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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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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시아 시기
니코시아 휘장
니코시아 지방자치단체 건물
모스크로 바뀐 성 소피아 성당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니코시아(영어: Nicosia, 그리스어: Λευκωσια, 튀르키예어: Lefkoşa)는 키프로스수도이며 원형의 성벽이 니코시아에 위치해 있고, 1960년 독립 이전부터 키프로스섬의 중심지였다. 1974년에 터키의 키프로스 침공 이후 도시가 남북으로 분리되었으며, 중간에 1990년 독일의 재통일 이후에는 유일한 분단 수도로 남게 되었다. 터키의 침공 때 니코시아 국제공항이 폭파됐고, 공항 자리가 UN군 완충지대에 들어가게 되면서 UN군이 쓰고 있는 일부 시설을 제외하고 공항이 완전히 폐허가 된 채 봉쇄됐다. 현재 키프로스 제 1의 관문은 라르나카 국제공항이다.

키프로스가 지배하는 남부의 인구는 239,277명(2011년)이고, 북키프로스가 지배하는 북부의 인구는 71,078명(2006년)이다.

남북의 경계는 UN이 관리하고 있으며, 왕래는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개요[편집]

역사[편집]

고대[편집]

  • 기원전 12세기경 미케네 문명을 형성했던 아카이아인들이 발칸반도 북쪽 도리아인의 남하로, 남쪽으로 내려와 기원전 709년, 키프로스에 정착하였다.
  • 아카이아인들은 12개의 도시 왕국을 건국하였는데, 니코시아에는 레드라(Ledra)라는 왕국이 세워졌다.
  • 레드라는 기원전 545년 페르시아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가 기원전 58년 로마제국에 병합되었다.
  • 395년 로마제국의 분열로 니코시아는 동로마제국의 영토에 포함되었다.
  • 647년 아랍인들이 키프로스를 침입하여 해변 도시들을 파괴했지만, 섬의 내륙에 위치한 니코시아는 파괴되지 않아 섬에서 지리적·경제적으로 중요한 도시가 되었다.
  • 965년 비잔틴 제국은 키프로스를 다시 탈환하고 니코시아에 총독을 파견해 통치하면서 니코시아는 자연스럽게 키프로스의 수도가 되었다.

중세 시대[편집]

1192년 후반 키프로스는 성전기사단(Knights Templar)을 이끌었던 프랑크족 출신 뤼지냥가문(Lusignan) 기(Guy)의 소유가 되었다. 뤼지냥 가문은 1489년 베네치아 공화국에 패배해 물러날 때까지 300여 년 동안 니코시아를 수도로 삼고 키프로스를 통치하였다. 비잔틴 제국이 지배할 당시 그들은 니코시아를 '레프코시아(Lefkosia)'라고 불렀는데, 프랑스인들이 이를 잘 발음하지 못해 '니코시아'라고 불렀다. 뤼지냥 왕가는 성 소피아성당(St. Sophia Cathedral)을 비롯해 많은 교회와 궁전을 건설하고 도시의 성벽을 쌓았다.

1489년 키프로스가 베네치아 공화국의 손에 넘어간 이후에도 니코시아는 계속해서 수도로 지정되었다. 베네치아인들은 오스만 제국의 침략에 대비해 니코시아의 성벽을 더욱 견고히 하고, 뤼지냥 왕가가 만든 성과 왕궁 및 교회를 재건하였다. 새로 건설된 성은 방어에 훨씬 용이 하도록 디자인되었는데, 11개의 꼭짓점을 가진 별 모양의 성벽을 축조하고, 성벽 외곽에는 깊은 웅덩이를 파서 페디에오스강(Pedieos)의 물줄기를 끌어와 해자를 만들었다.

베네치아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니코시아는 1570년 오스만 제국의 공격을 받아 40일 만에 함락되었다. 오스만군은 니코시아를 약탈하여 2만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죽여 당시 살아남은 인구가 1,100~1,200명에 불과했다. 오스만 제국의 점령 후 소피아성당을 포함한 니코시아의 기독교 성당들은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었다.

영국 식민 통치 시대[편집]

1878년 7월 5일 키프로스 협약에 따라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키프로스를 할양받은 영국은 니코시아를 수도로 지정하고, 키프로스를 영국식으로 변화시켰다. 20세기 초반부터 인구가 다시 늘어났고, 니코시아는 성곽의 외곽까지 확장되었다. 1955년 니코시아 주민을 중심으로 섬을 그리스에 편입하여, 그리스에 속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그리스 에노시스(Enosis)를 요구하는 무장 투쟁이 진행되었다. 이는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하기 위한 독립 투쟁의 하나였다. 당시 에노시스 운동은 그리스 키프로스 민족주의 군사 저항 조직인 EOKA가 주도하였고, 튀르키예계 키프로스인을 제외한 다수의 키프로스 사람들이 이들을 지지하였다. 1960년 키프로스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분단[편집]

1960년 니코시아는 독립과 함께 그리스계 키프로스인과 튀르키예계 키프로스인이 공존하는 독립국가의 수도가 되었다. 1963년 그리스계 키프로스인의 헌법 수정 요구를 튀르키예계 키프로스인들이 거부하면서 두 집단 간 갈등이 심화되었다. 1963년 12월 21일 양측은 폭력 사태를 맞이하자 UN은 두 인종의 거주지역에 따라 북쪽의 튀르키예 키프로스 지구와 남쪽의 그리스 키프로스 지구로 구분하는 그린라인(Green Line)을 설정해 북쪽과 남쪽을 분할하였다.

이후 튀르키예계 키프로스인은 정부 요직에서 모두 물러났고, 1964년 키프로스섬 내에 거주하던 튀르키예계 키프로스인들이 북쪽으로 이주하였다. 이로 인하여 니코시아 튀르키예 지구 내 인구수가 급증하면서 과밀 현상이 매우 심각해지기도 하였다. 1974년 7월 15일 그리스 에노시스를 지지하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자, 5일 후인 7월 20일 튀르키예군이 키프로스를 침공하였다. 튀르키예군은 니코시아 북부를 포함한 키프로스 섬의 37%를 점령하였다. 1975년 2월 13일, '북키프로스 튀르키예공화국(Turkish Republic of Northern Cyprus)' 정부 수립을 선언하고 니코시아 북부를 수도로 삼았다. 이로써 니코시아는 그리스계 '키프로스공화국(Republic of Cyprus)'과 튀르키예만 유일하게 국가로 인정한 '북키프로스'의 공동 수도로,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과 북으로 분단된 수도가 되었다.

2003년 4월부터 니코시아 내 남북을 오갈 수 있는 도로가 개통되었다. 2016년 10월 30일 북키프로스가 UTC+3:00 시간대를 공식 시간대로 사용하기로 하면서, 니코시아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두 개의 공식 시간대가 존재하는 수도가 되기도 하였으나, 2017년 다시 원상복구되었다.

지리[편집]

키프로스섬의 중앙부에 위치하였으며 섬의 북쪽 [[키레니아산맥(Kyrenia Mountains)과 남쪽의 트루도스산맥(Troodos range) 사이에 위치한 메사오리아(Mesaoria)평원 중심에 자리하며, 도시의 서쪽에는 페디오스강(Pedieos river)이 흐른다. 지형은 전체 적으로 평탄하며 큰 기복이 없다.

니코시아는 페디오스강 물줄기를 따라 좁고 길게 조성된 녹지와 남동쪽 가장자리에 있는 아탈라샤 국립 공원(Athalassa National Forest Park)을 포함해 산발적으로 흩어져있는 몇몇 공원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도시지역이다. 니코시아의 경계를 벗어나면 넓게 펼쳐진 농업지역을 만날 수 있다.

니코시아는 높은 기온과 적은 강수량이 특징인 무더운 스텝기후(BSh)에 속한다. 연중 강수량이 342㎜에 불과하며 여름인 6월부터 10월 사이에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고 12월부터 2월 사이의 겨울철에 내린다. 눈은 거의 내리지 않아 눈이 쌓이는 일은 극히 드물다. 반면 가장 더운 7월과 8월에 강수량은 가장 적어 매우 건조해진다. 연평균 기온은 약 20℃이지만 여름철 평균 기온은 25℃, 겨울철 평균 기온은 약 12℃로 계절별 차이가 큰 편이다.

정부[편집]

현대 니코시아와 주변 도시는 거버넌스(governance)를 구성하여 하나의 지역 생활권을 구성하고 도시 기능을 공유하고 있다. 이를 일컬어 'Greater Nicosia'라고 칭한다. 니코시아를 중심에 두고 주변 도시가 서로 연합하고 있는 형태로, 니코시아는 자체 시정이 중심이되며, 주변 지역은 각각의 지방 자치 단체에 소속된다. 니코시아와 거버넌스를 구성하는 지방 자치 단체로는 스트로볼로스(Strovolos), 라카타미아(Lakatamia), 라트시아(Latsia), 아글란드지아(Aglandjia), 아기오스 도메티오스(Agios Dhometios), 예리(Yeri), 트세리(Tseri)가 있다.

경제[편집]

대 시기까지 니코시아는 농업 중심의 사회였고 오늘날까지 대다수는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니코시아 주변의 농촌에서는 밀, 보리, 채소 및 과일뿐만 아니라 소, 양 등 축산업이 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20세기 초에 확장된 도시의 외곽에서는 면사, 직물, 밀가루, 제과, 청량음료, 신발 및 의류산업 단지가 위치한다.

니코시아는 수도로서 정치의 중심지이자 키프로스의 금융 및 비즈니스 중심지이다. 키프로스 내에서 운영 중인 모든 은행의 본부가 위치하고 있다. 또한 세계적인 기업인 다국적 기업 전문 서비스 네트워크 회사, 프라이스 워터하우스 쿠퍼스(PWC), 딜로이트(Deloitte), KPMG, ERNST & YOUNG 등이 니코시아에 본사를 두고 있다. 또한 관광산업의 발달로 고소득을 울리고 있다.

문화[편집]

니코시아는 수없이 많은 종교 문화권이 직접 유입되어 통치를 진행하였기 때문에 다양한 종교 시설과 종교 교파의 유산이 남아 있다. 그리스정교회,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러시아정교회, 로마가톨릭교회, 마론파, 성공회, 개신교회, 이슬람교와 관련한 유산이 남아 있으며, 역사적 배경으로 인하여 기독교 교회로 건설되었다가 모스크로 사용되는 건축도 있다.

  •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니코시아 북부에 위치한 13세기에 수녀원으로 건축되었고, 1308년 지진으로 파괴된 후 재건되었다. 수도원에 거주하는 수녀 대부분이 아르메니아 출신이었기 때문에 1504년 아르메니아 교회에 귀속되었다. 1963년 이후 북키프로스에서 관리하고 있다.
  • 성 소피아 대성당: '셀리미예 모스크'라고도 불리며 1326년 로마가톨릭교회 성당으로 북 니코시아에 위치한다. 성 소피아 대성당은 키프로스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고딕 건축 양식 교회로, 현존하는 건축물 이전에는 비잔틴 제국의 교회 건축이 있었을 것이라 추정되는 곳이다. 오스만 제국이 니코시아를 포위하고 봉쇄했을 당시, 사람들의 피난처 역할을 하기도 하였으나, 오스만 제국이 니코시아를 장악한 이후, 모스크로 사용되었다. 현재 술탄 셀림 재단 소유이며, 모스크로 사용되고 있다.

이외에도 키프로스 자연사 박물관, 레벤티스 시립 니코시아 반물관 등이 있다. 북 니코시아에는 데르비시 파샤 맨션(Dervish Pasha Mansion)이 있는데, 오스만 제국과 이슬람 고고학 유물을 전시하는 민족학 박물관으로 사용한다.

니코시아 미술관에는 키프로스, 그리스, 유럽 예술가의 그림을 전시하고 있으며, 소장품은 약 800점이 넘는다. 이외에도 키프로스 국립 극장, 팔라스 시네마 극장, 디오니소스 극장 등이 있다.

교육[편집]

키프로스 내에서 니코시아 도시 내 학생 수가 가장 많으며, 가장 규모가 큰 5개의 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지도[편집]

남유럽 국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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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동남유럽 같이 보기[편집]

동남유럽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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