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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더스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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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주변의 인더스강
중하류인 신드 지방의 수쿠르를 지나는 인더스강
인더스강 유역의 위성 사진
인더스강

인더스강(Indus River, 이탈리아어: Indo, 포르투갈어: O Rio Hindus, 베트남어: Sông Ấn, 일본어: インダス, 중국어: 印度河, 印度斯河)은 히말라야 북쪽, 티베트 남서쪽 카일라스 산맥 북쪽 사면에서 발원하여 1,100km를 북서방향으로 흘러 카슈미르 지방의 북부를 거쳐 라다크 산지를 횡단한다. 그 곳에서 남서쪽으로 유로를 바꾸어 파키스탄 본토를 관통하여 카라치 남동쪽에서 아라비아해(海)로 흘러들어간다. 길이 2,900km. 유역 면적 116만 5,500㎢이다.[1]

개요[편집]

인더스강은 파키스탄 중앙을 관통하는 으로 상류인 인더스 계곡에서는 인류 초기 문명인 인더스 문명이 발생하였다.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되기 전에는 갠지스강과 함께 이 지역에서 문화적, 상업적으로 중요한 기능을 했고 인도의 명칭도 인더스강에서 유래한 것이다. 티베트에서 발원해서 히말라야와 카슈미르를 거쳐 파키스탄에 이르러서는 남쪽으로 흘러 아라비아해로 흘러들어 간다. 유일하게 큰 지류는 중류에서 합류하는 판지나드강(江)인데 이는 펀자브 5강(江)인 젤룸, 체나브, 라비, 베아스, 수틀레지가 합쳐져 이루어진 것으로 하구에서 200km인 하이데라바드까지는 작은 기선이 항행한다. 하구 지방은 강의 퇴적작용이 심하며 하상(河床)이 주위의 토지보다 23m나 높은 곳도 있다. 이 때문에 관개용수를 얻는 데에는 좋으나 그만큼 홍수의 위험도 크다. 하류에서는 하도(河道)가 자주 바뀌었으며, BC 3세기경에는 인더스강 하구가 현재보다 130km나 동쪽에 있어서 쿠치만(灣)으로 유입하였다고 한다. 인더스강은 인도 역사상 중요한 의의를 가진 강이다. 중류 유역의 하라파, 하류 유역의 모헨조다로 등의 유명한 유적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BC 2500년경에 꽃피었던 인더스문명은 이 강을 모체로 이루어졌다. 그 후 북서쪽으로부터 진입해 온 아리아인(人)이 가장 먼저 정주한 것도 인더스강 중류의 5강 지방이며 알렉산더대왕의 인도 원정을 시작으로 20세기의 제3차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침략이나 전쟁의 무대가 되기도 하였다.

인더스강 유역은 역사적으로 일찍 개발되었으나 펀자브 평원의 대부분과 하류의 신드 지방은 토지는 비옥한 충적토인데도 강수량이 500mm 이하이고 아열대 건조기후에 속하여 자주 기근을 겪어왔다. 영국 식민지 시대에는 유역에 광범한 근대적 관개 공사가 시행되기 시작했으며, 20세기에 이르러 완성한 신드의 수쿠르댐은 유역의 밀, 목화, 사탕수수 등의 생산을 크게 안정시켰다. 인더스강은 히말라야의 눈이 녹은 물을 주된 수원으로 하기 때문에 수량의 연변화는 있지만 결코 마르는 경우는 없다. 적당한 관개시설만 있으면 유역의 농업은 발전의 가능성이 크다. 상류의 카슈미르 지방에서는 지형을 이용하여 수력발전소를 건설할 계획이므로, 파키스탄의 공업화를 위한 잠재적인 동력으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카슈미르 문제에 파키스탄이 양보하지 않는 원인 중의 하나도 여기에 있다.[2]

명칭[편집]

언어별 명칭
우르드어 دریائے سندھ (다리야이 신드)
신드어 سنڌو درياھ (신두 다리야)
펀자브어 دریاۓ سندھ (다리야 신드)
산스크리트어 सिन्धु (sindhu, 신두)
티벳어 སེང་གེ།་གཙང་པོ (셍게 추)
러시아어 Инд (인트)
영어 The Indus (River)
이탈리아어 Indo
포르투갈어 O Rio Hindus
베트남어 Sông Ấn
일본어 インダス
중국어 印度河(Yìndùhé), 印度斯河(Yìndùsī Hé)
한국어 인더스 강 (Indus江)

인더스강이라는 이름은 산스크리트어 신두(सिन्धु, sindhu)에서 나왔는데 이 자체가 '강'이라는 의미이다. 황하의 河, 장강의 江과 어원이 유사한 셈이다. 더불어 신두라는 이름이 페르시아, 고대 그리스를 거쳐 유럽으로 전해지면서 나라 이름 India의 유래가 되었고, 한자문화권에도 전해져서 인도라는 이름으로 정착했다. 그러나 인도 제국의 서북부가 파키스탄으로 독립한 이후 인더스 강 본류의 대부분은 인도를 지나지 않는다. 상류 극히 일부분과 몇 개의 지류만이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지역인 카슈미르를 지날 뿐이다. 그외에 라다크와 티베트에서는 '사자의 강'이란 의미인 셍게 참포라 부르고, 길기트 발티스탄에서는 겜트수 혹은 추포라 부른다. 파슈툰인들은 닐랍 / 셰르다리야로도 부른다. 신디어로는 신두와 함께 메흐란, 푸랄리, 사무다르 등으로도 부른다. 인더스는(그리스식 인도스가 와전된) 영어식 표현으로 현지 우르두/힌디어로는 신두 혹은 신드라 부른다. 인도, 힌두, 신드 등의 단어가 유래한 강으로, 사실상 인도의 정체성이 담긴 강이다.

지리[편집]

중국 남서쪽 티베트고원의 눈 녹은 물에서 발원하는 인더스강은 히말라야산맥을 가로질러 흐른다. 상류는 영토분쟁이 계속되고 있는 잠무와 카슈미르 지방의 카라코람산맥과 자스카르 산맥 사이의 넓은 단층지대에 형성된 골짜기를 따라 북서쪽 방향으로 흐른다. 이후 남서쪽으로 흐름을 바꾸어 파키스탄 영토를 따라 흐른다. 힌두쿠시산맥의 남쪽 히말라야를 가로지르는 구간은 험준한 산지 사이로 깊은 협곡이 형성되는데 강과 협곡 주변 산의 고도 차이는 3,600m 이상이다. 페샤와르와 이슬라마바드 사이 구간에서 인더스강은 카불강과 합류하고, 포트와르고원을 가로지른다. 펀자브 평원 지대를 흐르면서 히말라야산맥의 남사면을 흘러온 여러 개의 지류와 만난다. 타르 사막의 북쪽을 흐르는 480km 구간은 넓은 범람원을 형성하면서 자유곡류를 한다. 하이데라바드를 지나면서 인더스강은 몇 개의 분류로 나뉘고 삼각주를 형성한다. 카라치는 이 삼각주의 북쪽 끝에 위치한다. 인더스강 유역은 나일강, 유프라테스강, 황하와 함께 고대 문명의 발상지이다. 4,000년 전 이곳에 도시가 세워졌고, 구운 벽돌로 지은 집, 포장된 도로, 하수구 등의 유적이 남아있다.

유역별 특징[편집]

  • 상류 : 라다크, 카슈미르 지역이다. 고산 사이의 인더스 협곡을 따라 흐르며, 물빛이 청록색으로 맑다. 티베트 문화와 인도 문화의 접점으로 다양한 민족과 언어가 공존한다. 7세기 고선지 장군이 도달한 바 있다. 카슈미르 분쟁과 함께 인더스 상류에 대한 다툼 역시 치열하다.
  • 중상류 : 펀자브 지역이다. 5갈래의 하천들 중 본류는 가장 서쪽을 흐른다. 젤룸, 라비, 술테즈 강과 차례대로 합류한 체납 강이 우치 부근에서 인더스 본류와 합류한다. 파키스탄의 주요부. 1960년 인도의 네루 총리와 파키스탄의 아윱칸 대통령은 카라치에서 인더스 강물 조약 (IWT)을 체결하여 강들의 물 관리 문제에 합의하였다. 그 결과 서쪽 강들인 인더스 본류, 체납, 젤룸강은 파키스탄이 관할하고 베아스, 라비, 술테즈 강은 인도가 관리하기로 합의하여 분리 독립 후 이어지던 양국 간의 수자원 확보 전쟁은 일단락되었다. 관리국은 관리하는 강의 물 80%를 점유하고, 20%는 상대국에 보낸다. 하지만 강들의 상류를 점유한 인도가 파키스탄 대홍수 시에 수문을 개방하는 등의 행보를 보여 파키스탄이 반발하고 있다.
  • 중하류 : 신드 북부 지역이다. 주요 도시는 수쿠르가 있으며 하나로 합쳐진 인더스강이 속도를 늦추며 흐르는 파키스탄의 곡창 지대다. 인더스 문명의 핵심부로, 모헨조다로 유적이 이곳에 있다. 2022년 파키스탄 대홍수 시에 가장 큰 피해를 입었고 강 주변에 여러 개의 호수가 생겨났다.
  • 하류 : 신드 남부 지역이다. 하이데라바드를 지난 인더스는 갯벌과 맹그로브 숲으로 구성된 델타 (삼각주)를 이루며 인도양으로 합류한다. 삼각주 서쪽 해안에 형성된 도시가 파키스탄의 최대도시 카라치이다. 일부 물줄기는 인도령 구자라트의 쿠치 습지와 만으로도 흘러든다.

역사[편집]

인더스강 지역은 일찍이 개발되었으며 하류 주변의 토지는 비옥하지만 연간 강수량이 500mm 이하이고 기후 또한 건조한 아열대기후이기 때문에 기근이 잦았다. 위성 지도를 보면 녹음이 가득한 갠지스강 유역과 달리 (펀잡 아래의) 인더스강 동쪽에는 거대한 타르사막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인더스강은 크게 북쪽의 펀자브와 남쪽의 신드 지방으로 구분할 수 있고, 간다라나 카슈미르 지방에도 걸쳐 있다. 인더스 문명기 강을 따라 모헨조다로, 하라파 등 도시가 세워진 선진 지역이다. 전통적으로 인더스는 페르시아, 유목 문명과 인도 문명의 접점이었다. 아케메네스 제국, 셀레우코스 왕조, 파르티아, 사산 제국이 인더스강 서안까지 영토를 영유하였고 알렉산드로스 대왕 역시 인더스강까지 원정한 후 돌아갔다. 헬레니즘기에는 인도-그리스 왕국이 세워졌었고, 백훈족 (에프탈)이나 인도-스키타이 등 유목 세력이 지배하기도 하였다. 종교적으로는 고대에는 불교, 중세 초엽에는 힌두교가 번성하였다. 그러다 8세기 초엽 신드 지방이 우마이야 왕조령이 되었고, 10-12세기에는 술탄 마흐무드와 무함마드 고리 등 튀르크-아프간계 왕조들이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남하하며 이슬람화가 시작되었다.

13-18세기에는 델리 술탄국과 무굴 제국이 펀자브의 라호르를 중심으로 세워져 이슬람화가 가속화되었고, 18세기에 이르면 인더스강 유역의 주민 2/3 이상이 무슬림이었다. 17세기 들어 펀자브를 중심으로 신흥종교 시크교가 세력을 떨쳤고, 19세기 시크 왕국을 세웠으나 영국에 복속되었다. 이어진 인도령 영국기에 강 유역에 대규모 관개 공사가 시행되었고, 20세기에 이르러 완성한 신드의 수쿠르 댐을 통해 유역의 밀, 목화, 사탕수수 등의 생산을 크게 안정시켰다. 2022년 파키스탄 대홍수 시에 범람하여 큰 피해를 야기하였다.[3]

관련 뉴스[편집]

  • 2022년 9월 13일(현지시간) EFE통신 등 외신과 파키스탄 매체에 따르면 파키스탄 당국은 침수 위기에 빠진 남부 다두시를 방어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두시는 이번 홍수로 직격탄을 맞은 남부 신드주에 속한 도시로 인더스강 서쪽에 자리 잡고 있다. 폭우와 북부 지역의 빙하 녹은 물 등이 밀려 내려오면서 다두시 인근 마을 등 다두 지구 상당 부분은 이미 물에 잠긴 상태다. 다두시 주변 수위도 계속 차오르는 상태로 당국은 시 외곽에 원형 제방을 구축, 범람을 저지하고 있다. 수로를 이용해 인더스강으로 물길을 돌리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물 빠짐 길을 만들기 위해 일부 고속도로도 허물었다. 다두시와 다두 지구의 인구는 각각 약 17만 명과 약 150만 명으로 추산된다. 다두시 고위 관리인 샤흐나와즈 미라니는 EFE통신에 시의 한 지역에서는 40피트(약 12m) 앞까지 물이 다가왔다고 말했다. 당국은 특히 다두시의 전력 시설 침수 방어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미라니는 만약 홍수가 변전소로 들어온다면 6개 지구에 대한 전력 공급이 끊어질 것이라며 이 시설은 주송전선과도 연결돼 있기 때문에 나라 전체의 전력 공급에도 지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당국은 군 병력을 투입, 해당 전력 시설 주위에 둑을 쌓는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셰바즈 샤리프 총리도 라디오 파키스탄과 인터뷰에서 500㎸(킬로볼트)의 전력 시설이 침수되지 않도록 하라고 당국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샤리프 총리는 전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터키) 대통령과 통화에서 터키의 구호물품 지원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파키스탄은 현재 식품 부족과도 싸우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파키스탄은 6월 중순부터 시작된 계절성 몬순 우기로 큰 홍수가 났다. 해마다 몬순 우기 때면 큰 피해가 생기곤 했지만, 올해는 국가적 재앙 수준으로 치달았다. 7∼8월 두 달 동안 파키스탄에서는 예년 평균보다 190% 많은 391㎜의 비가 내렸다. 신드주의 경우 올해 강수량은 예년보다 466%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번 홍수로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겼으며 인구의 약 15%인 3천300만명이 수해를 입었다고 파키스탄 당국은 파악했다. 우기 동안 누적 사망자 수는 약 1천400명이며 전국적으로 가옥 174만 채가 부서졌고 66만 명이 임시 구호 시설에 머물고 있다.[4]
  • 2019년 2월 22일 인도 일간 힌두스탄타임스와 미국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니틴 가드카리 인도 교통부 장관은 전날 트위터를 통해 파키스탄과 인더스강 유역의 수자원을 더는 공유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지금까지는 인도 영토를 거쳐 파키스탄으로 흘러 들어가는 인더스강 상류 물줄기를 그대로 뒀으나 앞으로는 이를 막아 인도 쪽으로 돌리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파키스탄 펀자브주(州) 등의 농업지대는 당장 심각한 물 부족에 시달릴 수밖에 없게 된다. 가드카리 장관은 1960년 '인더스강 조약'에 따라 인도는 인더스강 상류수자원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그간 활용하지 않았는데 이제 그 권리를 행사하겠다고 설명했다. 인도는 이전에도 종종 이 같은 주장을 펼쳤으나 이번처럼 강도 높게 확실한 어조로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현지 언론과 외신은 인도의 이번 발표가 카슈미르 자살폭탄 테러와 관련한 보복이라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는 카슈미르 테러 발생 후 인도 국민은 파키스탄에 대한 복수를 갈망하지만, 인도 정부로서는 마땅한 군사 대응 수단이 없는 상태라며 이에 인도 정부는 그 외 다른 보복 조치를 강구해왔다고 분석했다. 14일 잠무-카슈미르의 풀와마 지역에서는 인도 경찰 2천500여명을 태운 차량 행렬을 겨냥한 자살폭탄 공격이 발생해 최소 40명이 사망했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카슈미르 반군 자이쉬-에-무함마드가 공격의 배후를 자처했으며 인도는 파키스탄이 실제 배후라고 주장했다. 인도는 이어 파키스탄 수입품에 관세 200%를 물리는 등 보복에 나섰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군 당국에 대응 시기, 장소를 자유롭게 결정할 전권을 부여했다며 군사 대응까지 고려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인도와 파키스탄은 모두 핵무기 보유국인 데다 분쟁지인 카슈미르에는 양국 군인 수십만명이 대치하고 있어 본격적으로 전쟁을 일으키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도 만약 인도가 공격하면 파키스탄은 보복할 것이라며 군사 대응을 지시했지만 아직 양측의 군사 충돌은 없는 상태다.[5]

지도[편집]

인도 강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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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인더스강〉, 《위키백과》
  2. 인더스강〉, 《네이버 지식백과》
  3. 인더스강〉, 《나무위키》
  4. 김영현 특파원, 〈"범람 막아라"…파키스탄, 인더스강 옆 도시 '침수 방어' 총력전〉, 《연합뉴스》, 2022-09-13
  5. 김영현 기자, 〈인도 "인더스강 막겠다"…파키스탄 '폭탄테러 갈등' 최고조〉, 《연합뉴스》, 2019-02-22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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