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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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latpdbs2931 (토론 | 기여)님의 2021년 1월 20일 (수) 12:01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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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Chess)

체스(Chess)는 가로와 세로가 각각 8줄씩 64칸으로 격자로 배열 된 체스보드에서 두 명의 플레이어가 피스들을 규칙에 따라 움직여 싸우는 보드 게임이고, 상대방의 최고 말인 킹(king)을 옴짝달싹할 수 없이 잡힐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는 것이 목표이다. 세계에서 가장 대중적인 게임 중 하나이다.

개요

2인용 보드 게임. 2인 제로섬 유한 확정 완전정보 게임 중 하나이다. 두 사람이 체크 무늬의 판과 특별한 모양으로 만들어진 말을 사용, 상대방의 최고 말인 킹(king)을 옴짝달싹할 수 없이 잡힐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는 것이 목표이다. 이를 '체크메이트(checkmate)'라고 한다. 바둑은 흑이 먼저 두지만 체스는 백이 먼저 둔다. 먼저 두는 백은 주도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흑보다 조금 유리하다. 아직 완전히 풀린 게임은 아니며 흑과 백이 둘 다 실수 없이 완벽하게 둔다면 비길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추정만 할 뿐이다.피스는 화이트와 블랙으로 나뉜다. 플레이어는 화이트와 블랙으로 각각 16개의 피스를 갖고 게임을 시작한다. 1개의 킹, 퀸 2개의 룩, 비숍과 나이트, 8개의 폰으로 구성되어있다. 세계적인 인기. 특히 북미/유럽에서 인기가 있다. 체스를 즐기는 인구만 6억이라고 잡기도 하지만 이건 최대치로 잡은 것이고 과대하게 집계되었다는 의견이 많다. 집계 방식마다 천차만별이어서 정확한 체스 인구란 사실 알 수가 없다. FIDE에서는 자주 즐기는 인구 기준으로 전 세계적으로 2천만에서 3천만 정도로 잡기도 했다. 어쨌든 저변이 전세계적이어서 매년 열리는 대회 수와 상금의 규모는 상당하다.[1]

역사

체스의 기원은 고대 이집트, 그리스, 중국 기원설 등등 여러 학설이 있으나, 고대 인도의 ‘차투랑가’ (‘차투랑기’로도 발음) 또는 ‘아슈타파’라는 게임에서 오늘날의 체스가 발생했다는 학설이 가장 유력하다. 현재의 체스와 달리 차투랑가는 2개의 주사위를 던져 지정된 기물만 움직였다고 한다. 체스판 생김새도 정사각형이 아닌 십자형이었으며, 4명이 하는 게임으로 마주보는 2명이 같은 편이 되는 팀 게임이었다고 한다. 고대 인도에서 사랑받던 차투랑가는 인도 북부지역을 정복한 페르시아로도 전파되어 큰 인기를 누린다. 그러던 중 이슬람 율법이 강화되어 모든 도박, 특히 주사위 게임이 전면 금지된다. 하루아침에 재밋거리를 잃은 페르시아인들 가운데 누군가가 주사위 없이 2명이 즐기는 새로운 게임을 차투랑가에서 변형시켜 고안해낸 게임이 ‘샤트랑’(Shatrangj)이다. 이 게임이 서양으로 전파되어 오늘날 체스가 되었으며, 일부 역사학자들은 이 시점에서 체스가 ‘발명’된 것으로 간주하기도 한다.페르시아인 가운데 정확히 누가 이 새로운 게임을 고안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그에 얽힌 설화는 많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이야기로; ‘새로운 게임’을 발명한 사람에게 페르시아 왕이 상을 내리려 하자 그 사람은 여러 번 사양하고, 그러다 왕이 하도 고집을 피우자 다음과 같은 상을 요구한다. 체스판 첫째 칸에는 조 한 톨, 다음 칸에는 그 두 배인 두 톨, 그 다음 칸은 다시 두 배인 네 톨, 등등 이렇게 체스판 64칸을 다 채워달라고 한다. 차투랑가가 페르시아에 전파된 것이 6세기 말에서 7세기 초, 2인용 게임 샤트랑은 다시 635~651년 사이 페르시아를 정복한 아랍인들을 통해 중동지역 및 북아프리카와 유럽의 발칸반도까지 순식간에 전파된다. 중세기까지 피정복자에서 정복자로 전파되던 체스는 이제 주로 교역루트를 통해 유럽에 전파된다.

  1. 북아메리카에서 이베리아 반도를(지금의 스페인,포르투갈)정복했던 무어족을 통해 서유럽으로 진출
  2. 비잔틴 제국을(동로마제국)통해 발칸반도를 거쳐 중동부 유럽으로
  3. 코카서스 반도와 카스피해를 건너 러시아 및 동유럽과 중앙아시아로.

고대인도 사람들이 즐기던 차투랑가는 4명이 각각 킹 1개, 룩(전차) 1개, 나이트(기병) 1개, Aufin(船) 1개, 폰(졸병) 4개, 모두 8개의 기물을 갖고 게임을 시작했다. 페르시아에서 2인용 게임 샤트랑으로 변환될 때 모든 기물의 수가 좌우 대칭으로 2배가 됐지만 킹만은 같은 편에 둘이 존재할 수 없어 Fers(재상)라는 기물이 추가됐다.차투랑가의 킹, 룩, 나이트는 근대 체스와 행마법이 동일했으나 Aufin은 오늘날의 비숍과 조금 다르게 대각선으로 2칸씩만 뛰어 넘을 수 있었고, 페르시아인들이 추가시킨 Fers도 지금의 퀸과 달리 대각선으로 1칸씩만 다니는 비교적 약한 기물이었다. 그 후로 아랍인들은 Aufin을 코끼리(像)로 대체했고, 16세기 중엽 스페인인들은 다시 코끼리를 비숍(주교)으로, Fers는 퀸으로 대체하면서 이들 기물들의 화력을 대폭 늘린다. 비숍은 이제 대각선으로 무한정 달릴 수 있는 장거리 기물로 변신했고 퀸은 직선 대각선 맘껏 달리는 초강력 슈퍼파워가 됐다. 폰이 2칸 전진하는 룰도 추가되면서 스페인 인들의 손을 거친 체스는 고리타분한 장기전에서 초반 1수의 실수에도 체크메이트 당할 수 있는 속전속결의 승부가 됐다. 다혈질의 성질 급한 이베리아인들의 특성이 체스에 베어들었다 할 수 있다. 체스가 상대방 킹을 잡아먹는 야만적 게임에서 체크메이트를 시키는 기술적이고 신사적인 게임으로 승화시킨 것은 중세 아랍인들이었다. 그 후 체스를 전수 받은 유럽 인들은 기사도 또는 신사도라는 명목 아래 체스의 이런 정신을 이어 왔다.

스페인식의 속전속결 화된 체스는 중세기 말부터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 서유럽에서 기존의 아랍식 샤트랑을 제치고 표준화된 체스로 자리를 잡아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체스는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또 세월이 흐르며 두는 법이 조금씩 변해갔으나, 구텐베르크의 활자 발명과 르네상스는 이런 추세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대량의 인쇄된 서적은 혁신적인 정보혁명을 가져왔고, 이제 많은 사람들이 지역뿐만 아니라 다른 시대에 걸쳐서 같은 정보를 공유하게 됐다. 여러 지역에 걸쳐 제각기 다르던 체스 룰은 점차 그 당시 유럽문화의 중심지였던 프랑스식(=스페인식)으로 통일되어갔고, 세월이 흘러도 더 이상 두는 법에 있어 큰 변화가 없었다. 16세기 무렵부터 스페인의 루세나(Lucena), 루이 로페즈(Ruy Lopez)와 이탈리아의 그레코(Grecco) 등 많은 인물들이 체스를 연구하고 서적으로 남겨 일부는 지금도 사본이 전해지고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그 무렵 대부분의 저자들이 직접 책을 출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종의 비밀서적으로서 소수의 필사본만 직접 제작하여 고액에 판매하던 것이 활자의 발명과 더불어 불법 제본들이 판을 치게 된 것이다. 오늘날 전해지는 서적 대부분도 이런 불법 복제 본들이다. 이런 불법 복제 본들이 저자들에게 금전적인 피해를 입혔는지는 모르나 결과적으로 역사에 그들의 이름을 남기게 했으며 체스의 보급과 활성화에 큰 역할을 했다.[2]

데이비드 솅크(David Shenk)가 지은, 체스의 역사를 다룬 '불멸의 게임'에서는 체스는 오래전부터 알레고리로서 다른 사람을 가르치거난 전략전술을 짜는 데 도움이 되었고 칠판이나 책,전보보다 더 오래된 교육도구라고 지칭했다. 또한 중세 이슬람 체스 고수 알 라시드에게 체스를 은유로 이용해서 위협적인 언사를 하기도 했고 십자군 전쟁 이후 기사들의 7가지 교양 중 하나로 여겨지기도 했다. 20세기 체스는 컴퓨터 공학의 발전에 엄청난 공을 세웠다. 인공지능, 서치패턴, 데이터베이스 인덱싱, 우선권 협상 등의 개념들을 모두 사람을 이길 수 있는 컴퓨터를 만들기 위해 진행된 연구의 산물이라고도 한다. 그 결과 1997년 IBM의 딥 블루(Deep Blue)가 가리 카스파로트에게 승리를 거둔 이후 체스에서는 컴퓨터가 인간을 완벽하게 뛰어넘게 되었다. [2]

규칙

각주

  1. 체스〉, 《나무위키》
  2. 2.0 2.1 체스란〉, 《대한체스연맹》

참고자료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