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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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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교통(鐵道交通)은 철도교통로로 하여 이루어지는 통신이나 수송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1]

개요[편집]

철도의 탄생은 16세기 중반에 출현했던 말이 끄는 광산용 수레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철도 기술(rail technology)이 탄생된 시기는 19세기 초로 보아야 할 것이다. 영국의 발명가 리처드 트레비식(Richard Trevithick)은 1804년에 증기로 운행이 가능한 최초의 기관차를 선보였다. 그리고 1830년 경에는 승객 운송을 목적으로 한 증기 기관차가 세계 최초로 운행되기 시작했다. 이 증기 기관차는 승객들을 태우고 잉글랜드의 리버풀에서 맨체스터까지 45킬로미터의 거리를 달렸다.

철도가 미국으로 전해져서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830년대의 일이었다. 1835년경에는 160킬로미터 이상의 철도가 건설되었으며, 19세기 중반에는 미시시피 동쪽의 모든 주에서 철도가 운행, 또는 건설되고 있었다.

이주민들이 조금씩 서쪽으로 옮겨가기 시작하면서, 1850년에는 미국 연방의회에서 철도 개설을 위한 토지의 사용을 허가해 주기 시작했다. 남북전쟁 당시의 철도와 증기 기관차를 이용한 병력 이송, 그리고 물자 운송 능력은 북부 연합이 남부동맹군에 비해서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그 기간 동안에 시작된 것이 최초의 대륙횡단 철도공사였다.

중국과 유럽에서 몰려든 이민자들과 남북전쟁의 참전용사들이 1869년 5월까지 진행된 이 작업에 참여했으며, 동부 지역에서 서쪽으로 향하던 유니언 퍼시픽 철도(Union Pacific Railroad)와 서부 지역에서 동쪽으로 향하던 센트럴 퍼시픽(Central Pacific) 철도가 유타 주의 프로몬토리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이로써 최초의 대륙횡단 철도가 완성된 것이다. 1916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인 시베리아 횡단 철도(Trans-Siberian Railroad)가 완공되었고, 그 길이가 무려 9,334 킬로미터에 달하며, 총 공사기간은 25년이었다.

19세기 후반에는 엔지니어들이 점차적으로 기차의 성능을 향상시켜 좀 더 빨리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1893년에 미국에서 만들어진 증기 기관차 999호는 처음으로 100마일, 즉 시속 160킬로미터의 속도로 달렸다. 1920년대에 디젤 전기 기관차가 소개되었고, 연료 효율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유선형의 디젤 전기 기관차인 제퍼Zephyr는 시카고와 덴버 사이를 시속 120킬로미터 이상의 속도로 달리면서 당시로서는 놀라운 속도를 기록했다.[2]

철도의 일반 영업이 시작된 이래 중요한 육상교통기관으로서 세계적으로 보급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 자동차나 항공기 등 새로운 교통기관의 보급으로 인해 운영의 재편성이 불가피해지고 있다. 철도교통의 장점은 많은 여객·화물을 고속 수송할 수 있으며, 자동차보다 값싼 운임으로 장거리수송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편, 소단위의 수송에는 알맞지 않고, 단거리 화물수송에서는 종단운수(終端運輸) 비용이 증대하기 때문에 불리하다. 철도교통이 다른 교통기관에 비해 유리한 분야는 대도시간의 여객·화물의 수송, 대도시 및 주변의 여객수송, 중공업지역 및 탄광·광산의 화물수송 등이다.[3]

대한민국 철도교통[편집]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

2019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철도의 총연장은 4,274.2㎞이고, 728개의 역이 설치되어 있다. 차량보유 현황은 고속차량(KTX) 1,630대, 기관차 429대, 동차 2,849대, 객차 821량, 화차 1만 359량이다. KTX의 운행과 더불어 일반 기관차·동차·객차는 감소 추세에 있다.

철도의 화물수송이 감소하면서 화차도 1990년대 이후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반면 대도시를 중심으로 도시철도가 활성화됨에 따라 전동차는 많이 증가하였다. 철도의 여객수송량은 2000년에 8억 3727만 명에서 2019년에는 16억 2802만 명으로 증가하였고, 지하철은 22억 3522만 명에서 27억 2,625만 명으로 증가하였다.

그러나 전체 교통수단에서 차지하는 분담률은 2000년대 들어 감소 추세를 나타내었다. 수송분담률은 2000년에 6.2%를 차지하였다가 2010년에 8.2%까지 상승하였지만, 이후 감소하여 2011년에는 3.8%를 기록하였다. 지하철의 수송분담률은 2000년에 16.5%에서 2011년에는 8.0%로 감소하였다. 이처럼 철도부문의 수송분담률이 감소한 원인은 2011년부터 공로를 이용한 여객수송이 급증하였기 때문이다.

여객 수송분담률을 인-㎞로 환산하면 철도의 수송분담률은 2000년의 21.5%에서 2011년에는 8.8%로 감소하였고, 지하철은 15.8%에서 6.3%로 감소하였다. 화물수송량은 2000년의 4524만 톤에서 2011년에는 4001만 톤으로 감소하였으며, 수송분담률은 6.7%에서 5.1%로 줄어들었다.

여객의 수송실적은 매년 증가하여 1990년에 6억 4481만 명을 수송하였는데, 2011년에는 11억 1862만 명을 수송하였다. 수송 여객의 89.1%인 9억 9685만 명은 수도권 전철을 이용한 여객일 정도로 수도권에서의 여객수송량이 많았다. 수도권 전철을 제외한 노선에서는 경부선의 수송 여객이 전체의 68.2%로 가장 많았으며, 그 뒤를 호남선, 장항선, 중앙선, 전라선의 순으로 나타났다.

화물의 수송실적은 1991년을 정점으로 감소 추세를 나타내다가 2009년 이후 다시 증가추세로 전환되었다. 1991년의 화물수송량은 6121만 톤에서 2009년에 3890만 톤으로 감소한 후 2011년에는 4001만 톤으로 소폭 증가하였다. 화물수송량이 많았던 1991년까지는 석탄 수송량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였지만, 이후 석탄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1992년부터는 시멘트 수송량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그다음으로 컨테이너, 석탄, 잡화 등으로 비중이 작아진다.

노선별로는 중앙선을 이용한 화물수송량이 가장 많으며, 그 뒤를 태백선, 남부화물선, 영동선, 경부선이 잇고 있다. 1990년에는 전체 화물수송량에서 석탄의 비중이 33.9%로 가장 높았고, 양회(시멘트) 24.4%, 잡화 10.6%, 컨테이너 4.4%를 기록하였다. 즉 컨테이너보다 유류나 광석의 비중이 더 높다.

2011년에는 시멘트가 36.7%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였으며, 컨테이너 29.2%, 석탄 13.2%, 잡화 10.0% 등의 순으로 변화하였다. 광석과 유류의 비중은 5%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러한 변화는 국내 건설경기가 활발해짐에 따라 건축재인 시멘트의 수송량이 증가하였고, 해외무역의 활성화로 규격화된 컨테이너의 물동량이 증가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KTX 개통 이후, 수도권∼부산 간의 철도수송 분담률은 38%에서 69%로 증가하였고, 항공수송 분담률은 32%에서 15%로 감소하였다. 한편 전국 인구의 90% 정도가 총연장 938㎞에 41개 정차역의 인프라를 갖춘 KTX 수혜 범위 내에 거주한다는 견해도 있다. 고속철도는 수도권의 인구분산에도 영향을 끼쳐, 수도권에 인접한 대전 및 충청지방의 인구가 증가한 반면 수도권의 인구증가는 주춤해졌다.[4]

각주[편집]

  1. 철도교통〉, 《네이버국어사전》
  2. 기차〉, 《네이버 지식백과》
  3. 철도교통〉, 《네이버지식백과》
  4. (철도(鐵道)〉,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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