò yàn)과 함께 마조홀딩스(马潮控股)를 설립했다. 말레이시아에서 자력을 모으고 현대화 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현지 트렌디한 사람들의 경제적인 대통합을 보여주는 동시에 현지 경제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1965년 말레이시아 사바주 장관이 ADK 훈장을, 1967년 말레이시아 최고원수가 PDN 건국 공헌 훈장을, 1976년 사바주 PGDK 다툭(Datuk, 拿督) 훈장을, 이후 CPDK 고급 다툭 훈장을 받았다. 그는 1990년대 홍콩에 거주하다가 뇌졸중으로 휠체어를 타고 여행을 하다가 회복을 위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吉隆坡)러 돌아와 요양하였지만 2008년 4월 4일 오후 1시 55분 쿠알라룸푸르 프린스 코트 의료 센터(Prince Court Medical Centre)에서 향년 92세에 세상을 떠났다.[1]

주요 경력[편집]

레이싱홍[편집]

레이싱홍(Lei Shing Hong)은 말레이시아 화교홍콩에 본사를 둔 자동차 판매 기업이다. 아시아와 호주, 유럽 일부 지역에서 자동차 판매 및 부동산 사업을 펼치고 있다. 회사는 말레이시아 화교계 라우 가문에서 70% 이상 지분을 가지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를 비롯해 부산·울산·경남 지역에서 메르세데스-벤츠를 판매하는 스타자동차㈜한성모터스㈜도 계열사이다. 여기에 포르쉐 최대 딜러사인 스투트가르트스포츠카㈜(SSCL)와 세 번째 딜러사인 용산스포츠오토모빌㈜, 그리고 람보르기니 단독 딜러인 ㈜에스큐디에이모터스(SQDA)(람보르기니서울)까지 맡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지분 49%와 메르세데스-벤츠 파이낸셜 서비스 코리아 지분 20%를 갖고 있다.

  • 수입차 유통 : 레이싱홍은 벤츠의 최대 딜러사중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베트남, 캄보디아, 호주에서 자동차 판매업을 영위하고 있다. 1969년 대만에 벤츠 매장을 낸 것이 처음이다. 한국 진출은 지난 1985년 한성자동차㈜를 설립하면서다. 국내 수입차 역사와 함께하는 것이다. 이 밖에 캐터필러, 다임러 등 산업 기계도 아시아 지역에서 판매한다.[2]
  • 포르쉐 : 레이싱홍은 포르쉐코리아의 주력 딜러사(판매사)인 스투트가르트스포츠카㈜와 서울 용산에서 포르쉐 매장을 운영하는 용산스포츠오토모빌㈜을 갖고 있다. 수입차 유통 구조는 스마트폰과 유사하다. 포르쉐코리아 등 수입사가 본사에서 제품을 수입한 뒤, 여기에 마진을 붙여 딜러사에 넘긴다. 여기에 딜러사는 별도로 마진을 붙여 판매하는 데 재량에 따라 할인을 할 수 있다. 수입사는 스마트폰 도매상, 딜러사는 소매상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마진은 수입사와 딜러사가 각각 10~15% 정도다. 포르쉐코리아가 돈을 버는 만큼 레이싱홍도 버는 셈이다.[2] 2020년 포르쉐가 국내에서 막대한 신차 판매 수익과 함께 할부금융 대행 수수료까지 챙겨가고 있다는 논란이 일었다. 2019년 포르쉐의 한국법인인 포르쉐코리아는 매출액이 2018년 대비 17배 늘어난 103억 원, 순이익 107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한국 법인에서만 발생한 이익으로, 차량을 공급한 독일 본사는 이보다 훨씬 많은 이익을 챙긴 것으로 추산된다. 포르쉐코리아는 2019년 한국시장에서 2018년 대비 53.6% 늘어난 4,285대를 판매했다. 포르쉐의 대당 평균 판매가격은 1억 5천만 원이 넘는다.
  • 메르세데스-벤츠 : 레이싱홍은 한국에서 포르쉐뿐만 아니라 메르세데스-벤츠를 판매한다. 벤츠의 경우 수입사와 딜러사를 모두 갖고 있다. 수입사인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지분 49.0%가 레이싱홍 계열사인 스타오토홀딩스 소유이다. 나머지 51.0%가 벤츠의 본사인 다임러 지분이다. 또 할부금융사인 메르세데스-벤츠 파이낸셜스타오토홀딩스가 지분 20.0%를 보유한다. 벤츠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는 레이싱홍이 말레이시아에 세운 특수목적회사(SPC) 보너스리워즈의 자회사이다. 부산·경남 지역 딜러사인 스타자동차㈜한성자동차㈜에도 각각 지분 51.0%를 보유하고 있다. 홍콩에 세운 SPC 퍼시픽스타오토모빌이 국내 법인 부산인베스트㈜를 세우고, 이 부산인베스트먼트㈜가 두 딜러사의 지분을 갖는 구조이다. 레이싱홍은 딜러사가 입주한 매장을 임대하고, 수입차 구매 시 할부 금융을 제공하며, 경우에 따라 고객에게 장기렌터카 서비스를 하는 회사도 갖고 있다.[2]
  • 람보르기니 : 또 다른 고급차 람보르기니도 레이싱홍이 판매한다. 람보르기니는 원래 2007~2015년 화장품 회사 참존의 계열사 참존임포터가 수입해 판매했었다. 하지만 판매부진과 경영난으로 판매권이 한성인베스트로 넘어갔다. 한성인베스트는 람보르기니 판매사인 2016년 SQDA모터스를 설립하고 매장을 열었다. 람보르기니는 2017년 24대, 2018년 11대에서 2019년 173대로 판매량이 급증했다. 2020년 상반기 판매량은 136대에 달한다. 하반기에도 상반기 수준으로 판매가 이뤄질 경우 300대에 가까운 판매량을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 SQDA모터스는 애스캠피언의 자회사이다.[2]

자선 활동[편집]

라우겍포는 말레이시아의 유명한 기업가일 뿐만 아니라 잘 알려진 자선가이기도 한다. 그가 설립한 라우겍포 재단은 많은 교육, 과학 및 자선 활동에 적극적으로 자금을 지원해 왔다. 비록 외국에 살고 있지만 그는 조국과 고향인 차오산(潮汕)에 대해 강한 애정을 가지며 1956년에 고향 차오안(潮安) 구이후(归湖)로 돌아왔다. 그는 295만 위안을 기부하여 차오안 구이후 회자(怀慈)중학교를 설립했고, 광흥수공장(光兴水厂), 구이후진의 자혜도로, 그리고 용계마을길 등을 건설했다. 그는 대마(大马) 현지 조인 동향 동아리의 유명한 교포 지도자이기도 하다. 1980년대에는 마차오연합회(马潮联会) 회장, 사바중화총상회(沙巴中华总商会) 감사장, 두호차오저우공회(斗湖潮州公会) 부이사장, 말레이시아중화공상연합회(马来西亚中华工商联合会) 명예회장, 말레이시아차오저우공회연합회(马来西亚潮州公会联合会) 영원명예회장 등을 지냈다. 거주지인 말레이시아에서 그는 자선사업에 열중하여 현지 공익사업을 발전시켰다. 공익 자선 사업 때문에 그는 '사바대자선가(沙巴大慈善家)'라고 불리며 사바주는 말레이시아에서 면적이 두 번째로 큰 주로 동마에 위치하고 일찍이 19세의 그가 남양을 내려와 사바산에서 뿌리를 내리고 기슭에 상륙했다.[3]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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