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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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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英國, United Kingdom)
시티 오브 런던
맨체스터 중앙 도서관
리버풀 해양 무역 도시

영국(英國, United Kingdom)은 유럽 대륙의 북서쪽에 있는 섬나라이다. 정식 국가명은 그레이트 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이지만, 간략히 '영국'이라고 부른다. 수도는 런던(London)이다.

그레이트브리튼섬과 아일랜드섬 북쪽의 북(北)아일랜드로 이루어진다. 1922년 아일랜드 자유국이 성립될 때 북아일랜드가 영국의 일부로 남음으로써 현재의 연합왕국이 되었다.

영국은 국제무대에서 G7, G20,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세계무역기구(WTO) 등 주요 국제기구의 중요한 회원국이며, 1973년 1월 1일부터 유럽연합(EU)의 회원국이었으나, 2021년 1월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선언인 브렉시트가 발효되어 EU를 탈퇴하였다.

개요[편집]

영국은 유럽대륙 서북쪽 대서양상에 위치한 입헌왕국이다. 수도는 최대 도시이기도 한 런던이며 영어로는 흔히 United Kingdom, UK, Britain으로 줄여 부른다. 올림픽 등의 스포츠에서는 다소 부정확하지만 관행상 Great Britain이라고 부른다.

한 때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명이 있었다. 19세기~20세기에 대영제국의 영토가 절정에 달했을 때 언제나 제국의 어딘가는 낮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제국이 해체된 지금도 해외 영토들이 일부 남아있기 때문에 해가 지지 않는 국가인 것은 맞다.

지리적으로는 영국 본토인 그레이트브리튼 섬과 아일랜드 섬 동북부에 걸쳐 있으며, 그레이트브리튼 섬의 면적은 209,331 km²로 한반도보다 약간 작고, 북아일랜드의 면적은 14,130 km²이며 기타 영국령의 부속도서를 포함한 면적은 244,341 km²다. 아일랜드해를 사이에 두고 아일랜드와 근접해 있으며, 도버 해협을 사이에 두고서는 프랑스의 칼레와 마주보고 있다.

크게 영국 본토인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와 바다 건너 아일랜드 섬의 북아일랜드 네 지역으로 나누어진다. 이외에도 영국 왕실 영지인 맨 섬, 저지 섬, 건지 섬이 존재하고 지중해, 카리브 해와 아프리카 지역에 몇몇 해외 영토를 가지고 있다. 해외 영토 거주민들과 영국 본토의 국민들은 서로의 지역에 거주할 권리가 없으며 상호간의 이민도 자유롭지 않다.

현재의 4개의 독립적인 지역이 연합한 영국이라는 국가는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았다. 현재 영토가 확정된 것은 1922년으로 아일랜드 자유국이 생겨난 후다. 뒤이어 식민지들의 독립으로 대영제국이 해체되고 지금의 영국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영국은 입헌군주제를 기본으로 하여 근대적 의회제도와 의원내각제를 전 세계로 전파시킨 국가이며 산업혁명의 발원지로 제일 먼저 산업화가 된 나라이자 19세기와 20세기 초반 세계 인구와 영토의 1/4을 차지한 유일의 초강대국이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쇠퇴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세계에 경제, 문화, 군사, 과학, 정치적인 영향을 끼치는 강대국 중 하나로 남아 있으며 특히 대중 음악은 비틀즈와 롤링 스톤스, 레드 제플린, 퀸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세계에 막대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핵무기 보유국이고 2018년 기준으로 군사비 지출은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크다. 2018년 명목 국내총생산은 세계 5위였으며, 시가총액 기준 세계 50대 기업 중 로열 더치 쉘, BHP 빌리튼, 보다폰, HSBC, BP, 글락소스미스클라인, 유니레버가 영국 기업이었다. 대졸자 초임 연봉은 2010년 기준으로 약 25,000 영국 파운드(한화 약 3,767만원)에 달한다.

상징[편집]

국호[편집]

영국의 정식명칭은 그레이트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이며, 약칭으로 브리튼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영국이라 부르는 것은 연합왕국의 구성국인 잉글랜드의 한자 표기에서 나온 것으로 다른 한자 문화권에서도 수용된다. 영(英){중국어발음은 잉(병음: Yīng)}은 잉글랜드(England)의 잉(Eng-)을 음역한 것이고, 국(國)은 랜드(-land)를 의역한 것이다. 한자 문화권에서 이 이름은 연합왕국 전체를 통칭하는 경우가 많지만 문맥에 따라서 여전히 잉글랜드만을 뜻하기도 하여 중의적 의미가 있다. 일본에서는 잉글랜드를 뜻하는 포르투갈어 잉글레스(포르투갈어: inglês)의 음역인 이기리스(일본어: イギリス 또는 英吉利)로도 쓰인다.

1707년에 잉글랜드 왕국과 스코틀랜드 왕국은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으로 통합되었다. 현재 영국을 지칭할 때 흔히 쓰이는 '유나이티드 킹덤'이라는 호칭은 이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을 부를 때 사용했던 국명으로, 다만 1707년부터 1800년까지 정식 국명은 여전히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었다. 1801년에는 아일랜드 왕국과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통합되며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을 구성하였다. 1922년에 아일랜드 자유국이 분리되어 영국에서 떨어져 나가자, 영국은 아일랜드 북부 지방 일부만을 통치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정식 명칭을 '그레이트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이라고 바꾸게 되었다.

영국은 현재 단일국가이기는 하지만,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는 여전히 상당한 자치를 가지고 있다. 영국 총리의 웹사이트에도 영국을 설명할 때에는 '국가 안의 국가들'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다만 완벽한 자치권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서, 대부분의 정부 통계를 낼 때에는 '지방'이나 '행정구역'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부르기도 한다. '그레이트브리튼'이라는 단어는 보통 그레이트브리튼 섬을 칭하는 것이나, 정치적으로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를 합쳐 부르는 단어이기도 한다. 가끔씩은 영국 전체를 느슨하게 묶어서 통칭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브리튼'이라는 단어는 그레이트브리튼과 동의어로, 영국을 부를 때 사용하는 단어이기도 한다. 다만 영국 정부는 'UK'를 '브리튼'보다 선호하며, 대사관이나 외교 업무를 제외하고는 브리튼을 자주 사용하지 않는다. 영국 지리학회에서는 자국의 약칭을 '브리튼'이 아닌 '유나이티드 킹덤'이나 'UK'로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있으며, '그레이트브리튼'이라는 단어의 경우에는 은연 중에 북아일랜드를 제외한다는 뉘앙스를 풍긴다고 하여 따로 분류해놓고 있다. 다만 영국의 대표적인 방송사인 BBC의 경우, 영국을 칭할 때에 '브리튼'이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해오고 있다.

국기[편집]

유니언 플래그.(Union Flag)
영국의 국장
스코틀랜드 문장

현재의 국기인 유니언 플래그.(Union Flag) 유니언 잭(Union Jack)으로도 알려져 있으나 이것은 영국 해군만의 이름으로 현재는 보통 유니언 플래그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유래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섬의 국기를 조합한 것이다. 유니언 플래그가 제정되던 때는 웨일스가 잉글랜드에 완전히 합병되었던 상태였기에 웨일스의 국기는 포함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웨일스에서는 유니언 플래그에 웨일스의 상징인 붉은 용을 집어넣자는 제안을 하기도 한다.

국장[편집]

영국의 국장은 다른 왕정 국가처럼 전 국왕인 엘리자베스 2세의 문장이자 윈저 왕조의 문장이다. 찰스 3세가 즉위함에 따라 바뀔 예정이다.

영국의 국기처럼 영국의 국장도 연합왕국 이전의 국가들인 잉글랜드 왕국, 스코틀랜드 왕국, 아일랜드 왕국의 국장을 반영한 것이다. 방패 모양의 문장과 주변의 파란색 띠는 잉글랜드 왕국의 국장을 모방한 것이지만 방패 안쪽의 문장이 좀 달라졌다. 방패 모양의 문장은 세 개의 문장으로 구분되는데 좌상단과 우하단의 것은 잉글랜드 왕국의 국장, 우상단의 것은 스코틀랜드 왕국의 국장, 좌하단의 것은 아일랜드 왕국의 국장에서 유래한 것이다. 저 문장을 이루는 세 도안 자체는 1707년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성립 이후 바뀌지 않았고 1712년 이후부터 1837년 이전까지는 하노버 왕국과 동군 연합이었으므로 하노버 왕국의 국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방패를 둘러싼 동물들은 왼편에 있는 것이 사자로 잉글랜드 왕국을 상징하고 오른편에 있는 것이 유니콘으로 스코틀랜드 왕국을 상징한다. 사자가 쓰고 있는 관은 영국 국왕의 공식 왕관인 성 에드워드 왕관이다. 방패 모양의 문양 바깥쪽의 도안은 스코틀랜드 왕국의 국장과 유사한데 기본적인 틀은 스코틀랜드 왕국의 것을 유지하되 잉글랜드 왕국의 상징들을 집어넣었다. 국장 아래에 새겨져 있는 문구인 Dieu et mon droit는 '하느님과 나의 권리'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잉글랜드 왕국의 표어다. 방패 주변에 새겨진 문구인 Honi soit qui mal y pense도 역시 프랑스어로 '악한 일을 하는 자에게 재앙이 온다'라는 뜻으로 가터 훈장의 표어에서 유래했다.

스코틀랜드 관련 정부 기관에서는 이렇게 다른 문장을 쓴다. 이쪽은 위의 국장에 비해 스코틀랜드 왕국의 국장에 좀 더 가깝고 위의 국장이 잉글랜드의 국장을 1순위로 반영하는데 비해 여기서는 스코틀랜드의 국장이 1순위다. 왕관도 스코틀랜드 양식으로 바뀌고 아래의 문구도 스코틀랜드 왕국의 표어인 NEMO ME IMPUNE LACESSIT(라틴어: 그 누구도 나를 경솔히 자극할 수 없다)로 바뀐다. 또한 위에 IN DEFENS라는 표어도 추가되는데 스코틀랜드 왕국의 또 다른 표어인 In My Defens God Me Defend(스코트어: 내 안의 하느님이 나를 보호한다)를 줄인 것이다. 중앙의 방패 문양(국왕의 문장)도 스코틀랜드 왕국 것과 잉글랜드 왕국 것의 위치가 바뀐다.

그러나 스코틀랜드에서라도 영국 공통의 것을 써야 할 때는 잉글랜드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위의 국장을 쓴다. 예를 들어 영국 여권 표지에는 무조건 위의 국장만 사용하고 스코틀랜드용 국장이 새겨진 여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국 본토의 일부인 스코틀랜드만의 여권을 따로 발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편집]

  • God Save the King
  • 미국의 비공식 국가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여지는 My Country, 'Tis of Thee와 음율이 같다.
  • 비공식 국가로 Rule Britannia와 I Vow To Thee My Country가 있다.
  • 에드워드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 1번도 제 2의 국가로 불려지기도 할 만큼 많은 영국인들이 사랑하는 곡이다.

지리[편집]

영국은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큰 섬나라로 유럽 대륙의 북서쪽 해안인 북대서양과 북해 사이에 위치한다. 총 면적은 약 243,610㎢이며, 영국 본토인 그레이트 브리튼섬(Great Britain)과 아일랜드섬을 포함하는 영국제도를 중심으로 약 5,000여 개의 작은 섬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레이트 브리튼섬의 북쪽에는 스코틀랜드, 남쪽에는 잉글랜드, 남서쪽에는 웨일스가 위치해 있다.

잉글랜드는 그레이트 브리튼섬 영토의 약 57%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으며, 스코틀랜드는 약 34%, 웨일스는 약 9%를 차지한다. 아일랜드섬의 경우 1922년 아일랜드 공화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섬의 약 1/6에 해당하는 북아일랜드만이 영국에 속해있으며 면적은 14,130㎢이다. 잉글랜드 남서쪽에는 실리제도, 남쪽에는 와이트섬이 위치하고 스코틀랜드의 북쪽에는 오크니제도와 셰틀랜드제도, 서쪽에는 헤브리디스제도가 위치하며, 웨일스 북서쪽에는 앵글시섬(Island of Anglesey)과 맨섬이 위치한다. 유럽 대륙과는 잉글랜드 남부와 프랑스 사이의 영국해협과 도버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다.

지형 및 지질[편집]

세븐 시스터즈 해안 절벽

영국의 국토는 크게 고지대와 저지대로 나누어지는데, 그레이트 브리튼섬 북서부와 남서부의 3개의 고지대 지역과 남동부와 동부의 2개의 저지대 지역이 존재한다. 잉글랜드의 북부 지역에는 '영국의 척추(The Backbone of England)'라고 불리는 페나인산맥이 위치한다. 페나인산맥의 최고봉은 크로스펠 산으로, 해발 893m이며 근방 지역 지류의 분수령이다. 잉글랜드 서북부에는 컴브리안(Cumbrian) 산맥이 위치하며 레이크지방에는 잉글랜드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스카펠파이크 산이 위치한다. 또한 잉글랜드에는 워시만(The Wash Bay)을 중심으로 저지대 지역인 링컨셔와 펜스(The Fens) 지방이 위치한다.

스코틀랜드는 영국에서 가장 산악지대가 많은 지역으로, 지형은 지질학적으로 고지대 경계단층(Highland Boundary Fault)으로 구분된다. 주요 산맥으로는 스코틀랜드를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가로지르는 그램피언산맥이 있으며, 북부 지역에는 해발 1,344,m의 영국에서 가장 높은 산인 벤네비스산이 위치한다. 그램피언 산맥을 중심으로 북서부 고원과 남부 고원, 중부 저지대가 자리 잡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가장 큰 도시인 글래스고와 정치 중심지인 에든버러를 포함한 대부분의 도시가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웨일스에는 남북으로 뻗은 캠브리안산맥을 중심으로, 웨일스에서 가장 높은 해발 1,040m 높이의 스노든산이 위치한다. 지형의 대부분이 산악 지대이지만, 남부 지역은 북부나 중부에 비해 산악 지대가 적다. 인구와 주요산업이 남부의 카디프, 스완지, 뉴포트에 집중되어 있다.

북아일랜드는 아이리시해와 노스해협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지역은 낮은 고원과 언덕으로 이루어져 있다. 북아일랜드의 최고봉은 몬산맥의 높이 852m의 슬리브도너드 산이다.

주요 하천으로 잉글랜드에는 잉글랜드 남서쪽에서부터 6개 주를 횡단하는 템스강과 영국에서 가장 긴 강인 세번강, 스코틀랜드의 수도 글래스고를 중심으로 흐르는 클라이드강과 네시(Nessie)의 전설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네스호를 비롯한 많은 호수가 있다. 북아일랜드에는 영국에서 가장 큰 담수호인 네이호가 위치한다.

기후[편집]

쾨펜의 기후 분류체계에 따르면 영국은 최난월 평균기온이 22℃ 이하이며, 월 평균기온이 10℃ 이상인 달이 4개월 이상 지속되는 기후인 서안해양성기후(Cfb)로 분류되며, 유럽 대륙 서안의 해양성 한대기단(mP)과 편서풍의 영향을 받는다. 영국을 포함하여 프랑스·독일·스칸디나비아반도의 국가들과 같은 유럽 국가들이 서안해양성기후 분류에 속해있다. 또한 영국은 유럽 대륙 서안에서 49°~61°사이의 비교적 높은 중위도에 걸쳐 있는 국가로, 항상 극전선 제트류의 경로에 근접해있기 때문에 유럽 대륙을 중심으로 하는 고기압과 저기압에 영향을 받아 빈번하게 날씨가 변화하는 특징이 있다.

일반적으로 영국의 날씨는 선선하고 흐리며, 연중 고른 강수량을 가지고 있어 우기와 건기의 개념이 모호하며 여름에는 선선하고 겨울에는 온난하다. 지역적으로 대서양과 가장 가까운 북아일랜드와 웨일스 및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서부 지역은 영국에서 가장 온난하고 습하며 바람이 많이 부는 지역이다. 또한 계절별 기온 교차가 적어 여름에는 선선하고 겨울에는 온화하다. 반면 영국의 북동부지역은 서부지역보다 더 건조하고 서늘하며 바람이 덜 불며 여름에는 선선하고, 겨울에는 기온이 많이 내려가 춥다. 일반적으로 영국 주요 도시들의 평균기온은 6~8월인 여름에는 18~20°C, 12~2월인 겨울에는 0~7°C이며 강수량의 경우 여름 평균 45mm, 겨울 평균 55mm이다.

강수량은 지역별로 편차가 크다. 일반적으로 서쪽 고지대로 갈수록 강수량이 많은 편인데, 웨일스, 스코틀랜드의 산맥과 잉글랜드 북부의 페나인산맥, 잉글랜드 남서부의 무어랜드(Moorlands)는 영국에서 가장 습한 지역이다. 영국에서 대부분의 강수량은 북서쪽이나 남서쪽에서 일 년 내내 불어오는 북대서양 기류에 의해 형성되며 특히 가을과 겨울에 집중되어 있다. 에식스, 노스요크셔 지역의 케임브리지셔(Cambridgeshire), 잉글랜드 남동부의 서퍽과 노퍽는 영국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으로, 연평균 강수량은 약 600mm이다. 이는 영국 남서부와 웨일스, 컴브리아 등에 위치한 산악지형이 동쪽으로 향하는 습한 기류를 차단해주는 비 그늘 효과(rainshadow effect) 때문이다.

한편 영국은 국제사회의 주요 이슈인 기후변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자체적인 노력 기울이고 있다. 2019년 환경성과지수(Envrionmental Performance Index)에서 180개국 중 4위를 차지하였으며, 2019년 6월 27일, 정부는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이 '0'에 수렴하도록 하는 '순배출 제로법(net-zero emission law)'을 통과시킨 세계 최초의 주요 경제국이다.

식생과 동물[편집]

영국은 온화한 기후와 다양한 토양으로 인해 생물다양성이 매우 풍부한 지역이다. 전통적으로 저지대에서는 참나무와 너도밤나무가 무성하였고, 고지대에서는 소나무와 자작나무 등을 포함하여 광활한 숲을 이루었다. 그러나 수 세기에 걸쳐 저지대의 많은 부분이 경작을 위해 개간되고, 산업혁명을 거치며 공업지역이 발달하면서 대부분의 삼림이 황폐화되었다. 1919년 영국 산림위원회(Forestry Commission)가 설립된 이래 활발한 활동을 해 왔지만 오늘날 영국 국토의 약 9%만이 삼림지역으로 남아있으며, 이는 스코틀랜드 북동부와 잉글랜드의 킬더와 노섬벌랜드, 서섹스의 애쉬다운숲과 웨일스의 귀네드에 집중되어 있다. 잉글랜드에는 참나무·느릅나무·너도밤나무 등이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고, 스코틀랜드에는 자작나무가 가장 흔하게 나타난다. 산업 중심지 외곽의 거의 모든 저지대는 농경지로 활용되고 있으며, 다양한 반 자연(semi-natural)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황무지로 이루어진 고지대에서는 헤더(Heather), 고사리 등을 포함한 풀들이 자란다. 또한 습하고 온화한 기후의 영향으로 다양한 꽃들이 잘 자라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 붉은 장미는 영국의 상징이며 지역별로 스코틀랜드는 엉겅퀴, 웨일스는 수선화와 부추, 북아일랜드는 토끼풀을 국화로 삼고 있다.

서식하는 동물 종은 북서유럽대륙의 종과 유사하며, 수 세기에 걸친 개간과 산업혁명 등으로 인해 오늘날 영국의 동물들의 개체 수는 상당히 감소하였다. 늑대, 곰, 멧돼지, 그리고 순록과 같은 몸집이 큰 포유류 중 일부는 멸종되었지만, 일반적인 작은 포유류들인 여우, 산토끼, 고슴도치, 담비, 뾰족뒤쥐 등은 전국적으로 서식하고 있다. 강과 호수에는 연어, 송어 등의 40여 종류의 민물고기 종이 있으며, 습지가 개간되면서 파충류와 양서류, 수달 등은 외곽지역으로 이동해 서식 중이다. 또한 약 230종의 조류들이 서식 중이며, 약 200종의 철새들이 영국을 주거지로 삼고 있다. 그중 가장 많은 종은 유럽산 검은새, 참새, 찌르레기이며 오리, 거위 그리고 다른 물새들의 개체 수는 지속적으로 감소중이다. 이외에도 자고새, 꿩, 딱새 등은 동물보호법에 의해 보호종으로 지정되었다. 갈매기를 비롯한 다른 바다 새들은 해안 근처에 둥지를 틀어 서식하고 있으며, 주요 근해종으로는 대구, 명태, 고등어, 넙치, 가자미 등이 있다.

행정구역[편집]

영국의 행정구역은 중세 초기부터 그 경계가 설정되기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게 되었고, 근대 초기에 들어서는 이미 현재의 행정구역이 완성되어 있었다. 또한 영국이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등 여러 왕국들이 통합되어 만들어진 연합왕국이었기 때문에, 이 4개의 국가들은 서로 행정구역을 나누는 방식도 달랐으며 행정구 간의 위계도 차이가 있어 통합 초기에는 이를 일원화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

영국의 지방자치단체 제도는 매우 복잡한데, 왕국들의 경제적, 사회적 특성에 따라 제도가 지역마다 모두 다르다. 일단 잉글랜드는 기본적으로 9개의 지역(region)으로 나누어진다. 이들 중 하나인 그레이터런던은 직접선거로 구성되는 지방의회를 독자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2011년부터 설립된 10개의 통합자치구역들 가운데에서 8개가 선출직 시장을 두고 있다. 지역의 하위 구역인 주나 면 단위의 단체들에서도 내각제를 채택하여 일부 독자 의회 제도를 실시하는 경우가 있다. 스코틀랜드의 경우, 32개의 주(council area)들로 나누어지며 글래스고, 에든버러, 던디, 에버딘은 독자적인 의회를 가지고 있다. 또한 최북단에 위치하여 스코틀랜드 전체 영토의 3분의 1이나 차지하지만 인구는 다 합쳐 보았자 20만 명 밖에 안되는 하이랜드도 독자적인 의회를 가지고 있다. 지방의회들은 모두 투표로 인하여 직접선출되며, 국가로부터 월급을 지급받는다. 각각의 의회들에서는 지방자치단체장을 뽑을 권한이 있다. 웨일스는 총 22개의 주(unitary authority)들로 나누어져 있으며, 대도시인 카디프, 뉴포트 등의 지방들은 따로 분류한다. 선거는 매 4년마다 치러진다. 북아일랜드의 경우, 1973년 법에 따라 26개의 구(district)으로 나누어졌으며, 불안정한 정세 탓에 타 왕국과 비교했을 때 지방단체들의 권한이 상당히 약하다. 북아일랜드 지방의회는 하수 처리, 공공기물 관리 등에 그 권한이 한정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권한은 중앙정부에게 맡겨져 있다.

  • 잉글랜드의 행정 구역: 잉글랜드는 9개의 지역(region)으로 나뉘어 있다. 각 지역은 다시 48개의 주(county)로 나뉜다.
  • 스코틀랜드의 행정 구역: 스코틀랜드는 32개 주(council area)로 나뉜다.
  • 웨일스의 행정 구역: 웨일스는 22개 주(unitary authority)로 나뉜다.
  • 북아일랜드의 행정 구역: 북아일랜드는 26개 구(district)로 나뉜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해외영토[편집]

British Overseas Territories. 대부분이 대영제국식민지였던 곳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독립하지 않고 영국의 영토로 남아있는 지역이다. 대영제국 식민지였던 시절에는 대부분 왕령 식민지(Crown colony)였던 곳이고 1981년에 관련 법령이 개정되어 영국 속령(British Dependent Territory)이 되었다가 이 속령 중 하나였던 홍콩을 중국에 반환해줬고 다시 2002년에 법령 개정을 통해 현재의 명칭으로 확립되었다.

섬으로 구성된 곳이 많고 주로 카리브 해에 모여있다. 지역에 따라 정치 체제가 달라서 완전한 자치가 허락되는 지역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고 파운드 스털링이 아닌 자체 통화 혹은 다른 국가의 통화(주로 미국 달러)를 끌어다 쓰는 곳도 있다.

유럽연합 회원국 시절에는 영국 본국뿐만 아니라 해외 영토 중 지브롤터도 유럽연합 지역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그 이외의 해외 영토는 유럽연합 지역이 아니었다. 지브롤터를 제외한 해외 영토 시민들은 EU 국가 국민으로서 EU 국가에서 제공되는 혜택(노동, 거주, 이동의 자유 등)을 누릴 수 없었다.

굉장히 많은 해외 영토가 있고 이 영토를 모두 합하면 1,727,570km²인데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남극을 빼면 18,170km²로 영국 본토의 7.5% 정도의 면적이다. 인구는 전부 합해도 고작 25만명으로 영국 본토의 0.3% 정도에 불과하다. 홍콩을 영유하던 시기인 1997년 이전까지는 저 지역 인구를 모두 합해도 홍콩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영국 왕실령[편집]

영국 국토가 아닌 영국 왕실이 소유한 땅이다. 역사적으로 복잡한 이력을 가지고 있어서 자치권을 가지고 있고 독립적인 의회를 유지하고 있다. 이 지역의 사람들은 영국 시민권자가 아니어서 영국 본토 거주권은 있지만 투표권은 없다. 투표권을 가지려면 별도로 영국 시민권자가 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하지만 외교, 국방 등은 영국 정부에 의지하고 관세에서는 영국과 동일 권역에 들어가고 대외적으로는 영국 시민권자으로 인정받기도 하지만 인정을 받지 못하기도 하는 등 경우에 따라 다르다.

왕실 소유이기 때문에 영국이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제 국가로 바뀐다 해도 이들 지역은 영국 정부가 왕실에게서 소유권을 박탈하지 않는 한 왕실 영토로 남게 된다.

과거 영국이 유럽연합 회원국이었던 시절에도 영국의 왕실 영토는 유럽연합 관할 지역이 아니었으므로 이들 지역 시민들은 EU 국가 국민으로서 EU 국가에서 제공되는 혜택(노동, 거주, 이동의 자유 등)을 누릴 수 없다.

역사[편집]

고대의 영국[편집]

5만 년 전 유럽 대륙과 이어져 있던 브리튼섬에는 혈거 수렵인이 살았다는 흔적이 있으나, 빙하의 확대와 함께 섬을 떠난 것으로 추정한다. 지각의 함몰로 유럽 대륙과 떨어지고 난 뒤 유럽 대륙의 갈리아와 발트해 연안 등지에 살던 종족이 영국해협을 건너와 정착하였고, 이어 신석기 시대에 이베리아인 등의 종족이 이주하였다.

청동기시대부터 철기시대 초기에 걸쳐 중부 유럽과 남부 유럽에서 켈트족이 선주민을 제압하고 브리튼섬에 정착하였다. 그들은 물고기와 짐승고기를 먹는 것 외에 밀·보리·귀리 등을 재배하였고, 짐승 가죽 그리고 삼베옷과 양모의 직물을 착용하였다. 또 다신교를 믿고, 소부족으로 갈라져 서로 독립적으로 생활하였는데, 딘 또는 둔이라고 하는 방벽을 만들어 생활하였다. '런던(London)'이라는 지명은 소택지의 성(castle)을 뜻하는 켈트어 '린딘(Lyndyn)'에서 나왔으며, 이후 로마인이 이를 라틴어로 '론디니움(Londinium)'이라고 말한 데서 비롯되었다.

로마 및 앵글로색슨의 지배[편집]

브리튼섬의 켈트족 부족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은 바로 로마제국의 침략과 지배였다. 기원전 55년 당시 로마의 사령관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기원전 54년까지 약 1년에 걸쳐 켈트족과의 두 차례의 전쟁을 통해 승리를 거두었고, 이후 로마가 새롭게 영국 일대를 지배하였다.

로마의 통치기에는 런던을 중심으로 상공업이 발달하게 되었다. 그러나 4세기 말까지 지속적인 이민족의 침입과 함께 게르만족의 침략이 있었고, 잇따른 침략을 견디지 못하고 로마의 영국 지배는 410년 이후 막을 내리게 되었다.

게르만족의 분파인 앵글로색슨족은 449년 본격적으로 영국을 침공하여 기존에 거주하고 있던 켈트족을 잉글랜드 외곽과 웨일스, 스코틀랜드 지방으로 몰아내고, 660년경 잉글랜드 내의 웨섹스(Wessex), 켄트(Kent) 등 7개의 왕국을 건설하였다. 이후 828년에는 웨섹스의 국왕인 에그버트가 7개 왕국을 통일하여 잉글랜드 지방에서 통일 왕국을 수립하였다.

노르만족의 지배[편집]

바이외 태피스트리에 묘사된 노르만인의 잉글랜드 정복

8세기 말부터 노르만족은 영국을 침공하여 잉글랜드 요크(York)를 수도로 삼고, 잉글랜드 동북부 지역을 점령하였다. 이후 1013년과 1015년, 크누드 1세는 지속적으로 영국을 침락하여, 1016년에는 잉글랜드 통합 국왕이었던 에드먼드 2세(Edmund II)를 몰아내고 잉글랜드의 왕이 되었다.

1066년, 프랑스 노르망디 공국의 윌리엄 공작(Duke William of Normandy)이 잉글랜드를 정복하고, 노르만 왕조를 수립하여 윌리엄 1세로 왕위에 올랐다.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통합된 행정 체제로 잉글랜드를 지배하였다. 그는 봉건제를 채택하였으며, 앵글로색슨인의 토지를 노르만 제후에게 봉지로서 나누어 주었다. 또 잉글랜드의 토지·인구·가옥 등을 기재한 둠즈데이북(Domesday Book)을 작성하여 왕실 재정의 기초를 굳히고 중앙집권적 봉건제를 시작하였다. 교황 그레고리우스와 대립한 윌리엄 1세는 교회에 대한 국왕의 관리권을 주장하고 주법정과 교회법정을 분리하여 왕권을 신장시켰다.

이후 헨리 2세가 왕위에 오르며 이에 플랜태저넷 왕조가 시작되었다. 그는 내란으로 세력을 회복한 제후를 누르고, 재판제도의 정비, 관료제와 용병제의 확립 등으로 절대적 권력을 장악하였다.

그러나 십자군으로 유명한 리처드 1세의 뒤를 이어 즉위한 동생 존왕, 이른바 실지왕은 헨리 2세 이래의 대륙 영토의 절반을 잃고, 중과세를 부과하는 등 실정을 거듭하였다. 이 때문에 귀족들은 1215년에 49개조로 된 마그나 카르타(대헌장)에 서명하게 하고, 왕권을 제한하였다. 당시 이 헌장은 봉건제후의 권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지만, 런던 이하 자유시의 특권을 인정하고 자유민의 생명·재산을 보호하는 조항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국적 자유주의의 기원으로 여긴다. 뒤이어 왕위에 오른 헨리 3세도 남은 대륙령을 상실하고 실정이 많았기 때문에, 귀족들은 주대표 시몽 드 몽포르를 지도자로 내세워 반항하였다. 또한 귀족들은 시민대표를 포함시킨 회의를 개최하였는데, 이것이 영국의회의 기원이며, 이후 에드워드왕 시대에 더욱 발전하였다.

1282년, 에드워드 1세(Edward I)가 웨일스를 정복하며 영토를 회복하였고, 이후 서부 프랑스까지 영토를 확장하며 세력을 넓혔다. 프랑스의 영토를 보유한 영국은 오랫동안 프랑스와의 분쟁이 지속되었고, 에드워드 3세(Edward Ⅲ, 1312~1377)가 프랑스에 대해 왕위를 요구하면서 1337년부터 1453년까지 백년전쟁이 발발하였다. 전쟁의 전반에는 영국군이 유리하여 한때는 프랑스령의 대부분을 점령하였으나, 헨리 6세 때, 오를레앙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로는 승리하지 못하여 칼레 외의 모든 대륙령을 상실한 상태로 전쟁이 끝났다.

특히 1348∼1349년의 흑사병으로 말미암아 인구의 1/4 이상이 사망하자 살아남은 농민의 지위가 문제였다. 영주계급은 농업노동력의 확보를 위해 억압을 강화하였지만 농민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와트 타일러 등이 농민봉기를 일으켰다. 이 봉기는 실패했으나 농민의 감소로 나타난 부역의 폐지와 지대의 인하, 영주직영지의 대출 등이 부득이하여 장원의 붕괴를 초래하였다.

왕위계승시대[편집]

백년전쟁 후 2년 뒤에는 국내의 왕위계승권을 두고 1455년부터 30년간 내전이 계속되었다. 플랜태저넷 왕가의 제7대 잉글랜드 국왕인 에드워드 3세의 셋째아들인 초대 랭커스터 공작 존(John of Gaunt, 1st Duke of Lancaster)이 장남의 아들인 리처드 2세를 대신하여 헨리 4세로 즉위하여 랭커스터왕가를 세웠다. 이후 그를 지지하는 랭커스터파와 존의 동생인 초대 요크 공작 에드먼드(Edmund of Langley, 1st Duke of York)를 옹립하는 요크파가 대립하였다. 이 전쟁은 양가의 문장이 각각 붉은 장미와 흰 장미였기 때문에 장미전쟁이라 불렀다.

요크파의 승리로 왕위에 오른 헨리 6세는 망명하고, 에드워드 4세가 요크왕조를 열었다. 그러나 에드워드 4세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그의 아들 에드워드 5세를 대신하여 에드워드 4세의 동생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Richard, Duke of Gloucester)가 섭정을 맡았다. 그는 실권을 놓고 우드빌 일족과 대립하다 결국 우드빌 일족을 제거하고, 에드워드 5세를 폐위시킨 후 리처드 3세로 즉위하였다. 이후 랭커스터가의 유일한 왕위계승권자인 웨일스의 튜더가의 헨리가 리처드 3세를 격파하여 헨리 7세로 왕위에 올랐고 튜더 왕조의 시조가 되었다.

노르만 왕조 시기를 거치며 자유를 박탈당하고 농노화된 농민의 지위는 14세기에 들어서부터 차츰 향상되었고, 농민의 계층분화가 진행되었다. 한편, 14세기에 영국의 무역은 양모를 중심으로 발전하였으며, 15세기에 들어 모험상인회사가 등장하여, 모직물 무역의 독점권을 가지게 되었다.

튜더왕조와 통합왕조시대[편집]

장미전쟁을 통해 헨리 7세가 즉위함에 따라 본격적인 튜더 왕조가 시작되었다. 헨리 7세의 뒤를 이어 영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왕 중 하나인 헨리 8세가 즉위하였다. 그는 웨일스와의 연합법(Union Act with Wales)을 통과시켰고, 이를 통해 웨일스와 아일랜드의 왕을 선언한 최초의 통치자가 되었다. 헨리 8세는 1512년 영국 왕립 우체국(The Royal Mail)을 창설하여 최초의 국가 우편 시스템을 마련하였고, 1635년부터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대중화되었다. 1533년 헨리 8세는 캐서린(Catherine) 왕비와 이혼하고, 앤 볼린(Anne Boleyn)과 재혼함으로서 교황에 의해 파문당하게 되었는데 이에 반발한 헨리 8세는 수장령(Act of Supremacy)을 발표한 후 로마교황청에서 독립된 성공회(Church of England)를 창립하였다. 영국 성공회의 창립과 함께 헨리 8세는 약 800개가 넘는 수도원을 해체하고 그들의 재산과 토지를 왕정으로 이관하였다. 또한 헨리 8세 때부터 영국은 본격적인 해상무역을 통해 세계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후 1559년 헨리 8세의 딸인 엘리자베스 1세가 왕위에 올랐고, 영국은 엘리자베스 1세의 즉위 이후 왕조의 황금기를 맞이하였다. 엘리자베스 1세는 유럽 대륙 열강들의 위협과 경제문제, 종교 갈등을 해결하고, 기존 유럽에서 낮은 지위를 가지고 있던 영국이 세계 최대의 제국으로 성장하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당시 영국은 프랜시스 드레이크, 월터 롤리와 같은 세계적으로 위대한 항해자들을 보유하고 있었고, 이들은 엘리자베스 1세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이러한 항해 기술과 해상전력의 강화를 바탕으로 영국은 1588년 스페인 펠리페 2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1세의 재위 기간은 문화·사상·예술의 발전이 이뤄지던 르네상스 시기로,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 예술적으로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같은 세계적인 인물들이 활동하였다.

스튜어트 왕가와 통합[편집]

윌리엄 3세가 새겨진 은화

1603년 엘리자베스 1세가 사망하고,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James VI)가 제임스 1세로 영국의 왕으로 즉위하면서 스코틀랜드 왕실은 영국 왕실에 통합되었다. 그는 가톨릭청교도를 억압하여 국교회로의 개종을 강요하였고, 가톨릭과 청교도의 양극을 배제하겠다고 선언하며 가톨릭과 청교도의 반감을 샀다. 즉위 2년 후, 가이 포크스가 이끄는 극단주의자들이 의회의 개회에 맞춰 폭탄을 터뜨리려는 시도하였지만 무마되었다. 현대 영국에서는 가이 포크스를 영국 왕실의 탄압에 맞선 저항운동가로 평가하며 11월 5일을 가이 포크스 데이(Guy Faukes Day)로 정해 기념한다.

이 사건 이후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의 분열이 심화 되었고, 1625년 즉위한 찰스 1세(Charles I)는 전체주의적인 의회 운영으로 의회파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 결과 1642년부터 1651년까지 왕당파와 청교도(Puritans)와 연합한 의회파로 갈라져 영국 내전(The English Civil War)이 발발하였고, 전쟁에서 패배한 찰스 1세는 의회에 의해 참수되었다. 이후 청교도인 올리버 크롬웰은 1653년부터 1658년까지 영국을 통치하였다. 이 내전에서 청교도들은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수립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영국의 내전은 '청교도 혁명'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크롬웰이 이끌었던 공화정의 독재는 다시 한번 국민들의 반발을 샀고, 1658년 크롬웰이 사망한 후 영국은 왕정으로 복귀하였다. 이후 1688년에는 의회를 중심으로 제임스 2세를 폐위시키고 윌리엄 3세가 왕으로 추대되었고, 이 사건은 유혈사태가 발생하지 않고 정권을 교체한 최초의 혁명으로 명예혁명으로 불린다. 이어서 1689년 윌리엄 3세는 의회의 권한 강화 요구로 인해 의회가 왕의 권한을 제한할 수 있는 권리장전을 제정하였다. 1702년에 영국은 공식적으로 연합법(Union Act)를 통해 영국과 스코틀랜드가 통합된 그레이트브리튼왕국이 성립되었다.

그레이트브리튼왕국[편집]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왕국이 서로 몇 백년 동안 반목을 거듭한 끝에, 1707년 5월 1일에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양국 의회가 통합법을 가결하며 마침내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성립됨에 따라 두 왕국이 하나로 통합되었다.

18세기에는 첫 총리로 로버트 월폴이 취임하였고, 의회내각제에 기반하여 근대 민주주의의 기반을 닦아 나가기 시작했다. 이후 자코바이트의 난이 터지며 신교를 믿는 하노버 왕가를 몰아내고 가톨릭을 신봉하는 스튜어트 왕가를 복구하려 시도하였으나, 결국 1746년에 대패하고 반란을 일으켰던 스코틀랜드인들은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 한편 북아메리카에 설립한 영국의 식민지는 독립전쟁을 일으켜 미국을 건국하며 떨어져나갔고, 영국은 어쩔 수 없이 이를 1783년에 인정하였다. 이후 영국의 관심은 아시아 쪽으로 옮겨갔고, 특히 영국이 아시아에 차지하고 있는 가장 부유하고 거대한 식민지인 인도에 집중되었다.

영국은 대서양 노예무역을 주도하며 1662년과 1807년 사이에 수많은 선박들을 이용하여 거의 330만 명의 흑인 노예들을 아프리카에서부터 실어날랐다. 노예들은 보통 북아메리카나 캐리비안 해역에 있는 거대한 플랜테이션 등으로 강제적으로 옮겨갔으며 심각한 탄압을 받으며 사탕수수나 목화 등을 재배하는 일에 동원되었다. 이들의 강제 노동은 18세기 영국의 경제를 떠받치는 기둥들 중 하나였으며, 노예상인들은 이 과정에서 엄청난 이익을 남기며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노예무역의 반인륜적인 실태가 갈수록 폭로되자 결국 여론의 압박을 받은 의회가 1807년에 노예무역을 금했고, 1833년에는 대영제국 전체에서 노예제를 철폐하였다. 또한 이후에는 노예제 폐지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타 유럽 국가들도 노예를 거래하거나 사고파는 일을 그만두도록 압박하기도 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제인권단체인 '반노예인터네셔널(Anti-Slavery International)'도 1839년 런던에서 처음으로 창설되었다.

하노버 왕가와 대영제국의 탄생[편집]

1897년 당시 영국과 식민지.
워털루 전투
대영제국의 전성기를 다스린 빅토리아 여왕
1840년, 제1차 아편 전쟁.

권리장전에 의해 계승자로 정해졌던 앤 여왕이 1714년 사망하고, 제임스 1세의 증손자인 조지 1세가 영국의 왕으로 즉위하였고, 이때부터 하노버 왕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독일계 신교도였던 조지 1세는 정부 및 신하들과의 의사소통에 능하지 못했고, 그의 즉위 중 대부분을 독일에서 보내고 행정은 로버트 월폴(Robert Walpole)를 총리로 선임하여 권한을 위임하였다.

조지 3세(George III, 1738-1820)는 영국에서 태어난 최초의 하노버 왕이었고, 그는 1756년부터 1763년 벌어진 7년전쟁 기간 중 왕위에 올랐다. 7년 전쟁은 슐레지엔 영유를 둘러싸고, 영국ㆍ프랑스프로이센오스트리아러시아,ㆍ스페인포르투갈 등이 참여한 대규모 전쟁으로, 유럽 뿐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 인도, 아프리카의 식민지에서도 전투가 발생하였다. 영국ㆍ프랑스 양국의 오랜 싸움의 일환이기도 했던 7년 전쟁을 끝으로, 영국은 대식민제국으로서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1763년 파리조약을 통해 북아메리카 13개의 식민지와 인도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이후 1776년 미국독립혁명이 발발하였고, 프랑스의 미국에 대한 군사적·재정적 지원으로, 미국은 1782년 영국의 식민지로부터 독립하여 독립 국가가 되었다.

1797년부터 1815년까지 벌어진 나폴레옹 전쟁에서 영국은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과 동맹을 맺고 프랑스에 대항하였다. 1803년 프랑스는 영국 본토를 침공하려는 계획을 수립했지만 해군의 열세로 인해 실패하였고, 1805년 호레이쇼 넬슨(Horatio Nelson) 제독의 함대가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프랑스-스페인 연합군을 격파하면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1815년 영국이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 군대를 격파함으로써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게 되었다. 나폴레옹 전쟁은 7년 전쟁 이후 두 번째로 유럽 전역과 세계 각지를 무대로 벌어진 세계 규모의 전쟁이었다.결과적으로 영국은 나폴레옹 전쟁의 승자가 되었지만, 전쟁 기간 동안 약 약 22억 달러의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나폴레옹 전쟁 기간 중 내부적으로 영국은 1800년 제정된 연합법(Union Act with Ireland)을 통해 영국과 아일랜드 왕국을 합병하였다.

'유나이티드 킹덤', 즉 'UK'라는 국명은 1801년에 그레이트브리튼 왕국과 아일랜드 정부가 서로 통합을 결정하면서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이 창설되면서 정식으로 영국의 국명으로 결정되었다.

1837년 국왕 윌리엄 4세가 사망하자 당시 18세의 조카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 1819~1901)이 즉위하였다. 당시 영국은 대영제국이라 불리며 전 세계에 식민지를 경영하던 시기로, 이 시기는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라고도 불린다. 빅토리아 시대 동안 영국은 1765년 제임스 와트증기기관 발명 이후 석탄·철강·방직 등을 중심으로 대량 생산이 가능하게 되면서 1830년까지 산업혁명의 중심지가 되었다. 산업혁명과 식민지 경영을 통한 경제적 이익을 통해 영국은 세계 최강대국으로 자리 잡았다. 한편, 정치적으로 영국은 1832년 선거법의 개정으로 투표권을 중산층에게까지 확대하였으나 노동자들은 여전히 투표권을 가지지 못했다. 이에 반발한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1830년대 후반부터 1850년대 초까지 투표권 획득과 사회적 개혁을 촉구하는 차티스트운동이 발생하였다.

19세기 영국의 주요 무역 중 하나는 청나라에 대한 아편 판매였으며, 아편 금수 조치를 단행한 청나라와 두차례에 걸친 아편 전쟁을 일으켰다. 아편 전쟁의 결과 영국은 청나라와 난징 조약을 체결하였으며 1898년 홍콩을 포함한 신지에를 99년간 할양받게 된다. 홍콩은 1997년 7월 1일 중국에 반환되었다.

제1·2차 세계대전과 아일랜드의 독립[편집]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영국 탱크.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영국 전투기

19세기 말 독일과 미국의 경제성장이 가속화되면서 영국이 가졌던 빅토리아 시대의 영광은 사라지고, 이러한 후발주자들에 의해 추월당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1873년에는 공황과 경제 불황이 잇따라 발생하며 경제적인 타격을 입었고, 수출 감소와 실업률 증가로 이어졌다.

1914년에는 독일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영국은 1917년 독일의 잠수함 작전으로 타격을 받았고, 러시아가 연합국에서 이탈하면서 위기를 겪었다. 그러나 뒤늦게 참전한 미국의 도움으로 전세를 역전할 수 있었고, 1918년 독일의 항복으로 전쟁이 마감되었다.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었으나, 이때부터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가 형성되기 시작했으며, 식민지 지역에서 영국의 영향력이 약화되었다.

1921년에 독립을 요구하던 아일랜드가 임시정부를 세우고, 1922년 아일랜드 자유국을 선포함으로써 기존 영국의 영토인 아일랜드섬에서 북부 지역만이 북아일랜드라는 이름으로 영국에 남아있게 되었다. 아일랜드의 독립과 더불어 영국은 1922년에 국호를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으로 변경하였다.

국내정치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 후, 영국에서 노동당(Labour Party)이 창당되었고, 1926년 총파업과 사회운동을 통해 1928년에는 여성들이 남성과 동일한 보편적 참정권이 부여받게 되는 등 급진적인 정치적 변화가 일어났다.

1929년의 세계 대공황은 세계 정세를 일변시켰다. 미국은 사회자본의 개발로 공황을 극복하였고, 영국은 영국연방 국가들과의 경제블록을 결성하여 이를 해결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 공황으로 독일·이탈리아·일본 등의 군국주의 경향이 두드러졌으며, 1930년대 독일에는 나치스 정권이 집권하여 독일의 팽창정책이 또다시 노골화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다.

1940년 윈스턴 처칠 총리가 거국일치 내각 구성으로 전쟁을 타개하고자 하였으나 전쟁 초기 프랑스가 항복하게 됨으로써 전황은 영국에게 갈수록 불리해졌다. 그러나 1941년의 독일·소련 간 전쟁이 발발하고, 일본의 진주만 기습에 따라 미국이 참전하면서 전황은 급변하였다. 미영 연합군은 1943년 이탈리아를, 1945년 독일·일본을 항복시킴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을 종결시켰다. 전쟁의 승리를 업고 노동당은 전후 선거에서 처음으로 절대 다수의 의석을 확보했다.

20세기[편집]

2차 세계대전 시기동안, 영국은 미국, 소련, 중국과 함께 세계의 4대 강대국 측에 들었다. 이들은 전후에 세계평화와 신세계질서 구축을 위하여 국제연합을 창설하였고,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 지위를 얻었다. 또한 IMF, 세계은행, 북대서양 조약 기구 등 세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국제기구들을 설립하였다. 영국은 2번에 걸친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국력이 심각하게 약화되었고, 이 때문에 미국 주도의 경제재건프로그램인 마셜 플랜에 크게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대전이 끝난 이후 노동당이 이끄는 정부가 급진적인 개혁 정책들을 펼쳤고, 사회 전반을 바꾸기 위하여 막대한 노력을 기울였다. 수많은 주요 산업들과 자원들이 국유화되었고, 복지국가의 개념이 형성되었으며 거대한 규모의 국민복지제도가 설립되었다. 한편 해외 식민지들 사이에서는 점차 민족주의가 대두하였고, 한창 영국이 전쟁으로 약화된 틈을 타서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였다. 결국 영국은 어쩔 수 없이 이들을 독립시킬 수밖에 없었고, 1947년에는 인도파키스탄의 독립을 승인하였다. 이후 30여 년 동안 대영제국의 거의 모든 식민지들이 독립을 얻어내었으며, 이들 대부분은 영국의 지원 하에 정부를 구성하였다. 이들은 독립 이후에도 영국 주도의 코멘웰스에 가입하였고, 일부는 심지어 영국 국왕을 최고 국가원수로 모시기도 한다.

영국은 핵무기를 가지게 된 3번째 국가였다. 다만 핵무기를 가지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1956년에 일어난 제2차 중동 전쟁에서 자국의 약화된 국력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고, 세계를 좌지우지하던 초강대국이 아닌,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의 눈치를 보는 국가로 위치가 격하되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한편 1950년에는 노동력 부족 사태가 일어났고, 영국 정부는 이를 해소하기 위하여 언어가 통하는 커먼웰스 국가들에서 막대한 이민자들을 받아들였다. 이후 얼마지나지 않아 영국은 역사상 가장 다양한 민족들이 섞인 국가가 되었고, 사회 변동도 엄청나게 일어났다. 1950년대 후반과 60년대까지 영국은 경제가 꽤나 발전하였으나, 프랑스, 서독, 일본과 같은 경쟁국들에 비하면 딱히 좋은 성과를 보지 못했다.

전후 몇 십년 동안 유럽 통합에 대한 논의가 가속되던 차에, 영국은 1960년에 유럽 자유 무역 연합의 창립 회원국으로 참가하였으나, 1973년에는 유럽의 공동체에 합류하기 위하여 탈퇴하였다. 이후 EC가 1992년에 유럽 연합으로 전환되자, 영국은 12개의 창립 회원국들 중 하나로 참여하였으며 2007년 조인된 리스본 조약에서 유럽 연합의 한 축을 담당하였다.

한편 1960년대 후반부터 북아일랜드 지방은 불안정한 치안으로 인하여 큰 피해를 입고 있었는데, 1998년의 벨파스트 협정이 조인되면서 이도 끝났다. 1970년대에 점차 경제가 위축되고 산업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마거릿 대처 총리 주도의 보수당 정권은 규제 완화, 대규모 자본 투입과 같은 정책들을 실시하며 경제 회복을 꾀하였다. 이후 1984년부터는 북해에서 뽑아낸 석유를 팔아 얻은 대금들이 대거 영국으로 유입되며 영국의 경제는 점차 회복세에 접어들었다.

21세기[편집]

유럽 연합 국민투표 결과 후 런던의 브렉시트 찬성 운동가들

영국은 21세기 초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미국의 접근법을 광범위하게 지지했다. 논쟁은 영국의 해외 군사 배치의 일부, 특히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둘러쌌다.

2008년 미국발 국제금융위기는 영국 경제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2010년에 연립정부는 여러 정책들을 도입하여 금융위기로 인하여 촉발된 막대한 양의 공공부채를 줄이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2014년에는 스코틀랜드 정부가 스코틀랜드 독립을 결정할 주민투표를 실시하였고, 이 투표에서 55.3%의 주민들이 독립을 거부하면서 스코틀랜드는 영국에 남게 되었다.

2016년에는 약 51.9%의 영국 국민들이 유럽 연합을 떠나기로 결정하면서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즉 브렉시트가 현실화되었다. 이로 인하여 영국은 2020년 1월 31일까지만 유럽연합 회원국으로 남았고, 이후에는 유럽과 독자적인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코로나19 범유행은 2020년과 2021년에 영국의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고, 교육에 큰 지장을 초래했으며, 사회와 정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2022년 9월 8일, 가장 오래 살고 가장 오래 재위한 영국 군주 엘리자베스 2세가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여왕 사후, 그녀의 장남인 웨일스 왕자 찰스는 찰스 3세로 영국 왕좌에 올랐다.

정치[편집]

영국 의회의 의사당으로 쓰이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궁전

영국은 근대 민주주의의 발상지로, 오래된 민주주의 역사에 걸맞게 세계에서 가장 체계적인 정치제도를 가지고 있다. 영국은 웨스터민스터 시스템에 기반한 의회민주주의 입헌군주국이며, 영국 의회는 상원과 하원으로 나뉘며, 각각 793석, 650석의 의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국민들의 선거로 구성되는 서민원의 경우, 전국에 퍼져 있는 650개의 선거구에서 각각 의원들이 선출되며, 총선의 실시 또한 총리의 조언을 받아 국왕이 선포한다. 군주국을 표방하고 있는 영국답게, 상원과 하원을 통과한 모든 법안들은 효력이 발휘되기 전 국왕의 동의를 받아야만 한다. 다만 국왕이 실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입헌군주국이기 때문에, 실제로 국왕이 의회를 통과한 법안을 거부한 적은 없다.

영국의 국가수반은 총리로, 하원에서 선출되며 보통 하원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한 정당의 지도자가 총리직을 맡는다. 총리는 내각을 구성할 수 있으며, 보통 내각 장관들은 국왕의 허가를 받아 임명된다. 총리는 제1재무경(First Lord of Treasury)을 겸직하며, 이 때문에 본래 제1재무경의 관저였던 다우닝가 10번지에서 집무를 본다. 다만 총리가 재무부 장관직을 겸직한다는 것은 아니며, 재무부장관은 재2재무경(Second Lord of Treasury)직을 따로 겸직한다. 여당과 정권은 '국왕 폐하의 정부(His Majesty's Government)'라고 불리기도 한다. 반대로 제1야당의 경우에는 '국왕 폐하의 야당(His Majesty's most loyal opposition)'이라고 불린다. 한편 총리가 거의 실권을 틀어쥐고 있기에, 형식적인 국가수반인 국왕은 관례적으로 총리의 뜻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전통으로 굳어져 왔다.

내각은 주로 총리가 여당이나 연정 정당에서 끌어온 인사들로 구성되며, 보통 하원 출신 인사들로 기용되지만 상원 출신 인사들도 항상 포함하고 있다. 현재의 총리는 2022년 10월 25일에 취임한 보수당 출신의 리시 수낵 총리이다.

한편 영국은 정치학적으로 연방 국가가 아니라 단일 국가이다. 지방자치가 잘 발달되어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는 독자적인 의회와 행정부를 가지고 있으나, 의회주권의 원칙에 따라 최종적인 주권은 웨스트민스터의 영국 의회가 가지며 각 지방정부들은 헌법적 사항을 단독 결정할 수 없다.

영국의 국왕[편집]

영국의 왕실은 세속제도(Secular Institution)를 통해 현재까지도 국왕직을 계승하고 있다. 국왕은 국가의 수반(Head of State)일 뿐만 상징적으로 국민을 통합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영국의 국왕은 행정부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못하지만 국왕과 왕실은 정부에 대해 특정 분야에 한정하여 권력을 위임받아 사용할 수 있다.

영국의 헌법에 따르면 영국의 국왕은 국내적으로 총리의 임명 및 해임권, 장관의 임명 및 해임권, 국회 소집권, 법률안에 대해 왕실의 동의를 허가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권한, 국군 장교의 임관 권환, 영국의 국군통수권, 여권 발급 및 인출 권한, 왕립헌장(Royal Charter)을 통한 기업 설립권 등이 있다. 해외지역에서 발휘할 수 있는 영국 국왕의 주요 권한으로는 비준 및 조약체결, 영국군의 해외배치 등이 있다.

이외에도 영국의 국왕은 과거 영국의 식민지로부터 독립한 영연방 가입국들 중 영국을 포함한 16개국에서 상징적 수반(Head of Commonwealth) 역할을 하고 있고, 행정부와 입법부, 그리고 사법부를 관리하는 지도자일 뿐 아니라 영국 성공회의 상징적 지도자(Supreme Governor) 역할도 담당한다. 영국의 국왕은 찰스 3세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1952년에 즉위 후 70년간 국왕직을 유지하다가 2022년 서거함으로서 국왕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정부[편집]

영국 정부는 영국 및 북아일랜드의 중앙 정부이며, 행정부의 장관들은 총리(Prime Minister)에 의해 주도된다. 총리와 업무를 수행하는 장관들은 최고 의사결정 권한을 가진 내각(Cabinet)을 구성한다. 2019년 기준 영국은 총리를 포함하여 25개 정부부처의 21명의 장관들로 내각이 구성되어 있으며, 정부부처의 장관은 상황에 따라 그 수가 조정되기도 한다.

영국 최초의 총리는 하노버왕가 시절 로버트 월폴(Robert Walpole)로 알려져 있으며, 정부의 수장인 총리는 이후 18세기가 되어서야 총리는 실질적으로 영국 행정부의 수반으로 불리게 되었다. 총리는 주로 영국 하원(House of Commons) 다수당의 신임을 받는 최고 지도자가 임명되며 총리는 내각의 구성원을 선택하고, 공식적으로 국왕의 승인을 받게 된다. 만약 선거에서 한쪽이 과반 이상을 차지하지 못하는 경우, 다수당이 연정 또는 지지를 통해 정부를 구성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며, 집권당의 당수가 변경되는 경우에는 선거를 거치지 않고 총리에 임명될 수 있다. 총리와 총리에 의해 임명되는 장관들로 이루어진 내각은 실질적으로 행정권을 행사하는 기관으로 국왕과 의회의 결정을 수행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추밀원령(Order in Council)에 따라 장관들과 내각의 업무 및 인원은 조정될 수 있으며, 장관들의 대부분은 하원의원이 임명된다.

추밀원(Privy Counsellor)은 영국이 가진 독특한 정치기관으로서, 행정부 업무를 보조하기 위한 국왕의 자문기관에서 유래되었다. 과거 영국 정치사에서 국가행정을 담당하는 주요한 기관으로 운영되었으나 현재는 대부분의 권한을 각 부처에 위임하고 있다. 추밀원의 위원들은 총리의 추천을 거쳐 국왕에 의해 임명되며, 2019년 기준 약 622명의 추밀원 위원이 활동하고 있다.

의회[편집]

영국의 정치제도 하에서 의회는 최고의 입법기관으로서 양원제로 구성되어 있다. 실질적인 입법을 위해서는 국왕과 상원(House of Lords) 및 하원(House of Commons) 간 합의가 필수적이다. 특히 정부가 정책을 집행을 위한 1차 입법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하원의 지원을 필수적으로 요구하기 때문에 하원과의 신뢰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관습상 정부가 하원의 신뢰를 잃게 되면 총리가 퇴임하거나 총선을 치러야 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영국 의회에서 상원은 크게 성직 귀족(Lords Spiritual)과 세속 귀족(Lords Temporal) 두 가지로 구분된다. 과거에는 법률 귀족(Lords of Appeal in Ordinary)이 존재했으나 영국노동당 정부에 의해 사법부 개혁이 이뤄져 대법원(Supreme Court)가 신설되면서 이전 상원의 법률 귀족이 가졌던 사법적 권한이 대법원으로 이양되었다. 성직 귀족의 경우 영국 성공회의 대주교(Archbishop) 또는 주교(Bishop)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속 귀족은 다시 세습 귀족(Hereditary Peers)와 종신 귀족(Life Peers)로 나뉜다. 세습 귀족은 자신의 상원 지위가 가족에서 세습되는 자리이며, 종신 귀족의 경우 지위가 후대에 계승되지 않는다.

영국의 상원은 하원이 발의한 법안에 대한 개정안을 발의 및 심의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고,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12개월 동안 법안을 승인하지 입법을 연기할 수 있다. 상원의 거부권 사용은 1911년과 1949년 제정된 의회법(Parliament Act)에 의해 제한이 있으나 정부의 재정 및 조세지출과 관련한 법안(Money Bill)을 제외한 모든 법률안은 상원과 하원 모두에서 통과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상원의 영향력은 여전히 상당하다.

노동당을 중심으로 영국 정부는 이러한 상원의 영향력을 약하게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1999년에는 상원 개혁법(House of Lords Act)을 통해 세습 귀족 대부분의 상원 참석과 투표권이 박탈되었고, 2005년 헌법개혁법(Constitutional Reform Act)을 통해 2009년부터 대법원이 신설되어 상원의 사법적 권한을 별개로 분리시켰다. 또한 2014년 상원 개혁법(House of Lords Reform Act) 통과 이후 거의 1000명에 가까운 상원들이 은퇴하면서 현재 상원에 참석하여 활동하는 의원들의 수는 감소추세에 있다. 2020년 기준 상원에는 802명의 의원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그중 682명이 종신 귀족, 26명이 주교들로 이루어진 성직 귀족이고 나머지 94명은 세습 귀족 및 기타 귀족이다.

영국의 하원은 13~14세기부터 발전하기 시작했고, 잉글랜드와 웨일스가 1707년 스코틀랜드, 19세기 초 아일랜드와 연합하여 통합왕국으로 발전하면서 그 역할의 중요성도 커졌다. 1911년과 1949년 의회법에 따라 하원의 권한은 더욱 강해졌고, 오늘날 영국 정부는 성공적인 입법 및 정책 시행을 위해 하원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원의 법적 임기는 5년이며 다수대표제 방식의 직접선거를 통해 650개의 지역 선거구에서 1명씩 선출된다. 하원은 기본적으로 입법권과 국정조사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정부가 발의하는 법안에 대한 심의권을 가지고 있다.

정당[편집]

역사적으로 영국의 주요 3대 정당은 보수연합당(Conservative and Unionist Party) 또는 보수당(Conservative Party), 노동당(Labour Party), 그리고 과거 자유당(Liberal Party)이었던 자유민주당(Liberal Democrat)이다. 스코틀랜드 국민당(Scottish National Party)의 경우 정당 규모는 자유민주당보다 크지만 스코틀랜드의 선거구에서만 후보를 내고 있기 때문에 전국 정당으로의 역할을 담당하지 못했다.

영국보수당의 뿌리는 1678년에 시작된 토리당 운동(Tory Movement)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토리당의 당원 및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보수주의 사상을 확대하여 근대적 의미의 정당으로 발전시켰고, 이를 바탕으로 1834년 영국보수당이 창당되었다. 오늘날까지도 보수당은 토리당으로 불린다.

자유민주당은 1859년 휘그운동(Whig Movement)을 중심으로 급진적 필라이트(Peelite) 성향의 당원들이 중심이 된 영국자유당이 전신이다. 자유당은 1988년 사회민주당(Social Democratic Party)과 합당하였고, 자유민주당이 창당되었다.

영국노동당은 1900년 노동조합과 독립노동당 등의 진보 세력이 연합해 결성된 노동자대표위원회(Labor Representative Committee)를 중심으로 창당되었다. 노동당은 1924년 자유당의 지지를 얻어 소수 정부를 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집권에 성공하였고, 이후 자유당을 제치고 영국 제2의 정당으로 부상하였다.

이외에도 영국에는 스코틀랜드를 기반으로 하는 스코틀랜드 국민당, 민주통합당(Democratic Unionist Party), 신페인당(Sinn Féin), 웨일스 민족당(Plaid Cymru)과 군소정당들이 존재한다.

선거제도[편집]

영국은 웨스트민스터 모델(Westminster Model)로 알려진 다수제 민주주의(Majoritarian democracy)를 채택하고 있으며, 양원제를 바탕으로 상원과 하원 중 단순 다수제(Plurality Voting System)를 채택하여 실행하고 있는 하원의원들만이 단순 다수제를 통해 선출되며, 상원의원은 임명직이다. 영국은 전통적으로 한 정당이 단독으로 의석 과반수를 차지하여 집권하는 단일정당 내각(Single Party Cabinet)을 구성해왔는데 이러한 전통은 소선거구 단순다수제가 거대 정당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소선거구 단순 다수제 아래에서 신생 정당 및 정치인들의 정계 진출은 어려움이 생겼고,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에서는 양당체제가 매우 고착화되었다.

영국에서는 1832년 귀족을 중심으로 제한된 선거권이 부여된 이래로, 1867년에는 노동자들에게도 선거권이 부여되었고 1918년에는 21세 이상의 남성과 30세 이상의 여성에게 선거권이 부여되었다. 이후 1928년 남녀 모두 동일하게 21세 이상부터 선거권을 부여받았으며, 1969년 이후로 투표 가능 연령은 남녀 모두 21세에서 18세로 낮아졌다.

사법부[편집]

영국의 법은 크게 성문법(Statute Law), 관습법(Common Law), 그리고 유럽연합법(European Union Law)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에서 성문법은 의회 제정법(Act of Parliament), 명령(Orders) 및 지방자치 조례(By-laws) 등이며 관습법은 과거의 판례를 바탕으로 한 불문법이다.

이러한 법률적 특징을 바탕으로 영국은 4개의 법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각각은 잉글랜드법(English law), 스코틀랜드법(Scots Law), 북아일랜드법(Northern Ireland Law), 그리고 2007년 이후 제정된 웨일스법(Welsh Law)에서 파생되었다. 앞의 세 가지 법과는 달리 웨일스법은 그 자체로 별도의 법체계가 아닌 웨일스 의회에 의해 만들어진 1차 또는 2차 입법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영국법의 법률적 해석에 따른 영국 관습법(Common Law)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영국의 법률 체계와 법적 관할권 사이에는 상당히 중복되는 부분이 많으며, 잉글랜드와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의 각 법체계는 관할구역으로 기본 설정되며, 이러한 법적 제도를 총괄하는 것은 영국법(United Kingdom Law)이다. 영국법의 법률은 영국 및 그 시민 전체에 적용되는 법률에서 비롯된다.

유럽연합법(European Union Law)은 유럽연합(EU)의 의무 조약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정책이 회원국 국내의 법으로 전환되며, 지금까지 유럽 연합 법은 영국 의회의 법률 제정 권한에 따라 영국의 법체계로 적극적으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브렉시트(Brexit)를 통해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하게 되면서 이전까지 한시적으로 유지된 유럽연합법의 국내법적 전환은 새로운 협상과 법적 조정을 요구받고 있다.

또한 행정 법률 사건에 대한 특정 법원들은 영국 전역에 관할권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이민을 다루는 고등법원(High Court)과 특별 이민 항소 위원회(Special Immigration Appeals Commission)를 포함하여 군사 및 국가 보안, 경쟁 및 지적 재산권 등이 이에 해당된다. 고용에 관한 항소법원(Court of Appeal)은 영국 전역에 걸쳐 관할권을 가지고 있지만, 북아일랜드에서는 관할권이 없다.

대법원(Supreme Court)은 잉글랜드와 웨일스, 북아일랜드의 모든 형사 및 민사 사건, 스코틀랜드 법률의 모든 민사 사건에 대해 담당하는 최고 법률기관이다. 영국의 대법원은 2009년 10월부터 기존의 추밀원 내 사법위원회(Judicial Committee of the Privy Council)의 업무를 대체하기 위해 신설되었고, 영국 속령들과 지방자치법 항소심을 담당하고 있다. 영국 대법원에는 대법원장(President of the Court)을 포함하여 12명의 대법관이 임명된다.

이외에도 영국은 치안을 담당하는 치안판사 법원(Magistrates’ Court), 치안판사 법원의 관할권이 아닌 지역에서 발생하는 중범죄에 대한 재판과 형사사건의 항소심을 담당하는 형사법원(Crown Court), 대부분의 민사사건과 법률 해석상의 문제로 인한 항소심 재판을 다루는 고등법원(High Court)이 있다. 또한 형사법원과 지방법원에서 항소되어 오는 사건의 2심 재판을 맡게 되는 항소법원(Court of Appeal)과 민사사건만을 담당하는 영국의 지방법원(Country Court), 그리고 영국연방 국가 및 영국 속령의 특정 재판을 담당하는 추밀원 사법위원회가 있다.

영연방[편집]

영연방은 느슨한 국가 연합이다. 53개 영연방 회원국 모두는 영국 국왕을 영연방의 수장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그 회원국들 중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뉴질랜드, 자메이카, 바하마, 바베이도스 등 다수 국가들의 왕이기도 하다. 국왕은 2년마다 열리는 영연방 정부 수반 회의에 참석하며 각국의 국가 수반으로 총독과 사적인 대화를 갖는다.

영연방군[편집]

224,000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차 420대, 전술기 1,663대, 군함 99척 등을 보유하여 세계 5위의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 핵 보유 국가이기도 하다. 영국은 세계 3위의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다. 또한 항공모함 1척, 이지스함 3척 등을 보유하여 강력한 해군을 보유하고 있다. 잠수함들도 있다. 그리고 유럽에서 네덜란드와 함께 유일하게 토마호크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해군 전력도 추가로 항공모함을 건조 중이다.

군사[편집]

영국의 항공모함인 퀸 엘리자베스급 항공모함

역사적으로 영국은 매우 높은 수준의 국방력을 유지해왔다. 1707년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Kingdom of Great Britain) 설립 이후 7년전쟁, 미국독립혁명, 나폴레옹 전쟁, 크림 전쟁, 제1·2차 세계대전 등 세계 강대국들이 참여한 수많은 주요 전쟁에서 활약했다. 이러한 영국의 국방력은 18~20세기 초 대영제국이 세계를 지배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으며 세계 각지에서 벌어진 전투 및 분쟁에서 승리하면서 영국은 국제사회에서 초강대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과거와 같은 초강대국의 지위는 상실했지만 여전히 국제사회에서 강력한 국방력을 가진 국가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영국군(British Armed Forces)의 주요 목표는 영국의 이익 증진과 국제평화 유지, 인도주의적 지원이며, 영국은 군사적으로 해군(Royal Navy), 해병대(Royal Marine), 공군(Royal Air Force), 육군(British Army) 등을 운영하고 있다. 영국군의 수장은 국왕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며, 실질적인 군사력의 행사 및 결정에 대한 행정권은 총리와 국방부 장관이 가지고 있다. 또한 영국의 국방체계는 육·해·공군 3군이 통합된 조직이며, 국방부 장관이 3군을 통합하여 지휘하는 권한을 가진다.

2020년 기준 영국군의 총병력은 150,070명으로 영국 정규군과 네팔 구르카족(Grukhas)이 포함된 수이다. 이외에도 37,040명의 지원 병력, 7,940명의 기타 가용인원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 통해 총 195,050명이 국방 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다. 각 군을 기준으로 영국 해군은 39,840명, 육군은 117,810명, 그리고 공군은 37,400명이 복무 또는 지원업무를 수행한다. 2020년 통계에 따르면, 영국은 국방비로 약 579억 4,044만 달러를 지출하였는데, 2019년 대비 27억 4,599만 달러가 증가한 수치이다. 영국의 국방비는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2.1%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전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많은 수치이다. 또한 2019년 기준 영국은 방위산업(Defence Industry) 분야에서 151억 296만 달러의 수주를 따냈고, 세계 방위산업 시장에서 16%의 점유율을 기록하였다.

영국은 핵무기비확산조약(NPT) 체제에서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와 함께 5개의 공인된 핵보유국 중 하나이며,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을 48개 보유하고 있으며 비상시 독자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또한 국제연합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Permanent Member)이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창립국 중 하나로 국제사회에서 지대한 군사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영국군은 유엔 신속대응군단(UN Allied Rapid Reaction Corps)과 5대 전력방위협정(Five Power Defense Agreement), 림팩(RIMPAC) 및 기타 전 세계 연합작전을 포함한 다양한 군사작전에 참여하고 있다.

외교[편집]

영국의 외교정책은 영국 외무성(Foreign, Commonwealth & Development Office)이 주관한다. 정부는 영국의 국가안보 수호, 영국의 경제적 번영 확보, 전 세계에 거주하는 자국민들에 대한 효율적 지원 등을 주요 외교 목표로 삼고 있다. 이러한 외교정책 목적을 바탕으로 영국은 국제사회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다양한 국가들과의 협력관계를 통한 발전을 꾀하고 있다.

19세기와 20세기 초까지 세계 최고의 강대국이었으며, 특히 1800년대 중후반 동안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며 전성기(Pax Britanica)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지속된 세계경제 불황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인해 영국이 보유했던 식민지를 비롯한 역사적 자산들을 잃게 되었고, 국제사회에서 영국의 지배적인 역할은 점차 축소되는 결과를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성공적인 전후 복구과정을 거쳐 새롭게 부상했다.

과거와 같은 패권국의 지위를 포기하는 대신 전 세계 국가들과의 협력적인 외교관계를 바탕으로 전략적 파트너십을 추진해왔고, 국제사회에서 외교 강국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과거 경성권력(Hard Power) 중심의 정책기조가 아닌 연성권력(Soft Power)을 기반으로 한 외교관계를 추진해오고 있으며 이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자유무역과 해외투자를 적극 장려하여 상호의존성이 높아진 세계시장의 개방을 주도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중남미와 아시아 등의 신흥시장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실시하고 있다. 영국은 세계무역기구(WTO),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세계 무역 및 금융기구와의 협력을 통해 보호주의 무역의 흐름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과 함께 국제사회의 공동대응 촉구하고 있다.

또한 국제평화와 발전을 위해 강대국들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하며 국제연합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이자 영국연방의 수장국가로서 국제분쟁과 인권보호, 질병 퇴치를 위해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을 위한 적극적인 공적개발원조사업(ODA)도 이러한 활동의 한 예이다.

이외에도 기후변화 및 녹색성장과 같은 환경 이슈를 주도하고 있으며, 핵확산 방지, 대테러 활동, 사이버안보 등 군사안보 분야에서도 다른 국가들과 긴밀한 협력을 맺고 있다. 또한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해 미국, 인도, 중국, 한국, 러시아 등과 연구 협력을 추진하고 있고, 미디어·예술 등을 바탕으로 한 문화교류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러한 협력 및 사업들은 연성권력의 활용을 통해 국가의 이미지를 제고하고, 세계 각국에 영국의 영향력을 확대시키기 위한 공공외교적 노력으로 평가할 수 있다.

미국과의 관계

영국과 미국의 관계는 대략 400년 정도 소급된다. 1607년 영국은 "제임스타운"이라고 명명된 북미 대륙 최초의 상주 식민지를 세우기 시작하였고, 오늘날 영국과 미국은 가까운 군사적 동맹체다. 양국은 문화적으로 유사할 뿐만 아니라 군사적 연구와 정보 기구를 공유한다. 영국은 미국으로부터 토마호크 미사일이나 트라이던트 미사일과 같은 무기를 구입했고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해리어(Harrier)와 같은 장비를 구매했다. 또한 영국에 대규모 군대를 주둔하고 있다. 최근 영국의 총리와 미국의 대통령은 매우 친밀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가령 토니 블레어와 빌 클린턴 및 이후 조지 W. 부시 대통령 간의 관계, 1980년대 마거릿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 등의 관계가 그러하다. 현재 영국의 정책은 혈맹 미국과의 관계는 영국의 "가장 중요한 2자간 관계"임을 표명한다.

대한민국과의 관계

한국과 영국의 외교관계는 1845년 영국 해군이 조선에 처음 상륙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1883년 영국과 조선은 조-영 우호통상조약(Treaty of friendship and Commerce Between Great Britain and Korea)을 맺었고 역사적으로 한국에게 있어 영국은 서방국가 중 미국에 이어 2번째 수교국이다.

이후 1901년 주한영국공사관이 개설되고 한국에서도 런던으로 초대 공사를 파견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면서 한국과 영국 사이의 교류는 단절되었다가 1949년 1월 한-영간 국교가 재수립되었으며, 영국은 대한민국을 한반도에서의 유일 합법 정부로 승인하면서 다시 수교가 재개되었고 1957년 양국의 공사관이 대사관으로 승격되었다.

한국 전쟁 당시 영국은 유엔(UN)군으로 참전하였고,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의 군사를 파견했다. 총 56,700명의 영국군이 한국 전쟁에 참전했으며 전사자 1,078명, 부상자 2,674명, 포로 979명 등이 발생했다. 이러한 군사적 지원을 바탕으로 1993년까지 한국에 영국군이 주둔하고 한미 연합훈련에 참가하는 등 양국 간 지속적인 군사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본격적인 한영관계의 발전은 한국이 급속한 경제 성장을 기록하던 1970년대를 기점으로 시작되었다. 1970년대 영국 외무성의 통상 담당자들이 방한하면서 한국의 조선업에 기술 및 금융지원을 시작했고 이후 현대자동차, 원자력 발전소 건설 등에 영국의 기술적인 지원이 상당 부분 투입되었다. 1980년대에는 영국의 국내경제가 쇠퇴하면서 한-영 경제교류가 다소 약화되었으나 1990년대 한국의 경제성장과 함께 서울-런던 직항이 구축되는 등 교류가 다시 활발해졌다. 1997년 한국에 IMF 금융위기 사태가 터지면서 불가피하게 경제 관계가 소원해졌으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러 1999년 방한하는 등 이를 극복하려는 양국 간 노력이 있었다. 한국과 영국은 한-EU FTA로 첫 FTA를 시작했으나 브렉시트 이후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하면서 양국은 새롭게 개별적으로 FTA를 체결 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2018년 리엄 폭스(Liam Fox) 영국 국제통상부 장관이 방한 당시 한국과의 FTA 협정에 대한 희망 의사를 밝힌 바 있고, 2019년 브렉시트를 앞둔 시점에 영-한 고위급 경제 대화채널을 구축해 경제협력, 다자협력, 기업 진출 등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2020년 기준 영국에 대한 한국의 수출액은 약 44억 7,000만 달러로 전년도에 기록한 55억 1,000만 달러에 비교해 감소한 모습을 보였다. 한국의 주요 수출품목으로는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 선박, 항공기부품, 무선통신기계 등이 있다. 기아자동차는 2019년을 기준으로 누적판매 100만대를 달성했다. 2020년 기준 영국에 대한 한국의 수입액은 약 43억 6,000만 달러로 주로 원유, 자동차, 의약품 등을 수입하고 있다. 한국의 대영 주요 투자분야는 서비스업, 제조업, 금융보험 등이다.

정부 차원에서는 정보통신기술, 연구개발, 기후변화, 에너지, 중소기업, 스타트업 등에 중점을 두고 협력하고 있다. 한-영 정책협의회(Korea-UK Policy Consultations), 한-영 전략대화 (Korea-UK Strategic Dialogue), 한-영 미래포럼(Korea-UK for the Future), 한-영 경제협의회, 한-영 문화관계 회의, 한-영 과학기술공동위원회 등이 1970년대 말부터 활발히 지속되고 있다. 2014년에는 제 1차 한영 창조산업 포럼(Korea-UK Creative Industries Forum)이 열렸으며, 과학 분야에서는 2014년부터 기초과학연구원(IBS)과 한국과학기술한림원(KAST)이 영국왕립학회(Royal Society of London for Improving Natural Knowledge)와 2년에 한 번씩 공동 컨퍼런스를 개최하고 있으며 재영 한국학 학회(British Association of Korean Studies)와 같은 학술교류가 진행되고 있다.

한편 양국은 고위인사 및 귀빈 교류도 활발히 하고 있다. 1953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에 당시 국회의장 신익희가 축하 사절로 영국을 방문했으며, 이후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등이 국빈자격으로 영국을 방문했다. 영국에서는 1992년 찰스 왕세자 내외 방한, 1999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방한 등 여러 차례에 걸친 국빈 교류가 있었다. 특히 1999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방한 당시 한국 ]]안동 하회마을]]에서 73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2020년 기준 영국 내에 약 4만 명의 한국인이 거주하고 있으며 주로 1970년대에 정착한 한인 이민자, 유학생, 어학 연수생 등이 있다.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영국인은 2019년 기준 약 7,600명이다. 정보통신의 발달과 SNS를 통해 한류가 영국에도 전파되고 있으며 주영한국문화원은 K-pop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와 서울관광재단 등 한국 기관들은 영국에서 열리는 행사들에 참여해 K뷰티, 김치, 한국여행 등을 홍보하고 있다. 한류의 여파로 2019년에 열린 런던 아시아 영화제(London Asia Festival)에서는 한국영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매달 런던 랜드마크에서 한국영화를 상영하는 K-Cinema 100을 운영하기도 했으며, 웨일스 카디프 대학교와 스완지 대학교의 K-Pop 소사이어티(K-Pop Society)에서 한국인의 날(Korea Day in Whales)을 주최했다.

영국은 북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불승인 정책을 견지하였으나 토니 블레어(Tony Blair) 총리가 2001년 북한과 수교를 맺으면서 평양런던에 각각 대사가 파견되었다. 하지만 영국이 한국의 입장을 지지하고 북한 핵문제를 심각한 안보위협으로 간주하여 대북제재에도 동참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과의 관계가 원활하지 않다. 이에 영국은 북한의 개혁개방과 대북 협력 사업을 위해서는 핵무기를 포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북한에 대해 문화교류와 인도적 지원을 지속하고는 있으나 북한의 인권탄압과 핵개발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는 입장이다. 2017년 대북제재와 함께 수교 이후 진행되어오던 영어프로그램도 중단하였다.

중국과의 관계

영국은 중국과 역사적으로 사이가 나쁜 편이다. 19세기에 아편전쟁에서 청나라에 승리한 대영제국은 청나라로부터 홍콩을 차지해 1997년까지 영국령 홍콩이란 이름으로 지배했다. 2010년대부터 영국은 중국과 사이가 나빠지면서 2010년대 후반과 2020년대부터 홍콩 보안법과 코로나19사태로 인해 영국은 중국과 갈등을 빚고 있다.

일본과의 관계

입헌군주국인 섬나라라는 공통점이 있는 영국과 일본은 여러모로 많이 닮은 나라다. 너무 비슷해서 동맹도 맺을 정도라는 말도 있다. 이 때문인지 홍콩과 싱가포르에서 도쿄, 오사카를 오가는 교통 수요도 예전부터 많았다. 영국령 당시 일본에서 가장 가까운 영국으로들 인식했기 때문이다. 현재도 영국과 일체화되다 시피 한 두 도시의 특성 상 일본과 왕래가 잦다.

일본은 근대화 과정에서 영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주로 정치체제는 영국을, 행정·군사·사법체제는 독일을 본받았다. 메이지 유신 당시 영국의 영향을 많이 받기도 했고, 같은 섬나라 & 입헌군주제라는 공통점의 영향으로 보인다. 게다가 19세기 후반부터 1차 세계대전까지 양국이 동맹을 맺으면서 각별한 사이를 과시하기도 했다. 일본의 카레는 영국 해군이 매주 주말마다 먹던 카레를 일본 해군이 영국 해군의 '모든 것'을 베껴오던 중에 곁다리로 따라온 것이다. 당시 식습관과 함상 생활방식 까지 고대로 카피를 해오려고 했기에 영국식 카레 파우더에서 유래했다. 또한 의외로 니쿠쟈카(肉じゃが/쇠고기 감자조림)도 영국의 스튜와 비슷한 걸 만들다보니 유행하게 되었다는 비사(!)

일본의 서브컬쳐 매체들에서도 영국계나 영국인 캐릭터는 자주 나오기에 둘 사이 외교 관계를 모르는 오타쿠들도 왠지 일본과 영국이 자주 엮인다는 인상을 받는 경우가 많다.

동남아시아와의 관계

동남아시아 국가들중에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브루나이영연방에 가입되어 있다. 영국과의 교류, 협력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많아지고 있다. 영국인 관광객들이 동남아에서 관광하러 오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미얀마는 영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영연방에 가입하지 않았다. 그리고 영국의 영향력을 줄이는 정책을 실시했고 2021년부터 미얀마 군부가 영국과 갈등을 빚으면서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2021년부터 영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아세안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인도와의 관계

인도가 과거 영국의 식민지로서 탄압받던 시기가 있기에 과거사 문제가 있으나 21세기 기준으로 중인관계가 악화된 반사이익으로 우호관계로 변하고 있다. 이 외에도 영국의 브렉시트와 관련되어서 인도와 영국간의 협력 규모가 증가할 전망을 보이고 있다. 인도는 영연방에도 가입되어 있다.

영국에는 상당한 규모의 인도계 영국인들이 거주하고 있기도 하다.

예전에 실파 셰티와 관련된 사건으로 인해 인도측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2019년 5월 10일에 인도의 암바니가 영국의 장난감백화점인 햄리스를 인수했다.

파키스탄과의 관계

파키스탄은 과거에 인도와 함께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파키스탄은 영연방에 가입되어 있으나 영국에게 심한 탄압을 받아 그리 좋지 않다. 실제로 영국의 통치에 반발한 와지리스탄의 반란도 영국이 진압했다. 영국에 파키스탄계 이민자들이 매우 많으며, 이 때문인지 영국에서는 이들을 '파키'라고 부르며 뒤에서 비하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치안이 안 좋은 런던 같은데서는 '파키'라는 말을 앞에서 입에 잘못 담았다가는 진짜 칼 맞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비하를 많이 당하는 것과는 별개로 영국에 체류하는 파키스탄인들은 소득과 교육 수준에서 영국 서민층들과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는 영국의 노동계층의 상황이 아예 천민이나 다름없이 비참하다는 이유도 있지만 영국의 공교육이 영어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민자 가정 입장에서 적응이 쉽기 때문이기도 하다.

프랑스와의 관계

아무래도 잉글랜드와 프랑스가 오랫동안 교류했고 스코틀랜드 또한 결혼동맹 등으로 프랑스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기에 Anglo-French relations란 용어도 쓰인다.

오랜 라이벌 관계로 유명하다. 백년전쟁, 잔다르크, 아쟁쿠르 전투, 워털루 전투 등은 국내에서도 유명하다. 역사적으로도 고대부터 나폴레옹 전쟁까지 서유럽의 패권을 두고 다투었지만 19세기부터는 프랑스가 영국과의 경쟁을 피하기 시작하며 양국 사이의 물리적 충돌이 사라졌다.[2] 그리고 20세기에는 양차 대전을 겪으며 새로운 강대국 독일을 상대로 군사 동맹을 맺으며 협력했다. 현재는 국민감정상으로는 여전히 라이벌 관계이다.

오늘날에 35만 명의 프랑스인이 영국에 거주하며 프랑스에도 약 40만 명의 영국인이 거주한다. 통혼이 빈번했고 인구 이동도 잦았던 탓에 조상 중에 영국인의 피가 섞여 있는 혼혈인 프랑스인이나 프랑스인의 피가 섞여 있는 영국인이 굉장히 많다.

경제[편집]

영국 금융의 중심지 런던
맨체스터의 트래포드 센터 쇼핑 단지

2022년 기준 명목 GDP로 환산했을 때 영국은 세계 6위 경제대국이다.

오랜 기간동안 축적된 과학 기술과 우수한 고등교육기관 그리고 기업친화적인 경제 환경을 갖춘 영국은 항공 우주 산업, 방위 산업, 제약업 등 기술 집약적인 고부가가치 첨단 제조업에서 BAE Systems밥콕, 롤스로이스 plc, 아스트라제네카, 글락소스미스클라인과 같은 굴지의 대기업들을 통해 확실하게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 외에도 영국은 대표적인 선진국형 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금융업과 IT 산업에서도 선두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금융업의 경우, 전통적인 금융업 강국답게 HSBC, 바클리스, 로이드 뱅킹그룹 등 세계적인 상위권 은행 순위에 이름을 올리는 금융기관들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긍정적인 요인들 덕분에 2010년대에 들어 영국의 고용률은 주요 선진국들 중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영국 대도시들의 월세는 매우 비싼 편에 속한다. 런던의 평균 원룸 월세는 200만원 정도이며, 맨체스터도 120만원 정도이다. 이러한 월세는 영국의 전반적인 임금수준이 상당히 높은 편임에도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라, 저소득 무주택자들은 집세 부담이 매우 커서 노숙자가 되지 않더라도 트레일러 하우스 혹은 낡은 보트를 불법개조해 사실상 원룸처럼 사는 주거를 비롯해 주거라 볼 수 없는 곳에서 사는 일이 매우 흔하다.

또한 교통비, 전기세, 인터넷, 케이블 방송비 등이 다소 비싼 편이며 식료품의 가격 정도만 싼 편이다. 특히 중국 자본의 투기로 인해 부동산 매매 가격이 급등하고 월세 비용이 가파르게 상승함으로써 촉발된 주거난 문제는 영국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영연방 계통 국가들 전체에서 겪은 국제적인 이슈이다. 런던 외에도 토론토, 밴쿠버, 시드니, 멜버른, 오클랜드 등 거의 모든 영연방 내 최상위권 도시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겪었다.

다만 그와는 별개로 고학력자들에게는 폭넓고 질좋은 취업 기회가 주어진다. 특히 영국이 두각을 나타내는 설계 위주의 첨단공학, 제약, IT 및 정보 지식 산업과 같은 분야를 본다면 우수한 구직처들이 풍부하다. 또한 영국은 인종, 언어적인 문제 때문에 유럽이나 미국 대기업으로의 취직이 한국보다 훨씬 수월하다.

금융계, 소프트웨어 업계 등지에서는 영미 사이의 인력 이동이 활발히 일어난다. 그래서 금융이나 IT에 오래 있던 사람들끼리 대화하다가 "난 사실 아직까지 미국 가 본 적 없어"라고 하면 "뭐? 진짜?"라고 하며 꽤 놀란다.

미국과 함께 강대국들 중 경제적 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국가이다. 불만의 겨울 이후 마가렛 대처와 존 메이저의 보수당 정권 18년, 노동당이긴 하지만 신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토니 블레어 정권이 10년간 이어지며 경제적 자유주의가 사회에 완전히 정착하였다.

현재 영국의 법인세는 17%로 선진국들 중 낮은 축에 속하며, 보리스 존슨 총리는 여기에 더해 법인세를 세계 최저 수준인 12.5%로 추가로 인하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발생하자, 영국 정부는 락다운으로 인해 피해보는 기업들과 개인사업자들에게 막대한 고용유지 지원금을 대주게 되었다. 이에 따라 국가재정상황이 급격하게 어려워졌고, 결국 영국 정부는 법인세를 올리기로 했다.

1차산업[편집]

영국의 밀밭

섬나라이며 근처에 풍부한 어장이 있기 때문에 어업이 발전되어있다. 괜히 피시 앤 칩스의 나라라고 불리는게 아니듯이 어패류 소비량이 많은데, 그 피시 앤 칩스에 주로 쓰이는 대구의 어장과 관련해 인접 소국인 아일랜드, 아이슬란드와 첨예한 마찰을 빚어 급기야 대구 전쟁이라고 불리는 소규모 분쟁을 겪은 역사가 있다.

주곡농업 부분에 있어서는 서유럽 4대 곡물 수출국에 해당되고, 보리의 자급율이 100%를 상회한다. 동유럽의 러시아, 우크라이나를 합치면 유럽 대륙에서 5번째로 곡물을 생산하는 국가가 영국이다. 즉 영국은 옥수수, 콩은 수입하지만 밀과 보리는 스페인, 포르투갈, 몰타, 이탈리아, 그리스, 모나코, 바티칸, 산마리노, 키프로스와 같은 남유럽이나 아이슬란드, 벨기에,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네덜란드와 같은 서유럽과 북유럽 일부 국가에 수출하는 셈이다.

과수농업의 경우 사과, 배 등을 위주로 생산하고, 켄트, 사우스웨스트 잉글랜드 위주로 생산된다. 그리고 사과주 생산 및 1인당 소비율 1위가 영국이다.

목축업의 경우 사우스웨스트 잉글랜드, 웨스트 미들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하일랜드를 중심으로 발달해있다. 이들 지역에서는 쇠고기, 양고기, 양모, 닭고기, 돼지고기 등을 생산한다. 낙농업의 경우도 해당 지역을 중심으로 치즈, 우유, 버터, 크림을 생산한다.

광물개발산업[편집]

영국의 주요 산업 중 일반인들이 모르는 분야가 광물개발이다. 이는 대영제국 시절의 유산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는데, 덕분에 영국의 천연자원 개발 산업은 현재까지도 , 석탄, 구리, , 다이아몬드 같은 광물부터 석유, 천연가스 등을 개발하는 데 있어서 세계적으로 주도하고 있다.

대표적인 천연자원 개발 기업은 다들 한 번씩은 들어봤을 석유회사인 BP plc로열 더치 쉘이며, 광산 개발 기업은 BHP 빌리톤과 리오틴토, 앵글로아메리칸 plc인데, 주요 광산은 대부분 캐나다, 호주나 남아공, 중남미 등에 위치하지만, 하나같이 본사는 영국 런던에 있으며, 광물 탐사와 개발에 필요한 자본은 영국에서 제공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편집]

1920년대에서 1950년대까지 영국의 자동차 생산량은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였으며, 수출량은 세계 1위였지만, 현대에 와서는 이전에 비해 입지를 상당부분 상실한 상태이다. 다만 영국의 자동차 산업을 포함한 제조업이 망했다는 식의 주장에 대해서는 여러 반론들이 있다. 일반적으로 영국의 제조업은 일반 소비재 위주(B2C)가 아닌, 기업 위주 비지니스(B2B)라 일반인들에게 영국 제조업 브랜드는 생소한 편이라는 것이다. 또 영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증명할 만한 통계치들로 2016 Delotte 글로벌 제조업 경쟁력지수 6위, 2014 BCG 제조업 경쟁력 지수 4위, 2012 기술무역수지 3위, 2011 국제특허사용료 흑자국가 3위 등이 있다. 또한 일각에서는 현재 영국의 자동차산업에서 자국 자본의 자동차 회사는 하나도 없고, 전부 외국 자동차 회사의 자회사 및 현지 생산 공장이라는 점을 꼬집기도 하지만, 영국의 경우 프리미엄 브랜드 자동차 생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고 이러한 브랜드들의 뿌리는 영국 자국이기 때문에 마냥 자동차 생산 기지라고 폄하할만한 것이 아니다.

OICA의 통계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영국의 자동차 생산량은 14위이며, 자동차 수출액은 세계 5위로 총 420억 달러이며 경쟁국 중 하나인 이탈리아의 169억 달러보다 월등히 높았고, 총 매출액은 820억 파운드였다. 영국의 자동차 생산량에 비해서 수출액이 높은 이유로는, 마거릿 대처 재임기간동안 영국이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의 주요 생산 거점으로 자리잡은 것이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즉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이 영국이 아닌 대륙유럽이나 영연방의 다른 국가들에 판매할 자동차를 영국에서 생산한다는 것이다. 1970년대 초반까지도 오랜기간 동안 축적된 영국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 덕분에 생산량이 높았으나, 이후 영국 자동차 회사들이 심각한 피해를 입으면서 생산도 반으로 감소되는 피해를 겪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부터 마거릿 대처의 주도 아래에 그녀가 이끄는 보수당 정부는 일본 자동차 회사들이 영국에 공장을 설립할 것을 설득하였고, 일본 회사들은 영국을 유럽연합 자동차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생산 거점지역으로 삼기 시작하였다. 이 덕분에 영국의 자동차 생산량은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고, 독일과 미국의 자동차 회사들 또한 공장을 영국에 설립하기 시작하면서 영국은 다시 자동차 산업을 부흥시킬 수 있었다.

영국에서 제조된 일본 브랜드의 자동차들은 현재까지도 영국 자동차 수출의 약 50%를 차지하고 있다. 닛산의 선덜랜드 공장은 유럽 시장에 판매하는 주력 모델 4종을 모두 영국에서 생산하고 있으며, 번나스톤에 위치한 토요타의 공장 또한 주력 모델인 코롤라를 현재 생산하고 있다. 이외에도 복스홀이라는 영국 브랜드를 내세워 엘즈미어 포트와 루튼에서 공장을 가동하고 있는 PSA 그룹이 있다.

또 상단에서도 언급했듯이, 영국은 생산되는 자동차들의 대부분이 프리미엄 브랜드라는 것이 주된 특징이다. 현재 대표적인 영국 국적의 승용차 제조 회사들로는 롤스로이스, 벤틀리, 재규어, 미니, 랜드로버가 있다. 이들 회사들은 모두 각각 대형차, 중형차, 소형차, SUV 시장에서 고부가가치 고성능의 자동차를 생산하는 프리미엄 브랜드로 인정받고 있다. 그 외에도 스포츠카를 생산하는 애스턴 마틴, 맥라렌, 로터스와 상업용 차량을 생산하는 레일랜드 트럭, 알렉산더 데니스, JCB, 런던 EV 컴퍼니가 있다. 대표적인 영국의 자동차 생산 도시들로는 재규어와 랜드로버, MG의 주요 공장들이 위치한 버밍엄과 미니의 본사가 위치한 옥스퍼드가 있다.

다만 이들 영국 자동차 회사들은 자국 자본이 아닌, 외국 기업의 자회사로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롤스로이스미니는 독일 BMW 산하 자회사이며, 벤틀리는 독일 폭스바겐 그룹 산하 자회사이다. 재규어랜드로버는 인도 타타자동차 산하의 자회사이다. 로터스는 중국 지리자동차 산하의 자회사다. 애스턴 마틴이탈리아, 쿠웨이트, 영국, 미국 자본이 공동 소유하고 있다. 게다가 이 회사들은 현재 소유주가 모기업이 되기 이전에 이미 다른 여러 기업을 몇 차례 거치는 등 모두 매우 파란만장한 역사를 겪었다. 또 2021년 현재는 재규어, 랜드로버 매각설이 나돌고 있다. 하지만 맥라렌의 경우 순수 영국 기업이다.

영국의 자동차 산업은 엔진 등 부품 생산에 있어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대표적으로 영국 국적의 부품 제조 회사인 GKN이 있다. 그 외에도 포드는 런던 북동부에 위치한 데젠헴(Dagenham)이라는 지역에 디젤 엔진 생산 거점을 두고 있으며, BMW는 버밍엄 근교의 [함즈 홀]](Hams Hall)이라는 소도시에 가솔린 엔진 생산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자동차 부품은 2012년 기준으로 영국의 10대 수출 품목 중 하나이기도 하다.

기술 혁신과 연구개발 또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편이다. 대표적인 연구개발센터로는 포드가 이스트 오브 잉글랜드의 에식스 주에 세운 던튼 기술 센터(Dunton Technical Centre)와 재규어 랜드로버가 보유한 코번트리 교외 권역 휘틀리(Whitley)의 본사 산하 연구소가 있다. 그 외에도 재규어 랜드로버는 웨스트 미들랜즈의 워릭셔 주에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MG 또한 그룹 본사인 SAIC의 이름으로 버밍엄에 연구소가 있다. 닛산은 유럽 전체를 포괄하는 디자인 센터와 연구소를 각각 런던과 크렌필드(Cranfield)에 위치하고 있다.

방위산업[편집]

영국은 세계적인 군사강국인 만큼 전통적인 방위산업 대국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부터 현재까지 누적된 영국의 방위산업 수출액 총합은 미국에 이어서 세계 2위일 정도로 수출하는 물량 또한 매우 많은 편이다. 대표적인 영국의 방위산업체로는 BAE 시스템스가 있다. 이 회사는 챌린저 2, 유로파이터 타이푼 등을 포함한 영국의 육해공군 무기들 거의 대부분을 생산하는 회사로, 방산업계에서는 세계 3위, 그 중 미국 회사들을 제외할 경우 세계 1위의 규모와 매출액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레일건 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BAE의 주도로 개발한 신형 호위함인 26형 호위함의 경우에는 국제적인 사업수주가 이뤄져 영국이 8척, 호주가 9척, 캐나다가 최대 15척까지 도입하기로 결정되었다. 이로써 영국제 군함이 21세기 영연방의 차기 해군력의 핵심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항공우주산업[편집]

군용기군함을 생산하면서 축적된 기술적 역량이 민수 부문에서도 발휘가 되는지, 영국은 항공우주산업과 조선업에서도 현재까지 업계를 선도하고 있다. 영국의 항공우주산업은 미국, 프랑스, 중국에 이은 세계 4위의 규모와 세계에서 알아주는 군용기 기술력을 가지고 있으며, 보잉과 함께 세계 상업용 항공기 시장을 양분하다시피하는 에어버스와 같은 외국의 대기업들 또한 항공우주산업에 특화된 브리스톨 등의 영국 도시들에 주요 생산 거점을 두고 있다. 항공기 부품 생산에 있어서도 세계 2위의 항공기 엔진 제조 회사 롤스로이스 plc를 포함한 수많은 회사들이 활약하고 있다.

조선업[편집]

상선 건조에 집중했던 20세기 시절과는 달리, 현재 영국의 조선업은 앞에서 언급한 군함 건조와 크루즈선, 요트 등의 여객용 선박 건조에 주력하고 있는 편이다. 또 앞에서 언급한 롤스로이스 plc는 선박엔진 제조에 있어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현재 영국의 대표적인 조선업 도시로는 사우스이스트 잉글랜드의 포츠머스가 있다.

화학산업[편집]

영국의 제약업은 1996년에는 세계 6위의 규모였으나, 중국브라질의 성장으로 2019년 기준으로 세계 8위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제약 수출액도 총 303억 유로로 유럽에서 4위를 기록했고 301억 유로를 기록한 아일랜드와 경쟁하고 있는 상황이다. 기업의 시장점유율로 산정했을 때 세계 5위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과 세계 6위인 아스트라제네카를 보유하고 있으며,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는 미국 다음으로 가장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역사적으로도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고 있는 약들 중 5분의 1이 영국에서 개발되었을 만큼 경쟁력이 높은 산업 분야로 손꼽힌다.

2018년 GSK과 미국 제약사인 화이자는 각 사의 일반의약품 부문을 분사하여 영국에 연 매출 14조원 규모의 합작 회사를 세우기로 합의했으며 합작사의 지분은 GSK가 68%를, 화이자가 32%를 가지게 된다.

상단에서 언급된 세계 2위의 석유 회사 BP plc는 단순한 석유 채굴 기업이 아닌, 원유 정유와 각종 석유화학제품 생산에서까지 활약하고 있는 종합 석유화학 회사이다. 세계 4위인 로열 더치 쉘 또한 해당 업계에서 거대기업으로서 활약하고 있다.

IT산업[편집]

1980년대 이후 금융업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해 금융업 국가로 불리기 시작했던 영국에서 2015년 이후 금융업이 GDP에 기여하는 양은 6% 정도에 불과하다. 그럼 영국은 어떻게 지난 6년간 G7 중 가장 빠른 GDP 성장을 구가할 수 있었던 걸까? 산업 생산에 극적인 전환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금융업 대신 이 빈자리를 빠르게 채우고 있는 산업은 다름아닌 IT테크놀로지 산업이다. 영국의 정보/전자 산업은 영국 전체 경제보다 5배 이상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2000년 1분기만 해도 전체 GDP의 2%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5%에 달한다. 현재 영국 런던 동부에 위치한 Tech City는 미국 실리콘밸리와 더불어 세계 핀테크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이 추세가 계속 지속된다면, 몇 년 내로 영국을 '금융업 국가'로 부르는 게 어색해질 지도 모르겠다.

통신 분야에선 유럽 최대 통신업체이자 세계 2위인 보다폰(Vodafone)이 영국 기업이며, 전 세계 모바일의 95% & 태블릿 80% 이상에 탑재되는 프로세서가 영국 ARM사 라이선스로 제작되고 있다.

2016~2017년, 이런 전환 현상은 심화되어, 모건스탠리, 시티 그룹, JP 모건, 뱅크 오브 아메리카, 바클레이즈, 다이와, 노무라, 스미토모 미쓰이 파이낸셜 그룹 등 금융 업체들이 런던에서 암스테르담, 더블린, 프랑크푸르트 등으로 빠져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동안, IT 업체인 구글스냅챗은 영국에 사무실을 새로 세우거나 기존에 있던 사무실을 확장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2016년을 전후한 정치적 이벤트로 인해 영국 경제 패러다임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금융업[편집]

런던 증권 거래소가 있는 파터노스터 광장
런던 HSBC 빌딩

마가렛 대처 총리 집권기 보수당은 고물가를 잡기 위해 의도적인 고금리 정책을 펼쳤는데, 보수당의 고금리 정책은 제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측면이 없지는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물가를 안정시키고 전 세계의 자본을 끌어모아 금융업을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이런 보수당의 고금리 정책은 1992년 9월 16일 검은 수요일 사건 때 조지 소로스에게 한 탕 크게 털리는 빌미를 제공해서 결국 폐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처 내각이 정책적으로 금융업을 육성한 결과, 영국 경제는 30년 만에 독일이나 프랑스를 평균 경제성장률에서 능가하였고 1인당 GDP에서는 프랑스를 다시 추월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지니계수 같은 빈부격차 지표는 악화된 부분도 있었다. 금융업에서 영국의 영향력은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막강하며 특히 중동, 유럽과 영국의 구 식민지 지역에서는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영국 금융업은 2008년 세계적으로 몰아진 경제 강풍에 크게 흔들리기도 했었다. 영국의 대표적 모기지 은행이었던 HBOSRBS가 보유하고 있던 자산들의 상당수가 수익을 내기는 커녕 대거 부채로 전락하였고, 이는 영국 경제에 심각한 부담을 주었다. 결국 HBOS를 인수한 로이드 뱅킹 그룹RBS, 바클레이스를 비롯한 금융기업들에 구제 금융이 집행되었다. 이런 구제 금융 및 세수 감소로 인한 영국의 GDP대비 연간 재정 적자는 2008년 10.4%, 2009년 14.8%, 2010년 10.3%에 이르러서 G7중 단연 톱의 기록을 보여줬다. 하지만 2010년 영국의 GDP대비 총 적자는 79.9%로 같은 유럽 빅3 멤버인 독일(83.2%)과 프랑스(82.3%)보다 여전히 낮은 수치인데다가 그리스에 노출된 금액이 독일과 프랑스와 상반되게 미미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는 유로존 사태의 상황을 봐서 이미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한 자국 금융기업에 추가로 구제금융을 해야할 판이어서 상황이 좋지 않았었다.

영국 금융업의 침체는 2008-2009년 영국의 GDP 역성장에 기여했고, 이후 2010년까지 이어지는 저성장에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금융업이 영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실감할 수 있는 부분. 파이낸셜 타임즈 데이터 시트에 의하면 영국의 금융업은 2009년에 GDP의 9%로 정점을 찍었고, 그 후 전체 영국 경제에 차지하는 비율이 꾸준히 감소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불안정한 시장 상태, 영국 정부의 규제, 시민 사회에 팽배한 금융 산업에 대한 불신감, 그리고 첨예해진 경쟁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국 금융업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런던증권거래소는 1801년에 세워져 사실상 세계 최초의 장내 증권거래소이며 규모로 세계 3위이다. 역사가 긴 만큼 온갖 사고를 치고 다녔지만 경력은 어디 가질 않는다.

그외에 유럽 최대의 은행인 HSBC, 그외 메이저 은행들인 로이즈(Lloyds), 바클리스(Barclays), 스탠다드차타드(Standard Chartered), RBS등이 있으며 런던 증시 시가총액은 미국 다음 2위 자리를 중국, 일본과 놓고 다툼을 하고 있다. 또한 보험과 회계, 법률분야에서도 영국은 미국과 세계시장을 양분하고 있는데, 보험엔 프루덴셜, 아비바, 회계엔 PWC (세계1위), 딜로이트, Ernst & Young이 영국기업이며, 세계 법률회사 상위 10곳 중 4개가 영국계 기업이다. 마지막으로 전세계 보험산업계의 핵심인 로이드 보험거래소가 있다.

브렉시트가 런던의 금융업에 막대한 타격을 줄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지만, 영국을 대표하는 시사주간지인 이코노미스트는 이에 회의적인 입장이다. 본 주간지의 "브렉시트로 인해 발생한 런던의 금융업 일자리 감소의 정도는 매우 미미하다(Brexit has caused very few finance jobs to leave London)"는 기사는 런던의 금융업 일자리 감소는 당초 예상했던 정도보다 훨씬 적었다고 분석하며, 파리와 프랑크푸르트 같은 유럽의 다른 금융업 도시들은 런던의 대체재가 되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실제로 2022년 9월에 발표된, 가장 최신의 국제금융센터지수(Global Financial Centres Index) 순위에서도, 런던뉴욕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하며 글로벌 금융업 중심 도시로서의 지위가 여전히 강고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무역과 국제지수[편집]

역사적으로 영국은 해상무역을 통해 국가를 발전시켰고, 무역을 바탕으로 식민지 개척과 경제 발전을 이룩하여 세계 최강대국의 자리까지 올라갔었다. 1945년 이후 최강대국으로서의 지위는 빼앗겼지만 여전히 무역 강국으로 국제사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특성을 바탕으로 오늘날 영국은 세계의 금융허브 국가이자 서비스산업의 중심지로, 2019년 기준 세계 10위의 무역 국가에 올랐다. 영국은 경제구조상 무역 의존형 특징을 보이는데, 2019년 기준 총 무역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63.8%에 달했다.

2019년 기준 영국의 수출은 5,034억 달러로 2018년 대비 0.7% 증가했지만 수입은 7,434억으로 2018년 대비 7.5% 증가하여 약 2,400억 달러의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였다. 영국의 주요 수출 상대국은 미국,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중국, 아일랜드, 벨기에, 스위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이다. 영국의 주요 수출품은 기계, 자동차, 귀금속, 광물연료, 전자기기, 의약품, 항공기, 유기 화학물, 미술품 및 골동품이었다.

반대로 영국의 주요 수입 상대국은 독일, 미국, 중국, 네덜란드, 프랑스, 벨기에, 스위스, 이탈리아, 스페인, 노르웨이이며, 영국의 주요 수입품은 귀금속, 기계, 자동차, 전자기기, 광물, 의약품, 측정기, 플라스틱, 의류이다.

영국은 미국과 중국을 제외하면 영국의 주요 교역국들은 모두 유럽연합(EU)의 회원국 및 유럽 자유 무역 연합(EFTA) 회원국이며,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하기 전까지 관세 및 장벽의 제거로 인한 혜택을 누려왔지만 브렉시트(Brexit)를 통해 유럽연합(EU)을 탈퇴하면서 무역과 관련하여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에너지[편집]

영국은 2006년 '에너지 검토 보고서(Energy Review Report)'를 통해 에너지 정책의 장기적인 목표 네 가지를 제시하였다. 2020년까지 실질적인 발전을 통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여 2050년까지 약 60% 감소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신뢰할 수 있는 재생 가능 에너지의 공급을 유지하는 것과 경제 성장률을 높이고 생산성을 향상시켜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는 에너지 개발을 추진할 것을 강조했다.

연이어 영국 정부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감소를 위한 약속을 지속하였고, 고든 브라운 총리 재임기인 2009년, 저탄소 전환 계획을 통해 2020년까지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부터 30%, 저탄소 연료에서 40%의 전기를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특히, 영국은 유럽에서 풍력 에너지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곳 중 하나로, 풍력발전에서 에너지 공급이 증가하고 있다. 2019년 풍력은 영국 전기 발전의 약 21%를 차지하였고, 2019년 영국의 전기 공급의 43%가 천연가스, 48.5%가 원자력, 풍력, 태양열발전 및 수력을 포함한 제로 탄소 전력으로부터 생산되었고, 나머지 8%는 해외로부터의 수입에서 발생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영국은 2018년 국가의 환경정책 수행능력을 평가하는 환경 성과지수(Environmental Performance Index)에서 세계 6위에 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석유와 가스 산업은 영국 경제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영국 전체 1차 에너지 수요의 4분의 3 이상을 차지하는데, 석유는 수송용 연료의 97%를 공급하고, 가스는 난방 및 전기 발전을 위한 핵심 연료이다. 운송·난방 및 전기는 각각 영국 주요 에너지 수요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 석유와 가스는 또한 제약·플라스틱·화장품·가전제품을 생산하는 석유화학산업의 주요 공급 원료로 사용되어 아직까지 중요도가 높다. 영국 해안지역에서 생산할 수 있는 석유와 가스는 200억 배럴 이상이 남아있는 것으로 예측되며, 이는 2035년까지 영국 전체 1차 에너지 공급의 3분의 2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석탄의 경우 과거 산업혁명 당시부터 매우 중요한 화석 연료로 영국의 경제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지만 21세기 초에 들어 그 생산량이 상당히 감소하였다. 과거 명성을 얻었던 힌튼 헤비스(Hinton Heavies) 발전소는 폐쇄되었고, 영국 내 나머지 석탄 발전소는 2044년까지 바이오매스로 전환 예정이다. 또한 2015년 11월 영국 정부는 2025년까지 나머지 14개의 석탄화력 발전소가 모두 폐쇄될 것이라고 발표했으며 2020년 2월에는 2024년까지의 폐쇄일을 앞당기는 것에 대해 협의할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2020년 기준 영국에는 3개의 활성 석탄 화력발전소만 남아있다.

원자력 발전은 2020년 기준으로 영국 전력의 20%를 생산한다. 영국에는 7개 지점, 15개의 운용 원자로가 있으며, 2010년 10월 영국 정부는 민간 공급업자들에게 최대 8개의 새로운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할 수 있는 허가를 했으나 스코틀랜드 의회와 정부는 스코틀랜드 내에 새로운 원자력 발전소가 건설되는 것을 반대하였다. EDF Energy는 현재 운영 중인 7개의 원자로 부지를 소유하고 관리하며, 총 용량은 약 9 기가 와트(GW)이다. 영국의 모든 핵시설은 원자력 규제국(Office for Nuclear Regulation)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2007년, 영국 정부는 2020년까지 유럽연합(EU)의 에너지 공급의 20%를 재생 가능한 자원으로부터 생산한다는 목표에 동의하였다. 각 회원국들은 자체적으로 할당된 목표를 부여받았는데, 영국의 경우는 15%였다. 이는 2009년 1월 '유럽연합 재생에너지 지침(EU Renewables Directive)'의 통과와 함께 공식화되었다. 이후 2017년 6월 처음으로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을 포함한 에너지 생산이 가스와 석탄보다 많은 비중을 차지하였고, 2019년 3분기에 영국 전기 발전량의 38.9%가 재생에너지로 생산되었다.

교통[편집]

영국은 유럽에서 교통 및 운송망이 가장 잘 갖추어진 국가 중 하나로 도로·철도·항공·해운 등의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다. 이는 영국이 산업혁명을 최초로 이루어낸 국가로 역사적으로 대외무역과 운송 분야에서 오래된 제도와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도로

도로를 통한 운송시스템은 영국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오랫동안 발달해 온 수단으로 영국 내 운임의 65% 이상을 차지한다. 주요 고속도로와 간선도로들은 중앙분리대를 기준으로 차선이 나뉘어 있으며, 영국 전체 교통량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고 국토 면적의 0.16%를 차지한다. '하이웨이 잉글랜드(Highways England)'는 잉글랜드의 고속도로와 간선도로를 관리하는 회사로, 지역 당국의 관리를 받는다. 스코틀랜드와 웨일스의 도로는 각각 스코틀랜드 정부와 웨일스 정부의 소관이다. 북아일랜드의 도로는 지역개발부(Department for Regional Development)의 한 부분인 '북아일랜드 도로 서비스(Roads Service Northern Ireland)'가 관리한다. 2015년부터 영국 정부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으로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도로 사용을 제한하여 관리하는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다.

철도

영국의 철도 시스템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철도 시스템으로 1825년 최초의 기관차용 공공철도가 개통되었고, 이후에 철도가 대폭으로 확대되었다. 대부분의 선로는 '네트워크 레일(Network Rail)'이 관리하며 2017년 표준 궤간을 새롭게 지정하여 15,811km 중 5,374km가 전력화됐다. 이 선로들은 이전에는 단일 선로였지만 이후 4중 선로 이상으로 증축되었다. 또한 영국 일부 도시에서는 철도를 포함하여 지하철과 경전철, 트램 등이 별도로 구축되어 있다.

영국의 주요 철도 네트워크는 1994년과 2007년에 각각 개통된 채널 터널과 하이 스피드 1(High Speed 1)을 통해 유럽 대륙의 철도 네트워크와 연결되어 있다. 유로스타는 채널 터널을 통해 프랑스와 벨기에까지 운행하며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공화국을 연결하는 '북아일랜드 철도/이아르노드 에이리언 엔터프라이즈(Northern Ireland Railways/Iarnród Éireann Enterprise)'열차가 더블린에서 뉴리까지 운행된다.

또한 영국은 국제철도연맹(UIC)의 회원국으로 세계에서 17번째로 철도망의 규모가 크다. 20세기에 많은 노선이 폐쇄되었지만, 유럽 전체 여객 여행의 20% 이상을 차지하며, 프랑스보다 열차 운행량이 20% 더 많고, 이탈리아보다는 60% 더 많다.

항공

영국의 항공 운송(Air Transport)은 영국 내 여객 및 운송은 물론이고 전 세계 각지의 항공기로 여객, 화물 및 우편물을 운송하는 최대의 상업 운송 수단이다. 1990년대 이후 지난 25년 동안 항공 운송 산업은 지속적으로 성장해 왔으며, 특히 여객기 여행 수요는 2030년 기준 4억 6천 5백만 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히드로공항은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10대 공항 중 하나이다. 히드로공항은 영국의 화물 운송의 관문이며, 일반적으로 매일 시설을 이용하는 전용 화물 항공기가 20대까지 배치되어 있다. 그중 가장 큰 항공기는 주말 운항을 위해 영국항공에 화물기를 임대하는 택배사 DHL이다. 영국 각 지방의 공항들은 주로 국내 여객 및 운송을 담당한다.

해운

18세기부터 세계 최대의 해운국으로서 그 지위를 오랫동안 유지하였다. 선박 보유량은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만 해도 세계 총톤수의 3분의 1을 차지하였는데, 전쟁으로 그 절반을 잃었다. 전쟁 후 경제 부흥에 주력하여 전쟁 전의 우위를 회복하였으나, 후발국들의 성장과 더불어 경제 정체로 선박 건조량에서 일본·독일·스웨덴·스페인 등의 국가에 뒤쳐지게 되었다. 그러나 영국은 런던항에서 전세계 각지로 화물을 운송하는 100여 편의 운송 선박이 운행되며 국제 해운업의 중심지로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영국 전역에 컨테이너 항이 조성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항구들이 민영화되어 있다. 항구의 대부분은 트럭이 그대로 들어갈 수 있는 시설을 포함, 많은 양의 컨테이너 운송 화물을 처리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유럽 본토로 향하는 배들의 출항이 매일 300회 이상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매 년 5억톤 이상의 화물을 처리하고 있다.

인문사회[편집]

인구 및 주민[편집]

영국의 인구는 2021년 기준 6820만 명으로, 유럽에서 세 번째로 많으며, 전 세계에서 스물 한 번째로 인구가 많다. 세계 인구의 0.87%에 해당하며, 인구 밀도는 ㎢ 당 281명이다. 전체 인구 중 84%가 잉글랜드, 8%가 스코틀랜드, 5%가 웨일스, 그리고 3%가 북아일랜드에 거주한다. 2020년 기준, 65세 인구가 18.48%를 넘기면서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최초의 인류 정착은 해양 문화와 밀접한 연관을 가진 셈족 계통의 민족으로 추정하지만, 역사적으로 현대 영국인들의 실질적 조상은 수천 년 전 중부유럽과 남부유럽에서 이주해 온 켈트족이다. 영국의 켈트족은 B.C. 55년 로마제국의 침략으로 인해 영향력을 잃었고, 스코틀랜드를 제외한 영국 전역은 410년까지 로마인들의 지배를 받았다. 로마인들의 지배 시기 동안 기존 거주민인 켈트족은 브리튼인(Briton)과 게일인(Gaelic)으로 나뉘었는데, 로마인들은 잉글랜드에 주로 거주하던 브리튼인들을 기반으로 당시 영국을 '브리타니아(Britania)'라고 불렀다. 이후 450~460년경부터 게르만족의 침략이 본격화되었고, 5~6세기부터 앵글로색슨족이 영국을 지배하였다. 앵글로색슨족은 영국의 인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민족으로, 2006년 영국 유전자 분석연구에 따르면 현대 영국 인구의 약 50% 이상이 앵글로색슨의 염색체를 포함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후 영국은 1070년 영국을 정복한 노르만인 윌리엄 1세(William I, 1028~1087)에 의해 노르만족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1700년대 이후 영국은 해상무역과 노예거래 등을 통해 비(非)유럽인이자 비(非)백인 이민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1730년대 리버풀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흑인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이 기간 동안의 영국 아프리카계 카리브해인(Afro-Caribbean) 인구는 약 1만 명에서 1만 5천 명으로 추정되며, 이후 노예제도의 폐지로 인해 그 수는 감소하였다. 산업혁명을 거치고 영국이 세계 최강대국이 되면서 보다 다양한 인종이 영국으로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19세기에는 중국 선원들의 이주로 인한 중국인 공동체가 설립되었고, 유대인과 아일랜드인들의 수 역시 지속적으로 증가하였다.

1948년 이후 카리브해남아시아의 식민지인들이 영국으로 유입되면서 1951년 영국 내 남아시아, 중국, 아프리카 이주 인구는 영국 전체 인구의 0.2%인 94,500명에서 1961년에는 0.7%가 넘는 384,000명으로 4배 이상 증가하였다. 영국이 1973년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한 이후, 서유럽 국가들로부터의 이주 폭은 계속해서 늘어났고, 1990년 초 소련의 붕괴로 동유럽 국가들의 이민 및 난민들 역시 영국으로 대거 이주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통해 영국은 인종적으로 다양한 다민족 국가로 변모하였고, 신규 이민자, 혼혈인 등의 수가 증가하면서 ‘초 다양성(super-diversity)’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영국의 민족성은 인구조사를 통해 공식적으로 국가 차원에서 기록되는데 영국은 1991년부터 인구 총 조사(Census)를 도입했으며, 매 10년마다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2011년 인구 총 조사에 따르면 영국 전체 인구 중 86%가 백인, 7.5%가 아시아인, 3.3%가 흑인, 2.2%가 혼혈, 그리고 1%가 그 외 인종으로 식별되었다. 2011년 기준 영국 인구의 14%가 소수민족이었으며, 이는 2001년 인구 총 조사에서 7.9%였던 것과 비교할 때 약 2배 이상 증가한 수치이다.

이러한 추세는 2010년대 중반 이후 세계 난민 위기 등을 겪으며 지속적인 증가추세를 보였고, 영국은 본격적으로 초 다양성 사회가 되었다. 또한 영국 내 다양한 민족들이 혼합되면서 정치사회에서의 다양성도 높아지고 있는데, 2019년 기준 영국 하원의원의 약 8%, 그리고 상원의원의 약 5.8%가 흑인과 아시아인 및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었다. 지방의회 의원의 경우 14%가 흑인, 아시아인 및 소수민족이며, 영국의 수도인 런던 국회의원 중 이들의 수는 28%에 달했다.

언어[편집]

영국 영어가 쓰이고 있다. 그 외에 웨일스어, 스코트어, 스코틀랜드 게일어, 얼스터 스코트어, 아일랜드어, 콘월어가 소수에 의해 쓰이고 있다.

영국은 공식적으로 국어를 정하진 않았으나, 사실상(de facto)의 언어는 영어이다. 영국 인구의 95%는 오직 영어만을 할 줄 알며, 대략 5.5%에 달하는 국민들만이 최근의 이민자들이나 교육의 영향으로 외국어를 모어로 한다. 영어 외에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아시아계 언어는 인도 이민자들의 영향으로 인하여 펀자브어, 우르두어, 벵골어, 힌디어, 구자라티어 등이 있다. 다만 2011년 통계 결과에 의하면, 최근 폴란드계 이민자들이 급증하며 폴란드어가 영국에서 2번째로 가장 많이 쓰이는 언어라고 한다. 2019년의 경우에는 75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영어를 완전히 쓰지 못하거나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한다고 한다.

영국의 토착 민족인 켈트어의 후계 격으로는 웨일스어, 아일랜드어, 스코틀랜드어 등이 따로 존재하였으나, 18세기 후반에 들어서 영어에 밀려나 결국 완전히 소멸되었다. 다만 20세기 후반 들어서 복원 작업이 진행되었고, 현재에는 소수의 사용자가 있다. 2011년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웨일스인 전체의 19% 정도만이 웨일스어를 조금이나마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잉글랜드에는 약 20만 명 정도의 웨일스어 사용자가 거주하고 있다고 하며, 북아일랜드 지방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 10.4% 정도만이 아일랜드어를 조금이나마 구사할 줄 안다고 하였다. 스코틀랜드의 경우에는 토착어의 소멸 정도가 워낙 심각하여, 전체 인구의 2%도 안되는 사람들만이 토착 스코틀랜드어를 구사할 줄 알며 현재도 영어 구사자의 비율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다만 스코틀랜드어를 사용하는 영국인들이 캐나다로 이주하면서 캐나다 등지에서 조금씩이나마 사용되고는 있으며, 웨일스어의 경우에도 비슷하게 아르헨티나의 파타고니아 등지에서 사용되고 있다.

영국에서는 14세 이상의 청소년들은 무조건적으로 제2외국어를 배워야만 한다. 보통 프랑스어독일어를 가장 많이 배운다고 알려져 있다. 웨일스에 있는 모든 학생들은 16세가 넘었을 때부터 점차 웨일스어를 제2국어로 배워야하며, 아예 웨일스어를 모어로 사용하기도 한다.

종교[편집]

세인트폴 대성당

종교를 가진 국민의 절대다수가 기독교도이고, 국교는 잉글랜드 성공회이다. 종교별 분포도는 다음과 같다. 기독교는 대략 1,400여 년 전부터 이미 브리튼 섬에 전래되었다. 대부분의 영국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정체성을 기독교도로 규정하고 있으나, 20세기 들어서 이미 교회 참석율은 급격히 떨어졌으며 대부분 무슬림들로 구성된 이민자들이 영국으로 쏟아져들어오면서 영국 내부의 종교 분포도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 이로 인하여 영국은 18세기까지만 하여도 완벽한 기독교 국가였던 데에 반하여, 현대에 들어서는 다종교 국가, 혹은 세속국가, 혹은 탈기독교 국가로 분류되기도 한다.

2001년의 조사 결과, 영국인의 71.6%가 자신들을 기독교도라고 밝혔으며 2.8%의 무슬림, 1.0%의 힌두교도, 0.6%의 시크교도, 0.5%의 유대교도, 0.3%의 불교도, 기타 종교 0.3% 정도가 그 뒤를 이었다. 대략 15% 정도의 사람들은 믿는 종교가 없다고 밝혔으며, 7% 정도는 잘 모르겠다고 응답하였다. 한편 기독교도 비율에 비하여 교회 참석률은 극히 저조하여서, 전체 인구의 10분의 1 정도만이 주말마다 교회에 참석하며 기독교도 비율은 그 와중에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2011년에는 10년 만에 12%p 정도나 기독교도 비율이 하락하였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하였다. 이와 반대로 무슬림의 비율은 갈수록 급증하고 있어서, 매년 약 5%씩 급격한 증가세를 겪고 있으며 2001년에는 160만 명 정도였던 것에 반하여 2011년에는 270만 명으로 크게 증가하며 영국에서 2번째로 거대한 종교로 뛰어올랐다.

한편 기독교의 경우에는, 영국 성공회가 약 15%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로마 가톨릭이 9%, 그 외에도 동방정교, 개신교 등의 종교들이 약 17%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며 18세와 24세 사이의 젊은 층의 71%가 자신이 종교가 없다고 밝혔다. 영국 성공회는 영국에서 발원한 기독교 분파로, 영국 의회에도 대표를 보유하고 있으며 영국 국왕이 최고 권위자이다. 스코틀랜드의 경우에는 스코틀랜드 국교회가 따로 있으나,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 한편 영국 국왕은 무조건적으로 성공회 신자여야 하며, 즉위할 때에도 ‘신교를 지키겠다’는 맹세를 선서해야만 한다. 웨일스와 아일랜드에도 각각 국교회가 있었으나, 웨일스는 1920년에 국교회가 해체되었고 아일랜드는 그보다 이른 1870년에 해체되었다.

  • 잉글랜드 성공회(Church of England): 영국 기독교인들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영국의 국교이기도 하다. 흔히 성공회(Anglican)를 영국 국교 또는 영국국교회라고 하는데 영국국교회 또는 영국국교는 잉글랜드 성공회만을 말한다. 영국 종교개혁으로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분리되었다. 전세계 성공회(Anglican Church또는 Episcopal Church)들이 대등한 위치에서 상통하는 세계성공회공동체(Anglican Communion)의 모태다.
  • 로마 가톨릭교회: 영국 기독교인들의 소수를 차지하며 영국교회와 아일랜드 교회가 휘트비 회의로 합병된 5세기부터 영국 종교개혁 이전까지 영국 교회를 지배하였다.
  • 개신교: 역사적으로 장로교회(스코틀랜드 종교개혁으로 형성되었으며, 스코틀랜드의 국교다.), 감리교, URC(United Reformed & Methodist Church) 등이 있다.

교육[편집]

옥스퍼드대학교

영국의 교육은 단일 정부정책이 아닌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의 분권화된 위임정부 하에서 운영되고 있으나, 교육 단계와 몇몇 제도들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교육단계는 미취학, 초등교육, 중등교육, 추가교육(Further Education)과 고등교육(Higher Education)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북아일랜드는 4세, 나머지 3개 국가들은 법률적으로 5세부터 16세 사이의 모든 학생들에게 정규교육이 의무화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 잉글랜드

잉글랜드에서는 1997년 9월 1일 이후 출생자를 위한 의무교육 또는 훈련이 18세까지로 확대되었고, 이러한 정규교육은 학교가 아닌 홈스쿨링(Home Schooling)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의무교육 해당 연령이 되기 전에 아이들은 부모의 동의하에 보육원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추가 교육은 의무가 아니며, 고등교육을 원하는 학생들은 A레벨 이상의 학업성적 또는 비텍(BTEC) 과정을 통해 대학 및 고등교육기관에 입학할 수 있게 된다.

● 스코틀랜드

스코틀랜드의 교육은 스코틀랜드 정부의 교육부 장관의 소관이며, 일상적인 행정과 주 공립학교의 재원은 지방당국에게 책임이 있다. 스코틀랜드 교육과정평가원(The Scottish Qualifications Authority)은 중학교, 고등교육 및 기타 센터에서 제공되는 학위 이외의 자격의 개발, 인가, 평가 및 인증을 담당하며, 스코틀랜드의 교육 및 학습을 담당하는 교사 및 전문가들에게 재원을 마련하는 역할을 한다. 스코틀랜드에서는 1496년에 처음으로 의무교육이 법률로 제정되었고, 스코틀랜드의 아동 중 사립학교에 다니는 비율은 2016년에 4%를 약간 넘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서서히 감소하고 있다. 스코틀랜드 대학에 다니는 스코틀랜드 학생들은 2001년에 등록금이 폐지되고, 2008년에 대학원 등록금이 폐지됨에 따라 등록금이나 대학원 등록금을 내지 않는다.

● 웨일스

웨일스 정부의 교육부 장관은 웨일스의 교육을 총괄하고 있으며, 상당수의 웨일스 학생들은 웨일스어 교육을 받으며 웨일스어의 수업은 16세까지 의무적으로 이루어진다. 웨일스는 2050년까지 백만 명의 국민들이 웨일스어를 구사하도록 하겠다는 웨일스 정부의 장기적인 비전의 일환으로, 각 학년 학생들이 중등교육을 받는 비율을 2017년 22%에서 2050년까지 40%로 늘릴 계획을 추진 중이다.

● 북아일랜드

북아일랜드의 교육은 북아일랜드 교육부 장관의 책임이지만, 지역적 차원의 책임은 교육청(Education Authority)에 의해 관리되며, 교육과정평가협의회(CCEA)는 북아일랜드 학교의 교육과정과 자격 기준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이러한 각각의 교육 시스템을 바탕으로 2017년 기준 영국 전체 인구의 약 38%가 대학 학위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비율이다. 또한 영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학문적 명성을 가진 고등교육기관 및 대학들이 소재하고 있다. 영국의 고등교육은 그 질과 엄격한 학문적 표준으로 전 세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케임브리지대학교, 옥스퍼드대학교,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그리고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등이 지속적으로 세계 10대 대학에 속해있다.

사회보장[편집]

NHS 퀸 엘리자베스 병원 버밍엄

영국의 사회보장제도는 1900~1910년대 초에 발전하기 시작했으며, 영국 정부의 재정 지출을 통해 보건ㆍ교육ㆍ고용ㆍ사회보장 등을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을 보였고, 영국은 역사적으로 진보적 복지국가제도를 가진 국가로 분류되어 왔다.

본격적인 복지국가로 발돋움하게 된 것은 1942년 윌리엄 베버리지가 작성한 《베버리지보고서, Beveridge Report》가 발표된 이후이다. 베버리지 보고서에는 의료ㆍ실업 및 퇴직급여를 결합하는 국가 주도의 의무지원제도가 담겨있었다. 그는 실업급여가 생계수준으로 유지되어야 하며, 6개월 후에는 제도 남용을 조장하지 않기 위해 업무나 훈련을 조건으로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그의 보고서는 1945년 총선에서 노동당이 승리한 후 '요람에서 무덤까지(From the cradle to the grave)'라는 이름 아래 국가의 정식 정책에 반영되었고, 1946년에는 국민보험법(National Insurance Act)이, 1948년에는 국가원조법(National Assistance Act)이 통과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영국은 사회적 안전을 위한 연금보험과 의료보험, 실업 및 장애지원, 가족수당 등을 포함한 포괄적인 사회보장제도를 실시해왔다.

특히 국민보험을 기반으로 정액 방식으로 이루어진 기초연금제도(State Basic Pension)가 확립되었고, 1975년에는 완전 소득 비례연금인 국가소득 비례 이층연금(SERPS)이 도입되었으나, 2002년부터 이를 대체하여 저소득 근로자층에게 빈곤선 이상의 연금 급여를 제공하는 국가이층연금(State Second Pension)이 시행되었다. 2003년에는 저축이나 개인의 노후준비에 대한 인센티브를 증진시키기 위한 연금 크레딧 제도(Pension Credit)를 도입하였다. 이후 2011년 법률안에 따라 기존에 남성은 65세부터, 여성은 60세부터 지급되던 연금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2018년까지 여성의 연금 지급 시기를 65세로 연장하였다. 또한 영국은 2028년까지 기초국민연금 지급연령을 현재 65세에서 2028년 67세로 조정하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영국의 사회보장제도 중 가장 성공적인 제도로 평가받는 정책은 '국민보건서비스(National Heatlh Service)'이다. 국민보건서비스(NHS)의 주 목적은 질병의 예방과 치료를 위한 종합 보건 및 재활 서비스를 국민들에게 제공하겠다는 것이었고 영국노동당 정부가 통과시킨 법안을 기초로 1948년에 설립되었다. 국민보건서비스(NHS) 제도로 기존의 지역적으로 제공하던 의료 제공 시스템을 국가에서 관리하였으며, 전국적으로 진료의 기준을 표준화하였다. 이를 통해 영국의 모든 국민들이 동등한 의료 서비스를 무료 또는 저렴한 비용을 지불하고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국민건강보험의 비용은 하락하는 반면, 고령화로 인해 국민보건서비스(NHS)에 소요되는 정부 재정은 지속적으로 증가했고, 국민보건서비스(NHS)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2011년 영국 보수당 정부는 개혁안을 내세워 국민보건서비스(NHS)의 부분적 민영화 방안을 제시하였다. 이를 통해 거주지를 벗어나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등록권한을 부여하고, 일반 의료진(GP) 및 간호사 인력 증원 등의 노력이 이루어졌으나, 이후에도 영국의 국민보건서비스(NHS)에서 나타나는 정부재정 적자 증가 및 의료서비스 품질의 하락 문제로 지속적인 개혁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2020년 기준 의료기관의 구조조정과 민간에 대한 권한 이양, 일반의(GP) 서비스 개선과 관련된 정책을 추진중이다.

이민[편집]

영국은 역사적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민의 물결을 경험했던 국가이다. 내부적으로는 아일랜드의 대기근으로 인해 약 100만 명의 사람들이 영국 본 섬으로 이주했으며, 19세기에 걸쳐 약 3만명의 독일 이민자들이 잉글랜드와 웨일스에 모여들었다. 1891년까지 독일 이민자 공동체는 영국에서 러시아인, 유대인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이민자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는 자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약 12만 명의 폴란드 참전 용사들이 영국에 영구히 남았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의 옛 식민지였던 카리브해와 인도 및 아시아 국가들의 사람들이 노동력 부족 등의 이유로 새로운 삶을 찾아 영국으로 이주하였다.

이후 전후 복구과정을 거쳐 영국의 경제가 다시 성장하는 과정에서 1970년대 초까지 영국의 주요 이민자들은 과거 식민지 국가 또는 영국의 속령에 거주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영국이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하면서부터 서유럽과 남유럽 등 유럽 대륙의 국가들에서 이민자 유입이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소련의 붕괴 이후에는 동유럽 국가들에서 유럽연합(EU) 회원국으로의 이민자 수가 증가하였고, 2011년 영국 내 EU 회원국 출신 이민자들은 약 13%를 차지하였다. 또한 2015년 발표된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14년 영국 출생아의 27%가 이민자의 부모로부터 태어난 것으로 발표되었다.

이렇듯 영국의 이민자 수는 지속적인 증가추세에 있으나, 2015년 시리아 난민 위기와 유럽 내에서 발생하는 이민자 문제로 인해 이민자 유입에 반대하는 여론이 늘어나고 있다. 브렉시트(Brexit)로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하면서 더욱 보수적인 이민정책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문화[편집]

문학[편집]

윌리엄 셰익스피어. 영국을 가장 대표하는 작가이자 극작가인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영국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로 명성이 높다. 그의 주요 작품인 《로미오와 줄리엣》, 《베니스의 상인》, 《햄릿》, 《맥베스》 등은 연극·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가장 활발하게 활용되는 작품 소재이다.
셜록 홈즈

영국 문학은 근대에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여, 현대 문학의 기틀을 잡았으며 현재에도 '영미 문학'의 주류를 이루며 전세계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문학계이다. 2005년 기준으로 영국에서는 약 206,000권이 넘는 책들이 출판되었으며, 2006년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양의 책들이 출판된 국가였다.

영국 출신의 시인이가 극작가인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고금을 통틀어 최고의 극작가들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엘리자베스 여왕이 '그를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라고 말할 정도로 엄청난 명성을 누렸다. 또한 그 외에도 20세기 최고의 소설가들 중 하나였던 아가사 크리스티도 영국 출신의 작가이다. 한편 스코틀랜드 출신의 인물들도 영국 문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셜록 홈즈의 작가인 아서 코난 도일 경, 아동작가 J.M. 베리,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시인 로버트 번스 등이 있다. 최근의 경우를 들면 휴 맥더미드, 네일 M. 군 등이 있다. 그 외에도 범죄문학의 전설 격인 이언 랜킨, 호러-코미디 작가인 아인 뱅크스 등이 유명하다. 스코틀랜드의 수도인 에든버러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유네스코 세계 문학의 도시로 지정되기도 했을 정도였다.

영국에서 알려진 최고(最古)의 시인 어 고도딘(Y Gododdin)은 영국 북부에 있는 헨 오글레드 지방에서 지어졌으며, 대략 6세기 후반 경에 작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웨일스 고어로 지어져 있으며,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아서 왕의 전설을 담고 있는 시이다. 7세기 경에 헨 오글레드 지방과 웨일스 지방과 교류가 끊어지자, 웨일스 문화의 중심지는 자연스레 현재의 웨일스 지방으로 옮겨왔고 이후 웨일스에서는 아서 왕의 전설이 발전되어 전승되기 시작하였다. 웨일스가 배출한 중세 최고의 시인들 중 하나로 평가받는 다피드 압 귈림(Dafydd ap Gwilym)은 자연, 종교 등을 주제로 시들을 지었으며, 특히 사랑과 관련된 시들을 많이 쓴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당대 최고의 유럽 시인들 중 하나로 칭송받을 정도로 명성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이후의 시들은 19세기에 또다시 변혁의 바람이 불어닥칠 때 전까지 종교적인 색채들을 진하게 띠었다고 한다. 한편 영국의 시인인 딜런 토마스는 20세기 중반에 미국과 유럽 대륙 전체에서 이름을 떨쳤으며, 특히 그의 가장 대표적인 시인 '저 좋은 밤속으로 순순히 들어가지 말라'는 수많은 영화들과 이후의 시들에도 영감을 주었을 정도로 유명하며, 가장 대표적인 영국 명언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웨일스 민족주의자이자 시인인 R.S 토마스는 1996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그 외에도 리처드 레웰린이나 케이트 로버츠 등이 유명한 웨일스계 소설가들이다.

영국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으나 이후 영국으로 이민을 와 영국 국적을 취득한 유명 문학가들도 매우 많다. 가장 대표적으로 요셉 콘라드, T.S 엘리엇, 가즈오 이시구로 등이 있다. 또한 아일랜드가 전부 영국의 통치 하에 놓여있었을 때에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사람들도 영국계 시인들로 간주하는 경우가 있는데, 주로 오스카 와일드, 브램 스토커, 조지 버나드 쇼 등이 있다.

음악[편집]

비틀즈

역사적으로 영국에서는 교회음악을 바탕으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지역의 민속 음악을 포함하여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이 발달하였다. 특히 영국은 각 지역별로 저마다 다양하고 특색 있는 민속음악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대중음악이 발달하기 시작한 산업화 시대까지 번성했다.

영국의 해리슨 버트위슬(Harrison Birtwistle)은 현존하는 최고의 작곡가 중 한 명으로 명망이 높으며, 영국은 BBC 교향악단(BBC Symphony Orchestra)과 런던심포니코러스와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교향악단과 합창단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영국은 사이먼 래틀(Simon Rattle)과 존 바비롤리와 같은 세계적인 지휘자는 물론 세계적으로 명망 높은 영화음악 작곡가인 존 배리(John Barry), 클린트 맨셀(Clint Mansell), 크레이그 암스트롱 등을 배출한 국가이다. 특히 조지 프리드리히 헨델(George Frideric Handel)은 영국 시민으로 귀화하여 영국 대관식 국가를 작곡하기도 했다.

20세기 초 음악계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지배적이게 되었고, 영국의 젊은 연주자들과 가수들은 1950년대 후반의 로큰롤과 팝 음악 분야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1960년대 초, 비틀즈가 이끄는 브리티시 인베이션(British Invasion)은 영국 연주자들을 팝과 록 음악의 발전에 있어 중요한 자리를 확보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비틀즈를 중심으로 영국은 팝 음악의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비틀즈는 당시 전 세계적으로 약 10억 장 이상의 음반을 판매하는 기록을 세웠으며, 롤링 스톤스와 같은 예술가들과 함께 1960년대 초 전 세계 대중음악의 선두를 이끌었다.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영국은 록 음악의 발전을 주도했고 이후 라가 록(Raga Rock), 헤비메탈 록(Heavy metal Rock), 글램 록, 프로그레시브 록(Progressive Rock) 등 다양한 록 음악 분야를 이끌었다.

비틀즈 시대 이후 지난 50년 동안 대중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준 다른 영국의 저명한 음악가로는 핑크 플로이드, , 레드 제플린, 엘튼 존 등이 있으며 이들은 모두 전 세계적으로 2억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기록하였다. 이외에도 영국과 전 세계에서 성공을 거둔 음악가로는 데이비드 보위, 에릭 클랩튼, 오아시스, 라디오헤드, 콜드플레이(Coldplay), 에이미 와인하우스, 아델, 에드 시런(Ed Sheeran) 등 다양하다.

영화[편집]

영국은 세계 영화의 역사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국가이다. 1888년 세계 최초의 영상이자 무성영화 알려진 영화 《라운드헤이 가든 씬, Roundhay Garden Scene》의 탄생지이며, 영국 최초의 영화인 《인시던트 앳 클로버 코티지, Incident at Clovely Cottage》는 1895년에 촬영되었다. 세계 최초의 컬러 영화는 1902년 영국의 사진작가 에드워드 레이먼드 터너(Edward Raymond Turner)가 촬영하였다.

그러나 이후 영국의 영화 제작은 1920년대에 미국 수입 영화와의 경쟁과 영화관에서 정해진 영국 영화 할당량을 시행해야 하는 법적 요건에 직면하여 어려움을 겪었고, 이는 낮은 품질의 저비용 영화 제작을 부추겼다. 이러한 제도는 1940년대 정부의 개입으로 바뀌었고, 이 시대에 알프레드 히치콕은 미국으로 건너가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감독 중 한 명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크라운 필름 유닛사(Crown Film Unit)는 다큐멘터리 제작으로 명성을 얻었고, 마이클 파웰(Micheal Powell)과 에머릭 프레스버거(Emeric Pressburger) 같은 영화감독들이 영화 시장을 이끌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많은 영국의 영화감독 및 배우들이 국제적인 명성과 결정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역사상 가장 많은 상업 영화들이 영국에서 제작되었다. 대표적으로 《해리포터 시리즈》와 《제임스본드 시리즈》가 있다. 영국 박스오피스는 9년 연속 13억 6,910만 달러에서 17억 1,137만 달러의 수입을 거두고 있으며 영국 영화산업은 지속적으로 성장을 거두고 있고 2018년에는 영국 내에서 1억 7,600만 장의 티켓이 판매되면서 지난 40년 동안 가장 높은 기록을 거두었다.

요리[편집]

영국 요리는 그 수가 많고 재료들이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적으로 맛이 없다는 편견이 있다. 영국 요리는 영국 역사 내내 있었던 수많은 이주민들의 유입, 그리고 세계 각국과의 교류, 식민지 등을 통하여 들어온 식문화들로 인하여 급격히 발전하였다. 가장 옛날로는 켈트족과 브리튼족이 서로 융합하면서 수많은 요리들이 탄생하였고, 앵글로색슨족들은 유럽에서 스튜가 일반화되기도 전에 고기와 허브를 넣어 스튜를 끓이는 방법을 미리 고안하여 주식으로 삼기도 하였다. 또한 노르만인들의 영국 침공으로 인하여 중세 영국에 향신료들을 이용한 요리들이 소개되었고, 대영제국 시기에는 인도 요리가 큰 인기를 얻어 강하고 자극적인 냄새를 가지는 허브들과 향신료를 이용한 요리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얻어 인기를 끌었다. 이 때문에 본래 인도에서 유래한 요리를 영국식으로 개량하여 영국식 요리로 만들기도 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인도 닭요리에서 유래한 앵글로-인디안 치킨 티카 마살라이다. 그 외에도 피시앤드칩스, 샌드위치, 로스트비프, 파이, 영국식 푸딩 등이 전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스포츠[편집]

영국은 축구, 배드민턴, 복싱, 크리켓, 컬링, 골프, 럭비, 테니스, 모터사이클 등 다양한 스포츠 분야에서 세계적인 선두를 달리고 있다. 오늘날 축구, 테니스, 럭비, 골프, 복싱, 네트볼, 조정, 크리켓 등의 주요 규칙들과 제도들은 19세기 후반 빅토리아 여왕 시대 영국에서 발명되고 성문화되었다. 2012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자크 로게는 '영국은 현대 스포츠의 발상지로, 스포츠맨십과 페어플레이의 개념이 성문화된 국가'라고 명명하였다.

영국 내에서 다양한 스포츠가 대중적 인기를 끌고 있지만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축구이다. 영국 잉글랜드 축구협회(FA)는 국제축구연맹(FIFA)로부터 클럽 축구의 발상지로 인정받으며, 1863년 에벤제르 콥 몰리(Ebenezer Cobb Morley)에 의해 처음 제정된 축구 규칙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남아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English Premier League)'는 세계 최고의 축구 리그 중 하나로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잉글랜드의 프리미어 리그를 제외하고,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역시 각각의 프로 축구리그가 있으며, 각각의 지역 대표 축구단은 일반적으로 국제 경기에서 별도의 국가로 출전하여 경쟁한다.

크리켓은 영국에서 발명된 스포츠 종목으로, 1788년 메릴본 크리켓 클럽(Marylebone Cricket Club)에 의해 최초로 규칙과 제도가 제정되었다. 잉글랜드와 웨일스 크리켓 위원회(England and Wales Cricket Board)가 관리하는 잉글랜드 크리켓 팀과 크리켓 아일랜드(Cricket Ireland)가 관리하는 아일랜드 크리켓 팀은 영국에서 유일하게 공인된 국가 팀이다. 축구를 비롯한 다른 팀 스포츠가 별도의 대표 팀을 꾸리는 것과는 달리 크리켓의 경우 잉글랜드와 웨일즈는 단일한 국가대표팀을 구성하고 있다.

한 팀이 15명으로 구성되는 럭비 경기인 '럭비 유니온(Rugby union)'은 영국 중남부의 워릭셔(Warwickshire)에 소재한 럭비 스쿨(Rugby School)에서 고안되었고, 1871년 처음으로 국제 경기가 개최되었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아일랜드, 프랑스, 이탈리아는 북반구에서 열리는 6개국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며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아일랜드의 협회들이 별도로 경기를 조직하고 구성한다. 잉글랜드,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는 4년마다 영국과 '아일랜드 라이온스(British and Irish Lions)'라는 팀을 구성하여 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국제경기를 가진다.

이외에도 테니스는 1860년대 영국 버밍엄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으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테니스 대회인 윔블던 선수권 대회는 1877년에 처음 개최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영국은 모터스포츠가 매우 발달한 국가 중 하나인데 1950년 실버스톤(Silverstone)에서 F1 그랑프리(F1 GRnad Prix)를 개최하였고 이후 매년 7월마다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포뮬러 원(F1)의 많은 팀들과 드라이버들이 영국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영국의 팀들이 포뮬러 원 역사에서 가장 많은 타이틀을 획득했다. 또한 조정경기, 댄스스포츠와 같은 다양한 스포츠의 표준화는 영국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언론[편집]

영국에는 신문, 잡지, 라디오, 텔레비전 등 여러 종류의 대중 매체가 발달해 있다. 영국에서 가장 큰 미디어 회사는 공영방송사인 영국공영방송(BBC)이다. BBC 이외에도 ITV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15개 지역 텔레비전 방송사 중 13개를 운영하는 ITV plc와 스카이(Sky UK)를 소유한 미국의 글로벌 미디어 재벌 컴캐스트(Comcast)이다. 또한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각 지역마다 지역 라디오와 텔레비전, 신문사가 발달되어 있다. 2019년 기준 영국은 서적, 데이터베이스, 저널, 잡지, 신문 및 통신사를 포함한 출판 분야에서 총 200억 파운드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출판업계에는 약 167,000명의 인원이 종사하고 있다. 인쇄 및 출판업계의 경우 TV 매체와 달리 규제가 매우 적다.

전통적으로 영국 신문들은 품질과 공영성을 갖춘 브로드시트(Broadsheet)와 자극적인 기사를 바탕으로 대중의 관심을 끄는 타블로이드(Tabloid)로 구분된다. 《데일리텔레그래프》는 브로드시트 중 가장 많은 판매 부수를 기록하고 있는 신문이며, 《가디언》은 진보성향의 브로드시트이다. 주요 경제지로는 《파이낸셜타임스》가 있다. 2020년 기준 가장 많은 발행 부수를 기록하고 있는 신문은 《메트로, Metro》로 약 142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더 선, The Sun》을 비롯한 타블로이드 일간지들의 발행부수는 지속적으로 감소 추세이다.

잡지는 다양한 관심사와 주제를 중심으로 출판하며, 세계적으로 높은 발행부수를 달성한 영국의 잡지들 중에는 《이코노미스트》, 《네이처》, 《뉴 사이언티스트, New Scientist》, 《프라이빗 아이, Private Eye》, 《헬로, Hello!》 등이 있다.

영국의 라디오 시장은 영국 국내와 해외로 송출되는 라디오 방송국을 운영하고 있는 BBC가 대부분 장악하고 있다. BBC 월드 서비스 라디오 네트워크는 전 세계적으로 33개 언어로 방송되며 영국 내에서 10개의 전국 네트워크와 40개 이상의 지역 라디오 방송국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BBC 라디오 심루(BBC Raido Cymru), 스코틀랜드의 BBC 라디오 난 지에들(BBC Raido nan Gàidheal), 북아일랜드의 아일랜드 라디오 방송국이 포함되어 있다. 국제적으로 서비스되는 BBC 월드 서비스 라디오(BBC World Service Radio)는 영국 외무성(Foreign and Commonwealth Office)에서 자금을 지원받고 있다.

영국의 TV방송은 2012년 이후 이전 아날로그 신호에서 디지털로 전환되었다. 무료 디지털 서비스를 제공하는 2개의 공중파 방송사인 BBC와 채널 4(Channel 4)와 엔터테인먼트, 드라마, 문화, 예술, 자연, 스포츠, 코미디 등을 전문으로 하는 2개의 프랜차이즈 상업 텔레비전 회사인 ITV와 채널 5(Channel 5)로 구성된다. 영국의 무료 방송 프리뷰 서비스는 이 외에도 CBS, UKTV, 스카이 등의 엔터테인먼트, 음악, 스포츠, 쇼핑 채널을 대거 운영하고 있다. 또한 BBC는 영국과 해외에서 여러 텔레비전 채널을 운영하고 있으며, BBC의 국제뉴스 서비스인 BBC 월드 뉴스(BBC World News)는 전 세계에 송출되고 있다.

축제[편집]

영국은 국제 관광객과 국내 관광객들의 흥미를 끄는 다양한 축제들을 개최하고 있다. 영국의 대표적인 축제로는 노팅힐 카니발,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에든버러 국제페스티벌, 첼시꽃박람회 등이 있다. 이러한 축제는 문화적 의미뿐만 아니라 영국 관광산업의 주요 요소이다. 대표적으로 글래스톤베리 축제는 연간 약 1억 3천만 달러의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노팅힐 카니발은 유럽에서 가장 큰 거리축제 중 하나로 매년 8월 3주간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에서 개최된다. 이 축제의 기원은 1833년에 영국의 노예제도가 폐지되면서 흑인 노예들은 자신들의 주인이었던 백인들의 복장을 흉내 내고, 희화화 한 것에서 유래하며, 오늘날에는 동시대 최고의 연극, 오페라, 발레, 재즈, 서커스, 스코틀랜드 민속음악 등 다양한 문화·예술적 공연들이 펼쳐지는 세계 최대의 예술 축제이다. 매일 밤 에든버러 성 앞에서 벌어지는 밀리터리 타투(Military Tattoo) 역시 자랑거리이다.

클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은 공식적으로는 '글래스톤베리 현대 공연예술 페스티벌(The Glastonbury Festival of Contemporary Performing Arts)'이라고 불리며, 음악 공연을 중심으로 서커스, 전시회, 연극, 코미디 등의 다양한 공연이 이루어지는 행사이다. 1970년에 페스티벌이 열리는 지역의 농장주 마이클 이비스(Michael Eavis)가 이 행사를 처음으로 개최한 이후 현재까지 지속되는 초대형 연간 페스티벌이다.

첼시꽃박람회는 런던의 첼시에서 매년 5월 개최되는 축제로 세계의 진귀한 꽃들을 전시하는 행사이다. 영국 왕립 원예 협회(Royal Horticultural Society)가 주최하며, 이 축제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많은 참가자들이 1년 이상 정원 출품과 설계를 준비한다. 1910년 처음 첼시 플라워 쇼가 개최된 이후 오늘날에는 영국인뿐 아니라 해외 관광객들도 찾아오는 국제적 행사로 자리잡았다.

이밖에도 지역별로 다양한 장르의 음악 페스트벌과 미술, 마술, 뷰티, 부동산, 무기산업 등을 바탕으로 매해 무역 박람회와 전시회가 영국 각지에서 개최된다.

관광[편집]

영국 쥐라기코스트 (Jurassic Coast, United Kingdom)
스톤헨지(Stonehenge)는 영국 남부 윌트셔 주 솔즈베리(Salisbury) 평원과 에이브버리에 있는 선사 시대의 거석기념물(巨石記念物)에 있는 환상 열석 유적이다.

영국은 2018년 기준 3,700만 명 이상이 방문할 정도로 관광이 발달한 국가이며, 세계에서 10번째이자 유럽에서 4번째로 큰 관광지이다. 영국의 관광 산업은 2017년 국내총생산(GDP) 2조 6천 6백억 달러 중 2,916억 달러를 차지할 만큼 주요 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영국 전체 일자리의 10%를 담당하고 있다. 2017년 영국에서는 외국인 관광객에 의해 319억 3천만 달러가 지출되었다. 관광산업은 영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산업으로 2025년까지 연평균 3.8%씩 성장해 세계 평균보다 0.5% 높은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2018년 총 3,790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301억 1,549만 달러를 지출하면서 2017년 대비, 국제 방문객 및 지출 감소율은 각각 5.3%와 2.3%였다. 이러한 관광객 수 감소는 2009~10년 이후 처음이었고, 이는 2016년 브렉시트(Brexit) 국민투표의 결과로 나타난 지정학적 불확실성의 증가와 특히 중동과 아시아에서 다른 국가들이 주요 관광지로 부상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018년 기준 영국은 세계에서 8번째로 많은 총 32개의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중 28개가 영국에 위치하며, 4개는 영국 속령에 위치한다. 영국 내 위치한 세계문화유산 중 가장 유명한 장소는 스톤헨지, 그리니치천문대, 런던타워(Tower of London), 쥐라기 코스트(Jurassic Coast) 등이 있다.

영국의 주요 관광도시는 런던, 에든버러, 옥스퍼드, 콘월, 글라스고, 벨파스트, 브리스톨 등이며 영국은 스포츠, 음식, 예술이 포함된 영국 문화의 매력과 농촌과 도시 풍경이 어우러져 전 세계 방문객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영국 지도[편집]

영국 지역 지도[편집]

틀:잉글랜드 행정 지도

틀:스코틀랜드 행정 지도

틀:웨일스 행정 지도

틀:북아일랜드 행정 지도

영국 주변 지도[편집]

서유럽 국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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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서유럽 같이 보기[편집]

서유럽 국가
서유럽 도시
서유럽 지리
지중해
서유럽 문화
서유럽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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