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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전벽해

해시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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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전벽해(桑田碧海)는 뽕나무밭이 변하여 푸른 바다가 된다는 뜻으로, 세상일의 변천이 심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개요[편집]

상전벽해란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로 변하는 것을 의미하여, 세상이 몰라볼 정도로 크게 변화함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즉, 세상 일이 몰라보게 확 달라졌다는 뜻의 사자성어이다. 이 표현의 유래는 중국의 고전 <신선전(神仙傳)>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문헌에서 마고 선녀가 신선 왕방평에게 자신이 모신 이래로 뽕나무밭이 세 번이나 푸른 바다로 변했다며, 세상이 크게 변화했음을 알리는 구절이 등장한다. 이렇게 <신선전>을 통해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표현이 전해지게 되었다. 여기서 한자로 뽕나무 상(桑), 밭 전(田), 푸를 벽(碧), 바다 해(海)를 의미한다.

'신선전'의 '마고 선녀 이야기'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어느 날 마고라는 선녀가 신선 왕방평에게 이렇게 말했다. "곁에서 모신 이래 저는 동해가 세 번이나 뽕나무밭으로 바뀌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번에 봉래에 갔더니 바다가 다시 앝아져서 이전의 반밖에는 되지 않았습니다. 또 육지가 되려는 것일까요?" 그러자 왕방평이 대답하기를 "그러기에 성인들께서 이르시지 않으셨나? 바다의 녀석들이 먼지를 일으키고 있다고."

그리고, 유정지의 시 '대비백두옹'에도 이런 내용이 있다.

낙양성 동쪽의 복숭아꽃 오얏꽃이(洛陽城東桃李花)

날아오고 날아가며 뉘 집에 지는고(飛來飛去落誰家)

낙양의 계집은 고운 제 얼굴이 스스로도 아까운지(洛陽女兒惜顔色)

낙화를 바라보며 길게 한숨는 모습을 보니(行逢女兒長嘆息)

올해에 꽃이 지면 얼굴은 더욱 늙으리라(今年花落顔色改)

내년에 피는 꽃은 그 누가 보려는가(明年花開復誰在)

상전도 벽해된다는 그것은 정녕 옳은 말이로다(實聞桑田變成海)

이처럼 상전벽해라는 말은 뽕밭이 바다가 되는 것처럼 세상이 확 바뀌는 것을 뜻한다. 상전벽해는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다는 의미에서 자신도 모르게 세상이 달라진 모습을 보고 비유한 말이다. 또한, 뽕나무밭이 바다가 될 수 있을지라도 사람의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향수(nostalgia)와도 유관하다. 세월의 무상함을 연상케 하는 고사성어이므로, 그날 그날을 최선을 다하여 삶을 누리는 것이 지혜로운 인생살이이다. 상전변성해(桑田變成海)라고도 한다. 동의어는 창해상전(滄海桑田), 창상지변(滄桑之變), 상창지변(桑滄之變), 비슷한말은 능곡지변(陵谷之變:언덕과 골짜기가 서로 바뀐다는 뜻), 고안심곡(高岸深谷:높은 언덕이 무너져 골짜기가 되고, 깊은 골짜기가 언덕으로 변한다는 뜻)이다.

격동의 현대사를 보낸 한국에서 유난히 자주 쓰이는 단어이기도 하다. 대도시, 특히 수도권의 경우 70년대부터 워낙 빠르게 도시화가 진행되었고 이 과정에서 탈공업화, 도로망 개선, 대규모 신도시 개발, 아파트 등의 주거지역 재개발, 상업 구역의 변화, 젠트리피케이션 등 생활 터전을 급격하게 바꾸는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도시가 말 그대로 끊임없이 새로 바뀌는 통에 어렸을 적 지냈던 곳을 1~20년 후에 다시 찾아가 보면 말 그대로 상전벽해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건 양반이고 유년기의 기억만 가지고 찾는다면 아예 찾을 수 조차도 없는 때도 있다. 상전벽해란 단어가 일반적으로는 좋은 의미로 쓰이지만, 추억을 찾는 당사자로선 어딘가 서글퍼지는 단어이다.

그런데 문자 그대로 육지가 바다가 되는 사례는 흔치 않고 오히려 반대로 바다였던 곳이 육지가 되는 사례가 훨씬 많다. 김해평야도 고대에는 김해만이었고 애산 전투의 현장이던 애산진도 지금은 해안에서 6km 떨어져 있고 아랄해였던 곳에 사막이 생겨나는 등이다. 나무위키에서도 종종 인용하여 쓰이는데 가끔 인물에 대해 이것을 쓰는 경우가 보인다. 뜻을 보면 알겠지만, 이 성어는 인물이 아닌 어떤 곳의 환경이 몰라보게 바뀌었을 때 사용한다. 인물에게 비슷한 내용의 고사를 인용하려면 괄목상대를 쓰도록 해야 한다. 이는 비슷한 사자성어로 격세지감이 있다.[1][2][3]

부동산의 사례[편집]

반도체, ICT 등 첨단 기술의 놀라운 변화고 있지만, 부동산도 변화를 거쳐 새롭게 탄생하기도 한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옛말이 있는데, 이는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가 됐다'는 뜻으로 몰라볼 정도로 바뀐 것을 비유할 때 사용한다. 부동산에서의 '상전벽해'란 각종 개발 등을 통해 낙후됐던 곳이 대단위 주거, 업무, 상업, 공원 등 전혀 다른 환경으로 바뀐 것을 말한다. 'DMC'는 디지털미디어시티(Digital Media City)의 약자로 지금의 마포구 상암동 일대를 말한다. 과거 주택농업시설이 주를 이뤘던 이 일대가 MBC, SBS, tvN 같은 방송사를 비롯해 CBS, YTN, 중앙일보 등 언론사들이 자리 잡은 업무지구, 상암월드컵 단지들이 자리 잡은 주거지구로 바뀌었고 난지도 일대는 대규모 공원(하늘공원, 노을공원)과 월드컵경기장 등의 친환경 지역으로 변신했다. 늦가을이면 아름다운 억새와 노을을 접할 수 있는 하늘공원은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인들까지도 아름다운 풍광을 보기 위해 꼭 한번은 찾는 명소가 됐다. 상암동 일대 아파트는 준공 17년이 됐지만, 아파트값은 탄탄한 수요로 인해 전용 84㎡는 10억 원을 훌쩍 넘겨 거래가 되고 있다. 현재 DMC 일대는 다양한 개발사업이 진행 중에 있다.

DMC 일대는 마포구, 은평구, 서대문구가 비슷한 생활권으로 묶인다. 각종 방송사와 언론사를 비롯해 준공 십수년 된 아파트들이 위치한 마포구 상암동일대는 일부 미개발 부지가 있습니다. 은평구 수색동과 증산동은 수색증산뉴타운 사업을 통해 브랜드 아파트들이 자리잡고 있으며 2023년 준공을 앞두고 공사가 한창인 곳들도 있다. 서대문구 북가좌동과 남가좌동 일대는 가재울뉴타운이 자리잡고 있다. 노후 불량 주택이 많단 해당지역들은 정비사업을 통해 신흥 주거지로 변신 중인 셈이다. 이외에도 마포구 중동에 자리잡은 성산시영 아파트는 재건축정비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수색역세권 개발 등 DMC역 일대 다양한 개발 사업은 서북권 지역 주민들의 숙원사업이던 수색역세권 개발도 추진되고 있다. 한국철도공사와 국가철도공단, 서울시 등이 공동 추진하는 이 사업은 수색역(수색교인근)부터 DMC역 구간에 이르는 약 32만㎡ 중 철도 구간을 제외한 약 22만㎡를 개발하는 사업이다. 이곳은 문화, 컨벤션, 상업, 숙박 등 글로벌 문화복합 중심지로 개발된다.

이에 따라 1단계로 DMC역사를 복합 개발하며 나머지 사업부지를 2단계로 개발할 계획이다. 또한, 미개발 돼 방치돼 있던 마포구 상암동 1625번지 일원에는 '상암 DMC 롯데복합쇼핑몰(가칭)'이 2024년 하반기 착공해 2027년 완공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이곳에는 롯데백화점, 롯데몰, 오피스텔 등이 들어서게 돼 서북권을 대표하는 신흥 상권이 만들어질 전망이다. 신설 철도개발사업도 추진되고 있다. 경기 부천에 들어서는 대장신도시와 홍대입구역을 잇는 대장홍대선은 서울 양천구와 강서구를 비롯해 경기 고양시 덕은지구 등 수도권의 서남부 지역과의 교통편의를 확충하는 광역철도 사업이다. 이 사업은 2031년 개통을 목표로 추진되며 강북의 '9호선'으로 불리는 강북횡단선도 들어선다. 2021년 8월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사업으로 선정된 이 노선은 교통의 사각지대에 놓였던 서울 강북권 주요지역을 잇는 사업을 주목받고 있다. 이외에도 경의중앙선 일대 주변을 공원으로 조성하는 선형의 숲 사업도 일부 구간이 완료됐고 3단계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4]

실생활 사례[편집]

  • 요즘 세상은 상전벽해처럼 급변하는데, 적응하기가 참 어렵다.
  • 기술 발전으로 인해 우리 삶의 모습이 상전벽해 같이 변화하고 있다.
  • 그 회사가 처음에는 작은 규모였지만, 지금은 상전벽해처럼 거대한 기업이 되었다.
  • 동네 모습이 상전벽해 같이 변했어요. 예전에는 한적했는데, 이제는 번화가로 변했다.
  • 대한민국 경제도 과거와 비교하면 상전벽해처럼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그 영화는 시간이 지나며 인간 관계가 상전벽해처럼 변화하는 것을 보여준다.
  • 드라마 속 주인공의 인생이 상전벽해처럼 급격히 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 이번 대통령 선거 후, 정치 현장의 모습이 상전벽해처럼 바뀌었다.
  • 코로나 이후, 교육 현장은 상전벽해처럼 크게 변화하였다.
  • 뉴스에서 보도한 바에 따르면, 환경 보호 노력 덕분에 이곳의 생태계가 상전벽해처럼 회복되고 있다고 한다.[3]

인터넷에서의 이용[편집]

세상이 발전하면서 게임이나 기타 각종 소프트웨어의 스펙이나 요구 사양 등이 몰라보게 높아져 있는 현상이다. 오죽하면 현역에서 예비역으로 갓 전역한 병사가 뿌셔뿌셔를 끓여 먹었다는 유머가 나올 정도로 세상은 급변하며 물론 게임도 예외는 아니다. 옛날에는 지금과 달리 컴퓨터가 있는 집이 드물었고, 콘솔 게임기도 16~32비트가 아닌 8비트의 저사양 게임기가 보편적이었다. 이들 게임기에서 표출되는 영상은 색상 수가 고작 두 자리뿐이었고(MSX2는 512색까지 지원하기도 했지만) 사운드도 화음 등에 제한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겠지만, 당시에는 아직 기술력이 발전하지 않은 시기여서 그것조차도 대단하게 여겨졌다. 게다가, 그것도 집집마다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 8비트짜리 게임 한 판 즐기려고 가끔 콘솔 게임기를 보유한 친구의 집에서 그야말로 게임방이 형성되기도 하였다. 지금은 컴퓨터의 급속 보급과 게임의 고사양화로 인해 모두 추억거리가 되었다. 실제로, 그 시절의 추억을 잊지 못해 일부러 8비트 게임을 에뮬게임으로 즐기고 있는 사람도 있다. MSX1 + PSG 사운드 기반의 그라디우스와 PS2 기반의 그라디우스 V를 서로 비교해보면 대번에 상전벽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2]

상전벽해와 청출어람[편집]

흔히 세월이 많이 흘러 자연환경이 크게 바뀐 경우를 상전벽해(桑田碧海)라고 한다. 이는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가 되었다.'는 뜻으로 중국 진나라 때 도사 갈홍(葛洪)이 지은 『신선전(神仙傳)』에서 나온 말이다. 상전벽해라는 고사성어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전통 시대에는 뽕나무밭이 도처에 있었고, 뽕밭은 좀처럼 변하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되지는 않았던 듯하다.

실제로 통일신라 시대의 문서에 뽕나무의 그루 수를 기록해 둔 사례가 있다. 1933년 일본 도다이사(東大寺) 쇼소인(正倉院)에 소장된 13매의 경질(經帙) 가운데 파손된 화엄경론(華嚴經論)의 책갑(冊匣)을 수리할 때 그 내부에 덧붙인 휴지 속에서 신라의 민정 문서(民政文書)가 발견되었다. 이 문서의 작성 시기는 755년(경덕왕 14)이나 875년(헌강왕 1) 중 어느 한 해로 추정되고 있다. 서원경(西原京, 지금의 청주)의 직접 관할 아래 있던 모촌(某村)과 서원경에 근접해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현(縣)의 관할 아래 있던 사해점촌(沙害漸村), 살하지촌(薩下知村), 모촌 등 모두 네 개 촌락의 명세에 관한 기록이 실려 있다. 이 민정 문서는 통일신라 시대의 대민(對民) 지배 체제를 이해하고 백성의 삶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당시 신라 정부는 촌민(村民) 지배를 위해 촌내의 사정을 자세히 파악하여 문서를 작성하는 치밀성을 보였다. 여기에는 네 개 촌의 문서가 모두 촌명(村名), 촌역(村域), 연(烟), 구(口), 우마(牛馬), 토지(土地), 수목(樹木), 호구의 감소, 우마의 감소, 수목의 감소 등의 차례로 일정한 기재 방식에 따라 기록되어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뽕나무와 마전(麻田)의 존재이다. 마전은 합하여 1결(結) 9부(負)이다. 뽕나무는 모두 1,004그루였으며, 3년 동안 심은 것이 90그루, 그 전부터 있던 것이 914그루이다. 당시 신라의 촌 단위에 뽕나무가 1,000여 그루 있었고, 마전도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신라인들은 옷감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하여 마을 단위별로 뽕나무와 마를 재배하였던 듯싶다. 이러한 상황은 조선 시대에도 비슷하여 『경국대전(經國大典)』을 보면 "여러 고을의 옻나무·뽕나무·과목의 조수(條數) 및 저전(楮田)·완전(莞田)·전죽(箭竹)이 생산되는 곳은 장적(帳籍)을 작성하여 옻나무·뽕나무·과목(果木)은 3년마다 장적을 다시 작성한다."고 법제화되어 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옷감의 재배와 관련된 지명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서울특별시 송파구에 있는 잠실(蠶室)은 본디 섬으로 양잠의 중심지였다. 잠실이라는 명칭은 조선 초기에 양잠업을 장려하기 위해 뽕나무를 심고 국립 양잠소(養蠶所)격인 잠실도회(蠶室都會)를 이곳에 설치하였기 때문에 붙여졌다. 이와 비슷한 유래의 지명으로 서초구에 있는 잠원동(蠶院洞)을 들 수 있다. 조선 초에 잠실도회가 이곳에 설치되어 잠실리라고 부르던 것을, 송파구 잠실동과 중복을 피하기 위하여 잠실리의 '잠' 자와 인근 신동면(新東面) 신원리(新院里)의 '원' 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이 두 지역은 한강가에 자리 잡고 있어 예로부터 한강을 생업의 근간으로 하여 양잠을 한 가구가 많았다. 잠실은 1930년대만 해도 뽕나무가 무성하였고, 1945년 이후에는 채소밭으로 변하였다가 1971년 둑 아래 남쪽 방면의 물막이 공사로 인해 육지로 변하였다. 특히 1970년대부터 시작된 강남 지역의 개발로 뽕나무밭은 사라지고, 현재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으니 가히 상전벽해라 할 만하다.

전라남도 순천시에는 저전동(紵田洞)이 있는데, 이곳은 예로부터 모시밭이 많았다고 한다. 모시라는 특산물 재배 지역이 그대로 행정명으로 남게 된 사례이다. 이 밖에 전라남도 무안군의 옛 지명은 면주(綿州)였으며, 경기도 장단군에는 면주동(綿紬洞)과 마전군(麻田郡)이 있었다. 또한, 경상북도 안동군의 옛 지명은 능라(綾羅)였고, 전라남도 화순군은 능성(綾城) 혹은 능주(綾州)라 불렀으며, 전라북도 태인군에는 능향(綾鄕), 경상북도 문경군에는 견천(絹川)이라는 지명도 전한다. 이처럼 옷감의 재료와 관련된 지명이 도처에 존재하는 사실은 우리 선조들이 의복을 마련하기 위해 마을 주변에 옷감의 재료가 되는 나무를 많이 심고 재배하였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5]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상전벽해〉, 《두산백과》
  2. 2.0 2.1 상전벽해〉, 《나무위키》
  3. 3.0 3.1 오동통통너구리, 〈'상전벽해(桑田碧海)' 뜻, 의미, 유래 그리고 실생활 사용 사례 예문〉, 《오동통통너구리와 함께하는 시사상식》, 2023-04-11
  4. 이시우, 〈상전벽해 'DMC', 본격 개발은 이제 시작?〉, 《리얼캐스트》, 2022-11-25
  5. 상전벽해와 청출어람〉, 《우리역사넷》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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