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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해시넷
Asadal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2월 28일 (화) 12:57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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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위치
웰링턴
오클랜드
해밀턴
크라이스트처치

뉴질랜드(New Zealand)는 오세아니아에 위치한 영연방 왕국이다. 마오리어(語)로 '길고 흰 구름의 땅'이라는 뜻인 아오테아로아(Aotearoa)라고도 불린다. 수도는 국토 중부의 웰링턴, 최대 도시면서 경제 중심지는 북부의 오클랜드이다.

1840년 와이탕이 조약에 따라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1907년에 독립하였으나 영국연방의 일원으로서 형식적으로 영국 국왕을 국가원수로 하는 입헌군주제를 유지하고 실질적으로는 의원내각제 형태다.

개요

뉴질랜드는 남서태평양에 있는 섬나라로, 북섬과 남섬, 그리고 600여 개의 작은 섬들로 구성되어 있다. 뉴질랜드의 총 육지면적 268,000 제곱킬로미터 (103,500 mi²)이다. 뉴질랜드는 오스트레일리아태즈먼해를 사이에 두고 2,000km 정도 떨어져 있고 뉴칼레도니아, 피지, 통가와 같은 태평양 도서와는 남쪽으로 1,000km 이상 떨어져 있다. 지리적 고립으로 인해 뉴질랜드는 인간이 정착한 마지막 땅이 되었다. 또한 오랜 고립 기간 동안, 뉴질랜드에서는 독특한 생물적 다양성이 발전했다. 뉴질랜드의 다양한 지형과 높은 봉우리들은 화산 폭발과 육지의 융기로 인해 형성된 경우가 많다.

1250년과 1300년 사이에 뉴질랜드의 섬에 폴리네시아인이 정착하였고, 독특한 마오리 문화를 발전시켰다. 1642년 네덜란드 탐험가 아벌 타스만이 유럽인으로서 처음으로 뉴질랜드를 발견했다. 1840년 , 영국의 대표와 마오리족의 수장들이 와이탕이 조약을 체결하였고, 뉴질랜드의 주권이 영국에 있음을 선언했다. 1841년 뉴질랜드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고, 1907년에는 자치령이 되었으며, 1947년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했지만,영국의 군주가 국가원수로 남게 되었다. 오늘날, 뉴질랜드의 인구는 총 490만 명으로, 이 중 대다수가 유럽계이다. 원주민인 마오리족이 소수민족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아시아계와 태평양 섬사람들이 그 다음으로 많다. 뉴질랜드의 문화는 마오리 문화와 초기 영국 정착인들의 문화에서 기여된 것이 많지만, 뉴질랜드로의 이주가 증가함에 따라, 문화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뉴질랜드의 공식언어는 마오리어와 뉴질랜드 수어인데, 영어가 사실상의 공식언어로 쓰이며, 영어가 가장 많이 쓰인다.

뉴질랜드는 선진국으로 분류된다. 또한 삶의 질, 보건, 교육, 시민자유의 보호, 경제적 자유와 같은 국가 성과에 대한 국제적 비교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뉴질랜드는 1980년대 주요 경제적 변화를 겪었고, 경제 역시 보호주의에서 자유 무역으로 선회했다. 뉴질랜드의 경제에서 서비스업이 다수를 차지하며, 산업과 농업이 그 다음으로 많다. 관광은 뉴질랜드의 중요한 수입원이다. 뉴질랜드 의회는 단원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뉴질랜드의 총리가 이끄는 내각이 행정기관의 역할을 한다. 현재 뉴질랜드의 총리는 저신다 아던이다. 찰스 3세가 뉴질랜드의 군주이며, 뉴질랜드의 총독이 국왕을 대신하는데, 현재 총독은 팻시 레디이다. 뉴질랜드의 행정 구역은 11개이며 지방자치를 목적으로 한 67개의 지역 당국이 있다. 뉴질랜드 왕국은 뉴질랜드의 속령인 토켈라우, 뉴질랜드와 자유연합 관계인 니우에와 쿡 제도, 그리고 뉴질랜드가 남극에서 영유권을 주장하는 로스 속령이 포함된다.

뉴질랜드는 유엔, 영국 연방, ANZUS, 경제협력개발기구, ASEAN 플러스 6,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 태평양 공동체, 태평양 제도 포럼의 회원국이다.

국가 상징

국호

1657년 지도로 'Nova Zeelandia'의 서해안을 보여주고 있다. 이 지도에서는 북섬이 아래쪽에 있다.

뉴질랜드의 질랜드(Zealand)는 네덜란드 동남부 주인 제일란트(Zeeland)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네덜란드인 항해가 아벌 타스만(Abel Tasman)이 뉴질랜드를 처음 '발견'했을 때 라틴어식으로 새로운 제일란트라는 의미의 Nova Zeelandia(네덜란드어식으로 Nieuw-Zeeland)라 명명한 것에서 유래한다. 대부분의 유럽 언어에서는 이 나라를 칭할 때 New를 의미하는 자국어와 Zealand의 자국식 철자 변형을 합쳐 부른다.

마오리어로는 뉴질랜드를 아오테아로아(Aotearoa, 길고 하얀 구름의 땅)라고 한다. 마오리족의 시조 정도가 되는 하와이키의 대족장인 쿠페(Kupe)가 배를 타고 낚시를 하던 도중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우연히 뉴질랜드를 발견했는데, 쿠페의 아내는 뉴질랜드 남섬 특유의 만년설을 멀리서 보고 "저기는 섬이 아니라 '긴 흰구름'이에요."라고 말하며 상륙을 말렸다. 하지만 쿠페는 그곳으로 가 보았고, 이렇게 해서 뉴질랜드를 발견했다고 전해지며, 이 아내의 말에서 아오테아로아가 유래했다. 북섬은 테 이카-아-마우이(Te Ika-a-Māui, 마우이의 물고기)라 한다. 이는 반인반신의 영웅 마우이가 건져 올린 거대한 물고기가 북섬이 되었다는 폴리네시아 신화에 따른 것이다. 남섬은 공식적으로는 테 와이포우나무(Te Waipounamu, 녹옥의 물), 비공식적으로는 테 와카 마우이(Te Waka a Māui, 마우이의 배)라고 한다. 최남단인 사우스랜드 지방의 스튜어트섬은 라키우라(Rakiura, 불타오르는 하늘)라고 한다.

'뉴질랜드'라는 영어 국명과 '아오테아로아'라는 마오리어 국명은 일반 뉴질랜드 언중에서뿐만 아니라 정부기관과 행정부에 의해서 관습적으로 대등한 지위를 갖는다. 이에 '아오테아로아'를 공식 국명에 포함시키거나 아예 공식 국명으로 변경하자는 여론 또한 존재한다. 이에 뉴질랜드 정부는 공식 국명에 '아오테아로아'를 포함해 달라는 2019년 청원에 현재로서 공식적인 변경은 시기상조이나 두 국명이 관습적으로 사실상 같은 위치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한다고 답변했다.

한자 표기는 신서란(新西蘭). 신(新)은 New의 훈차이고, 서란(西蘭)은 Zealand의 음차다. 제일란트는 네덜란드(和蘭)의 서쪽(西)에 위치해있다. 대륙 중국어로도 저 한자 표기가 쓰이고 있다. 발음은 "씬씨란". 대만에서는 뉴질랜드를 음차한 紐西蘭(뉴씨란) 을 사용한다. 한국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호주)와 달리 한자 표기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국기

뉴질랜드 국기

연방 국가답게 국기 왼쪽 위에는 영국의 유니언 잭이 있고, 오른쪽 아래의 빨간색 오각별 4개는 남십자성이며, 진한 파랑은 남태평양을 나타낸다. 별들의 위치는 남태평양에서 뉴질랜드의 위치를 상징한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는 서로의 국기가 너무 비슷해서 외국인들이 헷갈려하는 데다가, 영국령도 아닌데 언제까지 영국의 유니언잭을 국기에 집어넣을 거냐는 지적이 있다. 실제로 비슷한 처지라고 할 수 있는 캐나다의 경우도 국기 디자인 응모전을 실시해 국기에서 유니언 잭을 빼고 새로운 국기로 바꾼 선례도 있다.

이미 노동당 정권 시절 1973년에 국가와 함께 국기 검토에 들어갔지만, 국가는 추가되었지만 국기는 유보되었다. 그러다가 뉴질랜드의 존 키 총리는 2015년 말에 국기 개정 국민 투표를 하겠다고 공언하였다. 2015년 9월에 새 국기 후보가 5개, 기존의 국기까지 6개로 압축되었다. 11월에 국민투표를 통해 최종 후보를 뽑을 예정이었고, 결국 위 사진에서 좌측 중앙에 있는 도안이 최종 후보로 선택되었다. 그러나 투표 결과에 따르면 56.6%가 국기 변경에 반대하여 기존 국기(우측 하단)를 그대로 사용하게 됐다. 투표율은 63.7%이다. 비슷하게 국기 안에 유니언 잭이 들어가있고 뉴질랜드와 같은 태평양에 위치한 섬나라인 피지와 투발루 또한 정부에서 국기에 있는 유니언 잭을 빼고 새로운 국기로 바꾸려고 했으나 국민들의 반발로 인해 무산된 사례가 있다.

국장

뉴질랜드 국장

뉴질랜드의 국장은 1911년 8월 26일 조지 5세에 의해 처음 승인되었으며 현재의 국장은 1956년 엘리자베스 2세에 의해 승인되었다.

국장 가운데에는 다섯 개의 작은 공간으로 나뉜 방패가 그려져 있으며 방패 가운데에는 세로 방향으로 그려진 세 척의 선박이 그려져 있다. 방패 왼쪽 상단에는 파란색 바탕에 남십자자리가 그려져 있으며 오른쪽 상단에는 빨간색 바탕에 금색 양모가 그려져 있다.

방패 왼쪽 하단에는 빨간색 바탕에 밀 다발이 그려져 있으며 오른쪽 하단에는 엇갈린 채로 놓인 두 개의 망치가 그려져 있다. 선박은 뉴질랜드의 해상 무역의 중요성을 의미하며 양모는 축산업을, 밀 다발은 농업을, 망치는 광업과 공업을 의미한다.

방패 위쪽에는 에드워드 참회왕의 관이 장식되어 있으며 방패 왼쪽에는 뉴질랜드의 국기를 든 백인 여성이, 방패 오른쪽에는 창을 든 마오리족의 추장이 서로 마주보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방패 아래쪽에는 두 개의 양치식물 잎이 장식되어 있으며 리본에는 "뉴질랜드"("New Zealand")라는 국명이 영어로 쓰여져 있다.

1911년 제정된 국장과는 디자인은 거의 비슷하지만 방패 부분만 제외하고 세부적으로 차이가 있다.

이전 국장에서 방패 위쪽애는 영국의 국기를 든 사자의 상반신이 그려져 있고 좌우에 선 백인 여성과 마오리족의 추장이 정면을 향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방패 아래쪽에는 황금당쟁이 덩굴이 장식되어 있고 리본에는 "전진"("ONWARD")이라는 표어가 영어로 쓰여져 있다.

국가

뉴질랜드의 국가는 공식적으로 2개다. 하나는 영국의 국가이기도 한 God Save the King, 또 하나는 God Defend New Zealand인데, 마오리어와 영어로 되어 있어서 공식 행사 때 국가를 부를 일이 있으면 먼저 마오리어로 부르고, 그 다음에 영어로 부른다.

국조

국조는 나름대로 유명한 키위새. 뉴질랜드 국민을 지칭하는 뜻으로도 쓰인다. 뉴질랜드에서 키위는 꽤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과일과 키위새 말고도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키위라고 하면 주로 뉴질랜드 현지인을 가리킨다. 외환시장에서의 키위는 뉴질랜드 달러를 뜻한다.

지리

봉우리가 눈에 덮인 서던알프스산맥은 남섬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북섬의 노스랜드반도는 아열대 기후에 속한다.

뉴질랜드는 오세아니아에서 호주, 파푸아뉴기니에 이어 3번째로 큰 나라이다.

뉴질랜드는 수반구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고 두 개의 주요 섬과 598개의 작은 섬들로 구성된다. 두 개의 주요 섬인 북섬남섬쿡 해협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쿡 해협의 가장 좁은 지역은 섬 간 거리가 22km이다. 북섬과 남섬 외에도 뉴질랜드에는 인간이 거주하는 섬이 5곳 있는데, 포보 해협에 위치한 스튜어트섬, 채텀 제도, 하우라키만에 위치한 [그레이트배리어 섬]], 말버러 해협에 위치한 더빌섬 그리고 중부 오클랜드와 가까운 와이헤케섬이 있다.

쿡산은 해발고도가 3,724m로 뉴질랜드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서던알프스산맥은 남섬에 500km 정도 뻗쳐져 있다.

뉴질랜드는 최대 너비가 400km인 북북동축을 따라 1,600km 이상 길고 좁게 뻗어 있는 나라로, 해안선의 길이는 총 15,000km에 달하고 총 육지면적은 268,000 제곱킬로미터 (103,500 mi2)에 달한다. 섬들이 외진 곳에 멀리 떨어져 있고, 해안선이 길기 때문에 뉴질랜드는 해양 자원의 보고이다. 뉴질랜드의 배타적 경제 수역은 세계에서 가장 넓은 EEZ 중 하나로, 육지 면적의 15배에 해당하는 면적이다.

남섬은 뉴질랜드에서 가장 큰 육지이다. 남섬은 서던알프스산맥으로 지역이 구분된다. 서던알프스산맥에는 3,000m가 넘는 봉우리가 18개 있으며, 그 중 가장 높은 봉우리는 해발고도가 3,724m인 쿡산이다. 피오르드랜드의 험준한 산들과 깊은 피오르는 남섬의 남서쪽에 위치하며 빙하기의 빙하 작용을 보여준다. 북섬은 산이 많지 않지만, 화산 활동의 영향을 받았다. 매우 활동적인 타우포 화산지대는 북섬 화산 고원을 형성하고 있으며, 북섬에서 가장 높은 산인 해발고도 2,797m의 루아페후산이 고원 사이에 있다. 북섬 화산 고원에는 뉴질랜드에서 가장 큰 호수인 타우포호가 초화산들의 칼데라에 자리잡고 있다.

뉴질랜드는 오스트레일리아와 함께 오스트랄라시아 지역에 속해 있다. 뉴질랜드는 또한 폴리네시아 지역의 남서쪽 끝에 위치한다.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뉴질랜드, 태평양의 여러 섬을 한데 묶어 오세아니아라고 부르는데, 오세아니아는 7개의 대륙에 속해 있지 않다.

통가리로산의 에메랄드 호수
건 호수
웰링턴에 위치한 펜캐로우곶

판의 경계

뉴질랜드는 다양한 지형을 가지고 있으며, 태평양판과 인도-오스트레일리아판의 경계 지역 중 활발한 곳에 있기 때문이다. 뉴질랜드는 곤드와나 초대륙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후 오스트레일리아의 반 정도의 크기인 질랜디아 대륙에 위치하고 있다. 2500만년 전에 질란디아의 지각의 표층의 뒤틀리고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운동의 증거가 서던알프스산맥으로, 이 산맥은 산맥의 단층과 함께 대륙 간 충돌로 형성되었다. 뉴질랜드의 다른 지역에서는 판의 경계에서 태평양판과 오스트레일리아판이 서로 섭입하고 있다. 이 현상의 결과로 남섬의 남서쪽에는 오스트레일리아판이 동쪽의 태평양판으로 섭입하는 퓨이스기어 (Puysegur) 해구가, 북쪽에는 태평양판이 오스트레일리아판에 속한 북섬 밑으로 섭입하면서 히쿠랑이(Hikurangi) 해구가 형성되었으며 더 북쪽에서는 통가 해구와 케르마데크 해구가 형성되었다. 또한 남서쪽의 퓨어스기어 해구와 북쪽의 하쿠랑이 해구 사이에 주향 이동 단층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를 알파인 단층(Alpine Fault)이라 부른다.

기후

남반구이기 때문에 북반구와 비교하면 당연히 계절은 반대. 국토 대부분이 중위도인 남위 30도대 후반에서 40도대 중반까지 걸쳐져 있고 남태평양 한가운데 떠 있는 섬이라서 전반적으로 서안 해양성 기후를 나타낸다. 태즈먼 해를 건너 있는 호주와는 달리 여름이라 해도 대체로 크게 덥지 않다. 다만, 같은 서안 해양성 기후라 해도 최대도시인 오클랜드가 위치한 북단지역은 최한월의 평균온도가 10도 이상이기에 아열대와 비슷한 성질도 띄고 있다. 지형이 복잡하여 크지 않은 땅덩어리에도 지역에 따른 기후차가 상당하여 말 그대로 변화무쌍한 날씨를 볼 수 있다. 최남쪽으로 갈수록 영국의 날씨와 비슷해진다. 실제 북섬에서 땅을 파고 들어가면 나오는 대척점은 스페인이고 남섬의 경우는 프랑스 앞바다가 나온다. 그리고 최남단 캠벨 제도의 대척점은 아일랜드 더블린이다.

다만 평탄한 지형이 많은 영국과 달리 섬을 가로지르는 높은 산맥이 있기 때문에 산을 사이로 기후 차이가 크다. 특히 3,000m가 넘는 서던 알프스 산맥이 있는 남섬에서 기후 차이가 더욱 심하다. 남섬의 서부는 전혀 덥지 않은 데도 불구하고 비가 많이 오는지라 우림이 존재한다. 열대우림의 그 우림 맞다. 물론 열대성 식물이 아닌 온대성 식물로 된 우림. 알래스카, 칠레와 함께 빙하와 우림이 한 장소에 공존하는 동네. 이쪽은 서풍이 서던 알프스 산맥에 부딪히면서 강한 비구름을 만들어내어 비가 많이 와, 연강수량이 2,000mm 이상이며, 지역에 따라 무려 4,000mm 이상이 되기도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남섬의 동부는 습한 바람이 산맥을 타고 오면서 비의 세력이 크게 약화되기 때문에 연강수량이 대부분 700mm 이하가 되며, 심지어 400mm 인 곳도 있다.

또한, 이쪽은 여름철 평균기온이 크게 높지는 않지만, 때때로 뜨거운 북서풍이 산을 타고 넘어오면서 기온을 크게 상승시켜 폭염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원래 여름에 크게 덥지 않은데 가끔 기온이 35도, 심할 경우 40도를 넘어 헬게이트가 일어난다. 북섬은 한반도와 위도가 비슷하지만, 한반도보다 겨울에 훨씬 따뜻하고 여름에 훨씬 시원한 서안해양성 기후를 나타낸다. 북섬 역시 섬의 서쪽에 비가 많고 동쪽에 비가 적지만, 남섬만큼 차이가 크지는 않다.

북섬의 동쪽은 대체로 여름에 서쪽보다 덥지만, 심하게 덥지는 않다. 뉴질랜드 대부분 지역은 겨울철에 위도에 비해 기온이 높아, 위도가 높은 남쪽의 도시에서도 겨울에 눈은 많이 오지 않으며, 위도가 낮은 북쪽의 도시에서는 눈은 극단적으로 드물다. 2011년, 오클랜드에는 82년만에 눈이 내렸고기사, 웰링턴에도 수십년만에 눈이 내려 헬게이트가 열렸다고 한다.

다만, 뉴질랜드의 겨울은 심하게 기온이 떨어지지 않는데도 한국인들은 매우 춥게 느끼는 편이다. 칼바람만 피하면 버틸만한 한국의 추위와는 다르게 습도가 고르기 때문이다. 한국 초봄에 꽃샘추위가 습도가 높아 생기는 추위다. 이땐 아주 뼈가시리다. 겨울엔 꽤 춥다. 눈이 어쩌다가 올 때도 있다. 보통은 전기로 난방을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지진이 일어났을 때 전기가 끊긴 일이 있었는데 그때 얼어 죽을 뻔 했다는 교민들이 꽤 있었다.

아무튼 이런 변화무쌍한 날씨와 특이한 지형 덕분에 쌍무지개를 손쉽게 볼 수 있는 지구상 몇 안 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한때, 뉴질랜드에 가면 공기가 좋고 경관이 좋아서 눈이 좋아진다는 소문이 돌았었다. 하지만 그건 과학적으로 절대 말도 안 되는 일이며 오히려 자외선이 강해서 눈에 안 좋다. 꼭 선글라스를 챙기도록 하자. 뉴질랜드 부근의 오존층이 심하게 파손되어 태양이 장난 아니게 강하다. 그래서 눈이 좋아지기는커녕 선글라스를 안 끼면 눈이 심하게 손상이 된다. 또한 자외선으로 인해 피부암의 위험이 높다. 뉴질랜드 거주인은 온몸에 반점이 있는 사람이 많은데 이게 다 자외선 때문이다. 특히 백인들이 자외선에 약한데 남극과 가까운 파괴된 오존층 사이로 자외선이 들어와 피부암을 일으킨다. 때문에 한국인이 뉴질랜드를 간다면 모자와 선글라스는 꼭 필수다.

자외선이 어느정도로 심하냐면 뉴질랜드 학생이 교모로 카우보이 모자를 쓸 정도다. 소지하지 않고 등교한 학생들의 경우 집으로 돌려보내 모자를 가져오게 하고 때때로 벌점을 주는 학교도 있으며 점심시간이나 쉬는시간에 야외 활동을 아예 금지하기도 한다.

식생

북섬의 오클랜드 반도에는 뉴질랜드 특유의 카우리(kauri) 소나무와 리무(Rimu)·마타이(matai)·토타라(totara) 등의 원시림이 산악지대에 산재한다. 남섬에는 해안림이 무성하고 종려나무, 키큰 고사리나무, 크리스마스 트리라 불리는 포후투카와(pohutukawa) 등이 자란다. 뉴질랜드에는 2종류의 박쥐 이외는 육생 포유류가 전혀 없으나, 조류(鳥類)는 풍부하여 이 나라의 국조(國鳥)인 키위(kiwi), 뜸부기과의 웨카(weka), 앵무새 종류인 카카포(kakapo)를 비롯하여 200종 이상의 특산종 조류가 서식한다.

역사

마오리족은 타이완에서 멜라네시아까지 이주한 다음, 소시에테 제도를 거쳐 동쪽으로 이동한 사람들의 후예라고 알려져 있다. 70여 년에서 265년 동안 이들의 이주는 멈췄지만, 새로운 이주가 시작되었고 이들의 이주는 뉴질랜드의 발견과 정착화로 이어졌다.

뉴질랜드는 인간이 정착한 가장 마지막 육지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탈산림화의 증거, 그리고 마오리족 주민들의 미토콘드리아 DNA 변동성은 동부 폴리네시아인들이 1250년부터 1300년 사이에 뉴질랜드를 처음으로 정착했으며 남태평양의 여러 섬들을 거쳐 장기간 항해를 했음을 알게 해 준다. 수 세기가 지난 후, 이 정착자들은 "마오리"라고 알려진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켰다. 주민들은 "이위"와 "하푸"로 구별되었고, 이들은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경쟁했으며, 때로는 서로 싸우기도 했다. 어느 순간 마오리족은 오늘날 채텀 제도로 알려진 레코후로 이주했고, 이곳에서 마오리족은 그들만의 모리오리 문화를 발전시켰다. 모리오리 주민들은 1835년부터 1862년 사이에 전멸했는데, 이는 타라나키 마오리가 이 지역을 침범해 1830년대부터 이 지역주민들을 노예로 삼았고, 유럽에서 온 질병들도 모리오리 주민들의 죽음에 영향을 미쳤다. 1862년, 모리오리 주민들 중 101명만이 살아남았고, 순수 모리오리 혈통을 가진 마지막 사람은 1933년 사망했다.

쿡이 뉴질랜드 첫 방문 때 그린 뉴질랜드의 해안선. HMS 엔데버의 항해과정도 그려져 있다.
와이탕이 조약이 명시된 종이.

뉴질랜드에 처음으로 도착한 유럽인은 1642년에 뉴질랜드를 발견한 네덜란드 탐험가 아벌 타스만과 그의 승무원이었다. 뉴질랜드에 도착했을 당시, 원주민들은 그들을 적대적으로 대했고, 이 결과 선원 4명이 죽고 마오리족 1명이 산탄총에 맞았다. 유럽인들은 이후 뉴질랜드를 방문하지 않았고, 1769년이 되어서야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이 뉴질랜드의 해안선 대부분을 지도로 그렸다. 쿡 이후 수많은 유럽인들과 북아메리카 사람들이 포경선, 물개잡이 배, 그리고 무역선을 이끌고 뉴질랜드를 방문했다. 그들은 유럽산 음식과 금속 도구, 무기와 기타 제품들을 목제, 마오리 음식, 공예품, 물 등으로 교환했다. 감자와 머스킷의 도입은 마오리족의 농업과 전쟁을 뒤바꿨다. 감자는 믿을만한 식량 보충원으로 제공되어 더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군사작전을 수행할 수 있게 했다. 이 결과 벌어진 머스킷 전쟁에서 1801년부터 1840년까지 600회 이상의 전투가 발생했고, 3만 명에서 4만 명 사이의 마오리족이 사망했다. 19세기 초, 기독교 선교사들이 뉴질랜드에 정착하기 시작했고, 대부분의 마오리 인구가 기독교로 개종했다. 한편, 마오리족의 인구는 19세기 동안 약 40% 감소했는데, 질병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1788년 아서 필립 대위가 새로운 영국 식민지인 뉴사우스웨일스의 총독에 임명되었다. 위원회에 따르면 뉴사우스웨일스 식민지에는 뉴질랜드도 속했다. 영국 정부는 북부 마오리의 청원으로 1832년 제임스 버스비를 주뉴질랜드 영국 공사관으로 임명했다.1835년 샤를 드 티에리가 프랑스 정착이 임박했으믈 선언한 이후, 혼란스러웠던 뉴질랜드 부족연합은 윌리엄 4세에게 뉴질랜드 독립선언서를 제출하고 보호를 요청했다. 불만은 지속되었고, 마오리족에게 땅을 사기 위해 감독관들을 태운 배를 이미 파견한 뉴질랜드 회사의 정착 제안과 뉴질랜드 독립선언서의 미심쩍은 법적 지위로 인해 식민성은 윌리엄 홉슨을 파견하였다. 윌리엄 홉슨은 뉴질랜드의 영유권을 영국이 주장하게 하고 마오리족과 협상을 하기 위해 파견된 것이었다. 1840년 2월 6일 아일랜즈 만에서 와이탕이 조약이 처음으로 체결되었다. 뉴질랜드 회사가 웰링턴에 독자적인 정착촌을 세우려고 하고 프랑스 정착민들이 아카로아에 땅을 구입하자, 마오리족이 조약을 체결하기 위해 와이탕이 조약의 복사본이 뉴질랜드 각지를 돌아다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홉슨은 1840년 5월 21일 영국이 뉴질랜드 전체의 영유권을 소유한다고 선언했다. 와이탕이 조약의 체결과 영유권 주장으로 이민자의 수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뉴질랜드는 와이탕이 조약 이후에도 뉴사우스웨일스 식민지의 일부로 남아있었지만, 1841년 7월 1일 왕령 식민지인 뉴질랜드 식민지로 분리되었다. 1843년 와이라우 학살 이후 영유권에 대한 의견 충돌과 땅 문제로 인해 식민지 정부와 마오리족 사이의 전쟁이 발발했다. 주로 북섬에서 발발한 이 분쟁에서 수천 명의 제국군과 영국 해군이 뉴질랜드에 파견되었고 이 전쟁은 이후 뉴질랜드 전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뉴질랜드 전쟁 이후 정착민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마오리족의 땅은 정부에 의해 압수되었다.

1863년 호크스베이 지방에 사는 유럽계 및 마오리 주민들의 만남.

1852년 뉴질랜드 헌법에 따라 뉴질랜드는 대의 정치를 시작하였고, 1854년에는 뉴질랜드 최초의 의회가 개설되었다. 1856년 뉴질랜드 식민지는 자치가 가능해졌고 원주민 정책을 제외한 모든 국내 문제의 책임을 인계받았다. 원주민 정책은 1860년대에 인계되었다. 남섬이 또 다른 식민지가 될 것을 우려하여 뉴질랜드 제4대 총리인 알프레드 도멧은 뉴질랜드의 수도를 오클랜드에서 쿡 해협 인근으로 이전할 것을 제안했다. 웰링턴이 수도의 중심으로 선정되었고, 1865년부터 웰링턴에 의회가 자리 잡았다.

1891년 뉴질랜드 자유당이 뉴질랜드에서 처음 설립된 정당으로 집권에 성공했다. 리처드 세던이 재임 기간의 대부분 동안 자유당 정부를 이끌었고, 자유당 정부는 뉴질랜드의 중요한 사회적, 경제적 법안을 통과시켰다. 1893년 뉴질랜드는 세계에서 최초로 모든 여성에게 선거권을 부여했고 1894년 산업 조정 및 중재법을 제정하여 고용주와 노동연합 간의 중재를 의무화했다.

1907년, 뉴질랜드 의회의 요청에 따라 에드워드 7세는 뉴질랜드를 대영제국에 속한 자치령으로 선언하고, 뉴질랜드의 자치 상황을 반영했다. 1947년 뉴질랜드 의회는 1931년 제정된 웨스트민스터 헌장을 채택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영국 의회가 뉴질랜드 의회의 동의 없이 뉴질랜드와 관련된 법을 제정하는 것을 금지했다.

20세기 초, 뉴질랜드는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고, 대공황을 겪으면서 여러 국제 사건에 관여하게 되었다. 대공황으로 인해 뉴질랜드에서는 노동당 정부가 선출되었으며, 포괄적인 복지국가를 표방하게 되었고 보호무역 경제가 수립되었다. 뉴질랜드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번영하게 되었고 마오리족은 전통적인 삶을 버리고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도시로 이사하기 시작했다. 마오리 항의운동이 발전하였고, 항의운동은 마오리 문화와 와이탕이 조약의 더 넓은 인정을 위해 일하고,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했다. 1975년 와이탕이 조사위원회가 와이탕이 조약의 논란 항목들을 조사하기 위해 설립되었고, 1985년 역사적인 불만의 원인들을 조사할 수 있게 되었다. 뉴질랜드 정부는 와이탕이 조약의 주장과 정착문제에 대해 많은 이위들과 협상을 하고 있지만, 마오리족의 해저 및 해안에 대한 주장은 2000년대 논란이 되기도 했다.

2021년에는 마오리 신년 축제인 마타리키를 공휴일로 추가했다. 이 날은 뉴질랜드 최초의 음력 (마오리력) 공휴일로, 매년 6월 하순에서 7월 중순 사이에 와서 6월 첫째 주 월요일 여왕 탄신일에서 10월 넷째 주 월요일 노동절까지 5개월 가량 공휴일이 없는 현상을 완화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연휴를 보장하기 위해 항상 금요일에 오게 된다. 첫 마타리키 휴일은 2022년 6월 24일이다. 2022년부터 30년 동안 마타리키는 10번, 7월에 20번 온다고 한다.

정치

뉴질랜드는 간접 민주제를 채택한 입헌군주국이지만, 뉴질랜드의 헌법은 불문 헌법이다. 찰스 3세가 현재 뉴질랜드의 군주이자 국가원수이다. 국왕은 뉴질랜드의 총독으로 대표되며, 총독은 뉴질랜드의 총리의 자문을 통해 국왕이 임명한다. 총독은 영국 왕실의 특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 불공정한 사건을 검토하거나 뉴질랜드의 장관들이나 대사, 그리고 다른 중요한 공직자들을 임명할 수 있다. 그리고 아주 특수한 경우에 총독은 국가원수의 재량권을 사용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의회를 해산한다거나 의회가 제출한 법안의 재가를 법으로 상정하는 것을 거부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군주와 총독의 권력은 헌법으로 제한하며, 장관들의 자문 없이는 실행할 수 없다.

뉴질랜드 의회는 입법부를 담당하며, 국왕과 뉴질랜드 대의원으로 구성된다. 의회는 뉴질랜드 상원을 포함한 적이 있었는데, 1951년 상원은 폐지되었다. 군주보다 위에 있는 의회주권과 다른 정부기관들은 1689년 권리장전을 통해 잉글랜드에서 만들어졌으며, 뉴질랜드에서는 법으로 비준되었다. 대의원은 민주적으로 선출되며 정부는 정당이나 과반의석 간의 연립으로 구성된다. 과반의석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 신임 공급 투표가 보장되는 조건에서 다른 정당의 지지가 있을 때 소수 정당 정부를 구성할 수 있다. 총독은 총리로부터의 자문을 통해 장관들을 임명할 수 있고, 총리는 회의를 통한 여당이나 연립 정부의 의회 지도자이다. 뉴질랜드의 내각은 장관들로 구성되고 총리가 이끌며 정부의 중요한 활동들을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내각은 정부의 정책 입안 조직 중 가장 상위에 있다. 내각 의원들은 주요 결정을 총괄하여 만들고, 이에 따라 이러한 결정들의 결과에 대해 총괄적으로 책임을 진다.

의회 총선거는 이전 선거로부터 3년이 지난 후에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1853년부터 1993년까지 거의 대부분의 선거가 소선거구제를 기초로 진행되었다. 1996년 선거부터 혼합비례대표제라 불리는 비례대표제가 채택되었다. 혼합비례대표제에서는 각각의 사람이 2개의 투표권을 가진다. 1개의 투표권은 투표자의 유권을 대표하는 후보자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당에 대한 것이다. 2014년 선거 이후 뉴질랜드에는 71명의 선출직 국회의원이 있으며 이 중 7명은 마오리족 출신이다. 120개의 의석 중 남아있는 49석은 의회의 대표들이 정당 투표를 반영(이른바, 비례대표)하기 위해 할당되어 있으며, 비례대표 의석을 확보하려면 적어도 한 명 이상의 선출직 국회의원이나 전체 정당 투표의 5%를 얻어야 한다는 제약이 있다.

웰링턴에 위치한 리처드 세던의 동상과 비하이브, 그리고 뉴질랜드 국회의사당.

1930년대부터 뉴질랜드의 선거는 뉴질랜드 국민당과 뉴질랜드 노동당이라는 2개의 정당이 우세를 점했다. 2005년 3월부터 2006년 8월까지, 뉴질랜드는 국가원수, 총독, 총리, 대의원 대변인, 대법원장이 모두 여성으로 임명되었는데, 고위 공직자들이 모두 여성인 것은 뉴질랜드가 세계 최초였다. 현재 총리는 저신다 아던으로 2017년 10월 26일부터 재직했다. 저신다 아던은 뉴질랜드의 세 번째 여성 총리이다.

뉴질랜드의 법원은 수석재판관이 이끌며, 뉴질랜드 대법원, 고등법원, 상급법원과 그 예하법원으로 구성된다. 재판관과 법무관들은 사법부의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까다로운 규칙 하에 정치권과 상관없이 임명된다. 이것은 이론적으로 사법부가 그들의 결정에 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고 오직 의회가 제정한 법률에 근거하여 법을 해석할 수 있게 한다.

뉴질랜드는 세계에서 안정적이고 잘 통치되고 있는 국가들 중 하나로 구분된다. 2017년을 기준으로, 뉴질랜드는 민주주의 지표에서 4위에 올랐고, 정부 투명성과 부패 없음의 항목에서는 1위를 달성했다. A 2017년 미국 국무부가 발간한 인권보고서에서 뉴질랜드는 일반적으로 개인의 인권을 존중하지만 마오리 주민들의 사회적 지위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했다. 뉴질랜드는 정치 과정에서 시민의 참여가 높은 것으로도 유명한데, OECD 회원국이 평균적으로 투표율이 69%인데 뉴질랜드의 경우는 77%이다.

외교 및 군사

초기 식민지 시기의 뉴질랜드는 영국 정부가 외부와의 무역을 결정하는 것을 허가하고, 뉴질랜드의 외교 정책도 담당하게 했다. 1923년과 1926년의 제국 회의는 뉴질랜드에게 자체적으로 조약에 대해 협상하도록 했으며, 1928년 뉴질랜드는 일본과 처음으로 통상조약을 맺었다. 1939년 9월 3일, 뉴질랜드는 영국과 동맹을 맺고 독일에게 선전포고했는데, 당시 뉴질랜드 수상 마이클 조지프 새비지는 "그녀가 가는 곳에 우리도 간다. 그녀가 서 있는 곳에 우리도 서 있는다"라고 선언했다. 여기서 "그녀"는 영국을 의미한다.

1951년 영국은 유럽과의 이익에 집중하고, 뉴질랜드는 오스트레일리아 및 미국과 태평양 안전 보장 조약 (ANZUS)을 체결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에 대한 시위를 시작으로 1985년 레인보우 워리어 격침 이후 미국이 프랑스에 대한 경고를 거부하고 이후 환경 및 농업 무역 문제와 뉴질랜드의 비핵화 정책에 대한 의견 충돌로 미국이 뉴질랜드에 미치는 영향은 줄어들었다. 미국이 태평양 안전 보장 조약의 의무사항들을 정지시켰지만, 이 조약은 외교 정책의 역사가 비슷한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 양국 간에는 효력이 남아있었다.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는 정치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두 나라는 긴밀경제관계 무역협정과 트랜스태즈먼 여행 합의를 체결하였고, 이를 통해 두 나라 국민들은 제한사항 없이 두 나라를 방문하고, 일하고, 살 수 있게 되었다. 2013년 기준으로 오스트레일리아에 사는 뉴질랜드 국민은 약 65만 명이고, 이는 뉴질랜드에 거주하는 전체 인구의 15% 정도이다.

뉴질랜드는 태평양 도서 국가들 사이에서 강한 존재감을 보여준다. 뉴질랜드의 원조 대부분이 태평양 도서 국가들로 가고, 많은 태평양 지역 사람들이 고용을 위해 뉴질랜드로 이주한다. 1970년 사모아 할당량 체계와 2002년 태평양 접근 범주를 바탕으로 태평양 주민들의 뉴질랜드 영주권은 규제되고 있으며, 연간 최대 1,100명의 사모아 국민들과 최대 750명의 기타 태평양 주민들만이 뉴질랜드 영주권자가 될 수 있다. 일시적인 이주를 위한 계절 노동자 제도가 2007년 도입되었고, 2009년 약 8,000명의 태평양 주민들이 이 제도를 통해 고용되었다. 지역 강국으로써, 뉴질랜드는 태평양 제도 포럼, 태평양 공동체,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 지역 포럼 등에 참여하고 있다. 뉴질랜드는 유엔, 영국 연방, 경제협력개발기구의 회원국이고, 5개국 연합방위협정에 참가하고 있다.

뉴질랜드의 군대는 뉴질랜드 방위군이라 부르며, 뉴질랜드 육군, 뉴질랜드 해군, 뉴질랜드 공군으로 구성된다. 뉴질랜드의 국방 예산은 많지 않은데, 이는 뉴질랜드를 직접 공격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뉴질랜드군은 세계 각지에 파견되었다. 뉴질랜드는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에 모두 참전했으며, 갈리폴리 전역을 비롯하여 크레타 전투, 제2차 엘 알라메인 전투, 몬테카시노 전투, 그리고 뉴기니 전역 등에서 활약했다. 이 중 갈리폴리 전역은 뉴질랜드의 민족 정체성을 찾는데 큰 역할을 했고, 오스트레일리아와 함께 하는 ANZAC이라는 전통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뉴질랜드군은 이 외에도 제2차 보어 전쟁, 한국 전쟁, 말레이시아 비상사태, 베트남 전쟁, 걸프 전쟁,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여했다. 뉴질랜드군은 또한 키프로스, 소말리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수에즈 운하, 앙골라, 캄보디아, 이란-이라크 국경, 동티모르, 솔로몬 제도 등에서 평화 유지 작전을 수행했다.

대한관계

뉴질랜드는 한국의 우방으로서 상호 긴밀한 협조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이다. 1950년 6.25 한국전쟁 때 우리나라에 참전했던 16개국 중의 하나로 육군과 해군 5,350명이 영국 연방군의 일원으로 참전하였다. 뉴질랜드와 한국은 1962년에 정식으로 수교하였고, 1971년 상대국 수도에 각각 대사관을 개설하였다. 1978년에는 양국 간 무역협정이 체결되었으며, 1979년부터 해마다 통상장관회담이 개최되고 있고, 1980년 7월 양국 간의 이중과세방지협정이 체결되었다. 이어 1993년 항공협정, 1994년 사증(Visa)면제협정, 1999년 취업관광사증협정이 체결되었다. 2002년에는 범죄인 인도조약을 체결하기도 하였다.

1993년 5월 총리 J.볼저, 1999년 외교통상부차관이 내한하였다. 1978년 양국 간에 체결된 어업협정에 따라 수산업체 4개사에서 트롤선·오징어 어선 등이 뉴질랜드에 진출하여 조업 중이나, 뉴질랜드의 어업정책이 쿼터 축소와 합작사업 증대 등 자국어업 육성을 꾀하고 있어 진출에 어려움이 많다.

합작투자부분에서는 한·뉴펄프합작회사가 설립되어 1978년 10월부터 생산에 들어갔으며, 1982년부터 한국의 포니 승용차가 수출되었다. 양국간의 친선을 도모하기 위하여 뉴질랜드 한국전 참전협회를 비롯하여 한·뉴협회, 한·뉴의원친선협회, 한·뉴경제인협회 등이 활약하고 있으며, 재뉴질랜드 교민회가 구성되어 있다. 주요 대한수입품목은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제품이고, 대한수출품목은 목재류, 축산물, 유기화학품이다.

지방정부 및 해외영토

초록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뉴질랜드 왕국의 영토다.

초기 유럽인 정착자들은 뉴질랜드를 주로 나누어 어느 정도의 자치를 허용했다. 그러나 재정적으로 압력이 심해지고 철도, 교육, 땅 매매 등을 비롯한 정책의 통합성이 요구됨에 따라 정부는 중앙집권화되었고 1876년 주는 모두 폐지되었다. 뉴질랜드에 설립되었던 주들은 국가기념일이나 스포츠에서 라이벌의 형태로 남아있다.

1876년 이래 다양한 지방의회가 중앙 정부가 결정한 법률에 따라 지역을 다스렸다. 1989년, 정부는 지방정부를 재조직해 행정 구역과 영토 당국이라는 2단계 제도를 만들었다. 1975년 뉴질랜드에는 249개의 지방자치단체가 있었지만, 현재는 67개의 영토 구역과 11개의 지방 정부로 통합되었다. 지방 정부의 역할은 "1991년 자원운용법에 특히 중점을 둔 자연 환경"을 통제하는 것이고 영토 당국은 물, 지역 도로, 하수, 건축 합의 등과 같은 지역 문제를 다룬다. 5개의 영토 의회는 단일 지방 기관으로 지방 정부로써의 역할도 겸임한다. 영토 당국은 13개의 시의회, 53개의 구의회, 채텀 제도 의회로 구성되어 있다. 채텀 제도 의회는 공식적으로는 단일 지방 기관이 아니지만, 지방 정부의 많은 기능을 수행한다.

뉴질랜드 왕국은 영국 연방 왕국에 속한 나라로, 뉴질랜드의 국왕이 군주로 있는 모든 지역을 의미한다. 뉴질랜드 왕국은 뉴질랜드를 비롯하여 토클레우, 로스 속령, 쿡 제도, 니우에로 구성된다. 쿡 제도와 니우에는 뉴질랜드와 자유 연합 관계 있는 자치령이다. 뉴질랜드 의회는 이 국가들에 대한 법안을 통과시킬 수 없지만, 외교 문제와 국방에서는 이 국가들을 대신하여 동의 하에 법률을 제정할 수 있다. 토클레우는 비자치 영토로 분류되며, 토클레우 환초에서 1명씩 사람을 보내 꾸려진 원로들의 자문 위원회를 통해 행정 업무를 수행한다. 로스 속령은 뉴질랜드가 남극에서 영유권을 주장하는 지역으로, 스콧 남극기지가 운영되고 있다. 뉴질랜드 국민법은 뉴질랜드 왕국의 모든 영토를 평등하게 대하기 때문에 뉴질랜드, 쿡 제도, 니우에, 토클레우, 그리고 로스 속령에서 태어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뉴질랜드 국민으로 인정된다.

경제

경제 활동의 주요 허브인 오클랜드 중심 업무지구의 해안가
양 방목지

뉴질랜드는 2021년 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pment Index) 조사에서 13위, 2022년 경제자유지수(Economic Freedom Index)에서 4위를 기록한 선진국이다. 1인당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3만6254달러이다. 통화는 "키위 달러"로 알려진 뉴질랜드 달러이며, 쿡 제도, 니에, 토켈라우, 핏케언 제도에서도 유통된다.

산업구조는 옆나라 호주와 비슷한데, 낙농업과 천연자원 수출 등 1차 산업으로 번 돈을 금융업과 IT산업 등 3차 산업에 투자하는 형식이다. 1차산업 하면 주로 양, 양고기와 양모와 소, 돼지고기, 버터, 치즈, 포도주 생산으로 유명하다.

뉴질랜드는 농목업이 고도로 발달한 나라이며, 특히 양모·낙농품·육류의 생산과 수출이 경제의 뼈대가 된다. 양·고기소·젖소 등을 주로 사육하고 있으며, 양모·버터·육류의 생산량은 세계적이다. 목양은 비교적 건조한 남알프스산맥 동사면 일대에서 주로 행해지며, 양·밀의 혼합농업은 캔터베리평원, 낙농업은 북섬의 오클랜드 주변과 서해안의 타라나키 지방에서 발달하였다. 와이카토의 버터와 타라나키의 치즈 및 이스틀랜드의 육우가 유명하며, 특히 캔터베리램(새끼양 고기)의 명성은 세계적이다.

육류는 신뢰도와 신용 유지를 위해 정부의 까다로운 검사를 거쳐 수출된다. 젖소의 80%는 북섬에 분포해 있는데, 가장 추운 달에도 목초가 자라기 때문에 사료없이 방목되는 것이 특징이다. 뉴질랜드의 경작지는 남섬에 집중해 있으며, 특히 캔터베리평원의 동부와 오타고 평야에서 혼합농업이 행해진다. 이 지역에서는 밀·사료작물·귀리·근채류(根菜類) 등이 윤작되고 있는데, 밀 생산량은 21만톤 정도여서 부족분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수입한다. 이 밖에 상업적 과수로 사과·배가 넬슨과 호크만에서, 복숭아·살구 등이 중앙 오타고의 록스버그에서, 감귤류·포도 등이 오클랜드와 기스보르네에서 많이 재배된다.

뉴질랜드는 자원이 풍부하지 못하지만, 물과 목재, 석탄은 예외이다. 강수량이 풍부하며 험준한 지형과 수많은 호수 등을 이용한 발전이 용이한 편으로, 나라 전체 전력의 63%(2001)를 수력발전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남섬 남서부는 주요 전원(電源)지대로서 벤모어·마나포리 등의 대형발전소가 입지해 있다. 전력의 일부는 쿡해협에 시설된 해저 송전선에 의해 남섬으로부터 전력 수요가 큰 북섬으로 송전되고 있다. 북섬의 중심부는 지열지대(地熱地帶)를 이루고 있는데, 타우포 부근의 와이라케이 지열발전소는 19만 2000kwh의 발전량을 자랑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전력수요가 크게 늘었고, 발전원과 소비지 간의 거리로 인한 전력 공급문제가 발생하면서 전력산업구조 개편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삼림면적은 850만ha로 국토의 28%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중 52만 ha가 침엽수 중심의 인공조림이다. 재래종인 카우리 소나무는 중요한 수출품의 하나였으나 현재는 보호대상이 되었다. 현재 임업에 이용되는 수종(樹種)은 대부분이 외래종이며, 라디아타 소나무(Pinus radiata)가 60%를 차지한다. 석탄은 2억여 톤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며, 연간 3,000여 만톤을 생산하여 국내 수요에 충당하고 있다. 그러나 석유는 부족한 편이다.

제조업은 노동인구의 25%를 차지하고 있으며, 냉동식품·유제품 등 농축산물의 가공업이 중심이다. 또 모스기엘·카이아포이·밀턴에는 모직공업이, 플렌티만(灣) 지역에는 펄프·제지 공업이 발달하였다. 또한 오클랜드의 사우스다운스·웨스트필드·마타우라에는 육류냉동공장, 황가레이에는 정유·펄프·제지 공장, 카웨라우·로토루아 지역에는 펄프·제지 공장, 글렌브루크에는 제철소, 블러프에는 알루미늄 제련소가 있다. 그 밖에 의류·나일론·유리 공업과 자동차 조립·수리 등이 활발하다.

뉴질랜드 경제는 무역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크다. 국민 1인당 무역액은 세계 정상급이다. 그러나 수출의 많은 부분이 농축산물을 중심으로 한 제1차 산품이며, 수입의 약 80%가 공업제품이다. 주요 수출품은 낙농품(15.9%), 식육(12.6%), 임산물(7.4%), 어류(4.4%), 알루미늄(4.2%), 기타(55.4%) 등이고, 수입품은 기계류(13.5%), 자동차(11.6%), 전기 기기(11.0%), 연료(10.4%), 섬유품(5.4%), 기타(48.1%) 등이다. 주요 무역 교역국은 유럽연합·일본·호주·미국·영국 등으로 1984년부터 영국연방에 의존하는 협소한 경제에서 탈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뉴질랜드는 세계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자유시장경제로 전환하기 위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제(APEC)의 역내무역자유화를 선도하고 있다. 경제협력을 위해 싱가포르와는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있고, 오스트레일리아와는 경제협력강화협정(New Zealnad-Australia CER)을 통해 협력하고 있다. 또한 중남미 및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검토 중이다. 뉴질랜드는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2000년 GDP 대비 5.7%) 등의 문제를 안고 있으나 점차 호전되고 있는 추세이다.

교통

주요 도시는 철도로 연결되며 고속도로도 잘 닦여 있다. 남섬과 북섬 사이를 운행하는 여객선이 있다. 오클랜드·웰링턴·크라이스트처치에 공항이 있고 오클랜드·웰링턴 항구가 있다. 주요도시로는 오클랜드·크라이스트처치·웰링턴 등이 있다. 오클랜드 국제공항은 싱가포르 등 아시아와 북미(미국, 캐나다), 남미(아르헨티나, 칠레), 대양주, 중동(아랍에미레이트, 카타르) 등 타 대륙으로 통하는 주요 관문이다.

인문사회

남섬의 면적이 더 크지만, 인구의 75% 이상(300만 명 이상)은 북섬에 살고 있다. 수도 웰링턴과 주요 도시 오클랜드, 해밀턴은 북섬에 위치한다. 남섬의 주요 도시는 크라이스트처치와 더니딘이다.

주민

뉴질랜드의 원주민은 폴리네시아계(系)의 마오리족(族)으로 전 주민의 9%를 차지한다. 그들은 대략 10세기 이후 타히티 방면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서 뉴질랜드에 이동해온 것으로 추정된다. 마오리족의 대부분은 북섬에 거주하는데, 원래는 ‘태평양의 바이킹’이라고 불리던 해양 민족이었으나, 이주 후에 정착하여 타로감자·얌감자·고구마·호리병박 등을 재배하며 농경생활을 하였다. 그들은 많은 부족사회로 나뉘어 추장의 통치하에 생활하였는데, 이들 지배자는 ‘모코’라고 하는 독특한 문신술(文身術), 즉 나선무늬와 당초무늬를 조화시킨 패턴으로 얼굴 전체를 뒤덮는 문신술을 발달시켰다.

또한 그들은 일용품·배·가옥 등에도 독특하고 뛰어난 조각을 남겼으며, 정신적으로는 지고신(至高神) '포'를 비롯하여 온갖 자연현상을 신으로 받들고, 아름다운 신화와 전설도 만들어냈다. 처음으로 유럽인과 접촉하던 때인 17세기 마오리의 인구는 12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영국의 집단 이민이 뉴질랜드에 도착한 1840년 이후, 마오리의 인구는 영국인과의 대립항쟁으로 한때 격감했다가 현재는 다시 증가하고 있다. 국토의 반 이상을 차지하면서도 인구가 희박한 농목지역과 총인구의 2/3가 모여 있는 도시지역(주로 오클랜드·웰링턴·크라이스트처치·더니든의 4대도시에 집중해 있음)의 대조, 그리고 전인구의 3/4이 북섬에 집중해 있는 불균형적인 인구분포 등에서 뉴질랜드의 문제점을 엿볼 수 있다.

현재 백인은 전 인구의 87%이며, 그 중 영국계가 90% 이상이다. 그 외의 인구는 소수의 유고슬라비아인·중국인·인도인·네덜란드인·태평양 도서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해외에서 이주해 오는 인구는 연간 4만여 명에 달하는데, 주로 영국·오스트레일리아·네덜란드 등에 치중되어 있다. 뉴질랜드인은 그동안 ‘화이트 뉴질랜드 정책’에 따라 유색인종을 배척하고 백인의 나라를 구축해왔으나, 요즘은 여러 인종 간 융화를 추진하고 있다. 주민의 대부분은 경제적 격차가 적은 중산계급에 속하며 높은 생활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국어 및 공용어는 영어이고, 마오리족은 마오리어도 사용한다. 종교는 성공회, 장로교, 감리교 등의 개신교가 70%, 가톨릭교가 16%를 차지하며, 나머지는 힌두교 및 마오리족 고유의 토착종교를 믿고, 무교 인구도 많은 편이다.

라타나 교회

사회

뉴질랜드는 인구가 적지만 넓은 국토를 효과적으로 이용함으로써 고도의 경제발전을 이룩하였고, 그 결과 국민생활이 매우 풍요롭다. 또한 인구가 적기 때문에 산업의 기계화가 진전되고 생산성이 향상되어 완전 고용이 실현되었다. 이와 더불어 1898년 세계 최초로 양로연금제가 실시된 이후 완벽한 사회보장제도 덕분에 세계적인 복지국가가 되었다. 1970년대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완비된 사회보장제도 시행하였으나 1984년 외환위기 이후 경제개혁을 통해 사회복지, 보건, 교육 등의 분야에서 정부지출을 지속적으로 감축하는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뉴질랜드에서 실시되고 있는 사회보장 제도 중에는 경제능력이 없는 국민을 고령자·미망인·유아·폐질자·광부·퇴직자·환자 등으로 나누어 일정한 금액을 주(週) 단위로 지급하는 제도가 있다.

의무교육기간은 6~15세까지이며, 19세까지는 무상으로 교육받을 수 있다. 오지의 주민을 위한 통신교육 또한 실시되고 있다. 대학은 오클랜드대학·빅토리아대학(웰링턴)·캔터베리대학(크라이스트처치)·오타고대학(더니든) 등 7개의 국립종합대학교가 있다. 또 각 지역별로 28개 일간지, 라디오방송국 33개국, 텔레비전 방송국 4개국이 있다.

뉴질랜드의 도시발전은 종교의 영향을 크게 받았는데, 캔터베리는 영국성공회 교도들이 설립하였고, 오타고는 스코틀랜드의 자유교회파가 발달시켰다. 뉴질랜드는 개척 초기부터 그리스도교를 기반으로 한 깨끗한 사회건설이 이상이었다. 이는 이웃나라 오스트레일리아가 유형지(流刑地)의 역사를 가진 것에 대한 반발이기도 했으며, 이 점은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가 된 지금도 이 나라의 사회·문화의 큰 특색이 되었다.

종교

뉴질랜드의 종교는 약 50% 이상이 기독교이며 교파는 성공회 24.3%, 장로회 18%, 가톨릭 15% 등이다. 물론 명목상일 뿐이다.

그러나 이는 공식 기록일 뿐이고 명목상 신자에 불과해서 이들중 대다수는 종교 응답만 기독교라고 답할뿐 실제로 주일예배에 가는 사람은 고작 4%정도밖에 안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마저도 거의 노인들이 대다수이고 젊은 층에서는 정기적으로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사실상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명목상 기독교일 뿐이라 교회는 태어나서 세례 받고 부활절과 크리스마스 그리고 결혼식과 장례식 등으로 가는 곳 정도로 인식되며 문 닫는 교회도 많다.

관광

오염되지 않은 대자연과 지상 최후의 낙원으로서, 뉴질랜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레포츠 급류타기, 제트 보트, 스키, 트레킹, 번지점프 등 깨끗한 대자연 속에서 인간이 즐길 수 있는 즐거움이 가득한 곳이며, 자연의 부드러운 숨결을 닮은 사람들, 아름다운 황금빛 해변, 광활하게 펼쳐진 푸른 초원 등 모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와이탕이

테 화레 루앙가(마오리 회합이 있었던 집)

와이탕이 조약으로 유명한 와이탕이는 뉴질랜드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곳이다. 1840년 영국 왕실과 마오리 족의 대표가 이 곳에서 조약을 체결하였다. 그 결과 뉴질랜드는 영국 왕실의 지배를 받는 식민지가 되었다. 조약이 체결된 트리티하우스는 당시 영국 거주민들이 살았던 곳으로 지금도 이 지역의 명소 중 하나이다. 또한 와이탕이에는 여러 부족들을 대표하는 조각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37m의 거대한 마오리 공화당이 있다. 이곳에서는 와이탕이 기념일인 매년 2월 6일 마오리 청년들이 마오리 전통 카누를 띄워 축제를 즐긴다.

전쟁기념 박물관

오클랜드 시에 있는 이 박물관에서는 마오리족의 문화유산 및 남태평양 일원에 흩어진 원주민의 문화를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뉴질랜드 동식물 및 광물자원을 비롯하여 정작 초기 백인의 이주생활 및 해양문화 등이 생생하게 전시되어 있고, 전쟁에 참전했다 희생된 사람들의 자료 등도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의 구성은 1층 마오리 홀, 2층 뉴질랜드 자연사 박물관, 3층 전쟁기념 박물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달 분화구 지역

북섬 타우포에 있는 달분화구 지열지대(Craters of the Moon)는 지면 여러 곳에서 뜨거운 증기가 솟아오르면서 마치 달의 분화구를 연상시킨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주변 일대가 온통 수증기로 가득하다. 일부 지역에서는 진흙 자체가 끓는 곳도 있으며 특히, 비가 온 뒤에는 더욱 많은 수증기가 솟아오른다.

케리케리

파이히아에서 북쪽으로 약 33km 떨어진 곳에 그림같은 케리케리가 있다. 뉴질랜드 최북단에 위치한 케리케리는 감귤, 키위 농장과 공예품의 중심지로 특히 도자기나 직물 등이 유명하다.

와카레와레와 온천지

로토루아 와카레와레와 온천지(The Whakarewarewa Thermal Reserve)는 로토루아의 대표적인 관광지로서 마오리족의 마을 내에 위치한 최대의 온천지이다. 특히, 간헐적으로 유명한 곳은 프린스 오브 웨일즈 페더즈 간헐천(Prince of Wales Feathers Geyser)과 포후투 간헐천으로 포후투 간헐천(Pohutu Geyser)의 경우는 약 20분 간격으로 20∼30m 높이까지 뜨거운 온천수가 마치 분수처럼 뿜어 오른다.

아그로돔

아그로돔(Agrodome)은 뉴질랜드의 양 사육과 관리 등을 한곳에서 볼 수 있는 장소이다. 매일 3회에 걸쳐 19종의 양을 볼 수 있으며 양털 깎기쇼, 양몰이 개의 시범을 보여주기도 한다. 쇼를 진행하는 사람의 유머와 재치로 즐겁게 관람할 수 있으며 설명은 세계의 언어로 통역되는 이어폰을 주기 때문에 듣는 데 조금도 불편함이 없다.

로토루아 호수

로토루아 호수(Rotorua Lake)는 화산활동으로 인해 생성된 호수로 로토루아 내에 있는 9개의 호수 중에서 가장 크며 많은 송어를 비롯한 다양한 어류가 서식하고 있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낚시를 즐기는 곳이지만, 근래에는 잡힌 송어에서 기생충이 발생하고 있다고 해서 주춤해지기도 했다. 유람선과 수상스키를 즐길수 있다.

레드우드 그로우브

레드우드 그로우브(en)는 로토루아 근교에 자리한 임업 시험장으로 세계 각국의 나무들이 식수되어 있다.

세고비아 나무를 비롯하여 잣나무, 이끼다 소나무 등이 울창하게 자리하고 있어 한낮에도 어두울 정도이며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저절로 삼림욕이 되는 쾌적한 곳이다.

와이토모 동굴

와이토모 동굴(Waitomo Cave)은 개똥벌레의 일종인 그로우웜(Glow Worm)이 서식하고 있는 동굴로 동굴 아래 냇물이 흐르고 있어 배를 타고 그로우 윔을 관광한다. 어두컴컴한 곳에 가면 개똥벌레가 마치 밤하늘의 은하계를 보는 것과 같이 촘촘히 빛나 신기함을 더해 준다. 와이토모란 마오리어로 물과 동굴을 뜻하며 우기에는 동굴에 흐르는 냇물이 증가하여 배를 타고 동굴 안을 관광할 수 없다.

문화

전통 마리아족 복장의 무용수

뉴질랜드는 건전한 중산층의 나라로, 일상생활이 검소한 편이다. 주류(酒類) 소비에는 엄격한 규제가 있으며, 음주를 수반한 오락시설은 거의 없다. 반면에 크리켓·럭비·스키·골프 등의 옥외 스포츠는 매우 활발하며, 특히 럭비는 뉴질랜드의 '국기(國技)'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영국 등 유럽 이민자들이 국민의 주류를 구성하고 있어 서구적 문화·예술 전통과 가치관이 지배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원주민인 마오리족 문화 또한 잘 융화되어 있다. 뉴질랜드에서는 마오리족의 독특한 문화가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마오리족의 출생률은 백인보다 높아, 노동력의 중요한 공급원 역할을 한다. 교육에서는 백인과 마오리족이 차별 없이 함께 공부하며, 사회 각 방면에 걸쳐 마오리족이 진출해 있다.

뉴질랜드에는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문학가와 예술가들이 많다. 단편작가인 캐서린 맨스필드는 20세기 초에 해외에서 명성을 얻었고, 산문학은 프랭크 사르게손, 단 데이빈, 로빈 하이외와 등이 서서히 지명도가 높아지고 있다. 시문학은 로리스 에드몬드, 랜 웨디, 샘 헌트, 혼 투와레와 같은 시인들에 의해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아동문학가인 마가렛 마히는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으며, 20세기 초에는 프랭세스 호킨스와 같은 예술가가 유럽에서 명성을 얻었다. 전후 세대의 예술가들은 신선하고 토속적인 시각으로 뉴질랜드를 묘사했다. 콜린 맥카혼은 뉴질랜드의 정신적인 세계를 잘 표현했고, 토스 울라스톤, 랄프호테레, 팻 핸리는 뉴질랜드의 토속적인 풍경과 전통을 표현하는 예술가로 이름이 높다.

1960년대 이후 뉴질랜드 예술작품의 질, 가치, 사회적 중요성이 점차 증가하였다. 이는 갤러리나 공공장소에 있는 그림, 인쇄물, 조각품들에도 잘 나타난다. 예술위원회는 예술가들의 창작활동과 전시회를 지원한다. 지난 20년 동안 예술작품의 커다란 발전이 있었고, 도공, 방적업자, 목공, 유리공, 가구 제조자, 보석세공사들은 국산재료를 이용하여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품을 만들고 있다. 이밖에 뉴질랜드에는 활기 넘치는 극장 무대를 비롯해, 역사가 가장 오래된 두네딘 국립미술관 등 여러 미술관이 있다.

동영상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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