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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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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산

백련산(白蓮山)은 서울특별시 은평구와 서대문구에 있는 이다, 백련사라는 절이 위치해 있으며, 정상에 팔각정이 있다.[1]

개요[편집]

  • 백련산은 서울 서대문구와 은평구 사이에 있는 해발 215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으로 북한산 향로봉에서 탕춘대 능선을 따라서 이어지는 산줄기가 끝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줄기는 남가좌동과 모래내를 지나 성산동에서 한강과 만난다. 백련산 양쪽으로는 북한산에서 발원한 홍제천과 불광천이 흐른다. 등산객들이 찾는 큰 산이라기보다는 동네 뒷산으로 공원 역할을 하고 있는 작은 산이다. 백련산에는 통일신라시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백련사라는 사찰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에서 양반들이 매사냥을 즐겼다고 하여 응봉이라 불렀다고 한다. 백련산을 산책하는 길을 여러 길이 있지만, 대체로 백련사 주변에서 정상에 세워진 은평정까지 약 1.4km의 등산로를 많이 이용한다. 해발 215m로 높지 않은 산이기 때문에 산책하기에 좋은 정상에 세어진 정자인 은평정에 올라서면 불광천 주변 은평구와 멀리 상암동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 백련산 정상(높이 215.5m)에서 능선을 경계로 서대문구와 은평구로 나누고 있으며 백련산은 동남쪽에 백련사(白蓮寺)라는 절이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예부터 동쪽의 청련사(靑蓮寺), 남쪽의 삼막사(三幕寺), 북쪽의 승가사(僧伽寺)와 함께 서백련(西白蓮)으로서 도성의 4대 비보사찰(裨補寺刹) 가운데 하나로 전해지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 절의 서쪽에 있어서 '西方淨 淨土寺'라고 하였는데, 어느 여름날 연못에서 갑자기 하얀 연꽃이 피어올라 백련사라 명칭을 바꾸었다고 한다. 백련산 정상(높이 215.5m) 등산로 주변에 체력단련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고 있다.
  • 백련산은 서울 서대문구와 은평구 사이에 있는 해발 215m의 산으로 북한산과 안산 사이에 자리한 아담한 동네 뒷산이다. 백련산의 가장 큰 매력은 두 구(區) 지역을 지나는 긴 능선이다. 거칠지 않고 완만한 능선길이 오르락내리락 이어져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산으로, 안산의 편안함과 북한산의 산행 기분을 모두 누릴 수 있어 좋다. 서울시와 사단법인 생명의 숲이 '초록숲길(Green Trails)'로 지정할 만한 곳이다. 산자락엔 이 산 이름을 유래한 고찰 백련사라는 절도 있다. 옛날 백련산은 응봉(매鷹, 봉우리 峰)이라고도 불렀는데, 왕족들이 매를 날리며 사냥을 즐겼던 곳이었다고 한다. 당시엔 응봉의 상징 매바위가 있었는데 도시화와 더불어 그 흔적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를 아쉬워한 주민들은 은평정 아래 바위들 가운데 매와 비슷한 모양의 바위를 매바위라 명명하고 매년 '매바위 축제'도 한다. 백련산 아래 은평구 응암1동은 매사냥을 하던 포수들이 쉬어가는 마을이라 하여 '포수마을'이란 이름이 남아 있다.[2]
  • 백련산은 서울특별시 은평구 응암동과 서대문구 홍은동에 걸쳐 있는 산이다. 서울시 서대문구와 은평구 사이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215m이다. 백련산이라는 이름은 서대문구 홍은동에 있는 백련사(白蓮寺)에서 유래되었다. 백련산은 응봉(鷹峰)이라고도 불렀는데 조선시대 왕족들이 백련산 바위에서 매사냥을 즐겼다고 전해진다. 현재 매사냥을 즐겼던 바위는 남아있지 않지만, 매바위라는 이름의 바위를 최근에 다시 지정하여 명명하였다고 한다.[3]

백련산의 명칭 유래[편집]

  • 백련사는 신라시대에 창건한 사찰이며 747년(경덕왕 6)에 진표(眞表)율사가 창건한 것이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바로 재건하였는데, 원래 이름은 정토사였다가 1399년 어느 여름날 연못에 하얀 연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보고 백련사라고 변경하였다. 백련사에는 수령 500년의 해동목(음나무)이 있는데, 세조의 딸 의숙공주가 20세 때 과부가 된 뒤 비통한 심정을 달래려고 돌아다니다가 이 나무를 보고 인생을 깨달았다고 한다. 1990년 백련산 일대 공원이 조성되었으며 산책로와 휴양시설이 설치되었다.

백련사(白蓮寺)[편집]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은3동 백련산 남쪽 기슭에 있는 절이다. 한국불교태고종에 속한다. 747년(경덕왕 6)에 진표가 창건하여 정토사라 하였고, 그 뒤 고려시대까지는 어떻게 변천하였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1399년(정종 원년)에 무학(無學) 자초(自超)의 지시로 함허가 중창하였다. 1413년(태종 13)에는 상왕인 정종이 요양차 이 절에 머물렀다. 세조 때 의숙옹주의 묘가 백련산 밑에 있어 이 절을 재궁으로 정하고 백련사로 이름을 고쳤다.
  •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절이 불타버렸으나 곧 중건하였고, 1636년 병자호란으로 승도들이 다 흩어지고 건물이 퇴락하였으나 1662년(현종 3)에 다시 법당을 세웠다. 1701년(숙종 27)에 화재로 불타버렸으며 다음 해에 다시 지었고, 1774년(영조 50)에는 낙창군 이탱의 시주로 중창하였다. 1891년(고종 28) 경운이 법당과 여러 전각을 다시 짓고 1911년 명부전을 중수하였으며, 1914년 서옹이 삼성전을 중건하고 1917년에 서옹이 사무실을 신축하였다.
  •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무량수전, 약사전, 명부전, 관음전, 삼성전, 산신각, 독성각, 범종각, 요사채 등이다. 예로부터 동쪽의 청련사, 남쪽의 삼막사, 북쪽의 승가사와 함께 서백련으로서 도성의 4대 비보사찰에 속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백련사로[편집]

  • 은평구 응암동 충암고앞 삼거리에서 시작해 은평구청 사거리에서 서오릉로와 직결되는 2~4차로 도로이다. 사실상 전 구간이 응암동에 속하며, 서오릉로 방면으로 볼 때 우측에 백련산이 있다.
  • 긴 도로는 아니지만(1.7km) 상당히 애매한 거리이기도 하고 직결되는 도로인 서오릉로와는 도로의 성격도 많이 달라 서오릉로의 연장으로 도로명주소가 만들어지진 않았다. 응암동 특유의 도로 때문에 골목길은 매우 많지만 사실상 규모가 큰 도로와 접속하는 것은 시작점인 가좌로와 종점인 은평로밖에 없다. 응암2동의 중심을 관통하는 도로이며 도로 양옆엔 지속적인 재개발로 은평구 내에서 대단위 아파트가 은평뉴타운 다음으로 많이 몰려있음에도 대부분 구간이 왕복 2차선이라서 정체가 심각하고, 시내버스에도 승객이 굉장히 많이 몰린다.

관련 기사[편집]

  • 교차로 신호체계를 두고 3년간 이어져온 서울 은평구 응암동 백련산 힐스테이트 2∙3차 주민과 4차 주민 사이의 갈등이 2023년 1월이면 서울경찰청의 심의를 통해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교차로 직진 금지를 결정했던 경찰의 판단은 지난 3년간 2∙3차 주민들에게 불편을 안겨줬다. 이곳 교차로 신호체계가 처음부터 백련산 힐스테이트 2∙3차 주민의 직진을 금지했던 것은 아니다. 힐스테이트 2∙3차에서 응암초등학교 후문으로 향하는 길은 재개발 이전엔 차량 1대 정도 다닐 수 있는 주택가 골목길이었다. 지금과 같은 길로 바뀐 건 현재 백련산 힐스테이트 4차를 조성하기 위해 진행된 응암1 주택재건축 정비사업당시 부지 일부를 은평구청에 기부채납을 하면서다. 좁은 골목길이 토지 기부채납으로 도로 폭이 늘어났고 현재와 같이 왕복 2차선 도로로 확장할 수 있었다. 교통영향평가를 모두 살펴보면 현재 기준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교차로의 신호체계는 백련산 힐스테이트 2∙3차 정문에서 직진을 허용토록 하고 있다. 백련산 힐스테이트 4차가 준공 여부와 관계없이 2∙3차 주민들은 정문에서 직진을 할 수 있도록 나타나 있다. 관습으로 직진이 허용되는 게 아니라 노면에 직진을 허용하도록 표기가 되어있다. 이 요청에 대해 교통안전시설 심의 조서를 통해 서부서는 "백련산로 힐스테이트2∙3차 앞 교차로는 교차로 구조상 정사각형이 아닌 직사각형 형태로 심한 경사도 및 어린이보호구역 등으로 직진 운영 시 교차로 구조상 교통사고 위험이 높다"고 교차로 구간을 해설했다.[4]
  • 6개월마다 1억 원씩 오른 이유를 단지 주변에서 찾아볼 순 없었다. 공급량이 2,500여 세대나 됐으니 가격이 떨어지는 게 더 합리적이었다. '응암동에 공급이 한 번에 풀렸다면 입주가 시작된 시점부터 가격이 조금 안정되지 않았을까.' 궁금증을 품은 채 은평로와 백련산로가 맞닿은 곳까지 걸었다. 은평구에서 가장 높은 산인 백련산의 고도는 288m다. 백련산으로부터 내려오는 산등성이는 2010년대가 시작되면서 지금까지 새로운 아파트로 채워지고 있다. 오르막과 내리막으로 끊임없이 연결되는 이 길을 걸으면 나머지 응암동 일대가 내려다보일 것 같았다. 방향을 남쪽으로 틀었다. 백련산로를 오르기로 했다. 백련산로에는 차가 많이 다니지 않았다. 프랜차이즈가 아닌 일반 슈퍼마켓과 교회가 대로에 있는 아담하게 살기 좋은, 조용한 동네였다. 길을 더 따라 걸었다. 촘촘하게 있던 주택가가 어느새 사라지고 아파트 단지와 신축 빌라가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응암11구역을 재개발한 아파트 단지의 한쪽에는 신축빌라 단지가 들어서 있었다. 잔여 세대를 분양하고 있다는 현수막이 커다랗게 붙어 있었다. 재개발한 아파트 단지를 지나자 넓게 정비한 내리막 도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늘 없는 도로에 햇빛이 뜨거워 보였다. 빛만 뜨겁게 내리쬐었다. 백련산로부터 응암로까지 이어지는 도로는 가파른 언덕길이었다. 내리막도로를 따라 양옆으로 새로 생긴 아파트 단지가 자리 잡았고 다른 한쪽에는 빌라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백련산로의 끄트머리에 다다랐다. 은평구의 끝이기도 했다. 완만한 경사로 내리막이 이어지는 이곳에는 2028년이면 서부선 경전철이 운행을 시작한다. 30분 넘게 걸어온 백련산로에는 이해할 수 없는 부동산 거래기록과 부동산 정책에 기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5]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백련산〉, 《위키백과》
  2. 김종성 시민기자, 〈우리 동네 건강검진센터 ‘초록숲길 백련산’〉, 《내 손안에 서울》, 2016-11-10
  3. 백련산(白蓮山)〉, 《두산백과》
  4. 정민구 기자, 〈은평구 백련산 힐스테이트 교차로는 왜 직진이 금지됐을까?〉, 《은평시민신문》, 2023-01-02
  5. 최아름 기자, 〈은평구 백련산로 2.6㎞ 걸어보니, 공급 안 먹히고 정책 안 통했다〉, 《더스쿠프》, 2020-08-05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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