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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직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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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직물(綿織物, cotton cloth)은 순면사 또는 면혼방사 등 으로 짠 직물의 총칭이다. 면직(綿織) 또는 면포(綿布)라고도 한다. 면직물은 다른 섬유직물에 비하여 가격이 싼 편이고 땀과 수분을 잘 빨아들여 촉감이 상쾌하기 때문에 실용 직물로서 매우 광범위하게 사용되는데, 특히 각종 셔츠감·시트용 면포와 타월 등은 생활필수품이다. 그러나 착용이나 세탁 시에 구김살이 잘 가고 수축하는 등 형태가 불안정하다는 점으로 인해서 근래에는 합섬직물에 밀리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폴리에스터섬유와 혼방한 피시(P/C) 등 각종 면혼방사의 출현, 타종 섬유와의 교직물, 방추·방축가공 등 특수가공법이 다채롭게 개발되어 앞에 말한 바와 같은 결점은 거의 해결되었다. 천의 가공 여부에 따라 유통거래상 흔히 생지면포와 가공면포로 분류한다. 전자는 직기에서 짜여 나온 후 정련·표백·염색 또는 특수가공 등 전혀 가공이 되지 않은 채 그대로 다음에 후자의 소재로 사용되기 위하여 거래되는 것이고, 후자는 소비단계에서 바로 옷감의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인데, 예를 들어 옥양목이나 포플린 등은 정련·표백된 것이다.

개요[편집]

면직물은 면섬유(무명)로 짠 직물이다. 식물성 섬유 중에서 가장 많이 쓰이며, 부드럽고 질기며, 흡수가 잘 되서 옷, 이불보, 까펫, 식탁보 따위를 만드는 데 많이 쓴다. 종류로는 광목, 모슬린, 옥양목, 플란넬, 코듀로이, 캔버스, 브로케이드, 벨벳 따위가 있다.

인류는 수천 년 동안 목화를 재배해서 면섬유를 짜 옷감으로 이용해왔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면직물은 모든 사람이 실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는 중요한 제품이다. 세계에서 목화 재배를 많이 하는 나라는 중국과 미국이며, 인도, 파키스탄, 우크라이나도 많은 양의 목화를 생산하는데, 이 다섯 나라에서 생산되는 목화가 세계 목화 생산량의 3/4를 차지한다.

역사[편집]

은 일찍이 인도에서 수공업화하여 기원전·후에 페르시아와 그 주변지역, 동남아시아 여러 지역으로 전파되었다. 중국인들이 인도, 동남아시아,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등을 여행하면서 남긴 견문록에 이 지역의 면직물을 지칭하여 백첩포라고 하고 있는데, 이러한 사실이 『삼국사기』, 『한원(翰苑)』 등에 나타나 있다. 면직물로 발견된 유물은 B.C.3,000년 전 고대 인도의 인더스강에서 출토된 금속기에 붙어있는 면직물이 가장 오래된 사례이다.

우리나라에서 면직물의 기원은 일반적으로 고려 후기 문익점에 의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1326). 그런데 『한원』의 고구려 기사에 '조백첩포(造白疊布)'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 백첩포는 면직물의 이름이다. 또 『삼국사기』에 40승 백첩포를 경문왕 때 당나라에 보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도 역시 면직물 이름이다. 『구당서』에서는 "파리국의 남자는 고패포(고패포)를 입는데 섬세한 것은 백첩이라 하고 거친 것은 고패라고 한다"고 하였다. 고패는 면직물의 옛 이름이고 백첩은 중국인들이 인도,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지역의 면직물을 부르는 이름이다. 결국 우리나라에서는 문익점의 면종자 반입 이전에 면직물을 제직한 셈인데 섬유의 출처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지금으로부터 2000여 년 전 인도면은 동남아시아 각 지역과 오늘날 중국의 남부 지역 민남, 강남 지역에 들어와 있었으며 당시에 우리나라와 동남아시아, 중국의 남부 지역과는 해상 교통이 이루어졌던 역사적 증거가 많으니 면의 유통이 있었으리라고 가정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면직물은 무명, 광목, 옥양목이다. 각종 고문헌에는 우리나라의 면직물이 면포(綿布), 목(목, 옥양목, 관목, 청목, 홍목, 흑목) 등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무명이라는 기록도 있다.

문익점의 장인 정천익이 목화 재배에 성공하고 그 뒤 호승(胡僧) 홍원(弘願)에게 직조기술을 배워 가비에게 한필의 직물을 짜게 하여 면직물 재직을 시작한 뒤 10년도 못되어 이 직물이 전국으로 퍼지게 되었는데, 공양왕 3년(1391)에는 백성에게 값비싼 비단 대신 무명을 쓰라는 영을 내렸다는 『고려사절요』의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 태종 1년(1401)에는 백성 상하가 다 무명옷을 입었다는 『태종실록』의 기록도 전한다. 조선시대(태조연간)에는 면직물이 일본으로 수출되는 품목에 들어있고, 세종 즉위년(1418)에는 1,539필이던 것이 차차 늘어 세종 5년(1423)에는 2,640필의 면포가 일본에 수출되었다는 『세종실록』의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 면포는 당시 일본에서는 고가의 사치품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19세기에 이르러 영국의 산업혁명 결과 기계직 면포를 대량생산하게 되면서 그 면포가 우리나라에 수입되기에 이른다.

1917년에는 부산에 조선방직주식회사가, 1919년에는 영등포에 경성 방직주식회사가 설립되었다. 이리하여 폭이 넓은 역직기의 면직물이 많아짐에 따라 베틀로 농가에서 자급자족하던 무명의 제직은 점점 쇠퇴하기에 이른다.

표백 면포를 우리나라에서는 '샹목'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서양목(西洋木)의 준말로 '서쪽의 나라에서 들어온 면포'라는 뜻이 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광목이 많이 생산, 판매되었는데 광목은 우리나라 베틀로 잔 소폭의 무명과 비교하여 폭이 넓은 평직으로 짠 면포인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면방직 공장이 설립되어 광목과 옥양목이 대량 생산됨에 따라 우리나라 수직 무명의 제직은 점점 줄게 되어 근래에는 거의 없어지다시피 되었다.

무명은 짧은 섬유를 모아 이어 실을 자아 베틀에서 짜낸 것이므로 자동직기로 짜낸 광목, 옥양목에 비하여 표면의 변화가 풍부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상 옷감에 아주 적합하였으며, 이불, 요, 베겟잇으로 사용하였을 때 광목, 옥양목보다 온화하고 푸근하다. 광목, 옥양목도 근대적인 직물이었다. 특히, 흰 옥양목은 손질을 잘하여 적삼, 치마, 바지 등 옷을 지어 입었는데 오늘날에는 자취를 감추어 가고 있다. 무명, 광목, 옥양목은 흰 것 그대로도 사용하였으나 염색을 하여도 많이 사용하였다.

나주 샛골나이가 무명 길쌈으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샛골은 전남 나주군 다시면 신풍리의 지명이며, 나이는 길쌈이란 뜻이다. 무명은 닷새에서 열닷새까지 짰으며 아홉새만 넘으면 고급이라 하여 주로 남성용 외출복으로 쓰였다.

가공과 판매[편집]

목화를 가공해서 상품으로 팔기까지 그 과정과 방법은 나라마다 다르다. 여기서는 선진공업국에서 주로 사용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조면과 포장

조면이란 씨에서 면섬유를 분리해서 말리고 깨끗하게 한 다음, 면을 곤포(거적이나 새끼로 꾸려 포장하는 것)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씨에서 면섬유를 잡아 씨와 섬유를 분리하는 기계를 조면기라고 한다. 육지면은 면섬유를 잡아 씨와 섬유를 분리하는 톱니조면기로 조면하고, 해도면은 육지면처럼 섬유가 씨에 단단히 붙어 있지 않아, 두 롤러사이로 목화를 통과시켜 섬유와 씨를 분리하는 롤러조면기를 이용한다.

조면기를 이용해 섬유를 씨와 분리한 다음, 특수한 기계로 섬유를 깨끗이 해서 건조한다. 깨끗하게 건조된 섬유는 압축시켜 네모지게 포장해서 철띠로 묶는다. 조면기로 분리한 목화씨는 면실유를 만들거나 가축 사료로 쓰기도 하고, 다시 목화를 기르기 위한 씨앗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분류

수확한 면을 팔기 전에 대개 정부기관에서 면섬유 견본을 검토한다. 대부분 면은 곤포 100개를 한 묶음으로 하는데, 각각의 묶음에서 견본을 뽑아 분류한다.

판매

등급을 매긴 다음 농부들은 중개인에게 면을 판다. 어떤 농부들은 직접 도매업자나 직물공장에 팔기도 하는데, 많은 양은 면을 값비싸게 팔기 위해 생산자조합을 만들어 함께 판매하기도 한다.

면직물의 직조[편집]

목화를 수확해서 조면하여 직물 제조업자에게 팔면, 방적공장에서 그것을 면사로 만들고, 면사는 면직물을 만드는 데 이용된다.

  • 세탁과 혼합

방적공장에서는 먼저 포장된 면을 푸는데, 각각의 곤포에서 나온 면을 잘 섞어 잎사귀, 줄기, 겉껍질 부분을 없애고 깨끗하게 한다. 이 때 엉켜 있는 섬유는 풀고, 보풀은 없앤다. 그런 다음, 롤러를 여러개 지나면서 섬유를 가늘고 얇은 판처럼 곧게 펴서 소면기로 보낸다. 소면기는 얇은판 같은 섬유를 올이 굵고 얼기설기한 실타래로 만들고, 소면기에서 빼낸 실은 실을 빼는 방적기로 보내기 위해서 큰 통에 감는다.

  • 방적

방적에는 세 가지 일이 있다. 먼저 두꺼운 실타래를 가느다란 실로 바꾸고, 섬유를 곧게 편다. 다음에 섬유를 꼬아 실로 만드는데, 먼저 두꺼운 실타래는 연속롤러를 통과하면서 점점 더 가늘어지고, 섬유는 더 반듯해진다. 점점 가늘어진 실타래는 꼬임을 주어 조방사로 만들고, 조방사를 더 잡아늘이고 꼬아서 정방사를 만든다. 이렇게 만든 정방사는 끝과 끝을 묶어 큰 실패에 감는다. 큰 실패에 감긴 정방사에 풀을 먹이려면 실패에서 기계로 실을 푼 다음 큰 통에 든 호료 용액에 담그 는데, 이는 섬유를 강하게 해서 천을 짤 때 실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 실을 말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천을 짜는데, 새롭게 짠 면직물은 잿빛이 나는 흰색이다.

  • 마무리 공정

직물을 만드는 마지막 단계인 이 과정에서는 직물의 더러움을 씻어내고, 염료를 잘 흡수하도록 하얗게 표백한다. 대개 호발,정련,표백,머서가공의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호발은 직물에서 풀기를 없애는 과정이고, 표백은 천을 하얗고 균일한 색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이렇게 표백되거나 고르게 염색된 상태로 직물을 판매한다. 머서가공은 면직물에 수산화나트륨 용액이나 강한 알칼리 용액을 바르는 것인데, 이 과정을 거치면 광택이 더 좋아지고, 염색이 더 고르게 된다. 이와 같은 마무리 공정이 모두 끝나면 실 상태에서 염색되지 않는 직물을 다시 염색한다.

참고자료[편집]

  • 면직물〉, 《두산백과》
  • 면직물〉, 《문화재를 위한 보존 방법론》
  • 면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공부하는 blog, 〈면직물의 역사〉, 《네이버 블로그》, 2017-02-08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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