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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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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慘事)란 비참하고 끔찍한 일을 말한다.[1]

내용[편집]

참사란 비참하고 끔찍한 일, 특히 다수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불행한 재난을 의미한다.

사건보다는 사고에 가까우나 굳이 대치한다면 양 단어 모두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사건과 사고를 명확하게 구분해야 하는 정부 기관 등의 기록에는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일반인들이 보기에 비참하고 끔찍한 사고를 명명할 때 통칭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와 2022년 이태원 압사 사고에 대해 통상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라고 부른다.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처럼 참사가 붙는 때도 있다.

비유적 표현으로 예능 같은 데서 충격적인 장면이 나오게 되면 보통 참사가 일어났다고 표현하는 때도 있다.

또한, 스포츠에서 예상치 못한 결과, 강팀이 약팀에게 참패해도 이런 표현을 쓰며 도하 참사나 고척돔 참사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언론 쪽에서도 참사나 쇼크란 말을 종종 사용한다. 비극도 무방하다. 대패와는 다소 용례가 차이 날 수 있는데, 대패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의미를 담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참사보다는 쇼크로 쓰는 쪽이 많아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참사라면 '상당한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상황'을 연상시키기 쉬운데, 아무리 비유적인 표현이라지만 스포츠에서의 승패를 표현하는 데 쓰기에는 지나치게 과장된 표현이기 때문이다.

대참사

일반적인 참사보다 더 영향력이 크거나, 엄청난 인명피해가 생긴 사건이 발생 하였을 때에 쓴다.

역대급 참사[편집]

삼풍백화점 붕괴[편집]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2분경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에 있던 삼풍백화점이 붕괴한 사고로, 건물이 무너지면서 1,445명의 종업원과 고객들이 다치거나 사망했으며, 인근 삼풍아파트, 서울고등법원, 우면로 등으로 건물의 파편과 잔해, 먼지가 날아들어 주변을 지나던 행인 중에 부상자가 속출했고 수많은 재산상, 인명상 손해를 끼쳤다. 그 후 119구조대, 경찰, 서울특별시, 대한민국 국군, 정부, 국회까지 나서 범국민적인 구호 및 사후처리가 이어졌다.

사망자는 502명, 부상자는 937명이며 6명은 실종되었다. 피해액은 약 2700여억 원으로 추정된다.

건물 붕괴는 사실상 예견됐었다. 붕괴 전부터 건물 전반에서 위험한 조짐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삼풍백화점이 건축되던 80년대 후반엔, 분당과 일산 등 1기 신도시 건설에 따른 자재난 파동이 있었다. 중국산 저질 시멘트 사용을 비롯한 콘크리트 배합, 철근 배합을 제대로 하지 않은 부실시공의 징후는 건물이 붕괴하면서 성냥개비처럼 맥없이 꺾이고 만 콘크리트 기둥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1993년에는 삼풍백화점 옆의 레포츠센터 2층에 있었던 금융동(당시의 한미, 조흥은행 등)을 1층으로 옮기고 내부공사 후 삼풍문고라는 이름의 서점으로 1994년 1월 5일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 어마어마한 서적들 때문에 레포츠센터와 중앙홀 지역에서도 균열이 1995년 사고 때까지 1년 동안 셀 수도 없이 늘었다. 결국, 삼풍백화점 총관리부는 1995년 3월 2일 서점을 철수했다. 하지만 이미 생긴 균열은 점점 늘어났고, 중앙홀과 B관(스포츠센터)의 건물에 균열과 뼈대 구부러짐 현상이 일어나자 백화점 건물 전체가 서서히 기울어지기 시작했으며 붕괴일인 6월 29일경에 최고정점에 이르렀다.

1995년 4월에는 5층 북관 식당가 천장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5월부터는 이 균열에서 모래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5층 바닥은 서서히 내려앉기 시작했다. 건축 전문가 일각에선, 부실시공과 함께 구조물의 역학 관계를 정확히 고려한 설계상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지만, 매장 면적을 넓히기 위해 기둥을 적게 세웠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사건 당일 오전에 목격자들의 증언을 살펴보면, 당시 붕괴 원인으로 인한 사태의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다.[2]

세월호 침몰[편집]

세월호 침몰 사고(歲月號沈沒事故)는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0분경 대한민국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부근 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전복되어 침몰한 사고이다. 4·16 세월호 참사(四一六歲月號慘事) 혹은 세월호 참사(歲月號慘事)로도 불린다. 세월호는 안산시의 단원고등학교 학생이 주요 구성원을 이루는 탑승 인원 476명을 수용한 청해진해운 소속의 인천발 제주행 연안 여객선으로 4월 16일 오전 8시 58분에 병풍도 북쪽 20km 인근에서 조난 신호를 보냈다.

2014년 4월 18일 세월호는 완전히 침몰하였으며, 이 사고로 시신 미수습자 5명을 포함한 304명이 사망하였다. 침몰 사고 생존자 172명 중 절반 이상은 해양경찰보다 약 40분 늦게 도착한 어선 등 민간 선박에 의해 구조되었다. 3년 동안 인양을 미뤄오다가 2017년 3월 10일 제18대 대통령 박근혜가 파면되고 12일 후인 2017년 3월 22일부터 인양을 시작했다. 2017년 3월 28일 국회에서 세월호 선체조사위원선출안이 의결되었다. 총 476명의 승선 인원 중 172명이 구조되어 36.1%의 생존율이 기록되었다.[3]

대구 지하철 화재[편집]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大邱地下鐵火災慘事)는 2003년 2월 18일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에서 김대한의 방화로 일어난 화재 참사이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명 피해가 큰 철도사고로 1995년 바쿠 지하철 화재, 1995년 대구 상인동 가스 폭발 사고와 함께 세계 3대 최악의 지하철 사고로 꼽히며 전 세계 철도 화재 사고로는 1995년 바쿠 지하철 화재에 이어 인명피해 수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일명 대구 지하철 참사, 2.18 참사, 김대한 방화 사건으로 불리기도 하며 이로 인해 2개 편성 12량(대구도시철도 1000호대 전동차, 118편성 1079열차, 130편성 1080열차)의 전동차가 모두 불타고 뼈대만 남았으며 192명의 사망자와 21명의 실종자 그리고 151명의 부상자라는 대구 상인동 가스 폭발 사고와 삼풍 백화점 붕괴사고 이후 역대 최대 규모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또한, 중앙로역도 완전히 전소되어 2003년 12월 30일까지 복구를 위해 10개월 동안 영업을 중지했다.[4]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참사〉, 《네이버국어사전》
  2.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위키백과》
  3. 세월호 침몰 사고〉, 《위키백과》
  4.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위키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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