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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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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
나폴리 위치

나폴리(이탈리아어: Napoli, 나폴리어: Napule, 영어: Naples, 문화어: 나뽈리)는 이탈리아 남부에 있는 도시로, 캄파니아주의 주도이다. 나폴리는 이탈리아 통일 전까지는 양시칠리아 왕국의 수도였다. 나폴리 시는 고대 때 네아폴리스(Neapolis)로 불렸으며 "신도시"라는 뜻을 지닌다. 현재 나폴리 인근을 아우르는 도시 밀집 지구는 이탈리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인구 밀집지대이며 유럽에서도 가장 큰 규모 중 하나다. 베수비오 화산과 인근의 소화산 지구 근방에 자리하고 있다. 나폴리는 역사와 예술, 문화의 중심지로서 나폴리 역사 광장은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영어로는 네이플스혹은 네이플라고 한다.[1]

개요[편집]

나폴리는 이탈리아 반도 서쪽 티레니아해에 있는 남부 도시로 세계 3대 미항 중 하나로 꼽힌다. 로마밀라노 다음가는 이탈리아 제3의 도시로 남부 지방의 중심 도시다. 캄파니아주의 주도이기도 한 나폴리 도시의 자체 인구는 2022년 기준 약 91만 명 정도이지만 광역시 주변을 포함한 인구는 약 312만 명 정도로 인구 밀집도가 매우 높다. 나폴리 방언은 이탈리아와 다른 점이 많아서 나폴리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탈리아 통일 전까지 천년 가까이 북이탈리아와는 판이한 역사를 이어온 남이탈리아의 정치적 중심지였다. 지금도 지중해에 닿아 있는 항구도시이다. 나폴리는 항구를 따라 주변의 언덕 지대에 발달한 도시로 대도시이기는 하지만 도시가 계획적으로 구획되어 있지 않다. 해변을 따라 남동쪽으로 베수비오 화산을 바라보는 나폴리는 해변을 감싸듯이 조성되어 있어 전형적인 항구도시의 모습이다. 나폴리항을 중심으로 바로 위쪽으로는 누오보성이 위치한다. 기후 자체가 연중 내내 온난하며 주변에는 오렌지, 올리브 같은 지중해성 농작물들이 번성하게 자란다. 가을과 겨울엔 비가 많이 내려서 연간 강수량은 1000mm 정도로 많은 편이다. 도시 근방에 있는 국제공항에 자리하고 있으며 주위에 공항 관련 건물로 둘려싸여 있다. 나폴리항 뒤쪽 정면으로 산타 키아라 성당과 나폴리 고고학박물관(Museo Archeologico Nazionale di Napoli)이 있다. 나폴리는 아열대산인 오렌지의 가로수가 끝없이 연속되는 모래 해안은 배후의 베수비오 화산과 더불어 지중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이룬다. 따라서 예로부터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라는 유명한 속담이 전해올 만큼 세계적인 관광도시의 하나이다.[2]

지리 및 기후[편집]

나폴리는 남부 이탈리아의 서쪽 해안에 있는 나폴리만에 위치해 있고, 해발고도가 450m에 이른다. 이전에 도시 중심부를 가로지르던 작은 강들은 도시가 건설되면서 매립됐다. 나폴리는 두 개의 화산 지역인 베수비오산과 플레그레이평원 사이에 있다. 나폴리 앞바다에 있는 프로시다섬, 카프리섬, 이스키아섬은 모두 나폴리에서 수중익선과 페리로 연결된다. 소렌토와 아말피해안은 도시의 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인근에 서기 79년 베수비오산이 폭발하면서 파괴된 폼페이, 헤르쿨라네움, 오플론티스, 스타비아에 등 로마제국의 유적이 산재해 있다. 나폴리만에서부터 베수비오산의 서쪽 기슭까지 이르는 나폴리는 화산의 영향으로 토양은 비옥한 화산재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아열대 나무인 오렌지 가로수가 끝없이 늘어선 모래 해안은 배후의 베수비오 화산과 더불어 지중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이룬다.

나폴리는 지중해성 기후와 습한 아열대 기후의 경계선에 있다. 또한 이탈리아반도에서 주로 나타나듯이 해양과 대륙의 특성이 교차한다. 해양성 기후는 겨울의 추위를 완화시켜주고, 여름에는 북쪽 훨씬 먼 내륙 지역과 상당히 비슷한 특징을 보인다. 여름은 대륙의 영향으로 평균 기온이 30℃에 육박해 아열대 기후 범위에 속한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쾌적한 도시로 꼽히는데, 최저 평균기온이 8℃ 이하로 내려가지 않고 연교차가 적은 전형적인 지중해성기후를 보인다. 여름은 건조하지만 완전한 건기는 1개월도 되지 않아 농사짓기에도 좋은 위치에 있다. 온난한 기후와 평야 덕분에 올리브, 오렌지, 토마토 등이 많이 재배된다.[3]

역사[편집]

나폴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기원전 2000년 그리스인들이 쿠마이인(Cumae)이 살고 있던 나폴리 지역에 이주해 정착했다. BC 6세기경에는 그리스인들이 대대적으로 이주해 도시를 건설하고 네아폴리스(Neapolis)라 칭했다. 네아(Nea)는 ‘새로운’이라는 의미이고 폴리스(Polis)는 도시를 의미하여 자신들이 개척한 ‘새로운 도시’라는 의미의 식민도시였다. 나폴리는 북쪽에서 건설된 로마제국이 강력해지자 에트루리아인들과 동맹을 맺어 로마에 대적하다가 결국에는 로마에 복속되었다. 로마제국 내에서 나폴리는 그리스 문화를 간직한 채 로마제국으로 동화되었다. 로마와 카르타고의 전쟁 때는 로마와 동맹을 맺었다.

서로마제국의 몰락은 나폴리의 운명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나폴리는 동고트족들에 의해 로마제국이 붕괴면서 동고트왕국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후 536년 동로마제국이 고트인들을 몰아내면서 나폴리는 다시 동로마제국의 영토에 편입되었다. 하지만 나폴리는 638년부터는 황제에 의해 임명되고 라벤나 총독 지휘 아래에 놓여있는 공작(duca)이 통치하는 공국이 되면서 상당한 자율권을 가지게 되었다. 공국의 독립은 1137년 노르만인들이 이탈리아 남부에 도착할 때까지 유지되었다. 8세기 이후 남부 이탈리아를 점령한 이슬람인들을 노르만인들이 몰아내고 1130년 시칠리아 왕국을 세웠다. 나폴리도 1137년 항복하고 시칠리아 왕국에 귀속되었다.

1266년 신성로마제국과 갈등 관계에 있던 교황 이노센트 4세는 프랑스 앙주 가문의 공작인 샤를 1세에게 시칠리아 왕위를 하사해버렸다. 샤를은 재빨리 수도를 팔레르모에서 나폴리로 옮기고 프랑스 기술자들을 데려와 대성당을 건축하는 등 도시를 정비했다. 1282년에는 앙주 가문과 스페인 아라곤 가문 사이에 전쟁이 발생해 나폴리를 포함한 이탈리아 남부는 나폴리 왕국이 되었고, 시칠리아섬은 부활절날 일어난 반란 사건인 만종사건을 뒤에서 후원한 아라곤 왕가 치하의 시칠리아 왕국으로 분리되었다. 이후 수차례 앙주 가문과 아라곤 가문 사이의 전쟁으로 나폴리는 계속해서 프랑스와 스페인에게 지배받기를 반복했다. 1503년에는 스페인이 최종적으로 승리해 나폴리 왕국은 스페인에 귀속되게 되었다. 정치적 혼란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 나폴리는 유럽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고 르네상스 문화를 확산시키기도 했다.

스페인 아라곤 왕가에 귀속되어 있던 나폴리는 1516년부터는 혼인 관계로 인해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에 귀속되었다. 당시의 나폴리는 인구가 25만 명에 이르러 프랑스 파리 다음으로 유럽에서 큰 도시로 성장했다. 18세기 초에는 스페인 왕위 계승전쟁으로 잠시 오스트리아의 영토가 되었다가 1738년 폴란드 왕위계승전쟁의 결과로 나폴리는 독립하는 대신에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보호령이 되었다.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자유주의 혁명이 일어나 파르테노페아공화국이 탄생했으나 1806년 나폴레옹에 의해 정복되어 그의 형인 조제프 보나파르트가 스페인 왕위와 나폴리 왕위를 겸하게 되었다. 1814년 나폴레옹이 실각한 이후에는 부르봉 왕가가 복귀해 시칠리아 왕국과 병합되어 양시칠리아왕국이 되었다. 1860년 이탈리아 통일운동 당시 주세페 가리발디에 의해 양시칠리아왕국이 정복되면서 나폴리는 마침내 이탈리아왕국에 통합되었다.

1922년 10월 나폴리에서 개최된 파시스트 전당대회에서 ‘로마진군’이 시작되어 베니토 무솔리니가 수상이 되면서 파시스트 체제의 탄생지가 되었다. 1925년에서 1936년 사이 나폴리는 무솔리니 정부에 의해 확장, 발전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연합군의 폭격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어 1945년 대대적인 재건 작업이 이루어졌다.

전후 1946년 4월 12일 군주국 지지자들이 이탈리아공산당 연맹본부를 습격해 경찰이 개입했다. 이를 계기로 제헌의회 선거에서 다수당이 된 기민당의 데 가스페리가 이탈리아 공화국을 선포했다. 약 200만 표의 차이로 우메르토(Umberto) 국왕은 군주제를 포기하고 포르투갈로 망명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의 폭격으로 큰 피해를 입었지만 빠르게 복구되었다. 전후 이탈리아의 도시화와 산업화에 발을 맞춰 이주 노동자들로 인구가 크게 증가하고, 알파 로메오등 여러 국영 기업들이 공장을 열어 이탈리아 남부의 산업화에 기여했다.

공화국으로 전환된 후 나폴리는 세계적인 관광도시에 공업도 나름대로 발달했지만, 남부 각지에서 빈민들이 몰려들면서 빈부격차나 치안 등 사회 문제가 대두되었으며 마피아 세력의 중심지로 전락하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좋지 않을 때는 나폴리가 위치한 캄파니아 주의 1인당 GDP(PPP)가 2008년 명목이 아닌 구매력 평가 기준 $18,900 정도로 동유럽을 제외하면 유럽 최저 수준을 찍던 적도 있었다. 2018년 기준으로도 명목 gdp가 18800달러 정도로 상당히 낮았다.

왕당파가 우세했던 20세기 중반과는 달리, 현재는 정치적으로 좌파의 지지기반이 이탈리아 전체에서 가장 강력한 곳 중 하나다. 2020년대 초반 기준 나폴리 시의회의 집권여당은 사회민주주의 성향인 이탈리아 민주당보다 훨씬 더 급진적인 좌파연합 세력이다.

종합적으로 보면, 나폴리 지역은 원주민인 쿰마인-그리스-에트루리아-고대 로마-동고트족-동로마 제국-노르만-호엔슈타우펜-프랑스-아라곤-스페인 합스부르크-스페인 부르봉-이탈리아 통일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민족의 지배를 받으며 흥망성쇠를 거듭한 땅이라 할 수 있고, 오늘날에도 이탈리아 남부 지역의 최대 도시로 기능하고 있다.[4]

관광[편집]

나폴리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항구도시 중 하나다. 베수비오 화산과 더불어 풍경이 아름답고 볼거리가 많다. 예로부터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라는 유명한 속담이 전해올 만큼 세계적인 관광도시다. 주요 명소로는 두오모 성당과 카스텔 델오보, 산타루치아 항구 주변, 갈레리아 움베르토 2세 거리, 국립고고학박물관 등이 있으며, 특히 나폴리 인근의 관광도시 소렌토와 베수비오 화산 폭발 당시의 모습이 남아 있는 도시 폼페이가 세계적인 관광지이다. 국립 고고학박물관에는 기원전 79년 베수비오의 화산의 폭발로 매몰되었던 부근의 폼페이와 고대 도시들에서 출토된 그리스와 로마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한편 1737년 건설된 산 카를로 오페라 극장 역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나폴리의 스포츠는 디에고 마라도나(Diego Maradona) 등 유명 축구 선수의 활약으로 세리에A의 SSC나폴리 축구팀이 유명한데, 1987년과 1990년에는 1부 리그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베수비오 화산과 폼페이[편집]

유럽에서 유일하게 화산 활동이 있는 활화산으로 1944년까지 분출을 했었다. 나폴리와는 6km 떨어져 있으며, 그리스 신화에서는 헤라클레스가 활동했던 곳으로 분출은 약 17,000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79년의 폭발 때는 당시 번성했던 도시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을 화산재로 뒤덮고 캄파니아 해변을 따라 자리한 나폴리 땅까지 흔들며 영향을 미쳤다. 베수비오 화산 폭발은 훗날 플리니우스의 조카인 플리니우스 2세가 역사학자 타키투스에게 보낸 편지로 인해 세상에 알려졌다. 로마 지중해 함대 사령관이었던 플리니우스가 화산 폭발을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갔다가 결국 돌아오지 못했고 이를 조카 플리니우스 2세가 편지로 알린 것이다. 베수비오 화산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분출하여 지금도 주변의 3백만 인구를 위협하고 있다. 낙타 등처럼 봉우리 두 개로 이루어진 화산의 한쪽 분화구에는 칼데라가 생성되었으며, 경사면은 용암이 흐르다 굳은 용암지대이다.

폼페이는 1592년 운하를 건설하면서 드러나게 되었지만 제대로 발굴하지 못하고, 1784년에도 이탈리아를 지배하고 있던 프랑스의 부르봉 왕가가 적극적으로 발굴했지만 미완성으로 끝났다. 이탈리아가 통일을 이룬 1861년 국왕 빅토르 에마뉴엘 2세의 지시로 대대적인 발굴이 진행되었고, 화산 폭발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 또한 많은 출토품들은 나폴리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카스텔 델로보[편집]

산타루치아 항과 마주한 작은 섬에 있으며, 카스텔 델로보는 ‘달걀 성’이라는 뜻이다. 나폴리에서 가장 오래된 성으로 1154년 노르만족에 의해 지어졌다. 처음엔 나폴리 해안을 지키는 요새로 세워졌는데 이후 오랫동안 왕궁으로 사용되었고, 17세기 후반에는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달걀 성’이라는 이름은 감옥의 모양이 달걀을 닮았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지만, 시인이자 마법사였던 비르질리오(Virgilio)가 지하에 달걀을 묻으며 깨지면 재앙이 온다고 말해서 ‘달걀 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전해진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괴되었다가 1975년 복원되었다.

두오모 산 제나로 대성당[편집]

성 제나로의 유물을 보관하고 있다. 13세기 말에서 14세기 초에 걸쳐 세워졌지만 여러 번의 개보수를 거쳐 19세기 건축 양식을 보인다. 성 제나로는 나폴리의 수호성인인데, 대성당 안의 성 제나로 흉상 안에는 성인의 두개골과 응고된 혈액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매년 5월 첫째 일요일과 9월 19일이면 응고혈이 피가 되어 흐른다고 믿으며, 이 날을 ‘성 제나로 기적의 날’이라 부른다. 만일 피로 변하지 않으면 도시에 재앙이 온다는 전설이 있는데 지금까지 두 번 피로 변하지 않았고, 그 해에는 지진과 화산 폭발이 있었다던 것으로 전해진다.[5]

지도[편집]

서유럽 국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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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나폴리〉, 《위키백과》
  2. 나폴리(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나폴리〉, 《나무위키》
  4. 나폴리〉, 《요다위키》
  5. 나폴리(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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