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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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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시(富川市)는 대한민국 북서부에 위치한 경기도의 중서부에 있는 시이다. 서울특별시인천광역시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개요

  • 행정 단위: 대한민국 경기도 도시
  • 면적: 53.4km²
  • 인구: 818,383명 (2020년)
  • 시청 소재지: 경기도 부천시 길주로 210
  • 시장: 장덕천(더불어민주당)
  • 정부 공식 홈페이지: https://www.bucheon.go.kr/site/main/index148

지도

역사

선사시대

부천의 대표적인 선사유적으로는 고강동의 청동기시대 유적이 있다. 이 유적은 1995년 여름 홍수 때 반달돌칼과 석창 등 매우 정교하게 가공된 석기 유물이 드러나면서 발견되었다. 이후 2005년까지 한양대 박물관과 한양대 문화인류학과에 의해 7차에 걸친 발굴로 총 21기의 청동기시대 주거지와 제사유적인 적석환구유구가 확인되었고 함께 출토된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인 민무늬 토기와 간석기류 등은 청동기시대 뿐만 아니라 초기 철기시대까지 사용된 것으로 판단되어 한강 유역의 초기 국가단계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자료가 되고 있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

삼한시대 마한 54소국의 하나인 우휴모탁국(優休牟琢國)을 부천 일대로 비정하는 견해도 있지만, 사료가 부족하다.

삼국시대 부천의 인근 지역인 인천이 백제 미추홀이었던 것에서 유추하여 부천도 백제의 영역에 포함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475년(장수왕 63) 고구려가 백제를 공격하여 수도인 한성을 함락시키고 한강 일대를 차지하면서 고구려의 주부토(主夫吐)로 기록되어 문헌에 최초로 등장한다. 주부토는 고구려의 지명으로 당시 한강의 지류인 굴포천의 범람원에 위치하여 황무지였던 땅에 긴 둑을 쌓아 '줄보둑'-'주부토'로 부른 데서 비롯된 말로 추정한다. 6세기에 고구려가 왕위 계승 분쟁이 일어나는 등 정치적 불안이 거듭되자, 551년 부천 일대의 한강 하류 지역을 백제가 수복하였으나, 553년 신라가 급습하여 한강 유역을 점령하였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전국을 9주5소경으로 정비하면서 지명을 한자식으로 변경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고구려식 이름인 주부토군도 긴 둑이라는 뜻의 장제군(長堤郡)으로 변화되었다.

고려시대

918년 왕건은 고려를 건설한 후 940년(태조 23년)에는 전국 주·부·군·현의 지명을 고쳤다. 이때 부평의 지명도 장제군에서 수주(樹州)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부평의 읍격이 상승된 것을 의미한다. 수주라는 명칭은 시인 변영로의 호가 되었고, 지금 고강동 일부 지역의 지명으로 사용되고 있다. 1150년(의종 4년)에는 전주에 있던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를 수주로 가져오면서 지명도 안남으로 변화되고 읍격도 상승하였다. 고려 전기의 도호부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거점에 설치되었다.[18] 당시 부평에 안남도호부를 설치한 것은 12세기에 백성의 유망이 많아지고,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 등 정치적 변란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수도 개경의 방위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1215년(고려 고종 2년)에 안남도호부에서 계양도호부(桂陽都護府)로 개칭되었고, 1308년(충렬왕 34년)에 길주목으로 승격되었으나 1310년(충선왕 2년)에 다시 부평부로 강등되었다.

조선시대

1392년 건국한 조선은 전국을 8도로 나누었고, 이때 부평은 전국 44개 도호부 중 하나로 종3품인 도호부사가 파견되었다. 당시 부평은 강화와 김포를 거쳐 한성 및 해주와 연결되는 한강 수로에 위치였기 때문에 행정구역상 수원진관에 소속되어 인천을 속읍으로 둔 군사적 요충지였다.

조선시대 삼남 지방에서 올라오는 조운선들은 인천과 부평 연안을 지나 강화도 염하 수로를 거쳐 한강의 마포나루에서 하역하였다. 강화도 염하는 물살이 거세어 조운선들이 좌초되는 사고가 자주 발생하였다. 이에 따라 인천 연안에서 한강으로 직접 연결되는 물길을 내서 조운선을 운행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 시도는 중종 때 김안로에 의해서 추진되었는데, 당시 공사는 한강에서 시작하여 원통이고개까지 수로를 굴착하고 중단되었으나 2011년에 굴포천을 따라 완공된 경인아라뱃길의 원형이 되었다.

1895년(고종 32)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종래의 8도를 폐지하고 23부제를 시행하면서 부평은 인천관찰부에 속한 부평군이 되었다. 당시 부평군은 15개 면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 가운데 현재의 부천에 해당하는 곳은 상오정면·하오정면·석천면·주화곶면·옥산면의 일부 지역이었다.

대한제국

개항 이후 인천항을 통해 들어온 많은 외국인들과 교역품들이 서울로 향하면서 그 길목에 해당하는 부천에도 변화의 기운이 움트기 시작하였다. 특히, 1899년 노량진과 제물포를 잇는 경인선이 개통되어 부천에 소사역(지금의 부천역)과 오류동역(훗날 서울특별시로 편입)이 설치되면서 현재의 부천이 형성되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소사역은 광활한 김포평야에서 산출되는 농산물을 모아 인천항을 통해 일본으로 수출하기 위한 목적에서 설치되었다.

소사역이 설치됨에 따라 인근 마을의 주민들이 이주해서 여객을 상대로 한 접객업소와 음식점 등이 생겨났으며, 성주산 서쪽 기슭으로는 가로촌(街路村) 형태의 취락이 발달하였다. 1904년경 일본인들에 의해서 서울을 중심시장으로 하는 근교농업 형태의 복숭아 과수원이 성주산 자락의 사질토양을 배경으로 세워졌고, 경작을 위한 노동력으로 주민들이 늘어나면서 취락의 발달이 촉진되었다.

일제강점기

한국을 병합한 일제는 1914년 인천의 일본 조계 지역과 주변지역을 인천부로 삼고, 나머지 지역과 부평군을 합하여 부천군으로 개편하였다. 이때 부천이라는 지명이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신설된 부천군은 인천부의 일부와 부평군을 중심으로 강화군의 일부 섬, 남양군의 대부면과 영흥면의 섬들을 포함하여 15면 160리에 달했다. 당시 부천군청은 인천도호부가 위치한 문학면 관교리에 있었다. 당시 소사역 일대는 계남면에 해당하였는데, 계남면은 1931년 소사면으로 개칭되었으며, 1941년 소사읍으로 승격되었다. 1914년 당시 부천군 15개 면 가운데 계남면·오정면의 대부분 및 소래면의 일부 지역이 현재의 부천시 영역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1919년 일제의 식민지 지배체제에 항거한 3·1운동이 발발함에 따라 부천에서도 격렬한 항일시위가 전개되었다. 1919년 3월 24일 계남면사무소가 군중들의 습격을 받아 조자칭과 판벽 등이 파괴되었다. 이후에도 부천을 중심으로 항일운동이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

대한민국

1960년대 초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실시되면서 공업화와 도시화가 급속히 이루어졌으며,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의 인구가 급격히 팽창하였다. 이에 따라 1973년 행정구역 개편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수도권의 합리적인 개발과 인구집중 억제, 무질서한 시가지 팽창 방지를 위해 수도권의 행정구역 조정이 있었다. 이때 부천군이 폐지되면서 소사읍이 부천시로 승격되었다.

1990년대 수도권 일대 5대 신도시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중동신도시 개발이 진행되면서, 부천은 도시화가 급격히 이루어졌다. 중동신도시는 정부의 200만호 주택건설계획의 실현, 토지자원의 효율적 이용 및 도시구조 개편, 대규모 택지개발 및 주택공급을 목적으로 하였다. 이 사업은 부천시 춘의동·삼정동·심곡3동·상동·중동·송내동의 6개 동에 걸치는 약 165만평에 이르는 대규모 사업이었다. 이 사업으로 인해 부천으로 유입되는 인구는 42,500세대, 170,000명으로 계획되었다.

중동신도시의 개발은 주택보급 확대 측면 외에도 기존 부천시의 도시구조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컸으며, 부천시 도시 및 주거환경의 양적, 질적 수준의 향상과 함께 기존 부천시의 도시패턴을 수용, 재편성하면서 새로운 부천시의 중심으로 활성화될 수 있도록 계획·개발되었다.

한편, 1973년 7월 1일 부천군이 폐지되고 소사읍이 부천시로 승격되었으며, 1988년 중구와 남구를 설치하고, 1993년 2월 1일 중구를 원미구와 오정구로 분구하고, 남구를 소사구로 개칭하는데에 이른다. 그러다 2016년 7월 4일 책임읍면동제 시행으로 인하여 3개구가 전면 폐지되었으며, 36개의 행정동을 10개의 행정복지센터가 관할하도록 조정하였다. 이후 2019년 7월 1일부터 행정동을 10개로 통폐합하고, 종전의 36개 동 주민센터가 10개의 광역동 주민센터와 28개의 주민지원센터로 구성 운영된다.

지리

부천시는 경기도 서부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휴전선(경기도 김포시 소재)에서 남동쪽으로 최소거리 기준 26.8km 부천시청 기준 31km 지점에 있다.한강이남 경기도 치고 휴전선과 매우 가까운 지역이다. 동쪽으로 서울특별시 구로구와 양천구, 북쪽으로 서울특별시 강서구, 서쪽으로 인천광역시 부평구, 계양구와 접하며, 남쪽으로는 광명시, 시흥시와 접하고 있다.

지형

부천은 해발 고도 50m 미만이 시 전체의 80% 이상이고 경사도 5% 미만이 약 70%로, 대체로 낮고 완만한 지형이다. 동부와 남부에는 200m 안팎의 산지가 있고 북부와 서부에는 여러 지류의 하천이 중동과 오정동에서 합류하면서 넓은 평야를 형성하여 전체적인 지형은 남동부가 높고 북서부는 낮다. 시가지에서 보면 남부는 성주산(217m)과 할미산(153m), 동부는 원미산(165m)이 완만한 구릉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는 중생대 쥐라기의 대보화강암과 흑운모화강암과 같은 화강암반이 오랜 세월에 걸쳐 침식된 구릉성 산지와 침식평야이다. 이들 중생대의 화산암체는 안양과 관악산 및 북한산의 대보화강암과 일체가 되는 형태이다. 경사가 완만한 침식평야는 배수가 잘 되어 일찌감치 송내동, 심곡동, 소사동, 원미동, 도당동을 따라 밭농사에 적합하여 복숭아 재배가 이루어졌고 취락의 입지에도 유리하여 부천의 구시가를 자리 잡고 있다.

북부와 서부에는 베르네천, 고리울천, 심곡천 등 여러 지류의 하천이 중동과 상동, 오정동에서 굴포천으로 합류하면서 넓은 평야가 형성되었다. 이 지역들은 배수가 잘 되지 않는 들로 한강과 그 지류인 굴포천의 범람으로 형성된 충적평야인 부평평야의 일부분이다. 이곳의 토양은 사면의 이동물질과 표토에 포함된 유기물질들이 운반 퇴적된 비옥한 운적토이며 토목기술의 발달과 함께 배수 문제가 해결되면서 넓은 벼농사 지역으로 이용되어 왔다. 낮고 배수가 잘 되지 않는 범람원 지역이라 1984년과 1987년 여름과 같은 큰 홍수 때는 몇 일간 침수되기도 하였다. 심곡동 근처의 옛 지명인 '진말'은 이러한 현상과 관련된 지명이라 할 수 있다. 이 후 배수 시설이 보강되고 중동신도시 및 상동지구가 조성되었다.

하천

부천의 자연 하천으로는 소사동에서 발원하여 중동과 상동을 흐르는 심곡천과 여월동에서 발원하여 원종동과 오정동을 흐르는 베르네천이 있었다. 이들 하천은 1980년대 이후 급격한 도시화 과정에서 대부분 복개되어 도로 밑으로 흘렀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역곡천과 베르네천의 일부 구간이 복개보다는 도심경관 하천으로 꾸며 지역 주민에게 휴게공간이 되도록 하는 자연형 하천 공사가 이루어졌고 지금은 부족한 유지용수용 지하수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편 상동 신시가지를 중심으로 5.5 km의 인공하천인 시민의 강이 조성되었다. 1986년에 복개되어 도로로 이용되는 심곡천의 일부 구간이 환경부에서 추진하는 '도심 건천·복개하천 생태복원사업' 대상으로 선정되었고 2014년부터 서울의 청계천과 비슷한 방식으로 복원하는 공사가 시작되어 복개된지 31년만인 2017년 5월에 완공되었다. 복원된 심곡천은 소명여고 사거리에서 부천시 보건소까지 약 1 km 구간이며 폭 18.6m, 수심 25cm의 하천에 하루 2만1000t의 물이 흐르고 있다. 이처럼 부천시의 복개된 자연하천의 복원 사업은 자연환경 복원뿐 아니라 낙후된 구도심에 활력을 주기 위한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기후

부천은 온대 하우 기후/냉대 동계 소우 기후(쾨펜의 기후 구분 Cwa/Dwa)에 속한다. 평균기온은 12 °C이며 최한월 1월은 -2.4 °C, 최난월 8월은 25.1 °C이다. 강수량은 1206mm이며 2월에 가장 적은 19.9mm, 7월에 가장 많은 309.2mm를 기록한다. 2004년부터 2009년 자료에 따르면 강설일은 14~21일, 황사일은 9~13일, 서리일은 27~44일이다.[12] 지역의 대부분이 시가지인 영향으로 열섬현상이 나타나 봄철 벚꽃 개화일은 남쪽에 위치한 경기도 시흥시나 인천광역시 남동구보다 1~2주 빠른 편이다.

행정 구역

부천시의 행정 구역은 10행정동 708통 5,093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 심곡동(深谷洞)
  • 부천동(富川洞)
  • 신중동(新中洞)
  • 상동(上洞)
  • 대산동(大山洞)
  • 소사본동(素砂洞)
  • 범안동(範安洞)
  • 성곡동(城谷洞)
  • 오정동(梧亭洞)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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