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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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3월, [[협동정미소]] 주인이던 이병철이 현재의 대구광역시 인교동에 삼성상회를 개업한 게 삼성그룹의 시초이다. 당시 29세였던 이병철은 경상남도 김해에서 농지 투기에 실패한 후 심기일전을 굳히며 자본금 3만 원으로 삼성상회를 세우게 됐다. 처음에는 농산물 판매와 별표국수 판매 등 가볍고 기본적인 것으로 훗날의 삼성그룹 형태와 비교하면 차이가 현격히 나는 편이었다. 요즘에는 삼성이 일류 재벌 집단이라고 하지만, 초창기까지는 서민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던 곳이다. 전 [[씨제이그룹]](CJ그룹) 명예회장이자 이병철의 장남인 [[이맹희]]가 회고한 바에 따르면 당시 삼성상회는 지금의 삼성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으며 국수 공장이 매출은 늘었지만 정작 이병철 본인은 그 돈을 모두 공장 설비 투자에 쏟았고 이병철 일가 역시 공장 귀퉁이에서 새우잠을 잤을 정도로 공장 상태가 열악했다고 말했다. 오늘날 삼성과 비교하면 좋지 않은 환경이었다. 당시 별표국수가 많이 팔려 매출액도 올라갔지만 대구(1981년 6월 30일까지 대구는 경상북도였다.)에는 경상북도에서 1위를 차지하는 소표국수가 있었고, 2위의 풍국면도 있었다. 풍국면은 지금도 대구광역시 북구 만평네거리 북쪽 근처에 공장이 있으며 현재는 범 삼성가에 속해 있는 [[신세계그룹]]의 국수 [[오이엠]](OEM)회사다. 결국 별표국수는 이들의 아성과 도전을 이기지 못해 폐업했다.<ref name="나무닭"></ref> <br>
 
1938년 3월, [[협동정미소]] 주인이던 이병철이 현재의 대구광역시 인교동에 삼성상회를 개업한 게 삼성그룹의 시초이다. 당시 29세였던 이병철은 경상남도 김해에서 농지 투기에 실패한 후 심기일전을 굳히며 자본금 3만 원으로 삼성상회를 세우게 됐다. 처음에는 농산물 판매와 별표국수 판매 등 가볍고 기본적인 것으로 훗날의 삼성그룹 형태와 비교하면 차이가 현격히 나는 편이었다. 요즘에는 삼성이 일류 재벌 집단이라고 하지만, 초창기까지는 서민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던 곳이다. 전 [[씨제이그룹]](CJ그룹) 명예회장이자 이병철의 장남인 [[이맹희]]가 회고한 바에 따르면 당시 삼성상회는 지금의 삼성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으며 국수 공장이 매출은 늘었지만 정작 이병철 본인은 그 돈을 모두 공장 설비 투자에 쏟았고 이병철 일가 역시 공장 귀퉁이에서 새우잠을 잤을 정도로 공장 상태가 열악했다고 말했다. 오늘날 삼성과 비교하면 좋지 않은 환경이었다. 당시 별표국수가 많이 팔려 매출액도 올라갔지만 대구(1981년 6월 30일까지 대구는 경상북도였다.)에는 경상북도에서 1위를 차지하는 소표국수가 있었고, 2위의 풍국면도 있었다. 풍국면은 지금도 대구광역시 북구 만평네거리 북쪽 근처에 공장이 있으며 현재는 범 삼성가에 속해 있는 [[신세계그룹]]의 국수 [[오이엠]](OEM)회사다. 결국 별표국수는 이들의 아성과 도전을 이기지 못해 폐업했다.<ref name="나무닭"></ref> <br>
 
1942년 '조선양조'를 인수해 사업 확장의 발판을 마련한 후 1948년에 서울 종로2가에서 [[조홍제]]와 함께 '삼성물산공사'로 재출범했다. 1959년, [[6.25 전쟁]]으로 임시수도 부산으로 피난 가서 '삼성물산'으로 사명을 변경했으며, 전쟁 이후 국가를 지불보증인으로 세워 차관을 받아오면서 [[정경유착]]을 통해 점차 대기업으로 성장하게 됐다. 1953년 제일제당(현 [[CJ제일제㈜]])을 세워 처음으로 제조업을 시작해 국산 설탕을 개발했고, 1954년 제일모직을 세워 국산 양복지 '골덴텍스'를 개발해냈다. 1957년에 한국 재계사상 최초로 신입사원 공개채용을 개시한 후 1958년 '안국화재'를 인수해 금융업에도 처음 진출하고 이듬해에 한국 재벌 중 최초로 비서실을 설치해 기업집단으로서의 모양새를 갖추었다. 1963년에 동방생명 및 동화백화점을 인수하고, 1965년 [[중앙일보]]를 창간해 언론사업에도 진출하고 신문용지 자체 수급을 위해 새한제지도 인수했다.  그러나 1966년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이병철 회장은 한국비료를 국가에 헌납하고 경영 일선에서 잠시 물러났으나, 1968년 경영 일선에서 복귀한 후 전자㈜ 산업 진출을 선언하며 수원 공단 부지를 매입하며 이듬해 삼성전자㈜ 및 삼성산요(SANYO)전기를 세웠다. 이후 1970년 삼성엔이씨(NEC)㈜를 세워 전자 사업 확장을 개시하며 1973년 제일합섬, 1974년 [[삼성석유화학㈜]] 등을 세우며 화학이나 서비스 분야 등에도 영역을 확장했고, 같은 해 한국반도체를 인수해 반도체 산업에 처음 손을 뻗었다. 1976년 본사를 태평로 신사옥으로 이전하고 1977년 [[삼성종합건설㈜]]을 세워 건설업에도 도전하였으며, 1979년에 삼남 이건희가 부회장이 되면서 2세 경영체제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ref name="나무닭"></ref> <br>
 
1942년 '조선양조'를 인수해 사업 확장의 발판을 마련한 후 1948년에 서울 종로2가에서 [[조홍제]]와 함께 '삼성물산공사'로 재출범했다. 1959년, [[6.25 전쟁]]으로 임시수도 부산으로 피난 가서 '삼성물산'으로 사명을 변경했으며, 전쟁 이후 국가를 지불보증인으로 세워 차관을 받아오면서 [[정경유착]]을 통해 점차 대기업으로 성장하게 됐다. 1953년 제일제당(현 [[CJ제일제㈜]])을 세워 처음으로 제조업을 시작해 국산 설탕을 개발했고, 1954년 제일모직을 세워 국산 양복지 '골덴텍스'를 개발해냈다. 1957년에 한국 재계사상 최초로 신입사원 공개채용을 개시한 후 1958년 '안국화재'를 인수해 금융업에도 처음 진출하고 이듬해에 한국 재벌 중 최초로 비서실을 설치해 기업집단으로서의 모양새를 갖추었다. 1963년에 동방생명 및 동화백화점을 인수하고, 1965년 [[중앙일보]]를 창간해 언론사업에도 진출하고 신문용지 자체 수급을 위해 새한제지도 인수했다.  그러나 1966년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이병철 회장은 한국비료를 국가에 헌납하고 경영 일선에서 잠시 물러났으나, 1968년 경영 일선에서 복귀한 후 전자㈜ 산업 진출을 선언하며 수원 공단 부지를 매입하며 이듬해 삼성전자㈜ 및 삼성산요(SANYO)전기를 세웠다. 이후 1970년 삼성엔이씨(NEC)㈜를 세워 전자 사업 확장을 개시하며 1973년 제일합섬, 1974년 [[삼성석유화학㈜]] 등을 세우며 화학이나 서비스 분야 등에도 영역을 확장했고, 같은 해 한국반도체를 인수해 반도체 산업에 처음 손을 뻗었다. 1976년 본사를 태평로 신사옥으로 이전하고 1977년 [[삼성종합건설㈜]]을 세워 건설업에도 도전하였으며, 1979년에 삼남 이건희가 부회장이 되면서 2세 경영체제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ref name="나무닭"></ref> <br>
1980년 한국전자통신을 인수한 후 1982년 프로야구단 [[삼성라이온즈]]를 창단하며 종합연수원을 열었고, 1983년 한국 최초로 [[64K D램]] 개발에도 주도했다. 1985년 삼성데이타 시스템(현 [[삼성에스디에스㈜]])을 세워 정보통신 사업에도 진출했다. 1987년에 삼성종합기술원도 세웠다. 그해 11월 이병철이 숨지자 이건희 부회장이 가업을 이어받아 12월부터 회장이 됐다. 1990년대부터 [[친족분리]]를 진행해 1991년 [[신세계 백화점]]과 전주제지(현 [[한솔제지㈜]]), 1993년 제일제당을 각각 분리했다. 1993년 '신경영 선언'에 따라 로고와 기업이념 등을 바꾸고 1995년 한국 대기업으로서 최초로 소그룹 제도를 도입하였으며, 1995년 삼성자동차를 세워 자동차 진출을 시작했다. 1997년 외환위기로 구조조정을 거듭 단행해 2000년에 삼성자동차를 프랑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에 팔았고, 2008년 서초 삼성타운으로 본사를 이전했다. 2014년 삼성종합화학 등 4개 석유화학 계열사를 [[한화그룹]]에 매각하고 2015년 신)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역 합병해 '통합 삼성물산'을 출범시켰다. 2016년 삼성정밀화학과 [[삼성SDI㈜]] 케미컬 사업부문을 [[롯데그룹]]에 팔고 2017년 2월에 미래전략실 해체를 선언한다. 이에 따라 계열사별 독립과 자율경영체제 전환 수순을 밟게 되었으며, 삼성그룹 공식 홈페이지도 문을 닫게 된다.<ref name="나무닭"></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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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한국전자통신을 인수한 후 1982년 프로야구단 [[삼성라이온즈]]를 창단하며 종합연수원을 열었고, 1983년 한국 최초로 [[64K D램]] 개발에도 주도했다. 1985년 삼성데이타 시스템(현 [[삼성에스디에스㈜]])을 세워 정보통신 사업에도 진출했다. 1987년에 삼성종합기술원도 세웠다. 그해 11월 이병철이 숨지자 이건희 부회장이 가업을 이어받아 12월부터 회장이 됐다. 1990년대부터 [[친족분리]]를 진행해 1991년 [[신세계 백화점]]과 전주제지(현 [[한솔제지㈜]]), 1993년 제일제당을 각각 분리했다. 1993년 '신경영 선언'에 따라 로고와 기업이념 등을 바꾸고 1995년 한국 대기업으로서 최초로 소그룹 제도를 도입하였으며, 1995년 삼성자동차를 세워 자동차 진출을 시작했다. 1997년 외환위기로 구조조정을 거듭 단행해 2000년에 삼성자동차를 프랑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에 팔았고, 2008년 서초 삼성타운으로 본사를 이전했다. 2014년 삼성종합화학 등 4개 석유화학 계열사를 [[한화그룹]]에 매각하고 2015년 신)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역 합병해 '통합 삼성물산'을 출범시켰다. 2016년 삼성정밀화학과 [[삼성에스디아이㈜]](삼성SDI) 케미컬사업부문을 [[롯데그룹]]에 팔고 2017년 2월에 미래전략실 해체를 선언한다. 이에 따라 계열사별 독립과 자율경영체제 전환 수순을 밟게 되었으며, 삼성그룹 공식 홈페이지도 문을 닫게 된다.<ref name="나무닭"></ref>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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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코닝어드밴스드글라스''' : 2012년 코닝과 합작해서 설립한 [[올레드]](OLED) 패널용 유리 기판 제조 업체이다. 삼성코닝정밀소재와는 달리 그대로 삼성이 지분을 가지고 있다.
 
:*'''삼성코닝어드밴스드글라스''' : 2012년 코닝과 합작해서 설립한 [[올레드]](OLED) 패널용 유리 기판 제조 업체이다. 삼성코닝정밀소재와는 달리 그대로 삼성이 지분을 가지고 있다.
 
::*'''코삼테크놀로지''' : 2009년 삼성코닝정밀소재와 코닝이 태양전지 유리 기판 개발을 위해 설립한 합작회사다. 삼성코닝정밀소재를 코닝에 매각하면서 관련 지분을 삼성코닝어드밴스드글라스가 넘겨받았다. 사명의 코삼은 'CorSam'으로 코닝과 삼성의 합성어다.
 
::*'''코삼테크놀로지''' : 2009년 삼성코닝정밀소재와 코닝이 태양전지 유리 기판 개발을 위해 설립한 합작회사다. 삼성코닝정밀소재를 코닝에 매각하면서 관련 지분을 삼성코닝어드밴스드글라스가 넘겨받았다. 사명의 코삼은 'CorSam'으로 코닝과 삼성의 합성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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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삼성SDI 글씨.png|썸네일|300픽셀|[[삼성SDI]]]]
 
*'''삼성에스디아이㈜'''
 
*'''삼성에스디아이㈜'''
[[파일:삼성SDI㈜ 글자.png|썸네일|300픽셀|'''[[삼성SDI㈜]]''']]
 
 
:[[이차 전지]] 및 전자재료(소재) 생산한다. 이차 전지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기술과 점유율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2015년 기준으로 전지 사업 부문은 내리 적자를 보는 중이다. 삼성전관에서 1999년 삼성에스디아이㈜(Samsung Display Interface)로 사명을 변경하였으나, 사업구조가 바뀌면서 사명에 있던 디스플레이어와는 상관없게 됐다. 그래서 사측은 고유명사 에스디아이(SDI)라고 홍보하고 있다.
 
:[[이차 전지]] 및 전자재료(소재) 생산한다. 이차 전지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기술과 점유율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2015년 기준으로 전지 사업 부문은 내리 적자를 보는 중이다. 삼성전관에서 1999년 삼성에스디아이㈜(Samsung Display Interface)로 사명을 변경하였으나, 사업구조가 바뀌면서 사명에 있던 디스플레이어와는 상관없게 됐다. 그래서 사측은 고유명사 에스디아이(SDI)라고 홍보하고 있다.
 
:*'''에스티엠''' : 2011년에 토다 공업과 삼성이 합작한 회사로 양극재를 생산하는 계열사이다. 현재는 지분이 전부 삼성에스디아이㈜가 보유하고 있으며 앞으로 이차전지 산업에서 소재를 내재화하기 위해 지속해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에스티엠''' : 2011년에 토다 공업과 삼성이 합작한 회사로 양극재를 생산하는 계열사이다. 현재는 지분이 전부 삼성에스디아이㈜가 보유하고 있으며 앞으로 이차전지 산업에서 소재를 내재화하기 위해 지속해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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