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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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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택

서평택(西平澤)이란 경기도 평택시 평택항을 중심으로 한 각종 산업 업무지구가 몰려있는 지역을 말한다.[1]

개요[편집]

서평택은 평택항을 중심으로 포승국가산업단지포승제2일반산업단지 그리고 황해경제자유구역 내 포승(BIX) 지구, 현덕지구 등이 있다. 이 중 친환경 미래 자동차 생산 클러스터로 개발되는 포승(BIX) 지구와 수소 복합지구 사업이 추진되는 현덕지구는 미래 핵심 산업으로 개발되고 있고, 이들 산업단지의 배후 주거지역으로 기존 입주한 안중지구(현화지구, 송담지구) 외에 화양지구가 개발되고 있다. 서평택 지역을 지나는 철도 노선으로는 송산역홍성역을 연결하는 서해선 복선 전철이 있고, 2023년 개통 예정이다. 서해선 안중역까지는 서평택 각 지역에서 차로 10~20분 정도 소요된다. 2021년 6월 발표된 제4차 국가 철도망 구축 계획에 이 서해안 복선전철(예정)과 경부고속철도(KTX) 직결 사업이 반영됐는데 직결이 완료되면 안중역에서 서울역까지 기존 1시간 40분에서 환승 없이 30분으로 단축될 수 있어 교통 여건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또한 포승평택 철도사업의 경우, 포승에서 평택간 30.4km를 연결하는 사업으로 3단계로 나누어 진행되고 있다. 이미 지난 2015년 1단계(평택~숙성) 13.4km 구간이 완공됐고, 2017년 착공한 2단계(안중~숙성) 7.9km 구간은 2024년 개통을 목표로 공정이 진행 중이다. 3단계(포승~안중) 9.1km 구간은 제4차 전국 항만 기본계획에 따라 향후 추진될 예정이다. 이 밖에도 서평택 지역은 서해안 고속도로38번 국도광역교통망을 이용하여, 물류제조를 기반으로 한 물류 관광 도심으로 거듭날 계획이다.[1]

역사[편집]

고덕면 방축리·오성면 양교리·팽성읍 등지에서 간돌칼·주먹도끼·돌화살촉·돌칼 등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신석기시대부터 이 지역에 사람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팽성읍 추팔리 뒷산을 비롯하여 시내 무봉산·부용산·내리산 등지에서 산신제를 지내는 유습은 선사시대 이래의 전통과 관련되는 것으로 믿어진다.삼한시대에는 팽성 지역은 신분활국(臣濆活國)에, 진위(振威) 지역은 목수국(牟水國)에 속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삼한 후기에 마한의 영토가 한강 이남으로부터 충청·전라도에까지 확장됨에 따라 이 지역은 직산·성환과 함께 마한의 목지국(目支國)에 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에서는 삼국시대에 들어와 북은 고구려, 남은 백제 땅으로서 고구려의 남진정책과 이에 대항한 백제와의 공방전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아산현읍지(牙山縣邑誌)』에 의하면, 아산 일대는 백제 아술현(牙述縣)에 속했다고 나온다. 팽성 일대 역시 백제 아술현에 속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5세기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정책으로 고구려 영역에 편입되어 부산현(釜山縣)·부성현(釜城縣)으로 불렸고, 금산(金山)·송촌활달(松村活達)로 지칭되기도 하였다. 삼국시대 이 지역에는 북으로 연달부곡[淵達部曲: 지금의 진위]이 있었고, 중간부에는 송장부곡[松莊部曲: 지금의 송탄동 장안마을 일대]·천장부곡[川場部曲: 지금의 서탄면 서부]·백랑부곡[白浪部曲: 지금의 팽성읍 서남부]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진위 서부에는 용성현[龍城縣: 지금의 안중읍 용성리]과 광덕현[廣德縣: 지금의 현덕면 광덕]이 있었는데, 용성현은 고구려 때 차홀현(車忽縣)이라 불리던 곳이다. 옛 평택현은 삼국시대에는 하팔현이라 불려졌는데, 그 연혁은 확인되지 않는다. 하팔현(河八縣)은 하입현[河入縣: 바다에서 강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현]의 오기(誤記)로 보기도 한다. 그 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757년 전국에 9주를 두고 군·현의 명칭을 고칠 때 부산현은 진위현으로, 하팔현은 팽성현으로 각각 개칭되었다.

진위현은 한때 수성군(水城郡)에 영현(領縣)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용성현도 차홀현으로 개칭되고 당은군[唐恩郡: 충청도]에 속현이 되었다. 이 지역은 본래 4세기 중반까지 백제의 영토에 속했으나 5세기에는 고구려에, 그리고 다시 6세기 중반에는 신라에 속할 만큼 인근 지역인 안성·화성과 함께 삼국 정립기에 격전지로 전해온다. 940년 팽성현을 평택현으로 개칭하여 천안부에 속하게 하였다. 그리고 진위현은 수주(水州)의 속현이 되었다. 또한 청북면 지역은 용성현, 현덕면 덕목리 일대는 광덕현, 동삭리 일대는 영신현[永新縣, 또는 영풍현(永豊縣)]으로서 1018년에 또한 수주에 속현이 되었다. 1010년 거란군 침입 때 왕이 난을 피해 남으로 몽진했는데, 다음 해 환궁할 때 마침 병환이 나자 이곳 진위의 가관(假館)에서 치료를 받고 귀경한 적이 있었다.고려 중기 이후 5도·양계가 성립되면서 1009년에 모두 양광도[楊廣道 또는 충청도]에 소속시켰다. 그 뒤 1172년 진위현에 감무(監務)가 파견되었다가, 뒤에 속현에서 벗어나 현령관(縣令官)이 두어질 만큼 승격되었다. 고종 때에는 진위현에서 이장대(李將大)·이당필(李唐必)이 정국병마사(靖國兵馬使)를 자칭하고 봉기했으나, 1218년 관군에게 토평되었다.

고려 말의 충신 공은(孔隱)은 조선 태종으로부터 수차 새 왕조에 참여할 것을 요청받았으나 끝내 불응하고 현덕면에 은거하면서 일생을 보냈다. 이 지역의 북쪽은 진위현, 서쪽은 수원군의 속현으로 있었다. 그리고 동서 쪽은 일부가 양성현에, 동남쪽은 일부가 직산현에 속해 있었다. 중앙부는 영신현이 되었다가 폐현 되었고, 그 뒤에는 또한 평택현과 진위현으로 분립될 만큼 행정구역 상 복잡한 변동이 있었다. 1398년 충청도에 속했던 진위현을 경기도에 이속 시키면서 현령을 두고, 1413년에는 현감을 두었으나, 평택현은 그대로 충청도에 남아 있었다. 1424년(세종 6)에 진위현과 분속되었던 송장현이 1433년 다시 진위현에 합속되었다. 평택 중부에 수원부의 속현으로 영신현을 두었던 것은 견아상입(犬牙相入)주 01)이라는 제도를 따른 것이라 한다. 1505년 경기도로 환원되었다가 중종 초에 다시 충청도에 편입되었다. 임진왜란 때는 왜적을 섬멸하지 못했다는 책임으로 1596년(선조 29) 직산현에 이속되었다가 1610년(광해군 2)에 평택현으로 복구되었다.

임진왜란 때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를 지낸 원균(元均)이 진위 출신인데다가, 당시 왜군은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을 의식, 송(松)자 있는 고을을 피하라는 지시로 송장면 지역에서는 전투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소사동 일대의 소사벌 전투는 임진왜란 때 명군과 왜군의 대회전으로 왜군이 시산혈해(屍山血海)를 이루면서 참패한 곳으로 유명하다. 당시 명나라 장수 양호(楊鎬) 휘하의 해생(解生)·나귀(玀貴)·양등산(楊登山) 등은 기병 4,000명을 인솔하고 말탄 원숭이 부대를 소사천다리 밑에 매복시켰다가 직산까지 북상한 왜군의 선봉부대를 기습하여 큰 타격을 가했다. 1894년(고종 31) 청일전쟁 당시 이 고장은 또다시 청·일 양군의 격전지가 되었다. 곧 청군의 주력과 이천·서울 등지에서 남하한 일본군과 격전을 벌인 소사벌 전투가 그것이다. 지금도 몰왜보(沒倭洑)는 일본군이 잠복했던 곳이며, 청망평(淸亡坪)은 청군이 일본군에게 패배했던 들판으로 그 지명이 전해오고 있다. 『진위읍지』에 따르면, 진위현은 1891년(고종 28) 당시 13개면, 2,256호에 인구가 1만 400인 가량인 것으로 나타나 있다. 1895년 전국을 23부로 나누어 지방제도를 개편할 때, 진위군과 평택군으로 바뀌어 공주부(公州府)에 속하게 되었다가, 이듬해 13도제로 개편되면서 진위군은 4등군으로 경기도에, 평택군은 충청남도에 각각 속하게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충청남도의 평택군 전역과 수원군의 토진·수북·청룡·감미·율북·포내·현암·승량·안외·광덕·가사·종덕·오타·숙성·언북·오정면 등 16개 면과 양성군 승량원면의 5개 리, 양성면의 4개 리, 원당면의 4개 리, 구룡면의 5개 리, 영통면의 1개 리, 용인군 서촌면의 1개 리, 직산군 삼서면의 2개 리를 진위군에 병합, 11면 128개 리로 개편 되었다. 1926년 군청 소재지 병남면을 평택면으로 개칭하고, 송장면과 탄현면을 합해 송탄면을 신설하였다. 1938년 진위군이 현재의 평택군으로 개칭되었으며, 이듬해에 평택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1962년 6월 15일 송탄면에 신장 출장소(新場出張所)가 설치되었고, 이듬해 송탄면이 읍으로 승격된 뒤, 1981년 7월 1일 송탄읍이 시로 승격되어 평택군에서 분리되었다. 1967년 부용면과 서면을 합해 평택의 고호를 따서 팽성면으로 개칭했고, 1972년 9월 1일 팽성면에 안정출장소가 설치된데 이어 1979년 팽성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79년 5월 1일 평택읍에 중부·동부·서부·북부의 4개 출장소를 두었고, 1983년 2월 15일에는 안성군 원곡면의 4개 리, 공도면의 소사리를 평택읍에, 용인군 남사면의 일부가 각각 진위면에 편입되었다.

1986년 1월 1일 평택읍이 급속한 산업화로 인구의 팽창과 행정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시로 승격 되었다. 1987년 서탄면 적봉리가 송탄시에 편입되고, 화성군(현 화성시) 양감면 고념리가 청북면에 편입되었다. 1989년에는 4월 1일 안중출장소가 안중면으로 승격되었다. 1995년 4월 20일 진위면의 3개 리가 오산시로 편입되었으며, 같은 해 5월 10일 도농통합에 따라 송탄시·평택시·평택군이 통합, 새로운 평택시가 되었다. 1996년 4월 19일에 동부동을 송탄동으로 변경하였고, 1997년 4월 26일 진위면 갈곳리를 진위면 갈곶리로, 청용동을 청룡동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해 6월 17일 현덕면 인광5리가 인광5·6리로 분리 조정되었고, 1998년 10월 1일에는 송탄동과 도원동을 합하여 송탄동으로 변경하였다. 2002년 11월 5일에 안중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2006년 12월 29일 포승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2016년 청북면이 청북읍으로 승격되었다.[2]

설화 민요[편집]

영웅 바위는 포승읍 만호리에서 서쪽으로 약 3㎞ 지점의 바다에 솟아 있는 높이 15m, 둘레 60m의 바위인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얽혀 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아산만으로 침입하자 이 바위는 신통력을 발휘하여 수군을 지휘하는 장군의 모습으로 화하였고 주변의 작은 바위들도 군졸의 모양으로 변하게 했다. 그러자 이곳에 당도한 왜군들은 자신을 향하여 돌진하는 듯한 바위의 형상에 속아 대경실색하여 도망치고 말았다. 그 뒤 사람들은 이 바위의 공을 기리기 위해 영웅바위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심복사는 현덕면 덕목리에 있는 절로 어부와 석불에 얽힌 유래담이 전해온다. 언젠가 아산만에서 조업하던 한 어부의 그물에 조그만 석불이 걸려 올라왔는데 어부는 그 석불을 무심코 바다에 던져버렸지만 석불은 매번 그물에 걸려 올라오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어부는 석불을 싣고 집에 돌아왔다.그 날 밤, 어부의 꿈에 낮에 건져낸 석불이 나타나더니 자신이 안치되어야 할 자리를 일러주고는 그곳에 절을 짓되 바닷가에서 파선된 뱃조각을 거두어 쓰고 근방에 돌아다니는 검은 소 세 마리를 끌어다 일을 시키라고 하였다. 이리하여 어부는 석불이 계시한 대로 절을 지었는데 그 절이 바로 심복사라는 것이다. 또한, 자미산의 성지에는 오누이 힘내기형의 유래담이 전해온다. 옛날 힘이 장사인 오누이가 있어 서로 힘겨루기 시합을 했는데 오빠는 세 척이나 되는 나막신을 신고 한양까지 갔다오고 누이는 그동안 앞치마로 돌을 날라다 성을 쌓는 시합이었다. 그러나 아들을 더 걱정하는 어머니의 간섭으로 누이는 시합에 져 죽고 말았다. 그때 누이가 성을 쌓았던 자리가 바로 성터이며 오빠는 임경업(林慶業)이라 한다.[2]

교통 개발[편집]

39번 국도로 바로 진출입이 가능한 안중 역세권개발(518만7,685㎡ 개발행위허가 제한지역 지정, 2021년 7월 15일)과 KTX직결사업, 평택~부발 단선전철사업이 예비 타당성조사에 착수하면서 안중역-서울은 30분, 안중역-강릉은 80분대에 도착 가능하다. 평택-당진항 2-3단계 1종 항만배후 단지 개발사업(경기 평택 항만공사)을 필두로, 경기경제자유구역청이 주관하는 평택 포승 BIX 지구(2.04k㎡)와 평택 현덕지구(현덕클린경제도시, 2.32k㎡), 평택자동차 클러스터(146만㎡), 수소교통 복합기지구축개발로 평택 서부권을 미래 첨단 산업의 거점지역으로 육성한다. 송담지구는 약66만2,00㎡면적으로 개발됐으며, 안중역과 가장인접한 택지지구로 안중역 개통을 앞두고 높은 프리미엄을 기대하고 있다. 인광지구는 현덕면 인광리 일원으로 약 29만㎡규모로 개발 중이며, 39번 국도 이용 시 차량으로 5분 내 안중역 이용이 가능하다.[3]

자연 환경[편집]

약간의 구릉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평탄한 지형으로 이루어진 지역이다. 동쪽에는 무봉산(舞鳳山, 209m)과 백운산(白雲山, 191m), 서쪽에는 덕지산(德智山, 138m), 봉화령(烽火領, 112m), 남부에는 고등산(高等山, 158m), 마안산(馬安山, 113m), 중앙에 무성산(武城山, 112m), 오봉산(五峰山, 112m), 바람산(183m) 등 100∼200m 급의 낮은 구릉이 곳곳에 솟아 있다. 이들 산지 사이를 흐르는 황구지천(黃口池川)과 진위천(振威川)이 합류, 평택의 주천인 안성천(安城川)에 흘러 들어간다. 안성천은 서남류하면서 직교천, 대방천을 합류하면서 아산호로 흘러들어 간다. 북쪽에는 발안천이 서남류 하면서 하안평야를 만들고 있다. 남양만과 아산만에 접해 있는 해안선은 출입이 심하고 매우 복잡하다. 과거에는 홍수 때에 황해안의 밀물이 몰려와 넓은 저습지를 만들었으나 남양만방조제 그리고 1973년 아산만 방조제를 만든 뒤로는 전 지역이 전천후 농경지로 변하였다. 지질은 대부분 화강암질 편마암이고 진위천변에는 제4기 충적지가 발달되어 있으며 기반암의 침식으로 구릉지가 곳곳에 분포하고 있다. 토양은 적황색토, 회색토, 충적토 등이 곳곳에 분포하고 있다. 연평균기온 12.3°C, 1월 평균기온 -2.5°C, 8월 평균기온 26.4°C이며, 연강수량은 1,054㎜로 매우 적다.[2]

관련 기사[편집]

화양지구는 평택시가 발표한 2035 평택도시기본계획에 따라 물류 관광 도심을 조성하게 될 서평택 일대에 핵심 주거지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곳은 경기도 유일의 국제무역항이자 평택시의 성장 동력인 평택항과 불과 5㎞ 떨어져 있다. 서평택 일대에 진행 중인 개발 호재 기대감도 높다. 포승읍 일원에서는 147만㎡ 규모의 평택 자동차 클러스터 사업이 추진된다. 국내 최대 자동차 물류항인 평택항을 활용해 자동차 키즈 테마파크, 자동차 박물관, 자동차 테마호텔 및 쇼핑센터 등을 구축하는 것이다. 수소복합지구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현덕지구도 인접해 있다. 내년 개통 예정인 서해선 복선전철 안중역도 가깝다. 안중역은 KTX~서해선 연결 사업이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반영돼 향후 화양지구에서 서울 여의도 등 주요 업무지구까지 이동 편의성이 크게 개선될 전망이다. 평택시의 오랜 숙원사업인 현덕면 평택호 관광단지 개발(66만㎡) 사업도 진행 중이다. 2026년까지 8009억 원을 투입해 관광호텔, 생태체험관, 수상레포츠센터 등을 조성하는 프로젝트다.[4]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1.0 1.1 고덕국제신도시에 이은 평택의 새로운 배후 주거지, 화양지구의 미래가치〉, 《리얼캐스트》, 2022-07-29
  2. 2.0 2.1 2.2 평택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3. 이경옥 기자, 〈서평택 택지지구, 교통·개발호재 풍부〉, 《국토일보》, 2022-01-20
  4. 김진수 기자, 〈'서평택 중심' 화양지구 아파트 2만가구 짓는다〉, 《한경닷컴》, 2022-01-17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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