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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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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국기

리비아(아랍어: دولة ليبيا, 영어: State of Libya)는 북아프리카에 있는 나라이다. 북쪽으로는 지중해와 접해 있고, 동쪽으로는 이집트, 서쪽으로는 알제리, 동남쪽으로는 수단, 남쪽으로는 차드, 남서쪽으로는 니제르와 접경한다.

개요[편집]

지도[편집]

리비아 행정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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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편집]

고대[편집]

원래의 리비아에는 베르베르인이 살고 있었다. 기원전에 카르타고, 그 이후 로마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이후 7세기 이슬람교에 바탕을 둔 아랍 세력이 서진(西進)하여 북아프리카에 침입해 옴에 따라 리비아는 아랍화했다.

중세 및 근대[편집]

15세기부터 4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리비아는 오스만제국의 영토였다가, 1911년, 이탈리아-투르크 전쟁(伊土戰爭)으로 이탈리아가 리비아를 차지하였다.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은 리비아의 식민화를 강력하게 추진하였고, 1938년이 되면 9만명에 달하는 이탈리아 이주자들이 리비아에 들어와, 타라불루스와 벵가지 주변에서 농장을 열었다. 제 2차 세계대전 중에는 격전지가 되었으며, 결국 추축국 세력이 패배하여 리비아에서 철수하게 되었다. 그 결과 리비아는 영국과 프랑스의 분할통치 하에 놓이게 되었다.

독립과 리비아 왕국[편집]

이탈리아령이던 트리폴리타니아, 키레나이카, 페잔의 3지역이 연합왕국을 구성, 1951년 12월 24일에 리비아 연합 왕국으로 독립하였다. 국왕 이드리스 1세 영도 하의 리비아에서는 1959년에 석유가 발견되었고, 1963년에는 연방제를 폐지하고 전국을 10개 주(州)로 분할하였다.

카다피 집권 이후의 리비아[편집]

1969년 9월 1일, 이드리스 1세 국왕의 외유 도중에 무아마르 카다피[1] 대위의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다. 카다피는 아랍 민족주의와 사회주의화 정책을 추진, 1972년에 이집트, 시리아와 연합하여 아랍 공화국 연방을 세웠지만, 1977년 이집트의 친 이스라엘 정책에 반발하여 탈퇴를 선언했다. 이후 카다피는 리비아를 그 자신의 독특한 이슬람 사회주의에 근거한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었으며, 그의 사상은 녹색서(The Green Book)에 잘 나타나 있다.

카다피 정권은 반미주의에 입각하여 미국과 서방권을 상대로 로커비 사건 등 수차례의 테러를 감행했다. 그 결과 1986년에는 미국의 공습을 받기도 했었다. 그 이후로도 핵무기 개발과 인권 탄압 등으로 인해 리비아에 대한 서방 국가의 제재가 가해졌다. 리비아에 대한 서방 국가의 제재는 카다피가 서방에 대한 개방을 선언한 2003년까지 계속되었다.

리비아 내전[편집]

2011년 2월부터 동부의 주요 도시인 벵가지에서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다. 친 카다피 세력과 반 카다피 세력 사이의 내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시민군은 카다피 정권에 대항해 독자적으로 '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라는 정부 기구를 출범시켰으며, 나토 (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군도 카다피 정권에 대한 공습에 참여하였다.

8월 초순경까지는 수도 트리폴리가 있는 서부를 거점으로 하는 카다피 정권과 동부의 벵가지를 거점으로 하는 시민군측의 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가 대립 할거라는 양상이었지만, 2011년 8월 21일 시민군은 성공적으로 수도 트리폴리에 입성하였다. 카다피 정권은 시르테, 사브하, 바니 왈리드로 퇴각한 상태였고, 2011년 10월 20일 카다피는 최종 은신처인 시르테에서 시민군에 의해 체포되었고 그 과정에서 총상으로 사망하였다. 이렇게 해서 카다피의 42년 장기집권이 마무리 되고, 리비아 과도정부는 10월 23일, 해방을 공식 선포하였다.

카다피 이후[편집]

카다피 이후에 리비아는 총선이 치러졌고, 총선에서 자유주의 세력이 승리했다. 그리고 의회선거에서 자유주의정당이 승리했다. 43년만에 리비아는 정권교체가 이루어졌고 제헌의회의장에 메가리프가 선출되었다. 리비아는 다른 중동지역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제작된 반이슬람영화로 인해 시위가 확산되고 있으며, 벵가지의 미국영사관에서 미국영사가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미국 영사관을 공격한 1명이 체포되었다. 리비아의 새총리도 영사관 공격은 비겁한 범죄라고 밝혔다. 2012년 10월 7일에 리비아의회는 새로운 총리를 해임했다.

2014년 내전[편집]

리비아는 2014년 6월에 새 의회를 선출했다. 2014년 리비아 하원 선거 과정에서 이슬람주의 세력이 패배하자 이슬람주의 세력이 반란을 일으켜 새 의회의 정부를 투브루크로 피난가게 만들었다. 이슬람주의 계통의 민병대가 새 의회에 참여하지 않은 기존 총국민회의 의회 의원들을 바탕으로 의회를 구성하면서 서로 합법 정부를 자처하는 두 개의 국가로 분단되었다. 트리폴리를 이슬람주의 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가운데 트리폴리에 소재한 리비아 대법원은 2014년 11월 6일자로 6월 총선이 무효라고 선고했다. 대부분의 국제사회는 투브루크로 피난간 새 정부를 리비아의 합법정부로 보고 있다. 이 가운데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집단인 이슬람 국가가 리비아에서 세력을 확장하는 중이다.

현재 유엔의 중재로 단일정부 구성을 위한 협의가 진행되고 있으나 이행 여부는 불확실하다.

내전으로 인해 리비아를 떠나 유럽으로 피난하는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작은 배에 수백명이 올라타 지중해를 건너다 배가 침몰해 탑승자가 수장당하는 사고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배 안에서 난민들간의 종교, 지역 갈등으로 살해와 폭행, 감금도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지리[편집]

리비아는 이집트, 튀니지, 알제리, 수단, 차드, 니제르와 국경을 접한다. 리비아의 전체 면적은 1,759,540km2로 세계에서 17번째로 큰 나라이다. 리비아는 인도네시아보다 조금 작으며 어림 잡아 미국 알래스카주와 같은 크기이다. 북쪽으로 지중해와 마주하며 남동쪽으로는 니제르, 서쪽으로는 튀니지, 알제리와 접한다.

리비아는 지중해에 인접한 아프리카 국가중 해안선이 가장 길다.(전체 해안선 길이만 1,770 km에 이른다.) 사막의 열풍이 불어서 피해가 나기도 하는데 리비아에서는 이를 기블리(gibli)라고 부른다. 기블리는 봄과 가을에 하루~4일에 걸쳐 가끔 불어오는데, 이는 사하라 사막 일대에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오아시스도 전역에 흩어져 있으며 가장 중요한 식수 공급처이다.

대부분의 지역은 사막과 흡사한 기후가 나타나며 아주 건조하다. 하지만 바다에 면한 북쪽 지방은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를 누릴 수 있다.

인구[편집]

아랍인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남부에 소수의 베르베르인이 살고 있다. 리비아는 이슬람교가 국교이며 아랍어가 사용된다. 이탈리아인은 카다피가 집권하기 시작한 1969년 이후 대부분이 본국으로 철수했다. 아랍인, 베르베르인 뿐만 아니라 흑인을 비롯한 다른 민족들도 소수 거주한다. 공용어는 아랍어이다. 외국어로는 주로 영어가 쓰이나,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은 까닭으로 이탈리아어도 사용된다. 주민의 80%가 농경, 목축, 유목으로 생활하고 있었으나 석유가 채굴되기 시작하면서부터 도시로 유출하는 경향이 생겨 도시 노동자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각주[편집]

  1. 무아마르 알 카다피〉, 《위키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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