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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마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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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 전경

메트로마닐라(타갈로그어: Kalakhang Maynila, Kamaynilaan, 영어: Metro Manila)는 마닐라시를 중심으로 16개 시와 1개 자치시를 포함한 대도시권이며 국가수도지역(National Capital Region, 약칭 NCR)으로 불린다. 메트로마닐라의 총면적은 638㎢, 인구는 13,484,462명(2020년 기준)이며, 인구기준 동남아시아의 최대 광역도시이다. 메트로마닐라는 필리핀 제도의 본섬인 루손섬의 서남부에 위치하며, 항구로서 천혜의 조건을 갖춘 마닐라만과 필리핀 최대의 담수호인 라구나호(Laguna de Bay)를 잇는 파시그강의 하구에 출발하여 현재는 마파식강 남북으로 넓게 확장되었다.

메트로 마닐라를 구성하는 시(City) 및 자치시(Municipality)는 본래 독립된 행정구역이었으나, 1975년 11월 7일 대통령령으로 이들을 포괄하는 '메트로폴리탄 마닐라'라는 광역 행정구역이 제정되었다. 1978년 6월 2일 대통령령으로 메트로폴리탄 마닐라를 'National Capital Region of the Philippines(NCR)'로 선포하고 지역 전체를 수도처럼 관리하고 있다. 메트로 마닐라(NCR)는 처음에 4개의 시와 13개의 자치시로 구성되었으나, 자치시들이 시로 승격되면서 현재와 같이 되었다.

가장 인구가 많은 시(City)는 케손시다. 케손 시티는 마닐라시를 중심으로 하는 기존 도심 지역의 북동쪽에 있는 넓은 지역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마닐라 시를 중심으로 하는 기존 도심이 완전히 초토화되자 당시 대통령이었던 케손의 구상으로 기존 도심의 북동쪽의 넓은 지역에 새로 건설된 신도심이다. 행정기관들이 대거 이전하였고, 필리핀 최대, 최고의 대학이자 국립대학인 필리핀 대학교도 여기에 건설되었다.

1948년부터 1975년까지 필리핀의 수도였다가 1975년 다시 마닐라 시로 수도를 바꾸면서 '메트로폴리탄 마닐라'가 제정되었다. 현재도 주요한 관공서들이 케손시에 많이 있다. 하지만 원도심에서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는데, 필리핀의 대중교통이 미비한 편이라 근래에 도시철도가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마닐라 도심에서 교통이 좋지 않았다. 때문에 신도시로 계획되어 행정 도시로서 면모를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부유층 주거지 이외에는 민간의 상업, 주거 시설의 발단은 더딘 편이었고, 전후 마닐라의 민간 상업지역과 주거지역은 파괴된 구도심 지역과 그 주변을 중심으로 재건되어갔다.

역사[편집]

스페인 식민시대[편집]

마닐라는 저지대로 하도가 복잡하고 자연운하가 발달한 비옥한 삼각주로 원래 마닐라만으로 열린 파시그강의 하구의 남부 제방에 자리한 소규모 정주지였다. 파시그강라구나호(Laguna de Bay)에서 마닐라만을 잇는 27㎞ 길이의 하천이다. 마닐라 이름은 두 개의 타갈로그어 단어인 'May(거기 있음)'와 'nilad(조간대에 잘 자리는 흰 꽃이 피는 맹그로브과 식물)'의 합성어이다.

스페인 세력의 점령 이전 거주자들은 대체로 말레이계 무슬림들로 중국과 다른 동남아시아 상인들 간의 중계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1570년 5월, 스페인 사람들이 마닐라를 방문하였고 최초의 총독인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Miguel Lopez de Legazpi, 1502~1572)는 세부와 파나이 지역에서 포르투갈 해적과의 전투에 성공한 이후 더 큰 섬인 루손섬에서 적절한 점령지를 찾으려 하였다. 이들은 1570년 마닐라를 침공하고 1571년부터 이곳을 스페인 왕의 도시로 선언하였다.

마닐라 점령 후 스페인 세력은 화공(火攻)에 대비하기 위해 돌로 만든 성곽도시를 30여 년에 걸쳐 건설하였다. 이 성곽도시의 이름은 성내를 의미하는 인트라무로스(Intramuros)이다. 성내에는 성당, 관청, 스페인 정착민들과 메스티소의 거주지가 건설되었다. 성 밖은 익스트라무로스(extramuros)로 불렸으며 스페인 식민세력들의 생계와 생활을 지원하는 일과 상업에 종사하는 현지인과 중국인들이 거주하였다.

마닐라의 도시화는 태평양을 횡단하는 갤리온 무역로(Galleon Trade)가 완성되며 본격화되었다. 스페인은 마닐라를 태평양을 가로질러 중국멕시코를 잇는 전략적 기지로 활용하였지만 스페인과 멕시코로부터의 물리적 거리로 인해, 스페인 정착민들의 수는 17세기 중반까지 3000명 선에 머물렀다. 식민지 정착민은 대체로 식민지 관료들과 성직자들이었고 여성 거주자는 매우 드물었다. 인프라무로스와 익스트라무로스의 다양한 지역들을 포괄하여 '마닐라'라는 지명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초부터이다.

미국 식민시대[편집]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 승리 후 필리핀을 점령하게 된 미국은 마닐라를 미국식 행정과 도시 계획을 통해 개조하고, 세속 교육과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였다. 마닐라시를 포함하는 23개 시군을 수도로 병합하였다. 1905년 미국의 건축가 다니엘 번햄(Daniel Burnham, 1846~1912)이 미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필리핀의 수도 건설과 바기오의 '여름 수도' 건설을 위해 파견되어왔다. 당시 마닐라의 인구는 약 1만 명 정도였는데, 번햄은 1905년 《마닐라 마스터플랜》을 발표하면서 이 도시를 인구 200만 내외의 동방의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번햄의 계획은 식민 정부에 의해 승인도 되었으나, 필리핀의 토착엘리트들은 이 계획의 실현을 거부하였다.

자치 정부[편집]

1935년 필리핀은 신헌법과 선거를 통해 10년 후 독립을 약속받은 미국령 자치 정부(커먼웰스 정부)를 수립하였다. 자치 정부의 첫 대통령인 마누엘 케손은 마닐라시의 동북쪽 외곽에 1939년 자신을 이름을 딴 케손시티를 새로운 수도로 선언하였다.

케손시티 건설계획은 도시의 형태를 타원형의 공원(현 케손 메모리얼 서클)을 중심으로 삼아 방사선 도로망을 건설하고 각종 국가 기구들을 그 안에 적절하게 배치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커먼웰스 정부 하에서 필리핀 하원(Batasang Pambansa Complex), 부통령의 집무실이자 영빈관인 케손리셉션하우스(Quezon City Reception House), 일종의 현충원인 케손 메모리얼 서클(Quezon memorial circle)이 케손시티에 자리한다. 필리핀을 대표하는 최고국립대학인 필리핀국립대학교(1949년 개교)와 명문사학인 아테네오대학교(Ateneo de Manila University)도 모두 케손시티에 자리 잡게 되었다. 1940년대에는 국가의 주요 농업 관련 부처(농림부, 농업 연구소, 산림 연구국, 농업훈련원, 농지개혁부, 코코넛청, 설탕관리부 등)과 의료기관(필리핀 폐센터, 신장이식원, 어린이병원, 보훈병원 등)이 케손 메모리얼 서클을 중심으로 건설되었다. 현재도 케손시티는 메트로마닐라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며, 필리핀의 지방행정도시(LGUs, Local Government Units) 중 인구가 가장 많다. 케손시티는 1975년까지 필리핀의 수도로 기능하였다.

독재 시대[편집]

1972년 계엄령 이후 독재를 선언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은 수도의 기능을 케손시에서 마닐라로 다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다. 1975년 새로운 대통령령이 공포되며 도시화가 다수 진행된 4개시 마닐라, 케손, 칼로오칸, 파사이와 13개의 군을 포함하는 메트로폴리탄 지역을 이른바 '국가수도지역(NCR, National Capital Region)'으로 선언하였다. 하지만 이미 13개 도시는 독립된 정치행정 단위로 움직이고 있었고, 각 도시를 대표하는 시장들도 강력한 독자적 정치력을 갖추고 있었다. NCR을 통합관리하기 위해 메트로마닐라위원회(Metro Manila Commission)이 만들어졌고, 이 기구의 수장은 영부인인 이멜다 마르코스(Imelda Marcos, 1929~)에게 맡겨졌다. 그녀에게는 주지사에 준하는 권한이 주어졌다.

이멜다 주지사는 메트로마닐라를 국가의 수도로 만들기 위한 일련의 계획을 추진하였다. 마닐라만에서의 정화사업(불법점유 빈민촌 축출)과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신규토지를 만들어 냈다. 새롭게 조성된 간척지 위에는 필리핀 복합문화센터, 메트로폴리탄민속예술극장, 필리핀국제컨벤센센터, 각종 국립의료원, 국빈숙소인 코코넛궁 등이 건설되었다.

민주화 이후[편집]

필리핀 시민들은 1986년 에드사(EDSA) 거리를 따라 이루어진 비폭력 시민혁명 민중의 힘을 통해 마르코스 독재를 종식시켰다. 시민혁명을 통해 대통령에 오른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은 마르코스가 만들었던 '메트로마닐라위원회'를 '메트로폴리탄마닐라청(MMA, Metropolitan Manila Authority)'으로 재조직화하였다. 메트로마닐라의 정치적 권한은 구성도시의 수장들에게 다시 분산되었다. 메트로폴리탄마닐라청의 권한은 광역적 도시문제(교통·상하수도·쓰레기 관리)로 한정되었고, 이 조직의 수장은 메트로마닐라의 시장들에 의해 선출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메트로폴리탄마닐라청(MMA)은 1995년 '메트로마닐라개발청(MMDA, Metropolitan Manila Development Authority)'으로 변경되었고, 청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형태로 변경되었다.

지리[편집]

메트로마닐라는 필리핀 루손섬 서부 끝자락, 마닐라만의 동쪽 해안에 위치한다. 마닐라의 대부분은 선사시대의 충적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일부는 마닐라만을 매립한 곳 위에 조성되어 있다. 지형적으로는 많은 부분이 원형이 아니라고 할 수 있으며, 현재도 마닐라만 매립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파시그강(Pasig River)이 메트로마닐라를 관통하여 동서로 흐른다.

메트로마닐라의 토지이용 대부분은 시가지로 조성되어 있다. 동남쪽에 라구나호(Laguna de Bay)가 있으며, 서북쪽 외곽에는 산지가 나타난다. 참고로 '라구나호'는 스페인 식민시대 명명된 호수 명으로, 스페인어 표기법에 따라 '베이호'라는 의미를 갖지만 현재는 라구나호라는 명칭이 보다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대도시권 서부의 마닐라만 주변으로 수많은 산지가 있으며, 산지의 하부에는 농지를 확인할 수 있다.

마닐라는 열대 사바나기후(Aw) 지역이며 열대 계절풍기후 지역이다. 마닐라는 열대기후 특성으로 계절 평균기온의 차이가 크지 않으며 29~34℃ 수준이다. 최저기온이 19℃ 이하거나 최고기온이 39℃ 이상인 경우는 드물게 발생한다. 단 습도가 높아 체감온도는 높다. 마닐라의 건기는 12월 말부터 4월 초까지로, 연평균 강수량이 2000mm를 상회한다. 우기에는 태풍도 내습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과다강수 등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행정구역[편집]

메트로마닐라 행정구역

메트로마닐라는 16개 시와 1개 자치시로 구성되었다.

교통[편집]

도로[편집]

도로 기반 대중교통은 택시, 버스, 지프니, 트라이시클(삼륜 오토바이) FX라 불리는 밴 형태의 다중이용 택시가 있다. 마닐라만라구나호 사이의 좁고 남북으로 긴 형태의 도시 형태를 지닌 까닭에, 메트로마닐라의 주요 도로망은 남북 방향으로 발달하였다. 메트로마닐라의 가장 중요한 도로는 에드사(EDSA)이다. 이 도로는 칼루칸시보니파시오 유적(Bonifacio Monument)에서 시작해서 마닐라만에 위치한 파사이까지 이어져있다. 메트로마닐라의 주요 요지에 모두 걸쳐있고, 특히 케손시티-쿠바오(Cubao)-만달루용-마카티-파사이 구간은 왕복 10~12차선에 가운데에는 지상철인 MRT 라인까지 더해져 있다. 조율되지 않은 도시 개발과 교통수단의 난립으로 교통체증이 심각하여 이를 우회하기 위해 파사이에서 케손시를 잇는 C5라는 동부 외곽도로가 건설되어 있다.

필리핀의 지프니(Jeepney)는 중고 엔진과 차체를 기본으로 좁고 긴 좌석을 배치한 필리핀의 주요 대중교통수단이다. 승객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지프니의 외관을 경쟁적으로 화려하게 색칠할 수 있어 필리핀의 문화적 상징으로 인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미 2000년대부터 지프니는 교통체증과 대기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승하차 장소가 정해져 있지 않고, 낮은 품질의 연료를 사용해 대표적인 매연배출원으로 비판받고 있다. 최근 마카티와 케손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전기차 지프니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다. 글로벌도시를 선언한 신도시 BGC 내부에는 지프니 운행이 금지되어 있다.

철도[편집]

철도는 경전철(LRT 1, 2호선 및 MRT 3호선)과 국철로 구분된다. 경전철은 메트로마닐라 안에서 운영되는 노선이고, 국철은 메트로마닐라와 남북의 인접도시를 연결하는 곳이다

항공[편집]

국가 관문 역할을 하는 니노이아키노국제공항(NAIA)도 메트로마닐라의 파사이에 위치한다.

교육[편집]

산토토마스 대학

메트로마닐라 내에는 필리핀을 대표하는 주요 대학들이 밀집해 있으며 약 300개 이상의 국립 및 사립대학(전문대 및 특수대학원 포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요하게는 마닐라시와 케손시에 집중되어 있다.

마닐라시에는 필리핀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산토토마스(University of Santo Tomas)(1611)와 예수회에서 운영하는 라살 대학(De La Salle University)(1911) 등이 대표적이다.

케손시에는 필리핀국립대학(UP Diliman)과 명문사학 아데네오대학(Ateneo de Manila)(1859)이 위치하고 있다. 참고로, 필리핀국립대학교(University of Philippines)는 단일 종합대학이 아니라 수도 마닐라를 포함해 전국 주요도시의 총 8개 대학들의 연합체로, UP Diliman(마닐라의 본 캠퍼스), UP Cebu, UP Bagio처럼 UP라는 대학명 뒤에 대학이 위치한 도시명이 붙는다.

새로운 중심지로 부상하는 BGC에는 다수의 국제학교(초~고등학교)가 위치한다. 영국, 중국, 미국, 그리고 한국 국제학교도 BGC에 위치한다. 국제학교는 신흥도시의 매력도를 높이는 가치를 지닌다.

관광[편집]

  • 인트라무로스: 식민지 성곽도시
  • 마닐라대성당: 필리핀의 주교좌 성당
  • 퀴아포 성당(Quiapo Church): '블랫 나자렌(Black Nazarene)'이란 성물(聖物)이 있는 곳으로 필리핀 국민과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 블랙 나자렌 축제(Feast of Black Nazarine): 필리핀에서 연중 가장 먼저 시작되는 종교 관련 축제이다. 퀴아포 성당에 안치된 검은 예수상이 1년에 한 번 밖으로 나와 마닐라시의 주요 지점을 이동하는 행사이다.
  • 음력설 축제: 대표적인 차이나타운 비논도에서 용과 사자 모형을 쓴 대규모 거리공연이 이루어진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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