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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기기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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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증기 기관차의 모습. 사진은 LNER사의 여객용 기관차인 LNER Peppercorn Class A1 '토네이도' 호의 주행 사진.

증기기관차(蒸氣機關車, steam locomotive)는 증기기관에서 구동력을 얻어 움직이는 기관차를 말한다. 근원적인 열원이 무엇이든지 상관 없이, 열원을 활용하는 데 있어 증기가 개입하는 경우는 모두 증기기관차로 분류한다.

증기기관은 21세기에는 구시대의 유물로 여겨지지만, 18세기 말~19세기 까지는 산업혁명의 주 동력 역할을 하던 운송수단으로서, 이전까지 육로를 통해 마차운송하던 것과 비교해 엄청난 양의 화물을 실어 나를 수 있는 산업화의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었다.

증기기관차는 19세기를 상징하는 인공물로 영국 산업혁명의 대미를 장식했다. 증기기관차의 선구자로는 퀴뇨, 머독, 트레비식 등이 있으며, 상업적으로 활용된 증기기관차를 최초로 만든 사람은 조지 스티븐슨(George Stephenson, 1781~1848)이었다. 스티븐슨은 1829년에 로켓 호를 제작하여 증기기관차의 전형을 제시했고, 1830년에 세계 최초의 장거리 철도인 리버풀-맨체스터 철도를 완공했다. 1840년대 이후에 세계 각국은 경쟁적으로 철도를 건설했으며, 철도산업은 경영혁명이 이루어지는 매개로 작용했다.

역사[편집]

퀴뇨가 만든 세 바퀴 증기마차(1771년)
트레비식의 제작한 페니다랜 호(1804년).
로커모션 호가 스톡턴-달링턴 철도를 달리는 모습(1825년)

증기기관차의 선구자들[편집]

증기기관차에 처음 도전한 사람은 프랑스의 군사기술자인 니콜라-조셉 퀴뇨(Nicolas-Joseph Cugnot)로 알려져 있다. 그는 1769년에 증기기관차에 대한 모형을 제작한 후 1770년과 1771년에 세 바퀴를 가진 증기마차(steam wagon)를 만들었다. 그러나 퀴뇨의 증기마차는 기껏해야 15분밖에 달리지 못했으며, 한 번 달린 후에는 증기가 다시 생길 때까지 엔진을 정지시켜야 했다. 1771년에 만든 두 번째 증기마차는 운행 도중에 병기창의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는데, 그것은 세계 최초의 자동차 사고로 평가되기도 한다.

영국에서는 제임스 와트(James Watt)의 조수인 윌리엄 머독(William Murdock)이 증기기관차에 도전했다. 머독은 1784년에 증기객차(steam carriage)에 대한 모형을 만든 후 다음 해에 특허를 받았다. 그는 일과를 마친 후에 자신의 모형으로 길거리에서 실험을 했는데, 이웃 사람들이 깜짝 놀라 항의를 했다고 한다. 와트는 머독이 증기기관을 개량하는 본연의 업무에 소홀히 한다고 걱정하였고, 머독은 이를 수용하여 증기기관차에 대한 꿈을 접었다.

증기기관차의 발명[편집]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증기기관차를 만드는 데에는 영국의 광산기술자인 리처드 트레비식(Richard Trevithick)의 공이 컸다. 그는 1801년에 고압엔진으로 작동하는 증기기관차를 만들어 시험 운전에 성공하였고 다음 해에 특허를 받았다. 트레비식이 만든 증기기관차는 고압의 증기가 빠져나갈 때 나는 소리를 따라 칙칙폭폭(Puffer or Puffing Devil)으로 불렸다.

트레비식은 1804년에 페니다랜(Penydarren) 호를 제작했다. 페니다랜 호는 18km의 선로에서 10톤의 선철과 70명의 승객을 태운 5량의 화차를 시속 9km로 달렸다. 덕분에 페니다랜 호는 선로를 실제로 주행한 세계 최초의 증기기관차로 평가된다. 그러나 페니다랜 호는 무게가 5톤이 넘어 선로가 파손되는 바람에 정기적으로 운행되지 못했다. 기관사가 승차할 자리가 없어 페니다랜 호 옆을 따라 달리는 문제점도 있었다.

트레비식은 1809년에 캐치미후캔(Catch Me Who Can)이라는 요상한 이름의 증기기관차를 선보였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누가 나를 따라 잡으랴" 혹은 "나 잡아봐라" 정도에 해당한다. 그는 런던에 환상 철도를 부설한 후 많은 관람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적인 실험을 했다. 캐치미후캔의 속도는 시속 19km까지 올라갔으며, 관람객들은 탄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선로는 기차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고, 결국 캐치미후캔은 탈선하고 말았다.

기차와 철도의 궁합[편집]

철도의 아버지로 불리는 스티븐슨은 1813년부터 증기기관차를 만드는 일에 집중했다. 킬링워스 광산의 소유주가 석탄을 실어 나르기 위해 스티븐슨에게 증기기관차의 제작을 의뢰했던 것이다. 스티븐슨의 첫 번째 증기기관차인 블뤼허(Blücher) 호는 1814년 7월 25일에 성공적으로 운행되었다. 블뤼허 호가 시속 6.5km의 속도로 석탄을 실은 화차 8량을 달고 부두까지 무사히 달렸던 것이다. 이로써 블뤼허 호는 상업적으로 활용된 최초의 증기기관차로 기록되었다.

스티븐슨은 이후에도 증기기관차를 개선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였다. 체인을 사용하지 않고 피스톤과 바퀴를 직접 연결시켜 속력을 높였으며, 배기 장치를 개선하여 배출되는 가스를 다시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그는 기관차를 제작하는 것은 물론 튼튼한 선로를 부설하는 데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기관차의 성능이 우수하다 할지라도 선로가 그것을 받쳐주지 못하면 무용지물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남자와 여자처럼 기관차와 선로가 짝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1821년에 스티븐슨은 스톡턴-달링턴 철도회사로부터 주문을 받았다. 영국 의회는 스톡턴과 달링턴을 연결하는 철도를 건설하는 것을 승인하였고, 철도회사가 기관차의 제작을 스티븐슨에게 의뢰했던 것이다. 이 사업에 참여하면서 스티븐슨은 1823년에 뉴캐슬에 기관차 공장을 차렸다. 드디어 1825년 9월 27일에는 세계 최초의 여객용 철도에 대한 개통식이 거행되었다. 스티븐슨이 제작한 로커모션(Locomotion) 호는 화차 6량과 객차 28량을 달고 시속 20km로 철도를 신나게 달렸다.

철도건설의 위대한 시대[편집]

1824년에 스티븐슨은 리버풀과 맨체스터 사이에 철도를 부설하는 작업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런데 이번 일은 순조롭지 않았다. 마차나 운하를 운영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기차가 도입되면 자신의 이익이 줄어들 것을 염려하여 철도의 부설을 반대했던 것이다. 그들은 스티븐슨의 작업을 방해하면서 영국 정부에 진정서를 내기도 했다. 반대하는 이유도 가지각색이었다.

"기관차의 연통에서 나오는 독가스가 주변의 가축과 숲 속의 새들을 죽일 것이다." "암소는 더 이상 우유를 생산하지 못하며 암탉도 더 이상 달걀을 낳지 않게 될 것이다." "말들은 더 이상 쓸모가 없게 되고 우편 마차의 마부나 인적이 드문 도로의 음식점 주인들은 비렁뱅이 신세로 전락할 것이다." "연통에서 나온 불꽃이 근처 집을 태울 것이며 가마가 터져 승객들이 화상을 입을 것이다." "사람들은 기차의 빠른 속력을 견뎌낼 수 없어서 이성을 잃게 될 것이다."

이러한 반대로 인하여 리버풀-맨체스터 철도는 1826년 5월에야 영국 의회의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철도회사는 기차가 지나가는 것을 환영하는 마을만을 골라 부지를 사들인 다음 철도의 부설을 진행시켰다. 반대 세력의 방해공작을 막기 위해 공포탄을 쏜 후에 작업을 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결국 리버풀-맨체스터 철도는 1830년 9월 15일에 개통될 수 있었다. 리버풀-맨체스터 철도는 45km에 달하는 세계 최초의 장거리 철도였으며, 1830년 9월 15일은 '철도 건설의 위대한 시대'가 시작된 날로 평가되고 있다.

레인힐의 경주[편집]

스티븐슨은 리버풀-맨체스터 철도를 건설하면서 그 철도를 달릴 증기기관차를 만드는 작업도 병행하였다. 그는 아들인 로버트(Robert Stephenson)와 함께 로켓(Rocket) 호를 준비했던 것이다. 그러자 스티븐슨이 자신의 기관차를 팔아먹기 위해 철도를 깔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이에 스티븐슨은 공개적인 경주대회를 개최하여 가장 우수한 기관차를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1829년 5월 1일에 리버풀-맨체스터 철도회사는 ≪리버풀 머큐리≫에 광고를 냈다. 리버풀-맨체스터 철도를 달리는 데 적합한 기관차에게 500파운드의 상금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같은 해 10월에는 ‘레인힐의 경주(Rainhill Trials)’로 알려진 기차 콘테스트가 열렸다. 이 대회에는 7량의 기관차가 참여했는데, 예심에서 4량이 탈락하고 3량이 본선에 진출하였다. 본선 경주에서 2량은 운행 도중 고장으로 탈락하였고, 결국 로켓 호가 우승의 영광을 차지하였다. 당시에 로켓 호는 승객 30명을 태운 화차를 끌고 3.2km의 경주 구간을 20회 왕복하였다. 평균 시속은 22.5km, 최고 시속은 46.6km였다.

로켓 호에는 관 모양의 기관과 연소실이 장착되어 있어 조그만 공간에서도 넓은 열 표면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직경 2m가 넘는 테두리를 한 큰 바퀴는 속도를 내는 데에도 매우 유리하였다. 이러한 로켓 호의 구조는 그 후 모든 증기기관차의 모델로 기능하게 되었다.

경영혁명의 효시[편집]

1840년대 이후에 세계 각국은 경쟁적으로 철도를 건설했다. 이른바 '철도 붐'이 생겨난 것이었다. 1840년과 1914년의 철도망을 비교해 보면, 프랑스는 410km에서 37,400km로, 독일은 469km에서 61,749km로, 영국은 2,390km에서 32,623km로, 미국은 4,510km에서 410,475km로 증가하였다. 자연적 조건에 제약을 받지 않았던 철도는 점차적으로 마차와 운하를 대체함으로써 지배적인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철도의 발달을 계기로 국내 시장의 단일화가 이루어져 지방경제는 국민경제의 차원으로 승화되었다.

철도건설은 금속, 연료, 기계 등을 대량으로 요구했기 때문에 다른 산업 부문에도 엄청난 파급효과를 낳았다. 또한 철도의 건설과 운영에는 막대한 자본과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했으며, 철도를 매개로 오늘날과 같은 근대적 대기업이 형성되었다. 19세기 후반 철도산업에서 이루어진 기업경영의 변화는 경영혁명(managerial revolution)의 효시로 평가되기도 한다.

철도산업이 확대되면서 기업간 통합이 활발히 전개되었고, 독점의 횡포를 방지하기 위한 정부의 규제법안도 제정되었다. 철도의 원활한 운영을 위하여 표준화 작업이 전개되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미국의 경우에는 1883년 11월 18일에 전국을 4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표준 시각이 정해졌다. 이와 함께 1886년부터는 철도 궤간의 크기가 모두 4피트 8.5인치로 통일되었는데, 그것은 스티븐슨의 블뤼허 호가 달렸던 킬링워스 탄광의 수레 선로 간격과 동일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는 노량진과 제물포를 잇는 경인선으로 1899년 9월 18일에 개통되었다. 이어 경부선(1905년), 경의선(1909년), 호남선(1914년), 경원선(1914년) 등이 개통되면서 전국적인 철도망이 형성되었다. 경인선이 개통된 다음 날 ≪독립신문≫은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실었다. "화륜거(火輪車) 구르는 소리가 우레와 같아 천지가 진동하는 듯하고 … 수레 속에 앉아 내다보니 산천초목이 모두 움직이는 듯하고 나는 새도 미처 따르지 못하더라."

발전과 쇠퇴[편집]

이후 증기 기관차는 철도망의 신장과 함께 철도 운송의 중추를 이루게 된다. 증기기관차는 과열증기의 도입, 연소 및 배기의 고도화, 복식(다단 팽창식) 구조 및 피스톤 수의 증가 등 각종 기술적 발전을 통해 고속화, 대형화, 강력화 되었다.

20세기에 이르러서는 2~5축의 동륜과 수 개의 종륜에 백 톤 내지 그 이상의 자중을 가지며, 수 백 마력의 힘으로 여객과 화물을 수송하기에 이른다. 1935년에 등장한 독일의 BR05형 증기기관차는 최고속도 200.4km/h를 달성한 바 있으며, 이후 영국의 A4형 증기기관차는 1937년에 5퍼밀 하구배 구간에서 최고 속도 201km/h를 유지하는 기록을 달성하여 증기 기관차로서는 최고속을 달성하였다. 한편 미국에서는 챌린저(Challenger)형이나 빅 보이(Big Boy)형, Y6b형 등 400톤이 넘는 거구에 수 천톤에 달하는 화차를 단독으로 견인하는 초대형 기관차가 등장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2차 대전은 이러한 증기 기관차의 발전 경쟁을 중단시켰으며, 1912년 경에 등장한 디젤 기관차는 점차 증기 기관차의 입지를 침식해 가기에 이른다. 2차 대전이 끝난 이후 여러 노선에서 무겁고 손이 많이 가는 증기 기관차 대신 무연, 고속, 고성능을 가진 디젤 기관차를 이용하기 시작하였으며, 따라서 점차 그 입지는 줄어들게 되었다. 증기기관차는 1950년대를 정점으로, 점차 일선에서 사라지기 시작하여 1970년 이후로 주요 산업국가에서 증기기관차를 찾아보기는 어렵게 되었다.

한편, 간선망에서 증기 기관차의 역할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지만, 증기 기관차의 독특한 동작 소음과 매연, 그리고 이미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강하게 각인되어 있었는데, 그 결과 세계 각지에서는 지선 또는 보존 철도 등지에서 관광 용도의 증기 기관차의 복원 운행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대개의 나라에서 여객과 화물 일선에 쓰이지 않게 되었지만, 증기기관차는 관광객들을 불러모으는 특별한 장치로서 그 위상을 새롭게 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증기기관차[편집]

한국에서는 1899년에 경인선 철도 개통과 함께 모가형 증기기관차가 도입된 것이 최초이며 이후, 경부선의 개통과 더불어 증기기관차의 도입은 확대된다. 이후 계속해서 다종다양한 증기기관차가 도입되며, 특히, 1920년 경 이후부터는 자체적으로 증기기관차를 조립 생산하기에 이르렀으며, 이후 기관차의 고성능화 및 급행열차 운전이 본격화되면서, 파시형 증기기관차, 미카형 증기기관차 등 대형 기관차들이 속속 도입되었다.

해방 이후 기술 부족과 경제적, 정치적 혼란 와중에서도 남은 부속과 미 군정청으로부터 지원받은 부속을 바탕으로 파시형 증기기관차 등을 추가 생산하여 여객 일선에 투입하기도 하였으나, 한국 전쟁의 발발로 인해 철도 시설은 심대한 타격을 입었으며 그 결과 기관차의 신규 생산 능력은 물론, 정비와 검사 능력 역시 크게 악화되었다. 이 당시 차량의 수급이나 확보의 어려움 때문에, 미국으로부터 수 종류의 증기기관차를 원조를 받아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후 증기기관차는 한동안 철도 교통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였으나, 점차 새로 도입되는 디젤 기관차에 의해서 그 역할은 점차 축소되었다. 증기기관차는 일반적인 디젤기관차나 전기 기관차에 비해 연비가 나쁘고 성능 면에서도 충분하지 못했으며 더욱이 대개의 차량이 중고 도입 내지는 일제 당시에 생산된 차량으로 상태가 좋지 못한 경우가 많아서 증기기관차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철도의 동력 근대화가 추진되면서 증기기관차는 1967년 8월 31일에 공식적으로 정기 열차로써의 역할은 종료하게 되었으며 이후 임시 또는 입환용 기관차로서 서서히 도태 경향을 보이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증기기관차의 전격적 폐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본선에서 은퇴한 기관차들은 이후 유사시를 대비하여 여러 대가 유지되었으며, 그런 차량 중 일부가 1981년도에 복구되어 특급 객차를 견인하는 복원 운행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의 경제여건은 더 이상 증기 기관차의 유지를 필요로 하지 않았기에 이후 복원 운행은 유지되지 못한 채 각지에 전시차량으로 전부 소진되기에 이른다. 이후 1994년에 중국으로부터 901호 증기 기관차가 도입되어 교외선에서 정기운행을 하였으나, IMF 이후 호응도가 떨어지고 차량 유지에 큰 어려움이 발생하여 폐지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북한에서는 아직도 증기기관차를 현업에서 사용하고 있다.

구조[편집]

증기기관차 구조


  • 화실
  • 재받이 상자
  • 물을 채운 보일러
  • 연실
  • 운전실
  • 텐더
  • 증기 배출구
  • 안전 밸브
  • 조절 밸브
  • 과열기(연실 내부)
  • 피스톤
  • 분사관
  • 밸브 기어
  • 조절봉
  • 추진 프레임
  • 후면 포니 트럭
  • 전면 포니 트럭
  • 베어링과 차륜 상자
  • 판스프링
  • 제동자
  • 공기 제동 펌프
  • (전면) 중앙 연결기
  • 기적
  • 모래 상자

차체[편집]

  • 운전실(Driver-cab)
  • 프레임
  • 연결기

보일러[편집]

보일러는 증기를 발생하기 위하여 물을 끓이는 장치를 말하며, 증기 기관차의 부품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초기의 증기기관차의 경우 그 형식이 다양하였으나, 점차 지금과 유사한 횡치형의 연관을 대량으로 가진 보일러 형태로 발전해 왔으며, 보일러의 증기 압력 및 온도 역시 향상되어 그 동력성능에 기여하였다.

  • 화실
  • 연관 : 연소 되면서 불꽃이 지나가는 보일러내의 관으로 관 내부로 연소 불꽃이 지나가면 연관식, 내부에 물이 지나가면 수관식으로 분류 된다.
  • 화격자
  • 증기돔 : 증기기관차의 흔들림에 따라 물(관수)이 출렁이는데 이때 증기실 의 물빨림현상[프라이밍]을 막아 준다.
  • 안전밸브 : 보일러 내의 증기압력이 초과 발생시 증기를 외부로 분출시켜 보일러 및 증기 배관의 파손을 막는 장치로 저양정식, 고양정식 전량식으로구분이 되며 종류로는 중추식, 스프링식 등이 있다.
  • 과열기(過熱機; Superheater) : 보일러에서 만들어진 증기를 재가열하여 건도가 높은 증기를 만들어 줌으로써 증기 실린더의 마모를 막아주며 더 큰 힘을 낼 수 있게 한다.
  • 연실
  • 연도(煙道)
  • 폐기 노즐(廢氣- ; Blastpipe)
  • 기적 : 증기가 끓을 때 나는, 큰 호루라기 소리를 내는 장치.

구동부[편집]

보일러에서 만들어진 증기를 직접 동력으로 전환하는 부분이다. 증기의 압력을 실린더의 왕복운동으로 전환하여 운동에너지로 바꾸고, 이를 각 차륜에 전달한다.

  • 실린더
  • 밸브 장치
  • 스티븐슨(Stephenson)식
  • 왈샤트(Walschaert)식
  • 그레슬리 복합(Gresley conjugated)식
  • 크랭크
  • 크랭크로드
  • 기어

차륜[편집]

직접 차체를 지탱하고, 차량의 구동을 한다.

  • 차축
  • 전륜(또는 선륜 혹은 유도륜)
  • 동륜
  • 후륜(또는 종륜)

그 외의 구성요소[편집]

  • 탄수차
  • 디플렉터(Deflector)

동력[편집]

동력은 그 이름 그대로 증기기관으로써 외연기관이다. 일단 무언가를 태워서 그 태운 열로 보일러를 데우고 나면, 가열된 물이 증기로 기화되어서 수증기의 압력으로 피스톤을 움직여 그 피스톤에 연결된 로드가 바퀴를 돌리는 식. 쉽게 말하면 커다란 압력솥과 화덕에다 바퀴를 달아놓은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이론상 석탄이든 뭐든 100도 이상의 열을 발생시킬 수 있는 것, 즉 물을 끓일 수 있는 온도까지 도달할 수 있는 물질이라면 뭐든지 사용이 가능하다. 석유로 가는 증기기관차도 있고, 원자로를 탑재하는 방안도 계획[6]되었지만 이쪽은 안전 문제로 취소되었다. 심지어는 가선으로 전기를 끌어들여 전기로 물을 끓이는 방식도 있으며 철도 상태가 막장인 북한에서는 목재를 태우다 지나친 벌목으로 민둥산이 너무 많아지면서 더 태울게 없어 폐타이어를 태우기도 하니 흔히 생각하는 것들 외에 다양한 연료들을 활용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초창기에는 워낙 목재가 남아돌아서 목재를 태운적도 있고, 석탄보다 석유가 더 싼 지역은 석유 증기 기관차가 많았다.

분류[편집]

증기기관차의 세부 분류는 구동 방식, 연료/물 적재 방식, 차륜 배치, 차량 구조상의 특징, 열원 등에 따라 상당히 다양한 분류가 존재하나, 엄밀한 분류체계가 자리잡은 것은 아니다. 주요한 종류는 다음과 같다.

구동방식에 따른 구분[편집]

  • 크랭크식 증기 기관차 : 차륜과 실린더가 직접 크랭크로드로 연결된 가장 일반적인 방식.
  • 기어식 증기 기관차 : 차륜의 구동을 기어에 의해서 실시하는 방식. 미국의 샤이(Shay) 형 증기 기관차 등.
  • 전기식 증기 기관차 : 20세기 초엽에 잠시 등장했던 방식으로, 발전기를 증기기관으로 구동하고, 모터로 차륜을 구동하는 방식.

연료/물 적재 방식에 따른 구분[편집]

  • 탱크식 증기 기관차 : 기관차 자체에 직접 연료와 물을 적재하는 방식.
  • 텐더식 증기 기관차 : 별도의 탄수차를 기관차에 연결하여 연료와 물을 적재하는 방식.

차량 구조상의 특징에 따른 구분[편집]

  • 수직보일러 기관차 : 초기에 관찰되는 타입으로 보일러가 통상적인 횡치형이 아닌 수직형으로 된 경우. 미국의 톰 섬(Tom Thumb)형 증기 기관차 등.
  • 프론트캡(Front-cab)형 증기 기관차 : 운전실이 기관차의 앞쪽에 돌출된 형식. 대개 탄수차와 반대방향에 기관차가 배치된 형식을 의미함.

증기터빈식 기관차[편집]

왕복피스톤 기관이 아닌, 증기 터빈을 탑재하여 구동하는 방식. 소수 존재.

프레임 구조에 따른 구분[편집]

  • 고정프레임식 증기 기관차 : 대개의 증기기관차가 해당하는 기본적인 구조로, 동륜 등이 모두 차체에 고정되어 별도로 회전하지 않는 방식.
  • 연접식(Articulated) 증기 기관차 : 동륜군이 2개 이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둘 모두 또는 하나가 회전 가능하도록 되어 있는 형식. 미국의 빅 보이(Big Boy)형 증기 기관차 등.
  • 페어리(Fairly)식 기관차 : 보일러가 양쪽으로 설치되어 있으며, 이것이 각각의 동륜군에 증기를 공급하는 방식. 각각의 동륜군은 보기 대차처럼 회전 가능하다.
  • 메이어(Mayer)식 기관차 : 페어리 식 증기 기관차와 유사하게 각 동륜군이 회전가능하나, 보일러의 설치는 일반적인 증기 기관차의 배치를 따르며, 실린더를 중앙부 쪽으로 향하게 설치한 방식.
  • 말레(Mallet)식 기관차 : 2개의 동륜군을 가지고 있으며, 이중 한 동륜군만 회전하는 구조로, 각 동륜군을 구동하는 실린더가 고압과 저압의 복식 구조로 구성되어 있는 것. 단, 레이아웃은 동일하나 실린더가 단식인 경우 단식 말레식으로 따로 분류하기도 함.
  • 개럿(Garret)식 기관차 : 2개의 동륜군이 분리되어 있으며, 이 동륜군을 연결하는 피벗 프레임 상에 보일러가 탑재되는 방식. 종종 각 동륜군 위에 연료와 물이 탑재되기도 함.
  • 트리플렉스(Triplex)식 증기 기관차 : 3단연접식 증기 기관차. 동륜군 3개를 가진 방식.

실린더에 따른 구분[편집]

실린더의 구조에 따라서

  • 단식 실린더 : 증기의 팽창을 1회만 활용하는 구조인 경우.
  • 복식 실린더 : 증기의 팽창을 2회 이상 활용하는 구조인 경우.

실린더의 숫자에 따라서

  • 1-실린더식 : 하나의 실린더만 설치되어 있는 방식으로, 중앙 또는 측방에 설치되어 있는 구조. 매우 드문 형태로, 옛 광업용 기관차 등에서 확인된다.
  • 2-실린더식 : 차량의 좌우측에 실린더가 배치되어 있는 방식. 가장 흔한 형태.
  • 3-실린더식 : 기관차 중앙에 추가로 중앙 실린더를 1개 추가한 방식. 유럽 등의 고성능 증기 기관차에 발견된다.
  • 4-실린더식 : 중앙 실린더를 좌우 2개로 나누어 설치한 방식. 가장 복잡한 형태.

과열기 장착 여부에 따른 구분[편집]

  • 포화증기식 : 과열기 장착 없이 단순히 끓어오른 증기만을 사용하는 방식. 초기 방식으로 간단하나 응축 현상으로 인해 효율이 떨어진다.
  • 과열증기식 : 과열기를 통해 증기를 과열증기로 전환하여 사용하는 방식. 성능이 좋아지나, 보일러의 압력 증가나 과열 발생의 위험이 있다.

열원에 따른 구분[편집]

  • 목탄 또는 임업 부산물
  • 석탄
  • 유류
  • 전기 : 스위스등 일부 유럽지역에서 외부급전으로 전기를 받아다 물을 끓여 운행하는 전기증기기관차가 운행한 적이 있음.
  • 원자력 : 이 방식을 채택한 실차량은 없으나, 구상 수준에서 검토된 적은 있음.

종류[편집]

한국의 증기 기관차[편집]

한국의 증기 기관차는 전부 고정 프레임 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연접 구조 등과 같은 특별한 시스템이 사용되지는 않았다. 텐더식 기관차와 탱크식 기관차가 혼용 사용되었는데, 후기로 갈수록 장대화와 중량화가 진행되어 텐더식의 대형 증기 기관차가 점차 널리 사용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여객용으로 소리형과 파시형이, 화물용으로 미카형이, 근거리 여객용으로는 푸러형이 널리 사용되었고, 협궤 구간에서는 혀기형 증기 기관차가 사용되었다. 한국에서 운행했던 증기 기관차의 목록은 아래와 같다.

  • 모가형 증기 기관차
  • 4륜형 증기 기관차
  • 푸러형 증기 기관차
  • 아메형 증기 기관차
  • 터우형 증기 기관차 : 보존중
  • 발틱형 증기 기관차
  • 고로형 증기 기관차
  • 사타형 증기 기관차
  • 소리형 증기 기관차 : 미국에서 보존중
  • 마터형 증기 기관차 : 보존중
  • 파시형 증기 기관차 : 보존중
  • 혀기형 증기 기관차 : 보존중
  • 미카형 증기 기관차 : 보존중, 섬진강에서 이 차량을 모티브로 한디젤 기관차가 운행중.
  • 900호대 증기 기관차 : 보존중

장단점[편집]

증기 기관차는 다음과 같은 장단점을 가진다. 현재, 장점보다 단점이 크기 때문에 일선 현행 운송업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으며, 주로 관광용으로만 사용하고 있다.

장점[편집]

  • 증기기관차는 그 연료의 품질, 종류에 관계없이 물을 끓일 수 있을 만큼의 열이 된다면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석탄 외에 원유나 경질유, 또는 중유, 벙커C유 등 다양한 유종을 사용할 수도 있으며, 심지어 목탄이나 임업 부산물 역시 사용할 수 있다.
  • 증기기관차에서 발생되는 따뜻한 증기를 통해 객차의 난방을 해결할 수 있다.

단점[편집]

증기기관차는 동시에 여러 단점을 가진다.

  • 연료가 가진 에너지의 10% 이하만이 동력으로서 이용된다.
  • 보일러를 점화하고 물이 끓어 기관차가 움직일 때까지 장시간이 걸린다.
  • 디젤기관차에 비해서 항속거리가 짧으며, 이로 인해 잦은 기관차 교체나 재보급 시간이 필요하다.
  • 증기기관차는 잦은 점검 주기를 가지는 등 유휴 시간이 많다(사용 효율이 낮다).
  • 승무원 또는 보수, 수선하는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연기 또는 재로 인한 불편이 크다.
  • 승무에 투입되는 인원이 많아(3~5명 가량 투입) 인건비가 많이 든다.
  • 그외 전반적인 노동환경이 불량하다.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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