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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스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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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스 (킬링) 제도 국기

코코스제도(Cocos Island)는 인도양의 2개 환초와 27개 산호섬으로 이뤄진 제도로 오스트레일리아의 영토이다. 정식 국가명은 코코스 (킬링) 제도(영어: Territory of Cocos (Keeling) Islands, 말레이어: Wilayah Kepulauan Cocos (Keeling))로서, 가운데 부분에 괄호를 열고 (킬링)이라고 추가한다. "킬링"은 이 섬을 최초로 발견한 영국인의 이름이다. 코코스제도는 웨스트섬, 홈섬, 사우스섬, 디렉션섬, 호스버그섬, 노스킬링섬 등의 27개의 산호초로 구성된 섬이고, 오스트레일리아령 제도이다. 코코스제도는 인도양오스트레일리아스리랑카의 중간에 있다. 인구는 약 500여명이고, 오스트레일리아가 방위하며, 자체적으로 5명의 경찰관이 상주한다.

개요[편집]

  • 수도: 웨스트섬
  • 면적: 14km²
  • 인구: 544명
  • 공용어: 영어, 코코스 말레이어
  • 정치체제: 입헌군주제 국가의 해외영토
  • 국가 원수: 엘리자베스 2세

역사[편집]

무인도였던 이 섬은 1609년 영국의 W. 킬링(Keeling)이 처음 발견하여 '킬링' 이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그 뒤 버려져 있었다.

1814년, 스코틀랜드의 상인 존 클루니스-로스(John Clunies-Ross)는 인도로 가는 도중 이 섬에 상륙하여 유니언 잭을 꽂고, 장차 이 섬에 가족들과 정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떠난다.

그런데 향료무역업자 알렉산더 헤어(Alexander Hare)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1825년, 그는 선장을 고용하여 자신과 여성 40명을 싣고 코코스 제도로 가게 했다. 헤어는 이 무인도에 하렘을 건설하려던 것이었다. 여성은 말레이인이 대부분이었지만, 중국인, 인도인, 심지어 흑인도 있었다고 한다.

2년 뒤에 클루니스-로스가 아내와 아이들, 장모를 데리고 섬에 와 보니 이미 헤어는 자기의 하렘을 건설한 뒤였다. 클루니스-로스와 헤어는 섬을 둘러싸고 서로 반목하게 되고, 클루니스-로스를 따라온 8명의 선원은 "이렇게 된 바에야 섬과 여자들을 빼앗아 버리자!"고 결의했다.

불리해진 헤어는 여자들을 데리고 프리즌 섬에 틀어박혔지만, 프리즌 섬은 썰물 때면 다른 섬과 연결되기 때문에 하렘의 여인들은 클루니스-로스 일당의 보호를 바래 도망치거나, 클루니스-로스의 부하들이 빼앗아가거나 했다. 하렘의 여성들을 모두 빼앗긴 헤어는 1831년 섬을 떠나 자바섬에서 죽고 말았다. 그 뒤로 5대에 걸쳐 클루니스-로스 가문이 이 섬의 영주 노릇을 한다.

1857년 해협식민지의 일부로서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독일제국의 방호순양함 SMS 엠덴이 인도양 통상파괴 작전을 실시하며 영국의 해운을 마비시키던 도중, 이곳에 들러 중계소를 파괴하려다가 호주군의 순양함에 의해 격침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연합군의 항공기지가 되기도 했다. 이후에는 싱가포르 식민지의 일부가 되었다가 1955년에는 호주의 보호령이 되었다.

이전의 코코스 제도는 클루니스-로스 가문의 영지로, 말레이인 '농노'들은 영주의 허락 없이는 섬을 나가는 것이 불가능하다시피 했다.

1973년 코코스 제도를 방문한 UN 시찰단은 호주 정부에게 1인 지배하에 놓여있는 코코스 제도를 매수하도록 권고했고, 결국 1978년, 5대째 영주 존 세실 클루니스-로스(John Cecil Clunies-Ross, 1928년생)는 625만 호주 달러에 코코스 제도를 사실상 강제로 매각해야만 했다. 1986년에 그는 파산하여 이 섬을 떠났다. 현재 6대는 존 조지 클루니스-로스로 1957년생이며 더이상 코코스 제도에 대한 소유권은 없고 코코스 제도(諸島) 서쪽 섬에서 조개 양식을 하며 아내와 두 아들과 먹고 산다.

백인이 다수인 서쪽 섬 주민 일부는 제도(諸島)에 대한 호주 정부의 무관심에 실망하여 클루니스-로스 가문 통치를 바란다고는 하지만 제도 주민 다수 여론은 아니다. 오히려 제도(諸島) 주민 다수 말레이계 주민은 1978년 클로니스-로스 가문 통치 종식을 환영했고 지금도 클로니스-로스 가문에 대한 반감이 남아있다고 한다.

정치[편집]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섬이지만, 정치적으로 코코스 섬은 해외 영토가 가지고 있을 법한 수준의 자치권은 없다. 연방정부의 총독이 지정한 행정관(administrator)이 섬을 대표하며, 행정적으로 호주의 6개 주와 기타 준주에 속하지는 않으나 1958년 이래 이 지역에는 연방법과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 주법이 적용된다.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 주 정부는 연방정부와의 협의에 따라 크리스마스 섬에 여러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비용은 연방정부에서 대준다.

아울러 Shire라 하는 7명의 현지 단원제 의회가 있으며, 의회에서 선출된 총리가 내정을 담당하기는 하나 그 권한은 그리 크지 않다. 이 의회는 세계에서 제일 규모가 작은 의회이다.

호주 국적을 가진 코코스 제도 주민은 연방선거에서도 선거권 및 피선거권을 갖는데 국회의원 선거구를 노던 준주와 공유한다.

지리[편집]

코코스(키링) 제도는 14.2km², 26km의 해안선, 5m의 가장 높은 고도, 코코넛 야자나무와 다른 초목들로 두껍게 덮여 있는 두 개의 평평한 저지대 산호초로 구성되어 있다. 기후는 일년 중 약 9개월 동안 남동쪽 무역풍으로 온화하고 적당한 강우량을 가진 쾌적한 기후다.

노스킬링 섬은 동쪽에 있는 약 50m 폭의 석호로 들어가는 작은 구멍이 있는 거의 닫힌 환초 고리인 C자 모양의 섬 한 개로 이루어진 환초이다. 이 섬은 면적이 1.1km²에 달하며 사람이 살지 않는다.석호는 약 0.5km²이다.1995년 12월 12일 설립된 풀루 킬링 국립공원에서 해안에서 1.5km 떨어진 노스킬링섬과 주변 바다.이곳은 멸종 위기에 처한 코코스 버프 밴드 레일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개체군의 본거지입니다.

사우스킬링 제도는 불완전한 환초 고리를 형성하는 24개의 개별 섬으로 구성된 환초이며, 총 육지 면적은 13.1km²이다.

주민[편집]

주민은 600여 명으로, 유럽인 주민 100여 명은 서섬(西島 West Island)에, 말레이인 주민 500여 명은 홈 섬(Home Island)에 산다. 기타 자바인중국인도 산다.

말레이어영어가 사용되며,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말레이인은 주로 수니파 이슬람교도이다. 주민 다수가 이슬람교도여서 홈 섬(Home Island)에 3개의 모스크가 서섬(西島 West Island)에 1개의 모스크가 있다.

지도[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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