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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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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寺院)은 종교를 위해 종교 단체의 신자들이 모여 종교 활동을 하는 장소이다. 종교에 따라 부르는 명칭은 각기 다르다.

개요[편집]

사원은 예배의 대상을 모시고 종교의례와 종교활동을 행사하는 장소로서의 시설(건조물)을 갖춘 일정한 영역을 말한다.

원래는 불교사원을 지칭하며 , 정사(精舍), 가람(伽藍)이라고도 한다. 예배의 대상(스투파, 불상 등) 또는 이를 모시는 사당(차이티야 당)과 스님이 거주하는 승원(비하라)을 기본 구성요소로 하며 여러 가지 용도의 건물을 갖추고 있다. 중국, 한국에서는 시대와 종파에 따라 사원의 구성, 건물의 종류, 명칭 등 많은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유럽에서는 템플(temple)이라고 말하며 넓은 의미로 사용된다.

종교별 사원[편집]

사당(祠堂)은 조상의 신주(神主)를 모시는 곳이다. 가묘(家廟)라고도 한다. 근원은 《주자가례(朱子家禮)》에 의한 것으로, 고려 말 정몽주(鄭夢周)·조준(趙浚) 등이 시행할 것을 역설하였으나 당시는 불교가 성행한 때였으므로 쉽게 실천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성리학을 국가 정교(政敎)의 근본으로 삼은 조선시대에는 사당의 시행이 철저히 강요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사당을 설치하지 않은 사대부는 문책을 당하기도 하고, 또 이것이 시비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선조 이후부터는 사대부 양반층에 일반화되었고 서인(庶人)들도 이에 따랐으며, 가난한 사람들은 대청 모퉁이나 기타 적당한 곳에 부설하였다. 사당에는 3년상을 마친 신주를 모시는데, 옛날에는 집을 지으려면 반드시 먼저 사당을 세워야 했다.

위치는 정침(正寢) 동편에 3칸으로 세우는데 앞에 문을 내고 문 밖에는 섬돌 둘을 만들어 동쪽을 조계(阼階), 서쪽을 서계(西階)라 하여 모두 3계단으로 하였다. 사당 안에는 4감(龕)을 설치하여 4대조를 봉안하는데, 반드시 북단에 남향으로 하고, 서편부터 제1감이 고조고비(高祖考妣), 제2감이 증조고비(曾祖考妣), 제3감이 조고비(祖考妣), 동편인 제4감이 고비(考妣)의 위(位)가 된다.

감 밖에는 휘장을 드리우며 각 위패마다 제사상을 놓고 그 위에 촛대 한 쌍씩을 놓으며, 최존위(最尊位) 앞에는 향상(香床)을 놓되 그 위에 향로는 서쪽, 향합은 동쪽에 놓는다. 사당은 담을 쌓아 가리고 앞에 대문을 만든다. 신주는 가문에 따라서 4대 봉사, 3대 봉사, 2대 봉사를 한다.

종묘(Jongmyo Shrine , 宗廟)는 조선시대 역대의 왕과 왕비 및 추존(追尊)된 왕과 왕비의 신주(神主)를 모신 왕가의 사당. 1963년 1월 18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불상, 탑 등을 모셔놓고 승려와 신자들이 거처하면서 불도를 닦고 교리를 설파하는 건축물 혹은 그 소재 영역을 뜻한다.

절 ·사원(寺院) ·정사(精舍) ·승원(僧院) ·가람(伽藍) 등으로 불린다. 불교 사찰의 어원은 산스크리트의 상가라마(Sañghãrãma)이다. 교단을 구성하는 비구(比丘:남승) ·비구니(比丘尼:여승) ·우바새(優婆塞:남자 신도) ·우바이(優婆夷:여자 신도)의 사중(四衆)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것을 중국에서 승가람마(僧伽藍摩)라고 음역(音譯)하였고, 나중에 줄여서 가람이라고 표기하게 되었다. 석가모니의 전도(傳道) 초기인 BC 6세기 무렵, 인도의 출가자(出家者)들은 무소유(無所有)를 이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일정한 주거처를 가지지 않고 독신생활을 하면서 걸식(乞食)으로 수도생활을 영위하였으며, 숲속의 동굴이나 큰 나무 아래에서 선(禪)을 하거나, 유행(遊行)을 통하여 불법(佛法)을 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인도의 기후적 특성 때묻에 우기(雨期)에는 이같은 생활이 불가능하였는데, 특히 7 ·8월의 장마철에는 바깥에 나가기보다는 한곳에 모여 수도에 정진(精進)하는 장소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석가모니는 우기인 석 달 동안은 바깥 출입을 삼가는 것을 계율(戒律)로 정하고, 출가자들이 한곳에 모여 적절한 공동생활을 하도록 함에 따라, 안거(安居)할 만한 장소를 불교 신도들이 스스로 마련하게 되었다. 불교의 역사에서 최초로 등장한 안거 장소는 죽림정사(竹林精舍)를 비롯하여 수다타[須達多] 장자(長者)가 동산을 온통 금으로 장식하였었다는 기원정사(祇園精舍) 등이 있다. ‘정사’는 불교 교단의 공동재산이었고, 안거를 위한 실제적인 목적에 따라 불교의 사원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초기의 사찰은 처음에는 이같이 단순한 공동 주거지의 성격을 띠었는데, 시대가 흐름에 따라 종교의례(宗敎儀禮)를 집행하는 성소(聖所)로 그 성격이 승화하게 되었다. 이로써 사찰은 그 규모나 숫자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오게 되었고, 조형예술품 등 불교건축의 찬연한 전통을 이룩하게 되었다.

교회는 같은 신앙을 가진 신도들이 모여 이루는 제도화된 조직체 및 집회건물이다. 주로 기독교의 경우에 사용되며 예배당(禮拜堂)·성전(聖殿)이라는 용어도 쓰이나, 이때는 건물 자체만을 뜻한다. 특히, 가톨릭에서는 건물에 대한 호칭일 경우 성당(聖堂) 혹은 본당(本堂)이라는 용어를 통용하였기 때문에 흔히 개신교의 집회장소에 한정해서 쓰였으나, 최근에는 가톨릭에서도 공식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스도교에서 교회는 '퀴리아콘'이라는 용어에서 유래하는데, 이 말은 '주님께 속한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밖에 '만남'이나 '모임'을 뜻하는 ‘에클레시아’라는 말도 교회의 어원이 되고 있다.

근본적으로 교회는 신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인 공동체로 고백되고 있다. 따라서 교회의 구성원은 '선택된 자'이고, '따르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는 호칭은 그러한 구성원에 대한 종합적인 지칭이다.

성당(聖堂)은 천주교회 혹은 정교회에서 신자들이 종교 전례에 참여하기 위하여 모이는 교회당(敎會堂)을 말한다. 여기에는 건물이라는 물적인 기능과 함께 신자들을 지체로 한 그리스도의 신비체로서의 성역이라는 정신적 기능을 구체화한 장소라는 의미도 지닌다. 건물다운 건물로서의 최초의 성당은 1892년에 세워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약현성당(藥峴聖堂)이며, 이어 명동성당·인천 답동성당·평양 관후리성당·대구 계산동성당·전북의 화산성당 등이 이러한 예에 속한다.

일제강점기에는 한양절충식(韓洋折衷式)의 건물이 세워졌다. 이후 건축양식은 단순한 모방에서 벗어나 건축가의 신앙체험과 교회관에 따라 창조적인 형태를 띠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성직자 중심에서 신자 중심으로 변모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유대교 회당. '시나고그(Synagogue)'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만남의 장소(a place of meeting)'란 뜻을 가진 히브리어 'Bet Hakeneset'의 번역어이다.

회당의 시초는 BC 586년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유대인들이 포로로 잡혀간 이후에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유대인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든지 세워지기 시작한 이런 회당(會堂)은 유대교의 대표적 집회장소로서 지금도 전세계 어디에든지 유대인이 있는 곳이면 회당은 반드시 존재한다.

시나고그에서는 예배의식, 각종 집회, 교육훈련 등이 이루어지며 유대인의 종교 뿐 아니라 행정, 교육 그리고 사교의 중심지라 할 수 있다.

이슬람교의 예배당으로, 안에는 메카 방향을 나타내는 움푹한 벽과 설교단이 마련되어 있을 뿐 제단이나 성화 · 성상 등은 찾아볼 수 없으며, 아라베스크 문양이 그려져 있다. 모스크는 교육 · 사교 · 정보 교환의 장 기능도 갖고 있다.

  • 힌두 사원 - 힌두교

굽타시대 이후 인도에서는 인도인에 의한 통일 왕조는 더 이상 나타날 수 없었으나 각 지역의 여러 왕조들은 힌두교를 적극적으로 후원하였다. 각 지방에서는 힌두교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따라서 힌두교 사원과 각종 건조물들의 건축 활동도 매우 활발하였다. 약 8~13세기의 인도 미술에서는 힌두교 사원 건축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힌두교 신전은 비마나(vimāna)와 만다파(mandapa)로 구성된다. 만다파는 예배나 예식을 준비하는 예비적인 공간으로서 평면은 장방형이다.

비마나는 정방형의 평면으로 그 안에 시바신의 상징인 링가나 혹은 다른 힌두교의 신상들이 봉안되는 장소이다. 비마나의 위쪽에는 높은 탑이 솟아 있는데 이 탑은 우주의 중심에 있는 메루Meru산을 상징한다. 탑의 형태에 따라 힌두교 신전은 크게 북방(또는 나가라Nagara) 형식과 남방(또는 드라비다Dravida) 형식으로 나뉘어진다. 북방 형식에서는 이 탑을 '시카라(śikhara)'라고 부른다. 이 시카라는 작은 구성요소들이 수직적으로 반복되어 띠를 이루면서 위로 전개되는 방식으로 구성되며 위로 갈수록 안쪽으로 줄어든다.

남방 형식의 탑은 반복적으로 쌓인 여러 단의 수평적인 층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북방 형식과는 달리 탑 꼭대기만을 '시카라'라고 부른다. 그 밖에 이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베사라Vesara 형식이 있다. 북방 형식은 오리사의 부바네쉬바르Bhūbaneśvar나 중인도의 카주라호Khajurāho에 있는 수많은 신전들에서 볼 수 있다. 남방 형식은 주로 남인도 지역에서 만들어졌으며 특히 타밀 지방이 중심지였다. 팔라바 왕조의 후원으로 만들어진 마드라스 부근의 마말라푸람Māmallapuram의 여러 사원들과 칸치푸람Kanchipuram의 사원이 대표적인 남방 형식이다.

  • 도관 - 도교

도관(道觀)은 도교(道敎)의 신을 모시고 도사(道士)가 제사를 지내는 사당으로 불교의 사찰에 해당한다. 도관은 도량(道場)ㆍ궁(宮)ㆍ관(館)ㆍ총림(叢林)ㆍ묘(廟)ㆍ각(閣)ㆍ원(院) 등의 명칭으로 일컫는데 모시는 신은 도교의 시조로 숭배되는 노자(老子), 일월성신(日月星辰)과 같은 자연신, 우주창조의 신인 원시천존(元始天尊) 등이며, 두신(痘神)과 토지신(土地神)을 모시는 곳도 있었다. 도관의 주요 업무는 화를 쫓고 복을 빌기 위해 제초(齊醮)를 올리는 것이었는데, 이때 도관의 도사(道士)는 예복을 갖추고 홀(笏)ㆍ칠성검(七星劍)ㆍ제종(諸種)(帝鍾) 등의 법기(法器)를 사용하여 경문(經文)을 외워 신을 부른다. 또한 액(厄)을 피하는 수단으로 부적을 발행하기도 하였다. 중국 당대(唐代)의 현도관(玄都觀)과 숭원관(崇元觀), 송대(宋代)의 상청태평궁(上淸太平宮)과 옥청소응궁(玉淸昭應宮)이 유명하다.

중국의 경우, 중국에 도교의 도사가 거주하면서 수행하고, 제의를 행하는 곳으로 그 기원은 후한 말에 성립한 오두미도(천사도) 교단이 둔 24치(治)라고 한다. 이후 남북조시대를 통해서, 남조에서는 송의 육수정의 숭허관, 간적관, 제의 손유악의 흥세관, 양의 도홍경의 화양관 등이 있었는데, 모두 관이라고 해서 대체적으로 민간도사의 개인적 수행도장이었다. 한편, 북조에서는 북위 종남산의 누관(樓觀)을 필두로 대체적으로 관이라고 하고, 구겸지의 신천사도 이후의 국가권력과의 강한 결합을 반영하고, 북주의 현도관이나 국립종교연구소라고 할 수 있는 통고관 및 그 후신인 수의 현도관 등의 국립 도관이 계속 세워졌다. 당대에는 태청궁 등 특히 큰 도관을 궁이라고 하게 되었다.

전진교가 성립된 금나라 이후는 천하의 도관은 북경의 백운관을 총본산으로 하는 전진교계와 강서성의 용호산을 총본산으로 하는 천사도계로 대별된다. 한편 근대에 와서 반(反) 미신 정책의 일환으로 많은 도관을 폐쇄했는데, 문화혁명 이후로는 일부를 문화재 또는 관광용으로 복구하여 공개하고 있으며 베이징(北京)의 백운관(白雲觀)은 문화재로서 보호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도교가 들어온 후 여러 개의 도관이 설립되었는데, 소격전(昭格殿)도 그중의 하나이다.

  • 신사 - 신토

신사(神社)는 일본의 신도(神道) 신앙에 의거해서 신들을 제사지내기 위해서 세워진 건물, 또는 시설을 총칭해서 말한다. 일반적으로는 신이 진좌하는 본전, 신을 예배하고 각종 의례를 행하는 배전(拜殿), 본전ㆍ배전 등을 둘러싼 서원(瑞垣), 신역에 대한 문에 상당하는 조거(鳥居) 등으로 이루어졌으며, 그외에 신보를 두는 보전(寶殿), 참배자가 심신을 정결히 하기 위한 수수사(手水舍), 신에게 봉납하는 신락을 연주하는 신락전, 신관의 집무를 위한 사무소, 신원(神苑) 등 여러가지 시설을 갖추고 있다.

  • 구루드와라 - 시크교

구루드와라(Gurdwara)는 시크교의 종교적 성소이자 종교 행위의 중심이 되는 사원이다. 시크교도들은 구르드와라에 모여 자신들의 경전인 그란트사히브를 읽으며, 송영과 설교 등 종교 의식을 거행함으로써 전통적인 자신들의 축제일을 지킨다. 대표적인 장소로는 16세기에 설립된 인도 펀자브에 소재한 하리만디르(Harmandir) 사원이며, 일명 황금 사원(Golden Temple)이라고도 한다.

사원의 앞 부분은 강당, 중앙은 큰 홀로 구성되어 있으며, 음식을 준비하기 위한 공동 식당(langar)과 물로 씻기 위한 연못(sarovar)등이 갖추어져 있다. 경전을 읽어주는 그란티(granthi)와 마한트(mahant)들이 구르드와라를 관리하는 사제 역할을 수행하며, 그들의 지위는 세습된다.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까지 구르드와라가 힌두교 사원과 구분이 없어지자, 일부 시크교도들은 시크교 본연의 모습을 찾기 위한 구르드와라 개혁운동을 펼쳤다.

  • 성전 -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성전'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거룩한 처소로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곳을 가리킨다. 구약 시대의 '성막'이나 '예루살렘 성전'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곳은 모두 하나님께 제사와 예배를 드리는 장소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후 신약 시대에 와서 '성전'은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성도의 몸'(고전3:16; 고후6:16), '성도의 공동체'(엡2:21-22)를 가리키는 영적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신약 시대에는 더 이상 예배 드리는 처소로서의 '성전' 개념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영적 측면에서 주의 거룩한 백성의 모임이나 성도 자신을 가리킨다. 종종 예배 드리는 처소를 가리켜 '성전'으로 일컫는 경우들이 있으나 엄격하게 말하면 '예배당' 또는 '교회당'이라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 '교회, 교회당'을 보라.

  • 배화신전 - 조로아스터교

배화교(拜火敎,마즈다교,조로아스터교)도가 성화를 안치하고 배례(拜禮)한 건물. 이란 남서부와 북서부에 많다. 아카이메네스 조 시대의 유례로 다듬은 돌로 쌓은 직방체(直方體)의 탑인데 내부에 계단을 설치한 중층 건축이다(나크슈 이 루스탐,바살가다이,누라바드[Nureabad] 등). 사산 조 시대에는 두 종류의 형식이 있었다. 하나는 차할 타그(Chahal Tag)라는 방형건물인데 사면을 아치로 돌리고,위층에 돔올 얹고 네 귀에 스핑크스를 설치한 것으로 교도들은 여기에서 배례했다(탕 이 챠크 챠크 Tang-i Chak Chak,카스루 이시리인 등). 다른 하나는 비샤푸르에 현존하는 방형 건물로 사면에 미식(楣式)입구를 설치함. 방 중앙에 성화를 안치하고 항상 신관이 지켰다. 주위에는 양자 모두 탁 트인 복도가 설치되어 있다.

  • 교당 - 원불교

교당(敎堂)은 종교단체의 신자들이 모이는 집. 원불교에서 직접 교화를 위해 설치한 건물 또는 장소이다. 대중교화의 장소로 교도와 인구의 집중지에 교당을 설치하고 교도의 일상생활에 응하도록 한다(〈원불교교헌〉 제1장 3절). 교당은 대각전을 마련하여 신앙ㆍ수행을 지도하며, 교화ㆍ훈련 신앙의례 등을 진행하고, 지역사회에 맑음과 깨달음과 은혜를 공급하는 중심이 되는 곳을 말한다.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 사원〉, 《위키백과》
  • 사원〉, 《미술대사전》
  • 사찰〉, 《두산백과》
  • 종묘〉, 《두산백과》
  • 사당〉, 《두산백과》
  • 시나고그〉, 《시사상식사전》
  • 성당〉, 《두산백과》
  • 교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교당〉, 《원불교대사전》
  • 배화신전〉, 《미술대사전》
  • 성전〉, 《교회용어사전》
  • 모스크〉, 《Basic 고교생을 위한 세계사 용어사전》
  • 힌두 사원〉, 《세계미술용어사전》
  • 도관〉, 《종교학대사전》
  • 신사〉, 《종교학대사전》
  • 구루드와라〉, 《두산백과》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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