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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
 
====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
 
[[파일:2002년 FIFA 월드컵의 붉은악마 거리응원.jpg|썸네일|lef|300픽셀|2002년 FIFA 월드컵의 붉은악마 거리응원]]
 
[[파일:2002년 FIFA 월드컵의 붉은악마 거리응원.jpg|썸네일|lef|300픽셀|2002년 FIFA 월드컵의 붉은악마 거리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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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의 본문은 김대중 정부 및 노무현 정부입니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면서 헌정 사상 최초의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실현되었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IMF]] 위기의 극복이었다. 국민의 정부는 '[[자유주의]]' 경제정책 추진과 [[금 모으기 운동]] 등을 통해, 2001년까지 [[외채]]를 조기 상환해 IMF 관리 체제에서 벗어났으며, 국제 기준에 맞춘 자율적인 [[구조조정]] 체제를 도입해 [[기업]]의 체질 개선 등을 단행했다. 국민의 정부는 [[한반도]]의 평화와 인권 신장에 기여했다. 특히 [[남북관계]]에 있어서 [[햇볕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분단 이후 처음으로 대한민국의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남북정상회담]]을 하였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2000억 원에 달하는 [[현금]]을 북한 정권에게 불법 [[송금]]했다는 혐의가 사후 드러나 큰 비판을 받았다. [[대북유화책]]을 추진했지만 [[연평해전]], [[핵실험]] 등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이 계속되어 햇볕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또한, [[IMF]] 위기 극복을 위해 국민의 정부가 추진했었던 [[신자유주의 정책]]은 승자 독식의 기형적 사회구조를 구축했다는 비판이 있으며, 지나친 구조조정과 기업 매각 등으로 대량의 [[실업자]]를 양산했다는 부정적 평가가 일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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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제15대 대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면서 헌정 사상 최초의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실현되었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IMF]] 위기의 극복이었다. 국민의 정부는 '자유주의' 경제정책 추진과 금모으기 운동 등을 통해, 2001년까지 외채를 조기 상환해 IMF 관리 체제에서 벗어났으며, 국제 기준에 맞춘 자율적인 구조조정 체제를 도입해 기업의 체질 개선 등을 단행했다. 국민의 정부는 한반도의 평화와 인권 신장에 기여했다. 특히 대북관계에 있어서 햇볕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분단 이후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남북정상회담]]을 하였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2000억 원에 달하는 현금을 북한 정권에게 불법 송금했다는 혐의가 사후 드러나 큰 비판을 받았다. 대북유화책을 추진했지만 연평해전, 핵실험 등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이 계속되어 햇볕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또한, IMF 위기 극복을 위해 국민의 정부가 추진했었던 신자유주의 정책은 승자 독식의 기형적 사회구조를 구축했다는 비판이 있으며, 지나친 구조조정과 기업 매각 등으로 대량의 실업자를 양산했다는 부정적 평가가 일부 존재한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새천년민주당]]의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면서 [[참여정부]]가 출범하였다. 2004년 대통령 탄핵 소추를 겪으며 위기를 맞았으나, [[여론]]의 반발과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 결정으로 마무리되었다. 같은 해 열린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탄핵역풍을 맞은 [[야당]]을 누르고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면서 국정 탄력을 받았다. [[참여정부]]는 [[권위주의]] 타파, [[균형발전]] 등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정책을 수립했다.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설치를 통한 과거사 정리, [[세종특별자치시]] 추진으로 균형 발전을 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참여정부는 보수진영의 반발이라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이상주의적 개혁과 [[대통령]]의 과격한 발언 등으로 보수층과 중도층의 반발을 불러왔고, [[노무현]]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 씨의 측근 비리 등 각종 [[악재]]로 인하여 임기 중반에 [[지지율]]이 하락하기도 하였다. 진보진영에서 선출된 대통령이었지만 [[신자유주의]]와 친미 외교정책을 펼치는 등, 진영논리에 따른 정부가 아닌 [[보수]], [[진보]]를 넘어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정치를 추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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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제16대 대선에서는 새천년민주당의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면서 참여정부가 출범하였다. 2004년 대통령 탄핵 소추를 겪으며 위기를 맞았으나, 여론의 반발과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 결정으로 마무리되었다. 같은 해 열린 총선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탄핵역풍을 맞은 야당을 누르고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면서 국정 탄력을 받았다. 참여정부는 권위주의 타파, 균형 발전 등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정책을 수립했다.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설치를 통한 과거사 정리, 세종특별자치시 추진으로 균형 발전을 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참여정부는 보수진영의 반발이라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이상주의적 개혁과 대통령의 과격한 발언 등으로 보수층과 중도층의 반발을 불러왔고, 노무현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 씨의 측근 비리 등 각종 악재로 인하여 임기 중반에 지지율이 하락하기도 하였다. 진보진영에서 선출된 대통령이었지만 신자유주의와 친미 외교정책을 펼치는 등, 진영논리에 따른 정부가 아닌 보수, 진보를 넘어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정치를 추구하였다.
  
 
====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
 
====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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