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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2009년===
 
===2004년~2009년===
04년 이후 09시즌까지 신인 픽을 굉장히 허술하게 했으며 한화이글스의 가장 큰 몰락 원인을 한 가지만 꼽으라면 신인 드래프트를 꼽을 수 있을 정도이다. 04년에 한화는 야구단에 들어가는 돈을 줄이기 위하여 여러 방법을 사용했는데, 신인 드래프트에서 뽑은 선수를 줄이는 게 그 대표적인 방법 중 하나였다. 04년 5명 지명을 시작으로 하위 지명에서 대학에 진학이 결정된 선수를 뽑는 등 정식 계약을 해야 하는 선수의 숫자를 줄이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육성능력 부족이 겹치면서 몰락의 시작이 됐다. 게다가 이 와중에도 지역 안배를 해준다고 지역출신에 실링이 떨어지는 선수들을 뽑았다가 역시나 별 성과를 못 내고 은퇴하는 것을 반복하기도 했다. 이 시기의 첫 번째 실책은 김인식 감독의 재임 기간이다. 혹사로 매년 필승계투 한두 명을 갈아먹으면서 시즌을 보냈던 시절 그 갈아먹는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투수픽에 픽을 집중했다는 것이다. 2006년 드래프트에는 1차 포함 상위 6명 중 4지명 정범모를 제외하면 4명이 투수였으며 2007년은 1차 포함 상위 7명 중 4명을, 2008년 6명 중 4명이었다. 이러한 발픽의 최고 절정은 2009년 지명이었다. 이 해에 7명 중 5명이 투수, 대졸로 상위를 다 채우는 노골적인 즉전감 불펜 수집을 시도한 것이다. 프로야구에 대해 조금만 관심이 있는 팬이라면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00년대 이후로는 대졸 선수는 고교 때 프로 진출에 실패하거나 하위 지명을 받은 선수들이 차선책으로 고려하는 경향이 강해서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전부 프로에 와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화는 아예 작정하고 고졸로만 채워버린 것이다. 게다가 하위지명에서는 포텐을 보고 선수들을 데려오는 것도 아니고 픽을 포기해버렸다. 결국 장기간 1군에서 살아남은 선수는 고졸 장민재였다는 것을 보면 이 시기의 근시안적인 픽이 얼마나 팀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해였다. 근본적으로 근시안적으로 뽑기도 했지만, 육성 팥에서도 장기간 투수를 집중적으로 모아줬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투수를 키워내는데 실패했다. 김혁민이나 유원상, 허유강과 황재규 등 짧은 기간 가능성을 보여준 선수들도 존재하긴 했으나 몇몇은 가능성만 보여줬고 몇몇은 재활의 신이라고 불리는 김인식 감독에 의해 재활해야 할 신세가 되었다. 그나마 이런 투수들도 몇 되지 않았고, 최진호나 윤기호, 구본범처럼 아주 2군에서 버로우를 해버린 케이스가 더 많았다. 이시기에 야수쪽에 픽을 많이 쓰지도 않았는데, 그나마도 정범모, 최연오, 이희근 등 포수에 집중하면서 픽을 했다. 1차 지명인 박상규와 김희성, 그리고 2차 지명자인 오선진과 김강 전부 포함해 단 4명만이 김인식 감독 기간에 상위에서 제대로 픽한 야수자원이었다. 박상규와 김희성이 붕괴한 지역 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픽한 자원임을 고려하면 정말로 제대로 상위에서 지명한 야수는 김강과 오선진 단 두 사람인 뿐었다. 하위 픽을 한 선수도 몇 명 없었으며 당연히 오래 못가 방출되었다. 이 이외의 자원은 신고선수나 영입선수로 때웠다. 이렇게 굉장히 투수에 치우친 지명을 몇 년간 이어간 결과 당연히 신인 야수에서 새롭게 나오는 자원이 증발해버렸으며 결국 야수 부족으로 이어졌고 심지어 2010년 시즌 중에 2군에서 몇 명의 야수가 부상으로 경기에서 빠지자 경기에 나갈 야수가 부족한 처참한 상태를 맞이하게 됐다.<ref name="나무"></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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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년 이후 09시즌까지 신인 픽을 굉장히 허술하게 했으며 한화이글스의 가장 큰 몰락 원인을 한가지만 꼽으라면 신인 드래프트를 꼽을 수 있을 정도이다. 04년에 한화는 야구단에 들어가는 돈을 줄이기 위하여 여러 방법을 사용했는데, 신인 드래프트에서 뽑은 선수를 줄이는게 그 대표적인 방법 중 하나였다. 04년 5명 지명을 시작으로 하위 지명에서 대학에 진학이 결정된 선수를 뽑는 등 정식 계약을 해야하는 선수의 숫자를 줄이려고 안간힘을 썻는데, 육성능력 부족이 겹치면서 몰락의 시작이 됬다. 게다가 이 와중에도 지역 안배를 해준다고 지역출신에 실링이 떨어지는 선수들을 뽑았다가 역시나 별 성과를 못 내고 은퇴하는 것을 반복하기도 했다. 이 시기의 첫 번째 실책은 김인식 감독의 재임기간이다. 혹사로 매년 필승계튜 한두명을 갈아먹으면서 시즌을 보냈던 시절 그 갈아먹는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투수픽에 픽을 집중했다는 것이다. 2006년 드래프트에는 1차 포함 상위 6명 중 4지명 정범모를 제외하면 4명이 투수였으며 2007년은 1차 포함 상위 7명 중 4명을, 2008년 6명 중 4명이었다. 이러한 발픽의 최고 절정은 2009년 지명이었다. 이 해에 7명 중 5명이 투수, 대졸로 상위를 다 채우는 노골적인 즉전감 불펜 수집을 시도한 것이다. 프로야구에 대해 조금만 관심이 있는 팬이라면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00년대 이후로는 대졸 선수는 고교 때 프로 진출에 실패하거나 하위 지명을 받은 선수들이 차선책으로 고려하는 경향이 강해서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전부 프로에 와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화는 아예 작정하고 고졸로만 채워버린 것이다. 게다가 하위지명에서는 포텐을 보고 선수들을 데려오는 것도 아니고 픽을 포기해버렸다. 결국 장기간 1군에서 살아남은 선수는 고졸 장민재였다는 것을 보면 이 시기의 근시안적인 픽이 얼마나 팀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해였다. 근본적으로 근시안적으로 뽑기도 했지만, 육성 팥에서도 장기간 투수를 집중적으로 모아줬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투수를 키워내는데 실패했다. 김혁민이나 유원상, 허유강과 황재규 등 짧은 기간 가능성을 보여준 선수들도 존재하긴 했으나 몇몇은 가능성만 보여줬고 몇몇은 재활의 신이라고 불리는 김인식 감독에 의해 재활해야 할 신세가 되었다. 그나마 이런 투수들도 몇 되지 않았고, 최진호나 윤기호, 구본범처럼 아주 2군에서 버로우를 해버린 케이스가 더 많았다. 이시기에 야수쪽에 픽을 많이 쓰지도 않았는데, 그나마도 정범모, 최연오, 이희근 등 포수에 집중하면서 픽을 했다. 1차 지명인 박상규와 김희성, 그리고 2차 지명자인 오선진과 김강 전부 포함해 단 4명만이 김인식 감독 기간에 상위에서 제대로 픽한 야수자원이었다. 박상규와 김희성이 붕괴한 지역 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픽한 자원임을 고려하면 정말로 제대로 상위에서 지명한 야수는 김강과 오선진 단 두사람인 뿐이다. 하위 픽을 한 선수도 몇 명 없었으며 당연히 오래 못가 방출되었다. 이 이외의 자워능ㄴ 신고선수나 영입선수로 때웠다. 이렇게 굉장히 투수에 치우친 지명을 몇 년간 이어간 결과 당연히 신인 야수에서 새롭게 나오는 자원이 증발해버렸으며 결국 야수 부족으로 이어졌고 심지어 2010년 시즌 중에 2군에서 몇 명의 야수가 부상으로 경기에서 빠지자 경기에 나갈 야수가 부족한 처참한 상태를 맞이하게 됐다.<ref name="나무"></ref>
 
 
 
===2010년~현재===
 
===2010년~현재===
 
한화 프런트는 2010년에 들어서야 문제점을 인식하고 허둥지둥 드래프트의 방향성을 수정하게 된다. 10드래프트에서 상위 지명으로 2지명 김재우를 지명하고 4지명 이상훈을 데려오면서 그동안 픽이 없었던 중견 자원을 픽했으며 야수자원이 대폭 모자르게 되자 이러한 경향을 버리고 10명을 꽉 채워서 지명한 뒤에 모두 계약했다. 또한, 야수자원의 픽도 상당히 많았는데 2011년에는 포수 나성용, 유격수 강경학, 1루수 김용호, 외야수 임신호와 오준혁에 투수로 픽했지만 이후 외야수로 키울 예정인 문재현까지 총 6명의 야수를 뽑았지만, 트레이드 된 오준혁이나 잦은 부상으로 재능을 온전히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강경학을 제외하면 전부 그저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은퇴하였다. 2012년에는 아예 전체 1픽을 최대어 신일고 내야수 하주석에 사용하면서 드래프트 역사상 최초 야수 1순위 지명을 사용했다. 이 시기에는 전체적으로 그동안의 떡대와 하드웨어를 보고 픽하는 경향을 버리고 야구센스와 스킬을 장기로 삼는 선수들을 픽했다. 양성우 같은 선수들이 대표적이다. 10지명에서 1차 지명으로 라이트팬 조차도 프로에서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 평가받던 북일고의 에이스 김용주를 1지명하는 등 지역 안배를 버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임기영, 이태양, 오준혁 등 재능있는 선수들을 한 해에 하나 둘 씩은 찾아내곤 했다. 이렇게 오랜 드래프트에서의 삽질을 마무리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나 운도 한화의 편이 아니였다. 하필 팀이 최악의 암흑기를 겪고 있던 그 때 신생팀들이 창단되기 시작한 것이다. 상기에 언급된 하주석도 NC가 우선지명으로 두 명의 선수를 데려가고 남은 선수였고, 1년뒤에는 지역고교인 북일고의 에이스이자 전국구 에이스인 윤형배를 지명할 수 있는 기회가 NC 다이노스의 우선지명으로 인해 날아갔고 1차지명 제도가 부활한 첫 해인 2013년 6월 발표된 10번째 구단 kt wiz의 우선 지명 선수 두 명 중에서도 당초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북일고 류희운이 예상을 깨고 포함되며 한화이글스는 멘붕했다. 충청팜에서 1차로 지명할 만한 선수가 류희운뿐이었다. 이 불운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2014년에도 kt wiz가 우선지명으로 청주고 투수이자 조선족이라 군 면제가 기존으로 장착되어 있는 주권을 지명하여 또 다시 연고지 최대어를 뺏겼다. 그나마 북일고 김범수가 있어 2013년 보다는 나은 상황이지만 2년 연속 연고지 탑급 유망주를 뺏겼으니 한화 입장에서는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2009년부터 팀 성적이 바닥을 기고 있는데 연이은 신생팀 창단으로 인해 한화가 온전히 1라운드 1픽을 행사한 적은 유창식 단 한 번 뿐이다. 게다가 김응룡, 김성근 감독 시기에 한 해에 한두명씩 주었던 유망한 어린 선수들이 이 시기에 다수 유출되었다. 누구의 잘못을 따지는건 각 감독의 항목으로 넘기고, 결과적으로 이러한 유출들이 10년대 후반과 20년대 초반 타선 몰락의 원인이 되었다. 추가로 하필 김원석같이 재능은 보였으나 사고를 치고은퇴한 선수들이 있었다는 점도 불운 중 하나였다. 원인이 뭐였던 간에 10년대 초반의 픽은 결과적으로 몇년에 걸쳐 실패를 겪었고, 이 시기에 배출한 주전은 하주석과 이태양 단 두명이며 이태양은 18년 이후로 하락세 후 트레이드, 하주석도 기대치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그나마 오랜기간 2군에서 육성자원으로 분류되면서 팀에 잔류하고 있던 어린 투수들이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한 점이 위안거리였다. 2004년~2009년, 2010년~2015년까지의 두 시기에 이어 세 번째 시기는 김민우 김범수라는 두 선발 유망주를 동시에 배출해낸 15드래프트를 시작으로 16시즌 이후라고 볼 수 있다. 15시즌만 하더라도 지역안배를 위주로 드래프트를 했으나 이 이후로는 기존 드랩 기조를 완전히 버렸다. 지역안배를 완전히 버렸으며 투수진도 하드웨어와 제구를 중점으로 보던 것에서 벗어나 구위를 위주로 보고 있으며, 야수의 경우에는 매년 특정 포지션의 선수를 보강하는 식으로 픽하고 있다. 이 이후의 신인 픽들은 전처럼 발픽은 절대로 아니고, 아직 온전히 결과가 나올 정도로 지나지는 않았으나 조금씩 결과가 나오고 있다. 투수 쪽의 경우 충분히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꾸준히 한두명씩 패전처리라도 할만한 선수를 뽑아내면서도 픽도 꾸준히 평타를 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고 육성 시스템도 마침 제대로 잡히기 시작하여 투수진이 무너진 2009년 이후로 처음으로 제대로 된 투수층이 생기고 있다. 특히 2018년도 리그 정상급 불펜이었던 박상원을 제외하면 정상급 퍼포먼스를 보여준 선수는 없으나 고만고만하게 1군에서 버텨줄만한 선수들은 정말 오랜만에 다수 보유하게 되었으며, 돌아가면서 필승조 역할을 하고 있다. 대다수가 어린 투수들이라 성장이 기대되는 점이 안심되었다. 야수진은 아직도 애매하다. 18년대 역대 한화 내야 센터라인 신인 중 가장 좋은 페이스로 선수 커리어를 시작한 정은원을 뽑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그 외에는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였으며 기대치가 있어 보이는 선수들은 전부 큰 결점을 보이면서 1군에 적응하는데 실패했으며, 특히 장타력이 있는 타자를 단 한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이렇게 야수들을 배출해내지 못한 것이 20시즌 야수진 대붕괴의 원인이다. 이 때문에 18시즌 정도부터 전조가 보이기 시작하자 과감하게 상위 드래프트권을 전부 야수에 몰방한 19드래프트를 시작으로 장타력을 갖춘 야수들의 수집에 들어갔다.
 
한화 프런트는 2010년에 들어서야 문제점을 인식하고 허둥지둥 드래프트의 방향성을 수정하게 된다. 10드래프트에서 상위 지명으로 2지명 김재우를 지명하고 4지명 이상훈을 데려오면서 그동안 픽이 없었던 중견 자원을 픽했으며 야수자원이 대폭 모자르게 되자 이러한 경향을 버리고 10명을 꽉 채워서 지명한 뒤에 모두 계약했다. 또한, 야수자원의 픽도 상당히 많았는데 2011년에는 포수 나성용, 유격수 강경학, 1루수 김용호, 외야수 임신호와 오준혁에 투수로 픽했지만 이후 외야수로 키울 예정인 문재현까지 총 6명의 야수를 뽑았지만, 트레이드 된 오준혁이나 잦은 부상으로 재능을 온전히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강경학을 제외하면 전부 그저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은퇴하였다. 2012년에는 아예 전체 1픽을 최대어 신일고 내야수 하주석에 사용하면서 드래프트 역사상 최초 야수 1순위 지명을 사용했다. 이 시기에는 전체적으로 그동안의 떡대와 하드웨어를 보고 픽하는 경향을 버리고 야구센스와 스킬을 장기로 삼는 선수들을 픽했다. 양성우 같은 선수들이 대표적이다. 10지명에서 1차 지명으로 라이트팬 조차도 프로에서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 평가받던 북일고의 에이스 김용주를 1지명하는 등 지역 안배를 버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임기영, 이태양, 오준혁 등 재능있는 선수들을 한 해에 하나 둘 씩은 찾아내곤 했다. 이렇게 오랜 드래프트에서의 삽질을 마무리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나 운도 한화의 편이 아니였다. 하필 팀이 최악의 암흑기를 겪고 있던 그 때 신생팀들이 창단되기 시작한 것이다. 상기에 언급된 하주석도 NC가 우선지명으로 두 명의 선수를 데려가고 남은 선수였고, 1년뒤에는 지역고교인 북일고의 에이스이자 전국구 에이스인 윤형배를 지명할 수 있는 기회가 NC 다이노스의 우선지명으로 인해 날아갔고 1차지명 제도가 부활한 첫 해인 2013년 6월 발표된 10번째 구단 kt wiz의 우선 지명 선수 두 명 중에서도 당초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북일고 류희운이 예상을 깨고 포함되며 한화이글스는 멘붕했다. 충청팜에서 1차로 지명할 만한 선수가 류희운뿐이었다. 이 불운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2014년에도 kt wiz가 우선지명으로 청주고 투수이자 조선족이라 군 면제가 기존으로 장착되어 있는 주권을 지명하여 또 다시 연고지 최대어를 뺏겼다. 그나마 북일고 김범수가 있어 2013년 보다는 나은 상황이지만 2년 연속 연고지 탑급 유망주를 뺏겼으니 한화 입장에서는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2009년부터 팀 성적이 바닥을 기고 있는데 연이은 신생팀 창단으로 인해 한화가 온전히 1라운드 1픽을 행사한 적은 유창식 단 한 번 뿐이다. 게다가 김응룡, 김성근 감독 시기에 한 해에 한두명씩 주었던 유망한 어린 선수들이 이 시기에 다수 유출되었다. 누구의 잘못을 따지는건 각 감독의 항목으로 넘기고, 결과적으로 이러한 유출들이 10년대 후반과 20년대 초반 타선 몰락의 원인이 되었다. 추가로 하필 김원석같이 재능은 보였으나 사고를 치고은퇴한 선수들이 있었다는 점도 불운 중 하나였다. 원인이 뭐였던 간에 10년대 초반의 픽은 결과적으로 몇년에 걸쳐 실패를 겪었고, 이 시기에 배출한 주전은 하주석과 이태양 단 두명이며 이태양은 18년 이후로 하락세 후 트레이드, 하주석도 기대치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그나마 오랜기간 2군에서 육성자원으로 분류되면서 팀에 잔류하고 있던 어린 투수들이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한 점이 위안거리였다. 2004년~2009년, 2010년~2015년까지의 두 시기에 이어 세 번째 시기는 김민우 김범수라는 두 선발 유망주를 동시에 배출해낸 15드래프트를 시작으로 16시즌 이후라고 볼 수 있다. 15시즌만 하더라도 지역안배를 위주로 드래프트를 했으나 이 이후로는 기존 드랩 기조를 완전히 버렸다. 지역안배를 완전히 버렸으며 투수진도 하드웨어와 제구를 중점으로 보던 것에서 벗어나 구위를 위주로 보고 있으며, 야수의 경우에는 매년 특정 포지션의 선수를 보강하는 식으로 픽하고 있다. 이 이후의 신인 픽들은 전처럼 발픽은 절대로 아니고, 아직 온전히 결과가 나올 정도로 지나지는 않았으나 조금씩 결과가 나오고 있다. 투수 쪽의 경우 충분히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꾸준히 한두명씩 패전처리라도 할만한 선수를 뽑아내면서도 픽도 꾸준히 평타를 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고 육성 시스템도 마침 제대로 잡히기 시작하여 투수진이 무너진 2009년 이후로 처음으로 제대로 된 투수층이 생기고 있다. 특히 2018년도 리그 정상급 불펜이었던 박상원을 제외하면 정상급 퍼포먼스를 보여준 선수는 없으나 고만고만하게 1군에서 버텨줄만한 선수들은 정말 오랜만에 다수 보유하게 되었으며, 돌아가면서 필승조 역할을 하고 있다. 대다수가 어린 투수들이라 성장이 기대되는 점이 안심되었다. 야수진은 아직도 애매하다. 18년대 역대 한화 내야 센터라인 신인 중 가장 좋은 페이스로 선수 커리어를 시작한 정은원을 뽑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그 외에는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였으며 기대치가 있어 보이는 선수들은 전부 큰 결점을 보이면서 1군에 적응하는데 실패했으며, 특히 장타력이 있는 타자를 단 한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이렇게 야수들을 배출해내지 못한 것이 20시즌 야수진 대붕괴의 원인이다. 이 때문에 18시즌 정도부터 전조가 보이기 시작하자 과감하게 상위 드래프트권을 전부 야수에 몰방한 19드래프트를 시작으로 장타력을 갖춘 야수들의 수집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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