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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역사유적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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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역사유적지구(慶州歷史遺蹟地區)
월성지구
경주역사지구 안압지 항공사진
안압지
첨성대
남산지구
대릉원지구
경주역사지구 미추왕릉
황룡사지구
경주역사지구 용장사지마애여래좌상
산성지구

경주역사유적지구(慶州歷史遺蹟地區)는 2000년 12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대한민국의 세계유산으로 경주시 일대의 신라 유적,유물들을 말한다.

경주역사유적지구에는 조각, 탑, 사지, 궁궐지, 왕릉, 산성을 비롯해 신라 시대의 여러 뛰어난 불교 유적과 생활 유적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특히 7세기부터 10세기 사이의 유적이 많으며 이들 유적을 통해 신라 고유의 탁월한 예술성을 확인할 수 있다. 경주는 신라의 수도로 신라의 1,000년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며, 신라인의 생활 문화와 예술 감각을 잘 보여 주는 곳이다. 경주역사유적지구는 총 5개 지구로 이루어져 있다. 다양한 불교 유적을 포함하고 있는 남산지구, 옛 왕궁 터였던 월성지구, 많은 고분이 모여 있는 대릉원지구, 불교 사찰 유적지인 황룡사지구, 방어용 산성이 위치한 산성지구가 이에 해당한다.

지난 1996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불국사석굴암, 이후 따로 지정된 양동마을은 경주시에 있지만 경주역사유적지구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개요[편집]

경주역사유적지구는 신라 천 년(B.C 57 - A.D 935)의 고도(古都)인 경주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불교유적, 왕경(王京)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이미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일본의 교토, 나라의 역사유적과 비교하여 유적의 밀집도, 다양성이 더 뛰어난 유적으로 평가된다.

2000년 12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경주역사유적지구는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유산이 산재해 있는 종합역사지구로서 유적의 성격에 따라 모두 5개 지구로 나누어져 있는데 불교미술의 보고인 남산지구, 천년왕조의 궁궐터인 월성지구, 신라 왕을 비롯한 고분군 분포지역인 대릉원 지구, 신라불교의 정수인 황룡사지구, 왕경 방어시설의 핵심인 산성지구로 구분되어 있으며 52개의 지정문화재가 세계유산지역에 포함되어 있다.

경주 남산은 야외박물관이라고 할 만큼 신라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곳으로 신라 건국설화에 나타나는 나정(蘿井), 신라왕조의 종말을 맞게 했던 포석정(鮑石亭)과 미륵곡 석불좌상, 배리 석불입상, 칠불암 마애석불 등 수많은 불교유적이 산재해 있다.

월성지구에는 신라왕궁이 자리하고 있던 월성, 신라 김 씨 왕조의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난 계림(鷄林), 신라통일기에 조영한 임해전지, 그리고 동양 최고(最古)의 천문시설인 첨성대(瞻星臺)등이 있다.

신라 왕을 비롯한 고분군 분포지역인 대능원지구대능원지구에는 신라 왕, 왕비, 귀족 등 높은 신분계층의 무덤들이 있고 구획에 따라 황남리 고분군, 노동리 고분군, 노서리 고분군 등으로 부르고 있다. 무덤의 발굴조사에서 신라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금관, 천마도, 유리잔, 각종 토기 등 당시의 생활상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황룡사지구에는 황룡사지와 분황사가 있으며, 황룡사는 몽고의 침입으로 소실되었으나 발굴을 통해 당시의 웅장했던 대사찰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으며 40,000여 점의 출토유물은 신라시대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산성지구에는 A.D 400년 이전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명활산성이 있는데 신라의 축성술은 일본에까지 전해져 영향을 끼쳤다.

문화유산적 가치[편집]

경주역사유적지구는 한반도를 천년이상 지배한 신라왕조의 수도로 남산을 포함한 경주 주변에 한국의 건축물과 불교 발달에 있어 중요한 많은 유적과 기념물들을 보유하고 있다.

등재 기준 
세계문화유산 기준(Ⅱ), (Ⅲ)

(Ⅱ) 일정한 시간에 걸쳐 혹은 세계의 한 문화권내에서 건축, 기념물조각, 정원 및 조경디자인, 관련예술 또는 인간정주 등의 결과로서 일어난 발전사항들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유산

(Ⅲ) 독특하거나 지극히 희귀하거나 혹은 아주 오래된 유산

5개지구[편집]

월성 지구[편집]

월성은 신라의 궁궐이 있던 도성이다. '월(月)'이란 말에서 유추할 수 있듯, 성 모양이 달을 닮았다 해 월성이다. 월성 지구 중에서도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곳은 흔히 안압지로 알려진 '월지'다. '경주 동궁과 월지'는 사적 제18호로서, 안압지(雁鴨池)라는 말은 각각 '기러기 안'자와 '오리 압'자를 써서 붙였다. 기러기와 오리가 많다 해서 붙은 이름인데, 실제 이곳에 와서 보노라면 한낱 미물인 새들조차 편히 깃들 만큼 단아한 정취가 돋보이는 곳이다.

박혁거세가 신라를 건국한 이래 남산자락에서 생활하다 200년이 지나면서 월성으로 이전했다. 그 후, 삼국시대와 통일신라를 거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때까지 신라를 이끌던 궁궐로 56분 왕들의 고뇌와 열정이 켜켜이 담겨 있다. 지하엔 석조 유구가 빽빽하게 남아서 통일 이후의 신라가 세계 10대 교역국으로 꼽히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삼국사기》에는 문무왕 16년(676)에 양궁, 19년(679)에는 동궁을 지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궁궐이 확장됐음을 알 수 있다. 대궁인 월성을 비롯해 월지 서편은 동궁, 박물관 인근은 '남궁'으로 본다. 특히 경주박물관을 신축하던 1970년대에 '남궁지인'(南宮之印)이 찍힌 기와가 공사현장에서 발굴되어 남궁으로 확인됐다. 마지막으로 월성 북쪽 동천가에는 북궁이나 만월성으로 추정하는 전랑지가 있다. 궁궐은 사라졌지만, 그 흔적들이 남아 천년 국가의 수도였음을 증언하고 있다.

  • 경주 계림(사적 제19호)
  • 경주 월성(사적 제16호)
  • 경주 임해전지(사적 제18호)
  • 경주 첨성대(국보 제31호)
  • 내물왕릉, 계림, 월성지대

남산지구[편집]

남산지구는 신라 불교미술이 밀집된 지역이다. 경주역사지구에는 총 52개의 개별 지정문화재가 있는데, 그 중 남산지구의 문화재는 37개로 전체 수량의 71퍼센트에 달한다. 특정 지역의 문화‧역사적 가치가 지역내 문화재의 개수에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문화재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보호가치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경주 남산지구가 경주 전체에 대해, 나아가 우리나라 전역에 대해 갖는 역사적 의의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남산에 산재한 수많은 불상이 이웃 일본 교토나 중국 상하이의 그것과는 다른, 한국에만 존재하는 전통 문화재임은 자명하다.

남산지구 내 신라의 유적 중 대중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유적을 꼽으라면, 단연 포석정지일 것이다. 경주 포석정지는 우리나라 사적 제1호로서, 명실상부한 중요 문화재다. 포석정지는 남산 서쪽 지역에 있는데, 신라 왕이 신하들과 연회를 베풀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조성된 때는 9세기 후반이라 전해지고 있으며, 신라 경애왕이 이곳에서 연회를 즐기던 중 후백제 견훤의 기습공격으로 시해됐다. 한편 이곳은 연회지 특유의 풍류적 분위기를 띠고 있는데, 돌로 된 '물길'이 구불구불하게 패여 있고, 이 홈을 따라 술이 흐르게 만든 후 잔을 띄워 내기에 진 사람이 벌주를 마시는 등, 다채로운 연회가 벌어졌다고 전해진다.

한편 남산지구의 다른 주요 유적으로는 경주 나정, 남산 탑곡 마애조상군 등이 있다. 경주 나정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탄생 전설을 간직한 곳으로서 신라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우 상징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 보리사 마애석불(지방유형문화재 제193호)
  • 경주 남산 미륵곡 석불좌상(보물 제136호)
  •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보물 제186호)
  • 경주남산 용장사곡 석불좌상(보물 제187호)
  •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보물 제913호)
  • 천룡사지 삼층석탑(보물 제1188호)
  • 남간사지 당간지주(보물 제909호)
  • 남간사지 석정(지방문화재자료 제13호)
  • 경주 남산리 삼층석탑(보물 제124호)
  • 경주 배리 석불입상(보물 제63호)
  • 경주 남산 불곡 석불좌상(보물 제198호)
  •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보물 제199호)
  • 남산 칠불암 마애석불(보물 제200호)
  • 남산 탑곡 마애조상군(보물 제201호)
  • 경주 삼릉계곡 석불좌상(보물 제666호)
  • 남산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지방유형문화재 제19호)
  • 남산 삼릉계곡 선각 육존불(지방유형문화재 제21호)
  • 경주 남산 입곡 석불두(지방유형문화재 제94호)
  • 남산 침식곡 석불좌상(지방유형문화재 제112호)
  • 남산 열암곡 석불좌상(지방유형문화재 제113호)
  • 남산 약수계곡 마애입불상(지방유형문화재 제114호)
  • 남산 삼릉계곡 마애 석가여래좌상(지방유형문화재 제158호)
  • 남산 삼릉계곡 선각 여래좌상(지방유형문화재 제159호)
  • 경주 배리 윤을곡 마애불좌상(지방유형문화재 제195호)
  • 배리 삼릉(사적 제219호)
  • 신라 일성왕릉(사적 제173호)
  • 신라 정강왕릉(사적 제186호)
  • 신라 헌강왕릉(사적 제187호)
  • 지마왕릉(사적 제221호)
  • 경애왕릉(사적 제222호)
  • 신라 내물왕릉(사적 제188호)
  • 경주 포석정지(사적 제1호)
  • 경주 남산성(사적 제22호)
  • 서출지(사적 제138호)
  • 경주 나정(사적 제245호)
  • 경주 남산동 석조감실(지방문화재자료 제6호)
  • 백운대 마애석불입상(지방유형문화재 제206호)

대릉원지구[편집]

신라가 국가로 도약하던 4C~6C에 조성된 왕릉. 이곳은 왕과 그 가족들이 잠드신 고분군이다. 왕실에서는 죽음을 어떠한 시선으로 보았는지를 짐작게 하는 금관을 비롯한 값진 유물과 유라시아 초원에서 보이는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1973년, 천마총의 발굴로 당시의 부장품과 생활용품까지도 볼 수 있다. 특히 대릉원은 자그만 동산이 모여 있는 듯하고 시내도 가깝다. 어르신과 젊은이가 같이 산책하고 즐기는 곳으로 고대와 현재가 어우러져 시간여행이 가능한 아주 편안하고 매력적인 공원으로도 손색이 없다. 노서동고분군과 노동동고분군도 포함해 대릉원지구로 부른다.

  • 신라 미추왕릉(사적 제175호)
  • 경주 황남리 고분군(사적 제40호)
  • 경주 노동리 고분군(사적 제38호)
  • 경주 노서리 고분군(사적 제39호)
  • 신라 오릉(사적 제172호)
  • 경주 동부사적 지대(사적 제161호)
  • 재매정(사적 제246호)

황룡사지구[편집]

528년, 이차돈의 순교로 불교가 공인되면서 그 영향력은 대단했다. 황룡사와 분황사 부근은 궁궐에서 아주 가깝다. 불교가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를 보여주는 수많은 사찰이 흔적만 남아 있다. 특히 '호국불교'라는 개념은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사찰이 어떻게 건축되고 운용됐는지를 잘 보여준다.

한편 황룡사지구는 당초 황룡사 9층탑 등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갖는 건물이 소재했던 곳이다. 이곳은 훗날 외적인 몽골에 의해 소실됐는데, 지금은 복원 모형 등으로 그 본래 모습을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 황룡사지(사적 제6호)
  • 분황사 석탑(국보 제30호)

산성지구[편집]

명활성, 국가방위의 교두보. 국가의 기본은 영토와 백성이다. 엄밀히 말하면 보문호 남쪽, 명활산에 있는 석축산성인 명활성이다. 이곳은 금성, 월성과 함께 왕들이 거처했던 궁성이기도 하다. 경주는 산이 사방으로 둘러싸여 있는 분지로 수도방위를 위한 산성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특히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5C, 울산방면에는 관문성, 서쪽에는 부산성과 선도산성, 남산 해목령 부근에는 남산성과 남산의 남쪽에는 고허성 등이 남아있다. 북쪽은 평지라 '금강산'으로 갈음하며 포항 인근인 '형산'과 '제산'에 산성을 쌓았다.

한편 경주 산성지구 유일의 지정문화재인 명활산성은 정확한 축성 연대를 알 수 없는 신라의 방어시설로서 둘레는 약 6km다. 유일한 지정문화재라 해서 명활산성만이 이 지역내 유일하게 중요한 문화재는 아닐 터이니, 넓은 시각으로 이 지역을 탐방하는 자세도 필요할 것이다.

  • 명활산성(사적 제47호)

이용안내[편집]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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