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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의 고령화===
 
===선수의 고령화===
사실 한화가 암흑기가 시작되는 조짐은 이미 200년대 초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2년 연속 우승을 노렸던 200년에는 정민철의 일본 진출로 인한 투수진의 붕괴로 인해 전체 7위에 그쳤고, 2001년에 잠깐 4강에 들기도 했지만, 승률은 겨우 4할 후반에 불과했고 당시 최하위였던 롯데 자이언츠와는 단 2경기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보통 같으면 이 무렵에 리빌딩에 착수했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었지만, 프런트에서는 당장의 성적만을 바라보며 내일이 없는 팀 운용을 감행했다. 그래도 2002~2004년에는 비록 가을야구 진출은 실패했지만 깔아주는 팀들이 있어서 그럭저럭 꼴찌만은 하지 않으며 적당히 중하위권에서 머물렀다. 이후 2005년부터 3년 동안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하고 2006년 류현진의 포텐이 제대로 터지며 1번의 준우승을 거두기도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주전 선수들의 고령화가 심각했고, 결국 이 선수들이 모두 은퇴하면서 급속도로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ref name="문제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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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화가 함흑기가 시작되는 조짐은 이미 200년대 초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2년 연속 우승을 노렸던 200년에는 정민철의 일본 진출로 인한 투수진의 붕괴로 인해 전체 7위에 그쳤고, 2001년에 잠깐 4강에 들기도 했지만 승률은 겨우 4할 후반에 불과했고 당시 최하위였던 롯데 자이언츠와는 단 2경기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보통 같으면 이 무렵에 리빌딩에 착수했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었지만, 프런트에서는 당장의 성적만을 바라보며 내일이 없는 팀 운용을 감행했다. 그래도 2002~2004년에는 비록 가을야구 진출은 실패했지만 깔아주는 팀들이 있어서 그럭저럭 꼴찌만은 하지 않으며 적당히 중하위권에서 머물렀다. 이후 2005년부터 3년 동안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하고 2006년 류현진의 포테이 제대로 터지며 1번의 준우승을 거두기도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주전 선수들의 고령화가 심각했고, 결국 이 선수들이 모두 은퇴하면서 급속도로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ref name="문제점"></ref>
 
 
 
===2012년까지 유일 2군 훈련장이 없던 구단===
 
===2012년까지 유일 2군 훈련장이 없던 구단===
 
무엇보다 한화 이글스는 2012년까지 8개 구단 중 유일하게 2군 전용 훈련장이 없었다. 친환경 구장이라고 까였던 KIA 타이거즈도 어쨌든 함평군에 2군 훈련장이 있었고, 심지어 당시 매년 선수 팔아서 운영하던 넥센 히어로즈조차도 연고지에서 머나먼 강진군이라 해도 자기네 2군 훈련장을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한화 2군은 계룡대 연병장이나 인근의 대전고등학교 운동장을 전전하면서 연습을 했다. 다른 팀들은 전용구장에 웨이트 시설에 기숙사에 식당에 재활 센터까지 갖춰놓고 1년 내내 연습시킬 때 한화는 그때그때 남의 운동장을 빌려서 눈치보면서 연습하고, 심지어 구장을 못 구해서 퓨처스리그 경기가 연기되는 경우도 있었다. 설령 200년대 중반 패스했던 신인지명을 모두 행사했더라도 이런 상황에서 선수 육성이 된다면 그건 기적일 것이다. 비슷하게 암흑기를 헤매던 롯데 자이언츠가 2007년 상동야구장이 완공된 이후 유망주들이 많이 배출되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구단이 얼마나 투자에 미비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단, 한화도 조금은 할 말이 있었던 것이 2군 훈련장 건설이 늦어진 것은 대전 광역시 대덕구의 탓이 크다. 2007년 대덕구 덕암동에 2군 훈련장을 짓기로 양해 각서까지 체결해 놓고 행정 절차 핑계대며 무려 4년 넘게 질질 끌어 삽마저 못 뜬 것이다. 결국, 팀 성적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참다 못해 서산시에 짓겠다고 발표해 버리니 그제서야 대덕구는 양해각서까지 체결해놓고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기했다며 반박 보도 자료까지 돌렸다. 다행히 2012년 초 서산시 성연면 사산테크노밸리에 2군 훈련장 착공 계획이 수립되었고, 2012년 12월에 드디어 서산 야구장이 문을 열었다.
 
무엇보다 한화 이글스는 2012년까지 8개 구단 중 유일하게 2군 전용 훈련장이 없었다. 친환경 구장이라고 까였던 KIA 타이거즈도 어쨌든 함평군에 2군 훈련장이 있었고, 심지어 당시 매년 선수 팔아서 운영하던 넥센 히어로즈조차도 연고지에서 머나먼 강진군이라 해도 자기네 2군 훈련장을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한화 2군은 계룡대 연병장이나 인근의 대전고등학교 운동장을 전전하면서 연습을 했다. 다른 팀들은 전용구장에 웨이트 시설에 기숙사에 식당에 재활 센터까지 갖춰놓고 1년 내내 연습시킬 때 한화는 그때그때 남의 운동장을 빌려서 눈치보면서 연습하고, 심지어 구장을 못 구해서 퓨처스리그 경기가 연기되는 경우도 있었다. 설령 200년대 중반 패스했던 신인지명을 모두 행사했더라도 이런 상황에서 선수 육성이 된다면 그건 기적일 것이다. 비슷하게 암흑기를 헤매던 롯데 자이언츠가 2007년 상동야구장이 완공된 이후 유망주들이 많이 배출되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구단이 얼마나 투자에 미비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단, 한화도 조금은 할 말이 있었던 것이 2군 훈련장 건설이 늦어진 것은 대전 광역시 대덕구의 탓이 크다. 2007년 대덕구 덕암동에 2군 훈련장을 짓기로 양해 각서까지 체결해 놓고 행정 절차 핑계대며 무려 4년 넘게 질질 끌어 삽마저 못 뜬 것이다. 결국, 팀 성적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참다 못해 서산시에 짓겠다고 발표해 버리니 그제서야 대덕구는 양해각서까지 체결해놓고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기했다며 반박 보도 자료까지 돌렸다. 다행히 2012년 초 서산시 성연면 사산테크노밸리에 2군 훈련장 착공 계획이 수립되었고, 2012년 12월에 드디어 서산 야구장이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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