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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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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간(開墾)

개간(開墾)은 산림 · 황무지 · 하천부지 등을 농경지 등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관개시설 · 제방 · 도로 등을 조성하는 토목공사이다. 개작(開作)·개척·기간(起墾)이라고도 한다. 넓은 뜻으로는 매립·간척·지목변경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경사가 완만하고 토양조건이 좋은 야산 또는 산간지역의 나무를 베고 뿌리를 캐내어 토지를 정지하여 농경지를 만든다. 또는 황무지나 하천부지의 땅을 일구어 영농에 편리하도록 길을 만들고 제방을 쌓는 것이 개간의 과정이다.

개간의 형태에는 대체로 계단식 개간, 원지형 개간(原地形開墾), 개답(開畓) 등이 있다. 계단식 개간은 경사지 개발의 한 형태로서, 등고선에 따라 흙을 정지하고 농수로를 설치하여 토양의 침식과 토사의 유실을 막는 것이다. 원지형 개간이란 일부 지점을 정지만 할 뿐 원지형을 그대로 두고 겉흙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는 개간비용이 절감되는 이점이 있으나, 경사가 급한 지형에서는 토양의 침식과 토사의 유실이 있을 우려가 있다. 개간지는 밭이나 논·과수원·목장 및 초지(草地)·뽕밭 등으로 이용된다.

개요[편집]

개간은 내버려 두어 자연 상태가 유지된 거친 땅을 처음으로 일구어서 농경지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관련규정(개간사업 추진에 관한 규정)은 임야 · 황무지 · 초생지 · 소택지 · 폐염전 등 농지조성에 적합한 토지로서 농지로 이용되고 있지 아니하는 토지를 농지로 조성하는 행위라 한다. 그러나 개별법에서 정한 다음과 같은 지역은 개간대상지역에서 제외한다.

① 국가, 지방자치단체 또는 공법인이 공용 또는 공공용의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거나 사용하기로 확정한 토지,
② 산림지역으로 보안림, 산림유전자원보호림, 시험림,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산림, 보호수, 수형목 및 희귀 동 · 식물서식지, 명승지, 유적지, 휴양지, 유원지 등 자연경관의 보존이 필요하다고 인정하여 시장 · 군수 또는 산림청장이 고시한 산지전용제한지역, 산사태 위험지역 등 재해발생이 우려되는 지역(다만 방재시설을 할 것을 조건으로 하는 경우는 해당되지 않음), 분묘 중심점으로부터 5미터 이내(다만 연고자의 동의를 받았거나 연고자가 없는 분묘의 경우는 해당되지 않음) 백두대간 보호지역, 전용의 대상이 되는 산림에 조림 성공지 또는 형질이 우량한 산림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 지역, 농지조성에 적합한 토지로서 농지로 이용하고 있지 아니하는 토지, 기타산지관리법의 규정에 의하여 산림의 전용 및 형질변경을 제한하는 지역,
③ 국립묘지, 공설묘지, 사설묘지 및 문중 산묘지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지정한 국립묘지 또는 공설묘지의 예정지,
④ 문화재보호법에 의하여 지정된 문화재와 그 보호구역,
⑤ 사방지(다만, 사방지의 경우 사방사업법규정에 의하여 사방지의 지정해제가 가능할 때에는 해당되지 않음).

근거는 농어촌정비법이며, 농림축산식품부 고시인 개간사업 추진에 관한 규정(2013.11)이다.

역사[편집]

한국에서는 고대국가 시대에 이르러 본격적인 농경생활로 관개와 개간이 있었을 것이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도전(稻田:벼농사)을 시작하였다는(백제의 다루왕) 것이나 남택(南澤)에 도전을 열었다는(백제의 고이왕) 것은 소택지(沼澤地:늪과 못이 많은 습한 땅)에 논을 갈았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신라의 일성이사금 때에는 제방을 고쳐 논·밭을 넓게 열었다고 하는데, 이는 관개사업으로 논을 많이 만들었다는 것이 된다.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이르기까지 벽골제(碧骨堤)·의림지(義林池) 등 큰 관개시설이나 저수지를 많이 축조하여 논의 면적을 증대시켰다. 이러한 개답(開畓:논을 새로 만듦)은 낙동강 기슭에 있는 신라의 진흥왕순수비(眞興王巡狩碑, 昌寧碑)에 ‘畓(답)’이라는 글자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도 당시에 힘을 쓴 사업이었다고 생각된다.

고려시대에는 인구의 증가가 활발해짐에 따라 경지의 부족을 느끼게 되었다. 또한, 백성의 생활을 개선하고 국가의 수입을 늘리기 위하여 농업기술의 개선과 아울러 경작지의 확대가 필요하였다. 이에 경작지 확대를 위하여 북방으로 진출하기도 하고 산간의 입체적인 개간도 이루어졌다. ≪고려도경 高麗圖經≫에 의하면 멀리서 보기에 마치 사다리 모양으로 산에 개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종래에 힘써 오던 수리사업도 계승하여 옛날 제방의 수축은 물론 새로운 제언(堤堰:물을 가두어 두기 위해 하천이나 골짜기 따위에 쌓은 둑)의 증축도 많아 벼 재배의 확대에 박차를 가하였다. 고대국가시대에는 논밭의 개간이 백성에게 방임되어 있었으나, 고려시대에는 국가에서 적극 장려하였으며 조세의 대상으로 삼았다. 973년(광종 24)부터 시행된 <개간전규례 開墾田規例>에서는 사전(私田)이면 2년 뒤부터 전주(田主)와 반분하고, 공전(公田)이면 4년 뒤부터 조세를 내도록 하였다.

고려시대의 개간사업에 있어서 또 하나 특징은 해안지대에 제방을 쌓아 농지를 확장하는 간척사업도 행하여졌다는 것이다. 그 한 예로 고종 때에 몽고병의 침입으로 말미암아 강화도로 천도하게 되었는데, 피난민의 생활과 군사들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하여 해안지대에 제방을 쌓아 농지를 조성하였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강화도의 여러 포구에 제방을 구축하여 둔전(屯田:주둔군의 군량을 지급하기 위하여 마련되어 있던 밭)을 만들어 방술군의 군량을 충당하기도 하였다. 평안도위도(葦島)에서는 김방경(金方慶)이 서북면 병마판관으로서 몽고병의 침입을 막아 싸울 때 조수를 막아 개간하고 파종하여 큰 수확을 얻었다. 공민왕 때에도 해안이나 크고 작은 섬에 방조제를 쌓아 경지를 확대한 예가 있다.

농지조성사업은 조선시대에도 꾸준하게 이루어졌다. 1414년(태종 14)에는 경기도의 통진(通津)과 고양포(高陽浦)에 방조제를 축조하여 200여 섬의 곡식을 파종할 수 있는 농경지를 개척하였으며, 세종 때에는 해안에 둑을 쌓아 농경지를 만들었다. 1486년(성종 17)에는 황해도 재령군의 전탄(箭灘)일대에 큰 도랑을 만드는 사업을 실시하였다. 숙종 때에는 황주(黃州)에서 대야도(大也島)까지 방축을 하여 갈대밭과 봇도랑을 가경지로 만들었으며, 영조와 정조 때에는 큰 하천인 낙동강·청천강 등의 부근에 제방을 쌓아 많은 황무지를 개간하였다.

한국에서 근대적인 의미의 개간은 1907년(고종 11) 7월<국유미간지이용법>을 제정, 공포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때 개간가능면적의 크기는 토목기술수준과 경제성 등을 고려해볼 때 약 80만에 달하였다. 민족항일기에는 산미증식계획에 의하여 수리사업에 역점을 두었으며, 일부의 간척사업과 미간지의 개답 외에는 개간의 실적이 별로 없었다.

1907년부터 1942년 말까지의 국유미간지 처분상황을 보면 대부면적 9만7672㏊ 중 3만7658㏊를 불하하였으며, 불하된 면적 가운데 34%인 1만2933㏊만이 개답되었고, 권리소멸면적은 5만2912㏊이었다. 따라서 1942년 3월 현재 대부허가면적은 7,099㏊이었다. 광복 이후 1956년까지는 <국유미간지이용법>에 따라 39건 44.7㏊ 중 13.2㏊만이 개답 또는 개전되었고 나머지 31.5㏊는 대부권리를 상실하였다.

1956년 12월에 <국유미간지이용법>이 폐지되고 <국유재산법>이 제정, 공포되어 개간사업이 정책적으로 시도되었다. 그 뒤 국제연합한국개간사업기구(UNKUP)를 발족시켜 국토 전역에 걸친 토지이용능력 구분과 개간 기본조사에 착수하였고, 유휴지 개발을 촉진하기 위하여 1958년 10월에는 유휴지 이용방안을 성안하였다.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기간은 개간사업의 강행기로서, 1962년 2월 <개간촉진법>을 제정, 공포하여 개간사업을 적극 추진하였다.

1962년에는 국제연합특별기금의 지원으로 한국 전 지역에 대한 개간에 적합한 땅의 선정을 위한 기본조사가 착수되어 1968년에 완료되었다. 이 기간에는 조사대상면적(국토의 95%)의 86%에 해당하는 805만3248㏊의 조사가 완료되었다. 이 가운데 1급지에 속하는 188만402㏊를 제외한 617만2846㏊에 대하여 급지를 구분하였는데, 개간가능면적은 4급지 이상으로 18만5071㏊로 추정되었다.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기간(1962∼1966)에는 국고보조 및 외국원조로 11만275㏊를 개간하였으며, 사업비는 52억3557만여 원이 투자되었다. 제2차 경제개발5개년계획기간(1967∼1971)에는 <개간촉진법>을 폐지하고 <농경지조성법>을 제정하여 민간주도형 개간사업으로 추진하도록 하고, 종전의 사업비 재원인 국고보조 및 지원부담 등을 변경하여 지방비와 미공법 480호의 Ⅱ(PL·480·Ⅱ)로 사업비의 일부를 보조하였을 뿐 대부분 농민부담으로 조달하게 되었다. 이 기간에 개간한 면적은 총 4만2054㏊이고, 총 사업비는 32억2143만여 원이 소요되었다.

제3차 경제개발5개년계획기간(1972∼1976)은 대단위 단지화 개발기로 과거의 소규모의 산발적인 개간을 지양하였다. 개간방법도 토양 및 급지조건에 알맞는 원지형 반계단식 및 계단식 공법을 택하여 단지화 또는 집단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한 첫번 시도기였다. 1972년 여주·태안·익산 및 신북 등 4개지구 600㏊에 대단위 야산개발을 시범적으로 실시하여 콩단지를 조성하였고, 경기도 연천·철원지구에 399㏊의 산지도 개발하였다. 1973년에는 경기도 공덕·유곡지역에 346㏊를 개발하였고, 경기도 연천·철원의 북방에 393㏊의 농경지를 조성하였다.

1975년 4월에는 <농경지조성법>을 폐지하고 <농경지확대개발촉진법>을 공포하여 농업진흥공사 산하에 농지개발기술단을 두고 전국의 개간가능지 33만㏊의 개발사업에 착수하였다. 결국 이 기간에는 총 547개 지구 1만7724㏊를 개간하여 총사업비는 136억1701만여 원이 소요되었다.

제4차 경제개발5개년계획기간(1977∼1981)은 농지확대개발 의무화기간으로서 <농경지확대개발촉진법>에 따라 국가가 직접 개발에 참여하였고, 사업비도 국고보조금과 지원부담 및 융자금으로 조달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 기간에는 총 106개 지구의 대단지를 중점적으로 개간하였는데, 개발면적은 8200㏊였으며 사업비는 총 174억6131만 원이 투자되었다. 1982년부터 1985년에도 계속하여 대단위 중심의 개간이 지속되었다. 같은 기간에는 49개 지구에 걸쳐서 1958㏊가 개간되었고, 사업비는 총 119억5412만여 원이 투자되었다.

전작지의 개간은 1995년 현재 19만7113㏊가 개간되어 전체개간가능면적의 30.1%가 농지화 해서 경작되고 있고 초지가능면적은 29만9000㏊로 이중 9만400㏊가 개간되여 30.2%의 개발실적을 보이고 있다. 과수원으로 이용이 가능한 개발가능면적은 11만6000㏊로 1995년 현재 8200㏊가 개발되어 7.1%의 실적을 보이고 있다.

개간사업은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시작된 1960년대 중반부터 1980년까지 활발히 추진되어 왔으며 그 이후에는 개간이 거의 중단된 상태에 와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체개간가능면적의 개발실적은 28만8900㏊로 23.1%의 실적을 보이고 잇다. 1987년 이후부터는 산지개간이 완전중단상태에 있는데 UR대책과 국제무역기구(WTO)의 출범과 관련해서 농가소득을 제고시키고 수출농업으로 육성 발전시키기 위하여는 초지 및 과수원의 조성을 통한 가축 및 과실의 생산과 이의 수출전략도 고려해 볼 수 있다.

개간사업의 효과를 결정하는 요인으로는 개간지의 비옥도, 작부체재(作付體制:농작물을 심는 체제)·숙답기간(熟畓期間), 농민의 영농기술수준 등이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조사, 분석한 개간지의 영농현황을 살펴보면, 개간지의 토지이용률은 서류(薯類) 7.9%, 특용작물 8.7%, 과수 6.9%, 뽕밭 2.6%, 잡곡 4% 등이며, 단위당 생산수량은 일반 숙전(熟田:해마다 농사를 짓는 밭)보다는 낮으나 숙답화 과정을 거친 후에는 별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1978년 조사시점을 기준으로 한 개간지의 식량증산 효과는 1978년 불변가격으로 295억 원을 생산하였으며, 쌀 2,482M/T, 맥류 10만9755M/T, 서류 35만8349M/T, 두류 6만5755M/T, 잡곡 1만8938M/T, 과실류 15만5134M/T 등을 생산하였고, 당 생산액은 약 111만 원에 달하였다. 국민소득과 인구의 증가에 따라 식생활 형태가 과거의 양곡위주에서 과채류 및 고단백식품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유휴산지의 개발은 지역여건 및 경제성이 허락하는 한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개간의 목적[편집]

한국은 국토의 2/3가 산으로 되어 있어 개간이 가능한 임야가 상당히 있으므로 국토개발사업의 일환으로 개간을 촉진하고 있다.

개간의 목적은 비옥한 경작지를 만드는 데 있으므로 나무나 풀의 뿌리를 뽑고 흙을 일구는 토목적 과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지력증진적(地力增進的)인 개간방식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현재 일반적으로 실행되는 것은 나무베기·풀베기·불지르기·뿌리뽑기·파일구기·흙부수기 등의 방식이다. 불지르기는 하초(下草)나 관목류(灌木類)가 많은 곳에서는 노력이 많이 절감되지만, 장래 지력(地力)의 원천이 되는 유기물을 태워 버리기 때문에 결코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불지르기를 피하고 파일구기를 하여 풀을 땅 속에 갈아 엎는 방법을 취하면 노력은 많이 드나 지력의 유지 증가 면에서는 유리하다.

산림개간에서는 뿌리뽑기에 막대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나무그루를 방치한 채로 경작하면서 수 년 후 그것이 부패한 다음 뿌리뽑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레이크도저·불도저 등을 이용하여 뿌리뽑기·전석제거(轉石)·경반파쇄(硬盤破碎)를 하여 파일구기의 효과를 높이고 있다.

개간허가기준[편집]

개간허가기준은 각 시군의 조례나 방침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으며 관할 군청 건설과 농업기반담당에 문의하면 상세한 안내가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개간허가 기본 조건
  1. 진입로가 있어야 함.
  2. 경사는 25도 이하일 것.
  3. 입목축적이 시군 평균의 150%이하 일것.
※개간시 유의사항
  1. 토지소유자만 신청가능.
  2. 법인은 제외. 단, 농업법인은 가능.
※ 개간허가시 장점

대체산림조성비 면제, 개발부담금 면제

※ 개간허가 절차
  1. 개간대상지선정신청
  2. 사업계획수립
  3. 사전환경성 및 사전재해영향성평가서 검토 협의
  4. 사업계획공고
  5. 사업계획승인신청
  6. 시공
  7. 준공검사
※ 개간허가 신청시 필요한 서류
  • 사전재해영향성평가서(개간면적 : 5,000㎡ 이상)
  • 사전환경성검토서(개간면적 : 5,000㎡이상(보전관리), 7,500㎡이상(생산관리, 농림지역),10,000㎡이상(계획관리)
  • 산지전용협의서, 토목설계서, 예정지실측도, 표고분석도, 경사분석도, 산림조사서, 복구계획서
※관련법령
  • 농어촌정비법 제12조 제1항 시행규칙 제12조
  • 산림법 제 90조
※관련부서
  • 군청 건설과 농업기반담당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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