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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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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익(BUICK)
뷰익(BUICK)

뷰익(Buick, 别克)은 미국 제너럴모터스(GM) 산하의 자동차 회사이다. 미국에서 시판중인 자동차 브랜드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자동차 브랜드이다. 중국어로는 비에커(别克, bié kè)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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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뷰익은 미국 최대 자동차회사 제너럴모터스 산하의 한 브랜드이다. 제너럴모터스는 대표모델인 캐딜락(Cadillac), 쉐보레(Chevrolet), GMC, 오펠(Opel), 홀덴(Holden) 등 13개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뷰익은 미국에서 시판중인 자동차 브랜드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자동차 브랜드 가운데 하나이다. 미국, 캐나다, 중국, 멕시코 등에서 판매된다. 뷰익의 최대 시장은 중국과 미국이다. 본사는 미국 디트로이트에 있다. 1899년 설립된 내연엔진 및 자동차 제조업체 뷰익오토빔앤드파워컴퍼니(Buick Auto-Vim and Power Company)에서 출발했다. 1903년 이 회사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데이비드 던바 뷰익(David Dunbar Buick)에 의해 법인으로 전환되어 뷰익모터컴퍼니(Buick Motor Company)로 바뀌었다. 1904년 미시간 주 플린트에서 첫 제품인 모델B(Model B)를 생산했다. 그해 말 창업자인 데이비드 던바 뷰익은 자동차 사업을 시작하면서 과도한 부채를 지고 경영난을 겪다가 다른 사람에게 회사를 넘기게 되었다. 이듬해 윌리엄 듀런트(William C. Durant)가 뷰익의 지분을 사서 회사를 경영하기 시작했다. 그는 1908년 제너럴모터스를 설립한 뒤 캐딜락(Cadillac), 폰티악(Pontiac), 올즈모빌(Oldsmobile) 등을 인수했다.

주요 인물[편집]

  • 데이비드 던바 뷰익(David Dunbar Buick, 1854년 9월 17일 ~ 1929년 3월 5일) : 뷰익의 설립자이다. 오늘날의 제너럴모터스를 있게 한 첫번째 기업 뷰익 제조회사를 설립한 그는 1854년 스코틀랜드 아브로스(Arbroath)에서 태어났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뷰익은 부모를 따라 미국 이민길에 올랐다. 미시간주 디토로이트에 정착한 부모 덕분에 1884년 배관설비 제작사를 차려 목욕통 같은 것을 만드는 사업을 시작했다. 20세기를 전후한 시점에 뷰익은 생애 처음으로 자동차라는 것을 보고 놀랐고 얼마후 자동차를 샀다. 그 후 1920년부터는 배관설비와 선박엔진을 만들던 자신의 뷰익 제조회사에서 자동차도 만들기로 결심했다. 1903년 자동차 엔진제작 기술자 월터마(Walter L. Marr)의 도움으로 오버헤드 밸브형 2기통 엔진을 얹은 뷰익의 첫 자동차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자동차사업을 시작하면서 빌린 과도한 빚 때문에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다가 회사의 투자가들에게 회사를 넘기게 된다. 1903년 말 회사에 자금을 대주던 디트로이트의 한 투자자가 뷰익 제조회사와 플린트왜건제작소를 합병해 뷰익자동차회사를 설립했으나 별 이익을 못내고 또 다른 투자가인 윌리엄 듀런트(William Durant)에게 넘겼다. 투자가들의 리더십 아래 재조직된 뷰익사는 생산량을 늘려 1905년 모델 C 발표와 함께 750대의 자동차를 생산하고 1907년에는 4641대를 생산해 포드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1908년에는 윌리엄 듀런트가 캐딜락과 올즈모빌, 폰티악 등을 합병해 GM을 설립하면서 생산량이 급속하게 늘어났다. GM은 1923년 100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하며 전 세계에 브랜드 인지도를 높였다. 현재 뷰익은 GM의 한 계열사로서 보수적 이미지의 고급승용차를 생산하고 있다. 1906년 회사를 떠난 뷰익은 자동차 제작과 무관한 일을 하다 1929년 가난하게 생을 마감했다. 지금까지 1700만대 이상의 자동차가 뷰익의 이름을 달고 생산됐지만 실제로 그가 제작에 관여한 차는 고작 120대에 불과했다.[1]
  • 윌리엄 듀런트(William Crapo Durant,1861년 12월 8일 ~ 1947년 3월 18일) : 미국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에서 윌리엄 클라크 듀랜트(William Clark Durant)와 레베카 폴거 듀랜트(Rebecca Folger Durant)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매사추세츠주의 부유한 프랑스계 집안이었는데, 그의 어머니 레베카는 미시건 주지사 헨리 슈레코의 딸이었다. 윌리엄은 할아버지의 목재 창고에서 일하기 위해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그는 미시간 주 플린트에서 시가 판매원으로 출발했고, 결국 자신의 마차 회사를 설립했다. 1886년 듀랜트는 조시아 댈러스 도르트(Josiah Dallas Dort)와 파트너십을 맺고 플린트 로드 카트(Flint Road Cart) 회사를 설립하여 창업 자본금 2,000달러를 전 세계 매출 200만 달러 기업으로 변모시켰다. 1890년까지 플린트에 본사를 둔 듀랜트 도르트 마차 회사는 말이 끄는 자동차의 선도적인 제조사가 되었고 20세기 초에는 미국에서 가장 큰 회사가 되었다. 듀랜트는 엔진의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연소된 연료의 악취가 딸을 한 대에 태우지 않을 정도로 본질적으로 위험하게 만들었다고 느끼며 자동차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었다. 1900년까지, 가솔린으로 움직이는 말 없는 마차에 대한 정부의 약한 규제에 대한 대중의 격렬한 항의가 있기도 했다. 듀랜트는 이런 상황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분노를 알아차렸고, 안전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 규제에 의존하기보다는 이 새로운 종류의 교통수단의 안전을 개선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기회로 삼았다. 자신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 듀랜트는 먼저 판매가 적고 부채가 많은 국내 자동차 회사이자 제너럴모터스의 모체인 뷰익을 구매하였고, 뷰익모터스 사를 설립하여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하였다.[2]

역사[편집]

초기[편집]

1904년 뷰익 모델 B

뷰익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자동차 브랜드 중 하나이며,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자동차 브랜드다. 처음 두 대의 뷰익 자동차는 1899년과 1900년에 수석엔지니어인 월터 마르의 뷰익 오토 빔 앤 파워 컴퍼니에서 만들어졌지만, 회사 소유주 데이비드 던바 뷰익은 정지해와 해양 엔진 생산에 만족하며 자동차 제조를 시작하기를 꺼려 1901년에 뷰익사를 떠나 자신의 산하에 있는 자신의 자동차 회사를 찾았다. 자기 이름 그의 대체자는 1902년 마르의 밸브인헤드(오버헤드 밸브) 엔진에 특허를 출원한 유진 리처드로, 1904년 특허 77만1095호가 뷰익의 이름으로 리차드에게 수여되었다. 1903년 제3차 뷰익자동차가 제작되었고, 이번에는 리차드에 의해 제작되었으나, 1904년 현재 " 뷰익 자동차 회사"라고 불리게 된 뷰익社는 디트로이트에서 미시건주 플린트로 이전하였고, 리처드는 뒤에 남았다. 마르는 플린트에서 수석 엔지니어로 재임용되어 생산 중인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해 뷰익 자동차는 37대로 생산량이 1905년 750대, 1906년 1400대, 1907년 4641대, 1908년 8800대로 증가해 경쟁사인 올즈모빌, 포드, 맥스웰과 1위를 차지했다. 데이비드 뷰익은 1903년 5월 19일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에 있는 뷰익 자동차 회사로 회사를 설립했다. 뷰익사는 1903년 9월 제임스 H에게 사업권을 팔았던 동료 자동차 애호가 벤자민 브리스코에 의해 자금을 지원받았다. 미시간주 플린트에 있는 플린트 웨건웍스의 Whing (1842–1919) 휘팅은 자신의 마차에 뷰익의 엔진을 추가할 생각으로 뷰익의 공장을 가로질러 플린트로 옮겼다. 데이비드 뷰익은 계속 매니저로 있다가 월터 마르(Walter Marr)를 수석 엔지니어로 재취업시켰다. 뷰익과 마르가 이 자동차를 위해 개발한 엔진은 159세제곱인치의 2기통 밸브인헤드 엔진으로 각 실린더가 수평으로 되어 있고 다른 실린더와 180도 반대되는 엔진이었다.

미국 워싱턴 카운티에 있는 작은 타운인 화이팅(Whiting)은 자본이 고갈되기 전인 1904년에 모델 B인 몇 대의 자동차만 만들어 윌리엄 C를 들여오게 했다. 그 해에는 지배적인 투자자로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듀란트는 1904년 B 모델을 몇 개 더 만들었고, 1905년 C 모델의 생산을 크게 늘렸고, 이후 4년 동안 뷰익의 미국 내 가장 많이 팔리는 자동차 브랜드가 되었다. 19세기 동안 듀란트는 또한 플린트에서 1904년까지 이 나라에서 가장 큰 마차를 만드는 회사였고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 중 하나였던 두란트-도르트 마차 회사의 조시아 댈러스 도트와 함께 공동 소유주로서 재산을 모았다. 듀란트는 1905년 대부분의 뷰익 생산을 미시간주 잭슨에 있는 옛 듀란트 도르트 임페리얼 휠 공장으로 옮겼다. 뷰익사는 플린트에서 공장이 완공된 1907년까지 잭슨에서 자동차 생산을 계속했다. 잭슨 공장은 1912년까지 뷰익 트럭과 함께 생산을 계속했다. 데이비드 뷰익은 1906년 출발과 동시에 주식을 팔아 부자가 되었으나, 25년 후 평범한 환경에서 죽었다. 1907년 듀란트는 자동차 제조업체인 캐나다의 R. S. McLaughlin에 모터를 공급하기로 합의하고 1908년에 제너럴 모터스를 설립하였다. 1899년과 1902년 사이에, 두 대의 프로토타입 차량이 월터 로렌조 마르에 의해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에서 만들어졌다. 일부 문서는 1901 또는 1902년 시제품에 대한 것으로서 올즈모빌 커브드 대시(Oldsmobile Curved Dash)와 유사한 틸러 조향이 있다. 1904년 중반, 내구성 실행을 위해 또 다른 프로토타입이 제작되었는데, 이것은 휘팅이 대중에게 제공되는 첫 번째 모델의 생산을 허가하도록 설득했다. 이 프로토타입의 구조는 모델 B의 기초가 되었다.

판매용으로 처음 만들어진 뷰익, 1904년형 B 모델은 미시간주 플린트에 플린트 왜건웍스로 알려진 재구매 공장에서 지어졌다. 그 해에 만들어진 뷰익스는 37개였으며, 그 중 생존자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플린트의 뷰익 갤러리 & 리서치 센터에 있는 1904년 지구력 자동차와 캘리포니아의 한 열렬한 지지자가 사단 창설 100주년을 맞아 조립한 모델 B라는 두 개의 복제품이 현존하고 있다. 이 두 차량은 모두 그 초기의 벅스의 다양한 부품과 가공된 부품을 사용한다. 이 차량들은 각각 1904년 생존한 것으로 알려진 두 개의 엔진으로 건설되었다. 뷰익의 초기 성공은 주로 현재 오버헤드 밸브(OHV), 유진 리차드가 특허하고 리처드, 뷰익, 마르가 개발한 엔진으로 알려진 밸브인헤드 엔진이라고 불리는 것에 기인한다. F 모델은 2기통 엔진과 87인치 휠베이스, 그리고 무게는 1,800파운드였다. General Motors의 창조는 부분적으로는 뷰익의 성공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에 마르와 리차드의 디자인이 GM으로 직접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모델 B에 도입된 전동차 및 섀시 아키텍처는 1909년 모델 F를 통해 계속되었다. 1904년 뷰익의 기본 디자인은 오늘날의 표준으로도 최적으로 설계되었다. 플랫-트윈 엔진은 본래 균형이 잡히는데, 토크가 종방향으로 섀시에 제시되어 바람직하지 않은 횡방향 운동을 일으키지 않고 실제로 전면 엔드 리프트를 취소한다. 그 엔진은 선박들 가운데에 탑재되었고, 지금은 최적의 위치로 여겨지고 있다.

빌리 듀란트는 타고난 프로모터였고 뷰익도 곧 미국에서 가장 큰 자동차 제조사가 되었다. 듀란트는 이에 따른 이익을 이용해 새로운 거대 기업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에 전화를 걸며 일련의 기업 인수에 착수했다. 처음에는 제너럴 모터스로 구성된 제조사들이 서로 경쟁했지만 듀란트는 이를 끝냈다. 그는 각 제너럴 모터스 사가 한 등급의 구매자를 목표로 삼기를 바랐고, 그의 새로운 계획에서 뷰익은 상위권에 근접했다. 단지 캐딜락 브랜드만이 더 많은 명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뷰익만이 현재 제너럴 모터스 라인업에서 차지하고 있는 순위였다. 자원을 절약하기 위해 뷰익 차량은 GM A 플랫폼이라고 불리는 공통 플랫폼을 공유했는데, 이 플랫폼은 시보레, 오클랜드, 올드모빌레, 캐딜락과 공유되었다. 이상적인 뷰익 고객은 편안히 잘 살고 있고, 아마도 캐딜락을 살 여유가 있을 만큼 충분히 부유하지는 않을 것이며, 캐딜락을 과시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확실히 표준 이상의 자동차를 위한 시장에 있다. 처음에는, 뷰익도 자동차 경주에서 네이피어 같은 것을 따랐고 인디애나폴리스 모터 스피드웨이에서 열린 첫 경주에서 우승했다

소형 모델 B에 최초로 합류한 풀사이즈 뷰익은 1907년 모델 D가 4기통 255.0 cu in (4,178 cc) T-head 엔진으로 도입되었고, 후륜 구동으로 전면부에 설치되었다. 이것은 뷰익에서 만든 사이드 밸브를 가진 유일한 차들 중 하나였다. 1911년 뷰익사는 최초의 폐차차량을 선보였는데, 포드보다 4년 앞섰지만 캐딜락보다 5년 뒤 첫차였다. 이 자동차는 플린트의 완전히 새로운 공장에서 만들어졌고, 후에 뷰익 시로 알려지게 되었다. 1920년대 뷰익은 다양한 크기의 차량을 만들었으며, 다양한 연도의 시리즈 지정이 있었으며, 때로는 숫자를 사용했으며, 후기에는 문자 지정 방식을 사용했다. 스트레이트 식스(straight-six)가 장착된 대형 차량 중 하나는 뷰익 마스터 식스(Buick Master Six(Buick Master Six) 1910년대와 1920년대에 뷰익은 중화민국의 프레스티지 브랜드로, 또는 고급 정치인과 황제가 주도하거나 지지하는 브랜드를 가지고 있었다. 뷰익사는 현재 생산량의 80%를 중화인민공화국에서 판매하고 있으며 중화민국에서 대만에서 마이너 플레이어로 활동하고 있다. 1929년 제너럴모터스(GM)의 동반 메이킹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뷰익자동차사업부는 뷰익과 올드모빌 간의 가격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고안된 마퀘트 자매 브랜드를 론칭했으나 1930년 마퀘트가 단종됐다. 모든 뷰익, 마퀘트, 바이킹, 올즈모빌레 제품은 1926년부터 새롭게 선보인 GM B 플랫폼을 공유했다. 뷰익은 1931년 모델 연도에 OHV 뷰익 스트레이트-8 엔진과 시리즈 50을 제외한 모든 모델에서 싱크로메쉬 변속이라는 두 가지 주요 성과를 선보였다. The 8은 220입방인치(보어 2 7/8인치 스트로크 4.25인치)의 세 가지 대체품으로 제공되었으며, 77개의 브레이크 HP로 시리즈 50에서 사용할 수 있었다. 시리즈 60 엔진은 90 브레이크 HP를 제공하는 272 cu. in. 유닛(보어 3 1/16인치, 스트로크 5인치)이었다. 시리즈 80과 시리즈 90은 104 브레이크 HP에 344 cu. in. 버전(보어 3 5/16인치, 스트로크 5인치)을 사용했다.[3]

1940년대[편집]

1940년, 슈퍼 스테이션 왜건에 뷰익의 "부동산" 명칭이 처음 사용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문에 1942년 자동차 생산이 중단되었다. 뷰익사는 그해부터 M18 헬캣 전차 구축함을 생산해 B-24 라이베레이터, 더글러스 C-47 스카이트레인, 더글러스 C-54 스카이마스터 등에 방사형 엔진을 공급했다. 1945년 가을, 자동차 생산이 재개되었다. 1948년, 다이나플로우 (Dynaflow) 자동변속기는 뷰익에 의해 처음 제공되었다. 1949년에 뷰익의 벤티포트(VentiPorts)가 출시되었다.

1950년대[편집]

1953년은 뷰익 V8 엔진과 로드마스터 스카이라크의 소개뿐만 아니라 뷰익의 50주년을 기념했다. 1955년 뷰익 사는 1977년까지의 기록인 73만8814대의 차량이 판매되어 현재까지 최고의 모델 연도 판매를 기록했다. 1957년, 뷰익의 새로운 364 cu. in. 엔진 블록과 볼 조인트 프론트 서스펜션이 출시되었고 로드마스터는 알루미늄 핀 브레이크 드럼을 가지고 있었다. 1959년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새로운 모델이 도입되었다. 엘렉트라(Electra), 인빅타(Invicta), 르세이버(LeSabre)뿐만 아니라 새로운 401 cu. in. 일렉트라와 인빅타의 V8 엔진. 엘렉트라는 또한 그 해에 인디애나폴리스 500 레이스를 완주했다.

1960년대[편집]

일렉트라 225는 1960년과 1963년에 데이토나 500 경주를 완주했다. 1961년에 새로운 파이어볼 V6 엔진이 도입되었고 스카이락 명판이 새로운 스페셜 컴팩트 카 라인의 탑 모델로 돌아왔다. 뷰익 스페셜은 1962년 올해의 모터트렌드카로 선정되었다. 또한 1962년에는 인빅타에 트림 레벨로 와일드캣이 도입되어 이듬해 독자적인 모델이 되었다. 1963년 리비에라는 자체 모델로 도입되었다. 1960년대 중반 뷰익 사는 북미 대리점을 통해 공식적으로 독일제 오펠 자동차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1967년, 레이디얼 타이어는 모든 풀사이즈 뷰익스의 옵션으로 사용 가능해졌다.[4]

1970년대[편집]

1970년대에는 1970년 에스테이트 왜건, 1971년 센츄리온, 1973년 아폴로, 1975년 스카이호크 등 뷰익 라인업에 신규 모델들이 대거 추가됐다. 또한 1975년에는 일렉트라 225 유한회사에서 트림/옵션 패키지로 뷰익의 '파크 애비뉴' 명판이 처음 등장했다. 뷰익 세리지는 1970년대 중반에 인디애나폴리스 500 레이스를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걸었다. 1976년, 뷰익사는 이전에 시판했던 오펠 카데트 모델을 대체하기 위해 재장착된 이스즈 제미니스(Isuzu Geminis)를 오펠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듬해 일렉트라 225와 르사브르는 재설계 및 축소되었고 뷰익 브랜드는 773,313대가 판매되어 현재까지 최고의 연식 판매량을 기록했다. 1978년은 뷰익의 75주년을 기념했으며 새롭게 디자인된 세기와 터보차지 V6 엔진을 장착한 리갈 쿠페를 환영했다. 뷰익 모델 연도 판매량은 1978년 79만5천316대가 팔리면서 또 하나의 기록을 깼다. 1979년, 리비에라 S타입은 올해의 모터트렌드카로 선정되었다.

1980년대[편집]

1980년대에 뷰익의 라인업은 다양한 모델의 축소 등 몇 가지 변화를 겪었다. 1980년 로이드 로이드는 총책임자로 임명되어 뷰익에게 터보차징, 레이싱, 퍼포먼스 프로덕션카로 더욱 몰아붙였고, 이는 1984년 그가 지엠 사장으로 단기 임기로 향하면서 몇 년 후에도 지속된 모멘텀을 구축했다. 또한 1980년에는 선택된 뷰익 모델에서 디젤 엔진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서머셋은 리갈 리미티드에서 트림/옵션 패키지로 소개되었다. 1981년에는 리비에라에서 T-타입(T-Type) 성능 트림이 도입된다. 리갈은 1981년 인디애나폴리스 500 레이스의 공식 페이스카였다. 1982년 리갈에서 그랜드 내셔널 고성능 패키지가 처음 제공된다. 소프트톱 리비에라는 1976년 국내 라인업에서 사라졌던 컨버터블의 복귀를 이끌었다. 이듬해 쌍둥이 터보 V6를 장착한 리비에라 컨버터블이 인디 500을 질주했다. 또한 1983년에는 81만435대가 판매되어 현재까지 최고의 연식을 가졌다.

1990년대[편집]

1990년에 최초의 리타 컨버터블이 생산되었다. 1990년은 또한 엘렉트라에서 이전에 트림 수준이었던 파크 에비뉴가 1991년 모델 연도의 자체 모델이 되면서 엘렉트라에게는 마지막 해이기도 했다. 1991년 뷰익사는 매출과 시장점유율 개선에서 업계를 주도했다. 네 개의 문이 달린 새 리갈이 1984년 이후 첫 리갈 세단인 1991년 출시되었다. 뷰익도 파크 애비뉴 울트라에서 슈퍼차지 3.8L V6를 선보였다. 슈퍼차징은 뷰익에서 매우 유명해졌고, 새로운 밀레니엄에 이르러, 뷰익은 슈퍼차지 자동차의 선두 마케터이자 업계 선두주자가 되었다. 1991년 로드마스터는 33년의 공백 끝에 돌아왔다. 로드마스터는 처음에 마차로만 제공되었고 1992년 세단을 추가했다. 1992년, 르사브레(LeSabre)는 전년도 파크 애비뉴와 같은 노선을 따라 재설계되었다. 1992년에는 새롭게 디자인된 스카이락도 도입되었다. 1993년에는 뷰익의 9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판 르사브레가 판매되었다. 이 모델에는 커스텀 트림 레벨 표준 장비 외에도 '90주년' 배지, 카세트 플레이어, 크루즈 컨트롤, 리어 윈도우 디포거, 파워 드라이버 시트, 카펫 바닥 매트, 외부 핀 스트라이프, 와이어 또는 알루미늄 휠 커버 선택 등이 포함됐다. 1995년, 1994년의 공백이 있은 후, 리비에라는 이전 세대의 더 전통적인 이미지에서 출발하는 급진적인 스타일링을 가지고 돌아왔다. 205 hp (153 kW) 자연 흡기 3800 V6가 표준이었으며, 225 hp (168 kW) 및 275 lb³ft (373 N37m)의 슈퍼차지 버전을 옵션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리비에라스는 현재 미시간 주 오리온 호수에 4도어 올즈모빌레 오로라와 같은 캐딜락에서 파생된 G 플랫폼을 타고 건설되었다.

1996년에는 로드마스터 세단과 마차가 모두 단종되었다. 1998년 플린트에서 95년을 보낸 뒤 뷰익 본사는 디트로이트로 이전되었다. 뷰익 총괄 매니저인 밥 콜레타(Bob Coletta)는 그가 로거 아담스(Roger Adams)에게 뷰익 최고위직을 넘기기 전에 상하이에서 첫 번째 중국인 뷰익이 출발하는 것을 보았다. 뷰익 갤러리와 리서치 센터는 플린트 슬론 박물관에 문을 열었다. 사업부의 조직 개편은 판매와 마케팅을 분리했다. 1999년, 거의 1600만 뷰익스의 마지막이 플린트 뷰익 시티에 지어졌다. 1999년형 르사브르라는 마지막 차는 그해 6월 29일 조립라인에서 굴러 떨어졌다. 주요 독립적인 품질 조사에서 뷰익은 37개 국제 브랜드 중 2위(및 국내 상위)를 차지했으며 뷰익시티는 자동차 조립 공장 중 세계 1위 자리를 공유했다. 북미 시장에서 모든 쿠페의 판매가 감소함에 따라 GM은 리비에라 단종을 결정했다. 1999년은 1998년 11월 25일에 생산이 중단되면서 이 자동차의 마지막 모델 연도였다. 마지막 200대의 자동차는 특별한 은색 페인트와 트림을 가지고 있었고, "은색 화살" 모델로 표기되었는데, 이 모델은 빌 미첼이 리비에라 차체에서 제작한 은색 화살 전시 차량 몇 대를 다시 살펴본 것이다. 8세대 리비에라스는 1980년대 그랜드 내셔널스 이후 가장 강력한 V6 뷰익 엔진을 받았다. 슈퍼차지 OHV V6는 토크와 가속이 인상적인데, 7초 이내에 0에서 60마일(97km/h)으로 차를 밀었고, 1⁄4 마일을 15.5초 만에 돌리면서 18개 시/27 고속도로의 MPG 연비 등급을 달성했다.

2000년대[편집]

2000년대 들어 인기가 높아지던 크로스오버/SUV 시장에 유리하게 콤팩트, 퍼포먼스 부문이 버림받으면서 뷰익의 라인업이 수정됐다. 2000년 뷰익사는 새롭게 디자인된 르사브르(미국산 풀사이즈 자동차 8년 연속 베스트셀러)와 더욱 강력한 센츄리(Century)를 들고 새 천년을 향해 나아갔다. 1899~1900년 디트로이트 최초의 실험차, 1904년 플린트 최초의 생산차 이후 3500만 개 이상의 뷰익가 건설되었다. 2000년형 르사브레는 1999년 3월에 도입되어 현재는 GM의 G 플랫폼에 구축되었지만, GM은 계속해서 그것을 H 플랫폼으로 지칭하는 것을 선택했다. 르사브르는 미시간주 햄트램크에 있는 GM의 디트로이트/햄트램크 조립공장과 미시간주 오리온 호수에 있는 오리온 조립공장에서 제조되었다. 재설계 시 변경된 부분에는 후드와 함께 열리지 않는 새로운 그릴과 약간 더 작은 외부 치수가 포함되었다. 다소 작은 외관 사이즈에도 불구하고 이전 모델과 비슷한 내부 공간과 트렁크 공간을 제공했다. 2001년에는 랑데부스가 2002년 모델로 도입되면서 뷰익의 크로스오버 시장 첫 진입을 보았다. 2003년 뷰익 센티엠 크로스오버 컨셉트카는 뷰익 자동차 사업부의 100주년을 기념했다. 센타임(Centieme)의 외부 디자인과 내부 특징 중 일부는 나중에 2008년 엔커브 크로스오버에 나타날 것이다. 2004년 뷰익사는 레이니어 중형 SUV를 추가했고 1년 뒤 신형 테라자 미니밴이 추가됐다. 그 후 몇 년 동안 뷰익은 북미 라인업을 통합하기 시작했고 2008년까지 라크로스/알루어, 루체른, 그리고 2008년형 신형 엔커브 등 단 3개 모델로 줄였다. 슈퍼네임 역시 라크로스와 루체른에 새로운 퍼포먼스 트림 수준으로 50년 만에 돌아왔다. 이 브랜드의 전체 판매량은 미국에서 떨어졌고, 나이든 구매자들에게 주로 어필한다는 평판과 함께, 이 10년 내내 뷰익 마크가 중단될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중국에서의 모델 라인업의 수익성과 인기는 제너럴 모터스 내에서 뷰익의 미래를 보장했으며, 폰티악 브랜드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2005년 이후 GM은 점차적으로 뷰익과 GMC 및 전 폰티악 대리점을 통합해 현재의 뷰익-GMC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2009년 제너럴모터스(GM) 11장 조직개편과 등장 당시 중국에서의 사업부 성공을 이유로 뷰익을 '핵심 브랜드'로 지정했다. 뒤에서 GM은 원래 다른 브랜드에 맞게 계획했던 제품을 뷰익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오펠 휘장은 원래 제2세대 토성 아우라가 되려 했으나, 대신 새로운 뷰익 리갈이 되었다. 2009년 J.D.에서. 파워 앤 어소시에이트 차량 신뢰도 연구, 뷰익은 미국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브랜드로 재규어와 동률을 이뤘다.

2010년대[편집]

2010년대는 고전적인 뷰익 명판(Regal)이 돌아왔을 뿐만 아니라 몇 개의 새로운 명판이 추가되었다. 이 10년 동안 이 브랜드의 첫 해치백은 1987년 이후, 첫 공장 컨버터블은 1991년 이후, 그리고 1996년 이후 최초의 스테이션 왜건도 있었다. 뷰익도 2010년대 인기 크로스오버/SUV 시장에서 입지를 더욱 넓혔다. 2009년 1월, 뷰익은 전통적인 뷰익 단서가 포함된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링 방향인 2010 라크로스 세단을 선보였다. 시장에서는 라크로스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렉서스 ES 등 럭셔리 모델에 대한 호평이 이어졌다. 2010년 뷰익은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자동차 브랜드가 되었고 젊은 고객층을 끌어들였다. 당시 GM사 대변인은 뷰익이 다양한 아큐라, 인피니티, 렉서스, 볼보 모델과 경쟁하는 '프리미엄(Premium)' 마르케(엔트리급 럭셔리)로 포지셔리했고, 캐딜락은 BMW, 메르세데스-벤츠 등의 브랜드가 포함된 '럭셔리' 퍼포먼스 부문을 겨냥했다고 밝혔다. 유럽 오펠 휘장아에 기초한 소형 모델인 올 뉴 리갈 세단이 7년간의 공백 끝에 2011년 모델 연도에 재도입되었다. 2012년에는 쉐보레 크루즈를 기반으로 한 콤팩트 세단이었던 올 뉴 베라노가 라인업에 합류했다. 게다가, 성능 지향적인 리갈 GS는 공식적으로 판매에 들어갔고, 거의 20년 만에 수동 변속기와 터보차저를 제공하는 첫 번째 뷰익이 되었다. 뷰익도 2012년 라크로스와 리갈에 이어시스트(eAssist) 기술을 도입해 일반 가스 엔진 버전 대비 연비 등급을 최대 38% 향상시키는 데 기여했다. 한편 엔커브 크로스오버의 매출은 강세를 유지했다. 2012년 1월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북미국제오토쇼에서 올 뉴 앵콜 미니 크로스오버가 공개됐다. 또한 2012년에는 베라노의 터보차지 버전이 도입되었고 2013년식 모델을 위해 Enclave가 재설계되었다. GM은 2013년 오펠과 보크홀, 뷰익 등 브랜드 간 시너지를 더 활용한 하이브리드 글로벌 브랜드 계획을 확정했다. 라크로스와 리갈은 2014MY를 위해 새로워졌다. 2015년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북미국제오토쇼에서 완전히 새로운 카스카다 준중형 컨버터블이 데뷔했다. 지난 11월 LA 오토쇼에서는 올 뉴 2017 라크로스가 선보였다. 뷰익도 인포메이션 컴팩트 크로스오버가 2016년 여름부터 북미에서 판매될 것이라고 확인했다. 베라노 콤팩트 세단은 2017년 북미 뷰익 라인업에서 탈락했다. 2017년 3월 GM이 오펠/보크홀 부문을 그룹 PSA에 매각함에 따라 뷰익사는 현 세대 차량 완성으로 오펠 모델/디자인 공유에서 멀어질 전망이다. 뷰익은 2018년 리갈 세단을 해치백과 스테이션 왜건 차체 스타일을 제공하는 올 뉴 모델로 교체했다. 이 새로운 리갈은 1987년 스카이호크 이후 북미 시장을 위한 뷰익의 첫 해치백이자 1996년 로드마스터 이후 최초의 스테이션 왜건이었다. 2018년에도 뷰익과 동행할 서브 브랜드가 추가됐는데, 에비니르 배지가 라인 레벨 트림 상단에 적용돼 GMC의 성공적인 데날리 서브 브랜드와 동일한 전략을 활용했다. 2019년은 전 세계 캐스캐나다 컨버터블과 북미 시장용 라크로스 세단의 마지막 해가 될 것이다.

2020년대[편집]

2020년의 새로운 것은 앙코르 GX 크로스오버로 기존의 앙코르와 인포네이션 사이에서 슬레이트로 진행되었다. 리갈 해치백과 스테이션 왜건은 2020년 북미 시장을 위해 단종되었다. 2021MY부터 뷰익의 북미 라인업은 앙코르 준콤팩트 크로스오버, 앙코르 GX 콤팩트 크로스오버, 인포메이션 컴팩트 크로스오버, 엔커브 미드사이즈 크로스오버로 구성된다.

생산 모델[편집]

뷰익 엑셀(Buick Excelle)
뷰익 베라노(Buick Verno)
뷰익 리갈(Buick Regal)
뷰익 라크로스(Buick Lacros)

뷰익 엑셀[편집]

뷰익 엑셀(Buick Excelle)은 GM의 뷰익 브랜드로 판매하는 소형차의 통칭이다. 오리지널 뷰익 엑셀은 대우자동차가 한국에서 개발한 대우 라세티를 기반으로 한다. 이 차는 원래 대우 브랜드로 전 세계적으로 판매된 반면, 2004년 제너럴 모터스는 유럽 내 모든 대우 제품을 쉐보레로 리브랜딩했다. 상하이GM은 라세티에 본사를 둔 엑셀레와 평행하게 중국에서는 '뷰익 엑셀 GT'라는 신차를 선보였지만 중국어로 '잉랑'이라고 불렀다. 오펠 국제기술개발센터(ITDC) 뤼셀셰임에서 개발한 GM의 글로벌 소형차 플랫폼 '델타 II'를 기반으로 한다. 쉐보레 크루즈는 이 같은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다. 2009년 경제위기와 그에 따른 토성 브랜드가 소멸하고 GM의 북미 브랜드를 4개로 줄인 이후 오펠 모델은 더 이상 토성 브랜드가 아닌 뷰익 브랜드와 일직선이 된다. 결과적으로, 뷰익 차이나가 제작하고 판매하는 모델은 GM의 글로벌 플랫폼의 오펠 변종 쌍둥이다. 중국에서는 뷰익 엑셀레 XT라는 해치백이 2009년에 데뷔했는데, 이것은 근본적으로 아스트라 J(2009–현재)가 재입고된 것이다. 2010년에 뷰익 엑셀 GT(Buick Excelle GT)(중국어: 别克英朗GT)라고 불리는 세단이 출시되었다. 뷰익엑셀 GT 2세대를 기반으로 한 부동산 자동차는 뷰익엑셀 GX라고 불리는 2018년에 첫 선을 보였다. 뷰익 측은 2016년 8월 13년 동안 268만 대가 팔리는 등 판매 호조에도 엑셀 생산 중단을 결정했다. 브랜드가 시장으로 이동하는 동안 가격이 저렴하다는 점을 주요 이유로 들며, 시보레와 우링이 엑셀의 이탈로 인해 점유하지 못한 저가 시장 틈새를 채우는 등 직접적인 후계자는 없을 것이다. 또한 2018년 6월 뷰익 엑셀 2세대를 출시했다. 엑셀 GT 아래 포지셔닝한 2세대 엑셀은 완전히 새로운 모델로 새로운 플랫폼과 스탠드를 기반으로 했다.[5]

뷰익 베라노[편집]

뷰익 베라노(Buick Verno)는 제너럴모터스(GM)가 미국 미시간 주 오리온 타운쉽의 오리온 조립공장에서 뷰익 브랜드를 위해 제조한 전방엔진, 전륜구동 배치, 4도어, 5인승, 엔트리급 럭셔리 소형차로, 중국에서는 GM이 SAIC모터, SaIC-GM(상하이 GM이라고도 한다)과 합작했다. 베라노는 2011년 1월 10일 북미 국제 오토쇼에서 당시 곧 출시될 뷰익의 2012년 모델 시사회 도중 데뷔했다. 미국 뷰익사가 1998년 뷰익 스카이락 이후 처음으로 내놓은 소형시장이다. 베라노는 여름치고는 스페인어다. 베라노는 중국 시장을 위해 개발되어 중국에서 생산된 뷰익 엑셀 GT와 2012년 모스크바 국제 자동차 살롱에서 선보인 오펠 아스트라/보크홀 아스트라 세단과 함께 시보레 크루즈와 해당 MPV 모델들과 제너럴 모터스의 델타 II 플랫폼을 공유한다. [6]

뷰익 리갈[편집]

뷰익 리갈(Buick Regal)은 뷰익사가 1973년 연식을 위해 처음 선보인 고급 중형차다. 이 모델은 원래 개인용 고급차로 포지셔닝되었으며, 리갈이 개인용 고급 쿠페 시장의 쇠퇴로 세단 전용이 된 1997년까지 일반적으로 쿠페와 세단 형태로 제공되었다. 1973년과 2004년 사이의 특정 모델 연도 동안, 리갈은 비슷한 뷰익 세기(Buick Century)와 신체와 파워트레인을 공유했다. 비록 리갈은 좀 더 고급스런 차량으로 자리 잡았지만 말이다. 리갈은 2004년 북미 시장에서 단종되었고, 뷰익라르코스에 의해 계승되었다. 2008년에는 중국 시장에 새로운 버전의 리갈이 도입되었는데, 이것은 오펠 휘장의 배지 제작 버전이다. 신형 리갈은 2011년 북미 시장에 선보여 중형차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리프트백 세단과 '투어X' 스테이션 왜건 버전으로 제공되는 2018년형 신모델이 선보였다. GM은 2020년 모델 이후 북미 시장에서 리갈을 단종시켜 뷰익만 CUV 마커로 만들었다. [7]

뷰익 라크로스[편집]

뷰익 라크로스(Buick Lacros)는 뷰익사가 2004년부터 제조해 판매하고 있는 중형 세단이다. 라크로스는 현재 브랜드의 주력 차량으로 뷰익 리갈 위에 자리 잡은 3세대다. 1세대 라크로스는 2005년 모델부터 센츄리와 리갈을 북미에서 대체하여 브랜드의 중형차 역할을 했다. 이 자동차는 원래 캐나다에서 뷰익 얼루어로 팔렸다. 2010년, 라크로스는 완전히 새롭게 디자인되었고 더 큰 프리미엄 세단으로 시장으로 이동했다. 이 모델은 2017년에 다시 디자인되었다. 북미 시장의 경우 2019년 2월 15일 생산이 종료됐지만, 라크로스는 2019년 페이스리프트를 받은 중국에서 여전히 생산되고 있다. [8]

특징[편집]

안전도[편집]

안전 또는 운전자 지원 기능은 차량을 안전한 방식으로 운전해야하는 운전자의 책임을 대체 할 수 없다. 운전자는 항상 교통, 주변 및 도로 상황에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가시성, 날씨 및 도로 상태는 기능 성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주변환경을 더 잘 인식 할 수 있도록 일부 뷰익 모델은 차량 주변 장면에 대한 오버 헤드 가상 조감도 보기를 제공하는 통합카메라 제품군을 제공한다. 뿐만아니라 특정위험이 감지되면 뷰익이 알림을 트리거하여 알려준다. 일부 모델에서 제공되는 일부 기능은 브레이크를 적용하거나 스티어링 휠을 부드럽게 움직여 충돌을 방지하거나 상황에 따라 심각도를 낮출 수 있다. 충돌이 발생할 경우 강력한 구조 역학, 지능형 에어백 시스템 및 고급 안전 시스템이 함께 작동하여 승객과 승객을 보호한다. 또한 사용 가능한 전방 보행자 제동 기능은 보행자가 바로 전방에 감지되면 이를 알려준다. 충돌이 임박하고 아직 브레이크를 적용하지 않은 경우 오디오 및 시각적 경고가 트리거되고 브레이크가 자동으로 적용될 수 있다. 감지된 차량을 따라가는 동안 전방 충돌 상황이 임박한 경우 전방 충돌 경보는 잠재적인 충돌을 경고 할 수 있다. 측면 사각지대 경고가 있는 사용 가능한 차선변경경고는 측면 사각 지대에서 감지된 움직이는 차량이나 차선변경 기동중에 측면 사각지대에 빠르게 접근하는 차량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측면 미러 경고를 제공한다. 또한 차선 이탈 경고 기능이 있는 차선 유지 보조 기능을 사용하면 스티어링 휠을 부드럽게 돌려서 조향이 활발하지 않고 방향 지시등이 활성화되지 않았을때의 의도치 않게 차선에서 표류하는것을 방지 할 수 있다. 필요한 경우 차선 이탈 경고를 제공 할 수도 있다. 후진시 사용가능한 후방 교차 교통 경보는 감지 된 왼쪽 오른쪽 교차 교통에 접근하지 않도록 경고를 제공 할 수 있다. 이것은 진입로나 혼잡한 주차공간에서 후퇴할 때 특히 유용하다.[9]

트리실드[편집]

뷰익 트리실드(Trishield)는 이 자동차 회사의 설립자인 데이비드 던바 뷰익의 선조의 외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저 볏은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체크무늬의 은색과 아지랑이가 있는 대각선, 위쪽의 숫사슴, 아래쪽의 구멍이 난 십자가를 가진 붉은 방패였다. 그 부서는 1937년에 라디에이터 그릴에 이것을 채택했다. 1960년에 이 로고는 대대적인 개편을 받았다. 그것의 단일 방패는 빨강, 흰색, 파랑의 3인조로 대체되었는데, 이는 당시 르사브르, 인빅타, 엘렉트라를 뷰익 라인업에서 가리킨다. 1970년대에 뷰익호크에 의해 대체되었으나 1980년대에 트리쉬필드가 다시 등장하여 단순화되었지만 동일한 애국적 색채를 띠고 있다. 빨간색, 흰색, 파란색이 특징인 트리실드는 2005년에 단순화되었지만 색상은 세단과 십자수들을 위한 뷰익 행진곡에서 현재의 차량 3중창을 대표하여 돌아왔다. 하지만, 트리실드는 훨씬 더 증류되고 대담해진 3색 형태를 즐긴다.

클래식 그릴 스타일링[편집]

다시 나타난 뷰익 스타일링 큐(Buick styleing cue, 1942~1958년대의 식)는 그릴이 많은 가늘고 수직적인 색갈비뼈가 앞으로 튀어나온 수평 타원형을 위한 것이다. 이것은 때때로 뷰익의 "달러의 미소"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특히 1950년대 초반 모델들은 치아를 약간 닮은 두껍고 고도로 광택이 나는 갈비뼈를 가지고 있었다. 1950년형 모델은 치아가 범퍼 위로 교차하면서 1950년형 "회색"을 드러내면서 이 치아 테마를 극으로 만들었다. 1951년형 모델은 범퍼 뒤로 치아를 돌려놓으며 이 테마에 다시 합류했다. 현재 뷰익 모델은 크롬드 "Waterfall Grilles"로 클래식한 스타일링을 새롭게 시작했다.

세계분포[편집]

아시아[편집]

뷰익은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고 가장 잘 팔리는 자동차 중 하나이다. 2016년 제너럴 모터스는 중국에서 110만 개 이상의 뷰익스를 판매했다. 뷰익스는 중국에서 항상 인기가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전 중국에서는 자동차 5대 중 1대가 뷰익이었다. 뷰익스는 마지막 황제 푸이, 초대 대통령 쑨양, 초대 총리 저우언라이가 사용하였다.[10] 1999년부터 상하이 GM이 중국용 뷰익 리갈을 생산, 판매하고 있으며, 고급 전문 가정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다는 것이 입증되어 뷰익이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자동차 브랜드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 중국의 뷰익은 HRV라는 5도어 해치백 버전과 비슷한 소형 엑셀레와 GL8이라는 미니밴을 판매한다. 국내 시장을 위한 많은 Buicks는 미국 시장의 동일한 명판에 오버헤드 밸브가 있는 엔진보다 이중 오버헤드 캠축이 있는 소형 연료 효율적 엔진을 장착하고 있다. GM대만은 1989년 8월에 설립되었다. 1990년대 초반 뷰익사는 다른 GM 브랜드와 함께 대만 거리에서 큰 인기를 끌며 자주 볼 수 있었다. 박애비뉴, 3~4세대 리갈, 6세대 스카이라크가 대만에서 팔리곤 했다. 2004년 12월 제너럴모터스(GM)는 대만에 본사를 둔 회사인 유론과 현지에서 뷰익 차량의 허가제 제조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2005년 7월, 유론 GM자동차. 유론자동차가 지분 51%, GM이 지분 49%를 보유한 합작법인 ㈜율론지엠(Yulon GM)이 설립됐다.

멕시코[편집]

그 때 정부를 대신하여 보호주의 정책이 차량 제조와 수입 자동차 판매에 사용될 수 있는 수입 부품의 비율을 제한하였다. 이후 모든 GM 제품은 쉐보레 대리점이 판매했다. 1990년, 60년대의 보호주의 정책을 대폭 수정한 후, GM은 텍사스 바로 남쪽에 있는 라모스 아리조프의 공장에 있는 멕시코의 뷰익 센츄리(Buick Century)를 조립하여 멕시코의 쉐보레 대리점을 통해 판매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를 '체보레 센트리(Chevrolet Century)'라고 부르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1997년 GM은 멕시코의 뷰익스 생산을 중단했고 2009년까지는 그곳에서 판매되지 않았다. 2009년 폰티악 브랜드 퇴출 발표와 함께 이미 폰티악-GMC 대리점의 대규모 네트워크가 갖춰져 있어 멕시코에서 뷰익스가 다시 한 번 판매될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2009년 7월 24일, 멕시코의 GM의 신임 사장 그레이스 리블린은 부익 브랜드를 라크로스와 엔커브 모델과 함께 십여 년의 공백 끝에 그해 9월 말에 멕시코에서 구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뷰익사는 2010년 여름 폰티악 브랜드가 사라질 때까지 폰티악, GMC와 딜러점을 공유했다. 2019년 3월 26일 뷰익사는 멕시코 사단이 크로스오버(엔코어, 인포메이션, 엔커브)만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라크로스 세단, 리갈 해치백, 리갈 투렉스 스테이션 왜건은 북미 불량 리갈에 묶인 휘장과 뷰익의 중국 독점화 결정과 관련해 오펠의 미래(신규 소유자 PSE 이하)로 브랜드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돼 시장에서 밀려났다.[11]

뉴질랜드[편집]

뷰익은 한때 뉴질랜드에서도 팔렸다. 웰링턴 외곽의 페톤에 있는 GMNZ 공장에서 지어졌지만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에는 뉴질랜드 시장에 뷰익이라는 이름이 부활되지 않았다.

전망[편집]

미국 자동차업체 제네럴모터스(GM)가 중국에서 생산한 중형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뷰익 인비전'을 미국으로 역수입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관련 소식통을 인용해 GM이 내년 초부터 중국 산둥성에서 생산한 뷰익 인비전을 미국에서 판매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초기 수입 물량은 연간 3만~4만대가 될 전망이다. 중국에서 생산된 자동차의 미국 판매는 현지 자동차 업체 중 GM이 최초다. 뷰익 인비전은 한국에서 생산된 '뷰익 앙코르', 미국 미시간주에서 제조하고 있는 '뷰익 엔클레이브'에 이어 미국에서 출시되는 세 번째 뷰익 라인이 된다. GM관계자는 이번 수입으로 미국 내 뷰익 라인의 공백이 메워질 것이라며 비용절감을 목적으로 두진 않았다고 설명했다. 뷰익 모델은 미국보다 중국에서 인기가 더 높다. 지난 10월 약 10만여대의 뷰익이 중국에서 팔렸지만 같은 달 미국 판매량은 1만9000여대에 그쳤다. 이 같은 수요를 충족시키 위해 현재까지는 중국에서 생산된 뷰익은 중국에서만 판매해왔다. 하지만 최근 중국의 자동차시장이 둔화세를 보이면서 남게 된 공급량을 미국으로 돌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WSJ는 이번 수입으로 GM의 생산 전략이 전환될 수 있을 뿐더러 다른 업체들도 비슷한 행보를 고려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현재 미국에서는 앙코르가 뷰익 차종 중 가장 인기가 높으며 다음이 엔클레이브다. 인비전까지 들어오면 혼다의 아쿠라, 포드의 링컨 등 타사 고급차량과 GM과의 경쟁구도는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12]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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