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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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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산

문학산(文鶴山)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와 연수구의 경계가 되는 높이 해발 217m의 이다.

개요[편집]

  • 문학산은 정상을 중심으로 서쪽의 연경산과 노적봉, 동쪽의 수리봉과 선유봉(길마산) 등을 포함한 산줄기를 가리킨다. 동서로 길게 이어지는 산줄기를 이으면 길이가 5km 정도로 등산 코스가 다양하고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인천시민들이 사랑하고 자주 오르는 산이다. 북서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학익동, 문학동, 선학동, 연수동, 청학동, 옥련동에 접해 있다. 진입로가 많지만 선학역에서 시작하여 법주사 옆길로 길마산을 향해 오르는 방법, 학익동 백학초등학교에서부터 연경산 쪽으로 오르는 방법, 옥련국제사격장이나 송도역에서 시작하여 노적봉 방향으로 오르는 방법 등이 많이 이용된다. 선학역에서 송도역으로 이어지는 긴 능선은 연수둘레길의 일부로 지정되어 있다. 정상부에는 군사시설이 위치하여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되었으나 2013년에 병력이 철수하였고, 2015년 10월 15일부터 주간에 한해 시민에게 개방되고 있다.[1]
  • 문학산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와 연수구를 경계로 하는 산이며 높이는 해발 217m에 이른다. 또한 이곳에는 문학산성도 같이 있으며, 아울러 제2경인고속도로와 바로 접속이 가능한 문학 나들목이 있다. 문학산은 길마산, 수리봉, 문학산정상, 연경산, 서달산 등이 동에서 서쪽으로 길게 이어져 산맥을 이루고 있어 인천광역시 연수구의 지붕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산이다. 이곳은 등산 코스만 대여섯 개 정도가 있어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또한 생활주거지와 인접해 있어 마실 가듯 산을 오를 수 있으며, 연수구와 미추홀구를 품고 있는 산이다.[2]
  • 문학산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文鶴洞)에 있는 산이며 높이 217m이다. 학산 또는 남산(南山)이라고도 한다. 이 일대에서 선사시대 유물인 고인돌[支石墓]를 비롯하여 돌도끼 ·돌화살 등 신석기시대 유물이 발견되었고 백제 때의 유적인 문학산성이 남아 있다. 또 고려시대의 문학사지(文鶴寺址), 조선 전기 건물인 문학 문묘(文廟)와 인천부청사(仁川府廳舍)의 일부가 남아 있다. 그 밖에 학산서원지 ·안관당지(安官堂址)· 사모지고개·술바위 등이 등이 있다.[3]
  • 문학산은 학산 또는 남산(南山)이라고도 한다. 예전엔 배꼽산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었다. 산봉우리가 마치 사람이 배꼽을 내놓고 누워 있는 모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배꼽 모양이 없어졌을 뿐 아니라 옛날 산 형태를 기억하는 이들도 줄어 문학산으로 통칭되고 있다. 문학산에는 신라 때의 유적인 문학산성, 고려 시대의 문학사지(文鶴寺址), 조선 전기 건물인 문학 문묘(文廟)와 인천부청사(仁川府廳舍)의 일부가 남아 있다. 그 밖에 학산서원지 ·안관당지(安官堂址) 등이 있다. 문학산은 미추홀 왕국의 발상지로서 유서 깊은 역사의 고장이기도 하다. 인천도호부청사가 있고 인천향교를 비롯해 지방지정 기념물인 문학산성, 학산 서원터, 하늘에 제를 올리던 수천현 고개, 삼호현(三呼峴:능허대를 거쳐 중국으로 떠나는 사신일행을 전송하던 고개로 전송객이 이별을 아쉬워하며 사신일행을 크게 세 번 불렀다는 곳)이 있으며 600년생 은행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 문화유적의 고도(古都)이다. 문학산의 정상은 산의 동남부에 위치한 군사지역이며, 산지의 서쪽 봉우리는 연경산으로 정상부에 ‘연경정’이 있다. 정상부 및 남서쪽은 군사지역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산의 북쪽은 제2경인고속도로 관통, 동쪽은 월드컵을 대비한 문학종합경기장이 건설되어 있다.

문학산의 명칭 유래[편집]

  • 조선 전기 관찬 지리지인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 문학산이라는 명칭은 보이지 않고, 남산(南山)이라고만 기록되어 있어 이 때까지는 앞산이라는 의미에서 남산으로 불렸음을 알 수 있다. 또, 민간에서는 정상의 봉수대가 드러누운 사람의 배꼽처럼 보인다고 하여 배꼽산이라 불리기도 했으나 현재는 남산, 배꼽산 모두 쓰이지 않고 문학산이라고만 불린다.
  • 문학산은 원래 '학산(鶴山)'이라고 하던 것을 근처 문묘(文廟)에서 '문(文)'자를 따와 문학산으로 부르게 된 것인데, '학산'이라는 명칭은 이 산에 학이 많이 살았기 때문이라거나 산세가 날개를 펼친 학의 모양을 닮아서라는 설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 숙종이 인천서원에 편액을 내리면서 학산서원으로 이름이 바뀐 것이 유래라는 설도 널리 퍼져 있었으나, 학산서원 건립 이전의 한시에서도 학산이라고 칭한 것이 발견되면서 이 설은 현재 폐기되었다. 그 외에 '학산'이 언어학적으로 '두룸산'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두룸은 '두르다'의 옛말인 '두루다'의 명사형이므로 두룸산은 '(마을을) 둘러싼 산'이라는 뜻이며, 이와 비슷한 지명으로 두륜산, 대둔산, 지리산의 이칭인 두류산 등이 있다. 두룸을 한자로 옮기면서 '두루미 학(鶴)' 자를 취하여 훈차 하였을 뿐 조류인 두루미와는 관계가 없다는 설명이다.
  • 비교적 덜 알려졌으나 또 다른 언어학적 설명으로 이 부근에서 이뤄졌던 조개잡이와 관련짓는 설이 있다. 19세기 말 이후 간척이 진행되기 전까지 학익동 일대는 바다에서 가까웠고, 조개가 많이 잡혀 합골(蛤谷)이라고 불렸는데 합골이 햇골, 핵굴 등으로 변형되어 학산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옥련동에 지금도 남아있는 조개고개라는 지명을 그 근거로 들기도 한다.
  • 유래가 어찌 되었든 '문학'이라는 이름은 문학동, 학익동, 선학동, 청학동 등 주변 지명에 영향을 미쳤으며, 인천의 시조(市鳥)는 두루미이고, 2017년까지 시의 마스코트도 두루미 캐릭터였다. 또한, 프로야구단 SSG 랜더스의 홈 구장인 인천문학경기장의 명칭이 여기서 유래한다.

문학산의 관광 안내[편집]

"학이 날개를 펴고 앉은 것 같다“ 하여 붙여진 해발 217m의 문학산은 인천도호부 관아의 남쪽에 위치했다 하여 '남산(南山)'이라고도 하고, 봉수대가 있어 그 모양이 마치 배꼽 같다 하여 '배꼽산'이라고도 했다. 고대 왕국이었던 미추홀의 진산이지만 1965년부터 50여 년간 군부대가 주둔한 이유로 정상에 오를 수 없었지만 2015년 10월 15일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 미추홀구와 연수구에 걸쳐 있으며 문학산 정상에 오르면 서울의 남산과 인왕산, 북한산까지 보인다. 50년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채 보존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은 인천의 산소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주변 관광지로는 문학 장미공원, 문학경기장, 인천 도호부 관아가 있다.

  • 1코스 : 문학산을 오르는 대표적인 코스는 남구 학익동 공군부대 정문 쪽으로 올라가 옥련동 시립 사격장 쪽으로 내려오는 길이다. 능선을 따라 걷는 길이라 별로 험한 편은 아니다. 노약자나 어린이들도 쉽게 등반할 수 있다. 꼭대기에 올라가면 팔각정이 있다.(총연장 2.3km, 소요시간 2시간)
  • 2코스 : 남구 무당마을에서 시작하는 등산코스는 약간 힘들다. 가파르기도 하려니와 길을 찾기도 힘들어서 사람들의 왕래가 많지 않다. 무당마을을 지나 서해안 고속도로를 가로지르는 육교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산을 타게 된다. 연수구 선학동 쪽으로 내려온다.(총연장 1. 8km, 소요시간 1시간)

문학산성(文鶴山城)[편집]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의 문학산(文鶴山)에 있는 백제 시대의 테뫼식 석성(石城)이다. 1986년 12월 18일 인천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1986년 12월 18일 인천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인천광역시의 진산(鎭山)인 문학산(높이 213m, 학산 또는 남산이라고도 함) 정상부에 축조되었으며 미추홀 고성(彌鄒忽古城), 남산성(南山城) 등으로도 불린다.
  • 《동사강목(東史綱目)》, 《여지도서(輿地圖書)》 등에 따르면 이곳은 고구려 동명왕의 둘째아들 비류(沸流)가 조성한 도읍지로서 석성터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도 백제 시조 온조왕의 형인 비류가 이곳에 정착하여 미추홀(彌鄒忽)이라고 명명한 기록이 있는데, 이것이 인천광역시의 최초의 명칭이라 할 수 있다.
  • 문학산성의 축조형식은 테뫼식으로 내·외성으로 되어 있으며, 성에는 봉수대가 있었다. 성의 둘레는 총 577m로서 현존하는 부분은 339m이고,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부분은 220m이다. 전 구간이 거친 마름돌로 이루어졌다. 성석은 층마다 수평을 이루고 뒤로 올라가면서 조금씩 퇴물림을 하였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문학산〉, 《나무위키》
  2. 문학산〉, 《위키백과》
  3. 문학산(文鶴山)〉, 《두산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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