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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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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라산

호라산(Khorasan 또는 khurasan 페르시아어: خراسان)은 이란 북동부의 역사적 지역이다. 지금의 투르크메니스탄 대부분과 아프가니스탄 북부, 타지키스탄도 포함시킨다. 때때로 대호라산(大호라산, greater khorasan/greater khurasan)이라고도 불린다. 호라산의 뜻은 "태양의 땅"이다.[1][2] 호라산 지역은 넓은 의미에서 튀르키스탄 지역에 속한다.

개요[편집]

호라산은 중앙아시아와 중동을 잇는 사이 지역으로 고대에 옥수스 강이라고 불리는 아무다리야 강 남부에 위치한다. 오리엔트, 레반트, 조선, 일본 광의의 개념에서 아무다리야강 너머의 중앙아시아 동서 교역의 중심지 트란스옥시아나, 호라즘, 페르가나 등을 포함하기도 한다. 중세 이슬람 제국 시기에 이란 문화를 보존하고 실크로드 무역으로 번영함과 동시에 유목 민족들의 수차례 침공을 겪은 역사적인 지역이다. 전통적인 중심 도시는 메르브와 니샤푸르였다.

이란 동부(동북부)와 아프가니스탄 서부, 투르크메니스탄의 대부분을 포함하는 지역이다. 호라산 위에는 오늘날의 우즈베키스탄 지역이 있다. 고대 청동기 시대에는 아리아계 정주 농경민들이 중추가 된 박트리아-마르기아나 문화가 번영한 것을 시작으로 파르티아 제국, 압바스 왕조를 비롯한 굵직굵직한 나라들이 걸음마를 뗀 지역이며 스키타이족, 그리스인, 페르시아 타지크족, 아랍인, 튀르크인들이 이 지역에 여러 왕조들을 세우기도 했다. 호라산이라는 행정구역 자체는 6세기 사산 제국의 카바드 1세 혹은 호스로 1세에 의해 설립된 이래로 이슬람 정복 후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이 지역에 들어온 아랍인 정복자들은 빠른 속도로 호라산의 이란-중앙아시아 문화에 동화되었으며 이들 페르시아화된 아랍인들이 아바스 왕조의 건국 세력이 된다. 9세기 중반에 들어 아바스 조가 쇠퇴하자 이슬람으로 개종한 사산 왕조의 귀족들이 타히르 왕조, 사파르 왕조,사만 왕조를 세워 찬란한 중세 페르시아-타지크 문화를 부흥시키고 호라산 기반의 가즈나 왕조는 북인도를 정복하고, 셀주크 제국은 아나톨리아 내륙과 캅카스 지역을 장악했다.

이후 호라즘 왕조, 몽골 제국과 차가타이 칸국, 모굴리스탄 칸국을 거쳐 티무르 제국이 마지막까지 지킨 지역이기도 했다. 또한 이후에 아프간의 호타키 왕조에 맞서 이스파한 함락 이후에도 사파비 왕조를 지지한 곳이기도 했으며, 나디르 샤 이후 급속도로 쇠퇴하여 해체된 아프샤르 왕조도 카자르 왕조에게 멸망당하기 전까지 호라산 만큼은 지켜낼 정도로 수비하기 편한 지형이었다.

현재 국가로는 이란의 동부 일부, 아프가니스탄 및 타지키스탄의 서부, 우즈베키스탄의 남부 일부, 투르크메니스탄의 영토 대부분에 해당되며, 도시로는 헤라트, 발흐, 마슈하드, 투스, 니샤푸르, 메르브 등이 있다. 이란의 호라산 주는 면적상 이란 최대의 주였으나 2004년 쿠르드 인들의 북호라산, 마슈하드를 중심으로 한 레자비호라산, 비르잔드를 중심으로 한 남호라산의 3개의 주로 분할되었다.[3]

역사[편집]

고대에는 마르기아나가 있었고, 훗날 메르브가 된다. 메르브를 비롯하여 마슈하드, 투스, 니샤푸르, 헤라트, 발흐, 가즈니 등의 도시들과 지명들이 있다. 역사적으로 이란계 민족들 또는 파르티아, 박트리아, 페르시아의 영역이었고, 훗날 아랍 제국의 점령으로 이슬람교를 받아들인다. 이후 이슬람화된 페르시아인들은 이곳에서 타히르 왕조를 세웠고, 그 후 사파르 왕조, 사만 왕조, 가즈나 왕조도 이곳을 차지하게 된다. 호라산으로 온 페르시아인들은 사만 왕조 이후 타지크인이 되고, 서돌궐 붕괴 이후 서진했던 투르크족(카라키타이)들도 이곳에 이주하여 정착한다.

셀주크 투르크족들은 메르브에서 셀주크 제국을 세우고, 여기서 갈라진 셀주크의 제후는 화레즘 제국을 세웠다. 몽골의 침략으로 쇠퇴해지다가 티무르 제국 때 다시 부흥했으며, 우즈베크인들의 히바 칸국, 부하라 칸국 때는 지금의 투르크메니스탄 북부를 차지하게 된다. 페르시아에서는 사파비 왕조의 중흥으로 지금의 이란 동부와 투르크메니스탄 남부를 차지하여 호라산은 이때부터 분단된다. 아프간 남부에서 호타키 왕조에 의해 사파비 왕조가 쇠퇴하여 망했으나 니샤푸르의 아프샤르 왕조를 중심으로 다시 중흥을 누렸고 이 때 호라산 지역은 다시 통합되었고, 가장 전성기를 이끌었다. 아프샤르 왕조 멸망 후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아프간족(파슈툰족)의 첫 왕조인 두라니 왕조가 세워져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지역을 중심으로 독립했고, 페르시아에서는 카자르 왕조가 세워지면서 지금의 투르크메니스탄 남부와 이란 동북부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남하정책을 펼친 러시아 제국에 패배하여 1881년 아할 조약으로 아슈하바트 등 지금의 투르크메니스탄 남부 일대는 러시아 제국의 영역이 되어 현재의 이란 북부 국경이 된다. 카자르 왕조가 무너지고 팔레비 왕조가 들어서다가 이란 이슬람 혁명으로 팔레비 왕조가 물러나면서 현재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 호라산 동북부를 통치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두라니 왕조 멸망 이후 토후국이 세워지다가 아프가니스탄 왕국이 되지만 러시아와 영국의 침략과 간섭에 시달리게 된다. 1901년에는 양국의 간섭을 벗어나지만 1905년 영국의 보호국으로 전락되었다. 1919년 제3차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다시 독립을 인정받게 된다. 1973년에는 쿠데타로 왕국이 사라지고 아프가니스탄 공화국이 나타났다. 1978년 친소 성향의 공산주의 공화국인 아프가니스탄 민주공화국이 들어섰고,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때는 10년간의 전쟁이 이어지고 소련의 위성국이 되었다. 전쟁 종식 및 냉전 종식과 소련 붕괴의 영향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는 공산주의 체제가 종식된다. 1992년에는 아프가니스탄 이슬람국이 들어섰지만 탈레반 정권의 억압적 독재가 나타났으며, 북부 지방을 중심으로 아프가니스탄 구국 이슬람 통일전선(북부동맹)을 세워 탈레반에 반대하는 저항을 했고, 2001년 미국의 도움으로 탈레반 정권을 종식시킨다.

히바 칸국과 부하라 칸국은 아프샤르 왕조에 잠시 점령되었으나 다시 페르시아로부터 벗어났고, 부하라 칸국은 부하라 토후국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1870년대부터 러시아 제국에 복속되었고 그 이전인 1867년에 러시아가 호라산의 점령지역들도 포함시켜 러시아령 튀르케스탄이라는 식민지들을 건설한다. 러시아 혁명 이후 러시아에서는 러시아 내전으로 혼란스러워지자 1916년에는 러시아령 튀르케스탄에서 바스마시 운동이 일어나면서 분리독립운동이 나타난다. 그러나 러시아 내전에서 적군들이 승리해서 소비에트 연방이 설립된 이후 소련의 영토가 되고 호라산은 투르크멘, 우즈베크, 타지크의 영토로 편입시킨다. 1989년 혁명의 영향으로 소련이 해체되고,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으로 독립한다.

주요 지역[편집]

  • 투르크메니스탄 - 중앙아시아에 있는 이슬람 공화국이다. 북서쪽, 북쪽, 동쪽으로 우즈베키스탄, 남동쪽으로 아프가니스탄, 남쪽과 남서쪽으로 이란, 서쪽으로 카스피해가 닿아 있다. 아시가바트가 수도이며, 인구가 600만명으로 중앙아시아의 공화국 중 가장 적다. 투르크메니스탄의 시민은 , 투르크메니스탄인, 투르크멘으로 알려져 있다. 1990년 8월 주권 선언을 하고 1992년 3월 독립국가연합에 가입하였다. 옛 소련 독립국 중 유일하게 계획경제체제 하에 있다. 국토의 80%가 사막이며, 날씨가 극도로 건조하고 혹서가 계속된다. 소련 제 3위의 석유생산국이었으며, 천연 자원은 석유, 천연가스, 유황 등이다. 공업은 석유의 채굴과 제유, 면공업, 제사업, 유리, 융단업이 발달하였다. 농산물로는 면화, 곡물, 포도, 양모, 누에고치 등이 생산되며, 나라의 동부에서 남부를 싸고도는 카라쿰 운하는 아무다리야강의 물을 카스피해까지 인도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전장 1,400km) 주행(舟行) 관개운하로서, 이미 아시가바트 서쪽까지 개통하였다. 본래 물이 부족한 이 나라에 운하의 물이 주는 혜택은 매우 크다.
  • 아프가니스탄 - 아시아에 있는 국제적 승인 미획득 국가이다. 내륙국으로 북쪽은 투르크메니스탄·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 북동쪽은 중화인민공화국, 동쪽과 남쪽은 파키스탄, 서쪽은 이란과 맞닿아 있다. 수도는 카불이다. 다민족 국가로서 주류 민족인 파슈툰족을 비롯해 타지크족, 하자라족, 우즈베크인, 아이마크인 등이 거주한다. 역사적으로 중동과 아시아의 여러 지역의 문화가 만나는 곳이었으며, 여러 세기를 거쳐 다양한 민족들의 고향이 되었다. 전략적인 위치로 인해 수많은 군사 활동이 이루어진 곳이 되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정복 세력으로는 알렉산더 대왕, 이슬람 제국, 몽골 제국, 대영제국, 소련, 그리고 현대의 서방 세력에 이른다. 또한 쿠샨 제국, 에프탈 제국, 사만 토후국, 사파르 토후국, 가즈나 제국, 고르 술탄국, 할지 술탄국, 무굴 제국, 호타크 제국, 두라니 제국, 기타 등등의 제국들을 일으킨 민족들의 근원지가 되기도 하였다. 1747년, 아흐마드 샤 두라니는 두라니 제국을 세웠는데, 이 때가 근대 아프가니스탄의 시발점으로 여겨진다. 나중에 두라니 제국의 도읍은 칸다하르에서 카불로 옮겨졌으며, 제국 영토 대부분은 이웃 강국들에게 빼앗겼다. 19세기 말, 영국령 인도 제국과 러시아 제국이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을 벌이는 가운데 아프가니스탄은 두 제국의 완충국으로 전락하였다. 제3차 앵글로-아프간 전쟁 이후 1919년 8월 19일에 이 나라는 대영제국에게서 독립을 쟁취하였다. 자히르 샤의 40년 통치 동안 아프가니스탄은 평화를 유지하였다.
  • 타지키스탄 - 중앙아시아에 있는 국가이다. 중앙아시아의 산국(山國)으로, 동부에는 파미르 고원이 있으며 북부와 남서부는 저지대로서 사막 기후를 띠고 있다. 높은 산에 둘러싸인 남서부의 하곡(河谷)은 중앙아시아에서 제일 더운 편이다. 민족 구성은 타지크인 65%, 우즈베크인 25%, 러시아인 2%이며 이슬람 공화국 중의 하나이다. 면화·밀·야채·과수 등이 주요 산물이고 석탄과 석유를 산출하며 풍부한 수력 전기도 개발되어 있어, 섬유 공업(면·견·모직·메리야스), 식료품 공업, 석유 화학 공업 등도 발달해 있다. 바프시강에 건설된 수력발전소는 출력 270만 ㎾이다.

호라산 지역의 바크쉬 음악[편집]

이란 호라산(Khorasan) 주의 바크쉬(Bakhshis, Bagşy) 악사는 도타르(dotār)라는 악기를 다루는 음악 기예로 유명하다. 도타르는 현이 2개이고 목이 긴 류트(lute) 형태의 악기이다. 바크쉬 악사는 신화·역사·전설에서 가져온 주제를 포함한 이슬람 및 그노시스적 시(Gnostic poem)와 서사시를 노래한다. 바크쉬 음악은 ‘마가미(Maghami)’라고 불리는데, 악기를 동반하거나 음성만으로 이루어진 곡이며, 터키어·쿠르드어·투르크멘어·페르시아어로 연행된다. ‘나바이(Navāyī)’는 가장 널리 퍼진 음악 형태로서, 다양하고, 음성만으로 공연하며, 운율이 없고, 그노시스적 시를 곁들인다. 다른 사례로는 ‘타즈니스(Tajnīs)’와 ‘게라옐리(Gerāyelī)’라고 불리는 터키의 음악, 종교적 주제를 가진 ‘샤카타이(Shākhatāyī)’, 그리고 고대의 낭만적 음악으로 호라산 북부의 코르만지(Kormanj) 쿠르드족(Kurds)이 부르는 ‘로이(Loy)’가 있다.

바크쉬 음악에서 도타르의 2개의 현 중 하나는 남성, 다른 하나는 여성으로 여겨진다. 여성 현으로 주 음률을 연주하는 동안 남성 현은 개방현이 된다. 바크쉬 음악은 전통적인 스승-도제 훈련을 통해 가족이나 이웃 중 남성에게만 전수하거나, 현대적인 방식으로 스승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전수생들을 성별과 무관하게 지도한다. 바크쉬 음악은 역사와 문화, 도덕적·종교적 근본을 전승한다. 따라서 바크쉬 악사는 사회적으로 단지 구연자로만 머물지 않고 재판관·중재자·치유자인 동시에 공동체의 윤리와 문화적 유산의 수호자이기도 하다.

호라산 지역의 바크쉬 음악은 세대 간에 역사, 문화, 윤리적·종교적 기초를 전승한다. 따라서 바크쉬 악사는 사회 내에서 널리 알려져 있고, 매우 존경받는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단순한 구연가에 머물지 않고 재판관·중재자·치유자 등의 역할을 한다. 따라서 바크쉬 악사는 공동체의 윤리와 문화적 유산의 수호자이다. 오늘날 이란 영토의 동쪽 지역인 호라산에는 호라사니족·아프간족·타지크족·투르크멘족·쿠르드족·발루체족·투르크족이 거주한다. 쿠르드족과 투르크족은 수백 년 전에 이 지역으로 이주했다. 이들은 지역의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전통 문화를 이 지역에 도입하였다. 혼합된 문화는 서로 영향을 주면서 지역의 문화적 다양성을 높이고 있다.[4]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호라산〉, 《위키백과》
  2. 호라산〉, 《네이버 지식백과》
  3. 호라산〉, 《나무위키》
  4. 호라산 지역의 바크쉬 음악〉, 《유네스코와 유산》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페르시아 같이 보기[편집]

페르시아 국가와 도시
페르시아 지역
페르시아 지리
페르시아 문화
페르시아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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