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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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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티(Bugatti)
부가티(Bugatti)
폭스바겐(Volkswagen)

부가티(Bugatti, 布加迪)는 이탈리아 밀라노 태생의 프랑스인 에토레 부가티(Ettore Bugatti)가 1909년에 설립한 프랑스의 최고급 고성능 수공 자동차 제조업체이다. 현재 독일의 폭스바겐(Volkswagen) 그룹 산하에 있으며 본사는 프랑스 알자스의 소도시인 몰샤임(Molsheim)에 위치해 있다. 중국어로는 뿌지아디(布加迪, bù jiā dí)라고 부른다. 과거에는 초고성능 경주차에서 최고급 세단까지 각종 최고급 자동차를 생산했으며 현재는 하이퍼카를 전문으로 생산한다.[1] 이탈리아의 기업가 로마노 아르티올리(Romano Artioli)는 1987년에 부가티 브랜드를 인수했고 부가티 오토모빌리(Bugatti Automobili SpA)를 설립했다. 폭스바겐은 1998년 6월 부가티 상표를 구매했고 1999년 부가티 자동차 S.A.S를 법인화했다.[2] 현재 CEO는 스테판 빈켈만(Stephan Winkelmann)이다.[3]

2019년 3월에는 스위스 제네바 팔렉스포 전시장에서 개막한 제 89회 제네바 모터쇼에서 브랜드 11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신차 '라 부아튀르 누와르'(La Voiture Noire·검은 차)를 공개했다. 모터쇼에서 공개되기도 전에 약 1890만 달러(약 213억원)에 팔려 라 부아튀르 누와르는 1300만 달러(146억원)에 팔린 롤스로이스스웹테일(Sweptail)을 넘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차가 됐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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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이탈리아 태생의 프랑스인 엔지니어 에토레 부가티가 설립한 자동차 회사이다. 당시 독보적인 최고급 차량을 생산했으나, 시장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지나치게 비싸고 사치스러운 모델만 생산했기 때문에 2번의 우여곡절을 겪고 이스파노-수이자와 폭스바겐 그룹에 팔려 다니곤 했다.

그것도 대부분의 자동차 회사 인수처럼 사원은 그대로 있고 경영진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끊겼던 것을 상표권만 사와 "부활"시키는 형식이었기에 부가티 매니아 중 일부는 원래의 에토레 부가티가 세운 회사만 부가티로 취급하는 경우가 있다. 현재는 폭스바겐 그룹 산하 회사며, 공장에서는 조립만 하고 핵심 부품인 엔진은 독일 폭스바겐 공장에서 제작한 것을 가져다 쓴다.

또한 엄청난 브랜드 가치를 지닌 회사답게, 현재도 클래식 카 경매에서 최고가로 팔리는 차량들이 많다. 일례로, Type 57SC Atlantic이라는 모델은 무려 3000만달러에 팔렸다. 경매 최고가 차량들은 부가티를 포함한 파가니, 롤스로이스, 람보르기니, 메르세데스-마이바흐, 맥라렌 등의 브랜드가치가 뛰어난 프리미엄 브랜드의 차량들인데, 이 중에서도 부가티 클래식카의 가치는 독보적이다. 하지만 57SC Atlantic의 3000만달러를 2012년에 페라리의 1962년형 250 GTO가 3500만 달러로 넘어섰으며, 2014년에 다시 1962년형 250 GTO가 3811만5000달러로 경신했고, 2016년에 1957년 제작된 335S Spider Scaglietti가 3200만유로로 다시 한번 최고가를 경신했다.

반면 57sc의 다른 버전은 2016년에 973만 달러에 팔렸다. 페라리는 오랜 역사와 역사에 비례해 상대적으로 다양한 모델들이 존재하고, 아직까지도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가장 높은 자동차 브랜드이므로 당연히 세계 경매가 최상위권에 많이 랭크 될 수 밖에 없다. 반면 부가티는 시작은 1909년으로 페라리보다 앞서지만 1940년대를 전후로 장남 장 부가티와 설립자 에토레 부가티의 사망과 제2차 세계 대전등으로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하여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데다 그 완벽주의로 인해 판매량이 적어 경매에 상대적으로 덜 나오며, 팬층도 페라리에 비하면 빈약하다.

물론 희소가치가 높아 향후 경매시장에 나올 경우 얼마든지 기록을 경신할 가능성은 있다.참고로 경매가 아닌 거래로 판매된 자동차 중 가장 비싼 것도 페라리 250 GTO로 폴 파팔라도가 2013년10월에 무려 5200만 달러에 판매한 것이다. 브랜드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례. 이와 함께 2020년 한국 진출을 선언하고 인증용 모델도 들어와있다.[1]

주요인물[편집]

에토레 부가티(Ettore Bugatti)
스테판 빈켈만(Stephan Winkelmann)
  • 에토레 부가티(Ettore Bugatti) : 부가티의 엔지니어, 디자이너이자 설립자이다. 부가티 Type 2부터 수많은 명차들을 제작하여 지금도 자동차인들에게 존경을 마지않는 자동차 제작자이다. 보석 디자이너인 아버지와 동물 조각가인 남동생, 화가 이모, 건축가 할아버지까지 예술가 가족들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어린 나이때 부터 자동차, 건설 등의 광범위한 측면에 대해 깊은 이해를 보여주어 천재라 불리었고 19살에 밀라노에서 열린 국제 자동차 전시회에서 주목할 만한 디자인으로 영광을 얻기도 하였다. 에토레 부가티는 초기 자동차 운전자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캐릭터를 가진 사람 중 한 사람이면서 그는 자동차 엔지니어링 천재였던 만큼, 그만의 거칠고 재미있는 서비스로 유명했다. 추운 아침에도 시동이 잘 안 걸린다고 불평한 부가티 주인에게 그는 "선생님! 만약 당신이 타입 35를 살 여유가 있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난방된 차고를 살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으며 새 차에서의 브레이크 성능 저하에 대해 불평하는 고객에게 에토레는 "나는 내 차를 멈추지 않게 하고 탄다!"라고 소리치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는 2000년에 자동차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1930년대 초부터는 Bugatti Royale 엔진에 의해 구동되는 전동차를 포함하도록 생산을 확장하였고 이때부터 그의 아들 장 부가티도 엔지니어로 적극 참여했다. 하지만 장은 자신이 디자인한 차량 Type 57모델C형을 운전하다가 1939년 사망하였고 얼마 후 아내도 잃게 되어 가장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난 후 두 번째 아내를 만나게 되었고 아들과 딸을 낳으며 파리에 새로운 공장을 지을 계획과 새로 제작할 자동차들을 꿈꿨다. 하지만 사업을 물려받은 장 부가티의 형제인 로랜드(Roland)는 최신 자동차 개발을 따라가지 못했고 공장은 부도가 났다.[5]
  • 스테판 빈켈만(Stephan Winkelmann): 1964년 10월 18일생으로 부가티의 사장이다. 이탈리아의 스포츠카 제조업체 람보르기니의 전 사장 겸 CEO를 역임했다. 베를린에서 태어나 이탈리아 로마에서 자랐다. 로마에서 정치학을 공부했고, 뮌헨에서 학위를 받았으며, 독일군에서 낙하산병으로 2년간 근무하며 중위를 떠났다. 1991년 독일 금융기관인 MLP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으며, 이듬해에는 벤츠에서 먼저, 1994년부터 2004년까지 이탈리아와 해외에서 마케팅과 영업에서 피아트에서 일하며 자동차 산업에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 후 그는 스위스 피아트 오토 오스트리아와 마지막으로 피아트 오토독의 CEO로 임명되었다. 2005년 1월 1일, 스테판 빈켈만은 람보르기니의 사장 겸 CEO로 임명되었다. 2016년 초 그는 람보르기니를 떠나 아우디의 리브랜딩된 아우디 스포츠 부문을 이끌었다. 2018년 1월 1일부터 빈켈만은 부가티 자동차 S.A.S.의 사장으로 있다.[6]

역사[편집]

Automobiles Ettore Bugatti(1909 ~ 1963)[편집]

1922년 부가티 타입13
부가티 타입35B
1930년 대 부가티 100P 레이싱 비행기
부가티 열차
부가티 타입 73A

1909년 이탈리아 태생의 산업디자이너 에토레 부가티가 당시 독일 알자스주 몰샤임시에 설립한 프랑스의 고성능 자동차 제조업체다. 이 차들은 디자인적인 아름다움과 많은 경주 승리로 유명했다. 부가티는 3Type 35 Grand Prix, Type 41 "Royale", Type 57 "Atlantic", Type 55 등 유명한 스프츠카를 만들었다.

1947년 에토레 부가티의 죽음은 그 마르크의 종말임이 증명되었고, 1939년 아들 장 부가티의 죽음으로 공장을 이끌 후임자가 없게 되었다. 그동안 만들어진 자동차가 8,000대도 안된다. 회사는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1950년대에 마지막 모델을 출시했고, 결국 1963년에 비행기 부품 사업을 위해 인수되었다.

1987년 한 이탈리아 기업가가 이 브랜드를 구입해 모데나에 기반을 둔 한정생산 전용 스포츠카 제조업체로 부활했다. 1998년 폭스바겐 그룹은 부가티 브랜드에 대한 권리를 매입하였고 알자스 주 몰샤임에 자회사를 설립했다.[2]

제1차 세계대전과 그 여파

전쟁 중에 에토레 부가티는 처음에는 밀라노로, 나중에는 파리로 보내졌으나, 적대관계가 종결되자마자 몰샤임 공장으로 돌아갔다. 베르사유 조약으로 알자스가 독일에서 프랑스로 이전하는 것을 공식화한 지 4개월도 채 되지 않아 부가티는 1919년 10월 제15회 파리 모터쇼에서 막판에 스탠드를 얻을 수 있었다. 그는 3대의 경차를 전시했는데, 모두 전쟁 전 등가물을 바탕으로 촘촘히 짜여져 있었고, 각각 실린더당 4개의 밸브가 달린 동일한 오버헤드 캠축 4기통 1,368cc 엔진을 장착했다. 세 가지 중 가장 작은 것은 경주용 차체를 가진 (부가티 자신이 시공한) 'Type 13'이었고, 축간거리 2,000mm(78.7인치)의 섀시를 사용한 것이었다. 다른 것들은 각각 2,250mm, 2,400mm(88.6인치, 94.5인치)의 휠베이스를 가진 'Type 22'와 'Type 23'이었다.[2]

레이싱 성공

부가티는 1929년 비공개로 참가한 모나코 그랑프리 대회에서 최초로 우승하는 등 그랑프리 초반의 자동차 경주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레이싱의 성공은 드라이버 장 피에르 위밀(Jean-Pierre Wimille)이 르망 24시간 경기에서 두 번(1937년 로버트 베노아(Robert Benoist)와 1939년 피에르 베이론(Pierre Veyron) 함께) 우승하면서 절정에 달했다.

부가티 자동차는 경주에서 매우 성공적이었다. 소형 부가티 타입10이 첫 경주에서 상위 4위를 차지했다. 1924년형 부가티 타입35는 가장 성공적인 경주용 자동차 중 하나이다. 35타입은 부가티가 1924년 리옹에서 처음 열린 그랑프리에서 마스터 엔지니어 겸 레이싱 드라이버 장 샤사뉴(Jean Chassagne)와 함께 개발했다. 부가티스는 1925년부터 1929년까지 5년 연속으로 타르가 플로리오( Targa Florio)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루이 시롱(Louis Chiron)은 부가티 자동차에서 가장 많은 시상대를 열었고, 현대의 유명 리바이벌 Bugatti Automobiles SAS는 그의 명예를 걸고 1999년 부가티 18/3 시론( Bugatti 18/3 Chiron)으로 컨셉트카를 명명했다. 그러나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르망에서의 마지막 레이싱 성공이었다. 장 피에르 위밀과 피에르 베이론(Pierre Veyron)은 1939년 경주에서 단 한 대의 자동차와 미미한 자원으로 우승했다.[2]

비행기 경주

1930년대에 에토레 부가티는 독일인들을 이기기를 바라면서 경주용 비행기 제작에 관여했다. 모델명은 Bugatti 100P으로 결코 날지 않았다. 이건은 "Type 7.5"리프팅 차체에 부가티 브레시아 엔진을 적용한 벨기에 엔지니어 루이 드 몽주(Louis de Monge)에 의해 설계됐다.[2]

철도차량

에토레 부가티는 또한 성공적인 전동열차인 오토레일 부가티(Autorail Bugatti)를 설계했다.[2]

가족참사

1939년 8월 11일, 에토레 부가티의 아들 장 부가티(Jean Bugatti)가 사망하면서 회사 운명의 전환점이 되었다. 장 부가티는 몰샤임 공장 근처에서 Type 57 탱크 바디 차체의 경주용 자동차를 테스트하던 중 사망했다.[2]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으로 몰샤임 공장은 폐허가 되었고 회사는 그 재산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했다. 전쟁 중에 부가티는 파리 북서쪽 교외인 르발루아에 새로운 공장을 계획했다. 전쟁 후 부가티는 Type 73로드 카와 Type 73C 싱글 시트 레이싱카 등 일련의 신차를 설계하고 제작할 계획이었으나, 모든 면에서 부가티는 Type73 자동차 5대 만 제작했다.

1947년 8월 21일, 에토레 부가티가 사망하면서 375cc 슈퍼차지드(supercharged) 자동차의 개발은 중단되었다. 에토레 부가티의 사망 이후 사업은 더욱 쇠퇴하여 1952년 10월 파리 모터쇼에서 자체 사업으로서 마지막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 쇠퇴 끝에 1952년 부가티의 원신은 운영을 중단했다.[2]

디자인

부가티스는 눈에 띄게 디자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엔진 블록을 손으로 긁어서 표면이 너무 평평해서 개스킷을 밀봉할 필요가 없었는지 확인하였고, 엔진실의 많은 노출된 표면은 그 위에 기요세(guilloché) 마감 처리가 되어있으며, 안전 와이어는 복잡하게 레이싱된 패턴으로 거의 모든 고정 장치에 나사선으로 연결되었다. 대부분의 제조업체가 그랬던 것처럼 스프링을 차축에 고정시키는 대신, 부가티의 차축은 스프링이 차축의 세밀한 크기의 개구부를 통과하도록 만들어졌고, 이는 보다 적은 부품이 필요한 훨씬 우아한 솔루션이다. 그는 주요 경쟁사인 벤틀리는 내구성에 초점을 맞춘 "세계에서 가장 빠른 트럭"이라고 묘사했다. 부가티에 따르면, "무게는 적이었다"고 한다.[2]

부활 시도

1950년대 중반 미드엔진 Type 251 경주차로 롤랜드 부가티(Roland Bugatti)에서 컴백을 시도했다. 조아키노 콜롬보(Gioacchino Colombo)의 도움을 받아 설계된 이 차는 기대에 못 미치고 자동차 생산 시도는 중단됐다.

1960년대에 버질 엑스너(Virgil Exner)는 그의 "Revival Cars"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부가티를 디자인했다. 이 차의 쇼 버전은 실제로 기아(Ghia)가 마지막 Bugatti Type 101 섀시를 사용하여 제작한 것으로 1965년 토리노 모터쇼에서 선보였다. 자금은 준비되지 않았지만 그 후 엑스너는 스터츠(Stutz)의 부활로 관심을 돌렸다.

부가티는 비행기 부품을 계속 제조했으며 1963년 항공기 공급업체로 변신한 전 자동차 제조업체인 이스파노 수이자(Hispano-Suiza)에 매각되었다. 스네크마(Snecma )는 1968년 이스파노 수이자를 인수했다. Messier Bugatti Dowty(SAFRAN group)를 인수한 뒤 스네크마는 1977년 메시에와 부가티를 메시에-부가티(Messier-Bugatti로)로 합병했다.[2]

Automobili Bugatti S.p.A.(1987 ~ 1995)[편집]

이탈리아의 기업가 로마노 아르티올리(Romano Artioli)는 1987년에 부가티 브랜드를 인수했고 부가티 오토모빌리(Bugatti Automobili SpA)를 설립했다. 아르티올리는 건축가 지암파올로 베네디니 (Giampaolo Benedini)에게 이탈리아 모데나의 캄포갈리아노에 건설된 공장을 설계하라고 의뢰했다. 그 공장의 건설은 1988년에 첫 번째 모델의 개발과 함께 시작되었고, 2년 후인 1990년에 시작되었다. 1989년까지 새로운 부가티 부흥 계획은 람보르기니 미우라(Miura)와 람보르기니 쿤타치(Lamborghini Countach)의 디자이너인 파올로 스탄자니(Paolo Stanzani)와 마르첼로 간디니(Marcello Gandini)가 발표했다.

첫 번째 생산 차량은 3.5리터, 실린더당 5밸브, 쿼드 터보차지 60°V12 엔진, 6단 기어박스, 4륜 구동 등이 특징인 부가티 EB110 GT였다. 스탠자니는 모든 초기 프로토타입에 사용되는 알루미늄 벌집형 섀시를 제안했다. 그와 아르티올리는 공학적 결정을 놓고 충돌하여 스탠자니는 프로젝트를 그만뒀고 아르티올리는 1990년 6월 니콜라 마테라치( Nicola Materazzi)를 후임자로 물색했다. 그동안 페라리 288 GTO와 페라리 F40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마테라치는 알루미늄 섀시를 프랑스항공우주계획청(Aerospatiale)에서 제조한 탄소 섬유로 교체했고, 자동차의 토크 분배를 40:60에서 27:73으로 변경하기도 했다. 그는 1992년 말까지 엔지니어 감독으로 재직했다. 레이싱카 디자이너 마우로 포르기에리(Mauro Forghieri)는 1993년부터 1994년까지 부가티의 기술 감독으로 재직했다. 1993년 8월 27일, 지주회사인 룩셈부르크의 ACBN 홀딩스 S.A.를 통해 로마노 아르티올리는 제너럴 모터스로부터 로터스카를 구입했다. 부가티 주식을 국제 증권거래소에 상장할 계획을 세웠다.[2]

부가티는 1993년 EB112라는 프로토 타입 대형 세단을 선보였다. 디자이너는 유명한 이탈리아 디자이너인 조르제토 주지아로(Giorgetto Giugiaro). 말 그대로 컨셉카였기 때문에 단 두대만 생산되었는데, 이중 한대는 행방이 묘연하고 나머지 한대는 모나코에서 가끔 보인다. 비록 컨셉카로 끝나버렸지만, EB112의 디자인은 후에 폭스바겐이 부가티를 인수한 이후 발표한 컨셉카 EB118, EB218, EB18/3 등으로 이어져내려왔으며, 베이론의 디자인의 초석이 되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차라고 할수 있다.[1]

아마도 가장 유명한 Bugatti EB110 소유주는 1994년에 EB110을 구입한 7번의 포뮬러 원 월드 챔피언 경주 드라이버 미하엘 슈마허(Michael Schumacher)이다. 슈마허는 1994년 심각한 충돌 사고 이후 수리한 자신의 EB110을 독일의 페라리 서비스 및 레이스 준비 차고인 모데나 모터스포츠에 팔았다.[2]

EB110이 시장에 나올 무렵 북미와 유럽 경제는 불황에 빠져 있었다. 열악한 경제 환경으로 인해 회사는 파산할 수밖에 없었고 1995년 9월에 영업을 중단했다. '부가티 아메리카'라는 미국 시장에 특화된 모델은 이 회사가 영업을 중단했을 때 준비 단계에 있었다.[2]

부가티의 청산인은 말레이시아의 프로톤에게 로터스카를 팔았다. 독일 기업 다우어 레이싱(Dauer Racing)은 1997년 EB110 라이선스 및 잔여 부품 재고를 구입해 EB110 SS 차량 5대를 추가로 생산했다. 이 5대의 SS 버전의 EB110은 다우어에 의해 크게 개선되었다. 캄포갈리아노 공장은 입주 전에 폐업한 가구제조회사에 매각돼 건물이 텅 비어 있었다. 2011년 다우어가 자동차 생산을 중단한 후 독일의 토스카나 모터스(Toscana-Motors GmbH)는 다우어로부터 나머지 부품 재고를 매입했다.

전 부사장 장 마르크 보렐(Marc Borel)과 전 직원 페데리코 트롬비(Federico Trombi), 지안니 레미놀피(Gianni Sighinolfi), 니콜라 마테라치(Nicola Materazzi) 등이 B 엔지니어링 회사를 설립해 부가티 EB110 SS의 섀시와 엔진을 이용해 에도니스(Edonis)를 설계·구축하되 터보차징 시스템과 드라이브라인(4WD~2WD)을 단순화했다.[2]

Bugatti Automobiles S.A.S. (1998–present)[편집]

프리 베이론

폭스바겐은 1998년 6월 부가티 브랜드를 인수했다. 부가티 오토모빌리 S.A.S.는 이탈리아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Giorgetto Giugiaro)에게 부가티자동차의 첫 컨셉트카인 1998년 파리오토쇼에서 데뷔한 쿠페 EB118을 제작 의뢰했다. EB118 컨셉트는 408 Kw(555 PS; 547 bhp), W-18 엔진을 특징으로 했다. 파리 데뷔 후 1999년 제네바 오토쇼와 도쿄 모터쇼에서 다시 EB118 컨셉트를 선보였다. 부가티는 1999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EB 218을, 1999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IAA)에서 18/3 시론을 다음 컨셉트로 소개했다.[2]

베이론 시대(2005 ~ 2015년)

부가티 오토모빌리 S.A.S.는 2005년 9월 프랑스 부가티 몰샤임에서 첫 번째 정규 생산 차량인 부가티 베이론 16.4(터보차 4대를 탑재한 8리터 W-16엔진을 탑재한 1001PS 슈퍼카)의 조립을 시작했다. 2015년 2월 23일 부가티는 '라 피날레'라는 이름의 마지막 베이론 그랜드 스포츠 비테세(Veyron Grand Sport Vitesse)를 판매했다.

시론 시대(2016~ 현재)

부가티 시론은 부가티 베이론의 후속으로로 개발된 아킴 안시드(Achim Anscheidt)가 디자인한 중형 2인승 스포츠카다. 시론은 2016년 3월 1일 제네바 모터쇼에서 처음 공개됐다.[2]

특징[편집]

동그란 전면 그릴

부가티 동그란 전면 그릴

부가티의 차량들은 원래부터 뛰어난 성능과 특유의 아름다움으로 유명했는데, 이런 부가티의 차들 모두, 심지어 EB110과 폭스바겐 산하 부가티에게도 공통되는 특징 하나는 특유의 동그란 전면 그릴이다. BMW의 콧구멍 모양 그릴을 키드니(신장) 그릴(kidney grilles)이라고 부르듯이 부가티의 이 독특한 그릴을 말발굽 그릴(horseshoe grille)이라고 부른다. 다만 실제로는 말발굽과는 별 관계가 없으며, 달걀을 "가장 아름다운 자연의 형태"라고 칭송한 에토레의 아버지 카를로 부가티(Carlo Bugatti)의 영향을 받아 달걀의 모양을 본따 디자인한 것이라고 한다. 이를 증명하듯이 Type 13을 비롯한 초기 부가티 자동차들은 계란처럼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길쭉한 타원형 그릴을 하고 있었다. 이후 차량의 조항성을 좋게 하기 위해 차체를 낮추면서 타원형 그릴의 아랫부분이 땅에 닿지 않게 평평해졌고, 엔진 양옆에 컴프레서를 달면서 타원형 그릴의 윗부분이 넓어지면서 잘 알려진 말발굽 모습이 되었다.[1]

춤추는 코끼리 엠블럼

부가티 춤추는 코끼리 모양의 조각상

또 하나의 특징은 후드 위에 올라가있는 춤추는 코끼리 모양의 조각(Dancing Elephant)이다. 동그란 라디에이터 그릴과 달리 이 장식은 오직 부가티 클래식카에서만 볼수 있는데, 그마저도 스포츠카나 레이싱 모델에는 달려있지 않고 오로지 럭셔리 세단에만 달려 나왔다. 당시에는 롤스로이스의 유명한 환희의 여신상과 동급이거나 오히려 그 이상의 위상을 지녔지만, 부가티가 도산함에 따라 현재는 부가티 매니아만 아는 정도이다. 베이론의 마지막 한정판인 Les Légendes 라인업을 보면 전부 실내에 이 코끼리 조각이 붙어있는데, 여기에는 이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1]

많이 생산되고 또 많이 팔린 브랜드

21세기에 접어들어선 생각보다 많이 생산되고 또 많이 팔린 브랜드이기도 하다. 물론 부가티 시론 항목에서 500대 한정 판매로 생산한 차량이 반도 채 팔리지 않았다는 내용을 본다면 무슨 소리인가 싶지만 차량의 가격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베이론만 하더라도 150만 달러에서 시작되고 시론의 경우엔 아예 300만 달러에 육박하는 무시무시한 가격을 자랑한다. 시론의 경우 슈퍼카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람보르기니와 페라리의 엔트리급 차량들 가격의 거의 10배에 가까운, 하이퍼카라는 자칭이 어색하지 않을 만한 몸값이다. 이런 차가 200대가 넘게 팔렸으니 이는 절대로 적게 팔린 숫자라고 보기엔 힘들다. 물론 윗 문단에서 보듯이 베이론만 해도 1대당 60억에 가까운 손해를 보는 정신 나간 수준의 손익율 때문에 많이 팔린 것이 곧 많은 적자를 의미하기는 한다. 그래도 절대적인 판매량을 생각하자면 30억 짜리 차가 200대가 팔렸다는 건 결코 적은 숫자라고 볼 수 없다. 산수적인 계산만 해보아도 우라칸이 비슷한 매출을 내려면 2천대 가까이를 팔아야 한다. 생산량 역시 같이 하이퍼카임을 자부하는 코닉세그[36]가 22년간 130대를 생산한 것에 비해 부가티는 베이론과 시론을 합쳐 근 천대에 가까운 생산량을 보이고 있다. 이 역시 1대당 수십억짜리 차량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생산량이다.[1]

8리터 16기통 쿼드러플 터보 엔진 베이론과 시론 모두 4리터 8기통 엔진 두개를 이어 붙인 다음 터보 4개를 꽂은, 8리터 16기통 쿼드러플 터보 엔진[37]이라는 말도 안 되는 물건을 탑재하고 있기에 차량 자체가 매우 무겁다. 두 차종 모두 아반떼와 비슷한 크기[38]임에도 공차 중량이 약 2톤에 육박하기 때문에 별명으로 돼지나 하마 소리까지 듣는다. 그나마 시론은 탄소섬유로 차체를 만들어 무게 증가를 줄였음에도 베이론보다 더 무겁다. 그래도 이 무게 덕분에 주행의 안전성이 높아져 차량의 운전 난이도가 급감하여 운전하기 쉬운 차라는 평가는 빠짐없이 듣는 편이다. 같은 수준의 고성능을 자랑하는 코닉세그의 차량들이 너무 가벼운 차체 때문에 전문 프로 드라이버들이라도 차의 특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운행에 애를 먹는다는 점에 비하면 이는 분명한 특징이다. 그밖에도 무거운 차체가 주는 의외의 장점은 바로 편의 장비의 추가에 부담이 없다는 점. 극도의 경량화를 추구하는 차량이라면 빼버리거나 넣어도 고민할 만한 물건들을 어차피 무거운 부가티의 차들은 아무런 부담 없이 추가할 수가 있다.[1]

제품[편집]

부가티 타입2
부가티 타입 32
1929년 부가티 타입 40
네번째로 제작된 타입41 루아얄
1929년 부가티 타입52
부가티 타입56C
부가티 타입 101 Guillore 4 도어 세단 (101500)
1936 부가티 타입57 아탈란테
부가티 타입251
부가티 타입252
부가티 EB110 GT모델

과거 생산차량[편집]

  • Automobiles Ettore Bugatti시절의 차량
  • 부가티 Type 2 : 1901년 에토레 부가티가 굴리넬리(Gulinelli) 백작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설계·구축한 원형 자동차이다. 그 해 밀라노 무역 박람회에서 상을 받았다. 당시 에테로 부가티는 19살이라는 나이로 인해 독일 알자스의 니더브론 소재 로레인 드 디트리히(De Dietrich) 자동차제조 생산권리를 가질 수 없게 되어 그의 아버지인 카를로 부가티(Carlo Bugatti)가 계약에 사인을 하게 된다.[7]
  • 부가티 Type 3/4 : 타입 3-4는 부가티의 드 디트리히 초기 작품이었다.[7]
  • 부가티 Type 5/6/7 : 1904년까지 드 디트리히와 함께 부가티가 설계했다. 약 100개의 Type 1-7이 1902년부터 1904년까지 생산되었다. 드 디트리히에서 에테로 부가티는 자동차 개발, 생산을 하는 프리랜서로서의 경력을 쌓기 위해 드 디트리히를 떠나게 된다.[7]
  • 부가티 Type 10 : 1908년과 1909년에 에테로 부가티는 자택의 지하실에서 Type10으로 프로토 타입이 제작되었다. 당시 독일 가스엔진 제조회사(Gasmotoren Fabrik Deutz)에서 수석 엔지니어였다. Type10은 에테로 자체 설계의 모노블록 직선 4개 엔진을 사용했다. 실린더 당 두 개의 밸브 가있는 오버 헤드 캠 장치로 당시에는 매우 발전했다. 매우 복잡한 디자인으로 총 1.1L(1131cc / 69in 3)에 대해 60mm 보어와 100mm 스트로크를 가졌다. 이것은 전방 및 후방에 단단한 차축이 있는 개방형 로드스터 차체에 부착되었다. 리프 스프링은 후면에 서스펜션이 전혀없이 전면을 매달았다. 케이블은 후방 드럼 브레이크를 작동했다.
Deutz와의 계약을 끝내자 에테로 부가티는 가족을 Type10에 싣고 알자스 지역으로 향했고, 당시에는 여전히 독일 제국의 일부였으며, 자신의 자동차 생산을 시작할 공장을 찾았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알자스는 다시 프랑스의 일부가 되었고 부가티와 함께했다. 이 차는 모양 때문에 말년에 몰샤임 직원들에 의해 "라 베이뉴아르"("욕조")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에테로 부가티는 1939년에 그것을 복원하고 주황색 붉은 색으로 다시 칠하여 "le homard"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었다.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보르도로 옮겨져 수십 년 동안 그곳에 머물다가 개인 소유로 전락했다. 오늘날, 그 차는 개인 수집가의 손에 의해 캘리포니아에 있다.
  • 부가티 Type 13/15/17/22/23 : 타입13은 최초의 진정한 부가티 차량이였다. 타입13 이후 타입15, 타입17, 타입22, 타입23 생산은 1901년 회사의 설립으로 시작되어 1920년까지 지속되었으며, 435대가 생산되었다. 대부분의 도로용 자동차는 8밸브 엔진을 사용했지만, 타입13의 5명의 경주자들은 16밸브 헤드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중 일부는 최초로 생산된 것이다. 이 도로 차들은 에토레 부가티의 디자인에 대한 감정에 따라 서러브레드 Thoroughbred)으로 알려지게 되었다.[8]
  • 부가티 Type 16 : 1912년
  • 부가티 Type 18 : 가로스(Garros)라고도 불리며 1912년부터 1914년까지 생산된 자동차다. 사업 시작 직후에 제작된 디자인은 일종의 유물이었다. 그것은 에테로 부가티가 Deutz Gasmotoren Fabrik를 위해 디자인한 자동차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타입 13의 라디에이터와 유사했다. 겨우 7대가 만들어졌으며 3개는 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린더당 3개의 밸브와 1개의 오버헤드 캠축이 있는 대형 5.0L(5027cc/306in³) 직진 4 엔진에서 전원이 공급되었다. 이 큰 엔진은 100mm 보어와 160mm 스트로크가 매우 길어서 약 2400rpm까지 회전할 수 있다. 동력 전달은 멀티플레이트 메탈 온 메탈 클러치를 통해 역방향 수동 변속기로 4단까지 전달됐다. 주 섀시 레일 바깥쪽에 각각 하나씩 노출된 두 개의 체인이 리어 휠을 구동했고, 공장에서는 3세트의 리어 휠 체인 스프로킷을 제공했는데, 이는 최대 속도가 100mph에 가깝다는 것을 의미한다.[9]
  • 부가티 Type 29 :
  • 부가티 Type 30/38/40/43/44/49 : 초기 부가티 8기통 라인은 1922년형 타입30으로 시작되었다. 1926년 타입38은 물론 타입40, 타입43, 타입44, 타입49에도 동일한 기본 설계를 사용하였다.[10]
  • 부가티 Type 32 : 흔히 탱크 드 투어(Tank de Tours)로 불리는 부가티 타입32는 1923년에 만들어진 유선형의 경주용 자동차였다. 타입30의 엔진을 바탕으로 각각 2.0L(1991cc/121in³)의 직진 8엔진을 장착한 4대가 만들어졌으며, 그해 ACF 그랑프리에서는 '더 탱크'가 3위를 차지했다. 이것은 바텀 엔드 신뢰성을 개선하기 위해 롤러 베어링 빅 엔드를 장착한 첫 번째 부가티였다(Bugatti는 스플래시 "spit and hope" 배송 방식을 선호하면서 완전 가압된 오일 시스템을 통합하는 데 대부분의 제조업체보다 다소 늦었다). 타입32도 3단 트랜스액슬 유닛과 유난히 짧은 휠베이스, 긴 직선 8엔진을 사용해 기존 기어박스를 수용하기 어려워 새로운 지반(레이싱 버그용)을 깼다. 유압식 전방 브레이크 작동도 예고했다. 또 다른 탱크 체격의 부가티 레이서인 1936년 타입 57G는 훨씬 더 성공적이었다.[11]
  • 부가티 Type 35 : 부가티 경주 모델 중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다. 부가티 아치형 라디에이터의 버전은 부가티 타입13 브레시아(Brescia)보다 발전되어 왔으며, 다양한 타입35의 등급에 변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유명한 마크가 되었다. 타입35는 그 시대에 1,000개 이상의 경주에서 우승하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1926년 그랑프리 월드 챔피언십에서 351개의 레이스를 우승하고 2년 동안 47개의 기록을 세웠다. 최고조에 달했던 타입35는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14번 경주 우승했다. 부가티는 타르가 플로리오(Targa Florio)에서 1925년부터 1929년까지 타입35로 5년 연속 우승했다.[12]
  • 부가티 Type 36 : 타입36 레이서는 1925년에 생산되었으며, 신형 1.5L(1493 cc/91 in³) 직진 8 엔진을 도입하였다. 60 X 66 mm 보어 및 스트로크를 가진 엔진은 나중에 타입 39A에서 자리를 찾았지만 타입36 프로젝트는 실험에 가까웠다. 처음에는 후륜 차축을 스프링이 없는 프레임에 직접 볼트로 고정시켰다. 1926년 부가티는 스프링과 과급기를 모두 타입36에 추가했다. 이것은 타입35C의 실험 기반이였다.[13]
  • 부가티 Type 41 루아얄 : 부가티에서 1926년부터 1933년까지 단 7대 만 제작된 럭셔리 대형 승용차이다. 부가티의 설립자인 에토레 부가티가 디자인한 비운의 명작. 현재는 6대만 세상에 존재한다. 이 중 2대는 문화재로 등록되어있는 프랑스의 국보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큰 승용차 중 하나이기도 하다. 거대한 엔진 때문인지 휠베이스만 해도 자그마치 4.3m 이고, 전장은 6.4m(!!)이다. 무게는 3,175 kg이다. 모든 루아얄은 각각 다른 디자인과 바디 형상을 하고 있다.[14]
  • 부가티 Type 45 : 16기통 타입45 레이싱 카와 이와 비슷한 타입47의 "그랜드 스포츠"는 부가티로부터 새로운 세대의 자동차가 될 예정이었다. 엔진은 3밸브 SOHC 설계로 타입35의 3밸브 직선-8에 기초하였다. 두 가지 버전이 만들어졌다. 타입47 프로토타입에 장착된 A 3.0 L(2986 cc/182 in³) 버전은 타입36의 60 x 66 mm 치수를 공유했고, 타입45 프로토타입은 3.8 L(3801 cc/231 in³)에 대해 84 mm 스트로크를 사용했다. 출력은 200~250hp(149~186kW)이며 루트형 슈퍼차저가 작동했다.
섀시를 포함한 차량 전체가 독특했다. 타입45는 102.2인치(2596mm)의 휠베이스가 사용된 반면 타입47은 108.3인치(2750mm)로 늘어났다. 둘 다 49.2인치(1250mm)의 트랙을 갖고 있다.[13]
  • 부가티 Type 46/50/50T : 부가티 타입46과 이후 타입50은 대형 밀폐 투어링 카였으며 타입50B 레이싱 버전과 함께 모두 1930년대에 제작되었다. 그들의 상대적인 편재성과 숫자들은 그들의 스타일링과 결합되어 때때로 몰샤임 뷰익이라는 호칭을 얻게 했다.[15]
  • 부가티 Type 51 : 부가티 타입51은 1930년대 부가티의 최고급 경주용 자동차로 유명한 타입35의 후속이다. 최초은 타입51은 1931년에 등장했으며 엔진은 타입 35B에서 발견된 슈퍼차지 2.3 L(2262 cc/138 in³) 싱글 오버헤드 캠 직진 8의 160 hp(119 kW) 트윈 오버헤드 캠이었다. 1931년 프랑스 그랑프리 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드문 성공 사례였다. 타입51과 타입51A가 약 40대생산되었다.[16]
  • 부가티 Type 52 : 왕족이나 상류층의 어린이용으로 만들어진 경주용 자동차이다. 1927년부터 1936년까지 제조되었으며 12볼트의 전기로 움직이는 전기 자동차로 약 500여대 개 제조된 것으로 알려졌다.[17]
  • 부가티 Type 53 : 1932년에 만든 4륜 구동 경주용 자동차이다. 타입53은 조종하기 힘들기로 악명 높았다. 1932년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타입53이 데뷔했으나 크기와 힘으로 유명한 알버트 디보(Albert Divo)가 운전자로 선택되었으나, 연습 도중 기진맥진 끝에 포기했다. 르네 드레퓌스(René Dreyfus)는 타입53 시속 100km(62mph)의 기록적인 평균 속도로 1934년 라투르비에 힐클라임에서 우승했다. 그 후 로버트 베노이스트(Robert Benoist) 는 타입53으로 1935년 샤토 티에리 힐클라임에서 우승했고, 그 후 타입은 은퇴했다.[18]
  • 부가티 Type 55 : 1932년부터 1935년 사이에 부가티가 생산한 스포츠카다. 타입51 그랑프리 승용차의 도로주행 버전이다. 로드스터는 108.3인치(2750mm)의 휠베이스와 1800파운드(816kg)의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총 38대가 생산되었으며 Type 55는 시끄러운 기계 장치와 직선 절단 기어의 조합으로 인해 실용성이 부족하고 승차감이 귀가 먹먹하다는 평론가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19]
  • 부가티 Type 56 : 전기자동차로 원래 에토레 부가티가 공장 가동으로 개인적으로 사용하도록 설계되었지만, 고객들의 대중적인 수요 때문에 타입56을 추가로 만들기로 했다. 아주 작은 2인승 오픈카로, 세기말의 말 없는 마차나 가좌차 형태의 차였다. 1마력(0.8kW)을 생산하는 단일 28암페어 전기 모터에서 전원이 공급됐다. 에너지는 총 36볼트 동안 6볼트 축전기에 직렬로 저장되었다. 모터를 프레임에 직접 장착하고 기어를 통해 뒷바퀴를 구동했다. 전기 제동이 허용되었고, 손과 발은 모두 뒷바퀴 드럼으로 작동했다. 4개의 전진 속도를 사용할 수 있었고, 차량은 28km/h(17.4mph)까지 가속할 수 있었다. 조종사는 경마기로 했다.[13]
  • 부가티 Type 56C
  • 부가티 Type 57 : 부가티가 1934년부터 1940년까지 총 710대를 생산한 부가티의 전설적인 차종이다. 부가티의 설립자인 에토레 부가티(Ettore Bugatti, 1881 - 1947)의 아들 장 부가티(Jean Bugatti, 1909 - 1939)가 개발했다. 최고 속도는 153 Km/h, 무게는 950 Kg이다.[20]
  • 부가티 Type 64 : 1939년 장 부가티가 디자인한 파피용(papillon , 버터플라이 프랑스어)문으로 제작한 대서양식 쿠페였다. 4.4L(4432cc/270인치) 2밸브 DOHC 직선-8엔진을 장착하고 130인치(3300mm)의 축간거리를 달렸다. 세대를 제작하려고 했지만 1939년 장 부가티가 사망하기 전 한대의 차체만 완성됐고, 2012년 두번째 차체가 완성됐다.[13]
  • 부가티 Type 73C : 1943년에 시작되어 전쟁 후 1947년에 완공된 타입73C은 부가티의 재기가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 해 8월 에토레 부가티의 죽음은 그 계획을 망쳤다. 엔진 없는 타입73이 두 달 뒤 1947년 파리 모터쇼에서 선보였다. 5대의 73C 섀시가 파리에서 제작되었지만, 이 차량을 위해 단 하나의 차체만 완성되었으며, 3대의 엔진과 1대의 완성차가 공장에서 조립 및 테스트되었다. 5대의 Type 73C 섀시는 회사가 자동차 생산을 중단 한 후 매각되었다. 타입 73, 타입 73A, 타입 73C, 타입 73B 등 몇가지 프로토타입 73 유형 모델이 있다.[13]
  • 부가티 Type 101 : 부가티가 1951년과 1952년에 만든 자동차로, 한대는 1965년에 만들어졌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생산을 재개하기 위해, 그리고 에토레 부가티와 그의 아들 장이 사망한 후 타입101은 전쟁 전 타입57에서 개발되었다. 7개의 섀시가 제작되었는데, 이들은 강로프( Gangloff), 기요레(Guilloré), 안템(Antem), 기아(Ghia)의 4개의 다른 코칭빌더에 의해 제작되었으며, 버질 엑스너(Virgil Exner)가 디자인한 마지막 모델이다. 101은 타입57의 3.3 L(3,257 cc 또는 199 cu in) 직선 8에 의해 구동되었다.[21]
  • 부가티 Type 251 : 원래의 부가티의 마지막 부활은 1955년에 완성된 Type 251이었다. 페라리 명성의 지오아키노 콜롬보(Gioacchino Colombo)가 디자인한 이 모델은 새로운 2.5L(2486cc / 151in) 직선 -8로 구동되었다 . 독특하게 이 엔진은 운전자 뒤에 가로로 장착되었다. 부가티에서 처음으로 76mm 보어와 68.5mm 스트로크 오버 스퀘어 엔진을 사용하였다. 드 디옹 튜브(De Dion tube)는 당시 유행이었지만 리어 서스펜션은 또한 회사로서는 참신했다. Type 251은 Maurice Trintignant가 주도한 1956년 프랑스 그랑프리에 참가했다. 그러나 경쟁적이지 않았고 18바퀴를 돌고 은퇴했다.[13]
  • 부가티 Type 252 : 부가티가 1957년부터 1962년 사이에 개발한 일회용 스포츠카다. 그러나 부가티 타입 252는 프로토타입 단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이 차는 현재 프랑스 뮐루즈 국립 자동차 박물관(Cité de l'Automobile)에 있다.[22]
  • Bugatti Automobili S.p.A.시절의 차량
  • 부가티 EB110 : 1992년 부가티에서 만든 슈퍼카이자 80년대 슈퍼카 붐의 마지막 주자. 시판 당시 가격은 58만 마르크 정도로 한화 약 3억2천만원이었다. 1991년에 나온 부가티 EB10은 이탈리아 사업가인 로마노 아르티올리가 부가티 부활을 위해 설립한 부가티 오토모빌리에서 생산하였다. 아르티올리는 람보르기니 엔진설계자 파울로 스탄지니와 람보르기니 디자이너 마르첼로 간디니와 함께 EB110을 제작했다. 모델명 EB110은 1881년에 나온 부가티 최초의 차 에토레 탄생 110주년을 기념하는 것이었다.
V12 3.5리터(ℓ) DOHC엔진에 4개의 터보 차저를 장착했으며 최대 토크 58kgm, 최대 출력 550마력이다. 최고 속도 342km/h,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 가속 시간은 4초이다. 1992년에 나온 EB110S는 최대 출력 610마력, 최고 속도 351km/h로 성능이 향상되었다.
탁월한 성능에도 불구하고 비실용적인 실내와 무리한 투자로 부가티 부활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아르티올리의 회사는 1996년 파산했고, 부가티는 1998년 폭스바겐에 인수되었다.

하이퍼카[편집]

부가티 베이론 16.4
부가티 시론
부가티 시론
부가티 첸토디에치
  • 부가티 베이론(Veyron) : 정식명칭은 "부가티 베이론 EB 16.4"(Bugatti Veyron 16.4)이다. 부가티의 하이퍼카이며 슈퍼 스포츠 모델 기준으로 2017년 11월 경까지 도로에서 가장 빠른 양산차였다. 또한 가장 비싼 하이퍼카라는 칭호도 얻었다. 2005년 출시되었다. 가격은 113만 유로(약 17억3,230만원)이지만 국내에서는 환율과 여러가지 프리미엄이 이리저리 달라붙으면서 대한민국 기준으로 26억원이며 신차중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다. 부가티 베이론의 엔진은 8.0L 16기통 W형 엔진으로, 기통과 엔진만 해도 괴물인데 거기에 터보를 4개씩이나 붙인 엔진이다. 최고속도는 407km/h(시속 253마일)을 기록하면서 양산차 부분 첫 시속 400km/h의 주인공이 되었다. 마력은 1,001마력이고 최대 토크는 127.6kgf·m이다. 1,001마력이라는 짜고 친 고스톱 같은 엔진 출력은 베이론의 등장 당시는 슈퍼카 마력놀음의 종지부를 찍을만한 충격적인 숫자였다. 실제로 이 모든 것의 총책임자 페르디난트 피에히(Ferdinand Piëch)가 좋아하는 아라비안 나이트의 1,001일에서 따온 수치라고 한다. 당시 내로라하는 슈퍼카들은 겨우 5~600마력대였다. 물론 우리는 이 차의 무게가 2톤 가량이라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베이론이란 이름은 1939년 당시 부가티 소속으로 활약하여 르망 24시에서 우승을 차지한 피에르 베이론(Pierre Veyron)을 기념하여 붙여졌다. "16.4"의 의미는 W 모양으로 배치된 16기통의 엔진과 여기에 달린 4개의 터보 차저를 뜻한다.[23]
  • 부가티 시론(Chiron) : 2016년 3월 1일 제네바 모터쇼에서 공개된 부가티 베이론의 후속 차량으로 Bugatti Vision Gran Turismo 컨셉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차량이다. 이름의 유래는 모나코의 드라이버인 루이 시롱(Louis Chiron)이다. 프로젝트 리드 디자이너는 람보르기니 우라칸 디자인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사샤 셀리바노프, 시론의 디자인은 개인의 호불호이기는 하지만, 전작의 밋밋한 베이론 디자인에 비하면, 훨씬 좋은 평가가 많다. 특히 바디와 합쳐진 C필러가 좋은 평을 듣고있다. 현 슈퍼카/하이퍼카 업계의 트렌드에서 비켜서 있는 차종으로도 유명한데, 주요 제작사의 차종들은 대부분 하이브리드 기술을 쓰고 있다. 당장 하이퍼카 3대장인 포르쉐 918과 라페라리, 맥라렌 P1가 KERS 시스템을 적용해 전기 모터가 보조해주는 하이브리드 차종들이며, 부가티의 직접적인 경쟁상대인 코닉세그 레제라는 마력은 시론과 같지만 아예 기어를 없애버리고 700마력 모터로 저속구간 가속을 퉁쳐버렸다. 그에 반해 부가티 베이론에 쓰이던 것을 개량한 W16 엔진만으로 1,500마력을 뽑는 시론은 좋은 말로는 전통적, 나쁜 말로는 구식이라고 할 수 있는 설계사상을 보유하고 있다.
이미 제네바 모터쇼 정식 공개 전부터 기존 부가티 고객들을 대상으로 180건 이상의 주문을 받아놓은 상태였다. 500대 한정수량으로 판매한다고 발표했는데, 2016년 12월까지 280대 정도가 팔리지 않은 것으로 발표되었다. 전작인 베이론도 마지막에 물량이 남았던 전적이 있는 것을 보면, 부자들 사이에서도 아직 부가티라는 브랜드와 자동차에 대한 인기는 그리 강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2] 참고로 완판된 주요 하이퍼카들의 실적은 페라리 라페라리 499대 130만유로, 애스턴마틴 발키리 150대 200만파운드, 맥라렌 세나 499대 75만파운드, 메르세데스 AMG 원 275대 227만 유로로, 240만유로의 시론은 라이벌들 중 확연히 비싸며 가격이 유사한 발키리와 AMG 원은 시론보다 훨씬 적은 대수를 생산하기 때문에, 시론이 완판되지 않은 것은 가격(수요량) 대비 높은 생산량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대한민국 시장에는 2020년 정식으로 런칭할 예정이다. 부가티 브랜드 도입과 함께 출시되며, 수입 및 판매는 한국타이어에서 맡는다. 정식 런칭 이전에 비공식 수입으로 국내에 2대가 배정되어있었고 화이트 컬러의 1대가 통관절차를 마치고 강남구청을 통해 정식 등록되었다.[24]
  • 부가티 디보(Divo) : 부가티가 2018년 8월 24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몬터레이에서 열린 더 퀘일: 모터 스포츠 게더링에서 공개된 하이퍼카이다. 부가티의 창립 110주년 기념 차량이다. 시론의 섀시에 새로운 바디를 입혀 더 가볍고 빠르게 만들어 코너링 성능을 훨씬 키웠다고 한다. 완전히 새로운 모델이라기 보다는 시론 스포트와 같은 시론의 파생 모델에 더 가깝다. 비유하자면 시론 스포트가 시론의 직계형제고 디보는 시론의 사촌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디자인은 컨셉카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로 상당히 미래 지향적이다. 시론과 Vision Gran Turismo의 디자인을 기반으로 부가티의 코치빌딩 전통과 Type 57 애틀란틱이나 Type 41 등 에토레 부가티 시절 부가티가 생산한 여러 명차의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 하였다.
부가티 시론과 비교해서 차체는 35kg 더 가볍지만, 90kg 더 무거운 다운포스를 지녔다. 엔진은 시론과 똑같은 미드쉽 W16 쿼드 터보를 쓴다. 너무 무거워 트랙에서 하마라고 불렸던 베이론과 시론을 만회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가격은 500만 유로에 40대 한정 생산으로 500대가 한정 생산된 시론보다 훨씬 적게 생산된다. 40대 전부 공개 전부터 시론 오너들을 대상으로 이미 매진되었다. 최고속도는 380 km/h로 시론보다 40 km/h 느리다. 애초에 직선 성능보다는 트랙 성능에 더 중점을 둔 차량이다. 인테리어는 시론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트랙카인 만큼 내장재로 알칸타라가 많이 쓰였다.
이름의 유래는 1928년과 1929년에 타르가 플로리오 마운티 레이스(Targa Florio Mountain Race)에서 부가티 Type 35를 타고 부가티에게 두 번이나 승리를 안겨준 프랑스인 드라이버 "알베르 디보(Albert Divo, 1895-1966)"에서 따왔다.[25]
부가티는 2020년 8월 양산이 완료돼 인도를 앞둔 첫 번째 디보를 공개했으며 40대만 생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차량의 판매 가격은 500만 유로(한화 약 70억원)에서 시작됐으나, 이미 모두 판매가 완료됐다. 디보는 시론보다 얇아 더욱 스포티한 느낌을 준다. 전면에서 후드의 흡입구를 줄여 공기 흐름을 개선하는 반면, 새로운 스포일러는 더 많은 다운포스를 생성한다. 또한 새 스포일러는 더 많은 공기를 전방 흡입구로 유도하는 동시에 브레이크의 열을 식히는 데도 도움이 된다. 후면은 독특한 디자인의 3D 테일라이트로 브랜드 특유의 디자인이 적용됐다. 전면에는 얇은 LED 헤드라이트가 특징이다. 지붕에는 NACA 에어덕트가 장착돼 디보의 8.0리터 W16 엔진에 공기를 공급하는데 도움을 주며, 이 엔진은 1,500마력을 생산한다. 디보의 최고 속도는 380km/h으로 제한함으로써 더욱 자유로운 개발이 가능하다.[26]
  • 부가티 첸토디에치(Centodieci): 에토레 부가티의 탄생 1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부가티 EB110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부가티 창립 110년을 기념하는 뜻에서 제작된 하이퍼카이다. 차의 이름인 첸토디에치는 이탈리아어로 110을 뜻한다. 10대 한정생산되며 가격은 8,000,000 유로(한화 약 105억 2,896만원)[2]로, 공개 전에 이미 10대 모두 매진된 상태이다. 엔진은 시론과 동일한 8.0L W16 엔진이지만, 출력이 1,600마력으로 증가했으며, 최고속도는 380km/h에서 제한된다. 또한 엔진의 열을 식히기 위해 엔진 베이가 뚫려있던 기존 부가티 차량과 다르게 엔진 베이에 유리 커버를 달아놓았지만 루프에 NACA 덕트를 설치함으로서 냉각 문제를 해결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이 차를 구매했다.[27]

코치빌드[편집]

2019 부가티 라 부아튀르 느와르
  • 라 부아튀르 누와르(La Voiture Noire) : 세계에서 단 한대 뿐이며 가격은 한화 약 213억원 정도이다. 부가티 브랜드 11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스포츠카로 차체는 차체는 검은색 탄소 섬유로 제작됐고, 1500마력에 16기통 엔진이 장착됐다. 2019년 3월 5일(현지 시각) 스위스 제네바 팔렉스포 전시장에서 개막한 제89회 제네바 모터쇼에서 전시되었으며 포브스에 따르면 이 차는 모터쇼에서 공개되기도 전에 약 1890만 달러(약 213억원)에 팔렸다. 라 부아튀르 누와르는 1300만 달러(146억원)에 팔린 롤스로이스스웹테일(Sweptail)을 넘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차가 됐다. 독일 자동차 브랜드 포르쉐(Porsche) 창업자의 손자인 페르디난트 피에히(Ferdinand Piech)가 이 차를 구매했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그는 부가티를 소유하고 있는 독일 자동차회사 폭스바겐(Volkswagen)의 최고경영자(CEO)를 거쳤다. 라 부아튀르 누와르는 부가티의 창업자 에토레 부가티의 아들 장 부가티가 디자인부터 설계를 맡았던 부가티의 57SC 아틀란틱 쿠페를 기념하기 위해 제작됐다.[4]

부가티 베이비 II[편집]

부가티 베이비 II

2020년 7월, 부가티는 어린이용 자동차 '부가티 베이비 II'를 출시했다. 이 자동차는 가격이 3만5000~6만8000 달러에 달한다. 전 세계에서 500대 한정 생산했으며, 1924년작 타입 35 리용 그랑프리카를 75% 수준으로 복제했다. 이 차는 어린이용이지만 실제 부가티 차량과 같은 사양을 적용했다. 오리지널 자동차의 알루미늄 게기판이나 스티어링 휠, 타코미터 등이 그대로 장착됐다. 또한 이 자동차는 완전한 전기차다. 속도 역시 어린이들의 수준을 넘어선다. 어린이 모드에서는 시속 20㎞까지 주행이 가능하다. 하지만 전문가 모드로 전환할 경우에는 시속 48㎞까지 낼 수 있다. 이 차량은 부가티 브랜드의 110주년을 기념해 제작됐으며, 2019 스위스 제네바 모터쇼에서 첫 선을 보이며 관심을 모았다. 당초 500대 한정 물량은 초기에 완판됐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가 확산하면서 일부 고객이 취소를 해 물량이 일부 남았다고 포브스는 전했다.[28]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1.0 1.1 1.2 1.3 1.4 1.5 1.6  〈부가티〉, 《나무위키》, 
  2. 2.00 2.01 2.02 2.03 2.04 2.05 2.06 2.07 2.08 2.09 2.10 2.11 2.12 2.13 2.14 2.15 "Bugatti", Wikipedia
  3. "Official BUGATTI Automotive Website", BUGATTI
  4. 4.0 4.1 최희준 기자, 〈부가티, '세상에서 가장 비싼 차' 공개 …213억에 팔려〉, 《조선일보》, 2019-03-07
  5. "Ettore Bugatti", Wikipedia
  6. "Stephan Winkelmann", Wikipedia
  7. 7.0 7.1 7.2  〈"De Dietrich-Bugatti", Wikipedia
  8. "Bugatti Type 13", Wikipedia
  9. "Bugatti Type 18", Wikipedia
  10. , "Bugatti 8-cylinder line", Wikipedia
  11. "Bugatti Type 32", Wikipedia
  12. "Bugatti Type 35", Wikipedia
  13. 13.0 13.1 13.2 13.3 13.4 13.5 "List of Bugatti prototypes", Wikipedia
  14.  〈부가티 타입 41 루아얄〉, 《나무위키》, 
  15. "Bugatti Type 46", Wikipedia
  16. "Bugatti Type 51", Wikipedia
  17. "Bugatti Type 52", Wikipedia
  18. "Bugatti Type 53", Wikipedia
  19. "Bugatti Type 55", Wikipedia
  20.  〈부가티 타입 57〉, 《나무위키》, 
  21. "Bugatti Type 101", Wikipedia
  22. "Bugatti Type 252", Wikipedia
  23.  〈부가티 베이론〉, 《나무위키》, 
  24.  〈부가티 시론〉, 《나무위키》, 
  25.  〈부가티 디보〉, 《나무위키》, 
  26. 표민지 기자, 〈부가티, 70억짜리 하이퍼카 ‘디보’ 공개..딱 40대 한정 생산〉, 《데일리카》, 2020-08-06
  27.  〈부가티 첸토디에치〉, 《나무위키》, 
  28. 이현택 기자, 〈어린이용 자동차가 8000만원? 시속 48㎞까지 달리는 부가티〉, 《조선일보》, 2020-07-28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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