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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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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기 중국 창저우에 세워진 철사자 상
10세기 중국 창저우에 세워진 철사자 상
한국에서 가장 큰 동상은 위 사진인 충북의 법주사에 있는 금동미륵대불입상

동상(銅像, bronze statue)은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을 구리로 부어 만들거나 구릿빛을 입혀 만들어 놓은 기념물이다.

입상(立像) ·좌상(坐像) ·흉상(胸像) 등이 있다. 구리로 만든 것을 뜻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구리와 소량의 주석 합금인 청동으로 주조(鑄造)된 것이 많다. 청동은 나무 ·돌 ·철에 비하여 내구성이 강하기 때문에 인류문화 초기의 청동기도 현존하고, 이집트 ·그리스 이래 많은 동상이 남아 있다.

한국에도 불교가 전래된 이후 많은 불상이 구리를 재료로 하여 만들어졌다. 동상주조법은 납형(蠟型)과 사형(砂型)의 두 가지 기법으로 대별할 수 있다. 서양에서는 예부터 거의 납형인 데 반하여, 한국에서는 초기에는 납형 기법에 의한 것이 만들어지다가 점차 사형이 많아져 현재는 특수한 공예품 외에는 거의 사형에 의한 주조이다. 한국의 옛 작품은 거의가 불상이며, 그것이 동상인 경우에는 대부분 도금되어 있으므로 금동불이라 한다.

오늘날 동상이라고 하면 특정 인물의 기념상을 의미하는 것이 보통이며, 한국에서 기념물로서의 동상이 세워지게 된 것은 서양식 조각기법이 전해진 한말 이후부터이다. 원형이 목조로 된 것도 있으나 서양식 소조 기법이 일반화되고 난 다음부터는 원형을 소조로 하는 것이 많다. 이것은 먼저 찰흙으로 상을 제작하고 이로부터 석고형을 떠서 석고상을 만든 다음, 만들어진 석고상을 원형으로 주형(鑄型)을 만들어 구리로 주조하는 방법이다.

상세[편집]

왼쪽부터 통일의 조각상, 노산대불, 자유의 여신상, 어머니 조국상, 거대 예수상, 다비드 상

먼 고대부터 있어온 석상이 야금술의 발달로 자연스레 옮겨온 경우로, 석상이 그랬 듯 위인이나 전설적인 인물을 기념하게 위해 제작하거나, 신이나 성인(聖人)을 기리는 종교적인 목적으로 만들기도 하며, 독재자가 우상화를 위해 자신의 형상을 세우기도 한다. 과거 석상이 그랬 듯이 공공용으로 세워지는 게 일반적이지만 일부 유력자나 갑부가 순수히 장식용으로 세우는 일도 많다. 특히 근대 들어서 예술가들이 순수히 예술적인 의도에서 만드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화되었다. 사람이 손쉽게 들어올릴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것들을 제외하면 보통 재료 조달, 주조, 운송 등의 문제들로 인해 속은 비어있는 경우가 많으며 거대하게 만들 경우 부분부분 만들어서 레고 조립하듯 조합한다.

동상의 크기[편집]

2018년 인도에서 더 큰 동상을 짓기 전까지 가장 큰 동상은 자유의 여신상 보다 큰 중국의 허난성에 위치한 노산대불이었다. 자유의 여신상은 옛날에는 가장 큰 동상이었지만 현재는 더 큰 동상이 많이 세워져서 순위가 많이 밀렸다.

본체기준으로는 중국에 황제와 신농의 쌍두상(염화이제상)과 산동성 곡부에 있는 공자상, 러시아의 어머니 조국상과 표트르 대제상, 인도의 통일의 조각상을 제외한 세계 20위권 내의 15개 거대 동상들은 모두 종교 조각상이다.

한국에서 가장 큰 동상은 위 사진인 충북의 법주사에 있는 금동미륵대불입상 역시 불상이다.

인도에서 182m 높이의 입상을 세우겠다 라는 계획을 2013년에 발표했으며, 30m 가량의 차이로 세계 최대의 동상이 된다. 모델은 구자라트 주 출신의 독립 투사인 사르다르 발라브바이 파텔 전 부총리 겸 내무장관이라고 한다. 그리고 2018년 10월 31일에 파텔 탄생 143주년을 맞아 완공되었다.

몽골에 있는 징기스칸 동상은 특이하게 스테인리스 강철로 만들었다. 높이는 40미터밖에(?) 안 되지만, 기마상이라서 덩치는 높이가 비슷한 다른 동상에 비해 매우 크다.

최근 중국에서 관우상을 새로 만들면서 높이로는 그렇게 높진 않지만 어마어마한 덩치를 자랑하는(1320여 톤) 청동상이 제작되었으나 불법이라는 이유로(!) 철거 또는 이동을 명령받았다. 고성 인근이라서 고도제한이 걸려있어서 기단부만 허가를 받고는 일단 지었는데 뒤늦게 본체는 불법 건축물 취급을 받고 있다.

한국의 동상[편집]

국가 관리 동상

동상(銅像)은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으로 만든 기념물을 말한다. 주로 기념할 만한 역사적 인물이 대상이 된다. 인간이 동상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 속에 인간의 욕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동상을 세우려는 이들은 동상을 통해 후대가 계속해서 특정 인물을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기억하길 바란다. 동상을 오랜 기간 연구해 온 조은정 미술평론가(고려대 디자인조형학부 초빙교수)는 "추상적 개념이 가시화했을 때 사람들은 눈앞에 나타난 것을 진실로 믿어 버린다. 이미지는 사고를 지배하기 때문에 동상이 지니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고 말했다. 동상을 통해 당대 사람들이 직접 만나 보지 못한 과거 인물을 경험하고, 그것을 실재하는 것으로 믿기 때문에 동상을 지키려는 자들과 철거하려는 사람들 모두 동상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하면 국내에는 어떤 동상이 많이 세워졌을까. 국가에선 동상을 통해 누구를 끊임없이 기억하게끔 하려고 했을까. 국가보훈처가 현충시설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는 동상들을 살펴보면, 어떤 인물들이 애국적인 인사로 기억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보훈처가 현재 현충시설로 지정한 동상은 모두 162점이다. 독립운동으로 분류된 동상 93점과 국가 수호로 분류된 동상 69점 등이다. 현충시설이란 국가유공자의 공훈과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한 조형물과 건축물, 사적지 등을 말한다. 보훈처는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애국심을 기르는 데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조형물 등을 현충시설로 지정할 수 있다. 시설 소유자나 관리자가 국가보훈처에 동상 등을 현충시설로 지정해 달라고 요청하면, 현충시설 심의위원회(보훈처 직원 2명, 각계 전문가 11명 등 13명으로 구성)가 이를 심의해 현충시설 지정 여부를 결정한다.

162점 분석 결과 안중근 의사의 동상이 5점으로 가장 많았다. 그만큼 안중근 의사의 업적을 기리려는 우리 사회의 열망이 높았다고 봐야 한다. 그는 1909년 중국 하얼빈에서 일제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 한시준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안중근 의사 동상이 많이 세워진 이유에 대해"조국의 독립을 넘어 동양 평화를 지키기 위해 거사를 단행했기 때문에, 인류가 모두 공감하고 존경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심용환 역사N교육연구소 소장도 "독립운동사에서 너무나도 상징적인 인물인데다, 정치적 부담도 없어 각광받았던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예컨대 김구 선생과 이승만 전 대통령은 라이벌 관계였고 정치권의 평가도 상반돼 동상 건립에 부담이 됐던 것과 달리, 안중근 의사는 그런 부분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다는 설명이다.

안중근 의사 동상 다음으론 유관순 열사의 동상이 4점으로 가장 많았다. 남성 동상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162점 중 8점만 여성 동상)한 가운데, 유관순 열사 동상이 4점이나 되는 것은 유관순 열사의 '역사적 인기'를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정혜중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는 "젊은 여성이 식민지 시대에 몸을 바쳐 나라를 지키겠다고 한 부분에 대해 많은 사람이 감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밖에 베트남 파병을 위한 수류탄 투척 훈련 중 중대원 실수로 떨어진 수류탄을 몸으로 막아 중대원들을 구했던 강재구 소령, 1968년 북한 무장 공비 김신조 등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했을 때 총격으로 순직한 최규식 경무관의 동상도 각각 3점씩 있다. 권석도, 김구, 김창숙, 박상진, 신익희, 신채호, 이상재, 조만식, 최익현, 최현배 등 독립운동가들과 강승우, 송서규, 심일, 윌리엄 해밀턴 쇼, 이인호 등 한국전쟁 또는 베트남 전쟁에서 활약하거나 목숨을 잃은 인물들의 동상도 각각 2점씩 있다.

건립 시기가 기록에 남아있는 동상들을 분석한 결과, 독립운동 분야 동상 중에선 충정공 민영환의 동상이 가장 오래 전(1957년)에 세워진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수호 분야에서는 6ㆍ25전쟁에서 전사한 이근석 장군의 동상이 1953년에 세워져 1호 동상이다. 보훈처 동상은 최근까지도 세워져 현충시설로 지정되고 있다. 독립운동 분야에선 1919년 4월 4일 충남 아산 선장 장터에서 있었던 독립만세운동을 기리는 기념상이, 국가수호 분야에서는 6ㆍ25전쟁에 참가했다가 전사한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 동상이 각각 2018년에 건립돼 현충시설로 지정됐다.

기타[편집]

  • 살아있는 사람의 동상을 세우는 것은 독재국가를 제외하면 금기시된다. 이유는 우상화에 이용될 수 있다는 점,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의 복제인간을 세우는 것이라 기억과 기림의 목적과 맞지 않다는 점이다.
  • 김일성 동상은 북한 전역에 3만5천개나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동상으로 기록되었다. 김일성 동상보다는 적지만 김정일 동상도 상당히 많으며 그 외에 김일성의 아내인 김정숙이나 김일성의 최측근이었던 김책, 강건 등의 동상도 몇군데에 세워졌다. 이러한 이유로 북한은 동상기술 강국이기도 한데 주로 아프리카 국가들 쪽에 동상을 수출해서 외화를 벌어들인 적이 있다.
  • 어떤 인물을 타도하거나 독재를 무너뜨리려 할 때 동상이 대신 끌려내려와 부서진다. 그렇지 않더라도 낙서 반달리즘을 당하거나 동상이 일부 부서지는 등 험한 꼴을 당한다. 대표적인 예는 탑골공원에 있던 이승만 동상, 동유럽 혁명 때 부서진 레닌 , 스탈린 동상 등이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일부 개신교도들에게 훼손을 당하는 단군상, 현재 조지 플로이드 사망 항의 시위에서 훼손당하고 있는 콜롬버스 동상, 이라크 전쟁 때 대거 박살난 사담 후세인 동상, 감옥에 갇힌 전두환 동상의 머리가 부숴진 사건 등.
  • 전국의 초등학교마다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 책 읽는 소녀 동상이 한 두 개 쯤 세워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밤만 되면 세종대왕과 이순신 동상이 서로 싸우거나 소녀의 책장이 한 장 두 장 넘어간다는 괴담이 학교마다 존재한다. 소녀가 책을 다 읽으면 학교가 망하거나 학생들이 실종된다는 괴담이지만 실제로는 책 읽는 소녀상이 먼저 철거되거나 그 학교 학생들이 먼저 졸업하는 경우가 100%다.
  • 러시아는 광장과 동상을 무척 좋아한다. 광장마다 동상이 있다. 전제군주와 장군에서부터 예술가까지 몇백 년 전 사람들이 서 있다. 러시아 사람들은 동상을 타국에 설치하거나, 타국 동상을 자국에 설치하는 일을 대단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두 나라가 서로 자랑할 만한 인물을 나눠 갖는다는 건 존중과 소통의 증표 교환이나 다름없다.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은 학교 동양학부 정원에 박경리(1926~2008) 작가의 동상을 세울 계획이다. 지난 2013년 비영리단체인 '한러대화'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 러시아 작가 푸시킨의 동상을 세운 데 대한 화답이다.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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