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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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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디씨 또는 워싱턴 D.C..(영어: Washington, D.C.)는 미국수도이다. 정식 명칭은 컬럼비아특별구(영어: District of Columbia)이다. 조지 워싱턴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미국 어느 주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 행정 구역이다. 미국의 수도로 백악관과 국회의사당, 연방대법원을 포함한 많은 연방 정부의 주요 관청이 있으며, 174개 국가의 대사관과 국제통화기금 본부 등 각종 국제기구의 본부가 있는 국제 정치와 외교의 중심지이다.[1]

개요[편집]

워싱턴 D.C.는 포토맥강의 동쪽 유역에 자리 잡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포토맥강을 경계로 버지니아주와 접하고 그 이외 방향으로는 메릴랜드주에 둘러싸여 있다. 워싱턴 D.C.는 수도로서 기능하도록 설계된 계획도시다. 시가지는 의회 의사당을 중심으로 넓은 방사상 도로들과 바둑판 도로들이 교차되어 있다. 1790년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은 이곳을 수도로 정하고, 프랑스의 피에르 샤를 랑팡을 초청하여 새 수도의 설계를 의뢰하였다. 현재 잘 정비한 시원한 거리는 피에르 랑팡의 설계를 골격으로 하여 이어받은 것이다. 인구는 약 70만 명인데, 주변 교외 지역에서 드나드는 통근자를 고려하면 주중 인구는 백만이 넘는다. 컬럼비아 구역을 포괄하는 워싱턴 대도시권의 인구는 약 620만 명으로, 미국의 대도시권 가운데 6번째로 큰 규모이다. 미합중국 헌법 제1조에서 주와 다른 연방 구역을 규정하여 이곳을 영속적인 국가 수도로 삼고 있다. 수많은 국가 기념물과 박물관과 더불어 미국 연방 정부의 3부의 중심 관청이 모두 이 곳에 있다. 워싱턴 D.C에는 174개 대사관이 자리 잡고 있으며 세계은행, 국제 통화 기금, 미주 기구, 아메리카간 개발은행, 범아메리카 의료 기구의 본부가 있다. 무역 협회, 로비 단체, 직능 단체 등 여러 기관의 본부도 이곳에 있다. 워싱턴 D.C는 원래 컬럼비아 영역의 개별 지자체였으나, 1871년 의회법으로 도시와 이 영토를 컬럼비아 구역이라는 하나의 단위로 합병하였다. 워싱턴 D.C의 법적 명칭이 '컬럼비아 구역'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워싱턴이라는 명칭은 미국 독립 전쟁의 지도자이자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워싱턴 기념탑(555피트, 약 169.3m)의 높이 이상으로 건축물을 건설하지 못하도록 법적으로 제한하고 있어, 뉴욕과는 달리 초고층 건물이 드물다. 백악관, 펜타곤, 연방 의사당 등 미국의 주요 정부 기관들이 소재해 있다. 워싱턴 D.C.는 국제적으로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 있는 세계 도시이며, 금융센터로서도 중요성이 높다.[2]

명칭[편집]

행정구역의 공식 명칭은 컬럼비아구(District of Columbia)이며, 이는 연방 의회의 법률 「1871년 컬럼비아구 기본법(District of Columbia Organic Act of 1871)」에서도 드러난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조지 워싱턴은 제1대 연방 의회에서 「1790년 수도입지법(Residence Act of 1790)」이 통과된 뒤, 수도를 건설하기 위한 위원회를 만들었는데, 여기서 연방구의 명칭을 컬럼비아(Columbia)로 정하며, 연방시의 이름을 워싱턴(Washington)으로 정하기로 조율되었다. 이에 백악관이 소재한 '연방구 연방시'의 주소를 가리킬 때에는 두 명칭을 합쳐 '워싱턴, 컬럼비아구'(Washington, District of Columbia)라 불렀다. 그러다 1871년 상술한 기본법에 의해 워싱턴 카운티와 워싱턴시가 폐지되면서 '워싱턴'이라는 이름은 관습상의 명칭이 되었다.

그러나 행정구역으로서의 워싱턴시가 사라진 뒤에도 워싱턴의 이름이 인지도가 높았기 때문에 컬럼비아구의 별칭으로 쓰였고, 반점(comma)은 동격을 나타내는 부호가 되어 워싱턴, (즉) 컬럼비아구라는 의미가 되었다. 때문에 오늘날에도 컬럼비아구를 약어로 줄여 쓴 워싱턴 D.C.(Washington, D.C.)가 일상에서는 물론이고 공문서에서도 공식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편 컬럼비아(Columbia)는 '콜럼버스의 땅'이라는 뜻의 라틴어로(라틴어로 읽으면 '콜룸비아'), 인명 접미사인 '-us' 대신 지명 접미사인 '-ia'를 붙인 말이며, '아메리카(America)'의 시적인 표현, 또는 미칭으로 널리 사용된다. 따라서 컬럼비아구(District of Columbia)는 '어느 특정한 주에 속하지 않는, 미국 연방 직속의 특별한 구역'임을 강조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리 및 기후[편집]

워싱턴 DC는 미국 동부 대서양 연안의 위도 39도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총면적 177㎢가운데 158.1㎢가 육지이고, 약10퍼센트 정도인 18.9㎢는 물로 구성되어 있다. 북동쪽으로는 메릴랜드주 프린스 조지 카운티, 북서쪽으로는 메릴랜드주 몽고메리 카운티와 접해있으며, 남동쪽은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 카운티, 그리고 남서부쪽은 버지니아주 알링턴(Arlington) 카운티와 접해 있다. 북쪽으로 61㎞ 떨어져 있는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시와 함께 6백만 명이 넘는 거대 도시권을 구성하고 있다. 동부의 최대 도시인 뉴욕은 워싱턴 DC에서 북쪽으로 365㎞ 떨어져 있다.

워싱턴 DC의 서쪽 지역과 버지니아주 사이로 포토맥강이 흐르고 있다. 동쪽 지역 끝으로는 포토맥강의 지류인 애너코스티아강(Anacostia River)과 록크리크(Rock Creek) 강이 흐른다. 도시의 가장 높은 지역은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해발 125m 높이의 포트 르노(Fort Reno) 공원이며, 가장 낮은 지역은 포토맥강이다. 워싱턴 DC는 총면적의 19퍼센트인 30.21㎢가 공원 부지로서 미국의 대도시 중에서 두 번째로 녹지비율이 높다. 1890년에 조성된 록크리크공원은 7.10㎢ 규모로 미국에서 네 번째로 오래된 국립공원이다. 녹지공간이 많고 건물이 높지 않아 쾌적하면서 자연 친화적인 공원 도시의 모습을 띄고 있다.

도시의 기후는 아열대 기후대에 속하여 여름은 덥고 습도가 높다. 가장 더운 7월의 평균 기온은 섭씨 26.6도이고, 섭씨 38도의 날씨가 며칠씩 계속되기도 한다. 평균 습도는 66퍼센트에 이르고, 고온 다습한 여름에는 폭풍우를 동반한 토네이도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늦여름과 초가을에는 멕시코 만에서 시작하여 미국 동부로 올라오는 허리케인이 물 폭탄을 퍼붓기도 한다. 겨울은 춥고 눈이 가볍게 자주 오며, 연간 적설량이 평균 39㎝이다. 봄과 가을은 온화한 날씨를 보여준다.[3]

역사[편집]

17세기 초 유럽인들이 지역에 들어왔을 때 알곤 퀴안 어를 쓰는 피스캐터웨이 부족들이 포토맥강 주변에 살고 있었다. 1600년대 후반에 백인들이 이 지역으로 이주해 들어와서 농장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1749년에 백인 정착민들은 이 지역에 첫 번째 도시이며 버지니아 식민지가 된 알렉산드리아를 세웠다. 이 당시 미국은 수도가 정해져 있지 않아서 뉴욕, 필라델피아를 비롯하여 여러 도시가 수도의 역할을 했었다. 1783년 의회는 영구적인 미국의 수도를 설치할 것을 의결했다. 주마다 자기 주에 수도를 두고 싶어 해서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1790년 재정 장관인 알랙산더의 노력으로 이문제를 해결했다. 그는 미국의 수도는 어느 주에도 속하지 않는 땅에 설치하기로 제안하여 모든 주의 동의를 얻어냈다. 1790년 7월 9일, 의회는 포토맥강가에 미국의 수도 설립을 승인하는 거주법을 통과시켰다. 정확한 위치는 7월 16일 법안을 서명한 조지 워싱턴 대통령에 의해 결정하기로 했다. 워싱턴은 1791년 포토맥강 가의 땅을 수도구역으로 정했는데 지금의 워싱턴 D.C. 구역을 포함하여 포토맥강 서쪽의 30평방마일의 땅도 포함했었다. 메릴랜드주와 강서쪽의 버지니아주에서 해당 되는 땅을 연방정부에 기증하여 사각형 모양으로 된 각면이 16km되며 면적은 259km²에 해당되는 수도 구역이 정해지게 되었다.

연방정부가 임시수도였던 필라델피아에서 워싱턴 D.C.로 옮긴것은 1800년이다. 이때 도시 인구는 고작 8,000명에 불과했다. 1814년에 영국과의 전쟁에서 워싱턴 D.C.는 영국군에 의해 점령 당했고 의사당과 백악관을 포함한 많은 정부청사가 불타버렸다. 1819년 소실되었던 정부청사는 모두 복구되었다. 의회는 워싱턴 D.C.의 도시 관리를 대통령의 권한 밑에 두었으나 1802년 시민이 시정 관리를 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고 1820년에는 시장을 선거로 뽑게 됐다. 그러나 의회 의원이나 대통령 선거권은 시민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도시의 발전[편집]

1840년 당시의 도시 인구는 약 5만 명으로 도시로서의 성장은 저조했으나 남북전쟁(1861-1865) 때에 인구가 6만 명에서 12만 명으로 급증했다. 이 전쟁 중에는 북군의 부대가 대거 주둔하여 남군의 침공에 대비했다. 많은 사람이 북군을 돕고 수도를 지키는 일을 도우려고 워싱턴 D.C.로 이주해왔고 노예 생활에서 해방된 흑인들이 이주해 옴으로서 인구가 급증했다. 전쟁이 시작될 때의 35만 명의 인구가 전쟁이 끝나는 1918년에는 45만 명으로 늘어났다.

전쟁이 끝난 후 의회는 워싱턴 D.C.의 도시개발을 위해 도시 정부 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1871년 도시를 관리할 지사를 대통령이 임명했으나 1874년에 의회는 도시 운영을 대통령이 임명한 행정관 세 사람에게 맡기도록 법을 개정했다. 워싱턴 D.C.는 미국에서 유일하게도 도시를 운영할 대표를 시민이 투표로 뽑을 수 없는 도시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기간은 또다시 워싱턴 D.C. 인구의 증가를 가져왔다. 그 후 1930년 경제공황은 직업을 잃은 실업자로 전국의 도시가 어려움을 겪었지만 워싱턴 DC만은 예외였다. 연방정부는 이때 전국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많은 프로젝트를 수행했기 때문에 1930년에서 1940년 사이에 인구가 48만5천 명에서 66만5천 명으로 늘어났다. 1950년에 와서 도시 인구는 80만 명으로 정점에 달했다. 그 후로는 도시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했으나 도시 주변 인구가 급증해서 광역 인구는 1950년에서 1970년 사이에 150만 명에서 300만 명으로 늘어났다. 워싱턴 DC 인구는 흑인의 인구가 늘어났고 주변 도시는 백인 인구가 급증했다.

워싱턴 시민의 참정권에 대한 요구가 의회에 반영되어 1964년 헌법개정이 통과되어 처음으로 워싱턴 시민은 대통령 선거에 투표할 수 있게 되었다. 1973년 시정부 위원선거를 할 수 있도록 의회는 법 개정을 했다. 100년 만에 자치권을 갖게 되었다.[4]

도시 구조[편집]

워싱턴 D.C.는 계획 도시이다. 워싱턴 도시 계획은 미국 독립 전쟁 당시 라파예트 장군의 군사 공학자로 식민지에 최초로 도착한 프랑스 태생의 건축가, 공학자, 도시 계획가 피에르 샤를 랑팡이 주로 맡았다. 1791년 워싱턴 대통령은 랑팡에게 새 수도 배치 설계를 의뢰한다. 랑팡의 계획은 바로크식 도시 계획을 본보기로 삼아 사각형과 원형을 중심으로 넓은 가로 뻗어나가 개방 공간과 탁트인 경관을 보이는 방식이었다. 랑팡은 도시 계획에 세세한 일까지 고집스레 간섭하여 수도 건설을 감독하기 위해 워싱턴이 임명한 세 위원 사이에 갈등이 생기자 1792년 3월 워싱턴 대통령은 랑팡을 해임하였다. 그리하여 랑팡과 함께 도시 측량 작업을 함께 하던 앤드루 엘리컷이 도시 계획을 완성하였다. 엘리컷은 가로 형태 등 당초 계획에 수정을 가하기는 하였지만, 랑팡은 워싱턴 시의 전체 설계를 맡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다. 워싱턴 시는 오늘날 북쪽 플로리다 가와 서쪽 록 크릭(Rock Creek), 동쪽 애너코스티아 강(Anacostia River)을 경계로 하고 있었다.

20세기 초에 들어 랑팡이 의도한 수도의 탁트인 공원과 장대한 국가 기념물의 경관은 빈민가나 아무렇게나 들어선 건물, 내셔널 몰(National Mall)의 기차역 때문에 어지러워졌다. 1900년 의회는 상원의원 제임스 맥밀런이 이끄는 합동 위원회를 꾸려 워싱턴의 국가 의식 핵심부를 꾸미는 일에 착수하였다. 이 맥밀런 계획은 1901년에 완성되었다. 이 계획에는 의사당 마당과 내셔널 몰의 경관을 새로이 바꾸고, 새로운 연방 관청 건물과 기념물을 건설하며, 빈민가를 철거하고 새로운 공원 체제를 세우는 것 등이 있었다. 위원회의 건축가들은 도시의 원래 배치를 보존하였고, 이들의 작업은 랑팡이 의도한 설계를 장대하게 완성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1899년 12층짜리 카이로 아파트 건물(Cairo Apartment Building)이 들어서자 의회는 건물 고도 제한법(Heights of Buildings Act)을 통과하여 어느 건물도 의사당보다 높게 짓지 못하도록 규정하였다. 이 법은 1910년에 개정되어 건물 고도를 인접 가로의 폭에서 6.1m를 더한 높이 이상으로 건설하지 못하도록 제한하였다. 오늘날 워싱턴 시의 건물 윤곽선(skyline)은 낮고 넓게 퍼진 모양새를 갖추어, 워싱턴 시가 "복잡하지 않고 바람이 잘 통하는" 거리에 "낮고 편리한" 건물들이 있는 "미국의 파리"가 되길 바라던 토머스 제퍼슨의 뜻을 따르고 있다. 그러하여 워싱턴 기념비(Washington Monument)는 구역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이다. 그러나 도시의 확산 현상으로 교통 및 주택 문제를 이유로 워싱턴의 고도 제한은 비난을 받았다. 구역의 고도 제한 규정을 피하기 위해 시내와 가까운 곳의 높은 건물은 포토맥 강에서 버지니아주의 로슬린쪽에 건설되곤 한다.

컬럼비아 구역은 넓이가 제각각인 4개의 지구(quadrant)로 나뉘는데, 북서 지구(Northwest), 북동 지구(Northeast), 남동 지구(Southeast), 남서 지구(Southwest)가 바로 그것이다. 네 지구의 경계선은 미국 의회 의사당이 기준이다. 모든 도로 이름에는 지구 이름의 약자가 붙어 그 도로가 속한 지구를 표시한다. 워싱턴시에서는 대부분 모든 거리가 격자 모양으로 뻗어있으며, 동서 방향 거리 이름에는 글자가 붙고, (가령 C Street SW) 남북 방향 거리 이름에는 숫자가 붙는다. 또 원형 교차점에서 대각선으로 뻗어나가는 도로 이름은 우선 미국의 주 이름을 따서 붙이는데, 미국의 50개 주 모든 이름으로 도로명이 있으며, 푸에르토 리코와 컬럼비아 구역의 이름을 지닌 대로도 있다. 워싱턴의 어떤 가로는 특히 눈에 띄는데, 가령 펜실베이니아 거리(Pennsylvania Avenue)는 백악관과 미국 의회의사당을 이어주며, K 거리(K Street)는 여러 로비 단체의 건물을 잇고 있다. 워싱턴에는 174개국 외국 대사관이 있으며, 이 가운데 59개는 매사추세츠 거리(Massachusetts Avenue)에 있는데 이 거리는 비공식적으로 대사관길(Embassy Row)이라 부르기도 한다.

교통[편집]

워싱턴 DC는 대중교통이 잘 발달되어 자가용 없이도 출퇴근이나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도시의 출퇴근 직장인들 중 약 37%가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한다. 12%의 주민들이 걸어서 출퇴근하는 것까지 감안하면 50% 정도의 주민들이 자가용을 사용하지 않고 출퇴근하는 셈이다.

워싱턴 DC의 대표적인 대중 교통수단은 매트로(Metro)라 불리는 지하철이다. 1976년 개통되었으며 91개의 지하철역이 있다. 지하철의 총 길이는 188㎞이다. 지하철 고객과 일반 열차 고객이 함께 사용하는 유니언역의 하루 이용객은 70,000명에 이른다. 버스노선도 잘 짜여 있고, 1주일 이용객 수가 40만 명이 넘을 정도로 이용자가 많다. 그 외 워싱턴 DC 도심부의 주요 관광명소 및 상업 지구를 연결하여 운행하는 도심 버스 서비스 DC 서큘레이터(DC Circulator)도 도심지 교통수단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도심 주위에는 3개의 대형 공항이 있다. 도심지에서 8㎞ 정도 거리에 있는 로널드 레이건 워싱턴 공항은 국내용이다. 도심지에서 남서쪽으로 38㎞ 거리에는 버지니아주에 속한 워싱턴덜레스국제공항이 있다. 그리고 북쪽으로 48㎞ 거리에 있으면서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시에서 남쪽으로 14㎞ 떨어져 있는 볼티모어-워싱턴서굿마셜국제공항이 있다. 이 가운데 볼티모어-워싱턴 국제공항이 이용객이 가장 많으며, 1967년에 흑인 최초로 연방 대법관으로 임명되어 1991년까지 재임하였던 서굿마셜을 기념하기 위해 2005년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하였다.[5]

명소[편집]

내셔널 몰은 워싱턴 시내에 있는 넓은 개방형 공원으로 동쪽의 미국 국회의사당과 서쪽의 링컨 기념관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내셔널 몰의 공원은 종종 정치 시위, 음악회, 축제, 대통령 취임식 등의 장소로 이용된다. 내셔널 몰의 중앙에는 169m 높이의 워싱턴 기념탑이 있다. 워싱턴 기념탑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박물관이 모여 있고 서쪽에는 기념관이나 기념비 등이 모여 있다. 워싱턴 기념탑에서 북쪽에는 프레지던트공원과 접해있고 백악관이 북쪽 끝에 있다. 워싱턴 기념탑은 서쪽편에 있는 링컨 기념관에서 바라볼때 그 사이에 있는 리플렉팅 풀(Reflecting pool) 연못물에 기념탑이 반사되어 보이도록 설계되었다. 리플렉팅 풀과 기념탑 사이에는 제2차 세계대전 기념관이 있다. 내셔널 몰의 서쪽에 있는 명소 중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곳은 링컨 기념관으로 매년 약 6백만 명의 방문객이 찾아온다. 링컨 기념관 앞에서 보면 좌우로 베트남 용사 기념비와 한국전 참전 용사 기념비가 있다. 한국전 기념비에는 스테인레스강으로 만든 19 군인 병사의 조각상이 있다.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쓰인 비석도 있다.

워싱턴 기념탐 남쪽에 타이달베이신(Tidal Basin)이라고 하는 반 인공 호수가 포토맥강과 연결되어 있는데 이 주변에는 벚꽃 나무가 줄지어있다. 프랭클린 델라 노 루즈 벨트 기념관, 조지 메이슨 기념관, 제퍼슨 기념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기념관 및 D.C.1차 세계대전 기념관이 호수 주변에 있다.

내셔널 몰의 북쪽에 있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tional Archives)은 독립 선언, 헌법 및 권리 장전 등을 보관하고 있는 곳이며 미국 역사에 중요한 수천 개의 문서를 보관하고 있다. 미국 의회 도서관은 국회의사당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1억 4,400만 권이 넘는 책, 원고 및 기타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이다.

워싱턴 D.C.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박물관미술관 및 공연장이 여럿 있다. 대표적인 곳이 1846년에 건립된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이다.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은 국립 자연사박물관을 비롯하여 여러 개의 전문 박물관으로 구성된 종합 박물관으로서 연간 3천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방문한다. 워싱턴 DC는 예술 공연의 도시로도 유명하다. 가장 유명한 예술 공연장은 존 케네디센터이다. 이곳에는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 워싱턴 국립 오페라단, 워싱턴 발레단이 자리 잡고 있다. 16대 대통령 링컨이 1865년 4월 14일 암살된 포드 극장도 박물관 겸 연극장으로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6]

지도[편집]

미국 행정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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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워싱턴 D.C.〉, 《위키백과》
  2. 워싱턴 D.C.(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워싱턴 D.C.의 지리와 자연환경〉, 《네이버 지식백과》
  4. 워싱턴.〉, 《요다위키》
  5. 워싱턴 D.C.〉, 《나무위키》
  6. 워싱턴 D.C.의 사회문화〉,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북아메리카 같이 보기[편집]

북아메리카 국가
카리브제도 국가
북아메리카 도시 1
북아메리카 도시 2
북아메리카 지리
북아메리카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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