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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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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간척지 풍경. (새만금 개발청 제공)

간척(干拓, Reclamation)은 수면을 쌓고 그 안에 있는 물을 빼내거나 메워서 으로 만드는 일을 말한다. 보통 바다를 메우는 경우를 가리키지만 호수를 메우는 것도 포함한다. 방조제를 쌓고 그 안쪽을 땅이 아닌 담수호로 만드는 경우도 있기에, 땅을 메워 올리는 과정인 매립은 엄밀히 말하면 간척의 한 부분에 해당한다. 한국의 경우 비교적 수심이 얕은 서해에 간척개발을 했다. 반대로 수심이 깊다면 기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어렵기에 이 경우에는 해저터널이 더 낫다.

네덜란드폴더(polder)는 인공 제방으로 둘러싸여 있는 해수면보다 낮은 땅, 국토의 약 17%인데 간척 사업은 15세기 풍차 발명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북해에 32km의 제방 구축, 대규모 농경지 조성 세계적 규모의 간척 사업을 계획 중이며 그 효과로 담수호를 조성하여 주변 농업 지대에 관개 용수 공급하고 네덜란드의 북부와 동부 지역을 가깝게 연결하게 된다.

개요[편집]

간척은 토지 확보를 목적으로 바다, 간석지(갯벌), 호수 등을 육지로 만드는 일이다.

토지의 확보를 위해 주로 바다의 일부를 방조제로 막고, 그 안의 바다나 갯벌, 염생습지 등을 매립하거나 물을 빼내어 육지화시키는 일을 말한다. 호수도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과거에는 주로 식량 증산을 위한 농지 확보를 목적으로 많이 시행했으나, 산업화·도시화가 진행된 이후에는 농지 뿐 아니라, 공업단지를 위한 공업용지 확보, 주택, 공항, 항만의 건설 등 다양한 목적으로 간척사업을 하고 있다.

간척사업의 역사를 살펴보면, 유럽의 경우 국토에 저지대가 많은 네덜란드가 9세기 이래 간척사업을 통해 국토를 넓혀온 것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북해에 면하고 있는 독일과 덴마크 등도 유명하다. 일본은 13세기 간척사업에 대한 기록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도 공식적으로 13세기 고려시대 강화도 지역의 기록부터 조선시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간척의 역사가 깊다. 특히 20세기 이후 토목기술의 발전에 따라 나라마다 그 규모가 커졌고, 한국의 경우 최근 완공된 새만금 간척사업이 세계 최장의 방조제라는 기록과 함께 세계적인 규모의 간척사업을 시행해오고 있다.

간척사업은 한편으로 인위적인 환경 조성으로 인한 환경 문제, 특히 생태의 보고로 알려진 갯벌 등의 파괴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한다. 또한 대부분의 간척지 조성에는 농업용수, 공업용수 등 다량의 물을 확보하기 위해 큰 호수를 같이 조성하는데, 방조제로 막힌 호수가 세월이 지나면서 오염되어 심각한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이유들로 일부 선진국들에서는 간척사업 계획을 취소하거나, 심지어는 간척사업으로 육지화한 곳을 다시 방조제를 헐고 간척사업 이전의 자연상태로 되돌리는 역(逆)간척사업의 사례들도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세계적으로는 많은 나라에서 새로운 토지에 대한 요구로 인해 간척사업이 계속 시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간척지

간척지(干拓地)는 본래 바다 또는 하천이었으나 육지로 변경시킨 땅을 의미한다. 방조제관리법(防潮堤管理法)에서는 농수산업의 재해방지와 생산력증가를 목적으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보존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방법[편집]

간척지를 만들기에 유리한 곳은 1) 넓은 갯벌이 이루어져 있으며 2)해안선의 굴곡이 많고 앞쪽에 사주나 섬이 많은 곳이다. 필요에 따라 간사이 국제공항처럼 생 바다를 간척할 수도 있으나, 수심이 깊을수록 공사 비용이 증가하고 부등침하 같은 문제가 생긴다. 현대적인 항만시설은 대부분 소규모로라도 간척 및 매립을 통해 건설되었으며, 옛날에는 농지를 얻기 위해 간척을 했으나 현대에는 공업단지·주택·공항 등을 위해서도 간척을 한다.

간척지에 방조제 등 제방을 만들어 바닷물을 막고, 담수호를 만들고 물을 빼면서 토지를 만들어 나간다. 배수 시설을 통해 드러난 저지대를 염류 농도를 낮추고 침수 피해 방지 등을 위해 매립과 복토를 통해 터돋움을 한다. 한국의 경우 주변 산을 토취장으로 만들어 거기서 나온 흙들을 매립토로 활용하기도 한다. 환경파괴를 미뤄 놓고 보면 산지를 깎아 평지로 활용할 수 있어 얻을 수 있는 부지가 늘어난다. 경우에 따라 항로나 항만을 준설한 준설토를 이용하여 간척하기도 한다. 네덜란드의 경우 국토 전체가 저지대로 매립토가 부족하다보니 배수 시설을 갖추어 해수면 이하의 간척지로 활용한다. 그래서 침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배수시설에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들어간다.

바다의 간척지는 토양에 소금기를 포함하고 있어 농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이를 씻어내야 한다. 간척지는 저지대이기 때문에 소금기가 비를 통해 자연적으로 씻겨 내려가기 위해서는 수십 년 이상 걸린다. 배수시설을 통해 물빠짐을 좋게 만들고 육지의 흙을 복토, 매립해서 농경지로 사용가능한 시기를 앞당긴다.

간척사업이 이루어지면 '간척촌'이 나타나게 된다. 간척촌은 농업, 염전, 양식, 양어장 등의 사업을 하게 되는데, 전형적인 형태는 간척지를 농경지로 활용하는 농촌이다. 간척촌은 대개 계획적으로 조성되는지라 가옥의 배열이 규칙적이고 바둑판 모양이다.

비판[편집]

갯벌을 잠식하여 환경 파괴를 일으킨다고 비판받는다. 과거 갯벌은 쓸모없는 땅이나 유휴지로 생각했으나, 오늘날에는 생태학적으로 높은 생물다양성을 가지며 생물 생산성이 가장 높은 생태계 중의 하나로 밝혀졌다. 또한 자정능력도 뛰어나서 바다의 콩팥으로 불리기도 한다.

간척으로 만드는 땅은 용도가 극히 제한된다. 기본적으로 뻘밭이였기 때문에 지반이 약해서 대부분 농경지로만 쓸 수 있다. 기반공사를 최대한 하면 큰 건물도 어떻게든 가능은 하지만, 이러면 보통 토지보다 공사 비용이 많이 들어서 경제성이 크게 떨어진다. 한 예로 르노코리아자동차의 생산공장은 과거 삼성자동차였을 당시 부산광역시 강서구의 바다를 매립해서 부지를 조성했는데, 이를 위해서 기반 공사에 많은 돈이 들어갔다. 이것이 삼성자동차의 자금 흐름을 경색시켰고, 결국 르노에게 매각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농경지의 중요성이 감소한 현대에는 경제적으로도 따져도 간척 후 농업 소득보다 갯벌에서의 지역 어민 소득이 더 낫다는 지적도 있다. 예시로 새만금 간척사업 비용은 1998년 당시 2조 500억원 규모로 추산했지만, 이미 이 때부터 농경지 개발로는 투자이익을 환수하기 어렵다는 판정을 받고 산업단지 개발로 선회해야 했다.

환경 파괴라는 측면에서 또 다른 문제점은 조수 흐름의 방해다. 현재도 목포나 군산과 같이 간척으로 이루어진 도시들은 상습적인 홍수피해에 시달리고 있는데, 조류가 흘러나가야 할 길목을 간척으로 틀어막고 있으니 물이 넘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슷하게 한강변을 매립한 잠실도 21세기 들어 배수펌프장을 확충하기 전에는 상습적인 물난리에 시달려 여의도 개발시에는 샛강 매립을 포기해버렸다. 새만금 신항만은 조수흐름을 고려해 인공섬 형태로 건설한다고는 하지만 워낙 넓은 면적을 방조제로 막아버렸으니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예측하기 힘든 상태다. 안그래도 세계적으로 조수간만차가 크기로 유명한 황해에서 이러한 점은 큰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또한 간척지 특성상 지진에도 취약하며 지진 후에도 액상화 현상 등 지반 불안정이 이어진다.

간척과 영토 및 영해와 EEZ[편집]

간척은 곧 실제로 발을 디디고 생활할 수 있는 땅을 늘리는 것이기 때문에 영토의 확장과도 직결된다. 영토의 확장은 곧 영해의 확장을 불러올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간척은 대부분 서해안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서해안은 해안선 특성상 직선기선을 기준으로 영해를 책정하기 때문에 간척지로 인해 영해 내측의 바다("내수"라고 한다.)가 감소하게 된다. 그러나 영해는 직선기선의 바깥만을 의미하기 때문에, 영토면적도, 영해면적도 변하지 않는다. 내수가 육지로 변화할 뿐이다. 호수 등의 면적도 영토로 계산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외해에 접한 영해기점을 간척하는 경우는 영해가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정확히는 간조노출지(썰물 시에만 해수면 위로 드러나는 지역)는 영해 기점이 되지 못하나 '간조노출지가 육지나 섬으로부터 영해의 폭을 넘지 않는 거리에 있을 때' 간척 등으로 해수면보다 높은 영구적인 시설을 세우면 새로운 영해기점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실제로 한국 정부도 2014년 간조노출지를 정확하게 재측정 및 영구시설물을 건축하여 영해를 확장하였다.

간척을 한다고 무조건 영해 기점이나 EEZ 기점을 인정해주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러나 영해나 EEZ 또는 점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분쟁지역을 간척하여 인공섬을 만드는 사례들이 있다. 오키노토리시마 암초는 암초로 EEZ를 주장 할 수 없으나 콘크리트 타설 및 간척을 하며 EEZ 기점으로 주장한다. 남중국해/영토 분쟁의 경우도 점유 및 EEZ 주장을 위하여 중국 등의 각국이 점유 중인 섬을 간척하여 인공섬들을 만들었으나 모두 섬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암초는 영해만 가지며 영해의 폭을 넘어선 간조노출지는 그냥 바다로 취급된다.

역간척[편집]

간척의 반대로, 기존의 육지를 갯벌과 같은 해안 습지로 되돌리거나 원래 육지였던 지역을 물로 만드는 일을 말한다. 위의 비판에서 나오는 것처럼 환경 파괴와 경제성의 변화로 인해 오히려 갯벌의 가치가 더 커져서 이를 위해 갯벌로 복원하는 것. 충청남도에선 금강 하구 지역의 역간척을 추진하고 있으며, 전라남도 순천시에서도 순천만 지역의 간척지를 역간척하여 습지로 복원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충청남도에서는 3개 간척지를 오는 2023년까지 역간척 사업을 진행하여 모두 갯벌로 회귀하는 계획을 현재까지 추진 중이나, 순천만의 계획은 좌초되어 무산되었다.

대한민국의 대표 간척지[편집]

한국의 서 · 남해안은 잘 발달한 간석지와 얕은 바다의 리아스식 해안으로, 만 입구의 양쪽 끝 사이는 거리는 짧으면서도 내부 간석지의 면적이 넓어 간척하기 매우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고려 시대 및 조선 시대에는 양곡 증산 및 군량미 조달을 위해, 일제 강점기에는 식민지에서의 쌀 증산과 토지 개량 사업을 목적으로 간척이 이루어졌다. 광복 후에는 기근 해결을 위한 식량 증산 목적으로 소규모 간척이 이루어졌고, 1970년대 이후에는 농업 종합 개발 목적으로, 1990년대 이후에는 다목적 종합 개발로 간척 사업이 추진되었다.

대규모 간척 사업은 해양 생물 서식지를 완전히 파괴하였으며, 육상에서 배출되는 오염 물질은 연안역의 해양 생태계 건강성을 악화시켰고 다양성을 훼손하였다. 2000년대 이후 훼손된 연안 지역 복원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선진국과 같은 규모가 큰 연안 복원은 이루어지지 않고, 국가 기관 및 지방 자치 단체를 통해 소규모의 복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연안 생태계의 생태 · 사회 · 경제적 잠재력을 유지하고 복원하는 것은 국가 경제의 지속성을 확보를 아주 중요한 토대이다.

고려 고종 19년(1232년) 몽골군의 침입으로 강화 천도가 단행되자, 이주민들이 급증하면서 이를 부양하기 위한 막대한 식량이 필요하였다. 병란이 장기화되면서 조정은 체계적인 개간 계획을 세우게 되었고, 해안 저습지 간척은 그중 가장 중요한 사업이었다. 고종 43년(1256년)에는 조강 연안의 제포와 와포에 둑을 쌓아 좌둔전을 만들고, 염하 연안의 이포와 초로를 막아 우둔전을 만들도록 하였다. 이후 공민왕 때부터는 새로운 공법으로 깊은 갯골까지 막을 수 있게 되어 넓은 간척지가 나타나게 되었고, 대표적인 간척 사업은 교동도 북쪽의 인점포 일대의 영산언 공사이다. 이후 조선 개국 초부터 임진왜란 전까지 약 200년 동안은 대규모의 간척 사업은 없었다. 숙종대에 이루어진 간척 사업은 비포언과 북적언, 가리언 등이 있고, 특히 강화도 남쪽의 선두포언은 강화도 최대 규모의 간척 사업이다. 강화 지역의 간척 사업은 18세기 말에 이르러 일단 완료되었고, 1910년대까지 굴곶포와 초지의 남쪽에 남아 있던 소금밭을 제외하면 개간 가능한 갯벌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이후 20세기에 이르러 현대적 토목 기술을 통해 강화도 남단을 비롯한 일부 해안에서 간척 사업이 재개되었다.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도둔리 일대에서는 한국 전쟁 후 피란민을 대상으로 사업 참여자를 모집하여 간척이 이루어졌다. 1954년에 3 - 4세대가 이주하였으며 그 후 꾸준히 유입되어 약 100세대가 공유 수면 614,876㎡를 간척하는 둑막이 공사를 시작하여 1961년에 완료되었다. 조성된 간척지는 완공 후 3년이 지난 뒤부터 농사를 지을 수 있었으며, 이 간척지는 '신간지'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이주민들은 주로 천막에서 생활하면서 둑막이 조성에 노동력을 제공하였다. 공사 비는 준공 후 갚는 조건으로 조합에서 사채를 빌려 조달하였으며, 부족한 채무는 인근 지역 주민에게 토지를 매각하여 충당하였다. 간척 완료 후 채무 반납지를 제외한 토지를 이주민들에게 참여 일수에 따라 차등 배분하였다. 마지막 간척은 부사 지구 간척으로 1980년대 후반 민간 기업에 의해 시작되어 1991년에 완료되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대규모 간척-서산 간척 사업

1970년대부터 우리나라는 독자적 기술을 활용하여 대규모 간척 사업들을 시행하였다. 그중에서 서산 간척 사업은 대한민국에서 민간 기업에 의해 진행된 최초의 대규모 간척 사업으로 1980년 착공하여 1995년 완공되었다. 1984년에 물막이 공사가 끝났는데, 천수만은 조수 간만의 차가 크고 유속이 빨라 물막이 공사의 막바지 단계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폐유조선을 바닥에 가라앉혀 물살을 막고 공사를 마무리하였다.

방조제의 길이는 A, B 지구를 합해 총 7,686m이며, 방조제 건설에 의해 매립된 면적은 15,409ha이다. 서산 A지구에서는 9,626ha, 서산 B지구에서는 5,783ha가 매립되었다. 매립된 지역의 대부분은 농경지로 개발되었고, 이 사업 결과 당시 서산군은 논의 면적이 한국에서 가장 넓은 행정 구역이 되었다. 이 사업에 의해 담수호인 간월호 (A지구)와 부남호(B지구)가 형성되었으며, 간월도가 육지와 연결되 었다. 굴의 산지로 유명하였던 간월도는 육지와 연결된 후 사람들이 찾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간척 사업은 낙후되었던 서산의 발전에 기여하였고, 겨울철 철새들의 서식지로 이용되고 있다. 대규모 농업 지역의 특성상 사람의 접근이 어렵고 기계 영농에 의한 낙곡이 많았기 때문에 농사를 짓지 않는 겨울에 철새의 서식지가 되기 시작하였다. 대표적인 철새는 가창오리, 큰기러기, 말똥가리 등이 있다. 하지만 방조제 건설 후 갯벌을 서식지로 하는 도요새류는 감소하였고, 담수호의 수질은 점차 악화되었다. 현재 담수호의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간척-새만금 간척 사업

새만금 방조제는 1991년 기공하여 2006년 물막이 공사가 완료되었다. 방조제의 총길이는 33.9km이며 토지 28,300ha와 호소 11,800ha를 조성할 계획이다. 새만금 방조제의 길이는 세계에서 가장 길다. 새만금이라는 이름은 만경평야의 '만'자와 김제평야의 '금'자에 새롭게 확장한다는 뜻의 '새'자를 덧붙여 만들어졌다. 오래전부터 유명한 만경 · 김제평야와 같은 옥토를 새로 일구어 내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새만금의 내부 공간 구조 계획은 1991년 초기 구상 이후 크게 네 번의 수정을 거쳤고, 가장 최근 계획은 2014년 9월에 확정되었다. 이 계획에 의하면 산업 · 연구 용지, 국제 협력 용지, 관광 · 레저 용지, 농 · 생명 용지, 배후 도시 용지, 환경 · 생태 용지 등 총 6가지 용지가 개발될 계획이다.

새만금 사업은 국토 확장, 대규모 우량 농지 조성, 수자원 확보 효과와 관광권 형성을 통해 지역 경제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개발 과정에서 갯벌의 훼손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고, 담수 이후의 수질 오염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주요 간척지 위성영상

세계의 간척[편집]

북한[편집]

북한 역시 해안선이 복잡하고 수심이 얕은 황해를 중심으로 간척사업이 활발하다. 북한에서는 간석지라 하며, 대표적인 사례로 1백 리 제방을 둘러 만든 신도군이 있으며, 염주 다사도-철산 사이 대계도간척지에는 새만금방조제의 절반이 넘는 약 18km의 제방이 건설되어 있다. 평북 대계도간척지와 황남 룡매도간척지는 최근 김정은 정권에서 대표적인 치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대규모 간척사업이다.

북한은 1980년대부터 경제 침체와 식량수급의 불안정이 심화되어,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대규모 간척사업에 매진했다. 1980년 북한이 조선로동당 제6차 당대회에서 4대 자연개조사업의 하나로 계획한 방조제의 길이는 1,072km, 간척지 면적은 30만 정보에 달한다고 한다. 2010년대 동안 개간한 면적이 약 200㎢에 이른다고 한다. 2019년에는 서해안 간척사업으로 약 5000정보(약 50㎢)의 땅을 새로 얻었다고 한다. 문제는 북한의 경제가 파탄난 상황인데, 이렇게 엄청난 돈을 퍼붓고 환경 보존 추세에도 역행해가며 간척지를 건설하느니 그 돈으로 비료를 사오고 그놈의 주체농법도 치우고 협동농장을 개혁하는 쪽이 몇배는 낫다는 것이다.

네덜란드[편집]

국토가 좁은데다 농지가 부족하다 보니 대대로 간척사업을 통해 영토를 확장해 왔다. 전체 국토에서 간척지의 비율이 무려 25%에 달하는데 그것도 해수면보다 낮은 점이 특징이다. 국명인 '네덜란드'의 뜻이 '낮은 땅'이다. 오죽하면 "세계는 신이 만들었지만, 네덜란드는 네덜란드인이 만들었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

수도인 암스테르담만 해도 많은 부분이 간척지이다. 한국이나 홍콩처럼 한꺼번에 하나의 영토로 만든 게 아니라 섬을 여러 개 띄워 놓았는데 그 사이로 운하들이 있다. 소위 '폴더'라고 하여 바다 위에 만든 땅들이 한둘이 아니다. 플레볼란트는 세계 최대의 인공섬으로 원래는 그 어떠한 육지도 없었던 곳이며 간척 전에는 자위더르 해(Zuiderzee)라는 내해였다. 원래 1918년 코르넬리스 렐리라는 사람이 처음 구상했지만 기술적 한계로 인해 1957년에야 간척 공사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플레볼란트에는 구상자의 이름을 딴 렐리스타트란 도시가 있고, 플레볼란트 주의 주도로 지정되어 있다.

하지만 근래에는 갯벌의 가치가 떠오르고 잦은 간척사업으로 인한 환경파괴가 문제가 되면서 일부 간척지를 습지화하고 있다. 플레볼란트에서 서북쪽에 떨어진 마르케르 호수도 처음에는 간척지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환경문제 및 비용문제 등 여러가지 문제가 겹쳐 2003년 사실상 계획을 폐기했다. 대신에 제방 인근에 섬 몇 개를 띄운다는 계획이 있으나 아직까지의 전진은 없다. 최근에는 간척사업이 예전처럼 진행되고 있지는 않다.

이쪽은 바다를 제방이나 벽으로 막고 물을 퍼내는데 이 역할을 풍차가 해냈다고. 지금은 풍차가 아니고 전기의 힘으로 해나가는 중이다.

일본[편집]

한국과 비슷한 해안의 특징상 간척지들이 많은데, 여기는 아예 바다 위에 띄운 인공섬들이 한둘이 아니다. 해안가의 주요 도시들을 보면 네모나게 생긴 인공섬들이 많다.

기록상으로는 1284년경부터 시작되었는데 산지 비율이 높은 특성상 주로 농토 확보를 위한 간척이 이루어졌다. 2차 대전 이후에는 항만시설, 산업용지, 주거 용지등의 목적으로도 시행되었으며 도쿄만 매립이나 오다이바, 간사이 국제공항등이 있다. 간척지가 상대적으로 넓지 않아 대규모 간척지는 드문 편이나 35㎢ 규모의 이사하야 만 간척 사업(諫早湾干拓事業)으로 논란이 있었다.

1978년 나리타 공항 분쟁이 빚어진 후 일본의 신공항들은 가능한 한 인공섬에 건설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간사이 국제공항을 시초로 하며 고베 공항 등에서 예전부터 후쿠오카도 인공섬 형태의 신공항을 건설하는 떡밥이 나돌 지경이다. 하지만 다들 워낙 연약지반들이라 간사이나 하네다처럼 간척 초반부터 난항이 발생하는 등 문제점이 한둘이 아니다.

홍콩[편집]

영토의 70% 이상이 산지라 여러모로 불편하기 그지없는 홍콩은 간척을 통해 평지를 확보해 왔다. 위 지도를 잘 살펴보면 구룡반도나 센트럴 등 홍콩 역사/관광/경제의 중심지는 싸그리 전부 간척지 위에 지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마천루들도 대개 간척지에 지어졌다. 구룡반도의 국제상업센터와 샤틴의 주거지역 역시 그러하며 이 과정에서 인공 강도 만들어졌다.

악명 높았던 카이탁 국제공항도 바다를 메꿔 활주로를 확보했고 1974년 매립을 통해 활주로를 연장했으며 1982년 공항을 또 확장했다. 1998년에 개항한 홍콩 국제공항도 그 작은 첵랍콕 섬을 기존의 몇 배 넓이로 간척했으며 앞으로도 간척으로 공항을 확장할 예정이다.

한때 정부에서 내세웠던 차기 간척 계획. 그러나 공사비용 등의 문제로 사실상 폐기되었다. 지도에 보면 카이탁 공항이 위치했던 까우룽 만 전체를 확 메꿔버리는 것을 계획했는데 지금은 기존의 활주로 자리에 크루즈 터미널이 등장했으니 사실상 불가능한 꼴. 일각에서는 홍콩 섬과 까우룽 반도 사이의 해협까지도 확 메꿔버린다는 떡밥이 나돌고 있으나 이러면 빅토리아항이 사라지기 때문에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싱가포르[편집]

2013년까지 135㎢를 간척했고 추후 100㎢ 정도 더 간척하여 1960년대 582㎢ 면적을 800㎢로 확장할 계획이다. 국토가 좁아 간척을 위한 모래를 주변 국가에서 대량으로 수입했는데 이로 인한 분쟁이 있다. 이미 경제성이 있는 수심 10m 이내 권역은 죄다 매립이 되었고 이제는 경제성 확보가 어려운 수심 15m 이내 권역까지 간척에 들어갔다.

싱가포르의 관문인 싱가포르 창이 공항 부지도 100% 간척지이다. 인천국제공항과도 유사한 면이 있다.

마카오[편집]

원래 10㎢의 작은 섬들을 간척하여 30㎢까지 늘린 상태다. 카지노가 밀집해 있는 코타이는 콜로안 섬과 타이파 섬 사이를 간척해 만들어진 지역이다.

아랍에미리트[편집]

두바이가 과거 두바이유를 통해 벌어놓은 오일머니를 이용하여 금융 및 관광 중심지로 발전을 위한 대규모 간척 사업을 벌였다. 관광 및 휴양지로서 개발한 곳이라 모양이 매우 독특한 것이 특징.

물론 두바이뿐 아니라 아부다비에도 있는데 저렇게까지는 아니다. 간척과 환경문제 간의 관계를 인식한 아부다비는 간척지에 맹그로브를 심는 등 숲/습지로서 재활용하고 있어서 일석이조이다.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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