뭄바이 편집하기
최신판 | 당신의 편집 | ||
9번째 줄: | 9번째 줄: | ||
== 역사 == | == 역사 == | ||
− | 뭄바이는 16세기까지는 어촌에 지나지 않았다. 그때까지 뭄바이섬은 | + | 뭄바이는 16세기까지는 어촌에 지나지 않았다. 그때까지 뭄바이섬은 고대그리스의 톨레미(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지도에 수록되어 있듯이 7개의 작은 섬에서, 토착민들이 어업을 중심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1534년에 이곳을 지배하던 토후(土侯) 바하두르 샤가 포르투갈에 권익을 넘겨주었으며, 1662년에는 포르투갈 국왕이 누이동생 캐서린과 영국의 찰스 2세와의 결혼 때, 지참금의 일부로서 이곳을 영국에 양도하였다. 찰스 2세는 당시 양항(良港)을 찾고 있던 영국의 동인도회사에 연간 10파운드의 금과 교환하여 7개의 섬을 처분하였다. 이때부터 동인도회사에 의한 해면매립과 항만건설 및 도시건설이 시작되었다. 1861∼1865년 미국 남북전쟁의 영향으로 인도 목화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 뭄바이는 목화의 집하지·적출항으로서 활기를 띠게 되었다. |
− | 1869년 | + | 1869년 수에즈 운하가 개통됨에 따라 인도에서 유럽에 이르는 최단거리에 위치한 뭄바이항은 중요성을 더하게 되었다. 인도 전국에 철도망이 완비되자 뭄바이는 인도 서해안 최대 경제 중심지로서 발전하였다. 항만기능은 인도 최대로서 전인도 무역량의 1/3을 취급하며, 목화·곡물·종자 등의 수출과 공업제품·금속·기계류 등의 수입으로 인도의 대외무역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 |
19세기 중엽부터 창업한 근대 방적업이 발전하여, 아마다바드시(市) 다음으로 인도 제2의 생산실적을 올리고 있다. 그 밖에 기계·조선·인쇄·식료품 등을 비롯한 각종 공업이 발달하였다. 북쪽 교외에서는 석유정제 기지가 있으며, 원자력발전소도 가동하고 있다. 반도부의 남동단에는 프린세스(1880 완성)·빅토리아(1888)·알렉산드리아(1914) 등의 독(船渠)이 자리잡고 있다. | 19세기 중엽부터 창업한 근대 방적업이 발전하여, 아마다바드시(市) 다음으로 인도 제2의 생산실적을 올리고 있다. 그 밖에 기계·조선·인쇄·식료품 등을 비롯한 각종 공업이 발달하였다. 북쪽 교외에서는 석유정제 기지가 있으며, 원자력발전소도 가동하고 있다. 반도부의 남동단에는 프린세스(1880 완성)·빅토리아(1888)·알렉산드리아(1914) 등의 독(船渠)이 자리잡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