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디난트 피에히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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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디난트 피에히'''(Ferdinand Piech)는 [[포르쉐]](Porsche)와 [[폭스바겐]]의 창업자인 [[페르디난트 포르쉐]](Ferdinand Porsche) 박사의 외손자이며 포르쉐 엔지니어, '''[[아우디]]''' 경영이사회 이사, 부의장, 의장, CEO로 활동하였으며 1993년부터 2002년까지 '''[[폭스바겐]]''' CEO를 역임하고 2002년부터 이사회 의장으로 회사를 이끌었으며 2015년 4월 사임하였다. 그는 폭스바겐을 경영하며 적극적인 인수 합병을 추진하여 [[부가티]], [[벤틀리]], [[포르쉐]], [[두카티]], [[스카니아]], [[만]] 등을 그룹에 합류시켰다.<ref>"[https://en.wikipedia.org/wiki/Ferdinand_Pi%C3%ABch Ferdinand Piëch]", "wikipedia"</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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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디난트 피에히'''(Ferdinand Piech)는 '''[[포르쉐]]'''(Porsche)와 '''[[폭스바겐]]'''의 창업자인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의 외손자이며 포르쉐 엔지니어, '''[[아우디]]''' 경영이사회 이사, 부의장, 의장, CEO로 활동하였으며 1993년부터 2002년까지 폭스바겐 CEO를 역임하고 2002년부터 이사회 의장으로 회사를 이끌었으며 2015년 4월 사임하였다. 그는 폭스바겐을 경영하며 적극적인 인수 합병을 추진하여 [[부가티]], [[벤틀리]], [[포르쉐]], [[두카티]], [[스카니아]], 만트럭 등을 그룹에 합류시켰다.<ref>"[https://en.wikipedia.org/wiki/Ferdinand_Pi%C3%ABch Ferdinand Piëch]", "wikipedia"</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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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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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히는 회장 취임 이후 스코다와 세아트의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한편 폭스바겐에 대한 강도 높은 자구책도 시행했다. 1993년 폭스바겐은 국내에만 3만 명의 과잉 인력을 고용하고 있었다. 임금은 포드나 오펠보다 20%나 높았다. 피에히는 노조와의 협상을 통해 주 4일 근무로 근무 일수를 줄이면서 임금도 줄이는 방식으로 고용 안정과 비용 절감을 동시에 이뤘다. 피에히 회장은 또 오늘날 일반화된 플랫폼 공유를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폭스바겐 그룹을 최고의 생산성을 가진 자동차 회사로 탈바꿈시켰다. 플랫폼 공유는 한 군데서 개발한 뼈대를 다른 브랜드도 사용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예들 들어 골프 4세대에 쓰인 A 플랫폼은 나중에 폴크스바겐의 보라, 비틀, 아우디 A3와 TT, TT로드스터, 스코다의 옥타비아, 세아트의 톨레도 등 12개 모델에 쓰여 엄청난 개발비를 아낄 수 있었던 것이다. 또 계열 브랜드들의 차량을 공동 개발하며 비용을 절감시키고 수익을 극대화했다는 점은 대표적인 사례다. 이 기간 폭스바겐 그룹은 폭스바겐 페이톤, 아우디 A8, 벤틀리 컨티넨탈은 물론, 폭스바겐 투아렉, 아우디 Q7, 포르쉐 카이엔 등의 설계 구조를 공유하는 등 다양한 제품군을 간소화된 개발 프로세스로 출시시키기도 했다.<ref>이재원,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9/10/2013091001911.html 13명 자식 둔 '자동차 전설' 폴크스바겐 1인자 피에히 의장]〉, "Chosunbiz", 2013-09-10</ref>
 
피에히는 회장 취임 이후 스코다와 세아트의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한편 폭스바겐에 대한 강도 높은 자구책도 시행했다. 1993년 폭스바겐은 국내에만 3만 명의 과잉 인력을 고용하고 있었다. 임금은 포드나 오펠보다 20%나 높았다. 피에히는 노조와의 협상을 통해 주 4일 근무로 근무 일수를 줄이면서 임금도 줄이는 방식으로 고용 안정과 비용 절감을 동시에 이뤘다. 피에히 회장은 또 오늘날 일반화된 플랫폼 공유를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폭스바겐 그룹을 최고의 생산성을 가진 자동차 회사로 탈바꿈시켰다. 플랫폼 공유는 한 군데서 개발한 뼈대를 다른 브랜드도 사용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예들 들어 골프 4세대에 쓰인 A 플랫폼은 나중에 폴크스바겐의 보라, 비틀, 아우디 A3와 TT, TT로드스터, 스코다의 옥타비아, 세아트의 톨레도 등 12개 모델에 쓰여 엄청난 개발비를 아낄 수 있었던 것이다. 또 계열 브랜드들의 차량을 공동 개발하며 비용을 절감시키고 수익을 극대화했다는 점은 대표적인 사례다. 이 기간 폭스바겐 그룹은 폭스바겐 페이톤, 아우디 A8, 벤틀리 컨티넨탈은 물론, 폭스바겐 투아렉, 아우디 Q7, 포르쉐 카이엔 등의 설계 구조를 공유하는 등 다양한 제품군을 간소화된 개발 프로세스로 출시시키기도 했다.<ref>이재원,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9/10/2013091001911.html 13명 자식 둔 '자동차 전설' 폴크스바겐 1인자 피에히 의장]〉, "Chosunbiz", 2013-09-10</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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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 합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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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스바겐 공식 홈페이지 – https://www.volkswagenag.com/
 
* 폭스바겐 공식 홈페이지 – https://www.volkswagenag.com/
 
* 아우디 글로벌 홈페이지 - https://www.audi.com/
 
* 아우디 글로벌 홈페이지 - https://www.audi.com/
* "[https://en.wikipedia.org/wiki/Ferdinand_Pi%C3%ABch Ferdinand Porsche]", "wikipedia"
 
* 박상원,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9/17/2009091701302.html (박상원의 자동차 인물열전)페르디난트 피에히]〉, 《조선일보》, 2009-09-18
 
* 배수경, 〈[https://www.etoday.co.kr/news/view/1792258 ‘자동차 업계 전설’ 페르디난트 피에히 별세.향년 82세]〉, 《이투데이》, 2019-08-27
 
* 스케치북, 〈[https://www.motorgraph.com/news/articleView.html?idxno=6691 (스케치북 칼럼) 페르디난트 피에히, 그리고 포르쉐 917의 나비효과]〉, 《모터그래프》, 2015-05-18
 
* 이재원,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9/10/2013091001911.html 13명 자식 둔 '자동차 전설' 폴크스바겐 1인자 피에히 의장]〉, "Chosunbiz", 2013-09-10
 
  
 
==같이 보기==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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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우디]]
 
* [[아우디]]
 
* [[포르쉐]]
 
* [[포르쉐]]
* [[토니 피에히]]
 
* [[피에히]]
 
  
 
{{자동차 인물|검토 필요}}
 
{{자동차 인물|검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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