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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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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리버풀 위치

리버풀(Liverpool)은 영국 잉글랜드 북서부 머지사이드주도시로 인구는 약 50만 명으로 영국의 10번째로 인구가 많은 지역이며 주변 광역 도시권까지 포함하면 인구는 224만 명으로 영국에서 5번째로 크다. 리버풀은 2007년 유럽 문화 수도로 지정됐다.[1]

개요[편집]

  • 행정 구역: 노스웨스트잉글랜드
  • 면적: 111.8 km2
  • 지역번호: 0151
  • 정부 공식 홈페이지: https://liverpool.gov.uk/

리버풀은 잉글랜드 북서부의 도시로 아이리시해에 면하며 머지강 어구 동쪽에 위치한 공업도시이자 항구도시이다. 런던에서 북서쪽 283km, 맨체스터에서는 서쪽으로 50km 떨어져 있다. 1207년에 자치구가 되었고 1880년에 도시로 승격됐다. 1889년에 랭커셔주로부터 독립해 자치구가 됐다. 산업혁명 시기 도시의 확장과 함께 주요 외항으로 성장하였고 면직물 등 일반적인 교역물품을 포함, 노예무역의 중계항으로 기능하면서 영국 제1의 항만으로 성장했다. 미국으로 이주하는 북유럽인들, 아이리시들의 집결지였으며 유명 선박회사 큐나드(Cunard), 화이트스타라인(White Star Line) 등의 탄생지이기 때문에 RMS 타이타닉(RMS Titanic) 호를 포함한 여러 유명 선박들의 모항이기도 하다. 리버풀의 전통적인 산업구조는 항구 중심, 제조업 중심이었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리버풀 고용인구의 60% 이상이 행정, 교육 및 보건, 금융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그 다음이 유통과 숙박, 요식업이 뒤따르고 기존의 운송업은 약 6%, 제조업도 약 5% 정도로 과거와는 상반된 경제구조를 보이고 있다. 한때 세계 최고의 무역항이었던 만큼 지금도 다양한 문화와 종교를 가진 여러 인종 공동체가 남아있다. 특히 아일랜드, 웨일스 출신의 영국인이 많이 살고 있으며 오랜 역사를 가진 아프리카 흑인 공동체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차이나타운이 있다. 리버풀은 리버풀대학교, 리버풀존무어스대학교, 리버풀호프대학교(Liverpool Hope University), 리버풀 공연예술학교(Liverpool Institute for Performing Arts, LIPA)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교육기관들이 다수 소재하고 있다. 주요 관광지로는 테이트 리버풀, 비틀즈 스토리, 리버풀 세계 박물관(World Museum Liverpool), 리버풀 대성당(Liverpool Cathedral) 등이 있으며 특히 피어헤드(Pier Head), 앨버트 독을 포함한 독 부분, 상업 지구 등을 아우르는 일대는 해양 무역 및 항구 발전 역사의 선구적 사례로서 리버풀-해양 무역도시(Liverpool-Maritime Mercantile City)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2]

지리 및 기후[편집]

리버풀은 아일랜드와 마주한 잉글랜드의 항구 도시다. 머지강 입구 동쪽에 자리를 잡았고 면적은 111.8km²이다. 광역도시권으로는 영국에서 다섯 번째로 큰 도시다. 역사적으로 '영국 도시 중 가장 화려한 무대'라고 불리어졌다. 리버풀 시는 에버턴 힐에서 해발 70m에 이르는 사암 언덕의 능선을 가로질러 있다. 이 능선은 웨스트 랭커 평원 해안의 남쪽 경계다.

리버풀은 온화한 해양 기후 지역이다. 1년 평균 기온은 10.1°C이며, 평균 최고 기온은 13.2°C, 평균 최저기온은 7.2°C다. 기록이 시작된 1867년 이래 기온은 2010년 12월 21일 -17.6°C에서 1990년 8월 2일 34.5°C까지 다양했다. 리버풀 공항은 2006년 7월 19일 35.0°C를 기록했다. 리버풀의 여름은 비교적 온화하고 겨울은 시원하며 강우량이 1년 내내 고르다. 연평균 강수량은 836.6mm로 평균 144.3일 비가 내린다. 눈은 보통 11월~3월 사이에 내리지만 예외도 있었다. 최근 들어 가장 이른 눈은 2008년 10월 1일이었고, 가장 늦은 눈은 2012년 5월 15일에 내렸다. 역사적으로 가장 이른 눈은 1974년 9월 4일에, 가장 늦은 눈은 1975년 6월 2일에 내렸다.

역사[편집]

리버풀이라는 이름은 1190년까지는 ‘Liuerpul’로 알려져 있었는데, 이는 흙탕물 개울 정도의 의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이름은 ‘Leuerepul, Lyuerpole, Lytherpole, Litherpoole’ 등으로 계속 변화하다가 마침내 ‘Liverpool’이라는 현재의 명칭이 되었다. 도시로서 리버풀의 기원은 12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당시 존 왕이 발행한 칙서에는 새 자치도시(borough) ‘Livpul’의 설립을 알리는 내용이 담겨있다. 16세기 중반까지 인구는 여전히 500명 안팎이었다. 1644년 영국 내전 때는 이 도시를 장악하기 위한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다. 18일 간 도시가 포위되기도 했다. 1699년 최초의 노예선인 리버풀 상선이 아프리카로 출항했고 같은 해 의회법에 따라 교구가 만들어졌다. 서인도 제도와의 설탕 등 교역량이 아일랜드유럽의 규모를 넘어서고, 인근 도시가 기울면서 리버풀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노예폐지 운동이 있기는 했으나 노예 무역과 담배 거래에 따른 큰 이익이 이 지역의 빠른 성장과 번영의 밑거름이 됐다.

1715년 최초의 상업적 계선독이 머지강변에 완공되었고, ‘Thomas Steer’s Dock’으로도 알려져 있는 이 계선독(The Old Dock)은 최대 100대의 배를 수용할 수 있었으며 강에 바로 연결된 조수독으로도 기능하였다. 19세기 초까지 리버풀을 거쳐 대규모 교역이 이루어졌고 부의 축적에 따라 주요 건물들이 들어섰다. 1830년 리버풀과 맨체스터철도를 통해 서로 연결됐다. 사상 최초의 상업 철도 노선이 개통되면서 19세기 리버풀은 런던을 능가했다. 인구는 빠르게 증가했는데, 특히 1840년대 수십만 명의 아일랜드 이주민들이 대기근의 여파로 이주해 왔다. 1846년에는 앨버트 독(Royal Albert Dock Liverpool)이 완공되었는데 이는 여러 개의 계선독과 건선거로 이루어진 부두였으며 현재는 복합 문화단지로 재개발되어 관광 명소가 되었다. 이러한 부두들을 기반으로 리버풀은 세계적인 항구로 부상하여 19세기 말까지 전 세계 물류의 40%가 통과하는 무역항이 되었고, 무역을 통한 부의 축적은 세인트 조지 홀(St George’s Hall), 라임스트리트 역(Lime Street Station) 등 주요 건물들의 설립으로 이어지는 등 지속적인 도시 발전을 가져왔다. 1851년 초 리버풀은 '유럽의 뉴욕'으로 묘사됐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유럽 전역에서 온 이민자들로 북적였다. 1880년에 공식적으로 도시(city)가 되었다. 초기 리버풀은 단 7개의 스트리트(street)로만 이루어져 있었을 정도로 아주 작은 도시에 불과했다.

리버풀은 불운한 여객선 타이타닉호의 등록항이었다. 이 배는 1912년 4월 첫 항해 중에 침몰해 1,517명이 숨졌다. 제2차 세계대전 리버풀의 전략적 중요성은 막대했다. 이 때 런던 다음으로 독일군의 대공습에 시달렸다.

20세기 초반부터 상당수 서인도 흑인들의 공동체가 존재해 왔다. 대부분의 영국 도시처럼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 군인과 선원들을 포함한 상당수 영연방 이민자들의 고향이 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더 많은 이민자들이 도착했는데, 대부분 콕스테스와 같이 집값이 싼 구도심에 정착했다. 전쟁이 끝나고 영국 최대의 부두 사업인 시포스 독 재건 작업이 이루어졌고 교외 공공주택 건설이 확대됐다. 몇몇 구도심 지역은 새로운 집을 짓기 위해 재개발되었는데, 독일의 폭격에서 살아남은 역사적인 지역들도 도시 재개발로 거의 사라졌다.

1960년대 리버풀은 머시 비트(Merseybeat) 사운드의 중심이었다. 이 사운드는 비틀즈 등 리버풀 록 밴드들과 동의어가 됐다. 미국의 리듬앤블루스, 록 음악에 영향을 받은 사운드는 반대로 수 년동안 미국 음악에 강한 영향을 주었고 국제적인 인기를 끌었다. 비틀즈는 1960년대 초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수 년간 공연을 통해 명성을 얻었다. 그들은 대중음악 역사에서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했고 음악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밴드였다. 가수이자 작곡가인 비틀즈 멤버 존 레넌은 1980년 뉴욕에서 살해당했다. 리버풀 공항은 2002년 존 레넌 공항으로 바뀌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해운과 중공업의 구조조정으로 부두와 전통 제조업이 쇠퇴하고 막대한 일자리가 사라졌다. 컨테이너의 등장으로 부두의 쓸모가 줄었고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1982년 1월 실업률이 17%로 영국에서 가장 높았다. 20세기 후반 리버풀 경제는 회복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전국 평균보다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2004년 부동산 개발업자 그로즈베노르는 파라다이스 스트리트를 기반으로 한 리버풀 도시재생 사업인 '파라다이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는 도심에 가장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리버풀 원E'로 이름을 바꾼 이 센터는 2008년 5월 문을 열었다. 2007년 리버풀은 자치구 설립 800주년 기념식을 열었으며, 유럽 문화 수도로 지정됐다. 수십억 파운드가 투입된 '리버풀 원'개발 등 도시재생 사업은 2010년대 초반까지 계속됐다. 가장 중요한 재개발 사업은 킹스독, 만섬, 라임 스트리트 게이트웨이, 발틱 트라이앵글, 로프워크, 에지 레인 게이트웨이 건물 신축이었다.[3]

건축[편집]

리버풀의 건축 양식은 16세기 튜더 건물에서부터 현대 건축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건물의 역사는 18세기 후반 이후 대영제국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웨스트민스터시를 제외하고 영국의 어떤 도시보다 더 많은 공공 조형물이 있다. 풍부한 건축물은 영국 빅토리아 시대 최고의 도시임을 보여주고 있다.

건축과 디자인의 가치는 2004년 도시의 여러 지역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빛을 발했다. 영국의 주요 항구인 리버풀 부두는 역사적으로 도시 발전의 중심에 있었다. 1715년 세계 최초로 습식 선착장(구독)과 유압식 리프팅 크레인이 건설됐다. 가장 잘 알려진 선착장은 앨버트 독으로 1846년 건설됐다.

상업지구는 캐슬 스트리트, 데일 스트리트, 올드 홀 스트리트 지역을 중심으로 조성됐으며, 이 지역의 많은 도로들은 중세의 배치도에 따라 만들어졌다. 300여년에 걸쳐 발전한 이 지역은 리버풀의 세계문화 유산에 포함됐다.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는 1598년에 완공된 남쪽의 튜더 저택인 스피크 홀이다. 이 건물은 19세기 중엽에 장식된 빅토리아풍 인테리어로 유명하다. 시내 중심부의 가장 오래된 건물은 1717~18년에 지어진 블루코트 챔버스다. 앤 여왕 스타일로 건축된 이 건물은 크리스토퍼 렌의 작품에서 부분적인 영향을 받았다. 1908년 이후 예술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리버풀에는 두 개의 유명한 성당이 있다. 1904~1978년에 건설된 성공회 성당은 영국에서 가장 큰 성당으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크다.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 또 로마 가톨릭 메트로폴리탄 대성당은 1962~67년 건설됐으며, 전통적인 세로 설계 기법을 깬 대성당 중 하나다.

한동안 쇠락했던 리버풀의 중심부는 최근 몇 년 동안 상당 부분 재개발과 재건이 이뤄졌다. 가장 큰 규모의 개발은 리버풀 원이다. 약 10억 파운드가 투자돼 소매, 상업, 주거 및 레저 공간이 탄생했다. 도심 북쪽에는 140m 높이로 리버풀에서 가장 높은 유니티 빌딩과 웨스트 타워를 비롯해 몇 개의 새로운 초고층 빌딩이 건설됐다.[4]

관광[편집]

비틀즈 등 록 그룹과 세계적인 미술관, 박물관, 랜드마크의 인기를 활용한 관광산업도 리버풀 경제의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영국에서 외국인이 6번째로 많이 방문하는 도시다. 2008년 유럽 문화수도 기념 행사가 열리는 동안 하룻밤에 188만 파운드가 지역 경제 수입으로 들어온 적도 있었다. 크루즈 여객선 터미널이 시내 중심가에 있어 관광객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비틀즈의 고향 리버풀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음악 도시이기도 하다. 매튜 스트리트는 비틀즈와 관련된 많은 관광지 가운데 하나이며, 유럽 최대의 무료 음악 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관광객들은 역사가 서린 캐번 클럽(Cavern Club)에서 비틀즈 시대의 추억에 젖어들 수 있다. 리버풀은 영국에서 런던 다음으로 많은 갤러리와 박물관이 있다. 리버풀박물관에서 역사를 배울 수 있고, 테이트 리버풀에서 현대적 첨단기술을 맛볼 수 있다.[5]

리버풀대학교[편집]

리버풀대학교(University of Liverpool)는 영국 잉글랜드 머지사이드주 리버풀에 있는 공립 종합대학교이다. 1881년 영국 국왕의 칙허에 의해 리버풀에서 리버풀유니버시티칼리지(University College Liverpool)로 설립하였고 1882년 붉은색 벽돌건물인 빅토리아 빌딩(1880)에서 45명의 학생으로 개교하였다. 1884년 맨체스터에 있는 빅토리아대학교 산하에서 대학교(University) 자격을 얻었다. 같은 해에 물리학 교수인 올리버 로지(Oliver Lodge:1851~1940)가 세계 최초의 공공용 무선전신 개발에 기여하고 2년 후에 영국 최초로 수술용 X-레이를 선보였고 이러한 의학적 개혁은 대학 발전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 1903년 왕실 칙허에 의해 대학교로 승격하였고 리버풀대학교라는 교명으로 분리 독립하였다. 2006년에 중국 장쑤성(江蘇省) 남동부 쑤저우(蘇州)의 세계문화유산 지역인 쑤저우 류위안(蘇州 劉園)에 시안교통대학(西安交通大學)과 함께 시안교통-리버풀대학교(西交利物浦大学:Xi’an Jiaotong-Liverpool University)를 세웠다. 리버풀 대학교는 각종 대학 평가 순위에서 영국 30위권을 오르내리는 대학이다. 영국 일간지 타임스와 가디언 대학 가이드(Guardian University Guide)가 매긴 2011년 영국 대학 순위에서 28위와 39위에 각각 올랐다. 2011년 영국 대학평가기관 QS(Quacquarelli Symonds)가 매긴 QS세계대학랭킹(QS World University Rankings)에서는 세계 123위에 랭크됐다.

예술대학, 보건·생명과학부, 인문·사회과학부, 과학·공학부의 3개 학부로 크게 나누어지며 그 아래의 54개 부문에서 400개 학부·대학원 과정이 제공된다. 주 캠퍼스는 리버풀 도심에서 도보로 5분 정도 떨어졌고 옆에 대성당이 있다. 캠퍼스의 중심 건물은 빅토리아 빌딩이고 캠퍼스 안팎에 50여 개의 기숙사 건물이 흩어져 있다. 그밖에 위럴 반도(Wirral Peninsular)의 리허스트 캠퍼스(Leahurst campus), 시안교통-리버풀대학교가 있다. 부설시설로는 2009년 빅토리아 빌딩 안에 개원한 빅토리아미술관·박물관, 중앙도서관, 수의학도서관, 해양생물학도서관, 수의학병원, 네스식물원, 존스턴실험실 등이 있다. 졸업생 또는 교수로 노벨상을 수상한 대표적인 인물은 로널드 로스(1902, 생리의학), C.G.바클라(1917, 물리학), 찰스 셰링턴(1932, 생리의학)이다.[6]

지도[편집]

서유럽 국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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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리버풀〉, 《위키백과》
  2. 리버풀(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리버풀〉, 《요다위키》
  4. 리버풀(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5. 리버풀〉, 《나무위키》
  6. 리버풀대학교(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서유럽 같이 보기[편집]

서유럽 국가
서유럽 도시
서유럽 지리
지중해
서유럽 문화
서유럽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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