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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프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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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프리츠(Max Friz)
BMW 엔진 디자이너
비엠더블유(BMW, Bayerische Motoren Werke)

막스 프리츠(Max Friz)는 독일의 기계 엔지니어이며 엔진디자인에 전력했던 인물이다. 1917년에 BMW(Bayerische Motoren Werke AG)의 창립을 이끌었던 사람이고 엔진 디자인과 혁신에서 큰 기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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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편집]

막스 프리츠는 1883년 10월 1일에 바덴 뷔르템베르크(Baden-Württemberg)주 로이트링겐(Reutlingen)시 산하의 우가(Urach)타운에서 출생하였으며 1898년부터 칸슈타트(Cannstatt)에 있는 쿤 스팀 엔진 컴퍼니(Kuhn steam engine company)에서 수습생으로 일하다가 1902년에 슈투트가르트_에슬링겐(Stuttgart-Esslingen)에 있는 로얄 빌딩 트레이드 스쿨(Royal Building Trade School)에 진학하여 엔지니어링 스킬을 키웠다. 1906년에 다임러모터스회사(Daimler Motoren Gesellschaft 약칭 DMG)에 취직하여 디자인오피스에서 근무하였으며 1914년에 출시한 경주용차 메르세데스 그랑프리(Mercedes Grand Prix)의 엔진 주요 디자이너로 역할하였다.

1912년부터 1913년 사이에 오스트리아에 있는 DMG의 자회사 아우스트로_다임러(Austro-Daimler)에서 독일 첫 번째로 실용화 항공기엔진 디자인에 성공하였으며 1916년말에 다임러모터스를 떠나 뮌헨에 있는 기계 엔진 디자인 회사 랩 모토렌베아크(Rapp Motorenwerke GmbH)에서 항공기엔진 개발을 주관하였다.

항공기 엔진은 높은 해발고도에서 작동하고 내구성이 뛰어나야 하며 공기역학 성능이 좋아야 하는 성능이 필수적이며 전통적인 방식의 엔진이 3,000m 고공에서 작동이 멈춰서는 문제가 있기에 조종사에 있어서 엔진 작동이 가능한 해발고도는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1917년 봄, 항공기엔진을 개발하는 와중에 랩 모토렌베아크는 독일 육군고급사령부에서 보낸 통보를 접수하개 되었으며 그 내역은 몇 개 회사의 항공기와 항공기엔진 모델을 선택하여 라이선스 조건으로 생산하라는데 있었다. 그 뒤 국방군위원회에서 공장심사를 나왔으며 랩 모토렌베아크는 뮌헨에서 미래에 생산해야 하는 라이선스 생산 품목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 때 공장관리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던 프란츠 요세프 포프(Franz Josef Popp)는 막스 프리츠의 도면에 존재하는 신규 엔진을 공장심사관한테 소개하였으며 이에 관심을 가진 심사관은 랩 모토렌베아크가 단순한 조립공장으로 역할하라는 말을 더 꺼내지 않았다. 국방군측에서도 신규 엔진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프로토타입 개발단계에 벌써 600대 엔진 주문을 내놓았다. 랩 모토렌베아크는 프리츠가 개발하는 항공기엔진의 덕으로 거의 하룻밤 사이에 전쟁준비에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기업으로 되었다.

1917년 5월 20일에 랩 모토렌베아크는 BBE로 잠정 프로젝트명을 단 신규 엔진의 구조설계 문건을 등록하였으며 칼 랩(Karl Rapp)의 디자인을 기반으로 프리츠가 설계자로 등록되었다. 직열 6기통 방식의 레이아웃이 적용된 항공기엔진은 최적의 균형을 보증하면서 진동을 대폭도로 줄이어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더 획기적인 것은 기본적으로 간단한 버터플라이식 스로톨(throttle butterfly)을 고공 카뷰레이터(high-altitude carburettor)에 통합시켜 고공에서 엔진이 최대의 출력으로 작동할 수 있게 한 개발이었다. 이 기술을 적용한 항공엔진은 항공기로 하여금 공중격투에서 독특한 우세를 차지하게 하였으며 이로서 수냉식 직열 6기통 엔진 타입Ⅲa(Type IIIa)는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 1919년에 항공 선구자 프란츠 제노 디머(Franz-Zeno Diemer)는 BMW Ⅳa 엔진을 탑재한 항공기로 9,760m 고공에서 비행한 세계기록을 따냈다.

엔진의 성공으로 회사는 급격히 성장하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회사의 신규 구조조정도 필요하게 되었다. 1917년에 랩 모토렌베아크는 사명을 바이어리쉐 모토렌 베르케(Bayerische Motoren Werke GmbH)로 변경하였으며 약칭은 BMW로 하였다. 이가 바로 오늘날 BMW의 전신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뒤 BMW의 항공기 관련 디자인 사업은 금지되었으며 회사의 생존을 해결하는 차원에서 신규 품목의 개발이 급선무로 나섰다. 이 때 막스 프리츠는 모터사이클 시장을 목표로 잡았으며 본인의 디자인을 가지고 엔지니어링 전문가들과 공동으로 R32[1] 모터사이클을 제품으로 출시하였다. 처음에 개발한 박서(boxer 혹은 opposed engine)는 영국 모터사이클 제조업체 더글라스(Douglas)의 설계에 기반한 플랫 트윈 엔진 M2B15이었으며 1921년부터 1922년사이에 대부분 뉘른베르크의 모터사이글 제조사 빅토리아(Victoria)에 납품되고 자사 제품 헬리오스(Helios) 모터사이클에도 적용되면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1922년에 BMW가 공중회사로 전환하면서 막스 프리츠는 막스 프리츠는 회사의 수석 엔지니어와 디자인 총괄로 되어 1937년까지 그 위치에서 역할하였다.

경합금 실린더 헤드가 개발되면서 막스 프리츠는 재차 박서 엔진의 "프레임을 가로 질러"(across the frame)버전을 개발하였으며 1923년에 R32 모터사이클에 탑재하여 프랑스 파리오토쇼에서 데뷔를 추진하였다. R32 모터사이클은 8.5마력 486cc 엔진으로 최고속력 95-100km/h을 낼수 있었으며 파리오토쇼에 온 엔지니어와 소비자들의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R32는 프리츠가 회사를 위해 개발한 두 번째 주요 제품으로 회사가 어려움을 겪는 시절에 회사 부채상환 능력을 유지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1934년에 프리츠는 BMW에서 분사된 BMW-플루크모토렌바오(BMW-Flugmotorenbau GmbH, 항공기엔진공장)의 총괄로 임명되었으며 1937년까지 역할하다가 BMW가 자동차산업에 진출하면서 레오 C. 그라스(Leo C. Grass)의 후임으로 플루크모토렌파브리크 아이제나하(Flugmotorenfabrik Eisenach GmbH)의 총괄을 맡아 자동차 엔진 디자인과 개발을 이끌었다. 1945년에 BMW에서 퇴직하였으며 1954년에 뮌헨첨단기술대학(Munich College of Advanced Technology)에서 발급한 명예박사 칭호를 받았다.

1966년 6월 9일에 막스 프리츠는 바이에른주(Bavaria) 테게른제(Tegernsee) 타운에서 별세하였다.[2]

각주[편집]

  1. "BMW R32", Wikipedia
  2. "Max Friz", Wikipedia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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