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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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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철교(漢江鐵橋) 가로로 본 모습
한강철교(漢江鐵橋) 세로로 본 모습
한강의 다리

한강철교(漢江鐵橋)는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촌동(용산역)과 동작구 노량진동(노량진역)을 잇는 길이 1,110m의 철도 전용 교량이다. 한강에 건설된 최초의 다리로 총 4개의 교량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간은 '용산구 이촌동 172-1'번지 쪽 도로부터 노들로 쪽 까지이다. 1897년 3월에 착공하여 1900년 7월에 준공되었다. 관리는 전구간 한국철도공사 서울본부에서 담당한다.

역사[편집]

1896년, 경인선 철도 부설권을 획득한 미국인 제임스 모스의 주도로 한강을 건너는 철도교의 건설이 1897년에 시작되었다. 착공 이후 자금난과 일본측의 압력에 위협을 느낀 모스는 철교 부지의 토목공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부설권을 일본측에 넘겼고 1900년 7월 5일 제1철교(A선)가 완공되었다. 서울에서 인천까지 육로로 12시간, 배편으로는 8시간 정도 소요되었으나 경인선과 한강철교가 완공되면서 기차로 2시간 이내로 도착할 수 있게 되었다.

한강철교가 건설된 자리는 조선시대 까지만 하더라도 나룻터가 있던 자리였고, 철교가 완성된 이후에도 일본에 대한 반감으로 나룻배를 이용하여 한강을 건너던 조선인들이 상당히 많았다. 제임스 모스는 한강철교와 인도교를 나란히 건설할 계획이었으나, 부설권을 넘겨받은 일본은 인도교를 건설하지 않았다. 대신 1917년 한강철교 상류 지점에 인도교(지금의 한강대교)를 건설하였다.

1905년, 경부선이 개통하면서 열차 통행량이 늘어나게 되었고 기존의 단선 철교로는 늘어난 통행량을 감당하기 어려워 복선화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제1철교 상류방향에 새로운 철교를 건설하기 시작하여 1912년 제2철교(B선)가 개통하였다. 1913년에는 거더 강재를 보강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1925년 7월 발생한 기록적인 홍수(을축년 대홍수)로 제1철교와 제2철교의 구조물이 크게 파손되거나 유실되는 피해를 입었고, 이후 복구작업을 진행하면서 기존보다 교각과 제방의 높이를 약 1m정도 증설하여 재개통하였다. 1944년에는 제1철교의 하류 방향에 제3철교(C선)가 개통되어 한강을 건너는 열차의 통행량이 크게 증가되었다.

1950년 6월 25일,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한강철교도 전화에 휘말리게 되었다. 전쟁 발발 2일이 지난 6월 27일 저녁, 이승만을 비롯한 정부요인들은 몰래 한강철교를 건너 대전으로 피난하면서 미리 녹음한 라디오 방송을 통해 서울에 남아있던 시민들에게 국군이 인민군을 물리칠테니 안심하고 서울에 머물러 있어달라는 담화문이 흘러나왔다. 대통령의 라디오 담화 여파로 서울 시민들은 피난을 주저하게 되었는데, 다음날인 6월 28일 작전상의 이유로 예고도 없이 3개의 철교를 모두 폭파하였다. 따라서 영문도 모르고 서울에 남아있던 시민들과 한강 이북의 국군은 퇴로가 차단되어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

1951년,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국군과 UN군은 서울수복 작전을 실행하기에 앞서 폭파된 한강철교를 복구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미군 공병대는 우선적으로 1951년 4월부터 제1철교(A선)에 대한 복구작업을 진행하여 6월 임시복구를 완료하였고, 제2철교(B선)는 1952년 2월에 임시복구를 완료하고 재개통하였다. 남아있던 제3철교(C선)은 1952년 10월 복구를 시작하여 1957년 7월 완전하게 복구하여 복선 철도교로 재개통하였다. C선 재개통 이후 기존에 임시로 활용하던 A선과 B선은 사용을 중지하게 되었다. 이후 시간이 흐른 1966년, 정부 주도로 한강복구사업을 진행하면서 경인선 복선화와 함께 방치되고 있던 A선과 B선에 대한 재시공을 결정하였다. A,B선의 복구작업은 1967년 8월 28일 착공하여 1969년 6월 28일 공사를 마무리하고 재개통하였다.

이후 1974년 개통한 수도권 전철 1호선의 수요와 운행거리가 늘어나게 됨에 따라 선로용량 확보 차원에서 A선과 C선 사이의 공간에 새로운 복선철교를 건설하기 시작하여 1994년 12월, D선이 개통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한강철교가 자리잡게 되었다.

현재는 교각을 대대적으로 보수하여 옛날 공사의 흔적이 거의 사라졌다.

연혁
  • 1897년 03월 29일: 기공식
  • 1900년 07월 04일: A선 준공 (익일 개통)
  • 1912년 09월: B선 개통
  • 1944년 08월 01일: C선 개통
  • 1950년 06월 28일: 한국 전쟁으로 A·B·C선 폭파
  • 1957년 07월: C선 복구
  • 1969년 06월: A·B선 복구
  • 1994년 12월: D선 개통

구조 및 특징[편집]

전형적인 트러스 공법으로 건설된 교량이다. 특이사항은 4개의 철교 모두 철제 트러스 구조물이 남단과 북단에 모두 설치된 것이 아니라 남단부터 한강의 2/3 너비만큼만 설치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트러스 구조물의 형태도 A,B선은 전형적인 박스형 구조물이라면, C선과 D선은 연결부위가 삼각뿔 형태로 솟아있다는 차이가 있다.

한강에 건설된 최초의 교량이라는 역사적 의미와 함께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의 상징과 같은 건축물임을 감안하여 2006년 6월 10일 대한민국 국가등록문화재 제250호로 지정되었다. 비교적 최근에 건설된 D선을 제외한 A,B,C선이 해당된다.

현재 이용하는 열차는 각 선별로 아래와 같이 구분된다.

  • A선: 경부3상선, 수도권 전철 1호선 용산급행·특급
  • B선: 경부3하선, 수도권 전철 1호선 동인천급행·특급
  • C선: 경부1선, KTX, KTX-산천, ITX-새마을, 새마을호, 무궁화호, 수도권 전철 1호선 지상 서울역 - 천안·신창 급행
  • D선: 경부2선, 수도권 전철 1호선 완행열차, 천안급행, 청량리급행

교량은 트러스 구조로 되어 있으며, A선, B선, C선은 무도상 교량이고 D선은 도상교량이다.

B선 북단에서 용산삼각선이 분기하고 그 직전에 A선에서 B선으로 옮겨탈 수 있는 건넘선이 있다. 경부선을 따라 올라오다가 경원선으로 진입하는 열차는 B선으로 한강철교 북단까지 온 뒤, 한강철교 위에서 신호를 기다려 평면교차를 통해 용산삼각선을 따라 경원선으로 진입한다. 따라서 경부선 일반열차 선로를 따라 올라오는 열차는 영등포역에서 평면교차로 1호선 급행 선로로 바꿔탄다. 선로 구조상 노량진역에는 바꿔탈 수 있는 건넘선이 없기 때문이다.

B선은 중간에 굽어지는 곡선이 있어 지나가는 열차는 무조건 서행한다. 1호선 동인천 급행의 용산 - 노량진 소요시간은 이 때문에 D선으로 강을 건너는 완행보다 더 걸리며 간혹 완행이 급행을 추월하는 하극상도 생긴다.

문화재 지정[편집]

2006년 6월 10일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제250호로 지정되었다.

1900년에 건립된 제1철도교(A선)는 우리나라 최초의 철로인 경인철도 건설시 건립된 한강 최초의 다리이다. 이후 1912년에 제2철도교(B선)가, 1944년에 제3철도교(C선)가 건립되었다. 규모 및 구조는 제1철도교가 폭 5.6m, 길이 1,113.6m의 단순 와렌(warren) 트러스, 제2철도교는 폭 5.6m,길이 1,110.07m의 단순 와렌(warren) 트러스, 제3철도교는 폭 10m, 길이 1,113m의 연속 더블 와렌(warren) 트러스 구조이다. 6·25전쟁으로 세 교량 모두 폭파된 것을 1957년에 제3철도교를, 1969년에 제1, 2철도교를 복구하여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식민지배와 수탈에 이용된 현장이었다는 점, 6·25 전란의 고난을 상징하는 점 그리고 산업·경제발전과 교통혁명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시설물로 역사적, 건설사적, 교량사적 가치가 있다.

기타[편집]

  • 1969년 제1, 2철도교를 복구하면서 기존 트러스 구조물을 전면 교체하였는데, 이 중 일부는 전라남도의 완도대교 가설 공사에 사용되었다. 이렇게 가설된 완도대교는 한강철교를 꼭 빼닮은 모양으로 1968년에 개통되어 완도군 교통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 이후 1985년까지 사용되다가 2012년 신완도대교 개통으로 철거되었다.
  • 2015년 12월 10일 철교 남단 부근에서 불발탄이 발견되어 11일 새벽에 해체작업을 했다. 6.25 전쟁때 미군이 사용하였던 AN-M65 폭탄이다. 2016년에도 발견된 적 있다.
  • 전체 구간 중 트러스교가 차지하는 길이가 반밖에 안 되는데, 예전에 한강 폭이 절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 시절엔 노들섬도 섬이 아니었고, 노들섬 북쪽은 모래사장이었다.
  • 한국형 철도 시뮬레이터인 Hmmsim Metro에서 거의 완벽하게 구현되어 있다. 게임에서 구현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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