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요청.png검수요청.png

모스크바

해시넷
이동: 둘러보기, 검색
모스크바 붉은 광장
모스크바 위치

모스크바(러시아어: Москва́, 영어: Moscow)는 러시아수도이다. 인구는 약 1300만 명으로 유럽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이며 세계에서는 4번째로 큰 도시이다. 14세기에서 18세기 초까지 러시아 제국의 수도는 상트페테르부르크였다. 혁명 이후 1918년 러시아의 수도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옮겨왔고 1922년 소련의 탄생과 함께 소련의 수도가 되었다. 1991년 소련의 붕괴 이후 러시아의 수도가 되었다. 영어로는 모스코(Moscow)라고 한다.[1]

개요[편집]

모스크바는 유럽러시아 중부, 오카강 지류인 모스크바강 유역에 자리잡고 있다. 볼가강과 오카강 사이에 있어 수운의 중계지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기 때문에, 일개 한촌(寒村)으로 발족하여 모스크바공국의 수도가 되고, 다시 러시아제국의 수도가 되어 크게 발전하였다. 18세기에 상트페테르부르크(당시는 페테르스부르크)로 수도가 옮겨진 뒤에도 모스크바는 여전히 러시아의 수공업과 상업의 중심지로 계속 발전하였고 역대 황제는 모스크바에서 대관식을 올리는 관례를 지켜 상트페테르부르크와 함께 러시아의 2대 중심지로서의 지위를 유지하여 왔다. 러시아혁명 뒤, 다시 수도가 된 모스크바는 소비에트시대에 정치, 문화, 경제, 교통의 중심지로서 급속한 발전을 거듭하였고 1991년 이후 러시아연방의 수도로서 세계 거대도시의 하나로 꼽힌다. 모스크바는 러시아 최대의 공업도시로 기계 제조가 공업 생산의 절반 이상이다. 자동차, 전기, 공작기계, 제강, 볼 베어링, 복잡한 장치류 등의 대공장이나 화력발전소가 있으며, 직물, 식료품 등의 경공업도 발전하였다. 모스크바는 러시아 최대의 철도, 도로, 항공교통의 중심지이고 학술 문화의 중심지이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를 비롯한 여러 부문의 아카데미, 모스크바 대학교, 다양한 연구소,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극장 등이 있다. 시가의 중심에는 모스크바강 왼편에 크렘린이 있고, 주변에 붉은 광장과 레닌 묘, 바실리 사원 등이 있으므로 시가 중심지가 모스크바의 상징적 풍경이다. 시가 중심에서 사방으로 방사상 도로가 뻗고, 시의 외주를 둥근 원 형태의 환상 도로가 둘러싸며, 그 밖은 숲이 풍부한 공원을 배치했다. 대표적 건물은 크렘린이다.[2]

지리 및 기후[편집]

모스크바는 침엽수림대와 활엽수림대의 경계에 위치하여 부근에서 수공업의 발전을 자극할 만한 원료가 많이 산출되고, 또 부근에 오카강, 볼가강, 드니프로강, 돈강 등과 연결되는 하천수로망이 조밀하여 교통이 편리하다. 그와 같은 자연조건이 모스크바의 발전을 촉진한 하나의 조건이 된다. 모스크바는 평균 해발고도 120m의 지점에 위치하여, 모스크바강의 3단의 하안단구, 남서부의 ‘레닌 구릉’이라고 불리는 해발고도 250m 정도의 고지, 동부의 저지, 북부의 구릉 사면 등 기복이 많은 지형 위에 시가지가 확대, 발달되어 있다.

기후는 심한 대륙성기후이고 해마다 기후변동이 현저하다. 대체로 겨울은 한랭건조하며 길다. 상대적으로 봄, 가을이 짧으며 4월 말부터 기온이 올라가 서서히 여름에 들어선다. 7월이 가장 따뜻하며 이 기간에 비도 많이 내린다. 1월 평균기온 -11℃, 7월 평균기온 19℃이고, 기록상의 최고기온 및 최저기온은 각각 37℃ 및 -42℃였다. 강수량은 연평균 586mm이고, 강수량이 가장 많았던 해에는 834mm, 가장 적었던 해에는 272mm를 기록하였다. 첫눈은 9월 7일에서 11월 7일, 평균 10월 12일에 내리고, 백야현상은 6월 20일이 지난 시기에 가장 현저하다.

역사[편집]

모스크바가 처음으로 러시아의 연대기에 나타나는 것은 1147년이고, 그뒤 지금까지 러시아 역사의 주요무대이자 러시아정교의 구심점이 되어왔다. 1947년 모스크바 창설 800년제(祭)가 베풀어졌다. 그러나 고고학적 유물에 따르면, 그보다 몇 세기 앞선 9∼10세기 이래 그곳에 취락이 존재하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12세기에 수즈달공 Y.V.돌고루키가 오늘날의 크렘린의 기원인 목조 성채를 구축하여, 당시에 이미 도시 기능을 갖추고 있었던 랴잔, 노브고로트 두 도시를 잇는 주요 통상로의 통과지점으로서의 구실을 하였다.

1238년 몽골의 침입으로 거리가 불탔으나, 1271년 다닐공이 이곳을 차지하여 모스크바공국을 세웠다. 이반 1세 시대에 러시아정교의 총주교부가 모스크바로 옮겨오고, 14세기 전반에 모스크바공국이 대공국이 됨으로써 모스크바의 발전은 한층 촉진되었다. 또 모스크바의 발전은 몽골의 침입과 그뒤의 압정(壓政)으로 동부·남부의 러시아인이 대거 모스크바공국에 이주하였다는 점과 모스크바가 북동러시아의 랴잔, 노브고로트 등 여러 도시의 중심에 위치하였다는 점에 크게 힘입고 있다. 14세기 후반에 러시아가 모스크바 대공국을 중심으로 하여 킵차크한국과 싸움을 벌이면서부터 모스크바대공국은 북동러시아 여러 나라 사이에서 중심적인 지위를 인정받게 되었고 따라서 모스크바도 크게 모습이 바뀌어 갔다. 1367년 리투아니아의 침입군을 물리치기 위해 크렘린에 석조성벽이 구축되고 15세기에는 러시아 최대의 도시가 되었다.

15세기에 모스크바대공국의 통일에 따라 모스크바는 전러시아의 수도가 되었으며, 이반 3세가 크렘린에 우스펜스키대성당을 짓고, 크렘린 외곽에 석조성벽을 구축함으로써 콘스탄티노플 함락 뒤에는 제3의 로마로 여기게 되었다. 16세기에 들어와 모스크바는 세 차례의 화재를 입고 시민의 폭동, 타타르의 침입 등이 겹쳤다. 그래서 16세기 말에는 대규모 축성이 이루어졌으나, 동란시대(1604∼1612)에 주민의 폭동과 폴란드군, 카자크인의 점령으로 시가지는 또다시 파괴되었다. 그러나 그 동안에도 러시아의 영토확장과 국내시장의 긴밀화에 힘입어서 모스크바는 팽창을 계속하여 17세기에는 시역이 런던을 능가하게 되고, 중심부에는 장려한 성당과 궁전 및 귀족, 호상의 석조주택 등이 들어섰다. 그러나 당시의 모스크바는 외국인들이 ‘커다란 촌락’이라고 일컬었듯이, 대부분의 건물이 목조의 단층건물이었고, 시내에서 농경이 영위되기도 하였다.

한편 경제적으로도 수공업, 상업 등이 발달하여 전러시아 시장의 중심이 되었으나, 차르의 권력에 기생하는 일부 호상을 제외하고는 자주적인 길드조직, 자치조직 등을 가지지 못하였다. 1712년 러시아의 수도는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겨졌으나 국민경제의 중심지로서의 모스크바의 지위는 표트르 1세가 시 내외에 세운 공장의 발전과 더불어 18세기에는 더욱 확대되어 섬유공업의 발달, 외국무역의 확대를 가져왔다. 한편 최초의 대중극장(1702), 신문(1703), 대학(1755), 문예잡지(1784)의 건설, 발간 등 러시아 문화의 중심지로서의 지위도 흔들리지 않았다.

1811년 28만 명이었던 인구는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점령과 시가지의 소실로 감소되었으나 시가지의 손실은 몇 해 사이에 복구되고 섬유, 금속가공, 화학 등의 공업부문도 건설되어 1863년에는 인구가 35만 2000명이었다. 농노의 해방 뒤에 이루어진 자본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모스크바는 철도교통의 요지가 되었고 러시아 최대의 상업중심지, 상트페테르부르크 다음가는 공업중심지로 발전하여 1899년 인구 100만 명의 거대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급속하게 증가한 노동자 등 도시 하층주민의 생활에 대해서는 정부 당국과 자본가가 다같이 등한히 하고 무관심하여 주택문제, 공중위생문제 등 하층주민의 빈곤에서 오는 도시문제가 급속히 악화되어 갔다.

그리하여 모스크바에서는 노동운동이 급속히 조직화, 대규모화하고 나아가서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더불어 혁명운동의 주요 거점이 되었다. 1917년 11월 혁명에서 8일간의 전투 끝에 승리를 거둔 볼셰비키는 1918년 3월 레닌의 제창에 따라 수도를 모스크바로 옮겼다. 혁명 뒤의 경제위기, 내전 등으로 한때 감소를 보였던 인구는 내전이 종결되자 수도로서의 행정기능의 확대와 공업의 발달 등으로 다시 급격히 증가하여 1926년 202만 6000명, 1939년 413만 7000명에 이르렀다. 그와 같은 급격한 인구증가로 주택환경의 악화가 심화되자 1935년부터 모스크바 개조 10개년 계획을 실시하여 도로, 공원의 확장, 신설과 주택건설 등을 추진함으로써 시가지의 면모를 일신하였다.

종전 뒤인 1947년에는 모스크바 창설 800년제가 열렸다. 한편 인구증가 방지책으로 공장의 신설을 금지하였는데도 인구의 증가 추세가 여전히 격심하여, 1960년에 시역을 1919년 당시 시역의 5배에 해당하는 879㎢로 확대 설정하고 모스크바의 종합개발에 주력하였다. 1960년에 실시한 개발계획에 따라 인접 위성도시들이 모스크바시에 합병되었으며 시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환상도로 안쪽은 주거지역, 공업지역, 녹지대 등으로 구분되어 개발이 추진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늘어나는 도시인구와 토지수요의 심화로 모스크바 시가지는 환상도로 바깥쪽까지 확대되고 있다. 시역의 확대에 따라 행정구역도 1917년 러시아혁명 당시 11개 지역에서 1960년에는 17개, 1980년에는 32개로 늘었다. 각 행정구역의 대표들은 시의회를 구성하여 시예산을 집행하게 된다.

소련 붕괴 후 혼란기에도 타 지역보다는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았기 때문에 2002년에는 1038만을 기록해 인구 천만을 돌파했고 2021년에는 1265만 명으로 늘어나는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또한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 같은 소련 시절 철거됐던 교회 건물들이 복원되기도 했다. 2012년 주변 모스크바 주의 교외 지역을 도시로 합병하여 면적으로 유럽 최대 도시가 되었다.[3]

교통[편집]

모스크바는 각종 교통기관의 요지로 주요 교통노선이 러시아연방 각지와 연결된다. 주요 간선철도가 사방으로 뻗어, 시내에 벨라루스역, 상트페테르부르크역·, 야로슬라블역, 카잔역, 쿠르스크역, 파벨레츠키역, 리가역, 키이우역, 콤소몰리스크역 등이 있다. 정기항공로는 러시아 연방의 100개 이상의 도시, 20개 이상의 외국 수도, 주요도시 사이에 열려 있다. 주요 공항은 도심에서 남서쪽 35km 지점에 있는 브누코보, 북서쪽 32km에 있는 셰레메티에보, 동쪽 35km에 있는 비코보 공항과 도모데도보에 새로이 건설된 대공항 등이다.

수로교통은 1937년 개통된 모스크바운하(길이 128km)에 의해 볼가강과 연결되고 1952년에 개통된 볼가-돈 운하에 의해 5개의 바다 즉 카스피해, 발트해, 백해, 흑해, 아조우해에 연결되어 돈바스에서 모스크바까지 직통 디젤선이 운항된다. 1964년 가을에는 볼가-발트 수로계의 재건이 완료되어,북방의 카렐리아 지방과 콜라반도로부터 화물을 수송하게 되었다. 도로는 서쪽(민스크 방면), 남쪽(심페로폴리 방면), 동쪽(카잔 방면)으로 통하, 사방의 대도시들과 장거리 버스가 운행된다.

모스크바의 지하철은 1935년 소콜리니키, 고리키 두 공원 사이(11.6km)에 처음으로 개통된 뒤, 전철역의 수는 계속 늘어나 트롤리버스와 함께 시내교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모스크바 도심에서 방사상으로 뻗은 간선자동차도로 중 중요한 것은 북서부의 상트페테르부르크 가도로 통하는 고리키 가로, 남서부로 통하는 레닌 가로와 콤소몰리스키 가로, 서부로 통하는 칼리닌 가로 및 북부로 통하는 미르니 가로 등이다. 방사상 가로는 모스크바시 현재의 외곽 경계선이 되고 있는 환상 자동차도로와 입체교차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4]

문화[편집]

극장[편집]

모스크바에는 수십 개의 극장이 있다. 가장 유명한 극장은 1825년에 세워진 볼쇼이 극장이다. 현재 건물은 1856년에 개축됐다. 이 극장에는 연극을 위한 말리 극장이 딸려 있다. 또 다른 유명한 극장으론 배우이자 감독이며 프로듀서였던 콘스탄틴 스타니슬라프스키와 극작가 블라디미르 네미로비치-단첸코가 1898년 세운 아카데믹 극장이 있다. 이 극장은 초기에 안톤 체호프의 공연으로 유명했다. 1980년대 후반 체호프 극장과 막심 고리키 극장으로 분리됐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브라즈초브 인형극장, 모스크바 국영 서커스 극장도 있다. 연주홀로는 차이코프스키 콘서트홀과 두 개의 콘세르바토리홀이 있다.

영화는 모스크바에서 인기있는 엔터테인먼트지만 VCR의 증가와 국내 영화 생산의 감소로 1990년대 초 영화 인기는 떨어졌다. 21세기 초 영화관의 관객은 늘어가고 있지만 소비에트 시대보다 훨씬 적다. 대부분 미국 영화를 상영한다.

박물관[편집]

모스크바에는 다양한 수준의 박물관미술관이 있다. 가장 유명한 박물관은 푸쉬킨 예술 박물관이다. 미술관으론 트레차코프 미술관이 있다. 감정가 파벨 트레차코프가 1856년 개인 소장품을 전시하면서 문을 열었는데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여러 이콘(Icon, 聖畵)을 포함해 이콘 모음으로 유명하다.

그외에 크렘린의 무기 박물관, 붉은 광장의 국립 역사박물관이 있다. 위대한 애국전쟁(2차대전) 중앙 박물관은 1995년 2차대전 전승기념으로 개관한 포클로나야 언덕의 대형 기념물의 일부다.

공원과 광장[편집]

모스크바에는 공원광장도 많다. 모스크바강 오른쪽 둑을 따라 고리키 중앙 문화 공원이 있는데 시내에 가깝고 유원지가 있다. 시 동부의 이즈마일로프스키 공원은 넓이가 1,200ha다.

도심 북쪽에는 몇몇 도시 정원 중 하나인 과학아카데미 식물원이 있다. 시 서쪽에는 모스크바 동물원이 있다. 모스크바 북서쪽 힘키 저수지에서는 보트 및 수상 스포츠를 할 수 있다.[5]

관광[편집]

500년 역사를 가진 모스크바는 그 시가지가 수목의 연륜처럼 환상으로 발전하였다. 그 환상시가지의 핵이 되고 있는 것이 크렘린이다. 크렘린을 중심으로 시가지의 주요 간선도로가 크고 작은 환상도로와 방사상 도로망으로 뻗어 있고 모스크바강이 북서쪽에서 남서쪽 방향으로 흘러 시가지를 통과한다. 시 안쪽으로부터 가든환상대로, 모스크바 소환상철도, 모스크바 환상대로가 시가지 확대와 함께 건설되었다. 시 외곽의 모스크바 환상대로는 실제적인 시 경계가 되며, 그 바깥쪽은 대부분 녹지대로 조성되어 있다.

크렘린은 모스크바시의 발상지이자 요새로서, 시의 중심이자 러시아 역사의 구심점이었다. 특히 주위에는 붉은광장, 레닌영묘, 국립박물관, 국립극장 등 주요 건축물들이 산재하여 러시아와 옛 소련의 힘과 권위의 상징이었다. 오늘날에는 주위에 벽돌성벽이 쌓여지고 그 위에 20개의 탑이 서 있다. 성벽 안에 대크렘린 궁전(15∼16세기 건립)을 비롯한 우스펜스키성당(15세기), 블라고베시첸스키대성당(15세기), 아르항겔리스키성당(16세기) 등 역사적 건축물에서 현대건축물에 이르기까지의 각종 건축물이 있다. 크렘린 동쪽 성벽 앞에 붉은광장이 있어 혁명기념일 행사 등 국민적 제전의 식장으로 사용된다. 광장 남단에 상크트바실리대성당, 북단에 역사박물관, 동쪽에 국립백화점이 있고, 크렘린 성벽 쪽에 레닌 묘가 있다.

15∼16세기 초에 모스크바의 확대에 따라 시가지를 둘러싸는 성벽이 차례로 축조되었으나, 18∼19세기에는 성벽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반원형의 불레바르 환상가로와 그 바깥쪽의 사도브이 환상가로를 만들었다. 그 무렵의 모스크바는 도시계획으로 이루어진 상트페테르부르크와는 대조적으로, 무질서한 가로와 허술한 목조건물들이 러시아적인 모습을 드러내어, 외국인으로부터 ‘커다란 촌락’이라고 일컬어졌다. 그러나 1935년부터 모스크바 개조계획이 실시되어 노후가옥의 정리, 도로의 확장, 시가지의 녹화, 주택건설 등의 추진으로 모스크바의 경관은 크게 달라졌다.[6]

지도[편집]

러시아유럽 행정 지도
※ 지도 위 글자를 클릭하면 해당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Grayball.png
Grayball.png
러시아 행정 가로 지도
※ 지도 위 글자를 클릭하면 해당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Grayball.png
Grayball.png
Grayball.png
Grayball.png
Grayball.png
Grayball.png
Grayball.png
Grayball.png
Grayball.png
Grayball.png
삼각형 검정.png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모스크바〉, 《위키백과》
  2. 모스크바(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모스크바〉, 《요다위키》
  4. 모스크바의 교통(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5. 모스크바(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6. 모스크바〉, 《나무위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러시아유럽 같이 보기[편집]

러시아유럽 행정구역
러시아유럽 도시
러시아유럽 바다
러시아유럽 지리
러시아유럽 문화
러시아유럽 주변 지역


  검수요청.png검수요청.png 이 모스크바 문서는 유럽 도시에 관한 글로서 검토가 필요합니다. 위키 문서는 누구든지 자유롭게 편집할 수 있습니다. [편집]을 눌러 문서 내용을 검토·수정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