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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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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

아차산(峨嵯山)은 서울특별시 광진구와 경기도 구리시를 잇는 높이 295.7m의 산이며 '阿且山'이라고도 쓴다.

개요[편집]

  • 아차산은 서울특별시 광진구 및 중랑구와 경기도 구리시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1973년 5월 25일 자연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아차산의 최고봉인 용마산(龍馬山)을 끼고 중턱에 용마폭포공원(龍馬瀑布公園)이 조성되어 있다. 그래서 아차산을 용마산과 분리해서 보기도 한다. 이 산에는 백제 시대에 건축된 아차산성이 있으며, 이 성은 현재 백제의 도성으로 많은 학자들이 추정하는 풍납토성과 마주 보고 있다. 대성암 뒤에는 의상대사가 수련을 했던 곳으로 알려진 천연 암굴이 있어 눈길을 끈다. 이 밖에 석곽분, 다비터, 봉수대, 강신샘 등이 있다.[1]
  • 아차산은 서울특별시 광진구와 경기도 구리시에 걸쳐 있는 산이다. 높이는 295.7m이다. 예전에는 남쪽을 향해 불뚝 솟아오른 산이라 하여 남행산이라고도 하였고, 마을사람들은 아끼산·아키산·에께산·엑끼산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경기지(京畿誌)》 '양주조'에 보면 화양사(지금의 영화사)가 악계산(嶽溪山)에 있다고 되어 있다. 아차산의 한자 표기는 '阿嵯山', '峨嵯山', '阿且山' 등으로 혼용되는데, 옛 기록을 보면 《삼국사기》에는 '아차(阿且)'와 '아단(阿旦)' 2가지가 나타나며, 조선시대에 쓰여진 고려역사책인 《고려사》에는 '아차(峨嵯)'가 처음으로 나타난다. 조선시대에는 봉화산을 포함하여 망우리 공동묘지지역과 용마봉 등 광범위한 지역을 모두 아차산으로 불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성계의 휘(諱)가 '단(旦)'이기 때문에 이 글자를 신성하게 여겨서 '旦'이 들어간 이름은 다른 글자로 고치면서 단(旦) 대신 이와 모양이 비슷한 '차(且)'자로 고쳤는데, 이때 아차산도 음은 그대로 두고 글씨를 고쳐 썼다고 한다.[2]
  • 아차산은 북쪽으로 용마산이 이어지며, 이 두 산을 하나로 보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따로 구분한다. 서울에 있는 산 중에서는 262m인 남산과 함께 낮은 편이다. 그 이유는 남산은 맨 위까지 개발이 되어 있어 공원도 있고 버스가 다니지만, 용마산/아차산은 윗부분이 거의 산 그대로이고, 기슭에만 시설이 있는 데다가 아무것도 없는 험준한 것도 꽤 남이 있으며, 산 자체도 남산보다 크기 때문에 산 몸체가 훨씬 커 보이고 더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서울 외곽의 주요 산 가운데서도 특히 등산하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코스를 갖고 있어 서울 동부나 강동 지역의 등산객들이 그런대로 찾고 있다. 1990년대에 대규모 발굴을 했으며, 2010년대에는 다시 홍련봉 1, 2보루와 아차산 3, 4보루를 재발굴을 하였다. 산 위에 지은 고구려정[4]은 주변 지역에서는 높은 편이라 나름대로 해돋이 구경 명소로 꼽힌다. 구리시 방향에서 넘어올 때는 아치울 마을이나 우미내 검문소 정류장에서 승하차하는 경우가 많다[3]

아차산의 역사[편집]

  • 아차산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 제45권 <온달>과 제25권 <개로왕전설>이라고 알려졌다. 이들이 '阿且城(阿旦城)' 아래에서 전사하였다는 기록을 이병도(李丙燾)가 모두 '아차성(아단성)'으로 읽은 것이다. 최근에는 삼국시대의 표기법에 따라 이를 '옥차성(옥저성·옥단성)'이라 할 수 있으며, '아차산'이라는 명칭은 기록에서는 『고려사(高麗史)』 제112권 열전 조운흘(趙雲仡) 조에 등장하며, 조선시대부터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오랑캐[阿]라는 뜻을 피하고, 태조 이성계의 이름인 '旦'과 혼동하지 않기 위해 '阿且山'을 '아차산(峨嵯山)'이라고 쓰고 읽었다고 한다.
  • 아차산은 조선 명종(明宗) 때 유명한 복술가(卜術家) 홍계관(洪繼寬)과 관련된 얘기로 전해오는 이야기가 많지만 당시 아차산, 용마산, 망우산, 구리지역의 봉화산 등을 '아차산'이라 하였다는데 삼국시대의 전략요충지로 고구려의 온달장군의 전설과 함께 '온달샘'이라 불리는 약수터와 온달이 가지고 놀았다는 지름 3m의 거대한 공기돌이 있다. 아차산의 최고봉, 용마산(혹은 용마봉)은 광진구 중곡동과 중랑구 면목동에 걸쳐 있고 예전에 용마(龍馬)의 전설과 아기장수 전설로 용마가 나왔다고 전하며 봉우리가 커서 대봉이라고도 한다.
  • 아차산은 『삼국사기』에는 '아차(阿且)'와 '아단(阿旦)' 등으로 『고려사』에 전하고 『세종실록지리지』에는 한자 표기가 변형되어 '아차(峨嵯)'로 기록되어 있다. 예전에는 남쪽으로 가는 산이라 하여 남행산(南行山)으로 하였고 산기슭 마을 사람들은 아끼산·아키산·에께산·엑끼산 등으로 『경기지』 양주 조에 지금의 영화사(永華寺)인 화양사(華陽寺)가 악계산(嶽溪山)에 있다고 하며 아차산의 서쪽 봉우리으로 알려져 있고 『광여도』 「양주목」과 『여지도』 「양주목」에는 아계산(峩溪山)으로 기록된 문헌이 전해진다.

아차산의 풍경[편집]

한강과 도시가 어우러진 풍경을 즐길 수 있는 명소이다. 산이 험하지 않고 등산로가 잘 갖춰져 있어 걷기 좋다. 생태공원의 소나무 숲에서 시작하는 산성길을 따라 올라오면 현재 복원 중인 아차산성을 만날 수 있다. 아차산 해맞이 광장에서는 잠실부터 남산, 북한산과 도봉산까지 360도 파노라마 영상처럼 펼쳐진 장관을 즐길 수 있다.

아차산성(阿嵯山城)[편집]

  • 사적 제234호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아차산은 해발 285m로 서울 광진구 광장동 한강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백제가 광주에 도읍하였을 때 고구려의 침입을 물리치기 위하여 쌓은 큰 성이다.

아차산 생태공원[편집]

  • 아차산 생태공원의 입구에 있다. 아차산 생태공원은 2,307,345m²의 면적으로 조성된 자생식물원이다. 주차장과 바로 위쪽에 조성되어 있으며, 아차산 등산로와 함께 연결되어 있다.

긴고랑 체육공원[편집]

  • 긴고랑 체육공원의 "긴고랑"은 용마봉에서 내려오는 골짜기가 길다 하여 긴골, 진골이라 불리었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되었으며, 아차산과 용마봉 사이의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등산로 주변의 체육시설과 자연하천공원을 말한다.

소나무숲[편집]

  • 아차산공원 소나무 숲은 용마도시자연공원내로 아차산 만남의 광장 위로 조성되어 있고 주등산로 우측 위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택가로부터 10분 정도 떨어져 있다.
  • 소나무숲 주변에는 계절별로 피어나는 다양한 야생화가 식재되어 있어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숲으로 소나무숲 탐방로를 걸으며 삼림욕을 즐기고 이용객이 많지 않아 휴게데크에서 휴식을 취하고 조용히 사색을 즐기는 등 힐링 공간으로 손색이 없다.

아차산의 등산[편집]

  • 산행은 용마봉과 연계한 코스가 많은데, 구의동에 있는 영화사를 기점으로 팔각정을 거쳐 아차산 정상에 오른 후 용마봉을 거쳐 대원외국어고등학교로 내려오는 2시간 30분 코스, 광장동 동의초등학교 옆 주차장을 기점으로 능선을 타고 팔각정과 아차산 정상을 거쳐 용마산 긴고랑체육공원으로 내려오는 1시간 50분 코스, 용마산길의 아성빌라·선진연립을 기점으로 하는 코스, 워커힐호텔에서 구리시로 넘어가는 검문소 주변 우미내마을의 무료주차장을 기점으로 하는 2시간 코스 등이 있다.

아차산 고구려 유적(峨嵯山高句麗遺蹟)[편집]

  • 경기도 구리시 아차산 일대에 있는 고구려 시대 보루성(堡壘城)이다.
  • 아차산 일원에 분포한 고구려 시대 보루성(堡壘城)과 유적지이다. 대표적인 보루성으로는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과 서울시 광진구 중곡동의 경계지점에 있는 것으로 아차산성에서 능선을 따라 북서쪽으로 약 700m 떨어져 있는 해발 268m의 능선 정상부에 자리하고 있다.
  • 유적은 능선의 방향을 따라 북동~남서향으로 놓인 긴 타원형의 토루 형태이다. 토루는 둘레 91m, 안쪽에서의 높이 1.5m, 하단부의 폭 6m로 작은 평지 토성을 연상케 하며, 외곽 일부에 3~4단 정도의 석축이 노출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 석축(石築) 시설이었음을 알 수 있다. 유물은 대부분 토기 조각으로 토루 윗부분의 흙 속이나 서편 외곽부에서 주로 발견된다. 검은간토기의 동이류가 가장 많으며 황갈색이나 홍갈색의 연질(軟質)토기도 많이 발견된다.

아차산 봉수대 터(峨嵯山 烽燧臺 터)[편집]

  • 서울특별시 중랑구 묵동에 있는 봉수대 터이다. 1993년 12월 10일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 1993년 12월 10일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봉화산(峯火山) 봉수대라고도 한다. 해발 160.1m의 봉화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연면적 4,060㎡이다. 비록 해발고도는 낮으나 주위에 높은 산들이 가로막지 않아서, 사방이 탁 트인 지세로 남산의 봉수와 양주의 한이산 봉수를 일망무제로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 아차산 봉수대가 종전에는 광장동 소재 아차산성에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실제로는 서울특별시 중랑구 묵동 산 46-1번지 일대 봉화산 정상 해발 160.1m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 봉수란 봉(횃불:炬)과 화(연기:煙)로 국경의 긴급한 소식을 중앙이나 국경의 기지에 전하던 군사통신 방법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용되었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봉수제가 시행되었던 것으로 추측되나, 본격적인 국가제도로 확립된 것은 고려 시대부터이다. 조선시대에는 고려 시대의 봉수제를 이어받아 세종 때는 좀 더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봉수제가 확립되어 전국적인 봉수망이 정비되었으나, 1894년(고종 31)에 이르러 폐지되었다.

아차산성(阿且山城)[편집]

  • 서울특별시 광진구 광장동과 구의동에 걸쳐 있는 삼국시대의 산성이다. 1973년 5월 25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1973년 5월 25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10만 3375㎡이다. 아차산에 있는 이 산성은 아단성(阿旦城)·장한성(長漢城)·광장성(廣壯城)이라고도 한다.
  • 해발고도 200m 산정에서 시작해 동남쪽으로 한강을 향하여 완만하게 경사진 산 중턱 위쪽을 둘러서, 둘레 약 1,000m 이상의 성벽이 구축되어 있으며 동쪽·서쪽·남쪽에 성문지(城門址)가 남아 있다. 산성의 형식은 테뫼식(鉢卷式)에 속하나 규모가 매우 크고 성안에 작은 계곡도 있어 포곡식(包谷式)으로도 보인다. 성벽 구조는 삭토법(削土法)으로 대체의 형태를 축조한 뒤 그 윗부분을 따라 돌아가면서 낮은 석루(石壘)를 쌓은 듯한데, 지금은 성벽들이 무너져 토석혼축(土石混築)과 같은 모습이다. 성벽 높이는 외부에서 보면 평균 10m 정도 되며, 내부에서는 1∼2m이다.
  •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475년 백제의 개로왕(재위 455∼475)이 백제의 수도 한성을 포위한 3만여 명의 고구려군과 싸우다가 전세가 불리하자 아들 문주를 남쪽으로 피신시킨 뒤 자신은 이 산성 밑에서 고구려군에게 잡혀 살해되었다. 이로써 백제는 한성에서 웅진(熊津)으로 천도하게 되었다. 또 고구려 평원왕(平原王:재위 559∼590)의 사위 온달(溫達) 장군이 죽령(竹嶺) 이북의 잃어버린 땅을 회복하려고 신라군과 싸우다가 아차산성 아래에서 죽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백제 초기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 산성은 고구려가 잠시 차지했다가 신라 수중에 들어가 신라와 고구려의 한강유역 쟁탈전 때 싸움터가 된 삼국시대의 중요한 요새였다.

관련 기사[편집]

  • 2023년 계묘년 새해를 맞아 광진구 아차산을 찾은 등산객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김경호 구청장과 구 간부들이 나섰다. 아차산은 서울에서 가장 먼저 해가 떠오르는 해맞이 명소로 새해 첫 일출을 감상하기 위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에 구는 많은 인파가 몰릴 것을 고려해 해맞이 행사를 취소하는 대신 모든 행정력을 동원하여 아차산 방문객을 위한 안전관리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른 새벽 4시, 구 간부들과 직원들은 각자 지정된 담당 구역에서 '안전 등불'을 환하게 밝혔다. 구는 총 3차례의 안전대책 회의를 거쳐, 2022년 12월 28일엔 사전 현장 점검을 실시해 아차산 전망대와 낙타고개 등 병목구간을 둘러보며 등·하산객 분산을 위한 시뮬레이션을 가동한 바 있다. 총 32대의 CCTV가 실시간으로 작동돼 아차산관리사무소와 통합관제센터 요원들이 안전 사각지대를 꼼꼼히 점검하고, 인파 군집 시엔 CCTV 스피커를 통해 경고음을 울리기도 했다. 또한 아차산생태공원 일대 차량 통행을 금지하고 불법주정차 특별 단속을 시행하며 촘촘한 안전망을 구축했다. 해맞이 행사 취소로 인한 구민들의 아쉬움을 달래고자 부대행사로 토끼 조형물과 청사초롱, LED 희망의 문, 포토존을 설치해 계묘년 첫 날을 알렸다.[4]
  • 단풍도 막바지에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아직 만날 수 있는 단풍길을 찾아 아차산 자락을 찾았다. 광나루역 1번 출구로 나와서 아차산 생태공원 쪽으로 올라가면 이정표가 보인다. 빅토리아 연꽃까지 피어나는 습지원과 나비정원, 자생식물원 등이 조성되고, 억새와 구절초 등 가을 풀꽃들도 피어나는 생태공원은 한창 공사 중이어서 들어가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쉬울 게 없었다. 단풍길이 곧장 시작되기 때문이다. 접근성이 좋아서인지 아이들과 함께한 젊은 부부들도 눈에 띄고 반려견과 산책하는 시민들도 오갔다. 걷다 보면 아차산으로 들어서는 길들이 나 있어서 등반하고 내려오는 시민들도 많았다. 워커힐로에서 다시 아차산 생태공원을 지나면 시원하게 탁 트인 아차산 어울림광장이 넓게 펼쳐지고, 그 뒤로 2022년 10월 정식 개관한 아차산 숲속도서관 책쉼터가 아늑하게 자리하고 있다. 광장에서는 '아차산 동행숲길'로 들어설 수 있는데, 이 숲길 끝에서 아차산 둘레길이 이어진다. 아차산 동행숲길은 노인과 어린이, 장애인 등 보행 약자도 편하게 산책할 수 있도록 데크가 완만하게 이어지는 무장애 숲길이다. [5]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아차산〉, 《위키백과》
  2. 아차산(峨嵯山)〉, 《두산백과》
  3. 아차산〉, 《나무위키》
  4. 계묘년 첫 태양은 아차산 위로 떠오르고...〉, 《디지털광진》, 2023-01-02
  5. 이선미 시민기자, 〈아직은 가을, 아차산 자락에서 만난 단풍〉, 《내 손안에 서울》, 2022-11-24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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