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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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를 모신 신당. 망묘루 동쪽에 있다. 하나의 종이에 두 위의 초상화를 같이 그려 놓았다. 태조 이성계가 처음 종묘를 세울 때 명령을 내려 같이 세웠다고 한다. 신당 내부 왼쪽에는 공민왕이 그린 준마도(駿馬圖) 세 점도 같이 있다.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를 모신 신당. 망묘루 동쪽에 있다. 하나의 종이에 두 위의 초상화를 같이 그려 놓았다. 태조 이성계가 처음 종묘를 세울 때 명령을 내려 같이 세웠다고 한다. 신당 내부 왼쪽에는 공민왕이 그린 준마도(駿馬圖) 세 점도 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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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숙실 ===
  
:{|class=wikitable width=800
 
!align=center style="background-color:#ffeecc" colspan=2|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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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gn=center style="background-color:#ffbbcc"|사진
 
!align=center style="background-color:#ffbbcc"|설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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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gn=center|<imagemap>
 
파일:종묘 어정.jpg|300픽셀
 
default [[어정(御井)]]
 
</imagemap>
 
|align=left|'''어정(御井)'''
 
종묘 앞에 보존되어 있는 우물로, 왕들이 종묘를 참배하러 올 때 마셨던 우물이라 해서 어정이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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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숙실 ===
 
:{|class=wikitable width=800
 
!align=center style="background-color:#ffbbcc"|사진
 
!align=center style="background-color:#ffbbcc"|설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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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gn=center|<imagemap>
 
파일:어숙실.jpg|300픽셀
 
default [[어숙실(御肅室)]]
 
</imagemap>
 
|align=left|'''어숙실(御肅室)'''
 
왕이 제례를 올리기 전에 목욕재계하고 제례를 준비하던 곳. 정전 동남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재궁(齋宮)이라고도 한다. 북쪽에 어재실, 동쪽에 왕세자 재실, 서쪽에 어목욕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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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전 주변 ===
 
=== 정전 주변 ===
:{|class=wikitable width=800
 
!align=center style="background-color:#ffeecc" colspan=2|대한민국 국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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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gn=center style="background-color:#ffbbcc"|사진
 
!align=center style="background-color:#ffbbcc"|설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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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gn=center colspan=2|<imagemap>
 
파일:정전.jpg|800픽셀
 
default [[정전(正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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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gn=left colspan=2|'''정전(正殿)'''
 
대한민국의 국보이다. 종묘의 중심건물로서 [[태조]]를 비롯하여 임금의 신주 19위, 왕후의 신주 30위 총 49위가 모셔져 있다. 정전의 남쪽 중앙에는 혼과 향로를 모시는 신문(神門)이, 동쪽에는 제례 때 제관이 출입하는 동문(東門)이, 서쪽에는 악공, 일무원, 종사원 등이 출입하는 서문(西門)이 있다.
 
  
정전의 전면에는 길게 다듬은 돌을 쌓아 만든 동서 109m, 남북 69m의 넓은 월대를 조성했으며 그 가운데에는 정전의 신실로 통하는 신로(神路)가 남북으로 나 있어 사묘 건축으로서의 품위와 장중함을 나타낸다.
 
  
정전 건물은 맞배지붕 형식이며 칸마다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은 매우 단순한 구조로 되어 있으며 단청도 최소화해 엄숙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길이가 101 m에 달하는데, 우리나라에서 단일 목조건축으로는 가장 길다. 신주로 모시는 임금의 숫자가 늘어날 때마다 계속 방이 증축되어서 이러한 길어졌는데, 건축물의 조성 방법 중에는 상당히 특이한 것이다. 이 때문에 정전의 기둥을 잘 보면 미묘하게 오래된 정도가 다르다. 서쪽이 오래된 것. 신위는 가운데에 태조를 모시고 좌우에 후대 임금을 소(昭)와 목(穆)으로 삼아 배치하는 소목 제도가 아니라 서상(西上)의 원칙에 따라 서쪽부터 태조 이하 후대 임금을 모셨다.
 
  
'정전'이라는 이름은 여러 채로 구성된 건물군 중 가장 핵심이 되는 건물을 나타내는 일반명사지만, 종묘의 정전은 특정한 이름 없이 그냥 정전이다. 종묘의 정전에는 현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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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공청 ===
  
여담이지만 굉장히 큰 건물이라 어지간한 전문가용 렌즈로도 정전의 전체 모습 촬영이 불가능하다. 건물 크기도 크기지만, 시야를 확보하기 위한 거리가 내삼문까지로 한정되어서 그렇다. 위의 사진처럼 건물 전체가 나온 사진들은 따로 찍어서 현상하며 이은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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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gn=center|<imagemap>
 
파일:칠사당.jpg|300픽셀
 
default [[칠사당(七祀堂)]]
 
</imagemap>
 
|align=left|'''칠사당(七祀堂)'''
 
정전의 남쪽 신문으로 들어가면 서쪽에 자리한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 국행지신(國行之神, 도로를 주관하는 신), 공려지신(公厲之神, 후사가 없는 제후의 신), 국문지신(國門之神, 출입을 주관하는 신), 중류지신(中霤之神, 당실과 거처를 주관하는 신), 사조지신(司竈之神, 음식의 일을 주관하는 신), 사호지신(司戶之神, 출입을 주관하는 신), 사명지신(司命之神, 사람의 선악에 따라 응보하는 신) 일곱 소신의 위패를 모시고 사계절에 나라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던 사당이다. 계절에 따라 봄에는 사명과 호, 여름에는 조, 가을에는 문과 여, 겨울에는 행과 중류를 모신다. 이들 중 사명과 여를 제외한 다섯 신은 따로 오사(五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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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gn=center|<imagemap>
 
파일:공신당.jpg|300픽셀
 
default [[공신당(功臣堂)]]
 
</imagemap>
 
|align=left|'''공신당(功臣堂)'''
 
정전의 남쪽 신문으로 들어가면 동쪽에 자리한 정면 16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 시간이 흐르면서 정전이 증축된 것과 마찬가지로 공신당 또한 증축된 결과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국가와 왕실에 공을 세운 신하들을 기리고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임금의 생존시에 공로가 큰 신하들의 신위를 해당 임금의 묘정에 배향했는데, 제1대 태조의 공신 문충공(文忠公) 조준(趙浚)을 시작으로 제27대 순종의 공신 효문공(孝文公) 서정순(徐正淳)까지 모두 제왕 19위에 공신 83위의 위패가 모셔졌다.
 
 
종묘의 공신당에 모셔지는 공신은 '배향공신'이라 해서 국가가 위난에 처했을 때 공을 세운 28종류 공신과 성격이 다르다. 생전에 공적이 많은 사람을 해당 제왕이 세상을 떠난 뒤 선정한 건데, 이완용이 순종 묘정에 배향된 적도 있었다.
 
 
정전과는 달리 영녕전에는 공신당이 없다. 태조의 4대조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는 추존 임금이기 때문에 배향공신이 없는데, 영녕전에 모셔지는 후대 임금들이 공신을 데리고 들어가는 것은 조상에게 올리는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 그러나 공신당이 없다고 해도 엄연히 영녕전에 모셔진 임금의 배향공신까지 포함하여 총 92명을 종묘 배향공신으로 간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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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수복방.jpg|300픽셀
 
default [[수복방(守僕房)]]
 
</imagemap>
 
|align=left|'''수복방(守僕房)'''
 
정전 동문의 담에 잇대어 북쪽 방향으로 지어진 4칸짜리 맞배지붕 건물. 수복(守僕)이란 조선시대 종묘서(宗廟署)나 향실을 관장하던 교서관을 비롯해 단(壇), 능(陵), 궁(宮) 등에 소속되어 청소하는 일을 담당한 잡직을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수복방이란 제사를 준비하는 관원들과 종묘를 지키고 청소하며 제사를 준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거처하는 곳이라는 뜻. 수복방의 앞에는 제사 때 음식 차림을 하기 전에 제물을 심사하던 찬막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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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전사청.jpg|300픽셀
 
default [[전사청(典祀廳)]]
 
</imagemap>
 
|align=left|'''전사청(典祀廳)'''
 
정전의 동북쪽에 자리하며 종묘의 제사에 사용되는 제례음식을 준비하던 곳. 부엌 역할을 했기 때문에 신주(神廚)라고도 부른다. 마당을 중심으로 주위에 ㅁ자형 건물을 배치했다. 마당에는 제수를 준비하던 돌절구 등의 흔적이 남아있으며 정전에 올릴 제수음식을 미리 검사하던 찬막단이 있다. 주실은 정면 7칸, 측면 2칸이고 옆 행각에는 온돌과 마루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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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제정.jpg|300픽셀
 
default [[제정(祭井)]]
 
</imagemap>
 
|align=left|'''제정(祭井)'''
 
제례 때 사용하는 명수(明水)와 전사청에서 제수음식을 만들 때 사용하는 물을 긷던 우물. 전사청 동쪽에 자리하며, 네 면을 담장으로 두르고 남쪽에 팔작지붕으로 된 일각문이 있다.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물이 차갑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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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공청 ===
 
:{|class=wikitable width=800
 
!align=center style="background-color:#ffbbcc"|사진
 
!align=center style="background-color:#ffbbcc"|설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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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악공청.jpg|300픽셀
 
default [[악공청(樂工廳)]]
 
</imagemap>
 
|align=left|'''악공청(樂工廳)'''
 
종묘제례시에 음악을 연주하는 악공들이 준비, 연습하고 대기하는 곳. 정전과 영녕전 바깥 서남쪽에 각각 있다. 정전에 부속된 악공청은 현재 정면 6칸, 측면 2칸으로 되어 있으며 문짝 없이 기둥만 남아있다. 영녕전에 부속된 악공청은 현재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정전의 악공청보다 규모가 작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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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녕전 주변 ===
 
=== 영녕전 주변 ===
:{|class=wikitable width=800
 
!align=center style="background-color:#ffbbcc"|사진
 
!align=center style="background-color:#ffbbcc"|설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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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gn=center colspan=2|<imagemap>
 
파일:영녕전.jpg|800픽셀
 
default [[영녕전(永寧殿))]]
 
</imagem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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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gn=left colspan=2|'''영녕전(永寧殿)'''
 
대한민국의 보물이다. 정전에서 옮겨진 제왕과 왕후, 그리고 추존된 제왕과 왕후의 신주를 모시고 있는 별묘(別廟)로 정면 16칸, 측면 4칸의 건물.
 
 
영녕전(永寧殿)이라는 이름은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國以永寧 爰及苗裔(나라가 길이 평안하게 후손에게 물려지리라)’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세종 3년(1421년) 5묘제의 관습에 따라 정전에서 나와야 하는[34] 선조들의 신주를 모시기 위해 건립되었다. 간단히 말하면 ‘조금 덜 중요한 임금들’의 위패가 모셔진 곳.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당시 재위 중인 임금을 기준으로 5대 이전의 임금들의 신주는 영녕전으로 옮기는 것이 원칙이고, 그 중 공적이 특별히 뛰어나다고 인정된 임금들만 예외적으로 정전에 계속 모셔두는 것이다. 영녕전에는 제왕의 신주 16위, 왕후의 신주 18위 총 34위가 모셔져 있다.
 
 
영녕전의 부재 처리나 건물 규모는 정전보다 약간 작지만 전반적인 공간 구성은 정전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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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제기고.jpg|300픽셀
 
default [[제기고(祭器庫)]]
 
</imagemap>
 
|align=left|'''제기고(祭器庫)'''
 
제례에 사용하는 제기를 보관하는 곳으로 영녕전 동쪽에 있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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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패 배치 ==
 
== 위패 배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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