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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트 서프

해시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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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트 서프(Vint Gray Cerf)
다르파(DARPA)

빈트 서프(Vint Gray Cerf)는 인터넷TCP/IP 프로토콜의 개발에 기여한 미국의 전산학자로, '인터넷의 아버지'로 불린다. 국가기술 훈장, 대통령 자유의 메달 등 다양한 학위와 상을 받았다.

생애[편집]

빈트 서프는 미국의 코네티컷주의 뉴헤이븐에서 태어났다. 그는 벤 나이즈 고등학교에 다녔으며, 로켓다인(Rocketdyne)에서 아폴로 프로그램과 F-1 엔진의 비 파괴 테스트를 위한 통계 분석 소프트웨어의 제작을 돕는 일을 하였다.

1965년에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수학과를 졸업하고 수학 학사 학위를 받았으며, 졸업한 후에는 IBM에서 2년간 퀵트란(QuikTRAN)을 지원하는 시스템 엔지니어로 일하였고,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UCLA) 대학원에 진학하기도 하였다.

1970년에는 M.S 학위를 받았고, 2년 뒤에는 박사 학위를 받았다. 빈트 서프는 제럴드 에스트린 이라는 교수 밑에서 공부하였고, 인터넷상의 첫 번째 노드인 ARPANet의 첫 두 노드를 연결한 레너드 클라인록 교수의 데이터 패킷 네트워킹 그룹에서 일하였으며, ARPANet의 호스트 대 호스트(host-to-host) 프로토콜 개발에 기여하였다.

그는 대학원에서 ARPANet 시스템 아키텍처에서 일하고 있던 밥 칸을 만났다. 1974년 12월에는 요겐 달랄(Yogen Dalal), 칼 선샤인(Carl Sunshine) 등과 함께 최초의 TCP 프로토콜을 만들었다.

1972년부터 1982년까지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조교수로 재직하면서 패킷 네트워크 상호접속 프로토콜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으며, 밥 칸과 함께 DoD TCP/IP 프로토콜 세트를 공동 설계하였다. 1973년부터 1982년까지는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에서 근무하였으며, TCP/IP, 패킷 라디오(PRNET), 패킷 위성(SATNET), 패킷 보안 기술 등의 개발을 위해 다양한 부서에 자금을 지원하였다. 이렇게 다양한 부서에 자금을 지원한 이유는 군부가 이를 필요로 함에 배경을 두고 있었다. 1980년대 후반에는 MCI로 이동하여 인터넷에 연결되는 최초의 상용 이메일 시스템(MCI 메일)을 개발하는 것을 도왔다.

1982년부터 1986년까지는 자신이 근무하던 MCI 디지털 정보 서비스의 부사장이 되었고, 인터넷과 연결된 최초의 상용 이메일 서비스인 MCI 메일의 엔지니어링을 주도했다. 1986년에는 밥 칸과 함께 디지털 도서관, 지식 로봇, 기가비트 속도의 네트워크 분야에서 일하면서, 미국 국립 정보기술원에 부사장으로 입사하였다. 1988년에는 최초로 인터넷의 민영화를 위하여 로비를 하였고, 1992년에는 밥 칸과 함께 인터넷 사회(ISOC)를 설립하여 인터넷과 관련된 교육 및 정책, 표준에 대한 리더십을 제공하였다. 그곳에서 빈트 서프는 초대 회장을 역임하였고, 1994년에는 MCI에 재입사하여 기술 전략 수석 부사장으로 재직하였다. 재직하면서 그는 기술적 관점에서의 기업 전략 개발을 지도하는 데 일조하였고, 이후에는 MCI의 아키텍처 및 기술 전략 수석 부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설계자와 엔지니어 팀이 비즈니스 및 소비자용 데이터, 정보, 음성 및 비디오 서비스를 결합하여 전달하기 위한 인터넷 기반 솔루션이 포함된 고급 네트워킹 프레임 워크를 설계하도록 이끌었다.

2005년 10월에는 구글에서 부사장 겸 최고 인터넷 에반젤리스트(Internet Evangelist)로 일하였으며, 인공지능, 환경주의, IPv6의 출현과 텔레비전 산업의 변혁과 이와 비슷한 분야를 망라하여 이 기술들이 미래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한 예측을 하였다.

2010년부터는 광대역 인터넷 기술을 보다 널리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인 UN 기구의 광대역 디지털 개발 위원회의 위원장으로도 활동하였다.

빈트 서프는 인터넷 주소 관리 기구의 기금과 설립을 도왔고, 1999년 이사회에 가입하여 2007년 11월까지 재직하였다. 2000년 11월부터 이사회를 탈퇴 할때까지 의장으로 있었다.

빈트 서프는 2002년부터 2012년 1월까지 불가리아 대통령의 IT 자문 위원회 소속이었으며, 정치적 리스크 자문기구인 유라시아 그룹 자문위원도 맡았었다.

2006년 2월 7일에는 구글의 대표 인터넷 에반젤리스트로서 미 상원 상무위원회의 네트워크 중립성 청문회에 나와 의견을 말했다. 전체 소비자의 거의 절반이 광대역 통신사에 의미 있는 선택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고 하였으며, 만일 네트워크 중립성적인 정부의 규제가 없다면, 광대역 통신사는 그들의 독점력을 이용하여 소비자를 위한 옵션을 제한할 수 있고 구글과 같은 회사에 대역폭 사용료를 부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2012년 5월에는 전산 기계협회 회장으로 선출되었으며, 2013년 8월에는 사이버 보안 자문 위원회에 가입하였다.

2011년부터 2016년까지는 미국, 캐나다, 카리브해 일부 지역의 IP 주소 지역 인터넷 등록(RIR)의 이사회 회장을 맡았다. 2015년 가을까지는 하버드 대학교의 버크먼 인터넷 앤 소사이어티 센터(Berkman Center for Internet & Society)에서 프로젝트로 시작한 비영리 맬웨어 방지 기구인 스톱 배드웨어(StopBadware)의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빈트 서프는 웹을 더 유용하게 상호 작용하게 만들고 맥 OS X 유틸리티인 'Licquid'를 생산한 영국 Ltd의 자문위원이다. 또한, 큐리오시티스트림(CuriosityStream)의 자문 위원회 회원이다.

2008년에는 IETF의 국제화된 도메인 이름(IDNAbis) 작업 그룹 의장을 맡았다. 같은 해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명할 미국 최초의 최고 기술 책임자의 주요 후보였으며, 앨 고어, 팀 버너스리와 함께 세계 최대 기술 축제 중 하나인 미국판 캠퍼스 파티 실리콘 밸리(Campus Party Silicon Valley)의 공동 의장이었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는 스마트 그리드 상호 운용성 패널(SGIP, mart Grid Interoperability Panel)의 이사회 이사로 선출되었고, 이는 NIST가 2009년 설립한 민관 컨소시엄으로, 진화하는 스마트 그리드에 대한 기준의 조정 및 개발에 기업 및 기타 이해관계자들이 참여 가능한 포럼을 제공했다. 2012년 7월 1일에는 ACM(Association for Computing Machine)의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빈트 서프는 2015년부터 디지털 노후화의 광범위한 위험, 유비쿼터스 디지털 스토리지로 인한 디지털 다크 에이지(digital dark age) 또는 디지털 블랙홀(digital black hole)이라는 우리 시대의 많은 역사적 정보를 잃어버릴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제기해왔다. 이중 가장 큰 문제는 현재의 디지털 데이터 저장소와 이에 접근하는 데 필요한 관련 프로그램, 운영 체제, 컴퓨터 및 주변 장치의 방대한 저장소를 장기간 보관하고 지속적으로 접근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6년 6월에는 NASA와의 연구를 통해 행성 간 인터넷을 목표로 국제 우주 정거장에 지연성 네트워크를 설치하였으며, NASA의 제트 추진 연구소 및 다른 NASA 연구소와 함께 행성 간 인터넷 구축을 위해서도 일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천체 운동에 의해 일어나는 가변적 지연과 붕괴를 포함한 신호 감소에 내성이 있는 무선 및 레이저 통신을 사용하여 행성 간에 통신하는 것이 있다.

2020년 3월에는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1]

인터뷰[편집]

2010년 열린 처칠 클럽 주최의 한 행사에서 빈트 서프는 클라우드 컴퓨팅을 위한 데이터 이동성 기준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현재 클라우드 간 표준이 하나도 없는 상태"라고 지적하며, 1973년도처럼 컴퓨터 네트워크 간의 통신과 연결이 부족했던 상황과 비슷하고 말하였다. 또한, "사람들은 데이터를 이리저리 옮기기를 원하고, 클라우드가 이런 역할을 감당해주길 기대할 것"이라며 여러 클라우드 간의 조합을 이용해 더 많은 컴퓨팅 성능을 이용할 수 있도록 클라우드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또한, 클라우드의 보안성도 언급하였다. "클라우드 보안에는 강력한 인증이 핵심적인 요소가 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이외에도 일상생활에서 모바일 디바이스의 역할은 점점 더 커질 것이고, 홈 어플라이언스나 사무용 장비 등과의 연계를 통해 인터넷으로 통하게 될 것이라 전망하였다.[2]

다음 해인 2011년에는 디지털 브로드밴드 마이그레이션 콘퍼런스에 나와 인터뷰를 통해 IP, 홈 네트워킹, 사물 인터넷, 인터넷 킬 스위치 방지 등의 다양한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첫 번째 질문은 IPv7에 관한 것이었고, 이에 대해 빈트 서프는 주소 공간의 확대를 위하여 고민을 하던 때에는 4개의 제안 사항이 있었으나, 최종적으로 한 가지로 압축되었으며, 따라서 IPv7,8,9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고 설명하였다. 현재 상황으로는 다른 것의 개발이 필요치 않으나, IPv6의 보급이 서둘러 확산되어야한다고 강조하였다. 하지만 이것으로 인해 인터넷의 재설계를 위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노력이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 언젠가는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 하였다. 두 번째 질문은 "일반적인 사용자들이 사용하는 기기에 IPv6의 지원이 가능해야 하는가? 아니면 향후 10년 동안에는 IPv4와 6을 연결하기 위한 NAT와 이동통신업체들의 노력만으로 충분한가?" 였는데, 이에 대해 빈트 서프는 아니라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이동통신업체 수준의 네트워크 주소 변환은 보안이 취약하며, 네트워크 주소 변환을 사용하면 소비자 기기상에서 서버를 이용할 수 없기 때문이라 설명하였다. 최근에는 인터넷이 매우 비대칭적이어서 다운로드 트래픽이 업로드보다 훨씬 더 빠르기 때문에 집에 서버를 두는 것이 브로드밴드 서비스 업체 입장에서는 불호하는 방식이라 말하면서도, 향후에는 클라우드뿐만 아니라 서버를 집에 두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을 밝혔다. 그래서 대칭적인 용량과 더불어 IPv6는 매우 매력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며, 두 개의 프로토콜을 운영해야 하는 현재 상황에서는 NAT이 이용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세 번째 질문에서는 비즈니스 네트워크도 IPv6의 보급이 시급한 사항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고, 이에 대해 빈트 서프는 "우리가 동시에 두 가지 프로토콜을 모두 다 실행할 수 없게 된다면, 그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IPv6만을 실행할 수 있는 서버가 있거나 IPv6만을 실행할 수 있는 사용자만이 있는데, NAT 장비가 고장 난 경우 사용자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라고 말하였고, 두 프로토콜 모두가 일반 가정에서 원활하게 실행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도 말하였다. 네 번째 질문은 "향후의 소비자들이 인터넷에서 주로 사용하게 될 것들은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라는 질문이었다. 이에 대해 그는 소셜 네트워킹이라 대답하였고, 그 플랫폼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콘텐츠를 창조하고 공유할 수 있으며, 그것이 중요한 소통 수단이 될 것이라며 고평가하였다. 그리고 소셜 네트워킹 다음으로는 사물 인터넷을 지목하며, 뛰어난 혜안을 보여주었다.[3]

한국 방문[편집]

2007년 10월 17일[편집]

이날 빈트 서프는 매일 경제에서 주최한 세계지식 포럼에서 21세기 인터넷에 대한 강연을 가졌다. 여기서 그는, 전 세계적 인터넷 이용자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으며, 그중에는 아시아가 가장 많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인터넷의 주 언어가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가 더 많이 쓰일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각 지역의 문화와 언어 같은 것들이 인터넷을 가득 채우게 될 것이라 전망하였다. 이는 다각화되는 인터넷 사용자와 사용 방법이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을 뜻한다고 전했다. 또한 빈트 서프는 한국 시장과 같은 경우에 모바일 디바이스 및 애플리케이션 자체가 첨단이며, 브로드밴드의 보급률 또한 높기 때문에 다양한 기회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 전망하였다. 그는 디지털 정보의 경제적 측면에서 입각하여, 아마존과 이베이, 구글과 같은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창출되고 있다고 말하였으며, 이제는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이 가속화될 것이라 했다. 이번 강연에서 참가자들의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은 내용은 바로 인터넷의 접속 가능한 영역이 태양계로 확대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영역을 태양계로 확대할 수 있는 프로토콜을 개발했으며, 우주 공간에서의 프로토콜 사용의 표준화를 위한 노력이 우주 기반의 자산을 재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준다고 밝혔다.[4]

2018년 5월 15일[편집]

2018년 5월 15일에 사단법인 코드(CODE)와 오픈넷이 한국의 대학로 공공그라운드 지하 1층 001 스테이지에서 빈트 서프와 전길남 박사를 초청하여 행사를 진행하였다. 행사의 주제는 '인터넷의 현재와 미래' 였으며, 현재 기술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더 좋은 방향성을 도모하기 위한 대담이었다. 구체적으로는 블록체인 기술, 망 중립성 논란, 프라이버시 문제, 인터넷과 기술의 미래 및 가짜 뉴스를 중심으로 논의가 이루어졌다.

여기서 빈트 서프는 올해 말이면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인터넷을 사용하게 될 것이며, 이는 전 세계의 절반이 아직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의미한다며 말을 시작했다. 인터넷은 미 국방성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었고, 1994년에 넷스케이프에서 상용화 브라우저를 개발하며 대중들에게 확산되었다는 역사를 언급하며, 현재 인터넷은 사람들에게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모두 안겨주고 있고, 이를 모두 고려하여야 한다고 말하였다. 인터넷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 전 세계적 지식 공유 콘텐츠가 형성된 것이며, 이 양이 너무 많아 누구도 그 위치를 알아내기 어렵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검색 엔진이자, 구글이 하는 일이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멀웨어 등 다양한 디지털 공격이 생겨나고 있고, 네트워크상에서의 사이버 불링, 유해 콘텐츠 유포, 가짜 뉴스 등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설명하였다. 인터넷 콘텐츠의 남용에 대비하여 사용자들이 스스로 방어하고 개인정보를 지키며, 가짜 정보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으며, 추가적으로 인터넷 사용자 모두는 소비자이자 생산자로서 콘텐츠를 생성, 유포 및 전달할 뿐만 아니라 인터넷 구성 요소가 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하였다.

첫 번째 주제는 "비트코인으로 인해 한국에서 화제가 되었던 블록체인 기술의 현재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었다. 먼저 빈트 서프는 "블록체인의 가치를 과대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블록체인 기술은 해쉬펑션(hash function) 이라는 오래된 기술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거래 기술의 무결성을 위해 오래된 기술을 사용하고 있죠. 저는 다음 단계를 위해 더 나은 기술이 나올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예를 들어 거래 내용 자체를 보는 그런 기술 말이죠. 거래 상대방과 거래의 어떤 진위를 우리가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앞으로 블록체인 기술의 관점은 거래 기술의 정확성만이 아니라 그 이상을 파악할 수 있느냐가 문제가 될 겁니다."라고 말하며 기술적 한계가 분명하고 대단한 기술이 아니다라고 말하였다. 추가적으로, 블록체인이 익명성을 보장하기 때문에 강요나 조작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거래는 신뢰의 문제이기 때문에 상대방을 알 수 있는 허가형 블록체인 기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 주제는 "망 중립성에 관련된 미국의 상황은 어떠하고, 이것이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였다. 빈트 서프는 미국에서 망 중립성이라는 것이 어떻게 떠오르게 되었는지, 역사적 맥락을 언급하며 논란이 생긴 이유를 설명하였다. 90년대 중반에 약 8,000개의 인터넷 통신 사업자(ISP)가 미국에 있었고, 다이얼 방식의 모뎀 서비스를 제공하였으나, 광대역 기술이 보급된 시점에 망 중립성의 문제가 중요해졌다고 짚었다. 이로 인해 소비자들의 인터넷 기술 선택 폭이 심각하게 좁혀졌으며, 광대역 안에서 ISP가 독점하는 것을 문제로 지적했다. 예를 들어 광대역 회사가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 기존 광대역 가입자가 경쟁사를 통해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면 광대역을 제한하여 자사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게 하는 행위가 있다. 그리하여 FCC는 비디오 스트리밍 사와 통신사 양쪽에 똑같이 망 중립성을 지키라는 의무를 부여했지만, 법원에서 이를 막아서면서 망 중립성은 실패하고 말았다. 이는 소비자의 자유가 줄어드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말하였다.

세 번째 주제는 "5G 기술이 망 중립성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였다. 이에 대해 빈트 서프는 5G 기술이 인터넷의 대체적인 접속 도구라는 점에서 역량이 기대되고, 유선과 차별화된 서비스하는 점에서 경쟁력이 크다고 평가했다. 또한, "한국에서 어떤 일이 생길지 지켜보면 좋겠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망 중립성의 원칙은 5G 시대에도 유효할 것이라 전망하였다. 그러나 과거의 개념을 그대로 가져올 수 없을 것이라 지적하였고, 아직은 실험 단계이기 때문에 많은 시행착오를 동반할 것이라 평가했다.

네 번째 주제는 "인터넷에서 프라이버시 문제와 해결책은 무엇인가?"로, 당시 화재였던 페이스북 개인 정보의 유출로 인해 더욱 주목받게 된 유저의 프라이버시 문제에 관해서 다양한 의견이 나누어졌다. 빈트 서프는 프라이버시가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띄고 있기 때문에 두 가지 문제로 나누어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먼저는 사용자의 정보 프라이버시로 인터넷 사용에 관한 개인 정보가 애플리케이션 제공 업체들에 의해 어떤 방식을 통하여 수집 및 활용되는지 소비자들이 잘 모르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 때문에 유럽연합에서 5월 25일부터 일반 개인 정보 보호법(GDPR)이 제정되었으며, 구글은 이를 준수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전했다. 두 번째 문제는 사물 인터넷 프라이버시 문제로, 예를 들면 각자 집에 있는 사물 인터넷의 정보가 제3자에게 들어가게 되면, 집의 보안이 매우 취약해진다고 분석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데이터를 암호화하고 보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다음 주제는 "인터넷의 미래와 문제는 무엇인가?"였다. 빈트 서프는 인터넷을 처음 설계할 때 기대했던 바와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으며, 이 정도의 확장성을 기대한 것은 기존의 기대와 일치하지만, 사람들의 행동 양식은 그보다 더 큰 반경으로 변하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하지만, 과거에 존재하지 않던 인터넷 관련 위험들이 커지고 있고, 다양한 네트워크의 발전은 바람직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인터넷 남용 문제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였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국가 간의 협의가 필요한 시점이고, 특히 허용 가능 행위와 불가능 행위의 구분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특히 인터넷이 소프트웨어에 기반하며, 소프트웨어에는 버그가 종종 있기 때문에, 이 버그가 있는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서비스는 출시하는 것은 윤리적이지 않으며, 이를 위한 윤리의식 교육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특별히, 사물 인터넷과 지속 가능한 생태계 구축을 위하여 윤리 의식 고취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마지막 주제는 "가짜 뉴스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이며, 해결 방안은 무엇인가?" 였다. 전 세계적으로 가짜 뉴스와 여론 조작과 같은 다양한 문제들이 불거지고 있다. 이에 대해 빈트 서프는 이것들이 기술의 결과가 아니라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이 만들어낸 결과로 보고, 기술 자체에 대한 낙관론을 드러내었다. 기술 발전 자체에 역행할 수 없기 때문에, 사용자의 비판적 수용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하였으며, 어릴 때부터의 비판적 사고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또한, 최근에는 사람들이 정보를 받아들이고 의견을 가지는 속도가 굉장히 빠르기 때문에, 정보의 진위여부를 판단하기 전에 여론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사람과 컴퓨터의 구분이 점점 모호해지고 있어요. 그리고 컴퓨터는 사람과 다른 컴퓨터를 구분해야 하는 상황이죠. 최근 구글에서 사람 목소리를 똑같이 흉내 내는 로봇이 나왔어요. 만약 이 로봇이 사람에게 전화를 걸거나, 혹은 로봇끼리 통화한다면, 우리는 누가 사람이고 로봇인지 구분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러한 환경에 대비한 역량을 소비자 스스로 키워야 합니다. 콘텐츠를 볼 때, 작성자의 의도와 근거 유무를 항상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어요. 정보가 굉장히 많이 주어지는 상황에서 정보를 수용할지 거부할지에 대한 노력은 인간 스스로 늘 해야 합니다. "라는 말을 통해 사람들이 나쁜 콘텐츠를 걸러내는 능력과 정보의 사실 여부를 체크하고 받아들이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였다.[5][6]

구글캠퍼스 서울 3주년 초청 강의[편집]

본 강의는 스타트업을 하려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었다. 여기서 빈트 서프는 먼저 유연성을 강조하며 강의를 시작했다. 빈트 서프는 자신이 밥 칸과 함께 인터넷을 설계할 당시에 유연성을 주목했다고 말하며, 일관된 방식으로 네트워크를 연결하되 개방성 있는 형태를 추구했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새로운 프로토콜이 탑재될 수 있는 유연한 설계를 고안하였는데, 이는 새로운 기술이 생겨나 그 기술이 인터넷에 적용되길 바라는 의도였다고 한다. 이어서 빈트 서프는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인터넷에 발현하고 이를 통해 인터넷 자체도 진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또한 빈트 서프는 사물인터넷이 굉장히 큰 기회이자 리스크라고 표현하며, 확장성과 상호작용을 염두에 두라고 조언했다. 이어서 사물 인터넷은 복잡한 시스템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에 성공적인 환경을 조성하려면 사물 인터넷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전했다.

다음으로는 실패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면서 실리콘밸리의 성공요소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실패가 창피하고 재정적으로 타격을 주는 일이라는 인식이 고착화 된다면 리스크를 회피하려는 성향이 강하게 자리 잡는다면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조언을 남겼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의 한국의 역할도 언급하였다. 그는 현대 역사에서의 한국이 가진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며, 강대국들 간의 국제 관계 변화 속에서 한국이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것이라 하였다.[7]

수상[편집]

빈트 서프는 발레아 제도 대학교, 스위스 취리히의 ETHZ, 캐피톨 칼리지, 예일 대학교, 조지 메이슨 대학교, 메리 마운트 대학교, 베서니 칼리지(캔자스 대학교), 피사 대학교, 로비라 대학교, 비르길리 대학교 등 다양한 국적의 대학교들에서 박사학위와 다수의 명예 학위를 받았다. 이 외에도 받은 상은 아래와 같다.

  • ACM Fellow
  • Edward A. Dickson의 올해의 동문상
  • Prince of Asturias의 과학 및 기술상
  • 1988년 IEEE의 "인터넷 프로토콜의 설계, 개발 및 적용에 대한 기여와 리더십" 상
  • 1994년 컴퓨터 기계 협회의 "TCP/IP 컴퓨터 통신 프로토콜 제품군의 설계, 구현, 진화 및 보급에 대한 비전 및 리더십" 상
  • 1996년 Yuri Rubinsky 기념상
  • SIGCOMM의 "기본 TCP/IP 프로토콜 개발로부터 25년 이상 인터넷에 대한 공헌"상
  • 1996년 프랭클린 연구소 상
  • 1997년 12월 파트너인 로버트 E.칸과 함께 빌 클린턴 대통령으로부터 "인터넷 프로토콜의 개발 및 유지와 인터넷 산업의 신흥 산업에서의 지속적인 리더십 제공"에 대한 국가 기술 훈장
  • 2000년 4월 의회 도서관으로 부터 살아있는 전설상
  • 2000년 "컴퓨터 건축, 운영 체제, 소프트웨어 공학에 기여한 공로"로 컴퓨터 역사 박물관의 동료로 임명
  • 2005년 11월 빈트 서프와 칸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자유 훈장 수여
  • 2006년 5월 빈트 서프와 칸은 국립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
  • 2008년 4월 정보 기술자 명예회사로 취임, 런던시의 자유를 부여받음
  • 2011년 5월 HPI 펠로우쉽 수상
  • 2012년 인터넷 명예의 전당의 개척자로 추대
  • 2013년 엘리자베스 여왕의 공학상 첫 수상자
  • 2014년 에스토니아 Toomas Hendrik Ilves로부터 1급인 Terra Mariana 십자 훈장 수상
  • 2014년 프랑스 Légion d'honneur 장교상 수상
  • 2016년 영국 왕립학회 외국인 회원으로 선출
  • 2018년 벤자민 프랭클린 메달의 수상자로 선정
  • 2018년 Catalonia 국제상 수상[1]

저서[편집]

  • Zero Text Length EOF Message (RFC 13,1969년 8월)
  • IMP-IMP and HOST-HOST Control Links (RFC 18, 1969년 9월)
  • ASCII format for network interchange (RFC 20, 1969년 10월)
  • Host-host control message formats (RFC 22, 1969년 10월)
  • Data transfer protocols (RFC 163, 1971년 5월)
  • PARRY encounters the DOCTOR (RFC 439,1973년 1월)
  • 'Twas the night before start-up (RFC 968, 1985년 12월)
  • Report of the second Ad Hoc Network Management Review Group (RFC 1109, 1989년 8월)
  • Internet Activities Board, RFC 1120 (1989년 9월)
  • Thoughts on the National Research and Education Network (RFC 1167, 1990년 7월)
  • Networks, Scientific American Special Issue on Communications, Computers, and Networks (1991년 9월)
  • Guidelines for Internet Measurement Activities (1991년 10월)
  • A VIEW FROM THE 21ST CENTURY (RFC 1607, 1994년 4월 1일)
  • An Agreement between the Internet Society and Sun Microsystems, Inc. in the Matter of ONC RPC and XDR Protocols (RFC 1790, 1995년 4월)
  • I REMEMBER IANA (RFC 2468, 1998년 10월 17일)
  • Memo from the Consortium for Slow Commotion Research (CSCR, RFC 1217, 1999년 4월 1일)
  • The Internet is for Everyone (RFC 3271, 2002년 4월)[1]

각주[편집]

  1. 1.0 1.1 1.2 Vint Cerf wikipedia - https://en.wikipedia.org/wiki/Vint_Cerf
  2. Paul Krill, 〈빈트 서프, “클라우드 컴퓨팅 표준 시급하다” 〉, 《ITWORLD》, 2010-01-11
  3. Julie Bort, 〈인터뷰 : 빈트 서프, “미래 인터넷 계획에서 IPv7 제외”〉, 《ITWORLD》, 2011-02-22
  4. 김효정, 〈빈트 서프, 인터넷 창시자가 보는 21세기 인터넷〉, 《지디넷코리아》, 2007-10-17
  5. 이지윤, 〈인터넷의 현재와 미래:빈트 서프 구글 부사장, 전길남 박사와의 대담〉, 《네이버 다이어리》, 2018-08-24
  6. 안상욱, 〈[대담 후기 인터넷의 아버지들, 인터넷의 지금과 미래를 말하다 (5/15, 공공그라운드)]〉, 《오픈넷》, 2018-05-29
  7. 이예화, 〈인터넷의 아버지 빈트 서프가 스타트업에 전하는 말〉, 《벤처스퀘어》, 2018-05-16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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